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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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벽 시간과 새벽 활동
ㅇ기상/출첵: 5시 ~5:30, 활동시간: 5:10~6:10, 이후 출근준비 등
ㅇ새벽 활동: 자기주도 수련(스트레칭, 단전강화, 뇌활성화)
*나의 강점과 암묵적 일자리 매칭: 미스토리(나의 가치관/인생관 등 100꼭지) 쓰기
3. 전체적인 목표
1)새벽에 심신을 다스리며 차분한 하루를 시작한다.
(차분한 마음정리와 규칙적인 생활 습관화)
*지속적인 '가치관 탐색후 매일쓰기' 실천
2)나의 건강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최소한 단군상은 탄다.
3)부족원들에게 공헌한다.
4) 500일 도전에 대한 중간 목표일 뿐이다.
4. 중간목표
1)개인 목표: 항상 건강 위한 수련 활동하면서 천직 찾기
가치관/인생관 쓰기 지속적 활동
2)부족원들에 대한 목표
-공동체 발전욕구(소속감과 결속력 강화) 발휘
5. 목표달성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난관과 극복 방안
1)건강의 악화가 예상되나, 건강회복이 지금의 가장 최우선 과제인 만큼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낮에 어떤 것을 포기하더라도 건강 강화 위한
운동 철저히 한다. 그리고 새벽활동의 많은 시간을 건강 회복을 위해 경주한다.
2)거의 모든 것을 신경쓰는 성격 탓에 진짜 필요한 시간과 신경을 불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그로 인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먼저하지 못하는 누를
범하고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포기할 것은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할 것이다.
또한 예전에 시행했던 '매일쓰기'에 이어 가치관 매일쓰기를 다짐한다.
3)연구원 7기 청강은 작년에 이어 계속 이어간다.
지금의 형편이 이번 100일 동안에 나아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4)일시적인 현재의 직장에서 더 소중한 나의 천직으로의 변환을 위한 계획을
차질없이 차분하게 준비한다.
6.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내 삶에서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 묘사
1)이번 100일 동안에도 완전한 건강 회복은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한다.
2)각 조직간이나 각 개인간 틈새 조정 전문가(퍼실리테이터 자격, 회복탄력성)가 되기 위한 토대를 닦고 이를 전략 무기화한다.
7. 목표를 달성했을 때
1)나에게 줄 보상
-완주시 : 나에 대한 보상은 없다. 완주한다는 것 자체가 보상이다.
100%완주가 스트레스나 강박관념이 아니다. 그것을 해 낸다는 것 자체에서 하루 하루 엔돌핀을 발산하니, 그것이 오히려 나를 기쁘게 한다. 나의 길을 가는데 약간의 과정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것이다.(300일 완주후)
-미완주시: 벌금을 낼 것이다.
100일 중에서, 하루 1만원, 2일에 3만원, 3일에 6만원...
2)부족원들에 대한 보상
-완주시: 함께 한 부족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수고 많으신 부족장과 출석부 담당 동기에게 보상한다.

ㅋ ㅋ '글쓴이'란 오류가 있는데 수정이 안된다.ㅎ ㅎ
오늘은 300일차 시작 첫 일지다.
지난 200일차 메뉴에서 이어진다.
상세히 말하면,
6기 연구원 청강생 시작이던 작년 1월부터 '살다보면'에 써 왔기에
나도 상당한 글을 쓴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뿌득하고 기쁘다.
이번기간은 단군일지 작성도 규정준수(최소 익일 완료) 할 것이다.
하루도 지각없은 일지쓰기를 할 것이다.
어디가든지 그 규정에 맞추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공반기 없이 지난해 9월 6일부터 하루도 지각없는 수행중에 있다.
일지쓰기는 지난 100일차에 거의 매일 썼고,
200일차 때의 매일 일지에 이어 공반기 때에도 매일 썼다.
이 일지들의 기록이 나의 내면를 꺼내는 작업이고, 그것을 종합 정리하게 될 것이다.
최대한 많이 많이 꺼내고 꺼내는 작업이 나에겐 더욱 필요하다.
그 작업은 글쓰기 형식에 맞는 잘 쓰는 것보다 많이 쓰는 것이다
물론 그 많은 양에서 내용적으로 질적으로 가다듬어 질 것이다.
나의 심연 속의 심연에 있는 그것은 꺼내는 작업이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 심연에 그 무엇인가가 있긴 있는데 그것이 잘 꺼내지지 않아 답답하다.
그것을 이번 300일차에 꼭 꺼내 정립할 것이다.
오늘도 화이팅!

참지혜 배우는 열정, 빰을 맞으면서라도 수용을...
나는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늘 배우고 익히기를 좋아한다.
나의 지식이나 지혜가 잘못된 것이라면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배우고 채워 넣을 각오가 되어 있다.
그 어느 분이 조언을 해 주었을 때,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인격이 부족하고 수양 부족이다.
그 때 그 분이 나의 빰을 때린다 해도 고맙게 받아들일 것이다.
아니 그것이 참지혜라면 다른 쪽의 빰이라도 드리대면서 때려 달라 할 것이고,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는데는 하루라도 빠르게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잘못된 지식이나 지혜가 나중에 더 큰 낭패를 가져올 수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혹여 그 분의 조언이나 지적이 참지혜가 아닐지라도 그 조언 자체를 고맙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차후에 그것의 참지혜 여부는 나름대로 검증하여 나에게 적용될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나이가 경쟁력'이 되게 하는 것일 수 있다.

