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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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백설공주'를 읽다 보면 아주 탐나는 것이 나온다. 바로 신기한 거울이다. 그 거울은 물어보는 모든 것에 대해서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마법의 세계에서나 나올만한 아이템이다. 어린 나이에도 백설공주의 기본적인 주제에 보단 그 거울에 대해서 감탄하면서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동화 백설공주의 왕비는 늘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었다. 그 때마다 거울은 늘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란 궁금증과 함께 왜 왕비는 저런 것만 물어볼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 나도 저런 거울이 있었으면 좋겠다란 상상을 했다. 그러면 내가 어려워하면서 궁금해 하는 것들을 다 물어볼텐데 하고 말이다.
그런데 왕비는 어느 날 거울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대답을 듣는다. “당신보다 백설공주가 더 예쁘다." 그 대답으로부터 백설공주의 영웅적 여정이 시작되고 드디어 본격적인 스펙타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
백설공주 이야기의 시작은 거울에서부터 출발하는 셈이다. 그런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자크라강은 1936년 중요한 듯 하면서도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은 논문을 하나 발표하는 데 그 논문의 주제가 ‘거울단계’라고 한다.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어린 아기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한 논문이다. 이 단계의 어린이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환호한다. 그 뿐 아니다. 아이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 하게 된다. 라캉은 바로 이 단계를 ‘거울단계’라고 불렀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거울을 통해 본 모습을 통해서 거울을 현실과 동일 시 하다가 곧 자기의 모습임을 깨닫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비로소 상상의 세계였던 ‘거울단계’를 지나 ‘실존단계’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논문이 된다고 하니 놀랍다.
그런데 사실 성인이라고 해서 ‘거울단계’를 지나 정말 라캉이 이야기하는 ‘실존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우리는 어쩌면 평생 ‘거울단계’와 ‘실존단계’ 에 모두 걸쳐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유아기를 지나서도 모두 거울 속에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동화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거울 속에 나에게 물어본다. “이거 어때?”, 그리고 스스로 대답한다. “오~~ 좋은데! 어디 가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거울에게 많은 것을 물어본다. 그리고 요새는 거울이 확장되어 모두들 많은 거울을 보유하고 있다.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예전에 거울에게 물어 보듯이 SNS 에게도 물어본다. 언뜻 보면 그냥 일상의 풍경을 무심한 듯 담고 있지만 이것 역시 내가 가지고 수 많은 거울들 즉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니 거울에게 물어보는 것과 동일한 연장 선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궁금 한 것에 대해서 대답을 해줄 많은 거울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사실
궁금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거울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자.
" 이거 어때? 나 한테 좀 안 어울리 않아?
"
" 잘되겠지? 그치? 응? 응? 잘되지 않을까......."
" 넌 어떻게 생각해? 그렇지 않니? 그렇지? 그렇지? "
어쩌면 우리는 아니..사실은 답을 우린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기 보단 듣고 싶어 한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미 답은 자기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묻곤 한다.
" 넌 어떻게 생각해? "
보통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이렇게 질문해오면 나는 보통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편이었다. 그가
그녀가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 줄 알면서도 그냥 현실을 직시해 주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에게 더 고통을 덜어주는 것 혹은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정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란 거울은 백설공주 왕비가 화가 나서 거울처럼
깨뜨린 것처럼 지인들에 의해서 많이 깨졌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그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그래 사실 다 안다. 자기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듣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물어보는 것은
위로 받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을 통해 나에게 도움의 손을 뻗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거울들에게 내가 듣고 싶은 답을 물어
본 것은 내 마음을 알아 줬으면 하는 바램에서 손짓을 한 것이다.
우리가 거울에게 물어보는 것은 자기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고 또 조금이나마 감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란 어찌 보면 그렇게 한없이 나약하고 고독한 존재가 아닌가 그걸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한번쯤 물어본들, 그렇게 한번쯤 손을 뻗쳐본 들 부끄러울 것이 뭐 있겠는가? 그래도 대답 없는 거울이 있다면 깨뜨리면 되고 다시 또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거울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 아닌가? 부끄러워 말고 자신 있게 물어보자.
“넌 어떻게 생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