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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슬펐던 것은 나를 사랑해줄 한분이 떠나서가 아니라 너무도 미안해서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선택이었음에……. 마음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죄인 같아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열심한 것도 죄송해서 그러고 지냈는데. 이젠 힘을 내도 아빠가 용서하시겠죠. 교육동안 감사했어요. 오시면 남아있는 돌덩이 하나만 치워 주세요. 막걸리 사드릴께요. 고맙습니다.”
1년을 마무리 하는 큰 축제에서 그녀를 만났다. 특유의 씩씩함으로 유쾌함과 함께 과정을 즐기고 있던 그녀가 돌아갈 즈음 갑자기 표정이 돌변 하였다. 무슨 일일까? 괜히 신경이 쓰인다. 까닭을 알고 보니 갑자기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단다. 그렇구나. 그래서 기분이 다운이 되었던 거구나. 하지만 그 이유는 표면적 이었다. 돌아와서 혹시나 상을 잘치루셨는지 해서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그녀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실은 아버님이 자살을 하셨어요.”
내가슴속 커다란 무엇 하나가 굴러와서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살. 무슨 일로? 어찌 이런 일이? 그러면서 그녀가 힘들어 했었을 상황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행사에 오기전날 아버님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셨어요. 평소에 건강 하시던 분이었는데 간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그때 가지도 못할 뻔 했는데 동행하는 일행들을 인솔 하여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참석을 하였죠. 그런데 입원한지 3일 만에 당신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요. 행사장에서 저는 그 소식을 들었고요.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어요.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는데. 당신 나름의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남아 있는 자식들은 어떡하라고…….”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공감을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흐느낌. 나는 그냥 그녀의 한 맺힌 이야기들을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녀 어깨의 들썩임이 공간을 넘어 나에게로 전달되어져 왔다. 그냥 감싸주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그 후 간간히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 그녀의 소식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믿고 있는 종교가 가톨릭이어서 신부님에게 아버님의 장례 미사를 어렵사리 부탁 하였으나, 가톨릭 내에서는 자살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기에 책망만 들었다는 이야기. 돌아가신 분을 위해 봉헌을 부탁 하였으나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이야기. 나는 갑자기 울컥 감정이 쏟아졌다. 종교가 무언데. 어찌 되었든 사람이 돌아 가셨는데 그 알량한 법규 하나로 사람을 올가메다니. 종교가 무언데.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게 종교가 아닌가. 그럼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터인데도 그 썩어빠진 규범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고 한 번 더 아프게 하다니. 그러면서 애써 감추어 두었던 내 과거사의 기억도 살아났다.
“승호씨. 어쩜 그럴 수가 있어. 나는 위로 받고 싶어서 정말 벼르고 벼루어서 힘들게 고백성사를 하였는데 신부님이 그렇게 말씀 하시다니. 나는 어쩌면 좋아. 나는 어디에 기대면 되느냐고?”
마지막 선택으로 시험관 아이 시술을 하고 그 결과에 참담해 할 때 위로와 공감을 받기 위한 일환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성사와 함께 풀어 놓았지만 돌아오는 젊은 신부의 이야기는 사람을 한 번 더 무너뜨리게 했다.
“가톨릭에서는 시험관 아이를 인정치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하느님의 섭리대로 살아가세요.”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무슨 이따위 신부가 다있는지. 어쩜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지. 누가 그런 것이 있는 줄을 모르나. 오죽 답답하면 그렇게 했겠냐. 설사 내부 조항이 그렇더라도 먼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달래주고 공감해 주면 안되었나. 그것도 일반 사람도 아니고 명색이 신부라는 작자가. 어찌 그런 모진 말을 해서 사람을 두 번 죽이게 만드는지. 그러니 성직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꼴 보기 싫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거야.
그런 기억과 함께 그녀의 슬픔이 나를 더욱 아프게 한다. 그래도 그녀는 종교를 버리진 않는다. 오히려 아버님을 위해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100일 미사와 기도에 매달린다. 어떻게 하면 위로가 될까 하던 차 이후 오랜만에 집체교육을 통해 만난 그녀가 위와 같은 한통의 핸드폰 SMS를 보내 왔다.
마침 그쪽으로 행선지가 잡히어 나는 기차를 타고 바로 내려갔다. 원래는 당일로 출장을 잡을 예정 이었으나 남아있는 돌덩이 하나를 치워 달라는 그녀의 멘트가 계속 마음에 남아 미팅 약속을 잡고 1박 2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무슨 할 말이 필요하랴. 사변적인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내가 먼저 어렵사리 화두를 꺼내었다.
“네. 덕분에.”
말이 없다.
“아버님 100일도 끝나가고 이제는 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가고 있어요. 그래도 문득문득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턱밑까지 차올라 오고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을까 하는 회한이 가슴에 밀어 쳐 와요.”
나는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 어르신 분들 중에 간암과 위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계셨어요. 아마도 그분들 병고의 고통을 보셨었고 무엇보다 병수발을 담당하는 자식들의 애환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런 행동을 하시지 않았나 싶어요.”
다시금 그녀의 눈망울에 물기가 어려 온다. 나는 술잔만 기울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임종도 지키지 못한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하지 못한 자식의 비애가 다시금 느껴져 왔다. 그녀의 말이 더욱더 격해진다.
“평소에 어머님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관계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어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아버지와 방을 따로 쓰시고 계셨었는데,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 병세 이었으면 충분히 아셨을 것이고 미리 진료를 받게 하시는 등 조치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막판이 되어서야 병원에 모시게 하시고. 나는 그런 어머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자식들중 특별히 자신을 아끼고 귀여워 해주셨다는 아버님 이셨기에 그 충격과 빈자리의 공허함이 더욱더 큰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아쉬움과 원망에 대한 화살이 어머님께로 향해 날아가는 것이고.
“그래도 생각해 보니 아마도 제일큰 충격은 어머니이실 것 같아요. 평생을 함께 살아 오셨었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중 가장 큰 스트레스중의 하나가 함께 사는 부부의 사별이라고 하였던가. 또 다른 아픔이 밀어 닥친다. 그렇지. 부부의 정은 자식들에 대한 정과는 다르지. 반평생을 함께한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먼저 떠나가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
본인의 가족과 시댁 식구들 이야기를 비롯해 세 시간여 동안 그녀의 이야기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면, 얼마나 자신의 가슴속 바닥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으면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늦은 밤 그녀의 택시를 잡아주고 여관방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사람 사는 게 무언지. 세상 사는 게 무언지. 거기가 거기고 다 똑같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계속될 것 같던 시리고 기나긴 겨울이란 계절도 드디어 끝나가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아직도 봄은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차가운 낯선 여관방에 새벽녘 뒤척이며 애써 잠을 청하고 있는 가운데 그녀에게서 핸드폰 문자가 도착했다.
“제 화병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