어제 어버이날, 예전에 요양보호 활동으로 모셨던 분의 사모님에게 안부 전화드렸다.
약 20년 동안 파킨슨으로 앓고 계신 남편을 간병 하느라 매우 힘드시단다.
간병하느라 신경과민으로 오히려 사모님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 하신다.
나에게 다시 한번 어르신을 케어 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하신다.
그냥 부탁 정도가 아니라, 애원하다 싶은 정도로 간절하시다.
많은 간병사나 요양보호사를 써 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모님은 너무나도 꼼꼼하고 깔끔하시다.
장기간 어르신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너무도 훌륭하게 간병하셨다.
복약 시간을 1분도 착오가 없이 지키시며 모든 것을 어르신에 맞추면서 살아 오신 것이다.
그 사모님의 성격에 맞추기는 매우 힘들다.
다행스럽게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최상과 거의 완벽을 추구할 정도로 평상시 생활하면서 단련해 왔기에
그 사모님이 원하는 바대로 거의 딱 맞게 해 드릴 수 있었다.
그 사모님이 원하는 모든 것이 객관적이며 입체적 균형감각을 갖춘 정도라면 나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없이 좋았겠지만, 예날 분들 치고 그리 사리분별력이 뛰어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 분의 입장에 맞추느라 약간의 어려움도 있었다.
여하튼 그 어르신 부부께서 나를 아들처럼 사랑해 주셨고,
나는 그분들을 아버님 어머님처럼 모셨다.
그것이 약 2년 전의 일이니 그래도 한참 지났다.
그동안 간간이 안부를 여쭙고 통화를 하곤 했고, 그 때마다 내가 직접 케어해 주기를 원하셨다.
늘 죄송스럽게, 나의 이런 저런 여건으로 불가능하다고 거절해 왔다.
그러나 이번의 요청 강도는 예전과 다르다.
나의 이런 저런 곤란한 부분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수용하시는 조건이다.
즉, 밤에 어르신께서 주무실 때 함께 있기만 하면 될 정도로 가벼운 요양보호 활동이다.
월~금욜까지는 오후 5시30경에 출근하고 취침후 익일 09시40분 경에 퇴근,
금욜 오후5:30부터 월욜09:40까지 근무한다. 그러니 토욜과 일욜은 종일 근무다.
공휴일과 월 1회 토욜은 휴무다.
그러면서 보수도 많지는 않지만, 좀 되는 편이다.
문제는 아이들 양육과 나의 건강이다.
내가 낮에 쉴 때는 아이들은 학교에 있고, 또 밤에는 내가 근무하니 아이들을 직접 돌볼 수가 없다.
토욜이나 일욜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불가하니 곤란하다.
나의 건강이 현재 그리 좋아지지 않고 있으니 어르신과 함께 생활한다면 더욱 악화될 수도 있으니 또한 문제이다.
낮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나의 목표인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에 들어 갈 준비를 할 수 있고,
밤에는 어르신께서 일찍 주무시니 나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그 외의 장점은 더 많다.
아이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어른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고민은 그것만이 아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제발 오래만 근무해 달라' 하니 뿌리치고 나오기도 문제다.
더 많은 판단과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단군의 후예 1차 세미나가 종로 윙스터디에서 있었다.
천복의 천직화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다. 역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천직 탐색을 위한 실험지 놀이를 하였다.
나의 직업선택 기준은 성취감/능력 발휘가 제 1순위이다.
먼저, 나의 핵심가치와 직업관 발견하기다.
관심직업 분류에서
1.현재와 과거의 연관직업(경력직업) 3개 찾기는,
학생상담자원봉사(약5년), 학생학습지도(약 5년), 간병사와 요양보호 활동(약2년) 경력이 있다.
2.나 자신의 꿈과 천복의 관점에서, 가장 좋아 하는 직업(천복직업)은
인생돌보미(인생설계사), 퍼실리테이터, 그리고 자기계발코치이다.
3.잘 할 수 있는 직업(재능직업)은
퍼실리테이터와 인생돌보미이다.
역시 효율적인 탐색 도구를 이용한 결과, 나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것은
퍼실리테이터나 인생돌보미이다.
세미나 진행중에 토론의 시간이 있었는데 모두들 미적미적한 관계로 진행자가 건너 뛰어 진도를 나갔다.
내가 많이 아쉬워서 약 5분정도 시간을 내 달라고 별도 부탁하였고, 시간을 얻었다.
나의 연설내용은 다음과 같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하려니 횡설수설한 듯하다.
우선, 나의 천복과 천직을 찾기 위한 지난 10여년간 고행했고,
나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것이 '인생돌모미'와 '퍼실리테이터'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가난이나 고통 속에 있는 분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그들을 점프업시켜 드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역설했다.
다음은 퍼실리테이터에 대한 견해이다.
허심탄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면 지금의 상태보다 좀 더 나은 성과들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서로간에 측은지심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이야기,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해하고 그것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복음성가 중에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좋아한다.
"빗방울 같은 땀 흘려 내 죄 의논하시던 주님의 그 모습 보네 그 모습보네..."
그런 정도는 힘들어도 우리가 서로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여야 한다.

