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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6일 10시 09분 등록

위대한 멈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12기 예비연구원 이경종



저자에 대하여


공저자인 홍승완과 박승오는 둘 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 출신으로, 이 책은 그들이 공저한 적지 않은 책들 중 가장 최신작이다(적어도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들에 한해 그렇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화두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나의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승인 고 구본형 소장의 평생 화두였던 '변화'와 '진정한 내가 되는 삶'의 연장선상에 그들이 있다. 저자들의 이력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박승오

카이스트 96학번으로 대학시절 무리한 학업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이 좌절의 시간동안 그는 한권의 책 - 구본형의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을 만났고, 이것은 그의 인생의 전환을 유발하는 촉매가 된다. 이후 구본형 소장의 제자가 되어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뜨고 스스로를 탐색하는 자기전환의 시기를 가지게 된다, 현재는 삶의 지혜를 찾아 이를 나누는 작가와 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다.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활발한 강연과 저술활동을 진행 중이며, 주요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갈림길에서 드는 시골수업(2017) - 박승오, 김도윤

위대한 멈춤(2016) - 박승오, 홍승완

지금, 꿈이 없어도 괜찮아(2015) - 박승오, 김영광

달라야 달라진다(2013) - 박승오, 홍승완

시계를 멈추고 나침반을 봐라(2012) - 박승오, 홍승완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는 법(2009) - 박승오, 홍승완


젊은 날에 그가 겪었던 좌절은 어쩌면 더 ‘큰 나’를 찾게 해준 도화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걸어가고 있는 그 길에는 꾸준함이 느껴진다. 그의 스승 구본형이 그랬듯이, 그 또한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중이다. 많은 공저가 있지만 단독저서를 찾지 못 하였다. 그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걷다 정착한 시골마을에서 언젠가 그의 단독 저서를 만나 보는 일도 그리 멀지 않은 듯 하다.  


홍승완

지금까지 인생에서 두번의 전환기를 겪었다. 첫번째는 대학시절 경제적 이유로 인해 시작되었고, 두번째 전환기는 서른네살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5년 동안 회심재(回心齋)〉라고 이름을 붙인 본인의 서재에서 매해 200권의 책을 읽고 100편의 글을 쓰며 내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경영컨텐츠 전문가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멈춤(2016) - 홍승완, 박승오

달라야 달라진다(2013) - 홍승완, 박승오

시계를 멈추고 나침반을 봐라(2012) - 홍승완, 박승오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는 법(2009) - 홍승완, 박승오

내 인생의 첫 책 쓰기(2008) -  홍승완, 오병곤


홍승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그가 이전에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몇 편 읽어보았다. 방대한 독서량과 꾸준한 글쓰기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한해 200권의 책을 읽고 100편의 글쓰기를 했다는 것, 그것도 5년을 그렇게 살았다는 것은 이미 그가 1만시간의 법칙을 뛰어넘은 삶의 일대 전환을 마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소로가 월든에서 거친 삶의 전환 과정, 그를 모방한 신화학자 캠벨의 젊은 날의 전환기, 그리고 홍승완이 보낸 회심재에서의 5년까지 모두가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열고자' 하는 열망의 소산인 셈이다.


두 저자 모두 공저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두 저자가 함께 공저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어떤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 적지 않은 책들을 함께 쓰게 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구본형 사부의 제자들로서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던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무엇보다 두 저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책과 교육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변화는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스승이였던 구본형 이전에도 수많은 선각자들이 부르짖었지만, 그토록 우리가 외면했던 진리에 대해 그들은 다시 이야기한다.  나를 찾지 못 하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는 명료한 사실을 말이다. 비록 이 책을 통해 그들과 처음 만났지만, 그들이 얼마만큼 더 큰 배움과 가르침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설지 기대된다. 그들이 구본형의 제자라는 딱지를 벗어 던지고 그들만의 브랜드를 론칭(launching)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이미 그 길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내 마을을 무찔러 드는 글귀


P6 

삶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모험을 떠나라. 다른 이가 마련해 준 광장을 떠나 험난한 숲에서 너만의 길을 찾아라" 그러나 그 길은 아이시크의 여정처럼 필연적으로 내가 출발했던 그곳, 즉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다.

 

P8 

자신의 운명을 비범하게 바꿔 낸 이들의 삶의 괘적, 거기엔 늘 우리의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와 '그는 나와 달라'이다. 이 이중적인 시선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자 하는 시도가 바로 이 책이다

 

P14 

삶의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한 많은 인물이 보여 주는 진실은 전환점이 아닌 전환기에 있다. 계기는 한순간의 사건에 의해 촉발되지만 실제로 삶을 이륙시키는 것은 오랜 기간 진행되는 '자기다운 삶을 발견하기 위한 실험'이다.

 

무릇 깨달음과 수행의 과정이 이와 같지 아니하겠는가. 각성의 순간, 전환자는 더 큰 세계에 눈을 뜨게 되지만 실제로 삶의 완성을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수행의 과정, 즉 점수(漸修)인 것이다. 1만시간의 법칙으로 흔히 얘기되는 인고의 시간만이 우리를 진정한 피안(彼岸)의 세계에 들어서게 한다.

 

P30 

삶이 고통을 통해 우리를 부를 때, 상황을 타개하고자 더 열심히 노력하며 발버둥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방황을 할 때에는 깊이 방황하는 것이 낫다

 

여기서 언급된 ‘방황’은 필경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 단어는 아닐 것이다. 삶이 우리에게 전환기를 요구할 때, 이제껏 해오던 ‘타인의’ 방식을 고수하지 말고, 아직은 무엇인지 모르는 ‘나만의’ 삶을 위한 정처없는 여행을 한번 떠나보는 것이다.

