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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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절도와 집중력의 힘 49!!!
변경과 함께 인생2막, 다시 살아보고픈 삶을 위한 혁명 2탄 (1탄은 지난 연구원생활)
새벽 글쓰기라는 습관의 힘에 의한 인생 역전에의 도전!!!
스승의 말씀처럼 100억 못지않은 유산 획득으로 느껴지는지 직접체험으로 증명해 보겠다.
이로써 내 모든 불운과 자책과 부적응과 부조리를 일단 날려버리고 합리성을 실천하겠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반복하고 발버둥 치며 지금 여기, 강력히 절도의 힘을 갈망한다.
이러한 도전 자체가 살아있는 날들의 즐거움과 生氣일 것이기에 어울리며 상생하고자 함이다.
2. 나의 전체적인 목표 (1~2 가지)
의지를 넘어 습관으로!!!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삶, 이것 하나만은 평생 하겠다! 는 각오다.
굶어죽지 않을 터, 실상은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책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내 인생의 가장 절실한 열망을 향해) 오롯한 恒常性으로 부단히 임하기 위함이다. 아무 재능 없어도, (늦게 배워 겨우 깨우치는), 오직 성실한 새벽 글쓰기 하나만으로도 삶의 위대한 힘(原動力)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겠다. 적어도 원하는 습관은 남을 것이니 괜찮은 실행이다. 아침 세 시간의 노력으로 단기적으로는 마음의 중심잡기요, 장기적으로 구체적인 항상성으로 삶의 원기회복과 일상의 생기를 누리기 위함이다.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3시간 글쓰기!
3. 중간목표(3~5가지)
* 7×3=21일(禁줄로 金줄 치기), 7×7=49재∙칠칠재, 100일 解喪∙解角 & 부활!!!
1) 카페 탐험 관련 책을 주 1권 이상 읽고 리뷰 (주로 일요일, 49일째까지)
2) 주 2곳 이상 카페 탐방 혹은 공간 조사 (49일째까지)
3) 카페 탐험에 대해 정리 & 마무리: 초안(?) 잡기 (49일째까지)
4) 매일 일기와 매주 1 칼럼 쓰기 (100일 동안)
5) <43살에 다시 시작하다> 10번 읽으며 각인하고, 스스로를 고무시키기 (100일 동안)
4. 목표 달성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난관과 극복 방안 (2~3가지)
1) 글쓰기 몰입 30분 전 기상, 생수 2컵 마시고, 매일 새벽 108배로 잠 깨기 & 염원 및 정진하기
2) 주 1회 이상 미사 참석으로 상생 작용 불러일으키기: 몸∙마음가짐 쇄신; 긍정성, 초지일관의 끈기 함양, 중간에 잡념과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윗몸일으키기, 염두에 둔(?) 좋은 상상 하며 마인드컨트롤, 낮에만 커피 & 차 마시며 피로회복 및 적응, 일찍 취침.
3) 글쓰기에 일관적 내용 다루기, 인문학적 사고와 지평 넓히기
4) 무엇이건 미루거나 집착하지 말고, 생각 즉시 메모로 남겨두고, 몰두하여 즉각 해결하기
5) 주변상황과 일과 등 자주 정리∙정돈하여 몸과 정신을 오롯하게 가다듬기
5.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내 삶에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 묘사(1~2)
100일 간의 생사고락을 연상하며 계획을 시도한다.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처럼 처음 3주간은 외부에 사실을 알리며 금기의 금줄을 치는 동시에 이로써 새로이 새벽 혁명으로 세상을 열어나간다는 의미로 심신에 균형과 절제의 황금의 라인을 두고 각인시켜 나가고자 하였다. 매일 아침 지난날의 부조리한 관습과 부유하는 잡념들을 엄숙히 떠나보내고, 정안수를 떠놓고 염원하듯 정갈한 마음으로 남은 새날들의 충만한 삶을 발원하며 49제를 올리듯 정심으로 임하였다. 처음 일을 도모할 때야 시작이 반이라 하지만, 완결을 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90보에서 멈추게 되면 애당초 아니 한 것만 못할 수 있으니, 100보까지를 온전히 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했다. 간혹 미련이나 유혹이 헛갈리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구태의연한 나를 말끔히 떠나보내고 새로운 나와 만나기 위하여 이를 악물었다. 100일 탈상 때까지는 節度와 신성성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일상을 初志一貫하게 확립해 나가는, 일상의 해각(解角)이 동시에 연마될 수 있도록 전심으로 必살기 수련에 몰입하였다.
새로운 나, 진정 살고 싶은 나, 일상을 심사숙고하게 주도하는 나로 집중, 변신∙부활을 꿈꾸다!!!
;불안 극복, 자신감 획득, 좋은 기운과 우주의 참 생기에 공명하며 일상을 즐겁게 영위하자!
도대체 평생의 스승님을 모셨다면서 한 가지라도 제대로 똑 부러지게 실행하고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따분했다. 늘 허욕만 왕성할 뿐 허장성세인 것도 안타까웠다. 게다가 허구한 날 매사에 징징대기 일쑤인 것은 또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이던가.
연구원 4년차, 4*세, 지천명의 나이를 목전에 둔 처지. 항상 할 일은 많지만 막상 하려면 언제부턴가 엄두가 나지 않는 기현상까지 초래되는 상황이다. 여전히 쓸데없이 근심 걱정에 휩싸여 속수무책으로 앞날을 염려하고, 인생에 연민하고, 세상살이를 한탄하고만 있는 것과 같은 모습에 분괴하여, 당연히 이러한 부조리들과 결별을 선언하고자 함이다.
무엇보다 끝까지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왕이면 가장 모범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혹여 중간에 페이스를 놓치게 되더라도 일단 목표를 완주에 두었다. 100일 동안 꾸준할 것이 첫째 목표였다. (행여 50일만 성공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할 계획이다. 150일로 연장해서라도 최소 100일을 지키겠다는 태도로 임하겠다.) 나날을 최대한 성실한 내용으로 참여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세 번째 이자 마지막 목표는 평생 지속하여 습관의 힘과 더불어, 스승의 가르침과 영감에 절연 되지 않으며, 알찬 일상을 영위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마침내 오늘 100일 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난히 수행하였다. 시간을 철저히 지켜 한 번도 늦지 않았다. 약속한 새벽 3시간을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반은 카페탐험의 창조놀이에 할애했고, 반은 쓰다가 만 자서전쓰기를 이어갔다. 몰아서 쓰는 3시간은 쉽지 않았다. 2시간 정도가 딱 적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1시간 더 노력하고 싶어 강행했다. 조금 더 몰입하는 자세를 확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그날 일을 점검하고 꼼꼼히 살피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좋다.
새벽 글쓰기를 통해 공상과 걱정에만 머물던 일들을 현실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하루를 개편하여 원하는 대로 지배하지 못하면, 꿈꾸는 일상과 노년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기꺼이 인내할 수 있었고,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떳떳함으로 당당할 수 있어 기쁘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중요한 이유를 心身에 새겼다. 또한 나는 앞으로 무엇이건 의욕하는 바대로 성실히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란 확신과 자신감을 회복했다. 한다면 하는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이 유쾌하다. 내가 몸소 체험한 바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신난다. 동참하여 일생을 함께할 글쓰기라는 작업을 실행하게 되어 다행이요, 이로써 인생의 새 역사를 맞이하고 그 길을 걷게 되어 벅차다. 아울러 우주의 좋은 빛이 깃들여져 나를 격려하고 온전히 마칠 수 있도록 성원하였음에 감사한다. 탈리다 쿰!! 명징함과 함께!!!
6.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에게 줄 보상(1~3가지)
1) 뺀 어금니, 최고급 임플란트 시술로 구강 및 안면 기형화 차단, 오래도록 맛 나는 것 먹으며 행복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노년 생활 준비에 아낌없는 총력을 기울이다.
2) 지난해 사고로 변형된 입술 성형 시술하기도 고려중이나 형편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3) 이참에 처진 눈꺼풀을 위한 쌍꺼풀 시술도 고려해볼까? ㅎㅎ ^-^*