오늘 수련 굿: 오늘부터는 출첵을 하면서 일지를 일단 간단하게 작성할 것이다.
약 1시간 앞당겨 미리 완수 한 것으로 해 놓음으로써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래 풍광을 미리 쓰듯...
어제 단군 1차 세미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의 천복과 천직을 찾기 위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들뜬 마음에 한 마디 했다.
다른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았나 염려가 많이 된다.
진정으로 속에서 하고 싶은 그런 고민 등등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더욱 더 깊이 찾아가는 시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물론 지금의 방법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좀 더 깊이 시도해 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남들을 의식한다는 것,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현상인가.
뭐든지 이야기 해도 되는 그런 관계, 그런 분위기라면 정말 좋으련만,
그러면서 신나고 보람있고 흐뭇한 순간들을 보내면서 살아 간다면...
물론 여건에 맞아야 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여하든 우리 부족원분들 모두를 사랑한다.
진정으로 한 분 한분 귀하게 여기기에 그런 일을 벌렸다.

인품이란 그 사람의 인간다운 품격인데 그 기준을 세우기 쉽지 않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의 품격을 따질 때 세 가지를 살핀다고 하였다.
엄숙함, 따뜻함, 그리고 합리성이다.
이 세가지를 갖춘 사람과 사귈 때면 세가지 다른 변화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여 삼변이라 한다.
그 첫째는 망지엄연이라 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게 보이는 사람이요.
두번째는 즉지야온이라 하여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따뜻한 사람이요.
세째는 청기언야려라 하여 그 말을 들어보면 합리적인 사람.
이 세 가지 모습을 갖춘 사람을 군자라 할 수 있다고 해서 군자삼변, 즉 군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카리스마가 넘쳐서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위엄이 있고,
하지만 어렵게 다가가면 그 온화한 성품에 더할 수 없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지만,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찌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갖추었는지
듣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군자라는 것이다.
군자답게 사는 것 참으로 어렵겠지만, 시도해 볼 만하다.

*치열하게 산다는 것에 대하여:
치열함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젊었을 때는 치열하게 하는 자체가 육체나 정신력 강화에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50의 나이에 접어 들어서는 그 치열함이 정신력을 강화할 수 있으나. 육체는 쇠약하게 할 수 있다. 특히 밤낮으로 병자를 돌보는 경우는 그렇다.
나의 경우에는 밤낮으로 어르신 중증환자를 돌 본 적이 있다. 그 어르신께서는 낮에는 그래도 양호하나, 밤 12시에서 3시 사이에는 돌보는 사람의 정신과 혼을 뺏아 갈 정도로 힘들게 하신다. 미치고 환장하게 한다. 그렇게 힘들게 하시면서 그 분 스스로도 천당과 지옥을 하루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분 옆에서 주위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배려하면서 치열하게 한다는 것은 뼈와 근육 그리고 신경까지 쇠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모님의 근심과 걱정은 매우 심하셔서 그 어르신보다도 그 사모님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리 밤낮으로 일을 하다 보니 그야말로 골병이 들었다.
원기 정기 진기 모두가 쇠진되었다고 한의원 한의사가 말한다.
이런 경우 아니면 5~60대 정도까지는 왠 만한 정도의 치열함을 가지고는 뼈가 으스러지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 인생은 유한한 것이니 한번 치열하게 살아보는 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천복과 천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지난 1차 세미나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 운영자에게 보낸 메일을 아래에 옮긴다.
"지난 번 진지한 토론과 발표시간 등 제안 것에 대해
우리가 천복과 천직에 대해서 다시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너무도 소중한 시간인데 그 귀한 시간에 부족원들의 관심이 저조한 듯해서요.
시간 배려를 지금보다 몇 배를 더해서라도 진짜 귀한 것들을 얻어 가게 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지난 10년 이상을 적성과 흥미, 진로와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해 봤기에 감히 말하는 것입니다.
제 딸들에게도 아이들이 수긍을 한다면 반드시 참여하여 이수하게 할 예정입니다.
아니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꼭 이해하도록 하여야 겠지요.
선배님 지금 하고 계신 것, 정말 소중한 것이니
확고한 소신을 갖고 밀고 나가세요.
화이팅! "

삶의 순간 순간을 흐뭇한 분위기로 만든다는 것?
"빡센 근무, 더 이상 성장 동인 아니다."
주당 35시간이라는 짧은 근무 시간,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감동적인 고객 서비스로 업계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회사, 창립 이래 34년 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고, 매년 평균 15% 정도의 성장,
이 놀라운 회사가 바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작은 도시 캐리에 본사를 둔 SAS Institute다.
'행복한 젖소가 우유도 더 많이 생산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가진 CEO 짐 굿나잇(Jim Goodnight, 1943- )은 매우 분명한 비즈니스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 직원이 피곤할 때는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지 않도록 금지 시켰다. 피곤하지 않으면 실수가 적고 실수가 적으면 실수를 찾아 수정하는 시간과 인력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SAS연구소는 포쳔지 선정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를 2년 연속 차지했다...
