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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꾸미는 백만 가지 방법 중의 하나,
그래서? 더 매력적인 홈 드레싱(Home Dressing)
아직도 기억나는 그 날은 우리 집이 새 단장을 하고 나와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집에 도착했는데 으~~~. 체리 색 마루바닥은 감추고 싶은 갈색소파의 붉은 기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촉감이 아주 거칠었던 벽지는 산만 그 자체였다. 집안 곳곳을 뺑 둘러싼 몰딩과 둔탁하게 내려온 조명 박스는 안 그래도 아치형 벽면 때문에 낮아 보이는 천장을 더욱 갑갑하게 만들고 있었다. 방방마다 발라져 있는 광택이 도는 벽지하며 생뚱맞은 수박색 타일로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한 욕실까지 어느 한 곳도 나의 마음에 드는 데라곤 없었다.
잘 해보자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드렸건만 다른 건 그렇지 않은데 유독 집에 관해서는 만큼은 별다른 취향이 없으신 엄마는 별 고민 없이 아파트 단지 내 인테리어 업체에 공사를 맡기셨다. 전문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어붙이고 마는 화통한 성격, 거기에 딸의 시험기간이라는 배려(?)가 더해져 우리 집은 업체의 성향과 대중적인 유행을 고스란히 따르는 옷을 입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거실과 주방 사이를 연결하는 복도에 털썩 주저앉아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 엄마 표현에 의하면) 괜히(?) 눈물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나는 엄마에게 두고두고 타박을 했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방에 전과 같이 공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집을 꾸미게 되었을 때 이번만은 절대 그때의 악몽을 되살려서는 안 된다는 가족의 바람(?)이 반영되어 엄마와 나는 꽤 여러 곳에 발품을 팔고 또 팔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다. 가까운 동네 인테리어 가게는 가지고 있는 자재 안에서 해결하려다보니 여전히 구태의연했다. 규모가 좀 있고 전문성이 느껴진다 싶은 곳은 부분적인 공사를 원하는 우리의 요구를 별로 탐탁지 않아 했다. 어쩌다 마음에 좀 들라치면 예산을 크게 웃돌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난 아직 학생이었고 나름의 감각을 밑천 삼아 의욕만 앞섰지 인테리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없었을 뿐더러 자재 이름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완전 초보였다. 극성맞은 딸내미 비유 맞추느라 고생하시는 엄마께 죄송도 하고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곳이 있었으니, 바로 불과 동네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작은 인테리어 가게. 결국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신뢰가 갔던, 그러나 첫인상은 좀 깐깐했던, 그 곳에 의뢰해 어느 정도 흡족함을 얻은 후에야 나의 집요한 타박 아닌 타박은(?) 겨우 진정이 되었다. 집에 대한 나의 애정도 다시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기존 인테리어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트렌드와 시장이 내놓는 재료를 가지고 내 집이 네 집인 양 비슷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집 꾸밈이라고 대답할 거다. 평소에 좀 부족한 듯 해도 덜 채워진 듯 보여도 그저 자연스럽고 집주인을 닮아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집 꾸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평당에 얼마’ 라고 하는 공식화(?)된 예산이다.
나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이 ‘우리 집은 몇 평인데 얼마 들어요?’라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바닥, 벽, 문짝, 몰딩 등의 상태, 집주인의 취향,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 갖고 있는 가구나 살림의 양 등 집을 꾸미는 데 꼭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는 상황에서 무어라 답을 하기가 정말 난감하기 때문이다. 몇몇 전문가들이나 잡지에서 ‘‘33평형은 리모델링하는 데 얼마, 40평대가 넘으면 얼마’ 하고 딱 잘라서 말하는 걸 보면 나는 딱 기가 막힌다. 견적, 이건 사실 제대로 상담을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게 정답 아닌가.
사람들은 집 꾸밈, 그러니까 인테리어 공사하면 깨고, 부수고, 뭔가를 세우고, 구조 변경을 하고, 새로운 걸 들이는 등 원래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고 있나 보다. 그래선지 여느 집엘 가서 봐도 베란다를 거실로 확장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방과 다이닝 룸 사이에는 가벽을 설치하고, 충분한 시장조사 없이 급하게 가구를 세트로 구입해서 가구점의 카달로그를 보는 듯한 공간으로 만들고 만다.
유행신을 따르는 증세도 집 꾸밈에서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는 것 같다. 거실 한 쪽 벽면은 꼭 아트월로 장식하고, 바닥은 지금 유행하는 화이트 폴리싱 타일로 깔고, 미니멀이 대세이니만큼 부엌가구는 모던한 라인에 번쩍번쩍 광택이 도는 화이트&블랙의 하이글로시 제품으로 들이고.. 등등.
