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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4일 11시 36분 등록
지난 주에 열흘쯤의 일정으로 뉴욕(New York)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주변에 부럽다는 사람들도 조금 있었고, 그리 길지 않은 일정에 멀리까지 다녀오려면 힘들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칼로 자르듯이 반응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젊은 사람들은 부럽다는 반응을, 조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안쓰럽다는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차이가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단순히 그렇게 결론짓기에는 표본의 크기가 너무 작았습니다.

연구원 사람들과 몽골 여행을 하고 돌아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미국으로 향하는 여정은 약간의 피곤함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도시라면 사실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뉴욕이라고 한들 뭐 그다지 특별한 것이 있겠나 하는 생각에 더해 회사 선배 두 명을 모시고(?) 떠나는 출장이라는 마음의 부담감으로 인해 지난번 몽골여행과는 사뭇 다른 출발이었습니다.

열흘 일정이었지만 워낙 먼 길이고 보니 가는데 하루, 오는데 또 하루를 다 까먹습니다. 거기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교육 일정이 빡빡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따지고 보면 뉴욕 시내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시간은 만 이틀이 고작입니다. 양이 부족하면 농도가 진해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가짓수를 줄이면 될 터인데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욕심이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시간은 없는데 즐겨야 할 것은 많으니 조금 마음이 바빴습니다.

서울의 빌딩숲이 참으로 높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거리엔 차도 많고,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뉴욕의 거리로 나서니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하늘로 끝도 없이 솟은 건물들 사이로 어렵게 보이는 조각 하늘이 아득합니다. 국적을 알길 없는 검고, 희고, 노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시를 가득 흘러 다닙니다. 여기에 비하니 서울이 오히려 아담하고 한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주어진 일정 중의 하루는 맨하탄의 중심부인 미드 타운(Mid town)에게 주었습니다. 브로드웨이와 5번가를 걷노라니 그 활기찬 생명력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색색으로 빛나는 화려한 간판들과 잘 정돈된 고급스러운 매장들의 모습이 조금은 낯선 긴장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도시 속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선물처럼 등장하는 미술관과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에 정신 없이 셔터를 눌러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도시에 살짝 지칠 때쯤 우리는 센트럴 파크의 녹음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거대한 도시 속의 더 거대한 공원 안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유롭게 천천히 걷거나, 또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화려함 속을 걸으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부러움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도시에 지치면 언제든지 그곳을 빠져 나와 찾아들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머지 하루를 위해서는 로워 타운(Lover town)을 선택했습니다. 맨하탄의 남쪽에 해당하는 로워 타운은 우리에게 미국 경제의 심장으로 잘 알려진 월가가 위치한 곳입니다. 아픈 기억이기는 하지만 9.11 사태가 있기 전에는 뉴욕의 상징과도 같았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그 위용을 자랑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로워 타운은 9.11 참사의 여파가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 했습니다. 조금은 한적한 그 사이로 가을의 맑음을 만끽했습니다. 맨하탄을 한 바퀴 도는 크루즈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과 엘리스 섬 그리고 맨하탄의 전경을 즐겼습니다. 월가에 들러서는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 빌딩숲에 압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대미를 위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일몰을 감상했습니다.

이틀의 일정이 비록 짧기는 했지만 그 안의 이야기를 몽땅 이 칼럼에 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서 제 가슴을 두드린 이야기 하나만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이번 뉴욕 여행의 여러 가지 즐거움 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 꼽는다면 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본 것입니다. 브로드웨이의 티켓 오피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끝까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라이온 킹'을 볼 것인가., 아니면 '시카고'를 볼 것인가.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택은 쉽지 않았습니다. 힘겹게 '시카고'로 마음을 굳히고, 표를 손에 쥐고 돌아서는 순간 한 젊은이가 큰 소리를 외치며 지나쳐 갔습니다.

"Free Ticket! Free Show tonight!"

순간 얼떨떨해졌습니다. 백 불이나 되는 돈을 내고 쇼를 보겠다고 이렇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이로 공짜 티켓을 외치며 걸어가는 청년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흐릿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사기가 아닐까'하는 참으로 처량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청년의 마음이 제 머리에 와서 닿았습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연기자였습니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직접 거리로 나선 배고픈 예술가였습니다. 아직 아무도 찾지 않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다른 생계 수단으로 연명하며 열정을 다듬고 하루를 살아내는 외로운 젊음이었습니다. 그가 '공짜 티켓'을 소리 높여 외치며 조금씩 멀어져 가는 등 뒤로 고단한 일상과 불타는 열정이 묘하게 오버랩되어 펼쳐졌습니다. 그의 공연을 위한 하루를 내가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해졌습니다.

뉴욕에서 돌아와 찰스 핸디의 책을 읽고 있노라니 브로드웨이에서 공짜 티켓을 외치던 젊은이의 삶에 포트폴리오 인생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이름이 초라하게만 느껴집니다. 일과 인생을 구획지으라는 찰스 핸디의 조언, 저만치 앞에 젊은 열정이 뜨겁게 타오릅니다. 뉴욕의 한 거리에서 붉게 일렁이던 한 젊은이의 꿈이 떠오릅니다. 그곳이 그립습니다. 아내와의 여행을 준비해보아야겠습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IP *.39.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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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09.26 12:42:33 *.75.15.205
맨날 아내, 아내... 경처가? ㅋㅋㅋ 그대들은 젊으시네. 부모님부터 시켜드리세.(웬 잔소리?... 시누이니까. ㅎㅎ)

대학로에서 후미진 골목을 휘돌아 깎아 지르는 둣한 지하 계단을 조심 조심 내려가 겨우 만나는 한 편의 연극 공연을 볼 때처럼 우리네 벼룩들의 고단한 일상의 비현실적인 포트폴리오가 떠오르기도 해. 말이 좋아 인생스크립트지 일단 생계가 확실히 보장된 연후에 예술도 창조성도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하는 회의가 밀리는 것이 사실이거든 .

견문을 넓히고 풍성한 가을을 맞았으니 그대 글발이 더 힘차겠는 걸. 기대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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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10.01 01:13:27 *.109.84.135
경처가란 말이 그래도 공처가란 말과는 달리 나쁘지 않게 들리네요.

좋은 여행하고 견문은 넓어진 것도 같은데, 글발은 어째 병걸린 눔 오줄발마냥 비실비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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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04 09:46:00 *.132.71.10
벼룩이 그렇게 힘들어 보이나?
그래 보이기도 하더라.
어느날 유명한 개그맨이 소극장에서 하는 자신의 팀... 공연 티켓을 팔려고 거리에 삐끼로 나선 것을 보고는 이 세계는 전에 내가 몸담던 세계와는 탄 세계이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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