스마트 워크는 일과 삶을 상생시킴으로써 고효율청정 에너지로 직원을 가득 채우는 기업문화혁명이며, 장기적 경쟁을 위한 집중 몰입 근로 방식이 되었다
일과 삶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선순환 체계인 스마트 워크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며 문화인 것이다. 스마트 워크는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소진된 직원을 가지고는 미래의 선도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율의 힘을 믿고, 개인을 통제하는 대신 응원하여, 그 상상력을 풀어 줌으로써 열정과 창의성을 현장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을 일에서 배제시키는 대신 그들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맞아들임으로써 직원이 늘 충만한 에너지로 채워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직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직원의 에너지 원천인 가족이라는 전원(電源)에 접속하여 강력한 응원에너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런 회사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바로 나의 꿈이다.
스마트 워크를 통해 가장 흐뭇하고 보람있는 순간 순간을 만드는 것,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것 만도 아니다.

어제는 글통삶 정모에 참여했다.
내가 지난 1월에 입문과정을 시작할 때 처음 참여한 후 두번째 참여다.
이번 참여는 100일 프로젝트 종료시점에 따른 한선생님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지난 100일 동안 하루의 결석을 제외하고 매일 지각없이 참여했고,
90%의 완주자에게 선물을 주는 자리였다.
이번 정모의 커리는 내게 매우 유용했다.
글쓰기 기술에 대해 토론한 후 칼융의 기억꿈사상에 대해 토의,
그리고 책내고자 하는 회원 2분의 기획안 발표 및 피드백 순서였다.
글쓰기에 대해,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좋은 정보들을 들었다.
자신의 그림자나 그늘에 대해 깊이 깨닫고,
그 부분에 대해 보완발전시켜 큰 강점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검증받는 듯했다.
또한 표면에 나타난 의식에서의 강점을 발휘하여 성공하는 것 보다,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무의식에서의 강점을 발휘하여 성공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며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비꽃님의 조언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진 뒷풀이에서도 매우 유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갱양이 손수 만든 소가죽 지갑을 선물로 받았고,
달나무님이 송숙희님의 '책쓰기의 모든것' 을 선물로 주어 받았다.
특히 이 책은 내가 꼭 사고 싶은 책이였었기에 특별나다.
최근의 일들이 조셉 자바로스키의 말처럼 내게 '동시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햇다.
고마운 분들에게 보답을 해야 하는데 정말 내게 이러 저런 여건이나 형편이 그렇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직에서 '스머프형 팀워크'가 제일 이상적이다. 설문결과.
"직장인들에게 '조직에 가장 적합한 팀 유형'을 설문한 결과 '스머프형'을 이상적인 팀워크로 꼽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츠베이스드트레이닝 연구소는 576명에게 '조직에 가장 적합한 팀 유형'을 설문한 결과 37%(213명)가 '스머프형 팀워크'를 선정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아츠베이스드트레이닝 연구소는 "애니메이션 속 스머프들이 서로를 시기하거나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이웃이자 친구인 이들은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주고 이해와 존중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열정, 패기, 동료애만 있으면 못해낼 것 없는 무한도전형(25%),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적도 동료가 될 수 있는 아바타 나비족형(14%), 세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시너지의 저력이 승리를 이끄는 태극전사형(7%)이 뒤를 이었다.
또 자신이 속한 팀의 '팀워크' 점수를 평가하는 설문에선 점수에 따라 원하는 팀워크 유형에 차이를 보였다. 팀워크 점수를 4점 이하(10점 만점)로 평가한 직장인들은 무한도전형(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자신이 속한 팀을 9점 이상으로 높게 평가한 직장인은 비틀즈형(36%)이 적합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팀워크를 강화해야 하는 조직의 경우 무한도전처럼 기존의 틀을 깨는 열정적이며 도전적인 유형이 필요하며 안정적인 조직에서는 비틀즈와 같이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창조적인 유형을 원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설문은 아츠베이스드트레이닝 연구소의 '팀워크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팀워크 재생 프로젝트의 시도 내가 갖고 있는 조직의 활성화와 약간 차이가 있다.
나의 것을 발휘할 준비를 하자.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을 본받자.
어제는 우연히 식당에 들러 식사하면서 '나가수' 재방송을 봤다.
집에 TV가 없어 평소에 보려고 했지만,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들 너무나도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들 그려볼 수 있었다.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실전에 나타나는 것일게다.
나는 평소에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 가지 프로젝트에 집중 연습을 못했다.
어제 특히 임재범씨의 '여러분'을 노래하는 모습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이제는 열심히 치열하게 연습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깊은 인생 인터뷰 놀이가 돌아오는 일요일 3시에 예정되어 있다.
일단 그것부터 치열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어제 수련은 미리 쓴 것이었지만, 10여분 밖에 하지 못했다.
ㅋㅋ 갑자기 작은 아이 수학여행 출발이 늦어짐으로써 아빠가 함께 하느라 바빴다.
미리 쓰기의 장점이 크지만 어제처럼 갑자기 일어난 일 때문에
오늘의 경우,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묘미가 더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이런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미리 쓴 대로 아니 할 수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성과가 더 나은 것이다.
오늘은 어제 하지 못한 수련까지 해야겠다.
어제는 하루 종일 바빴다.
특히 저녁 때 이콥스에서 하는 월례모임에 참가해 뒤풀이 까지 마치고 귀가했다.
기획력이 내게 많이 부족한데 그 부분에 대해 유익한 강의를 들었다.
역시 김한상 작은창조기업단장의 강의가 좋았다.