비오는 월요일 날에 3호선 경복궁역 주변의 통의동, 통인동, 옥인동, 효자동, 사직동 등 일대 낭만적 카페 산책.
(1) 스프링***(어쩌구 저쩌구) 주택 개조형 카페에 앉아 창밖의 풍경 흠씬 바라보며 이야기. 커피 리필, 요거트.
지역 특성상 넓지 않은 대지에 옹기종기 단독들이 모여 있는 곳. 토요일에 이어 2번째 비오는 흐린 날 방문하며, 가로수길에 비할 바 아닌 이곳만의 정취에 흠뻑 빠져봄. 주택 전체를 카페로 변형하여 3층은 작업실로 활용, 아래층 전체와 2층 방 2개를 각각 연결해서 사용함. 출입문은 작으나 안으로 들어가면 남향으로 창이 시원하게 뚫림. 젊은 여주인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케익도 구워 그윽한 향기가 온 카페 공간을 맴돌아 아주 좋았음.(실제는 배고팠음. ㅎㅎ) 오픈한지 2년 반 정도 되었고, 주말에 손님이 많아 수입이 괜찮다고함. 아웃테리어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하고 한적한 풍경이 펼쳐지며 평온함을 주는, 미로 같은 카페.
(2) 배화여대 정문 앞 / 커피 한잔
40대 잘 생긴 쥔장이 맛있는 핸드 드립 커피를 제공. 온갖 잡동사니를 다 주워다가 손재주 좋은 솜씨로 카페를 장식하였음. 하수들이나 촌스럽게 꾸미지 고수는 돈 안들이고 이렇게 꾸밀 수 있는 것이라고 호언장담함. 주술적인 분위기가 나고 쥔장의 마인드나 인생 이야기가 특별하여, 일행 셋 모두는 줄창 넋이 나간 채로 머물음. 커피 맛(사람됨의 가치와 수준과 동일한 맛이라나?)이 좋아 다시 찾게 될 것 같음. 테이블 2개, 작은 하꼬방같은 문방구 자리였음. 20분간 2개의 가게를 획 돌아 보고 문방구 자리였던 이곳을 8개월 전에 계약했다고 함. 이야기가 무르익어가 인도의 짜이차를 무료제공해 주어 얻어마셨는데, 기똥참.^^ 일행 모두들 할 일이 있어 더 있지 못하고 게서 서너시간 머문 후 아쉽게 나옴. 일행과 작별 후 영풍문고에 가서 카페에 관한 책 2권 구입하여 귀가. <도쿄, 그 카페 좋더라>와 < 커피하우스창업하기>
빨리 읽고 리뷰해야 할텐데... . 낮에 졸려 죽을뻔 했음. 커피 제법 마셨지만 피곤해서 잠이 잘 올 것 같음. ^-^*

게다가 글도 그렇다. 종일 붙들고는 앉아 있었는데,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아 낑낑대고 있다. 마음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아 저녁까지 붙잡고 있다가 하도 들러 붙어 앉아 있으니 머리가 띵하여 잠시 누운 것이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 것도 마다하고 머리를 쥐어싸며 누워 잠깐 쉬고자 했을 뿐인데... . 문득 깨어보니 깜깜하다. 새벽인줄 알고 어찌된 노릇인가를 경황없어 하며 일단 내방의 컴을 부팅시키고는 후다닥 화장실을 다녀와 살펴보니 다행이 아직 저녁이다. 남들은 행동도 계획대로 잘하고 글도 척척 잘 올리곤 하는데, 도대체 나는 무얼 하느라 만날 시간만 대거 잡아먹고 앉았는지 모르겠다. 어제 애써 사온 책은 한 자도 읽지 않았다. 일부러 인터넷 구입비용까지 투자하며 서둘러 구입한 것인데 말짱 도루묵 아닌가.
집착에 놀아나지 않는 냉철하고 계획성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는 쉴 때에는 누울 것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습관을 들여야 겠다. 빨리 자고 일어나자. 언능! 그리고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이여, 잘 주무시라. 내가 영원히 그대들을 품을 것이니. 願이여, 내가 나를 믿으라. 나는 곧 나를 지배하는 전지전능하며 성스러운 대단한 역사요, 神이다. 내일 새벽 분명히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절체절명의 신! 써니다. 탈리다 쿰!!! ^-^*


오늘 오후가 되어서야 목요일 진행 프로그램을 위해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저녁에 머리가 맑지 않아 커피를 두 잔 마신 것 때문에 제 시간에 잠에 들기는 그른 것 같다.
월요일 외출 이후 이틀 연속 틀어박혀 지낸 셈이다. 그래도 무엇하나 의도 대로 진행된 사항은 없다. 수요일에 변경의 까탐에 올린 글 2편을 계속 손질하는데에 거의 시간을 다 쏟아부었다. 간간이 틀린 활자나 고치러 들어갔는데, 자꾸만 내용을 덧붙이게 되거나 글이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쓰게 되곤 하여 종일 매달려 시간을 허비한다.
집착 성향이 강해 그런 것인지 서둘러 올린 탓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자꾸만 글의 허점이 늘어나 보이고, 마음에 안들어서 오래 붙들고 있게 되고, 그러다보니 골치가 아파 머리가 띵하고 육체가 피로하다. 게다가 새벽에 어머니께서 뒤척이시는 바람에 예정보다 일찍 깨어 그런지 종일 몸이 뻑적지근하고 매우 피곤했다. 오전에 두어 시간을 보충했는데도 머리가 맑지 않고 온몸이 계속 찌뿌드 한 것이 기력이 없다.
어제 동창에게 추천하는 직장에 가지 않겠노라고 최종 전갈을 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기운이 쪽 빠지는 것 같더니, 회복이 되질 않고 머리며 몸이 피로하기 짝이 없다. 은근이 또 걱정이 되는 심사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직 일상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함과 심리적 안정을 취하지 못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일찍 일어나면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으로 생산적일 줄 알았는데, 늘어난 시간을 통해 슬기롭고 산뜻하게 회전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더 집착하여 매달리고만 있는 역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습관에는 의식의 흐름에 환기를 불어넣음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글쓰기는 육체를 잘 다스리는 것이 작가적 능력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운동과 한가로움의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다. ^-^*

보통 글쓰기를 하면 줄창 앉아 있게 되곤 한다. 요즘에는 써놓은 글이 마음에 안들어 그것을 손대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는 판국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겁없이 달려들 때가 좋았는지, 내 글이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심하게 병을 앓는다. 어쨌거나 시간을 낸 까닭일 것이기도 하다. 여유로움을 통해 살펴보는 통찰이랄까.^^ 하여튼 무지하게 왕짜증이 일기도 하고 새로 차근히 처음부터 다시 다져나가고픈 충동이 다시금 인다. 연구원 생활 중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고, 후에는 들지 않았다. 필요하게 생각은 되었지만 형편상 그 즉시 해결하지 못하고 넘기다보니 절실함에서 멀어져, 정작 시간이 생겨도 절박함이 애틋하지 않아 의욕을 낼 수 없더라. 요즘 다시 생각 같아서는 어느 시골에 처박혀, 읽고 쓰는 일만 하고 싶다. 물론 밥도 누군가 해주면서. 일체의 다른 것에 분산하지 않고 하나에만 몰두해 보고 싶다는 뜻이다. 읽고 쓰고 휴식 하는 것만 해볼 수 있을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
부모님을 모시고 타국에서 잠시 다니러 나온 조카를 만나고 오느라 저녁 늦은 외출을 하고 지금에야 돌아와 앉는다. 밤을 새워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을지 고민이 된다. 기력이 없는 듯해서 커피를 마시고 오기도 했고 계획한 일정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설임이 인다. 요즘 종일 눈동자 흰자위는 벌겋고 몸은 흐느적 거리며 머리는 띵하다.
외출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오니 기분과 컨디션은 더 나은 것 같다. 낮에도 비몽사몽 몽롱한 몸과 마음이 늘어지는 신경줄에 나른하게 감겨 있는 듯 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짜 넣는 일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쉽지 않음을 절감하게 된다.
구순을 향해 가는 노부부는 손자를 안으며, "언제 또 볼 지... "하시며 가지고 있는 쌈지돈을 풀어 탈탈 털어 내어주시며 경비에 보태라 하신다.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애틋함이 꼬깃꼬깃 뭉쳐 있는 게다. 무엇이 그리 걸리시는지 말이다. 서로를 향해 염원하고 바라지만 핀트가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염려가 되지 않는다. 말로나 주장에서 깨달음이 전달되기 보다, 진정함으로 나누는 절연되지 않는 영감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 씻고 책을 보면 졸리려나? 그러면 또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려나? 어쨌든 GO Go! 탈리다 쿰!! 달리자 꿈!!! ^-^*