집주인이나 전문가나 너나 할 것 없이 으레 집을 확 뜯어 고치겠거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만난다. 이 때만큼은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이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면 좋으련만..
인테리어 공사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베란다, 무조건 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리 단열처리를 이중삼중으로 한다고 해도 춥고 덥다. 장마 때는 비가 세는 등 결로(유리창이나 섀시 틀 주변 벽 모서리 부분에 습기로 인해 물방울이 맺히거나 곰팡이가 생기는 현상)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아주 농후하다. 넓은 게 좋아서,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앞뒤로 다 터 버렸더니 나중엔 빨래 널 곳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깊지 못한 상흔에 씁쓸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공간을 구분해 줄 장치가 필요할 때는 중문을 달거나 가벽을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벽을 세울 때만큼은 그저 공간을 나누는 데만 급급해 하지 말고 아주 분명한 용도와 계획이 서 있어야 한다. 잡지에 나오는 사진만을 믿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TV나 잡지에서 사용하는 카메라 렌즈는 공간을 실제보다 훨씬 넓어보이게 하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실제 설치된 공간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
전체 공사 일정 중에서 가장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것이 목공사다. 작은 평수에, 공간에 효율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여기저기에 접었다 폈다 넣었다 뺐다하는 올인원 가구나 시스템 가구를 짜 넣는 것은 여러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은 사제품이 많은 탓에 A/S도 그렇고, 이사 갈 때 데려갈 수도 없고. 오래 살 집이 아니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만을 믿고 또 자기 주관 없이, 하라는 대로 공사를 했다가는 오히려 집안 기둥 몇 개는 뽑아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가족에게 어울릴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을 꾸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홈 드레싱(Home Dressing),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집의 옷을 입히는 일’이다. 의식주란 말이 왜 나란히 한 단어로 붙어있는가 했더니 집을 꾸미는 것도 옷 입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 아닐까.
홈 드레싱, 성형의 고통 없이도 살을 빼는 노력과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런저런 옷을 조화롭게 매치해서 아름답게 변신하는 옷 입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대대적인 구조 변경 없이 기존 자재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벽지, 마루 등의 마감재를 교체하고, 가구, 패브릭, 조명 등을 활용, 조화에 초점을 맞추어서 공간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유행에 상관없이 늘 기분 좋게 꺼내 입을 수 있는 기본 아이템에 시즌마다 트렌드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센스를 발휘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멋지고 세련된 옷차림을 연출할 수 있는 것처럼 아직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취향과 안목, 반짝이는 아이디어, 여기에 약간의 집요함(?)을 더한다면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면 개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건조한 베란다에 타일이나 데크를 깔고 미니 연못이나 정원을 꾸미면 삭막한 아파트에서도 주택처럼 자연을 가꾸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제대로 된 조경을 갖추는 것이 힘들다면 대신 베란다 한켠에 멋진 화분 하나를 놓아보는 것은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아이비 같이 흐르는 식물을 좋아하고, 골드 세피아, 재스민 등 키 크고 잎 많고 식성 까다롭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는 애들을 추천한다. 감추고 싶고 분리하고 싶은 공간은 스크린이나 파티션 등을 이용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스팽글 커튼이나 철망 커튼(현장 용어로는 메시 커튼)을 달아서 미관상 보기 좋게 보완하는 방법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커다란 꽃이 프린트 된 벽지가 인기였지만 이제 그런 포인트 벽지는 진부한 아이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행을 따라쟁이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페인팅한 느낌이 나는 솔리드 컬러의 벽지에 마음이 닿는 것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D.I.Y.용 페인트나 시공한 후에도 냄새가 남지 않는 친환경페인트가 시중에 다양하게 나와 있는 만큼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가 염려된다면 페인팅 도장으로 벽을 마감하는 것도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
베이지나 브라운 컬러의 가죽소파, 그동안 때도 많이 탔고, 이제 가죽 표면은 살이 터져서 보기에도 민망하고, 그래도 속은 아직 짱짱해서 버리기에는 아깝고, 다양한 질감이 느껴지는 패브릭으로 커버링 해보는 것은 어떨까. 블랙 컬러의 3인용 가죽 소파에 빨간색 찰스&레이 임스의 흔들이 의자 RAR를 매치하는 것만으로도 평범했던 거실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창의성 그득한 오브제에 푹 파묻혀 흔들흔들 책 읽는 모습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굿 디자인을 몸소 체험하는 뿌듯함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비싼 제품을 일부러 고를 필요는 없다. 클릭품을 좀 팔면 e - 편한 세상에는 D.I.Y. 형태로 판매하는 착한 가격의 상품이 얼마든지 있다. 똘똘한 놈을 골라 가족과 함께 조립해 보는 것도 좋겠다.
