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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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56 -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3월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은 지혜로운 인디언이 2월에 붙여 준 이름이다. 2월 마지막 토요일 이문학회에서 글씨 연습을 하다가 인사동으로 나가 화랑을 둘러보았다. 한 해 동안 애를 쓴 작품들이 봄을 맞이하며 세상으로 나왔다. 매화 전시회가 시선을 끌었다. 나뭇가지에는 봄소식을 품고 곧 소리쳐 나오려고 하는 매화꽃 봉오리들이 많이 매달려 있었다. 어떤 그림엔 나뭇가지사이로 보름달이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술병만 없었을 뿐 가히 시인이 다녀가도 될 만큼 봄이 무르익어 있었다. 눈으로 봄의 전령들을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비가 오시는 데도 길을 나섰다. 청산도를 걷다 왔다. 늘, 마음에 꿈으로 남아있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청보리와 유채꽃과 바다가 다 들어간 아름다운 그림 한폭. 아직 그림이 다 그려지지는 않았다.색칠이 덜 끝났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보면 다 보인다. 떠나오는 날 새벽 비 개인 언덕을 걸었다.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세찬 바람 속에 서서 봄바람을 겨우 달랬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고 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도 한다. 나는 보물과 생존의 경계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경계도시의 창조적 부적응자?....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점점 깊이 깨닫는다. “추억은 아주 힘이 세다”는 것을.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에는 평화가 있으려나.... 숲의 나무들이 333프로젝트를 따라 낙동강 순례를 기획하고 있다. 함께 가고 싶지만 먼저 정해진 집안의 일이 있어서 이번에도 못간다. 그 대신 지난여름, 4박5일 걷다가 돌아온 강 이야기 조금 더 풀어 보낸다. 2010년 7월 17일부터 21일의 일이다. 강과 맺었던 이 추억도 강물따라 잘 흘러가기를 바란다. ** 강에서 만난 사람들 지치도록 걸었다. 햇빛은 쨍쨍하고 길에는 중장비가 나뒹굴고 먼지가 너풀너풀. 지치도록 걷다가 강으로 들어가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아니 신발을 벗어들고 강 속으로 들어가보기는 다 자란 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바닷가에서 자라났으니 언제나 물의 근원을 따지지않고 그냥 바다로 첨벙 뛰어들기만 해왔다. 찰랑찰랑 맑은 물살이 발가락 위로 흘러간다. 모래알도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평화롭다. 약간 물의 비릿한 내음도 올라온다.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뜻을 함께두고 함께 걸으니 금방 친구가 된다. 그래도 다들 말을 아낀다. 물풀이 가끔 붙잡는다. 쉬어가라고...아니면 함께 가지고...조약돌 사이로 깨진 사기그릇도 보인다. 강물과 함께 흘러오며 많이 부드러워진 그 그릇은 간장 종지로 써도 좋을 것같이 예쁘다. 누군가 집어 손에 꼭 쥐고간다. 나는 그렇게 긴 강물을 처음 따라가 본다 아기자기 소꿉놀이 하는 것 처럼 정답다. 갑자기 이 모든 것에 가해질 힘이 두려워졌다. 강물은 무심히 흐른다지만 내마음은 조금씩 슬퍼져 갔다. 말이 없던 길시인이 풀이름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도 모두 답한다. 척척박사다. 아마 시인은 오랜시간 동안 공을 들여 풀과 꽃과 강물을 사랑해 왔을 것이다. 시인의 마음으로 강물을 바라보았으니 강이 아프면 그는 더많이 아플 것 같다. 다시 저만큼 가서 홀로 걷는다. 이제는 그에게 더 말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소설가는 소설로 그들이 본 강을 알려줄 것이다. 사대강을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것과 이렇게 직접 만나 서로의 속살을 내 보이는 것은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만남일 것이다. 우리는 4박 5일을 함께 걸어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 3월은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세상의 거센 눈보라가 문턱까지 넘어와 뒤집어엎네 영혼의 질서를 ...래너드 코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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