현재 시각 05:00, 글 고치기가 잘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변경에 올린 글을 읽으며 잠을 깸. 다시 시작하러 들어감.
07:22까지 오늘 아침은 써놓은 글 수정 및 보완이 원활하지 않아 마음을 잡아보기 위해 박남준 시인의 수필집 <박남준의 산방일기>를 읽음.
방을 옮겨 쉬다가 07:30~09:30분까지 잠에 듦. 까탐 pm 효정이 꿈벗 소풍가자고 전화를 하며 계속 꼬심. 비몽사몽 간에 전화를 받고 일어나 앉음.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음. [새벽에 일어나 글쓰기]는 밤에 일찍 충분히 잘 자고 일어나는 것이 가장 주효함을 깨달음.
또 하나 컴퓨터 상에서 워드작업으로만 글을 고치려 하기보다 인쇄를 하여 병행하는 것이 눈의 피로를 적게하고, 목과 어깨 및 팔과 손목 등 상체에 무리를 주지 않으며, 척추 이상을 막고 하체가 비대해 지는 것과 무엇보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신경 예민(과민)증을 예방할 것 같음.
나는 주로 워드작업으로 글쓰기를 하는데, 장시간 전자파에 노출되는 것이 건강에 해로울 것 같음. 요즘 특히나 소리에 민감해져 독서와 글쓰기시 시끄러운 것을 특히 못 참겠으며 눈의 피로가 심하고 골이 띵함. 히스테리와 우울증인가? ㅎ
주말(5/30)까지 리뷰를 꼭 해야 함.^^ ^-^*

벗들과 모닥불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밤을 꼴딱 세웠다. 새벽에 실내로 들어가 부족장에게 문자를 보내고 불을 켤 수 없어 화장실에서 팩을 붙이고서, 가져간 <커피하우스 창업하기>를 읽었다. 나의 부스럭거림에 정화가 깨어 밝은 곳으로 가야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추워서 이불을 둘둘 말고 읽었다. 아우 형산이 부산에서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 일정을 빼먹을가봐 걱정이 되었나보다. ^^ 여섯시가 되자 방에 불을 켜지 않아도 먼동이 터 환하다. 정화가 다시 들어와 쇼파에 앉아 정신없이 그림을 그린다. 아침이 되어 으슬으슬 졸려서 누웠다가 깜박 잠이들었다. 우잇! 아무도 없당... . 식사를 마치고 은현이 들어온다. 너무나 곤히 자길 레 깨우지 못했단다. 덕분에 아침 식사를 맨 꼬래비로 하였다. ㅋ 6기 연구원 청강 윤인회님이 식당까지 안내하며 곁에 있어주다.^^
꿈벗 봄소풍이 오븟하고 진지하게 마쳐졌다. 사부님께서는 몸살기가 있으시어 먼저 올라가셨다. 우리는 점심으로 버섯찌게를 맞나게 먹고 헤어졌다. 일행의 일부는 백오산방까지 들러, 산방의 변화와 새로 짓고 있는 사랑채 구경 및 산책과 해설이 있는 숲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아무도안과 정화와 바람처럼과 함께 했다. 벗들과 만나 휴식과 충전을 하고 돌아왔으니, 낼부터는 정신차리고 수련에 성실히 임할 일이다. 오늘까지 올리려던 새 책의 리뷰가 마쳐지지 않아 짧게 낯간지러운 다른 책의 리뷰로 대체하고 시침을 뚝 떼버렸다. 낼부터 빨리 마저 읽고 제대로 올려야겠다. 푹 자고 일어나 다시 총명한 생기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자. 아자자, 사랑스러운 써니! ㅋ ^-^*

물론 기어이 시간은 엄수할 것이다. 과연 얼마나 내용적으로 알차게 수행해 나가느냐가 관건인데 좀처럼 마음 같지 않다. 물론 사람은 다 다르니 다른 이들에게 일히일비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어느 면은 스스로에게 관대해 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매양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성에 차지 않음이다. 참여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긍정과 의욕과 유쾌* 상쾌* 통쾌한 내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성적인 필요보다 감정에 치우치고 휘둘리는 버릇을 각성해야겠다.
읽기와 쓰기와 다른 이들의 칼럼을 조금 읽었을 뿐인데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생산적인 운영을 하고 있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몸이 가뿐하지 않다. 여전히 6월을 생각처럼 활기차게 맞지 못한다. 이건 아니다. 확실히 하자.

100일 참여 후, 딴엔 취직을 하건 자영업자로 나서건 간에 규칙적으로 생활해 보고자 하는 것인데, 이렇게 했다가는 자영업을 하면 말아먹기 쉽상이요, 업무 중 이라면 해롱대기 딱 알맞지 않겠는가.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일어나서 새벽 시간을 지키고 극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의 균형감이 있어야 하는 것. 그런데 여전히 헤매고 있거나 총체적인 틀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 노릇일 랑은 그만하자! 때려치든가, 제대로 하던가 가부간에 확실히 결정을 내리고 생산적이고 진취적으로 임하자. 탈리다 쿰!!! ^-^*



문제는 무엇도 생산적이지 않은 느낌이라는 데 있다.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한달에 한 열흘 간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데, 지금이 그 진입로에 있어 더욱 그러한가 보다. 언제부턴가 내가 내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생체리듬에 이끌리며 임시방편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체력이 무너지고 있어 균형감 없이 생활하게 되는 것 같다.
새벽 일어나기를 17일 가량 했는데, 비축된 에너지를 빌어 써서 그러한지 예행 연습기간 한 주간이 오히려 더 낮고, 본 게임부터는 활동이 별로다. 일찍 일어난 만큼 무력감과 함께 몸이 처지거나 하여 더 자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비 생산적인 느낌. 그저 잘 자고 잘 먹고 많이 놀아야 할까보다. 괜스레 신경이 예민해 지고 심통이 난다. ^^

오늘은 삼청동과 북촌, 가회동, 팔판동 등을 대강 훌텄다. 날씨가 몹시 무더운 날에 언덕진 골목길이 많아 몇 시간을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프다. 얕은 샌들인데도 발가락이 몹시 아프고 얼럴하다. 이곳 일대가 이렇게 많이 변화된 줄 몰랐다. 도로주변은 말할 것도 없도 비탈지거나 꼭대기라할 가정집들까지도 하나, 둘 음식점과 카페에 참여하며 부업 겸 짭짤한 수입을 구상하는 모습이 현저하다. 구석구석 요모조모 다양한 모습들이 여간 재미나기도 하다. 특히나 이곳 일대는 일본인과 외국 광객들의 관광 명소로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는 점이 가장 눈에 띠는 현상이다.
바람을 쏘이니 골이 띵하던 것이 오히려 기분 전환이 되어 나은 것 같다. 저녁에 신촌에 들렀다가 들어오니 제법 피곤하다. 오늘은 이만 얼른 쉬어야겠다. ^-^*

새벽에 깨어 까탐 리뷰를 4시간 동안 하여 본문 삽입만을 마저 붙여놓은 후 쉼에 들어갔는데, 몸이 뻑적지근하여 누운 것이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이럴 때는 자면서도 내 모습에 짜증이난다. 그래도 실컷 푹 자고 일어났다.
오후부터 종일 내내 앉아서 글을 써댔는데 정신이 나갔는지 횡설수설이다. 논리적인 글쓰기가 서툴다. 평소의 내 생각을 쓰는 것인데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침착하지 못한 것과 서두름 때문에 문맥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혼자의 생각에 잠겨 있는 버릇 때문에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곤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의 내 생활패턴에 문제가 있다. 개선이 요구되는데 내 고집에 내가 항시 말려들고는 한다. 버려야 할 습관이다. 글쓰기 역시 태도와 신중한 자세에 기인하는 몰입의 학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종일 헛수고를 하였더라도 글을 버려야겠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는가. 신경이 날카로와 지는 이즈음이다. 이 기막힌 현상에도 역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성하자.

