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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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무심한 척, 머릿속으로는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나보다. 매일 메일을 열어보는 나를 보니 말이다. 어느새 훌쩍 날짜가 간다. 시간은 냉정하다. 머릿속의 가능성을 확신시켜준다. 그러나 또한 따스하다. 여행으로, 눈병으로 약간은 지친 나를 푹 감싸준다. 그리고 다시 가다듬게 한다. 오늘 아침 좋은 생각 한 자락을 건졌다. 문득 스친 생각이 곰씹어 생각할수록 좋다는 생각이 드니 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스스로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되자’
처음에는 한 문구가 덧붙여 있었다. ‘세상의 신호를 기다리지 말고...’ 적고 보니, 이제는 긍정문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또한 조건을 달지 않고 살고 싶었다. 몇 번을 적고 지우다가 삭제해버렸다. 사람인지라, 또 이제는 좀 더 보듬어 안게 된 과거의 나처럼, 종종 뒤돌아볼지도 모른다. 분명 수시로 서성거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해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해주는 동반자가 있다. 또한 세상이 넓다고, 무대를 넓히라고 말해주는 벗이 생겼다.
길가의 풍광을 함께 즐길 벗들을 얻은 기쁨! 나와 다른 그들과 일 년의 시간 안에서 울고 웃고 부대끼며 만들어진 진주였다. 그 보석은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단단한 껍질을 발견하는 아픔과 봄에 얼음이 녹듯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겪고나서야 만들어졌다. ‘틀리다’에서 ‘다르다’로, 단 두 글자를 바꾸는데 일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멀리 돌아온 길, 아마 함께 걷지 않았더라면 진작 포기했을 힘든 길이었다. 머리와 가슴과 발이 온전히 함께 한 여정이었다. 그 일 년의 여정의 백미가 바로 이번 여행이었다.
청주에서 전주로 천담과 구담을 거쳐 광주로, 다시 장흥과 관산과 회진, 다시 묘당도와 완도와 청산도, 마지막 신지도까지... 이 많은 곳들 중 내가 가본 곳은 청주, 전주, 광주, 딱 세 군데였다. 어머니,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과거 본적지였던 청주를 제외하고는 그 어디도 나에게 의미 있던 곳은 없었다. 되풀이 들어도 절대 머리에 남지 않는 그냥 스쳐갈 뿐인 지명들이었다. 계획도 예약도 없는, 발길가는 대로, 누군가의 말 한 마디로 이어지는 자유로운 여행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나는 지도를 확인했고 그곳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새겼다. 거기서 내 인생의 쉼표가 찍히고, 시가 쓰였다. 전주의 한벽당, 매실나무 회초리가 꺾이는 섬진강길, 광주의 순임이네 주막, 장흥 보림사의 빗속 벽화들, 관산해변가의 조개구이집, 회진의 마을회관, 청산도의 구불구불 길, 신지도의 모래사장... 이 아름다운 곳들은 함께 한 사람들과 함께 내 가슴에 이름을 남겼고 영원히 잊히지 않는 꽃들이 되었다. 게다가 나는 즐거이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