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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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출근을 하기 전에 책꽂이를 보다가 한 권의 책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즘 출퇴근길에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가방에서 꺼내고 책꽂이에서 본 책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법정스님의 잠언집입니다.
그리고 오후에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떻게…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약 2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하던 시절,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책 중에는 아직까지 기억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종점에서 조명을”
마포 종점이 아니라 인생의 종점에서 현재의 삶을 조명해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삶의 종점에서 조명해볼 때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대략 그런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 신자였던 저에게 종말론 신앙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준 것 때문입니다.
그 분은 현세의 삶을 부정하고 오로지 내세의 영원을 기원하는 것을 종말론이라고 믿었던 저의 잘못된 믿음에 일침을 주셨습니다.
기독교 신자였던 제가 불교도에게서 참된 기독교 신앙을 깨달을 줄이야.
이 역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대학로 주점에서 지인들과 술 한잔하다가 우연히 위의 글이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평생 무소유를 지향했던 법정 스님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합니다.”
비움… 겸손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비춰지는 모습도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내적으로 자신감이 있습니다. 여유가 있고 마음은 늘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겸손해야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명령과 지시가 많아지고 자기 주장이 강해집니다. 갈수록 많이 부족해지는 게 겸손입니다. 그렇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링컨은 겸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겸손해지는 건 쉽지는 않지만 우리 시대에 꼭 갖추어야 할 미덕입니다. 빈 마음은 초심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마치 우물을 퍼내야 다시 괴는 것처럼 텅 빈 마음에서 뜻밖에 창조적인 지혜가 샘솟기도 합니다. 삶은 더 많은 것들을 채움으로써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을 남기고 모두 비움으로써 더 큰 깨달음과 만족감을 얻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비움은 적극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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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평생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는 분이어서 그저 맑고 향기로운 분으로 기억될 지 모르지만 저는 열정적인 분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그 분의 이 말씀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사리도 필요 없고 탑도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저의 믿음은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