써니님
저는 써니님을 처음 보았을 때 밝고 호기심이 많은 분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걸기를 잘하고 또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그래서 나중에 까페탐험이라는 컨셉을 들고 나왔을 때 써니님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분이구나...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는 구나...
그간의 내공과 스스로의 밝음으로 지금의 치열함을 잘 극복해나가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써니님의 까페는 어떤 색깔입니까?
그리고 만약 아주 단순하게 가장 핵심적인 영감에 기초해 하나의 모양으로 표현하면 어떤 모양입니까?
제가 너무 엉뚱한 질문을 했지요? ^^

핵심영감: 소녀적 다락방의 꿈: 사람들 틈에 둘러쌓여 내 방식대로 사유하고 경험하여 살아가는 거죠. ㅎㅎㅎ
나만의 공간이 획득되면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며 놓고, 불러모으고 싶은 지인들을 데려다가 밥도 해먹고 빵도 만들어 먹이며 차도 나누는 공간이죠. 만능의 다기능을 목적하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행하며 사는 것이죠. 연극인과 어울리면 연극무대로 활용할 것이고, 요리사와 벗하면 요리를 실행할 것이죠. 대체적으로는 도서관이고 자유롭고 편안하며 다양하게 가능한 모든 것이 행해질 수 있는 공간인 거죠.
영업적 마인드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직시와 당면 문제의 한계를 발견하고 난감해 하고 있기도 하고, 내 안의 사고가 해결되고 응축 될 때까지 음미하다가 순리대로 해결 할 생각이죠. 당장의 시발이나 목적은 분명 아니고, 내 주변 상황과 가장 밀접한 관계성을 띠며, 원초적인 부분의 투명한 해결과 마무리 후에 결정될 사안이라 그저 그렇게 서두르지 않은 채 진행되어 가는 대로 공존할 뿐이지요.
카페를 통해 내 안의 명징함을 구체적으로 더듬어 찾게 된 것이고, 풀어야 할 것의 과제와 매듭 지을 부분의 명확성과 완결성이 남아 있는 거죠. 내 의지대로만 사는 것도 마냥 신나는 일만은 아니더라고요. 아직은 기다려야 하죠. 일단의 마무리는 8월 말(그리스 여행 직후)이 될 예정이고, 그 이후는 그 때의 상황에 맞출 것이지요.ㅎㅎㅎ ^^

