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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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나른한 봄날 정오는 포근함보다는 노곤함이 다가오고 있었다.
열심히 살았다. 서른의 어느 대목하나 열심이지 않은 때는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찢어지는듯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거니? 너 행복하니?”
여기 저기 사람들은 웅성 웅성 거리며 오늘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언제나 그랬다.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내 안의 울림들을 무시한채 하루 하루를 내달렸다.
무수히 반복되는 일상들은 내안의 울림에, 이 얼굴없는 소리에 주먹을 가격했다. 나는 때때로 울었다.
어디서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울먹임이 시작됐다.
혼자라는건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 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 만큼 힘든 노동이란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리면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최영미의 혼자라는 건
분명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고, 믿음직스런 남편과 나를 흥분하게 하는 동료들과 나무처럼 늘 그자리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였다. 세상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잔치는 끝났듯 하였다. 잔치가 끝나고 술도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각자의 갈길을 찾아 돌아가고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듯 했다.
여전히 나는 뜨거웠고 내부에는 불꽃이 살아있는데…본질적인 나와 내면적인 나와 만나지 못했으므로 아플 수 밖에 없었고 울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이 아파해야 했다. 더 많이 울어야 했고 더 많이 소리쳐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 뒤척임 속에서 본질적인 나를 찾아내고 상처를 섞고 어루만지면서 나를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이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이책은 바로 그 프로젝트이다.”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중
나도 나만의 삶을 담은 작은 책하나 갖고 싶다.
누군가 제3의 시선의, 그들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고 나 아닌 그 누군가의 칭찬이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로지 나만의 잣대로 나를 들여다보면서 나의 서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이야기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나의 과제이지 않은가
그러니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나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서른, 나의 삼십대를 뒤돌아보니 무엇보다 열심히 살았다.
마음속에 뜨거운 불꽃을 품고있어 하고 싶은것도, 욕심도 많은 영리한 아들과, 뜨거운 기질을 가지고 있어 힘들게 하는 나를 잘 받아주는 남편과, 좋은 벗들, 괜찮은 여행이야기, 항상 열심히 내달렸던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것이다.
삼십대를 살면서 삶에 대한 호기심, 여행 같은 휴식, 책과 스승과 벗, 동료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 그 길위에서 알게 된 절망과 패배, 그러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용기들에 대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써 보고 싶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때문에 글로서 이 모든 것을 담는 것에 한계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이 필요하다. 짧막한 단상들과 마음을 울리는 사진들을 잘 엮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역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좀 더 잘살지 못한 삶에 대한 변명이 될른지 모르겠으나 깊은 절망속에서 희망을 피워 낼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욕망을 발견하고 미래의 삶에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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