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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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0일 13시 46분 등록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 한 
그 꽃
- 고은

 3월이 왔음에도 이 곳 에스토니아 탈린의 밤은 춥고 황량하다.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눈 덮인 거리에는 가끔 지나가는 차들만 보일뿐 살아 숨쉬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지만, 고단한 출장업무에 찌들어 온통 머릿속이 업무문제로 가득한 나의 눈은 사물을 식별할 수 없는 맹인의 상태와 다를 바 없다. 나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이 죽어 있으며 생동하고 있는 것들은 나의 시선을 허락하지 않는다. 애써 여유를 짜내보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렇듯 생존을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범인의 일상에는 특별함이라는 것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단지 특별히 힘들고 나답지 않은 것만 같은 또 다른 삶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짜여진 장기판의 말에 불과할 뿐이다. 특별함이라는 것은 부유한 자들만이 추구할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른다. 이방인으로서 고립된 채 내 삶의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이 고독한 타국에서, 특별한 삶이 무엇인지 다시 나에게 묻는다.

 특별한 삶이고 싶었다. 항상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으로 특별해지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삶이라는 놈에게 그냥 특별 대우를 받고 싶었다. 젊은 날 성공이라는 알 수 없는 목표를 위해 내 정열을 바쳤지만, 돌이켜보건대 내 삶은 그리 특별해지지 못 했다. 만약 성공이라는 것을 했다면, 내 삶이 특별해졌을까? 무언가를 위해 쉼없이 앞만 보고 올라가느라 정작 길 옆에 피어있는 한송이 꽃도 인지하지 못 하는 삶이 과연 특별한 것인가? 

 크로노스(kronos)는 모두에게 균등한 일률적인 시간으로 이 시간 속에서 개인의 특별함은 오직 결과로만 입증된다. 반면에 카이로스(kairos)는 연속적인 선이 아닌 한곳의 점, 다시 말해 지금이라는 순간을 의미한다. 카이로스는 그 시간을 살아간 경험의 크기만큼 확장되는 4차원의 시간이며 개인의 삶은 오직 카이로스를 통해서만 특별해질 수 있다. 여전히 내 삶으로 특별함을 빚어내고 싶다. 이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그 '특별함'이라는 단어의 정의일 것이다.  특별하다는 것은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과 다르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특별하다는 것은 전환에 성공한 내 삶에 깃든 모든 것들이다. 이제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싶다. 하루하루 빛나는 일상을 모아 나만의 특별한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 결과만을 위해 아둥바둥거리는 삶보다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즐길수 있는 특별함을 가지고 싶다.

 출발점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구본형 사부님이 그랬듯이, 나 역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을 하고 있는 내 안에서 특별함을 찾고자 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신입사원때나 수석연구원인 지금이나 기술적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해외출장은 여전히 힘들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여행지에서의 일상은 나를 지치게 만든다. 처음 보는 외국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일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고, 모르는 식당에서 끼니를 위해 밥을 먹고 피곤함에 쩔어 호텔방에 쓰러져 자다가 아침이 오면 다시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이 곳의 일상에 참여하는 것이 힘들다. 기질적인 측면, 그리고 그로 인해 힘든 일상은 그대로 받아들이자. 크로노스의 시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 그 시간 속에서  나만의 특별한 순간의 시간 - 카이로스를 찾아 나서자. 통제할 수 없는 크로노스의 시간들 대신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주목하자. 분명 이곳에서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기쁨은 존재하리라. 눈 덮인 이 곳에서도 담벼락 아래 한송이 꽃은 피어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보든지 내가 가고자 하는 내 삶의 여행에 동참시키자. 

 현재 작은 회사에 있는 것은 천운인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실험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조직이 작고 다른 부서와 소통 장벽이 낮기 때문에 협업에 용이하다. 내가 지향하고 있는 개발문화 전문가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좋은 출발점이다. 이 곳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특별함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작은 실험과 시도들이 모여 조직을 개선시키고 나 자신을 성숙시킬 것이다. 나자신이 내 안으로 향하는 힘과 사람들을 향해 밖으로 뻗어나가는 힘의 연결고리이자 발산체가 될 때 나의 특별함은 더욱 특별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나를 기억하기보다는 개발문화 전문가로 나를 기억해주리라.

 하지만 그런 것들만이 내 삶의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가 끝나도 객석을 떠날 수 없는 감동을 만들아내고 싶다. 감독은 나고, 주연도 나다. 물론 관객도 나다. 얼마전 보았던 영화 '1987'의 여운이 잊혀지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객석의 어느 누구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영화는 암울했던 198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혀 갔던 영웅들의 순간 순간이었다. 고작 두시간정도의 영화는 내 안에 큰 울림을 만들었다.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그리고 위대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의 삶이 그렇게 치열했던 적이 있었더냐? 영화는 묻고 있었다.  

 나의 글이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 아니다. 현재 지향하고 있는 글쓰기도 소설이나 시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면에서 구본형은 나의 롤모델이다. 공감과 동기부여를 주고 의지를 되새기고, 스스로의 비젼을 만들어내는데 작은 불쏘시개가 되고 싶다. 출발은 항상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일상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내가 살아가며 보게 될 많은 꽃과 나무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작은 성취와 눈물과 감동이 쌓이다 보면, 나 또한 시처럼 사는게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살아가는 삶으로써 사람들에게 언어 너머의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내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것은 시인인지도 모르겠다. 구본형 사부가 변화경영시인을 그의 인생의 마지막 이상으로 삼았듯이 말이다.  

 나는 마흔 세살의 구사부보다 먼저 출발한다. 자그마치 1년이나. 내 나이 마흔 두살 이제 특별해질 일만 남았다.

IP *.196.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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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1:57:46 *.94.171.90

탁월한 컬럼 잘 읽었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찾아 영웅이 되어가는 그 길을 함께 가는 것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

제 기억에 멀리 탈린은 참으로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크지 않은 도시였다는 기억이 납니다. 특히 핀란드에서 배타고 건너가서 핀란드의 살인적인 물가와 비교해서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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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7:19:57 *.145.103.48

개발문화 전문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단어의 공백, 문장의 여운. 모두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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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3 08:23:08 *.36.150.30
천부적인 이야기꾼이 아닐지 몰라도, 경종님은 타고난 울림꾼은 분명해보이네요. 마음을 감응시키는 깊은 힘이 있습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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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12:35:37 *.124.22.184

 '개발문화 전문가' 가 무언인가요?  25일 클로징 때 10대 풍광에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옹박님 말씀에 저도 동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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