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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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렁이에게서 날개 돋다 >
지렁이는 징그럽게 생겼다. 언뜻 뱀의 미니어쳐 같아서이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이유에서인가
지렁이는 뱀이란 허물을 벗고 몸을 줄인 후 날름거리는 혀도 없애고
땅 속으로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찬연한 햇빛을 버린 자답게 눈까지 퇴화시켰다.
지렁이는 뱀처럼 화려하지 않고 독도 없는데다 작기까지 해서 참 불쌍한 징그러움이다.
하지만 그 징그러움을 무기로 지옥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이사야서 14장 11절)
지옥에 간 자들은 지렁이 이불을 덮어야 한다니
뱀이나 지렁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놀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뱀이 인류에게 세대에 세대를 걸쳐 짓누른 죄악이 부끄러워
지렁이는 붉은 빛을 띤 채 땅 속으로 스미어 다니는 것이 아닐까
뱀은 지금도 크고 당당하고 화려하게 땅 위를 기어 다니고 있는데
지렁이는 만물처럼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땅 속을 헤매고 다니지만
지렁이가 흙과 뒤엉키면서 꿈틀거리며 지나간 땅은 비옥하다.
지렁이가 지나간 땅 위에는 그 흙을 영양 삼아 온갖 식물이 힘을 얻는다.
땅을 파다 지렁이가 나오면 흙의 비옥함은 눈치 채면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지렁이를 피한다. 약자의 대명사다.
밟아도 비명은커녕, 피도 없이 그저 꿈틀대기만 한다.
비 오는 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비웃으며 답답한 땅 속을 어렵게 뛰쳐나온
지렁이는 돌아갈 시간을 놓친 채 아스팔트 위에서 죽음을 맞는다.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 기신기신하는 작은 꿈틀거림을 차마 보지 못하여 눈을 돌릴 뿐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러하다.
지도상에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나라가 심지어 반으로 동강나 있다.
한 때 만주에서 말발굽소리 요란하게 호령하던 우리나라는
주변나라들이 제멋대로 건드려도 되는 지렁이로밖에 보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조상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다가 이 작은 반도에 뿌리를 내리셨을까?
무엇에 쫒겨서 이 극동으로 밀리신 것일까?
정말 태양을 숭배하던 족속이 태양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 것일까?
설명할 수 없는, 설명되지 않는 역사다.
한때 북괴라고 불리던 악만 남은 정권이 우리나라와 붙어 있다.
그 위쪽으로는 거대한 중국이 버티고 있고 그 위에는 크고 거친 러시아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나라 아래로는 일본정부가 수시로 우리의 비위를 건드리며 위협하고 있다.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쳐들어간 적은 없지만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도약을 꿈꾸며 그저 꿈틀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이사야 41:14
지렁이에게도 날개가 달릴 날을 기다려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대한민국, 이름만 大지 모든 것이 작고 초라했다.
너무 배고파서 풀뿌리 나무껍질이라도 먹다가 똥구멍이 찢어진 조상님들도 계셨다.
이름만이라도 온통 大를 붙이기 좋아하는 나라
구멍가게는 슈퍼마켓이라 부르고, 아파트는 맨션이라 불렀다.
아무도 우리나라를 몰랐다. 그저 우리끼리 그렇게 지지고 볶았다.
그렇게 꿈틀거린 우리의 오랜 인고의 세월이 날개에 맺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외국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정신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나라들이 많아졌다.
세계 여러 나라에선 한국말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기술올림픽과 스포츠 분야는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세계는 지렁이에게 크나큰 날개가 돋아나와 화려하게 솟구쳐 오르는
대한민국에 감동을 하고 있다.
추한 몸통을 아름다운 날개가 껴안아주면서
그 인고의 아름다운 날개는 세계인들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살아갈 힘을 주고, 살아온 아름다운 발자취를 보는 기쁨을 줄 것이다.
타국에 수없이 밟히면서 꿈틀거리고 지나간 자리마다 세계에 비옥함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그 날개는 크고 아름다워 몸체를 감싸면서 모든 나라의 눈을 황홀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