그리고 함께 한 이콥월드 여의도 부대표 김미영님, 김앤장 로펌회사 전문위원 김장래님...
참 돈받을 점들이 많은 분들이다.

아래는 인터뷰놀이 작성한 시나리오다. 금주 일요일에 있을 예정인데 미리 작성하였다.
==인터뷰놀이ver 1.0(깊은 인생) 자료. 윤인희
=주제: 신나고 흐뭇한 삶(아니타r처럼, 환자 간병)
=책, 사부님 낭독: ??
=나는 왜 신나고 흐뭇한 삶을 갈구하는가?
왜 남들은 거의 생각 조차 하지 않는 그런 삶을 추구하고 있고, 실현가능하다고 확신하는가?
=저에게는 인생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습니다.
짧은 인생, 깊고 멀리 보면서 참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간병한 경험:
제가 예전에 종합병원에서 환자 간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의 생활에서는 만족을 하지 못하는 저는 세상에서 고통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그들의 삶을 병상에 눕기 이전보다 더 성공한 삶으로 성장시키 드리고자 특별히 선택한 직업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곳에서 근무한다는 자체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는 수준이하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친께서도 저의 그 경험에 대해 남들에게 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한번 사는 인생, 정말로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직업이든 귀천은 없다. 어떤 직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 얼마나 깊고 의미있는 삶을 살았느냐. 그 삶을 토대로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라고 하는 복음성가를 참 좋아합니다.
“빗방울 같은 땀흘려 내 죄 의논하시던 주님의 그 모습 보네 그 모습 보네...” 죄인을 위해 빗방울 같은 땀 흘려 상담하시는 주님 같이, 환자분들을 위해 저도 감히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진정성 있는 마음과 태도를 보여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확고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를 선택할 때도 저는 남 달랐습니다. 간병협회에 가장 힘들 환자, 간병사들이 가장 꺼리는 환자분을 소개해 달라는 특별 주문을 했습니다.
간병사 일을 하면서, 저는 정말로 치열하게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옆 병상이나 병실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자 간병사들이나 환자 가족들에게 찾아가 공헌을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로 신나고 흐뭇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왜 저는 혼자의 기쁨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우선시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아니타r(로딕의 준말) 의 삶처럼 영혼이 살아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봐도 좀 특이한 체질과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개인은 좀 힘들어도 주위의 많은 분들이 즐겁고 흐뭇해 한다면, 그 힘든 것이 결코 힘들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제 안의 기운이 솟구쳐 오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람과 흐뭇함으로 승화되었고, 더욱 저를 신명나게 하곤 합니다.
=‘깊은 인생’책 내용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188쪽).
일곱 번째 이야기는 자신을 스스로의 별로 만든 아니타 로딕의 이야기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대해 질 수 없다. 모든 위대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선 우주에 다가가는 것에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세속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은 고양될 수 없다... 평범함이 깨져야 위대함이 발아한다.
맞습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점이, 저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 혼자만의 기쁨보다 타인과 함께하는 기쁨을 추구한 것입니다. 혼자만의 기쁨이란 것은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럿이 함께 기뻐해야 진정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간디나 마샤 그레이엄 처럼, 인생을 확 바꾸어 놓을 특별한 순간은 없었는가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렇게 큰 도약의 계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저는 소소한 사건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제 삶이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특별난 것이 없는 사람이기에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성실 근면한 생활을 집요하게 견지해 왔습니다.
매 순간의 삶 속에서 조금씩의 자극을 받고 각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 그리고 의지의 강도를 높여 왔습니다.
지금보다 나중에 더 크게 쓰임받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지금은 책의 내용처럼, 둘째 견딤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군 전역후 약 10년이 흘렀으니, 어느 정도의 세월이라 여겨집니다.
지난 10여년간 저를 가다듬기 위하여 또 그것을 검증하고 발휘하기 위하여 분투노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절차탁마를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저 스스로를 자른 듯하고 썬 듯하고, 쫀 듯하고, 간 듯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마음만 먹으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저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포부가 있습니다.
20여년 전, 독립기념관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고자 시도하였다가 무산되었지만,
지금은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잘해 낼 수 있습니다. 사회와 국가를 위해 크게 쓰임 받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 스스로를 넘어서는 작업은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저의 재능을 알아 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웅장하게 장식하고 싶습니다.
함께 할 기회와 시간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끝

어제는 김한상 단장님에게 찾아가, 인터뷰놀이 초안을 검토받았다.
매우 유익한 조언이었다.
수정한 ver2.0을 여기에 옮긴다.
==인터뷰놀이(깊은 인생). 윤인희
=주제: 신나고 흐뭇한 삶(아니타 로딕처럼, 환자 간병)
=책, 사부님 낭독: ??
=나는 왜 신나고 흐뭇한 삶을 갈구하는가?
왜 남들은 거의 생각조차 안하는 그런 삶을 추구하고 있고, 실현가능하다고 확신하는가?
=저에게는 삶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습니다.
“짧은 인생인데, 깊게 보고 멀리 보면서 참지혜를 얻자” 입니다.
=예전에 병원에서 환자 간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생활에서는 만족을 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뭔가 특별한 삶을 원했습니다. 나름의 ‘깊은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 고통과 좌절 속에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바이러스’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병상에 눕기 이전보다 더 성공한 삶으로 성장시켜 드리고자 선택한 직업이었습니다.