 

P32

이처럼 자신의 소명을 발견해 나가는 도중의 '하강경험'은 참 자아로 돌아오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신곡'에서 단테는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 지옥의 가장 아래에 있으며, 지옥 바닥까지 내려가서 반대쪽으로 뚫고 나와야 비로소 천국으로 갈 수 있음을 묘사한 바 있다.

 

P35

과거의 삶, 어제의 나를 과감히 놓아 버리고 매듭을 지을 때, 우리는 자신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길로 들어섰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전환기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놓아 버릴 때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삶의 다음 단계를 위해 필요한 신호와 단서를 얻게 된다.

 

P39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신호를 들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고독'이다. 사람은 고독할 때 비로소 자신과 삶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평생 '고독'이라는 주제를 연구해 온 임상심리학자 에스터 부흐홀츠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통해 영감을 얻고, 정보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하며, 연습을 통해 실력이 향상된다. 하지만 현 상황을 파악하고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며 자신만의 고유한 해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은 스스로를 혼자만의 세계에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 ‘혼자만의 고유한 시간’은 창조의 시간이며 개인의 본질적인 능력과 접신(接神)하는 시간이다. 고독의 시간은 구본형에게는 새벽 2시간이었고,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위대한 전환자들에게도 어떤 형태로든지 존재했다.

 

P40

철학자 니체는 '춤추는 별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내면에 카오스를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암중모색의 시기는 때로 의미 없는 시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때가 자신에 관한 결정적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P42

인생은 결국 우선 순위의 문제다. 밥과 존재, 두 가지 모두 삶에서 중요하다. 그 어느 것도 양보할 수 없으니 둘 다 동등하게 높은 우선 순위로 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었다

 

P43

멈춤으로써 새 길을 발견하고, 비움으로써 새 삶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더비움 꿈토핑!


P44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전환을 알리는 부름의 메시지를 대수롭지 않게 흘려 보내거나 알아채지 못한다. 의미를 깨닫기 못하면 다시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 카를 융은 '지금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나중에 더 험악한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한다.

 

삶이 주는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 반등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눈 앞에 디딤돌을 보지 못 한다. 삶이 주는 경로변경 신호를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그것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보잘것없는 현실에 대한 집착이다. 더 큰 성취를 포기하고 작은 문제들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다 보면 소프트웨어가 사소하지만 이상하게 동작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바로 그때 일면 사소해 보이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것은 미래에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개발 도중 한번이라도 발견된 소프트웨어 이상동작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꼭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경험이 없는 개발자들은 이런 신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타성에 젖은 개발자들 또한 이런 신호를 묵과하고 나 몰라라 하기도 한다.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하여 그들에게 귀책사유가 있음이 증명되지 않는 한 그들의 이런 태도는 바뀌지 않으며, 그들은 늘 오지 않는 기회를 한탄한다. 

 

P48 

인생의 커다란 전환은 부지불식간에 다가온다. 그러므로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라는 부름에 민감해져야 한다. 사건의 숨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내면의 해석자가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려면 상징과 조력자, 그리고 동시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건과 의미 사이에 주파수가 맞을 때 비로소 메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를 향한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P50 

일상의 독서가 주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답을 얻기 위함이라면 전환기의 독서는 답이 아닌 근본적인 질문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P68

그는 이러한 신화적 모험에서 '블리스 bliss'를 따라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블리스란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느끼는 희열감, 곧 살아있다는 느낌을 말한다. 만일 이 블리스를 따라 간다면 필연적으로 갖은 시련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의 블리스로 지혜롭게 이겨 낼 수 있으며, 마침내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게 된다.

 

P75

(앨리엇의) 시는 내 안에 깊숙이 박혀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런 능력은 이제 영영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도 있었던 것이었다. 안과 밖이 조금도 겉돌지 않고 하나로 맞물렸다. 차분하고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 인상에 남는 그 시는 나의 상태를 완벽히 표현했고 두둔했고 내가 생사의 투쟁에서 맥없이 물러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조건과 세상살이의 진실과 우연히 맞닥뜨린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P79

나는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였지만 아마추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추어는 어차피 자기가 좋아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고독한 나날을 말없이 나의 주제에만 몰두하면서 보냈다. 매일 아침 어서 빨리 책상으로 달려가서 책을 펼치고 펜을 쥐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조정래 선생님이 얘기하는 ‘황홀한 글감옥’이 이와 같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여 얻는 황홀감은 인생의 정수인 것이다. 지금 이 과제를 하고 있는 이 순간도 황홀한데, 앞으로 얼마나 더 고독하고도 황홀한 글감옥에 빠지게 될지 많이 기대된다.


P84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세계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힘을 섬광처럼 보여 주는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바꾼다. 이런 만남은 그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래서 소설가 에리카 종은 이렇게 말했다. '책은 세상 속으로 외출한다. 신비롭게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여행을 하다가 누군가 이 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그때에 가 닿는다. 우주적 힘은 그러한 조우를 인도한다.'

 

P87

깊은 질문이 깊은 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깊은 질문 없이는 깊은 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은 관점이고, 관점은 답을 찾아가는 범위와 방향을 결정한다. 무엇보다 근원적인 질문은 자기 자신과 삶을 돌아보게 한다.

 

P92

좋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는 점에서 책이 우리의 사고를 훈련하는 좋은 도구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자칫 우리가 책에서 '완벽한 답'을 찾으려 하거나, 책이 그런 답을 제공하려고 할 때 생각은 제한된 채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되려 책에 읽히게 된다. 조지프 캠벨이 좋은 책으로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어떤 결론을 내려 주지 않는 책'을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의 기능은 결론이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사유의 재료를 제공하고 영감을 점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P94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나의 가르침은 뗏목이다.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 역시 하나의 뗏목이다. 강을 건너면 곧바로 길을 떠나야 한다. 이것을 잊을 때 독서는 지적 허영으로 전락하고 독서가는 가분수로 뒤뚱거리게 된다

 

P99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려운 용어 뒤에 숨지 않는다. 심입천출(深入淺出), 깊이 들어가서 얕게 나올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전문가다. 배울 때는 깊이 들어가되, 설명할 때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깊이 이해한 사람의 특징이다. 품격 있는 고수는 갑질을 하지 않는다.

