-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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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콩나물이다
가끔 콩나물을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방 한 구석, 그렇게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빨간 바케스에서 콩나물이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것이 마냥 신기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콩나물이 자라는 모습 하나만으로 별에 별 생각과 상상을 했다. ‘왜 구멍이 송송 뚫린 바케스에 콩나물을 심었지?’, ‘식물인데 왜 밑에 흙이 없지?’, ‘콩 하나만 키워도 위로 자랄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내 자신이 대견해서 마치 파브르가 된 것 같아 우쭐해 지기도 했다. (당시 파브르가 식물학자인줄 알았다.)
나이가 먹으면서 동심의 순수함은 지식으로 채워졌다. 바케스는 ‘시루’였다. 콩나물은 그 특성상 흙에 심을 필요가 없으며 콩 하나는 ‘절대’ 위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콩나물 하나를 그냥 놔두면 누워있는 채로 줄기와 뿌리를 내린다. 콩나물이 위로 곧게 뻗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싹을 틔우는 다른 콩들과 서로 의지하면서 성장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016년 2월,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뒤로하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집이 파주였고 사무실은 서울이었기에 전철을 타는 것이 불가피했다. 출근시간의 경의선(문산~서울)은 말로만 듣던 지옥철이었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도 하루 이틀이지 통근버스 체계가 잘 잡혀 있던 회사를 놔두고 왜 이직했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매일 이렇게 짜증을 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회사는 가야하는 것이고, 이왕 가는 거 다시 좋은 마음으로 가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다 할머니가 기르던 콩나물이 생각났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백수였다면 집에서 빈둥거리며 ‘누워만’있었을 거 아닌가. 그래, 나는 콩나물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싹을 틔우기 위해 기꺼이 시루 같은 전철에 나를 태운 것이다. 나는 옆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다닥다닥 붙어 나를 맡겼다. 그들은 내가 위로 곧게 뻗어 서있을 수 있도록 지탱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들이 꼿꼿이 서있을 수 있도록 그들을 맞아들였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을 꿈꾸는 콩나물들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의지하면서 산다. 엄마에게 밥을 차려 달라는 것도, 자식에게 콩나물 좀 사오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펜을 빌리는 것도 모두 ‘의지(依支)’다. 의지는 ‘기대는 것’이다. 기대는 것은 맡기는 것이며 믿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믿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청년실업 100만 시대다. 연간 정신질환 환자가 470만에 이른다. OECD국가 중에서 평균 근무시간이 2위란다. 일자리가 없고, 정신은 피폐해져 가고, 쉴 시간도 없다. 혼술과 혼밥, N포세대, 높은 자살률, 헬조선 등 듣기만 해도 부정적인 단어만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사람을 녹초로 만든다. 에너지는 소진되고 속수무책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마저 유실된다. 각자의 싹을 틔워 성장하고 나무가 되길 원하는 동력이 멈춰가고 있다.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이럴 때 한 번쯤 누군가에게 기대보는 것은 어떨까? 근심과 걱정을 잠시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고 마음 편하게 의지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암묵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믿는 사람과 수다를 떨어도 좋고, 기대어 울어도 좋다.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냥 나를 맡기는데 있다.
이럴 때 한 번쯤 누군가의 ‘의지’를 받아주는 것은 어떨까? 역시나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깨를 빌려줘도 좋고, 안아줘도 좋다. 함께 울어 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좋다.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를 아무 대가없이 빌려주는 것이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를 빌려줘 보자. 혹시 모르지 않는가. 아무 관계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될지.
오늘도 나는 콩나물처럼 나를 지탱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나도 리아 누나 말처럼 파브르에서 피식 했네요 ㅋㅋㅋ
" 그래, 나는 콩나물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싹을 틔우기 위해 기꺼이 시루 같은 전철에 나를 태운 것이다. 나는 옆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다닥다닥 붙어 나를 맡겼다. 그들은 내가 위로 곧게 뻗어 서있을 수 있도록 지탱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들이 꼿꼿이 서있을 수 있도록 그들을 맞아들였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을 꿈꾸는 콩나물들이었다"
이거 쫌 멋진듯.. 서로 기대어 사는 콩나물에서 의지하면서 사는, 의지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다니 ㅎㅎ
멋쟁이 ㅇㅅㅇ)b 짱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