물론 간병사로 일 한다는 자체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는 수준이하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 정말로 가치있게 살아야 합니다. 직업의 귀천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직업을 통해 얼마나 깊고 의미있는 삶을 살았느냐. 그 삶을 토대로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는가 입니다.
=저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라고 하는 복음성가를 참 좋아합니다.
“빗방울 같은 땀흘려 내 죄 의논하시던 주님의 그 모습 보네 그 모습 보네...” 죄인을 위해 빗방울 같은 땀을 흘리며 상담해 주시는 주님 같이, 저도 감히 환자분들을 위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진정성 있는 마음과 태도를 보여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확고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를 선택할 때도 남 달랐습니다. 간병협회에 특별 주문해, 가장 힘들 환자 간병사들이 가장 꺼리는 환자분을 소개해 달라 한 것입니다.
저는 간병사 일을 하면서, 정말로 치열하게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옆에 있는 병상이나 옆 병실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자 간병사들에게 찾아가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간병사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로 흐뭇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왜 혼자의 기쁨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우선시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아니타 로딕의 삶처럼 영혼이 살아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저 스스로를 생각해도, 좀 특이한 체질과 성격을 가진 듯 합니다.
저 개인은 힘들어도 주위의 많은 분들이 흐뭇해 한다면, 그 힘든 것이 결코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제 안의 기운을 솟구치게 했고, 더욱 신명나게 하곤 했습니다. 한 병실 전체를 담당하는 공동간병을 할 때는 대소변을 치우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깊은 인생’책 내용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188쪽).
일곱 번째 이야기는 자신을 스스로의 별로 만든 아니타 로딕의 이야기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대해 질 수 없다. 모든 위대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선 우주에 다가가는 것에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세속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은 고양될 수 없다... 평범함이 깨져야 위대함이 발아한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점’이, 저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기쁨과 흐뭇함을 통해 저의 보람과 희열을 얻었던 것입니다.
=저도 ‘간디’처럼, 특별한 순간은 없었는가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특별한 사건은, 아마 강원도 춘천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의 일일 겁니다. 당시 저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고, 부대에는 준위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한 날, 부대 내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간부들이 30여명 참여했었고, 저보다 하급자인 준위가 더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보다 하급자인 준위에게 밀렸다는 모멸감이 치솟아 올랐고, 저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저의 손은 어깨 위에 달려 있던 계급장으로 올라 갔고, 슬그머니 그 계급장을 떼어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한 병과는 특수 병과였기 때문에, 병과 특성상 일반 장교들보다 준위가 더욱 끗발이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장교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남 달랐던지 그런 광경을 그냥 지켜 보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것이 오히려 저를 성장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상처들이 저를 더욱 낮아지게 하였고 군 전역후 약 10년 동안 종친회에 참여했고, 약 5년간은 총무를 맡아 열심히 공헌했습니다. 7~80대의 가문의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을 체질화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 그리고 의지의 강도를 높여 왔습니다.
지금보다 나중에 더 크게 쓰임 받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지금은 책의 내용, 두 번째처럼, 견딤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군 전역후 약 10년이 흘렀으니, 어느 정도의 세월이라 여겨집니다.
지난 10여년간 저를 가다듬기 위하여 또 그것을 검증하기 위하여 분투노력했고, 절차탁마 했습니다. 저 스스로를 자른 듯하고 썬 듯하고, 쫀 듯하고, 간 듯 하게 만들어 온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마음만 먹으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저를 단련시켜 온 것입니다.
=저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포부가 있습니다.
20여년 전, 결혼식을 하면서는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거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였기에 무산되었습니다.
지금은 청와대 사회통합위원회든지 민간기업의 어떤 자리든지 들어가, 저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저 개인 스스로를 넘어서는 작업은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저의 재능을 알아 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웅장하게 장식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또 하나의 큰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저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여려분들도 이 책을 통해 여러분 만의 뭔가를 찾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인터뷰놀이(ver2.0보완, 깊은 인생). 윤인희
=책, 사부님 낭독: ??
“나는 왜 신나고 흐뭇한 삶을 갈구하는가?
왜 남들은 거의 생각조차 안하는 그런 삶을 추구하고 있고, 실현가능하다고 확신하는가?”
저에게는 삶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습니다.
“인생을 깊고 멀리 보면서 참지혜를 얻는 것” 입니다.
2~3년전, 병원에서 환자 간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생활에서는 만족을 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뭔가 특별한 삶을 원했습니다. 나름의 ‘깊은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 고통과 좌절 속에 신음하고 있는 환자분들에게 ‘희망의 바이러스’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병상에 눕기 이전보다 더 성공한 삶으로 성장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간병사로 일 한다는 것 자체가, 가볍고 우숩게 보인다는 현실을 모르진 않습니다.
저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라고 하는 복음성가를 참 좋아합니다. “빗방울 같은 땀 흘려 내 죄 의논하시던 주님의 그 모습 보네 그 모습 보네...” 죄인을 위해 빗방울 같은 땀까지 흘리면서 상담해 주시는 예수님 같이,
저도 감히 환자분들을 위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진정성 있는 마음과 태도를 보여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확고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를 선택할 때도 남 달랐습니다. 간병협회에 특별주문해, 가장 힘든 환자. 간병사들이 가장 꺼리는 환자분을 소개해 달라 했고, 그런 분을 위해 밤낮없이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자간병사분들에게 찾아가 공헌을 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흐뭇했고, 그것이 저를 진정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저는 왜 혼자의 기쁨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더 중요시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아니타 로딕의 삶처럼 영혼이 살아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제가 저 스스로를 생각해 봐도, 좀 특이한 체질과 성격을 가진 듯 합니다.