 

P101

SNS의 친구는 대개 나의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나와 유사한 사람들과 연결된다. (…) 그래서 점점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나와 다른 생각은 완전히 반대편으로 인식하게 된다. (…) 모두들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긁어 모은 채 상대의 말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착된 관념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책들의 인기가 좋다. 사람들은 책 안에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때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이는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는 인간의 약한 본성 탓이다. 위로의 말만 잔뜩 늘어놓지만 마지막까지 신세한탄에 그치고 마는 책이 있고,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사상누각에 불과한 책들도 있다. 읽을 당시에는 자신에게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지만, 그저 책을 읽는 잠깐 동안 받는 자기 위로나 책을 덮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허망한 관념에 그치고 마는 책들이 많다. 물론 좋은 책임에도 독자의 수준과 상태에 의해 그렇게 오도되는 책들이 더 많다. 

 

P102

한바탕 '깨지기 위해' 읽는다. 편견을 깨뜨리고 오래된 인식틀을 부수기 위해 읽는다. 통렬하게 깨쳐 각성하고 반성하기 위해 읽는다. 이것이 책을 대하는 좋은 자세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하듯이, 깨져야 깨달을 수 있다.

 

P107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좋은 문장을 얻는 것이다. 책 전체의 내용이 아니라, 좋은 문장 하나가 삶을 바꾸기 때문이다. 좋은 문장은 내 마음속에 이미 있었던 것, 그러나 콕 집어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의식의 표면위로 환하게 드러낸다. 그때 가슴이 뛰는 이유는 암묵의 생각이 적절한 표현을 얻었기 때문이고, 한순간 환해지는 이유는 꺼져 있던 마음의 심지에 불이 댕겨졌기 때문이다.


좋은 글귀, 울림이 있는 문장은 독자를 번쩍이는 각성과 깊은 사유로 이끈다. 하지만 명언집만으로는 인생을 바꿀 수 없다. 때론 단 한 줄의 글이 큰 울림을 주기도 하지만, 진정 좋은 책에서는 좋은 글귀가 독자를 절정으로 이끄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짜임새 있는 글의 구성, 감명 깊은 스토리가 독자를 심연의 골짜기로 인도하며 멋진 문장은 부지불식간에 폭포가 되어 온 마음을 덮친다. 그런 책이 정말 좋은 책이다.

 

P108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 니체


이제는 가능할 것 같다. 내 삶의 혁명이. 


P113

자신의 모든 일상을 책의 주제인 '변화'라는 렌즈로 들여다보았다. 분명한 키워드를 가지니 회사 일은 물론이고 책과 영화, 시와 소설, 산과 바다 등 모든 것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만물은 변화하고, 변화는 생명의 근본적인 존재 방식임을 새삼 깨달았다.

 

P116

새벽은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의 시간이다. 꿈에서 현실이 태어나듯이, 결심을 하면 그 결심을 이룰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는 때이니 미래가 탄생하는 축복받는 시간이다. 나는 이때 쓴다. 나는 글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내 글은 다가올 하루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다. 그때의 내 정신, 그때의 내 각오, 그때의 내 희망을 담고 있으므로, 그 기분 그 느낌으로 내 하루를 살게 된다. 그러므로 글을 써야 비로소 내 하루가 시작된다.

 

P129

'의료 사제'를 완성하고 난 직후에도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앞으로 더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프랭클은 계속해서 글을 썼다. 1946년 한 해에만 3권의 책을 출간했다. (…) 프랭클은 글쓰기를 간절히 원했고, 또 자신의 체험을 토해 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실했다.

 

P131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친 힘을 "피로 글을 쓰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내 피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는 말로 표현했다.

 

P134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 훌륭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긴 하지만 나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책을 펼치며 부풀었던 마음은 책을 덮으면 사그라진다. 녹록지 않은 현실과 대면하는 순간 역사history는 '그의 이야기he-story'로 전락하고 만다. 내가 직접 체험한 '내 이야기me-story'를 간절하게 써내려 갈 때 비로소 나의 역사,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글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실험함으로써 서서히 나를 넘어선 그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다.

 

P142

철학자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직접적인 자기관찰도 자신을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역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과거란 수많은 물결 속에서 우리에게 계속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P163

이런 '의미 있는 우연'들이 그를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자보르스키는 더 이상 삶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삶이 자신을 통과하여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P166

나는 가야 했다. 나는 나의 쉼플레가데스를 빠져나가야 했다. 나의 흑해를 건너야 했다.

 

P172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흑해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아손의 아르고 호를 통과시킨 뒤부터 박치기를 그만둔 쉼플레가데스가 그렇듯이 이제 나의 쉼플레가데스는 더 이상 나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나의 흑해를 향해 배를 띄우기 시작하고부터 두려움과 망설임은 내게서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P174

붙박여 사는 삶의 지경을 넘어 모험과 시련의 들을 떠돌던 자, 인간이 알지 못하는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무수한 경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하여 이 '떠도는 자들'은 인간이 모르던 것을 알게 하고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했다.

