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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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줄거리)
양재우란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서 잘난 작곡을 시작한 후, 조금 하다 보니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대학가요제까지 나가고 싶어 작당을 해서리, 드뎌 예선무대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얼쑤~!!
조명은 무대 위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나는 기타 반주를 위해 앉고 여자동기는 내 옆에 섰다. 드디어 시작을 해야한다. 기타줄 위에 손가락을 얹고 하나씩 줄을 뜯기 시작했다. 둥, 둥 하는 귀에 익은 멜로디가 퍼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고요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음 하나 하나에 집중하니 나는 그 멜로디를 타고 점점 몸이 뜨고 있는 듯 했다. 아, 이것이 음악과 나의 진정한 합일(合一)인가. 내가 음악의 화신인지 음악이 나로의 변신인지... ^^;; 갑자기 ‘띵’하는 소리에 음악과 나는 둘로 갈라졌다. 소위 ‘삑서리’였다. 헉... 어쩌나... 어쩌긴 계속 해야지... 심사위원석을 힐끗 보았더니 아무도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질 않다... 뭐야.. 별 관심도 없다는...? 여자동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처음 도입부터 음이 약간 어긋났다. 잘 한다.. 나는 기타 반주를 틀리고, 여자동기는 음을 살짝 비틀고... 그야말로 천상의 하모니 아닌가.. 드디오 내가 화음으로 보조를 맞춰야 할 구간이다. 심호흡을 했다. 이 노래의 키포인트는 화음이다. 어차피 우린 솔로가 아닌 듀엣인 것이다. 듀엣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 아직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는 남은 것이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화음을 넣으려는 순간,
“자, 수고하셨습니다. 박수~~!!!”
아니 뭐야.. 이제 시작인데.. 끝내라고? 정녕? 이게 다야? 이대로 집에 가야 하는거야? 이렇게 허무할 데가... 그 개그맨의 아구통을 시원하게 날려주고 싶었다. 떨어져도 좋으니 끝까지 시원하게라도 부르고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선배들이 맞아 주었다. 선배들의 표정도 과히 좋지 못했다. 여자 동기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선배들이 고생했다고 근처 중국집에 데리고 갔다. 그 맛있던 탕수육과 짜장면이 목에 걸린 채 악을 쓰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랍시고 하고 있었다. 꿀꺽 삼켜 버렸다. 노래도 함께 삼켜졌다....
한달 뒤 나는 여의도의 찬 강바람을 맞으며 M본부의 발표장소까지 갔었다. 그리고 다시 더욱 더 차가와진 강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 왔었다. 돌아 오는 길, 서쪽 하늘 저녁 노을은 ‘술 오른 나의 얼굴색’ 마냥 오래도록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단편의 추억은 지는 노을과 함께 점점 옅어져 가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음 해까지 본격적으로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계속해서 작곡이란 걸 했었다. 처음에 유치하기만 했던 멜로디들이 점차 각종 기교와 새로운 시도로 인하여 조금씩 세련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노래들을 만드는데 도전했다. 동심이 들어있는 곡, 애절한 사연을 담은 곡, 왈츠 리듬에 실은 곡, 친구의 가사에 멜로디를 붙인 곡... 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곡이 하나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제대하는 고참을 위해 만든 곡인데 이틀인가 걸려서 만들고 제대하기 전날 불러 주었는데 상당한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치만 악보를 잃어버려 현재는 가사도 멜로디도 모른다. 쩝...