저 개인은 힘들어도 주위의 많은 분들이 흐뭇해 한다면, 그 힘든 것이 결코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제 안의 기운을 솟구치게 하고, 더욱 신명나게 했습니다. 한 때는 병실 전체를 혼자 담당하는 공동간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어르신들의 대소변을 치웠습니다.(저라는 사람 참 이상한 놈이죠? 참 그렇긴 해요.)
‘깊은 인생’책 내용의 한 구절을 읽겠습니다.(188쪽).
일곱 번째 이야기는 자신을 스스로의 별로 만든 아니타 로딕의 이야기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대해 질 수 없다. 모든 위대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선 우주에 다가가는 것에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세속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은 고양될 수 없다. 평범함이 깨져야 위대함이 발아한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이, 저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기쁨과 흐뭇함을 통해, 제가 보람과 희열을 얻었던 것입니다.
2001년, 군대에서 전역한 후 10년 동안 종친회에도 참여하면서, 총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7~80대의 어르신들을 낮은 자세로 섬기면서 ‘서번트 리더십’을 체질화 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10여년 동안, 생각의 크기와 의지의 강도를 높이려고 분투노력하였고, 절차탁마했습니다. 저 스스로를 자른 듯하고 썬 듯하고, 쫀 듯하고, 간 듯하게 만들어 온 것입니다.
항상 현재의 순간보다 나중에 더 크게 쓰임 받고자 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마음만 먹으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저를 단련시켜 준비해 온 것입니다.
이로써 저 개인 스스로를 넘어서는 작업은 끝났습니다.
저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포부가 있습니다.
20년 전, 결혼식을 할 때는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거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고,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든지 민간기업 유사부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저만의 준비된 강점인 통합경쟁력 촉진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구성원들의 진정어린 마음을 통합하고 선의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의 이런 포부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의 재능을 알아 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제게 남은 가장 소중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 분과 함께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저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나름의 인터뷰자료를 정리해 보시고, 여러분 만의 뭔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맞는 분을 찾다.
그제 인터뷰놀이를 했다. 나의 인생관과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이 세상에 난 모든 경계를 허물며 가장 창조적으로 인생을 살고픈 욕망이 내게는 있다.
생을 창조적으로 살 수 있다면 남은 생애 동안 뭐든 시도해볼 것이다."
반가웠다.
그래서 그 분에게 일단 아래와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뭐를 희생하더라고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합니다.
그리고 착한이 컴플렉스와 바운다리 말씀하셨는데
우리 인생의 소중한 장점을 가지셨는데 사회가 참 서글프게 그 좋은 장점을 버리게 만들어요
제가 꿈꾸는 것중 하나가 '작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장점을 가진분들이 그 장점을 버리지 않고 맘껏 발휘하면서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보람과 흐뭇함을 맘껏 느낄수 있게 할 것입니다.
아마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분명 그러한 삶을 원하는 분들이 어느 정도는 있을 거라 확신하기에
자신하고, 분명 이루어 낼 것입니다.
힘 내시고 언제 한번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네요.
저는 그 흐뭇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했거든요.
화이팅!

*절차탁마(切磋琢磨), 끊을 절/쓸차 혹 갈 차/쪼을 탁/갈 마.
요즘 도울 김용옥님의 절차탁마대기만성이란 책을 읽고 있다.
예전에 참 그 분의 강의를 좋아했고, 방송국에도 찾아가 방청하기도 했다.
몇 해 만에 다시 그분의 모습을 대하는 듯하다.
1987년 발행한 책이라 서가에는 없서서, 별도 서재에 보관중이었다.
요즘 나를 돌이켜 보건대, 아무리 생각해도 절차탁마가 딱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참 진득하게 나를 가다듬어 왔다.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며 끌로 쪼고 숫돌에 갈 듯이, 옥돌을 다듬듯 학문과 덕행에 힘
써 온 듯하다.
"원래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수양뿐만 아니라 기술을 익히고 사업을 이룩하는
데도 인용된다.
《대학》에 보면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자르듯하고 쓸 듯함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요, 쪼듯하고 갈 듯함
은 스스로 닦는 일이다)"라고 하여 절차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여절여차여탁여마"에
서 여(如)자를 뺀 것이 절차탁마."
그러니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자신하고 어떤 상황이나 일을 만나도 자신하게 되는 듯하다.
그 자신감이 바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절차탁마하면서 고군분투노력했기 때문에 더욱 가능한 것이다.
요근래 나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이 맛을 ㅋㅋ
윤인희 화이팅!

지성능동至誠能動: 성실의 중요성
박재희교수의 3분고전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주력'에 더욱 세부적으로 메모해 놓음.)
"至誠能動이라! 지극한 성실함은 주변을 감동시킨다고 합니다.
<맹자>에 보면 성실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성실함은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이다. 誠者는 天之道也라!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 思誠者는 人之道也라!