 

P176

융은 자신이 이 여행을 갑갑한 현실의 도피처로 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도피성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P179

전환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삶의 주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환기에 떠나는 여행도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 니체가 말한 '여행하면서 오히려 관찰당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전환기의 여행자는 여행의 대상이 아닌 여행의 주체로서, 능동적인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니체가 최고의 여행자로 꼽은, '관찰한 것을 모두 체험하고 동화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여러 가지 행위와 작업 속에서 실천하고 다시 살려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P182

자보르시키가 여행 중에 두 가지 자유를 깨달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벗어나는 자유'와 펼쳐지는 '흐름 상태'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자유, 그리고 여행 중에 또 하나의 자유를 깨닫게 된다. '본연의 내가 될 자유, 가장 고귀한 자아가 될 자유'이다. 그는 "이런 자유는 찾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있다. 방법은 우리의 의식 수준을 바꾸고, 스스로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P186

종교학자 폴 틸리히 -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P190 

도보는 가장 느리지만 가장 온전하게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한다. 차는 빠르지만 주변을 제대로 살필 수 없다. 여행의 본질이 과정임을 감안하면 도보와 자동차는 속도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과정이다.

 

P192

독서가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이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면 글쓰기는 '손으로 하는 여행'이다. 셋이 결합될 때 상승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작가들이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그럼 여행작가는 작가의 끝판왕일까? ^^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풍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풍광을 보다 보면 새로운 눈이 생겨나기도 더 쉬워지겠지.

 


P205

대가를 따르라! 그런데 대가를 흉내 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가가 왜 대가이겠습니까? 그들은 누구도 흉내 내지 않았기 때문에 대가인 것입니다.

 

P220

최상의 취미는 삶을 새롭게 고양시키는 취미다. 이것은 일상을 한층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살아 있음을 체험하도록 돕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취미는 저 높고 멀리 있는 목표를 겨냥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저기 어디 멀고 높은 곳이 아닌 바로 지금의 일상에 있다.

 

P223

취미가 창조적 여백을 주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몰입하는 과정에서 자아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모든 고통의 중심에는 자아가 있다. (…) 자아가 사라진 만큼 여백이 생기며, 이 여백은 그저 빈 것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채워진다. 법정 스님은 이러한 상태를 '텅 빈 충만'으로 표현한 바 있다. '마음을 비우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진공묘유(眞空妙有) 역시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흥미롭게도 몰입이 깊어질수록 자아는 흐릿해지는 동시에 고양된다. 사라지는 동시에 더 높이 존재하게 된다는 모순이 생겨 나는 것이다.

 

P227

쉬는 기간이 길수록 몰입할 활동이 더욱 분명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과감히 휴식에 돌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P231

하이데거는 평소에 갈망하던 것이라도 얼마 후 죽게 된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어지거나 급격히 가치가 퇴색하는 것들을 '욕망'이라 불렀다. 그러나 '소망'은 오히려 정반대다. 머지않아 죽게 된다고 생각하면 더욱 간절하게 이루고 싶어지는 것이 소망이다

 

욕망은 결과 지향적이다 성공과 실패에 민감하고, 성취할 때까지 기쁨은 유보된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간다. 최대한 빨리 이루고 싶은 마음에 쉬운 길을 찾고, 반칙과 편법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욕망을 실현하고 나면 금세 공허해진다. 그래서 더 큰 욕망을 쫓기 시작한다. 이것이 욕망의 아이러니다.

 

P237

이들의 특징은 취미를 통해 절정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절정감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일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의 몰입 그 자체가 순수한 기쁨임을 이해한다. 또한 무언가에 푹 빠져들어야만 비로소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있으며, 깊은 몰입 속에서만 눈뜰 수 있는 시선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초월적 시선'에 눈을 뜬 마니아만이 취미를 통해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

 

P241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였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죽는 순간 살아왔던 삶에 한점 후회와 아쉬움이 없을 수 있을까. 조지 버나드 쇼조차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는 묘비명을 남겼는데, 범인의 인생에 후회와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소로가 얘기한대로 의도적으로 인생을 살고, 삶이 아닌 것들은 살지 않으려 애쓰는 수밖에.


 

P246

소로는 월든에서 이상적인 삶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생을 깊이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고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P248

자기다운 삶을 위한 하루의 재편. 소로는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하루를 설계했다. 그의 '하루 경영'의 초점은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적인 활동의 조화였다.

 

P250

그가 자신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이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빈곤도 빈곤이 아니며 연약함도 연약함이 아닐 것이다.

 

P260

우리 부부는 경쟁적이고 공업화된 사회 양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네 가지 해악에서 벗어나는 데 꽤 성공한 편이었다. 그 네 가지 해악이란 돈과 가재도구를 비롯한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들을 괴롭히는 권력,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반드시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많은 사람들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을 말한다.

 

P262

스콧과 헬렌이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자본가의 권력때문에 인간의 자유가 크게 제한받고 있으며 굳건한 '자립'만이 그 속박을 끊고 자유로 가는 길이라는 점이었다. 자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체제에 익숙해지면 어쩔 수 없이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P269

여기서는 창조의 고통이 완화되며 창조성과 유희성이 거의 하나로 어울린다


나의 일터가 이런 곳이였으면, 나의 글쓰는 공간이 이런 곳이였으면.

 

P271

그곳에는 일상이 없다. 나는 이때 이 책이 잘 팔릴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비평가들이나 독자의 생각도 고려하지 않는다. 잘 써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책상에 앉아 내가 써야 할 글들을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충실하다. 이것이 새벽 두 시간의 성스러움이다. 

 

P272

이윤기가 스스로에게 자주 던진 질문이 있다. '하고 있는 일, 살고 있는 삶에는 지금 내 피가 통하고 있는가? 나는 삶에서 무엇을 취하고 있는가? 가죽인가, 뼈인가, 문제는 골수이겠는데, 과연 골수인가?'