군대를 제대하고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는데 그때 Gospel Song도 약 20곡 정도 만든 기억이 있다. 그 중 1곡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좋아해 교회에서 애창되었었다. 아쉽게도 이 노트도 분실되어 지금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건 초창기 작곡노트 3권을 찾아서 이 글을 쓰게 된 원천이 되었다는 점이다. 추억을 더듬어 가는 좋은 시간이었다. 잃어버리고 지냈던 귀중한 시간을 다시 품안에 안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열정 하나로 무작정 뛰어들던 그 시간을 회상해 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작곡은 흔히 창조성의 표현이라고 한다.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을 읽으며 아하, 했던 부분이 있었다. 피카소의 말이다.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263P)
또한 하워드 가드너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38P)’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가장 순수한 마음, 백지로부터 시작하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에서 창조성은 첫발을 뗀다. 그 창조성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다. 도전 자체가 신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이 도전에는 무한한 즐거움이 깃드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 어른의 본인 만의 깊은 전문성을 추가할 수 있다면 그 창조성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지나가는 이야기
지난 4월, 3기 연구원 수료식 모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 아무런 기별이 없어 다시 글로 옮깁니다. 다시 작곡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변경연의 테마곡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3곡 정도를 실험 삼아 만들어 보고자 하는데, 가사가 필요합니다. 물론 제가 쓸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다른 분들과 함께 호흡하는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거, 보게되면 애국가부터 시작하여 온갖 공식적인 노래에는 작사와 작곡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잖아요.^^;; 가사 형식은 따로 없습니다. 보내 주시는 데로 제가 짜르고 붙이고 조합하여 제 입맛(?)대로 편집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보내주셔도 됩니다. 원고료요?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가사에는 제가 특별히 ‘손을 맞잡고 뽀뽀’를 해드리지요. 캬캬~ 제 메일(bang_1999@naver.com)로 많이 많이들 보내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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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란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서 잘난 작곡을 시작한 후, 조금 하다 보니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대학가요제까지 나가고 싶어 작당을 해서리, 드뎌 예선무대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얼쑤~!!
조명은 무대 위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나는 기타 반주를 위해 앉고 여자동기는 내 옆에 섰다. 드디어 시작을 해야한다. 기타줄 위에 손가락을 얹고 하나씩 줄을 뜯기 시작했다. 둥, 둥 하는 귀에 익은 멜로디가 퍼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고요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음 하나 하나에 집중하니 나는 그 멜로디를 타고 점점 몸이 뜨고 있는 듯 했다. 아, 이것이 음악과 나의 진정한 합일(合一)인가. 내가 음악의 화신인지 음악이 나로의 변신인지... ^^;; 갑자기 ‘띵’하는 소리에 음악과 나는 둘로 갈라졌다. 소위 ‘삑서리’였다. 헉... 어쩌나... 어쩌긴 계속 해야지... 심사위원석을 힐끗 보았더니 아무도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질 않다... 뭐야.. 별 관심도 없다는...? 여자동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처음 도입부터 음이 약간 어긋났다. 잘 한다.. 나는 기타 반주를 틀리고, 여자동기는 음을 살짝 비틀고... 그야말로 천상의 하모니 아닌가.. 드디오 내가 화음으로 보조를 맞춰야 할 구간이다. 심호흡을 했다. 이 노래의 키포인트는 화음이다. 어차피 우린 솔로가 아닌 듀엣인 것이다. 듀엣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 아직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는 남은 것이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화음을 넣으려는 순간,
“자, 수고하셨습니다. 박수~~!!!”
아니 뭐야.. 이제 시작인데.. 끝내라고? 정녕? 이게 다야? 이대로 집에 가야 하는거야? 이렇게 허무할 데가... 그 개그맨의 아구통을 시원하게 날려주고 싶었다. 떨어져도 좋으니 끝까지 시원하게라도 부르고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선배들이 맞아 주었다. 선배들의 표정도 과히 좋지 못했다. 여자 동기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선배들이 고생했다고 근처 중국집에 데리고 갔다. 그 맛있던 탕수육과 짜장면이 목에 걸린 채 악을 쓰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랍시고 하고 있었다. 꿀꺽 삼켜 버렸다. 노래도 함께 삼켜졌다....
한달 뒤 나는 여의도의 찬 강바람을 맞으며 M본부의 발표장소까지 갔었다. 그리고 다시 더욱 더 차가와진 강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 왔었다. 돌아 오는 길, 서쪽 하늘 저녁 노을은 ‘술 오른 나의 얼굴색’ 마냥 오래도록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단편의 추억은 지는 노을과 함께 점점 옅어져 가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음 해까지 본격적으로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계속해서 작곡이란 걸 했었다. 처음에 유치하기만 했던 멜로디들이 점차 각종 기교와 새로운 시도로 인하여 조금씩 세련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노래들을 만드는데 도전했다. 동심이 들어있는 곡, 애절한 사연을 담은 곡, 왈츠 리듬에 실은 곡, 친구의 가사에 멜로디를 붙인 곡... 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곡이 하나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제대하는 고참을 위해 만든 곡인데 이틀인가 걸려서 만들고 제대하기 전날 불러 주었는데 상당한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치만 악보를 잃어버려 현재는 가사도 멜로디도 모른다. 쩝...
