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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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를 받는 그대에게 ‘겸양의 괘’를 알려주마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보면 사람들이 걸핏하면 죽는다. 그것도 곱게 죽지 않고 잔혹하고 참혹하게 죽는데, 죽음의 원인은 ‘원한’과 ‘분노’보다는 ‘시기’와 ‘질투’인 경우가 많음에 주목하게 된다. ‘손방투지(孫龐鬪智, 손빈과 방연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고사의 주인공 ‘손빈’과 ‘방연’은 ‘귀곡’이라는 뛰어난 학자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친한 선후배 사이였다. 방연이 먼저 위나라 혜왕의 장군으로 출세하였고 손빈을 위나라로 초청하였다. 그러나 방연은 자기보다 뛰어난 손빈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질투하여 손빈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 결국 손빈은 두 다리가 잘리고 이마에 먹물로 죄목을 새기는 형벌을 받게 된다.
누구나 ‘질투’와 ‘열등감’을 내면에 안고 산다. 드러내기 부끄러운 감정이라 그저 누르거나 다른 감정의 가면을 쓸 뿐이다. 내면에 이러한 감정의 화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글은 많다. 그런데 그러한 감정을 ‘품은’ 사람 못지 않게 ‘받는’ 사람의 마음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그렇잖아도 스트레스 많은 시대, 시기와 질투까지 받는다면 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이러한 심리적 소모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은 없을까? 있다. 아들러가 시기와 질투를 ‘품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썼다면, 시기와 질투를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언급된 바 있으니 바로 주역에서 말하는 ‘겸양의 괘’가 그것이다.
‘겸양의 괘’는 주역의 64괘 중, 15번째 괘로 ‘지산겸(地山謙)’이라 하며 땅 밑에 산이 있음을 상징한다. 가장 높은 산이 가장 낮은 땅을 떠받쳐 높은 자가 낮은 데로 임하는 형상으로 겸손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易(역)’은 ‘만물은 변한다’라는 뜻이다. 64괘로 상징되는 우주 질서는 길(吉)과 흉(凶)이 공존하면서 정-반-합의 무늬를 그려내며 변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사계절이 그러하고 젊고 늙는 것이 그러하다. 이렇게 길흉이 번갈아 가며 변하는 가운데 겸양의 괘는 유일하게 부정적 평가가 전혀 없는 괘라고 한다. ‘길(吉)’의 기운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지혜의 괘인 것이다. 가진 자의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자에게 보태어 주고, 자랑하지 않고 더욱 자신을 낮출 때 모든 사람은 시기와 질투는커녕 낮은 데로 임하는 그 사람에게 감복하게 된다. 즉, ‘나만 옳고 잘났다’는 시각을 ‘너도 나와 같이 옳고 잘났음’을 인정하여 ‘우리 모두가 옳고 잘난 존재이며, 백팔번뇌를 이고 지고 수양하는 동반자들이다’라고 생각의 폭을 넓혀 겸손해지면,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의 기운이 나를 일으켜 준다는 거다.
사람은 모두 열등감의 불씨를 안에 지니고 있지만, 쥐뿔도 가진 것 없이 제 잘난 맛에 사는 것도 우리 인간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그 잘난 맛 때문에 ‘잘나지도 않았는데 시기와 질투를 받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과연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겸양을 실천할 수 있을까. 물론 어렵다. 실천의 경지는 아마도 지구인 중에는 4대 성인 정도 되는 분들이나 닿을 수 있는 경지일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실천은 못해도 말에라도 겸양을 담자.
‘요새 사업이 좀 어때?’라는 질문에 장사 안 된다고 우는 소리를 할 필요도 없지만, 대박이라고 자랑할 일도 아니다. “그냥 먹고 살아요”가 모범답안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겸양의 괘’를 달리 표현한 삶의 지혜이다. 묻는 이는 날씨를 묻듯 별다른 생각 없이 묻는 것이다. 진정 그대의 밥벌이가 걱정되어 묻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자랑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을 높이지 말고 진심을 담아 오히려 남을 추켜 세우자.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어 입이 근질거리는 일이 생겼다면 애써 입을 닫자. 모처럼 생긴 좋은 일이 하강곡선을 타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겸양의 괘’를 떠올리자. 길흉이 반복되는 우리 인생, ‘겸양의 괘’는 우리 머리 위 길한 여신이 떠나는 것을 붙잡을 수 있는 하나의 지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기를 받는 그대, 잘나가는 그대 또는 제 잘난 맛에 사는 그대에게 겸양의 괘를 알려주었다. 진정 자랑하고 싶다면 그저 장기하의 ‘별 일 없이 산다’를 불러라. 다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이의 마음으로 그저 속으로 혼자 부를 일이다. 그대의 인생이 ‘뜻대로(如意)’ 순조롭게 펼쳐지게 하는 마법의 여의주는 바로 겸양의 괘에 있으니 말이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애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번 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가 즐거웁다
매일매일 신난다
- 장기하,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아래 노래 링크 걸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