크리스털 구슬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부딪히면 청명한 소리를 내는, 촛불이 별자리처럼 빙 둘러선 샹들리에는 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식탁 위에 달아 놓으면 마치 호수에 비친 달빛 같아서 서로를 빛내고 오래가는 행복과 추억을 남겨줄 것이다. 두툼한 한지 밖으로 번져 나오는 은은한 불빛은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려 주는 효과가 있다. 한번 설치하면 눈길조차 주지 않던 조명이지만 이렇게 우리 집 제일 높은 곳에 여백의 미를 강조하며 설치한 조명은 공간에 멋스러움을 더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선물해 줄지도 모른다. 기존의 가구에 집주인의 취향과 안목으로 고른 소품을 활용하면 오랫동안 살면서 다듬은 듯 감각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평소 고친 티가 확실히 나는 겉보기에 멋들어진 비주얼적인 집보다 오랫동안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 편안한 집을 원한다면 홈 드레싱이 제격이다. 꽉 짜여져 변화를 줄 수 없는 집이 아닌, 살면서 조금씩 바꾸기도 하고 더하고 빼면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집 꾸밈을 원한다면 홈 드레싱만한 게 없다.
요즘은 인테리어 잡지나 외국 서적을 뒤적이고 박람회를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 안목과 감각을 키우는 이들이 참 많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품을 팔아 가꾼 실력으로 패브릭 소품과 가구까지 손수 만들면서 보람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량 제작되어 나오는 제품과 획일적인 방식에 개성을 마구 구겨 넣는 대신, 자신의 취향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들은 전문가보다 더 열정적이고 집에 대한 애정이 깊다. 열정과 애정은 항상 더 좋은 결과를 낳는 법이 아니던가.
집에 대한 관심과 애정, 자신의 눈과 마음이 선택하는 안목과 감각, 여기에 약간의 발품을 파는 수고와 손품을 들이는 노력을 더한다면 모든 걸 내 손으로 직접 하는 D.I.Y. 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주인의 셀프 인테리어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홈 드레싱의 크나 큰 매력이다.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바닥재와 벽지를 교체하고, 욕실을 수리하고, 부엌가구를 바꾸는 정도라면 굳이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아도 쓰리품(클릭품, 손품, 발품)을 좀 팔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의 집에 다 있는 소파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위치에 놓고, 어떤 의자와 짝을 맞춰주고, 어떤 소품을 매치해주고, 어떤 옷으로 갈아입히는가에 따라 백만 가지 아니 천만 가지 분위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전문가를 시켜서 집을 꾸며 놓고 몇 년이 지나도록 꽃병의 자리조차 바꾸지 않는 귀차니스트만 아니라면 홈 드레싱,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늘 생각했다. 세상사,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없는 것처럼 누구나 살고 있는 집, 그 집을 꾸미면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홈 드레싱의 매력,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 좀 아니, 무쟈게 작용했다는 점을 솔직히 말해야겠다. 집 꾸미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지만 이 길에도 워낙 여러 갈레의 길이 있으니 내가 알고 있는 길이 정말 지름길인지 옳은 길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내가 집을 꾸미면서 배우고 실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공유하고 그러한 나의 경험들을 토대로 각자에게 근접한 길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방식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각자 스스로 많은 영감을 얻고 집 꾸미는 안목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집을 꾸미는 것이 즐거운 놀이가 되고, 나의 집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그런 매력이 느껴지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다듬어서 내 삶과 내 집이 하나가 되어 편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홈 드레싱, 백만 가지, 아니 그 이상으로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한 제대로 된 집 꾸밈이다.
사부님~
안녕하세여.. ........................................................................................................................................... ^^
불확이가.. 말을 좀?.. 아니 마니.. 안 듣져.. ㅎ 깊이 반성해여..
매.. 그거이.. 혹시.. 100년 고택.. 저희 구신놀이? 할때.. 가꼬 오..셨...던..... ?
아, 사부님.. 다신 안 그럴께여.. 앞으루.. 공부.. 열씨미 할께여.. 또.. 말도.. 잘 들을께여.. 헤헤^^
사부님~, 깊이.. 존경해여~~~ ^O^ 맨날맨날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