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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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 맹자, [盡心 上]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도 우리가 특히 명심해야 할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科는 학과學科라고 할 때의 그 과입니다. 원래 의미는 '구덩이'입니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지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건너 뛸 수도 없는 것이지요. 첩경捷徑에 연연하지 말고 우직하게 정도正道를 고집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나면 그제야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원칙에 충실하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건너뛰었다는 뜻이지요.
신영복, [나의 동양고전 독본, 강의] p. 245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라는 말이 있는데,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흘러가는 것’을 뜻한다. 건너 뛰고, 지름길에 연연해 하지 않고, 정도를 걸으며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고집이 바로 훌륭한 전문가에 이르는 방식임을 알아야 한다. 기본을 중시하고 원칙에 충실한 독학이 스스로를 필요한 인재로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구본형, [사람에게서 구하라] p. 166
채우면 흐른다. 채워지면 흐른다. 채워져야 흐른다.
채우자. 채운다.
채우다보면 흐르고 꽃이 피겠지
이게 나의 길인데...

이력관리의 기본은 이력서 업데이트라 해 참 오랜만에 이력서를 봤다.
역시나 허접한 스펙으로인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취업한게 신기할 정도다. ㅋㅋ
영문 이력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다시 쓰자니 눈앞이 캄캄하다. 지난 7년동안 영어 쓸 일도 없었고, 볼 일도 없었다.
취업하려 백방으로 정보를 검색하던 시절의 자소서는 9년의 경력에도 필수 입력사항이라니... 자소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읽어나 보슈? 읽으면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걸 아슈?
불과 몇 년의 경험치를 업데이트 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영문 이력서와 자소서를 다시 써야 하는데 말이다.
예전에 썼던 자소서를 보니 유치하다. 이러니 좋은 회사에 취업 못했지...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는 말에 백점 만점의 공감도를 표시하고 싶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앞으로 5~10년이 지나면 몰라도.
자소서를 쓰려다보니 주제를 무엇으로 잡을까를 한참 고민하다보니 6시가 넘었다. 어느정도 감은 잡고 있었지만, 오늘 오전에야 확실한 제목을 붙일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영적 커뮤니케이터', '감성 커뮤니케이터'.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힘들어 하던 시절이 떠올랐고, 선/후배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첫 번째 덕목으로 여기고 많은 시도를 했었다. 많은 성과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성과에만 집중하면 엄청난 발전이 있었음은 내 자신도 인정할 수 있다. 작년 우리팀원들이 뽑은 장점 1위를 모두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었다. 주관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일치하는 걸보니 확신할 수 있다.
감성은 샤머니 누나가 부여해준 나의 강점이다. 스스로 인정하지는 못하지만 좋은 말이니 그냥 붙여 보기로 한다.
꿈을 쫓기 시작한 이후로는 경력 개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게 이력서를 보니 확연히 티가 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건 아니지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역시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는 오고, 동시성도 오게 마련인가보다.

다산 선생님을 찾아 뵙고 있었는데 본가에 책을 놓고 왔다. 2월에 찾아뵙겠다고 약속한 또다른 역할모델인 피터 드러커 형님!! 예전에 2권정도 서적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고, 경영 현장에 반영은 힘들거라는 착각속에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는 드러커 형님의 책은 손에 들지 않았었다. 자서전의 처음에 나오는 드러켜 형님의 가장 큰 경영철학!은 바로 다양성이다. 몇 년동안 부르짖었던 다양성! 왜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가보다는 다양성 자체를 거부하고 말살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던 조직 생활을 했음에도 너무나 뻔뻔하게 간절히 바랬던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잊고 살았다. 드러커 형님의 발톱 때보다 못한 옹졸한 생각이었다고 생각한다. 난 다짐했다. 2011년 상반기의 대부분을 드러커 형님과 함께 하겠다고... 비범한 인물이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얻은 아이디어와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선배들에게 배운 삶의 태도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일을 기약할게 따로 있지.. 드러커 형님의 책을 후일로 미뤘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불거졌다.
드러커 형님을 평일 새벽에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1_03_01_화_단군일지_250]
지난주까지 어느 곳을 가던지 떠 오르는 짧은 문장 하나가 있다. 몸안에서 꿈틀거리다 튀어 나오기도 하고, 자다가 눈을 뜨자마자 튀어 나오기도 한다. 내 자신에게 인식된 결정적인 계기는 출근 전 세수를 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마자 이 말이 튀어 나오면서부터이다.
'글을 쓰자', '글을 쓰자'.....
내면의 소리인지 모르겠다.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거나 느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200일차 초반에 나름의 뽕맛을 봤지만, 지금의 새벽에는 만족의 못 느껴서인지, 지금 상황의 회피인지도 모르겠다. 구분은 정확하지 않다.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비해 현실에서의 혼란은 숨 쉬는게 어색할만큼 답답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자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안에서조차, 깊은 어둠에 홀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일상의 피곤속에서 돌아와도 잠 못 이루는 현상을 뭐라 말하기 어렵다. 내 스스로 만든 어둠이지만, 이 어둠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내와 상처받은 내면아이에 대한 얘기를 했다. 책을 읽었을때는 몰랐지만, 나에게도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었다.
첫번째는, 엄마의 품이 그리울때 엄마의 품을 많이 느끼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엄마는 항상 공장에 계셨고, 8살 터울인 형의 등에 업혀 지냈다. 내 기억속의 가장 어린시절의 한 대목은 추운 겨울 아버지 담배 신부름을 가기 위해 형은 집을 나셔야만 했다. 어린 나를 집에 두고 갈 수 없어, 뛰어서 가면 5분도 안 되는 거리임에도, 나를 등에 엎고 갔을 것이다. 싸늘한 바람이 형의 등에서 잠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8년이 지난 후에 그 추운 길은 내 차지가 되었다. 심부름은 형이 했던 것과 같이 아버지 담배를 사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두번째는, 엄동설한이나 혹서기에도 나를 안고 업고 다녔던 형에 대한 나의 그늘이다. 장남이 잘 되야 집안이 잘 된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집뿐 아니라 우리나라 가정에서의 공통점이다. 많은 기대를 받고 자란 형에 비해, 부모님에게 나는 예쁜 막내이긴 했지만 기대와 희망과는 멀었다. 어린시절 수재 소리를 들었던 형에 비해 나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부모님에는 더욱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라면서 그 깊은 골은 상처같이 박혀버린 지금 내 미간의 깊이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자아를 떠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먼저 봐야 하는 새벽을 보내야겠다.
300일차의 새로운 내 미션이다.
이제서야 댓글을 달수 있는 용기가 생겼네요..
분명 어제 2차는 좋은 시간이였을 것입니다.
그 기운 그대로 전해져서 저는 무사히 집으로 도착하였습니다. ^^
상처받은 내면아이.... 공감 또 공감입니다.
어제 토론시간에 말씀드렸던 얼마전 맛본 눈물이 그 이유였거든요.
혹 기회가 된다면 <내적불행>추천하여 봅니다. 이 책 덕분에 나를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었더랬습니다.
뵐을 때는 귀여움 많이 받고 자란 사람 같았는데.. ^^ 모두가 사연이 있음을 또 한번 알게합니다.
어제 만나서 많이 반가웠습니다.
매일 잊지않고 청룡출석부에 출석해주셔서 힘이납니다.
새벽을 함께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행복 가득한 가슴이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