오후 늦게 외출하여 저녁 먹고 영화 보고 오느라 이제 도착. 새벽을 위해 자야할지 걍 새워야 할지 고민.
J가 반쪽 짜리 월급을 탔다고 저녁을 냈다. 조계사 앞 <아지오>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과 맥주를 맛나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J는 꿈을 위해 새롭게 취업하여 일하기를 애써 병행한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낮시간 동안 꿈을 위해 달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단다. 나에게는 왜 그런 열정이 부족할까? 업보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영화 시에서의 배우 윤정희 씨에 대하여
J와 함께 영화 詩(이창동 감독, 각본)를 보았다. 배우 윤정희는 단아하고 우아하며 클래식한 연기자다. 이번 2010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에 거론되다 감독상을 수상하고서 남편 백건우 품에 안겨 돌아오는 그녀의 모습은 순수 예술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가 인터넷 상에 게시되었을 때는, 어느새 여배우 윤정희가 저토록 늙었나 하며 깜짝 놀랐다. 영화의 장면이려니 하며 다시 확인해도 현실의 그녀 모습인데 너무나 여염집 아낙 같은 모습에 자지러질 번했다. 칸 영화제의 오프닝과 시상식에 나섰을 때에도 조금 더 세련되게 치장하지 않고서... . 하는 아쉬움을 가졌더랬다. 너무도 수수한 차림을 하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성형으로 보톡스 따위를 주입하지도 않았고, 주름살 제거술도 받지 않은 듯 보이며, 입체 화장이며 값 비싼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게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머리도 손수 손질하였다고 기사는 전했다. 기자는 우아한 한복차림이라고 했지만 여의도에서 윤정희 씨 개인이 맞추었다는 것을 기사로 남겼을 때, 나는 혹시 덜 세련돼 보여 윤정희 씨 당사자에게 질문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을 가졌다.
세계적인 배우들이 모이고 국제적인 관심사이기도 한데, 나라를 대표하고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에 좀 더 삐까번쩍하고 근사하게 한껏 장식하고 나가지 않고서 하는 아쉬움을 가지며, 너무 평범해 보인다하는 안타까움을 가졌더랬다. 세계 어느 자리 어떤 국제적인 자리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배우가 단연 돋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최소한 국제적 행사 어디에 내놔도 절대 기죽거나 초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을 앞서 한 것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다소곳해 보이는 차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얼마든지 건재 하는 왕년의 스타로서 당대 최고의 히로인이요, 윤정희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음껏 화려하게 꾸밀 만 하다고 생각하며, 어째 저런 모습일까 아쉬움 한편 의아하기까지 했다. 같이 출전한 다른 작품의 동료 배우들의 겉치레에 비해 언뜻 너무 덜 차려입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공연히 세월의 덧없음을 상기하며, 서글픔이 일면서 생활이 곤궁한 것인가 하고 염려가 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내 생각이 매우 상업성에 치우치며 일상의 난무하는 인공의 가공적인 모습에 매우 깊숙이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배우 윤정희는 현실의 윤정희 그대로이며, 무공해의 생태적인 자연인이었다. 그녀는 배우로서의 각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윤정희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와 윤정희 자신을 극중 인물과 차별을 두지 않고, 내면 연기 그대로 또 외면의 모습 그대로를 동일선상에 위치하듯, 작품 자체가 그녀요, 영화의 내용이 곧 윤정희 자신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배우로서 순간 남의 인생을 잠깐씩 살다 나오는 작품 속 소모품의 인생이거나 배우라는 직업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윤정희가 아니라, 그녀의 일상에 잘 맞아 떨어지는 그 작품을 하기에 너무 적합한 여인 윤정희요, 그가 바로 인간 윤정희로 생각되는 것이다. 오직 그녀만이 그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우 윤정희는 우리를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연기와 매너를 아낌없이 펼쳤다. 윤정희라는 배우로서의 등장이 아니라, 바로 축제장에 나타나 함께 어울릴 만한 현실의 윤정희 그대로인 것이다. 마치 영화 속 소년의 외할머니가 우리 앞에 살아 돌아온 것과 같이 말이다. 그녀의 이러한 등장이 매우 놀라웠다. 하지만 예술인 윤정희는 당당했다. 언제든 연기로 승부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태도로 자유롭게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영혼의 연기자요 개성 강한 예술가의 풍모를 지닌 이지적인 배우였던 것이다.
이는 아마도 순수예술을 하는 남편 백건우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을 것 같고, 서로의 예술 세계를 깊이 인정하는 그들 부부만의 삶의 태도 그대로가 작품 및 일상의 전반에까지 차고 넘치는 모습으로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대단한 자존심이요 자긍심을 지닌 예술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실생활에서는 물론 커다란 행사에서조차 영화배우로서의 윤정희 인생이 아니라, 자연인 윤정희로서 살아가는 모습임과 동시에, 항시 연기자이며 예술인 윤정희로서의 매운 태도를 나태 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너무도 아름답고 신선한 자극이며 내・외면이 일치하는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나도 그러한 자존심을 가지고 늙어 가리라 그녀처럼. 하고 본을 받게 하는 참 예술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아니 세계적인 배우 윤정희의 대단한 올곧음의 예술철학이 아니겠는가. 어려서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생의 철학과 삶의 태도에 존경스러움을 금치 못하겠다. 부부가 진실로 아름다운 예술인의 초상을 보여 주는 모습이 감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화 시(詩)
작품은 환갑을 훌쩍 넘긴 초로의 여인 윤정희가 이혼한 딸의 아들인 외손자를 대신 키우며 생활하는 모습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인 외할머니 윤정희가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중학교 3학년 외손자의 뒷바라지를 위해 간병인 겸 파출부 노릇을 해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삶의 애환을 그린다. 철없는 10대 사춘기 소년에 불과한 외손자는 외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데, 주로 폭력물이나 오락 등에만 빠지며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모습이다. 그저 그들 또래가 겪을 만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무런 계획이나 꿈도 없이 체념한 듯 일상을 영위하며, 낙이 없는 모습으로 마지못해 학교에 다니는 형상이다. 그러다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외손자는, 어느 날부터 6명의 패거리 친구들과 무리지어 다니며, 6개월 동안이나 교내 같은 학년의 여학생을 윤간을 하였고, 급기야 그 여학생은 더 이상 그 상황을 견디다 못해 꽃다운 나이에 청춘을 접어버리는 선택을 한다. 한가롭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숲이 우거진 강물에 엎어진 채로 강물에 둥둥 떠가는 여학생의 모습을 영화는 첫 장면으로 클로즈업 해 보여준다.
한편 삶의 팍팍함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초로의 여인 윤정희는 여성성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채 시처럼 소녀처럼, 마치 나비가 춤추고 꽃이 노래하듯 하늘하늘 감수성 많고 꿈 많은 소녀 같은 모습으로 곱게 늙어가기를 희망하는 멋쟁이 할머니다. 소녀 같은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 소년의 외할머니는 자꾸만 건망증이 심해지고 팔이 저려와 어느 날 병원을 찾는다. 그녀는 의사에게 자꾸만 팔에 힘이 빠지고 전기가 흐르듯 쩌릿쩌릿하다고 증세를 말하는데,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알츠하이머, 즉 치매라고 진단을 내린다. 그녀는 믿을 수 없어하지만 이내 그녀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의 증세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더 늦기 전에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아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으며 문화센터를 찾아가 시를 쓰고 싶다고 용기를 내어본다. 전부터 생각해 온 것들이지만, 살면서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일을 이제는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갈망하는 것이다. 뒤 늦게 시 쓰기를 수강하며 갖은 애를 써보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외손자와 연루되어 여학생이 자살한 것을 알게 된 외할머니는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외손자를 불러 야단을 치거나 넋두리에 빠지기보다 그러한 상황에 처한 외손자를 안타까워한다. 질풍노도와 같은 정체성 혼란의 시기인 청소년기, 너무나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불운한 가정환경에 처한 외손자가 안쓰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외할머니 윤정희는 소년이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기를 바랄 뿐이다. 소년의 어머니인 윤정희의 딸 역시도 저 하나 살아가기에도 빠듯한지, 통 소식조차 없다. 제 아들을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방치한 채, 어디에서 사는지 일체 드나들지도 않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어미에게 제 새끼를 내팽개치듯 맡겨놓았을 뿐이다. 그래도 윤정희는 딸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에서나마 최선을 다해 밝고 아름답게 살아가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가며 애쓰는 낙관적 인물이다. 그녀는 시를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 감수성 많은 초로의 여인으로 항상 여성스럽고 맵시 난 차림을 하고 다닌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며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고자 할 뿐인 소시민적 일상을 영위하는 한 여인이요, 지고지순한 사랑과 헌신으로 살아가는 인내와 순응 속 밝음의 화신이다.
자신의 슬하에서 어처구니없는 행동밖에는 하지 못하는 외손자를 그녀는 시를 쓰는 고행처럼 받아들이고, 시를 쓰고자 하는 희망과도 같이 외손자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버리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안간힘으로 감싸고 돌본다. 일상이라고는 맨 버겁고 힘든 일과들과, 보람도 일말의 기대와 희망조차도 보이지 않는 따분하고 헛헛한 현실의 상황뿐임에도 호락호락 발목 잡힌 채로 미련하게 살지 않는다. 현실의 생활에서나마 깜냥 것 최선을 다해 양심의 결대로 자유로이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아름답고 선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자 할 뿐인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의 맑고 싱그러운 영혼처럼 시를 동경하고 사모하며, 일상을 시와 함께 영위해 나가고자 바람하면서.
이는 곧 그녀 자신의 고유한 삶의 정체성과 어우러져 최대한 충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허물어져가는 정신세계와 일상의 헛헛함과 아름다움을 시로 읊어내어 보고자 한다. 생기 있는 삶을 추구하며 어려운 현실에 휘둘리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지만, 이미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로 마음을 달래고, 시로 그녀의 시름을 위로 받으며, 시로 희망과 기대를 품으면서, 시와 함께 각박하고 고달픈 현실을 비껴나 일상을 관조하며 살아가기를 갈망한다. 아름다운 사물들과 속삭일 수 있는 시인의 안목과 시를 낭송하는 자세로 시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장기간 투병생활에 지쳐하던 간병 당사자 갑부 노인은 너무나 참한 윤정희의 간호하는 모습에 반해 비아그라를 구해다가 먹고는 제발 단 한번만 자신과 성애를 나누어 달라고 애원처럼 매달린다. 처음에 그녀는 모욕감을 느끼며 그 일을 그만 두었지만, 소녀 아녜스의 죽음 앞에 자신의 앙탈이 덧없음을 느낀다. 무엇으로도 그 소녀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고 죽음을 위로할 수 없음에 가슴 아파하면서 삶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그녀는 철없는 외손자 대신 속죄양이 되어 죄를 빌려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가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만 잠시 나누고 올 뿐이다.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 가는 밭두렁에 이르러 살구나무에서 살구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다 누군가의 발에 짓밟히고 짓이겨 진 것들을 들여다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구로 다음 생을 이어가는 혼신의 열정과 자연이 순응성을 깨닫게 된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 보다 자신의 일생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농익어 나무에서 떨어져 흐드러진 살구를 들여다보며 그때가 가장 과실의 무르익은 절정의 최고 맛을 낸다는 것과, 그렇게 생물(생명)로서의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고 난 연후에야 또 다른 살구로 다시 나무에 열리게 되는 자연의 순환과 이치와 섭리를 돌아보게 된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갈망과 동질성을 깨달으며, 이윽고 뇌졸중 노인의 간절한 성애를 받아들인다.
그때까지 막막하기만 할 뿐, 시를 쓸 수 없었던 그녀는 언어의 조합인 글로서 시를 풀어내는 대신 사람에게 직접 시성과 발심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시어가 지친 영혼들에게 생기를 돋우듯, 오래 지쳐있는 한 생명에게 단비와도 같은 한순간의 쾌락과 기쁨을 선사하며, 생명의 순환과 자생력을 회복시켜 보고자 한다.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온몸으로 인간에게 인간이 생명의 시를 쓰는 것이다. 그녀의 행위 자체가 한 자 한 자 정성껏 꼭꼭 눌러쓰는 시어들과 같이 생명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시가 아니고 무엇이랴. 인간이 인간에게 오롯한 간절함을 연민하며, 시들어 곧 죽어갈 생명에게 살아있는 동안의 일순간만이라도 활력이 솟게 하고, 그답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평화를 선사하는, 자비와 헌신의 참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볼품없는 노인으로서 비록 노쇠하여 병들어 누추한 생명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꼭 있어주어야 할 일상의 고달픈 현실 가운데의 환기와 반전의 어느 날의 우연처럼, 사는 날까지 자연의 섭리와 순환을 소중히 돕는 힘, 한줄기의 빛과도 같은 영혼의 생명력과 욕망을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노인은 병환 중에도 몰라보게 생을 의욕하며 활기를 찾아간다. 생명의 순환과 역동성을 일컬음이요, 자연현상의 이치를 달관으로 순행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시 쓰기는 곧 사람을 이해하고 돕는 것이며 생명력을 발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영화는 간접 조명한다.
그러나 한편 그녀의 현실로는 도저히 합의금 마련을 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적으로 한 많은 생을 마친 소녀에 대하여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기며, 철없는 외손자를 대신해 수없이 넋을 위로한다. 피지도 못하고 죽은 영혼을 위해 온 마음과 정성을 담아 진심으로 가슴 아파 하는 것이다. 소년의 외할머니는 소녀 아녜스의 사진을 위령제 날에 성당에서 몰래 가져다 식탁에 놓아두고서 외손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도 덧없는 일이요, 그녀가 몸을 던졌던 다리 밑 강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그녀의 넋을 달래도 보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던가.
사건 이후부터 여기저기 대책회의에 끌려 다니며 다른 가해자의 학부모들로부터 합의금에 대해 지속적으로 몹시 시달리는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마지막 희망인 병든 갑부 노인에게 찾아가 어차피 값을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이유는 묻지 말고 돈을 달라고 때를 쓰듯 요청한다. 마치 화대를 달라고 하듯이 태연자약하고 이제까지 전혀 볼 수 없던 어이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외손자를 구해야 하고 소녀의 죽음을 위로할 최소한의 묘책은 그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최소의 도리와 성의를 전달하기 위해 비용을 마련코자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내어 처연히 금고 털이를 하듯 마음에도 없는 짓거리를 해대는 것이다. 어린 외손자의 불우한 가정환경에 기인한 빗나간 태도와 꽃 같은 소녀의 덧없는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어미를 대신하고 기성세대들의 잘못을 대신하여, 외할머니로서 할 수 있는 무엇이건 다 해낼 수 있다는 각오로 단단히 작심한 듯 서슴없는 행동이다. 합의금 마련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하여 초로의 노인인 그녀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 유일한 방법은 오직 그길 밖에는 달리 전혀 대책이 없는 것이다. 하여 철면피처럼 병든 노인을 찾아가 때를 쓰듯 삶을 체념한 듯 능청스럽게 달라고 졸라, 온몸을 던져 마련한 몸값으로 몸값을, 아니 죽음의 값을 전달한다.
하지만 꽃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그녀의 감수성 깊고 올곧은 심성이 결코 바라는 삶은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 맑고 순결하기만 한 그녀의 영혼은 그녀 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버거웠고,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한 채, 깊은 상심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것으로서 외손자의 죄를 대신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책임 추궁을 필요로 하고,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료시킨다.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이 정신력마저 희미해져가는 소년의 외할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최대한의 위자료까지 성의를 표하고도,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무기력하게 사건의 책임과 마무리를 위해 소년원으로 향하는 외손자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수무책으로 보낼 수밖에 없음에 무기력할 뿐이다. 그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현실에 외할머니는 절망하고 힘겨워한다. 하여 도저히 숨을 가눌 길 없는 가슴앓이를 하며 애통한 선택을 하고야 만다.
때마침 시 수업 종강 날에 외할머니는 소녀의 죽음을 애도 하고 대신 속죄하며 소녀의 심정이 되어, 그리고 어느 덧 소녀와 그녀 자신의 영혼이 혼연일체의 넋이 되어, 소녀와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애절한 삶의 허상들을 던져버리는 영원의 시로서 마음의 골을 유감없이 표현해 낸다. 종강 날에 시 한편을 과제로 제출키로 하였지만 아무도 과제를 완성한 사람은 없다. 초로의 노인 윤정희만이 최선을 다해 시 한편을 완성하여 스승의 탁자 위에 감사의 꽃다발과 함께 전해 두었던 것이다. 끝까지 스승을 신뢰하고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건실한 소시민의 한사람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자신의 신념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이 풍진 세상을 지켜갈 수만 있었다면 결코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그리하여 시는 강사에 의해 대신 덧없이 낭송된다. 소년의 외할머니 윤정희가 소녀를 그리는 시는 힘들고 고단한 세상과의 작별을 사전에 암시한다. 소녀의 마음과 외할머니의 마음은 세월의 강물처럼 시로 굽이굽이 흐르며 생과 사를 초월한 영혼의 메아리로 닿으며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외할머니의 생의 마지막 시와 일찌감치 생을 마치고만 소녀의 살아생전의 마음의 언어들이 시로 주거니 받거니 애절하게 굽이치듯 흐르며 이어진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뒤늦게 귀찮고 신경질 적이며 따분한 모습으로 집에 찾아 와 보지만 아들은 이미 소년원으로, 친정어머니는 자살을 선택한 뒤 인 것이다.
영화 시는 나의 감상처럼 자세하게 묘사를 전개하기보다 내면 연기와 표정 연기로 함축하며 시처럼 간결하고 깔끔하게 전개된다. 따라서 소년의 외할머니가 직접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 따위를 삽입하거나 노출시키지는 않는다. 숨통이 끊어지기 전 거칠고 가쁜 숨소리의 분위기가 애끓는 죽음을 암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무엇보다 여배우 윤정희의 시 같은 무공해 연기력에 반했다. 그녀는 시종일관 시처럼 여운을 남기는 연기를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냈다. 칸 영화제의 오프닝과 시상식에 나타난 그녀는 어떤 연기라도 척척 해내는 배우 윤정희로서의 맵시보다, 마치 영화 속 외할머니가 시처럼 걸어 나오듯 수수하고 우아한 자태를 드리우며 등장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 윤정희임과 동시에 예술가의 한사람으로서의 윤정희 고유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시종일관 자신감과 여유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삶이 진지하고 성실했음이요, 자신 있게 표출할 수 있는 당당함이다. 아무에게나 볼 수 없는 배우 윤정희만의 모습이며 나아가 세기의 명배우요, 진정한 예술인으로서의 삶과 길을 걸어온 윤정희라는 자연인의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보고서야 배우 윤정희로서의 단순함이 아니라 세계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작은 몸집의 큰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이지적인 가치관과 신념이 이해되었다. 그녀가 그녀의 온 인생과 함께한 영화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고 애지중지 감사하는지를 알게 한다. 모처럼 대중과 가장 가까이 접하는 영화 속에서 진정한 예술인의 참모습을 대하니 영화와 함께 감동이 배가 되었다. 많은 연기자들이 이런 연기자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한낱 인기에 영합하거나 일시에 일확천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직업의 한 분야로서의 배우에서 나아가, 진정한 예술인의 삶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더없이 명예롭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한국영화인으로만 머물지 않고 세기의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누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배우, 더불어 국위선양까지도 떨치는 예술가 정신은 얼마나 숭고한 일이며 가히 크게 찬사할 만한 일인가. 그녀만의 고상하고 우아한 자연미와 순수한 예술 정신을 경험하는 영화를 보게 되어 더없는 감동이었다. 보기를 참 잘했다. ^-^*
잘까 말까 망설이다 글을 쓰다 보니 01:35분이 다가온다. 또 늦은 취침이다. 대체 이를 어쩌지?
이제라도 잠깐 자고 일어나야겠다. 잠이 안 오면 다시 일어나더라도. ㅠㅠ


