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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8일 17시 01분 등록
저자 인터뷰 - 자기혁명 프로젝트 전문가 오병곤
2018.3.16 / 이수역

 첫만남이었음에도 낯설지 않았다. 이미 사진으로 몇 번 보아서 그런 것일까, 마치 오랜만에 보는 대학선배와의 만남처럼 인터뷰는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는 얼마전 지인과 함께 쿠바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생선배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막걸리 한잔, 파전 한 입, 조심스럽게 시작된 인터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세 번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고 했다. 정신적 전환이 이루어진 세 번의 경험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어릴 적 꿈이 목사였어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지금도 가까운 가족들은 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첫 번째 정신적 전환를 겪게 되는데, 세계관이 바뀌게 됩니다. 87학번인데 참 힘든 시대였죠. 불의의 시대였습니다."

 얼마전 큰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많은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 냈던 영화 '1987'이 떠올랐다. 군부독재,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대학생이 된 그가 목격한 것은 캠퍼스의 낭만이나 정의로운 신의 가호가 아닌 불의와 혼돈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던 듯 하다. 

"결론적으로 종교를, 다시 말해 신을 버리게 되었어요. 세계관이 전복된 거죠.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듯이, 나의 사상은 기존의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건 중세에서 근대로 시대가 바뀌는 것과 맞먹는 변화나 마찬가지였죠. 개인적으로 엄청난 변화였고, 그렇게 변화하는데 3년이 걸렸어요. 기독교에서는 원죄를 얘기하지만,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누구나 작은 영웅, 작은 예수입니다. 어느 누구나 평범에서 비범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거죠"

 대학시절 부전공으로 종교학까지 전공했지만, 종교는 이제 그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 하다. 대신 사람이라는 다른 신앙이 그의 가슴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학졸업후 직장에 들어갔는데, 어쩌다 보니 IT관련 일을 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IT나 엔지니어링이 적성에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시련의 시작이었죠. 신혼초 집을 얻기 위해 직장(CJ)을 통해 대출을 받았는데 IMF가 터졌어요. 대출이자 감당하는 것도 힘들었죠. 먹고 살기 위해 IT 회사를 계속 다닐 수 밖에 없었어요."

 계속되는 지방근무와 만성적인 야근으로 그의 심신은 극도로 피로해졌고, 급기야 공황장애가 찾아오게 된다. 그는 공황장애로 5년을 고생했다고 했다. 그에게는 현실을 뚫고 나갈 어떤 계기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업계 최고의 자격증인 기술사에 도전하여 독한 자기와의 싸움끝에 당당히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구본형이 '성실한 독종'이라고 칭하는 그에게 노력은 보상을 돌려주었고,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그에게 2005년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찾아오게 된다.

"변경연 1기 연구원 모집 공고를 본 순간 이것은 무조건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종의 직관이라고나 할까?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한 주도적 탈출이였던 셈이죠. 변화의 시작은 절실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거죠. 자기 탐험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자기 탐험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꿈이 뭔지, 욕망이 뭔지 알아야 해요. 방향이 있으면 여행이지만, 방향이 없는 것은 가출일 뿐이죠. 주도적인 삶으로 전환을 한 거죠. 연구원 과정은 이를 배웠던 과정이였구요."

 그가 살짝 본인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현재 쓰고 있는 책의 목록들을 보여 주었다. 상당히 많은 책 제목들을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동문 선배와 같은 친근함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서 그런지 그가 작가였음을 잠시 잊었던 내게 그는 책에 대한 얘기를 꺼내 들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저서는 아무래도 첫 책이죠. 첫 아이를 출산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요. 기술사나 첫 책이나 전환 과정에서 나온 성과물인 셈이죠. 지금은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가는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공부하는 방편으로 책을 씁니다."

 그가 근래에 내놓은 '실용주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이론적으로만 떠들어 대는 소프트웨어 공학과 기법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업에 적용할 것인지 그가 쌓아온 경험과 기술이 집대성된 베스트 프랙티스 모음집이다. 2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라고 했다. 책에 대해서 얘기하는 그에게서 상당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지식의 확산에 기여하고 싶어서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죠. 꼭 한번 보세요(자신감 넘치는 웃음^__^)"

 그의 세 번째 전환은 직장을 그만두면서 시작되었다. 자유인으로의 독립이었다. 변경연 연구원 활동을 통해 적성을 찾고 본인다운 삶을 모색하던 그가 결국 삶의 주도성을 확실하게 매듭짓고자 내린 결정이었다.