 

P273

삶을 즐기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세상' 하나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공간을 발견하고 만드는 과정은 나의 작은 세상 하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 그에 걸맞는 자신의 공간을 갖추는 것이다

  

P277

만물이 그렇듯 공간도 변한다. 독일의 정신치료사 카를프리트 그라프 뒤르크하임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연구'에서 '공간은 그 안에서 사는 존재에 따라, 또 그 공간에서 진행되는 삶에 따라 다른 공간이 된다. 공간은 그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과 함께 변하고, 그 순간 자아 전체를 지배하는 특정 견해와 지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공간과 사람은 서로를 비추고 공명한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P281

성소는 종교적인 공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자신과 가장 잘 공명하는 공간이 성소다. (…) 내가 어떤 공간에 끌리는지 유심히 관찰해 보자. 자신의 성소를 만들거나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기다운 공간의 특징과 기준을 알고 있어야 한다.

 

P282

공간은 '마음의 소리를 담는 그릇'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거는 공간이 있다. 그런 공간에는 기억과 관찰과 상상을 깨우는 힘이 있다. 기억력은 과거에 대한 반추이고, 관찰력은 현재에의 몰입이며 상상력은 미래를 비추는 빛이다. 공간은 몸이 머무는 곳인 동시에 정신적 에너지가 모이고 흐르며 순환하는 장이다.

 

P301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문을 찾아야 하고 스스로 그 문을 열어야 한다. 아무도 그것을 해줄 수 없다. 지붕으로 통하는 그 작은 나무 문은 나의 미래와 바깥 세상을 상징했다. 나는 그 문을 통해서 걸어나가야 했다.

 

P309

카를 융은 상징의 중요한 역할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캠벨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중요한 문제의 상징적 성격을 이해하고 해석해 낼 수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P310

상징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알아내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생명력 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상징은 자신에게 마음을 흠뻑 쏟는 사람에게만 품고 있는 비밀을 열어준다.

 

P316

상징은 한 인간의 본질을 보다 깊이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요한 개인적 상징은 다른 수단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나의 심오한 모습을 밝혀 주는 동시에 그 자신의 삶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의미를 알려 준다. 이것이 개인적 상징의 가장 놀라운 면이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상징은 나의 무의식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지 넌지시 알려 준다.

 

P317

꿈과 신화와 의례는 상징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통한다

 

P318

의례의 본래 기능은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캠벨에 따르면 '의례의 기능이란 오로지 여러분의 마음을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의 의미에 집중케 하는 것'이다.

 

P323

카잔차키스가 보여 주듯이 상징의 발견과 해석, 상징을 살려 내는 체험은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한다. 상징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일은 대체로 까다롭다. 특별한 관심과 집중적인 노력 없이는 상징을 찾아내거나 풀 수 없다. 

 

삶은 상징을 닮아간다. 그리고 상징을 따라 삶이 변하듯 변화하는 삶을 따라 상징도 진화한다.

 

P324

실제로 월든 생활 중에 매일 새벽 월든 호수에 몸을 담갔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하나의 종교적 행사였으며, 내가 행한 최선의 일 중 하나였다.' 이 의례를 통해 강이라는 상징과, '날마다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는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 강은 소로에게 심신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 

 

P326

좋은 의례는 두려움과 의심을 막아 준다. 기우제를 통해 가뭄의 두려움을 막을 수 있다면, 즉 비가 올 거라는 희망을 키울 수 있다면 가뭄으로 인한 어려움을 보다 씩씩하게 견딜 수 있다. 같은 이치로 오늘 글쓰기를 하는데 영감이 찾아올지 안 올지 걱정하지 않는다면 글쓰기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다. 의례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의식은 일종의 알람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 어떤 활동의 시작과 재시작의 계기를 제공한다.

 

P327

기도는 가장 보편적인 의례 가운데 하나다. 기도는 특정한 주제에 몰두하며 자아를 넘어서는 존재와 나누는 대화다. 다른 의례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통해 우리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모을 수 있다. 온 마음으로 집중하여 반복하는 기도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흔히 기도는 절대자 혹은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기도하는 자의 마음을 바꿀 뿐이다'. 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P341

간디가 말했듯 그의 종교 공부는 '도덕'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는 세계의 어느 종교이건 동일한 기본 도덕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종교의 본질은 도덕에 있다고 믿었다. 예컨데 사랑과 헌신은 모든 세계 종교의 근본 원리였으며, 모든 종교가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 신에 이를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었다. 결국 명칭과 표현만 달리할 뿐 본질적인 차원에서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구본형이 변화라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 것과 같은 맥락이리라. 그의 모든 공부와 세상을 향한 시선이 '변화'로 귀결되었듯이, 최우선하는 가치에 따라 모든 진리들이 스스로 말을 걸어오게 된다. 이것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 하는 아집과는 다르다. 모든 만물의 근원에 숨겨져 있는 '바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은 단순히 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닌, 처절한 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영웅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고귀한 존재이다.

 

P355

난 캐시어스가 아니에요! 난 백인이 아닙니다. 계속 나를 백인 이름으로 부르는데, 난 백인이 아니에요. 더는 당신들 이름으로 따라 불리기 싫습니다. 난 노예가 아니에요. 난 무하마드 알리입니다.

 

P364

간디는 처음에는 '신이 진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성이 깊어질수록 그는 '진리가 신'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돌고 돌아 원래의 그 자리로 돌아왔지만,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닌 것이다.

 

P368

덕산은 촛불이 꺼지자 비로소 어두움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돌연 깨우친다. 자아라는 작은 촛불을 불어 끄지 않고선 대우주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의 어원이 '촛불을 끈다'라는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작은 나'는 늘 '큰 나'를 가리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작은 촛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아가는가. 작은 촛불 너머로 펼쳐진 그 광대무변한 공간의 존재를 부정하며 말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촛불은 우리가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밥 벌어먹는 기술일수도, 삶을 지탱하는 가치관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우리는 머리 위에 찬연하게 빛나는 별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의지하며 버텼던 그 촛불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암흑속에서 좌절하고 꺼진 촛불에 어떻게든 다시 불을 붙이려 몸부림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저렇게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을 텐데. 