어제 우연히 지난 글을 좀 읽었는데, 그때도 자네 댓글이 달렸더구만. 캄사!!! 흑흑흑. 오라바이 고마버~ 찔찔.
오늘은 아직 제대로 글쓰기를 하지 못했다. 물론 읽기 역시. 그보다는 방정리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확 다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미치겠다. 어쩌면 좋을까???
곰이 너무 늙어버렸어. 빠져야 할 털은 뽑히지 않은 채 깊숙이 도로 박혀버리는 양상이고, 보존해 두어야 할 털은 맥없이 저절로 스르륵 빠져나가니 해골 복잡. 그래도 뽑을 건 뽑고 심을 건 심어야겠지. 아자!!! ^-^*

그나 저나 오늘도 일찍 자기는 글렀다. 밤새 방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휴~

저녁에는 까탐 모임에 참석(사당역 10번 출구, 스타벅스 빌딩 6층 Six) 하였다.
사당동에 이런 카페가 생겼다니 반가운 일이었다. 건물은 층까지 인데 5층에 건물의 테라스가 있는 카페이다. 5,6층을 복층으로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고 5층에는 테라스가 따려 있어 이를 정원 카페로 꾸민 곳이다. 6층에는 음식과 빵을 굽는 조리실이 따로 딸려 있으며 배기 후드를 이용하기 위해 옥상과 연결된 통풍이 잘 되도록 꾸민 곳인 것 같아. 카페 중앙을 카운터겸 조리실로 설계하여 5,6,7(복층 구조로 일자형으로 굴뚝처럼 위로 올려 붙였으며 음식 냄새가 실내 공간에 머물지 않도록 함), 매장을 ㅁ자 형으로 설계하여 중앙을 간편한 음료 조리실 및 카운터로 활용하였다. 이왕이면 사방이 다 오픈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지만 공간이 허락치 않아 그랬는지 건물의 정면, 즉 햇빛이 바로 들어오는 부분을 막아놓아 고객을 바라볼 수 없게 한 점이 아쉽다. 내 생각에는 조리대가 훤희 비치더라도 4면을 모두 개방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정감이 들기는 하지만 고객이 등 뒤에 있는 상황으로 카운터에서 고객을 조시할 수 없다는 것이 약간 덜 좋아 보였다. 고객은 오히려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누군가 빤히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보다 벽이 있는 것이 아늑한 느낌일 수 있을 것 같다. 낮에는 해가 너무 드니 그 쪽의 테이블을 덜 선호할 것이고, 주로 해거름 이후 챠경을 즐기게 될 터인데 아베크 족들에게는 야경과 더불어 아늑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컨셉이었을까?
하기야 직원이 매장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챙기니까 4면이 완전 개방 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나라면 오픈 하였을 것 같다. 경영을 공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안정된 컨셉을 취합하게 될 것이고 이만한 규모의 카페를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카페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쥔장 일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일부러 아늑한 공간을 제공해 둔 것 같기도 하다. 안정된 매출을 올리려는 사전의 충분히 고려 사항으로서 경영 전략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당역 부근이라면 직장인들보다는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에 말이다. 이 지역은 사통팔달의 요지에 해당한다. 동서남북으로 큰 대로 변과 서울 시내 및 근교와 위성도시로 교통이 이어지는 핵심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과천과 수원, 용인, 반월, 안산 등과 방배동, 흑석동, 반포, 강남 터미널 그리고 봉천동.,시흥 안양, 개봉, 양천, 김포 등 및 서초, 잠실 등 남부순환도로를 축으로 하는 사탕팔달의 중심지역인 것이다. 그러니 상권으로 이만한 상권은 꾀나 드문 좋은 곳인데다가 경인 남부지역의 대학교 스쿨버시와 시외버스 등이 대거 순환되는 한편 전철 2호선과 4호선의 환승역으로서 무려 12개의 출구가 있는 곳이니까 말이다.
오늘 까탐 모임의 목적은 내가 만드는 카페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보고자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동안 읽은 책의 내용과 시중의 사업계획서 작성하는 요령의 자료 및 탐방 내용을 주로 참고 하였고, 세부적인 사항은 머리 속에 그려져 있는 생각을 끄집어 내어 약간의 살을 붙여가며 상상력을 동원하여 대략 채워 넣어 보았다. 사업계획서를 짜다보니 생가보다 자본이 많이 들었다. 구체적인 내용들이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고 현실성과 접점을 이루려니 피할 수 없는 부대낌이다. 버겁다 생각하며 상상이니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알뜰살뜰하게 또순이 기질을 발휘하며 작성하게 되는 것을 보고, 역시나 실전에 들어가려니 기분을 내기보다 현실성 있게 근접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머리 속에만 넣어두었던 것을 일목요연하게 대략 접근해 보니 실감이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장난이 아닌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접근해 보고 싶으니까 부담이 없지 않다. 이 작업에 들어서니 여태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진일보하게 되고, 언제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고 내가 직접할 때, 정말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는 구나 하는 뿌듯함이 일었다. 이래서 우리가 이 놀이를 하는게 아닐까 위안과 재미가 솔솔 붙는 날이다.
내일 새벽에는 지난 번 삼청동 일대 다녀온 곳의 정리와 오늘의 내용을 좀 더 보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척 할 일이 많고 가장 바쁜 한 주간이라서 마음의 부담이 많다. 오늘부터는 진정한 새벽 기상을 위해 성실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겠다. 오늘 까탐 모임은 다들 사정이 안 되어 PM과만 이루어졌는데, 단군 문화부족 정화가 그림동지들과 우리와 한장소에서 미팅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가웠으나, 서로의 작업에 몰두 하느라 그리고 10시 경이 되자 단군프로젝트의 곰의 기상에 길들여진 PM이 연거푸 하품을 뿜어대 이쯤에서 그치고 나오느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제 얼른 자야겠다. 벌써 12시다.