군대를 제대하고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는데 그때 Gospel Song도 약 20곡 정도 만든 기억이 있다. 그 중 1곡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좋아해 교회에서 애창되었었다. 아쉽게도 이 노트도 분실되어 지금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건 초창기 작곡노트 3권을 찾아서 이 글을 쓰게 된 원천이 되었다는 점이다. 추억을 더듬어 가는 좋은 시간이었다. 잃어버리고 지냈던 귀중한 시간을 다시 품안에 안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열정 하나로 무작정 뛰어들던 그 시간을 회상해 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작곡은 흔히 창조성의 표현이라고 한다.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을 읽으며 아하, 했던 부분이 있었다. 피카소의 말이다.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263P)
또한 하워드 가드너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38P)’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가장 순수한 마음, 백지로부터 시작하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에서 창조성은 첫발을 뗀다. 그 창조성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다. 도전 자체가 신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이 도전에는 무한한 즐거움이 깃드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 어른의 본인 만의 깊은 전문성을 추가할 수 있다면 그 창조성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지나가는 이야기
지난 4월, 3기 연구원 수료식 모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 아무런 기별이 없어 다시 글로 옮깁니다. 다시 작곡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변경연의 테마곡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3곡 정도를 실험 삼아 만들어 보고자 하는데, 가사가 필요합니다. 물론 제가 쓸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다른 분들과 함께 호흡하는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거, 보게되면 애국가부터 시작하여 온갖 공식적인 노래에는 작사와 작곡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잖아요.^^;; 가사 형식은 따로 없습니다. 보내 주시는 데로 제가 짜르고 붙이고 조합하여 제 입맛(?)대로 편집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보내주셔도 됩니다. 원고료요?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가사에는 제가 특별히 ‘손을 맞잡고 뽀뽀’를 해드리지요. 캬캬~ 제 메일(bang_1999@naver.com)로 많이 많이들 보내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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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현정..
요즘 현정의 말을 보면 내 뱃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해서 가끔 철렁함을 느끼네.. 조금만 더하면 돗자리 사도 될 것 같아... 때되면 이야기해, 내가 돗자리는 협찬할께...^^
지환..
그래, 지희씨와 은미씨가 감수성이 뛰어나지.. 그러는 넌, 감수성이 무디니? 감수성 계발을 위해서라도 너도 꼭 써서 보내라~!! ㅋ
소은..
뜻이 있으면 우리 조교님이 나서주시는군여~!! ^^ 역시 잘 뽑았다니까.. 내가 볼 때 아시아권에서 울 조교님 따라 올 사람 없다~!! ㅋ
최우성님..
반갑습니다.. 사부님께서 술도 안 드시고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대단히 궁금하군요.^^ 혹 실례를 하셨다면 제가 대신 사과를..^^
네, 꼭 메일 보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
요즘 현정의 말을 보면 내 뱃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해서 가끔 철렁함을 느끼네.. 조금만 더하면 돗자리 사도 될 것 같아... 때되면 이야기해, 내가 돗자리는 협찬할께...^^
지환..
그래, 지희씨와 은미씨가 감수성이 뛰어나지.. 그러는 넌, 감수성이 무디니? 감수성 계발을 위해서라도 너도 꼭 써서 보내라~!! ㅋ
소은..
뜻이 있으면 우리 조교님이 나서주시는군여~!! ^^ 역시 잘 뽑았다니까.. 내가 볼 때 아시아권에서 울 조교님 따라 올 사람 없다~!! ㅋ
최우성님..
반갑습니다.. 사부님께서 술도 안 드시고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대단히 궁금하군요.^^ 혹 실례를 하셨다면 제가 대신 사과를..^^
네, 꼭 메일 보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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