 

P369

모든 심층의 종교는 자유를 향한다. 그러나 여기서 자유란 내가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곧, '나의 자유'가 아니라, '나로부터의 자유'가 심층의 종교가 향하는 곳이다. 

 

P369-370

융이 말하는 자기실현이란 인격의 성숙이 아니다. 물론 자기실현에 이르면 성숙한 인격을 갖게 되겠지만, 인격을 닦는 것이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실현의 목표는 성인, 도덕적 인격자 혹은 세계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융은 이런 것들 역시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가면, 즉 페르소나에 불과하며 자기 실현은 오히려 그런 집단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그동안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아에 의해 소외된 그 사람의 진정한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융은 자기실현의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 불렀다.

 

자기실현은 철저한 자기인식의 과정이다. 즉 나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 사고, 욕망, 감정 등을 '큰 나'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P371

간디는 성인이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그의 모든 실험과 맹세는 자아를 버리고 자신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큰 나'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민중 속에 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P374

누군가와 다툰 사건은 이미 지나갔는데도 머릿속으로 자꾸 그 장면을 떠올려 되풀이하고, 후회하고, 화를 내며 스스로 괴로움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첫 번째 화살은 맞았을지언정,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의 먹구름'의 더 심각한 폐해는 그 속에 있음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생각에 빠지면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할 수 없고 음식을 먹어도 깊은 맛을 느낄 수 없으며, 책을 읽어도 행간의 의미를 살필 수 없고 음악을 들어도 마음으로 듣지 못한다. 생각이 현재를 잡아먹으면 기쁨은 유보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에 온전히 머물지 못한 채 표류한다. 그리고 이 모든 괴로움은 나라는 경계를 두텁게 그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의 일상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번뇌의 사슬에 묶여 허비했던가. 번뇌에서 해방되고자 종교를 고민했고, 그러면서도 종교에 기대지 않고 자립하고자 하는 얄팍한 마음으로 몇 권의 불교서적을 탐독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에게 집착함으로써 나로부터 벗어나려는' 헛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P376

무언가와 하나되는 체험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나'로 여기는 에고가 사라졌을 때 일어난다는 점, 또 하나는 '나'의 사라짐은 자기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래성, 즉 더 큰 나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 즉, 자아의 버림은 자기 상실이 아니라 자기 확대가 된다.


P385

성철 스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먼저 3천배를 하고 오도록 했다. 그러나 거의 10시간이 걸려 3천배를 마친 사람들 중에 스님을 만나지 않고 돌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절을 하는 중에 자신이 처한 난관의 의미와 극복할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그들은 3천번 절을 하는 10시간동안 지독한 고독의 시간속에서 스스로와 마주했을 것이다. 그 고독의 시간, 육체는 점점 힘들어지지만 정신은 차츰 고양되었을 것이다. 더 맑은 정신으로 외부적인 방해가 없는 공간에서 다시 맞닥뜨린 현실은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헤쳐 나갈만한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P400

다산은 책의 내용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뽑아서 기록하는 초서를 공부의 바탕을 다지는 기본이자 책을 쓰는 방법으로 삼았다. 황상은 다산의 가르침에 성실로 답했다. 스승에게 배운 초서를 평생 동안 실천하여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초서에 몰두했다.

 

P411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평범한 교사는 말하고, 좋은 선생은 설명하고, 훌륭한 선생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고 했다.

 

P413

거울과 등대는 둘 다 비추기와 보기와 관련이 깊다. 거울은 나를 비추고 등대는 앞을 비춘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등대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다. 존경을 의미하는 영어 respect는 '다시re 본다spect'는 뜻이다.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삼는 것은 존경하기 때문이다. 존경은 스승을 보고 또 다시 보는 것이다. 동시에 스승을 통해 나를 재발견하고 자기 삶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P414

직접 만나든, 책으로 만나든, 어떤 경로로 만나든 자기 삶에서 중요한 스승을 만날 때에는 특별한 예감이 일렁인다. 다시 말해 자신과 딱 맞는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는 '운명적 끌림'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만남이야말로 삶을 바꾸는 일기일회(一期一會)다.

 

P422

나의 스승들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가 자기다운 삶을 살며 자신을 닮은 세상 하나를 창조했다는 점이다. 나는 스승들에게서 '내 세상 하나를 가꿔 나가는 모범'을 보았다.

 

P426

스승에게 잘 배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푹 빠지는 것이다. 일단 스승이라는 우물에 빠지면 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언젠가 그 깊이를 넘어 훌쩍 성장할 수 있음을 믿고, 스승을 가슴에 품어 감정 이입해야 한다. 배움의 과정에서 모방은 필수적이다.

 

니체는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가 가장 나쁜 제자'라고 했다. 어느 시점에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에 자신의 개성과 방식을 결합해야 한다. 모방을 넘어 창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며 스스로 하나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P428

독서와 여행과 기록은 사숙할 때 가장 중요한 도구다. 직접 만날 수 없기에 스승의 저서와 스승에 대한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정리한다. 스승의 자취를 따라 스승이 머물렀던 공간을 답사한다. 여행은 밖으로 떠나는 것이기도 하고 안으로 떠나는 여정이기도 하다.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다르지 않다. 스승의 삶의 괘적을 따라 그가 머문 곳에 가서 그 안에서 나를 찾아보고 내 안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배운 경험과 소감을 글로 기록하는 것이 사숙의 기본이다.