(04:00 ~ 07:00 1) 새글 쓰기; 어제 까페 탐방한 내용 정리하기 ⃝⃝⃝- 중간에 졸려서 산책 30분
2) 지루하면 독서 병행 가능 ×
08: 아침 식사 & 설거지 & 청소
09: 00~ 까페 탐험대 과제 구상(나만의 카페 만들기)
10:00~ 쓰고 싶은 글 탐색; 쓴 글 참조
11:00~13:00 물품 정리
~ 14:00 점심 & 설거지
15:00~ 18:00 카탐 독서 & 본문 인용 기록
19:00 저녁& 설거지 & 청소
19:00~ 22:00 글 정리(쓴 글 재독하며 수정 보완)
22:00 기필코 취침
03: 30 기상 ^-^*

그리고 저녁에 한 번 더 수정했다. 1시간 정도.
저녁에는 까탐 마무리 작업에 대한 구상을 위해 사업계획서를 구체적으로 하여보자니 여러가지 선행 문제들이 많아 그것들을 조금 생각해 보았다. 뚜럿한 콘셉트와 슬로건, 창업 이유와 목적을 상세히 생각해 보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메모 작업에 임했다.
리뷰도 해야하고 책 쓰기에 대한 고민을 좀 해보고 싶은데, 그것을 할 시간적 여유와 효율성을 갖지 못했다. 딴짓을 한 것은 아닌데, 미흡함으로 인해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메모하다보니 금세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가 시간 잡아먹는 하마같다. 쉽지 않다.
아침에 세운 계획대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일 책상 앞에 있기는 하다. 성과는 적지만 올린 글에 대해서는 일단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하기로 한다. 일찍 자려던 계획은 낮잠으로 인해 수정되었고, 일찍 자기는 글렀다. 오늘까지 해야할 작업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책에 대한 고민이다.


밤을 세우고 낮잠을 무려 5시간 가까이 잠. 밤에 안 잔 그 만큼을 자게 됨.
19:00 HC: 제출, 6/11 명함 2: 준비. 저녁 약속 2 결정.
외출 후 10시경 귀가. 인터넷으로 책 주문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속이 뒤집어 지는 줄 알았다. 콱 꺼버리고 자려다가 들인 공이 아까워 휴대폰 결제를 하고야 말았다. 카드도 은행결제도 안 되어서 결국 준다는 혜택은 하나도 못 받았다. 늘 그런 식이다. 한 번도 제대로 이용해 본 적이 없다. 미끼에 걸려드는 건가. 벌써 새벽 2시가 다가와 온다. 1시간 30분 후면 일어나야 한다. 책 서치하는데 2~3시간, 결제하는데 1시간 가량이 걸린 것이다. 시간 낭비다. 다음부터는 새벽 결제를 하지 말아야겠다. 해킹 등 위험과 인증이 잘 안 되어 그런 것 같다. 한숨만 나온다. 자자.

일찍 취침하여 잠을 푹 자지 못한 날은 새벽에 깨어서도 비몽사몽하여 새벽 시간을 알차게 운영하지 못하게 된다. 멍하거나 능률이 오르지 않으며, 조름을 쫒기 위해 산책을 하거나 자꾸 다른 일을 하다보면 금세 시간이 휭하니 지나가 버리기 일쑤다.
오늘은 낮잠 잘 겨를이 별로 없겠다. 다행이다. 주문한 책이 도착되길 기다려 진다. 저자들에게 사인도 받아둬야지. 잠을 덜 잤더니만 눈이 피로하고 시리며 까슬까슬하다. 알람이 울리는 데 나도 모르게 끄고 자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알람이 울려 얼른 일어났다. 세수하고 물 마시고. 그래도 졸립다.
09:00 : 공단 방문, 19:00 : 홍대입구 연구원 컴백홈(고즈윈의 고세규대표와의 저녁), 19:00 : 사당동 대학원 동문 모임.
같은 시각에 두 곳의 일정이 쌍벽을 이루어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했다. 동문 모임은 분기별 모임으로 지정된 것이었고, 고대표님과의 만남은 최근에 일정이 잡혔는데, 아직 어떤 글을 어떻게 쓰겠다는 정리도 새로운 시도도 모색되지 않아 참석 자체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종의 자격지심과도 같은 열등감이라고 할까. 나이들어서 이런 갈등을 하며 사는 것이 유쾌하지 않기도 하다. 오후까지 어떻할까 망설이다가 대표님을 만나서 이야기나 듣자 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동문들에게서 저녁내 전화가 와서 대표님과의 약속을 마치고 후다닥 달려가 겨우 2차 일행과 가볍게 한 잔 하고 들어왔다. 둘 다 참 아름다운 모임이라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돌아오고 나니 비가 제법 내린다. 염려했던 날인데 잘 참석하고 돌아와 기쁘다. 얼른 자고 일어나 또 새벽 글쓰기를 해야겠다. 자자.