"예전에는 불안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긴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10%도 안 되요. 불안보다는 기대가 더 많죠. 독립은 연착륙이 필요해요. 기존에 하던 일들을 특화시키고, 점차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로 쉬프트시키는 거죠. (...) 회사를 떠나기전에 창업 모임을 했었는데, 스스로 서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 지금은 일년에 절반만 일하고, 삶의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전환에 도움이 되는 것에 큰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그에게 일과 여행은 삶의 테마인 것 같다.

"1년에 3번 여행을 갑니다. 한번은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고, 한번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죠. 지난 주에 쿠바를 다녀온 것이 그랬구요. (...)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입니다. 다음주에 지리산으로 여행을 갑니다. 스승님이 했던 것처럼 매년 지리산에서 포도단식을 하고 있어요. 혼자 떠나는 여행인 셈이죠."

 그와 미래의 꿈과 그 꿈들에 대한 풍광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안나 까레니나의 첫구절 아시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글귀 말이에요. 변경연 연구원들이 써놓은 10대 풍광들을 읽어 보면 사실 다 비슷비슷하죠. (...)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꿈과 욕망은 다르다는 겁니다. 일단 손가락이 쓰는 대로 쓰세요. 어떠한 필터링도 하지 마세요.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무엇인지 내놓아 보세요. 그런 다음 그 욕망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듬는 겁니다. 꿈은 일종의 주술이에요. 꿈은 욕망이 실현된 것을 그리는 거구요."

 그의 얘기는 점점 더 진솔해졌다.

"마흔이 시작되면서 심하게 방황을 했어요. 직장에서 구조조정의 냉혹한 현실에 함께 일하던 동료 두 명이 세상을 등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었고, 일이 안 풀리면서 이직한 회사에서 큰 아픔을 겪기도 했어요.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많았구요. 그런 나를 스승님이 잡아 주셨죠. (...) 스승은 글과 삶이 일치하는 분이였어요. 내가 농담조로 얘기하지만 변경연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구요(웃음). 우리들 중 가장 많이 변화한 사람이었고 저에게는 정신적 아버지와 같았죠."

 그가 '회사를 떠나기 3년전'을 집필하는 동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그렇게 의지했던 스승도 세상을 떠났다.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죠. 연달아 아버지와 정신적 아버지를 모두 떠나 보냈어요. 그 후 두 사람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많이 생각해 봤죠.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거에요. 이제 더이상 그들의 아들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살아야 한다는 거죠."

 많은 조언과 진심어린 대화는 그가 천상 멘토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의 스승이 변화경영시인을 마지막 이상향으로 삼았듯이 그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긴 침묵 끝에) 그런 것은 없어요. 단지 내가 날 더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남기고 싶어요.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내 삶에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책들을 내고 싶구요."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에서 '사랑과 소망과 믿음 중에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글귀를 패러디한 그의 문장이 문득 생각났다.

"그런즉 기술, 프로세스, 사람,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람이라 " -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p305

  마흔은 그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마흔이라는 나이의 한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공격을 그는 온 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 꽃도 한번은 피리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꺾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인생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했다. 이제 그가 가진 것들을 나누며 사람들안에서 사람을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을  즐기는 중이다.  자신의 삶으로 여행을 떠난 그에게 무언가 여유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에게는 더 위대한 날들이 찾아올 것이다. 더 자유롭고 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날들이 올 것이다. 2018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읇조리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공식적인 인터뷰는 끝이 났고, 우리는 2차로 자리를 옮겨 다시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금요일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술집의 소란스러움 탓에 녹음한 인터뷰 내용이 거의 들리지 않아, 짧은 수첩 필기내용과 기억에 의지해 인터뷰를 복원할 수 밖에 없었다. 주옥같은 얘기들을 모두 지면에 옮기지 못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비로 잠시뿐일지라도 그와 멘토의 연을 맺게 된 필연적 우연에 감사드린다.

IP *.127.106.147

프로필 이미지
2018.03.19 11:15:45 *.145.103.48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인터뷰군요.

프로 인터뷰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8.03.22 15:36:44 *.94.171.90

정말 두분이 의기투합이 되신 것 같습니다. 프로 인터뷰 이시네요. ㅎㅎ 삶이 묻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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