 

P448

의사의 관심은 온통 내 간의 크기뿐이에요. 이제 와서 간의 크기에 왜 신경 써야 하죠? 집에는 내가 돌봐야 할 아이가 다섯이나 있습니다. 걱정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아이들 이야기에는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아요! 

 

P452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P461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생산물들의 비밀은 기저의 '보이지 않는 협력'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어떤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도 혼자서 이뤄 낸 것은 없다. 가장 개인적인 성취로 보여지는 과학적 발견과 이론조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단지성의 발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협력을 통해 아이디어를 결합하고 증폭시킨다. 그렇다. '우리'보다 현명한 '나'는 없다.

 

P467

구성원의 다양성만 확보되면 시너지는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는가? 독일의 심리학자 맥시밀리언 링겔만의 실험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 참가자가 많아질수록 각 개인이 쏟는 힘은 점점 줄어들었다. 역시너지가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인원이 늘어날수록 개인의 공헌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는 '구슬과 실'로 상징되는 두 가진 선행조건을 링겔만 효과를 상쇄하고 집단지성의 상승 효과를 크게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한다. 그 두가지는 '구성원 각자의 고민'과 '토론의 기술'이다. 조직에서 '토론의 기술', 즉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크지만 서로가 노력해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성원 각자의 고민'은 말 그대로 구성원 각자에게 달려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개인적이다. 이것을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링겔만 효과는 보통의 조직이 가질수 있는 평범함이라고 본다. 굳이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복잡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조직안에서 구성원 개인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황은 흔하디 흔한 것이다. 

  

P470

공동체 결성의 두 번째 원칙은 구성원들의 철학과 개성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도 철학과 가치관은 비슷할수록 좋으며, 개성과 배경은 다양할수록 좋다.

 

P475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내면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다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나를 탐색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problem'를 나를 키우는 '과제Project'로 삼는 것이다. 

 

P475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 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이제껏 발견 못 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P478

흥미로운 점은, 전환기 이전까지 체계적으로 하루를 보내지 않았던 인물들도 전환기에는 매일 일정한 패턴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P478

하루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그들이 사용한 방법에 주목하자. 그들은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한 기둥을 세웠다. 그 기둥이란, 가장 좋아하고 가치 있는 일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다.

 

P479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전환은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 역시 요원한 것이다. 그래서 전환자들은 하루를 실험의 장으로 삼았으며 하루가 얼마나 긍정적이었는지를 성장의 근거로 삼았다.

 

P483

동서고금의 영웅신화의 주인공은 공통적으로 '심연'에서 얻은 깨달음, 즉 '보물'을 가지고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모험을 수행해야 한다. 신화에서 이 보물은 '지혜의 율법서, 황금 양털, 불사약, 마법의 검'등으로 상징된다. 그 보물이 무엇이건, 그것은 영웅이 떠나온 곳(익숙한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P485

전환자가 귀환과정에서 직면하는 최종 시험은 누군가가 부여한 임무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환자 스스로 설정할수도 있다. 어떤 경로를 취하든 전환자들의 최종 관문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크고 대담한 과업Big Hairy Project'의 형태라는 것이다. 신화의 영웅처럼 전환자들은 전환기 동안 배운 모든 지혜와 기술을 총동원하는 하나의 과업을 수행해야 하며, 이 과정 중에 새롭게 거듭난다.

 

P488

대담한 프로젝트는 부연 설명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하며 그 자체가 동기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는 명확할뿐더러 전환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

 

P492

세번째 장애물은 자기 확신의 부족이다. 많은 전환자들이 자신의 깨달음과 보물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돌아오기를 주저하곤 한다. 주변의 반대와 무관심, 경제적 압박이 확신 부족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자보르스키는 아메리칸 리더쉽 포럼 설립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3년 넘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걱정, 기존 집단에서 배척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위협을 감수할 용기의 결여 등으로 나는 계속해서 주어진 운명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구본형이 1인 기업 창업후, 불면증에 시달리고 경쟁자들을 파악하기 위해 수백권의 자기계발서와 경영서를 읽었던 것 또한 자기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상과 현실속에서 많이 두려웠을 것이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는 자기 확신과는 별개의 감정이다. 자기 확신이 부족한 경우 두려움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용기를 얻지 못할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굳건한 자기확신을 가진다는 것이 어찌 말처럼 쉬운 일일까. 그보다는 조금씩 시행착오를 거듭해 가며 자기확신을 키워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고 자기 확신이 굳건한 상태에서 모험을 완성하는 것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0과 1의 디지털 신호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 아날로그이며 그 안에는 수많은 삶의 부침과 노이즈(Noise)가 존재한다. 물론 깊은 자기 확신이 나를 찾는 모험의 지속과 완성을 좌우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P497

이들은 당장은 시류에 맞추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자기 고유의 스타일을 맘껏 발휘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 같은 변화의 시대에 '안정에의 욕망'이 '안정'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힘겹게 일군 사회적 경력과 성취도 쉬이 무시할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유의 스타일 역시 희미해져 결국 다시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이 대목에서는 '뜻을 얻었을 때는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가고, 그렇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간다.'는 춘추전국시대 맹자의 가르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는 입신에 대한 유교의 기본철학이다. 현실과의 타협이냐 고고한 절개를 지킬 것인가 - 실제 맞닥뜨리게 되면 처신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 필생의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울창한 숲을 봐야 한다. 힘든 모험으로 얻은 깨달음을 저버리고 다시 남의 기준에 맞춰 산다면 이건 말 그대로 말짱 도루묵이 아니겠는가.