위의 사진 좌측부터 사진 1, 2, 3...
하나, G동 : 단독 주택이었다.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살다가 귀국했다. 그곳에서 익힌 자연스러움으로 처음엔 대로변 상가에 카페를 열었다. 그러나 임대료 등을 내고 나면 별반 남는 것이 없어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사는 집을 개조해 보기로 하고 테이크 아웃점처럼 작게 문을 열었다. 물론 처음엔 완전 주택가에 불과할 뿐이었다. 다만 등산로가 있는 길목이었고, 주변에 신학대학이 있기는 해도, 카페가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쉼터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열심히도 했지만 카페와 쉼터 및 이 골목안에서의 공간을 필요로 하고 알아주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쁨이었다. 지금은 가족이 참여하는 가족형 카페요, 애초보다 3 개 동이나 더 확장하여 아지자기하게 이어진 당당한 카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산행하며 부담없이 들러 차 한 잔 나누기도 하고, 카페로 마실을 오는 아주머니들과 조용하며 한적한 사랑방 같은 공간을 그리는 이들의 요긴한 쉼터가 되고 있다.
둘, S동: 직장 생활을 하며 권태감이 들거나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칠 때마다 카페를 하고 싶은 열정에 사로잡히며 어쩔 줄 몰랐다. 그렇게 약 3년 간 질질 끌며 가슴앓이만을 해대다가 자금이 얼추 모아진 어느 날, 급기야 결정을 내리고 가게를 보더다니던 중, 지금의 자리를 만나게 되었다. 작고 아담한 공간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 바로 계약을 하고 그토록 오래 그리던 나만의 공간을 드디어 갖게 된 설레임이란 생각만 해도 즐겁고 신기하다. 집과 가깝거나 잘 아는 곳은 아니었고, 카페 자리를 찾아 다니다가 가게를 보고 적당하다 싶어 계약을 하였으며, 출퇴근 시 전철로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되나 처음 시작이고 너무나 하고 싶었던 카페이기에 그 정도는 감수하며 즐겁게 임한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취미 생활과의 병행을 위해 한 달에 두 번 출사를 나가고 있으며, 그 때에 맞추어 정기적으로 휴일을 정해 쉰다. 그 외는 모든 시간을 카페 공간에 머물며 작업과 일을 병행해 나가고 있다.
셋, C동 : 골목 카페지만 인근에 바로 내노라하는 건물들과 교차로가 있는, 중심에서 한 불록 뒤에 살짝 감춰져 평범하게 자리한 매력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장소를 개발해 내는 안목과 발품을 파는 인내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조용하고 단순한 골목 카페일 것 같지만 주변에 대형 오피스 상가와 백화점과 사통팔달의 십자 교차로와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철역사에서도 가까운 곳이다. 아쉬움이라면 가게가 크지 않다는 것. 그래서 앞 과 옆으로 테라스를 달아 이용하고 있지만 워낙에 작은 공간이다. 좌우가 뒤바뀐 뒤집어진ㄱ자형의 내부 공간을 하고 있으며 직접 로스팅과 그라인더까지 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쥔장은 이제 커피 전문 사장님으로 변신했고, 이곳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득시글 붐비게 되었다.
아래 사진 4, 5, 6
넷, M 동 : 내용 통과
다섯, B 동: "이 해 박는 집"이란 치과 간판의 맞은 편 쪽 일대 풍경. 제법 넓은 골목으로 도로라고 할 만큼의 폭이 주어지며 일대가 주는 깨끗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매우 감칠맛 나는 위치임.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이 색깜과 분위와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 지역의 세련되고 우아하며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림.
여섯, S 동 : 써니가 좋아하는 코너 자리. 맴 적으로다가 찜해 둠. 전봇대가 약간 눈에 거슬리지만 서도 아쉬운 대로 괜찮은 위치임. 무엇보다 전망 죽여 줌. (Very good) 저런 집은 무조건 사야함. 강추! (사부님 댁과도 견줄 수 있음.ㅋㅋ )
그런데 저 곳까지 올라가자면 요즘 같은 날씨에 땀 좀 흘리게 됨. 자동차를 이용하기에 불편. 도로가 없거나 좁거나 한 것이 이 지역의 난제에도 불구하고 요즘 하나, 둘 카페들이 속속 들어차고 있으며, 평당 시세 또한 대단히 만만찮음.
일단 아래층만을 이용해서 작은 카페로 운영해도 손색이 없을 재미난 구성이고, 1, 2 층을 다 연결해서 카페로 활용할 경우 2층에서 즐기는 시내 경관과 녹색으로 펼쳐지는 인왕산(?)이 받쳐주눈 주변 환경이 남다를 것임. 생각 같아서는 저 집을 구입해서 확 다시 짓고 싶음. 그러면 조망이 확 트이는 코너 자리로서의 참 좋은 작업실 겸 카페가 될 수 있을 것임. 아쉬운 점은 비록 코너라 해도 조망 외에 앞도 옆도 주변 환경의 부대 가치가 별로 받쳐주는 상황은 아님. 즉 교차로 식의 코너가 아니라 언덕 한복판 일방 통행의 일방적 코너자리라는 것이 저 위치의 한계라고 생각되나, 저 주택을 코너의 자리를 잘 살려서 창을 크게 내어 이용한다면 서울 시내 전경을 다 볼 수가 있는 매력 또한 좋을 것임. 한마디로 꼭대기이기는 하나 부촌이요, 요즘 인기지역이라는 사실로 볼 때 저런 위치라면 구입해도 좋을 것 같음.
이상 클릭으로 인한 순간적 발동으로 영감과 발상이 날아가지 않도록 곧바로 댓글로 옮겨 봄.^^ 메모의 습관화 실행이라고나 할까? ㅎ ^-^*

어제 저녁에 고즈윈의 고세규 대표님 만났다. 여러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었다. 다 이해하거나 새기지는 못하였지만 첫 책을 내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평소 인품은 익히 들어온 바지만 직접 가까이에서 대하니 감회가 다르고, 진솔하고 유익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고 그 점이 좋았다. 어느 편집자라 하여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을 대하고서는 편집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싹 가셨다. 책 한 권을 위해 역지사지 인지상정에 입각하여 좀 더 의미 있고 즐거우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되도록 돕는 애정이 정말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편집은 책의 어머니 내지는 사활의 주치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정성과 몰입과 기대와 사랑과 감동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나니, 편집인에 대하여 또는 그런 활동에 대하여 기쁘고 고맙다는 마음이 인다. 앞으로 연구원들에게나 책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런 시간이 많이 생기고 의도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준비를 못하고 참여를 해서 조용히 다른 이들의 질문 사항이나 듣고 나오려다가 짤막하게 자서전 쓰기와 까탐을 책으로 엮어볼 의향에 대해 상의하였다. 자서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유의미를 줄 수 있는 지를 모색하며 써야 할 것과 카페에 관한 책은 끝물에 가까움을 시사하셨다. 글쓰기가 제목, 글발, 글의 구성 등을 모색하며 독자를 향해 많은 노력하에 쓰여져야 함을 다시 한 번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첫 책을 준비하려는 데에만 급급하기보다 좋은 책을 낼 수 있는 역량부터 길러야 하겠다.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기는 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아 효률적이지 않을 것 같아 이내 실행을 중단하고 자버렸다. 종일 잠에 취한 사람처럼 자고 또 잤다. 저녁에는 그리스전 축구를 보았다. 2:0 승리다.
벌써 3주에 접어드는 데 여태 혼자는 일어날 꿈도 꾸지 못하고 여전히 알람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덧 헤이해 지는 감도 없지 않다. 생산성과 분명하고 뚜렷한 목적 지향성과 확고한 설계 및 각오와 다짐 하에 실행되어야 할 일이다.

생체 리듬 때문인지 요즘은 계속 낯 잠을 잔다. (6/10~6/13) 어제 오늘은 비가 와서 더 그런 것 같다.
오늘까지 마쳐야 하는 카페 리뷰를 하지 못하고 넘긴다. 찝찝하다. 밤을 새면 또 새 주의 첫날부터 그르치는 것 같으니, 이번 주부터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지금부터 잠을 청하려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카페 리뷰를 해야겠다. 그리고 효율적인 독서를 위해 앞으로는 구립 독서실을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겠다.

종일 까탐 북리뷰에 메달린다. 카페 창업을 할 게 아니라면 왜 그리 열중 하느냐고 묻는다. 창업은 자신이 없지만 관심은 있기에 계속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인문학을 읽는 것 만큼 재미나지는 않지만 몇 권 구입 해둔 책은 다 읽어보려 한다.
내가 직접 할 수 없더라도 나를 도울 조력자를 만나면 용기를 내어 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 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건이 마음 먹은대로만 주어진 다면야 못할 것도 없겠지만 내 구상으로는 혼자서는 무리라 자중과 신중을 기하고자 한다. 얼른 마무리를 하고 낼 새벽을 위해 취침에 들어야겠다.
참, 낮에도 낮잠을 잤다. 전에 연구원 할 때는 굳이 새벽 시간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낮잠의 기억은 별로 없는데, 요즘은 종일 하려면 눈이 사그럽고 몸이 피곤해서 쉬다보면 잠이 최고다. ㅎㅎ 이를 방지하려면 리뷰와 옮기기 작업을 적당히 반씩 병행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종일 좌판을 두드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으니 말이다. 내게는 하루가 48 시간이라면 좋겠다. 책도 글도 마음껏 읽고 쓰고 다른 일들도 다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ㅋㅋ늙도록 이 짓을 하고 살자면 무엇보다 건강을 잘 돌볼 일이다.(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