 

P499

귀환에 성공한 전환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닮은 의미 있는 '세계' 하나를 구축해서 자기답게 산다는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라면 일단 책의 두께를 반으로 줄이고 싶다. 이 책은 의외로 두껍다. 여는 글과 서문이 따로 있고, 본문은 3부의 구성을 취한다. 나가는 글이 끝난 후 부록에서 책의 주제와 관련있는 다른 내용의 글들이 다시 이어진다. 이렇게 목차와 뼈대를 잡은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좀 장황한 듯 하다. 그리고 다루는 내용에 비해 책의 분량이 다소 많다는 생각이 든다. 긴 서문 역시 군더더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문의 내용을 분산시켜서 프롤로그 및 본문에 배치하면 좋을 것 같다. 부록에 있는 내용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다. 굳이 부록의 형태로 다루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꼭 필요한 내용만을 뽑아서 본문에 분산시키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버릴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알짜배기만 모아서 책을 두께를 절반정도로 줄인다면 훨씬 독자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설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은 독서, 글쓰기, 여행, 취미, 공간, 상징, 종교, 스승, 공동체라는 9가지 전환도구를 통해 선각자들이 각성후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 소개되고 있는 인물들이 주로 사용했던 전환도구라는 것은 결국 그 인물이 주체적인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던 여러 특징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9가지 전환 도구 모두 삶을 재편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들이다. 책에서는 각각의 전환도구별로 두명씩의 전환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한명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다른 한명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추가 사례로 간략하게 다루는 것은 어떨까 싶다. 각 챕터에서 소개되는 두 명의 전환자들은 유사한 전환도구를 가지고 있을 뿐, 대부분 그 둘의 삶 사이에 직접적이거나 중요한 연관성은 없다. 책을 기획할 때부터 각 챕터별로 2명의 전환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컨셉을 정하고 쓰여진 듯 하다. 두명의 전환자를 소개한 후 이어지는 글에서 다른 인물들 또한 간략하게 사례를 들고 있다. 각 챕터 별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한 사람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다른 한사람은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글에서 유사 사례의 형식으로 글을 엮는 것은 어떨까 싶다. 


독서와 글쓰기를 삶의 전환도구로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기에 개인적으로 2부의 내용 중 독서와 글쓰기라는 두가지를 다룬 부분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리고 책에서 얻은 의외의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껏 내가 생각했던 여행이 일상의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떠나는 휴식과 같은 개념이었다면, 이제 여행은 길 위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인생의 전환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나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도피성 여행에서 '본연의 내가 될 자유'를 얻는 여행으로의 전환이다. 과거에 내가 다녔던 모든 여행은 일상의 나를 철저히 잊고 힘들었던 일상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기 위한 도피성 여행이었다. 이제 여행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는 까닭은 지금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을 찾고자 하는 목마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책의 내용은 훌륭하며 멋진 문장들 또한 가득하다. 나와 유사한 또래인 저자들의 멋진 글솜씨와 깊이 있는 생각의 흐름이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내용적으로 굳이 보완해야 할 점을 찾는다면, 분량의 문제를 떠나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 한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좋은 글이라도 책의 전체적인 흐름과 일관성을 위해 과감하게 빼면 어떨까. 이 책에서 소개된 9가지 분야는 사실 그 한가지 한가지가 한권의 책으로 다뤄질 수 있는 주제들이다. 그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많고 다양한 관점에서 다뤄질 수 있는 주제들이다. 비록 책에서는 삶의 전환이라는 프레임으로 각각의 주제들을 연관시키고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군데군데 없어도 전체 글의 흐름상 무방할 것으로 생각되는 문단이나 꼭지들은 빼도 괜찮을 것 같다. 한가지 예를 들면, 삶의 전환과 독서라는 큰 맥락만을 고려한다면 '독서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소들(p97)'과 같은 내용이 꼭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저자라면 책의 내용중 정말 알짜만을 뽑아서 간략한 구성으로 개정판을 낼 것 같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더 좋은 책이라는 보장 역시 당연히 없다. ‘내가 저자라면’이라는 무책임한 상상속에 멀쩡한 환자 몸에 빈약하고 무딘 수술도구를 가져다 대는 셈이다. 그래도 '내가 저자라면'이라는 완장을 차고 한번 과감히 칼날을 들이대 보겠다. 


통상 영화는 개봉되기 전 편집 과정을 통해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간다. 비록 그것이 심혈을 기울여 촬영한 것일지라도 최선을 위해 차선을 버리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었던 차선을 복원하여 감독판(Director's Cut) 영화가 공개되기도 한다. 이 책은 마치 오리지날을 건너뛰고 출간된 '위대한 멈춤' 감독판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저자가 삶의 전환이라는 핵심주제와 9가지 전환도구라는 결코 작지 않은 각각의 주제에 대해 하고 싶어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장르의 개봉 순서와는 역순이지만, 과감한 편집 및 보완을 통해 책의 정수만을 뽑은 새로운 오리지날 버젼을 만들면 괜찮을 것 같다. 물론 '위대한 멈춤'이라는 책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미 수없이 잘려나간 수많은 감독판 글들이 있겠지만, 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빼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크 트웨인은 긴 편지를 써놓고 추신에 시간이 없어 짧게 쓰지 못 했다고 적었다고 하던데, 내가 저자라면 많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좀 더 짧은 책으로 재구성해서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도록 바꾸고 싶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그렇게 하면 이 책이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영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IP *.127.10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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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4:55:09 *.94.171.90

내가 저자라면이라는 내용이... 저와 아주 똑같은 생각이라서 놀랐습니다.


저도 이 책이 감독판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독자들을 위해서는 한 절반정도 250-300 페이지 정도로 팎~ 줄이는 것이 더 많은 독자들을 잡아오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화이팅 입니다. 예비 12기 채일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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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7 17:04:58 *.130.115.78

지금 이 과제를 하고 있는 이 순간도 황홀한데, 앞으로 얼마나 더 고독하고도 황홀한 글감옥에 빠지게 될지 많이 기대된다.


그 황홀을 아시는군요! 그렇다면 후회없으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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