해가 뜨고 지고, 사시사철이 운행하는 것은 성실의 극치라는 것입니다.
至誠而不動者는 未之有也니라!
한 인간이 지극한 성실로 살고 있는데 주변을 감동시키지 못한 경우는 없다.
不誠未有能動者也니라!
성실, 하늘의 도이자 인간이 가야할 위대한 길입니다. "
성실에다 유연성 창의성까지 겸비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수련도 좋지 만 너무 무리해서 건강을 더 해칠수도 있음이라.
참지혜를 얻는 방법 하나.
뭐를 하든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을 자청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예전에 환자 간병을 할때, 그랬다.
환자를 선택하면서 가장 힘든 환자, 간병사분들이 가장 꺼려 하는 환자를 소개해 달라 했다.
그 환자분을 맡게 되면 협회장과 사무장 등 임원들의 관심을 받을수 있고,
그 분야에서 오래도록 했던 노련한 선배들에게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맡은 환자분은 간병사분들 몇 백명이 거부한 환자였기에 우리 협회 간병사 뿐만 아니라
그 병원에 입주한 간병사 협회 혹은 입주하지 않은 협회의 간병사들에게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간병사와 환자 가족분들에게서도 위로와 칭찬을 받았다.
그 환자 분이 너무 심한 환자였기에 협회장이 수시로 와서 조언을 해 주었고
사무장은 하룻 밤을 나와 함께 지새면서 코치를 해 주었다.
그러하기에 남들은 몇 년을 해서도 못 배울 것을 몇 개월 아니 몇 일 만에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련한 많은 분들과 가장 손쉽게 친해질수 있었다.
역시 나의 판단이 옳았다.
그 대신 나의 몸이 좀 상하긴 하였지만, 그 상한 몸을 회복시키는 방법 또한
어느 정도 터득했기에 그 걱정은 덜 된다. 아주 불치의 병이 아닌한
나의 방식으로 회복할 수 있다.
인생을 깊고 멀리 보면서 보면서 배워 나가는 철학이 결코 쉽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가면 갈수록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참지혜를 얻는 또 한가지 방법,
가장 잘하는 분의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예전에 삼성생명에서 영업할 때 그랬다.
한 LC(FC의 또 다른 이름)는 늘 영업왕이 된다.
고객을 이리 저리 오라 하면서 자신의 스케줄에 맞추면서 그런 영광을 얻는다.
거의 대부분의 동료들은 고객을 따라 다니며 힘들게 영업하지만 그분은 뭔가 달랐다.
그분을 아침부터 밤 늦게 까지 내차로 모시고 다니면서 그 분의 비서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분만의 것을 전수 받았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열정에 그 분도 마음을 열어 그 분의 거의 모든 것을 준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 분야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각자 나름의 노하우까지 거의 모든 정수를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경쟁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1.어제는 매우 오랫 만에 등산을 했다.
늘 함께 하자고 하는 친구에게서 또 갑자기 전화를 받았고,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준비할테니 나는 그냥 오기만 하라 했다.
좋은 산행이었고, 막걸리 몇 병을 함께 마셨다.
좀 과했다. 그 친구하고 대화 나누다 보면 술을 자제하는 마음이 누그러져 마시게 된다.
그러나 좋은 시간이었다.
2. 조카가 지난 금욜에 상경하여 우리집에서 함께 생활하다 내려 갔다.
그동안 남동생과 제수씨에게 신세를 많이 진터라 뭔가 잘 해 주려 했으나. 그리 잘 해 주지는 못했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빨리 형편이 나아져서 다음에 더욱 잘해 주어야지...
오늘도 또 수련과 일상을 열심히 하자.

*인터뷰놀이(ver3.0 깊은 인생, 3쪽). 윤인희
주제: 세상과 타자를 위해서, 나를 다 쓰지 못해 안달하다.(혹은 ‘깊은 인생’, 나는 준비된 사람인가? )
“나는 왜 신나고 흐뭇한 삶을 갈구하는가?
남들은 거의 생각조차 안하는 그런 삶을 추구하고 있고, 실현가능하다고 확신하는가?”
나에게는 삶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인생을 깊고 멀리 보면서 참지혜를 얻는 것’이다. 나이가 경쟁력이 되게 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 가면 갈수록 더욱 신나고 흐뭇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보다 나중에 더 큰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 들이고, 즐기는 것이다.
3년전, 병원에서 환자 간병을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생활에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뭔가 특별한 삶을 원했다. 나름대로 ‘깊은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병상에 누워 고통과 좌절 속에 신음하고 있는 환자분들에게 ‘희망의 바이러스’가 되고 싶었다. 간병사 일 자체가 환자 곁에 붙어서 24시간 동안 동고동락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분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분들의 마음까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어루만져 드리면서 ‘희망의 빛'이 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병상에 눕기 이전보다 더 성공한 삶으로 성장시켜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간병사로 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사회에서는 한심하고 우숩게 보인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한번 사는 인생 아닌가? 짧은 인생이다. 직업의 귀천이 그리 대수인가? 어떤 직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느냐 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확고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를 선택할 때도 간병협회에 특별 주문했다. 힘들고 까다롭기 때문에 간병사들이 가장 꺼려하는 환자분이 있다면 그 분을 소개해 달라 한 것이다. 그런 분을 위해 밤낮없이 치열하게 일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자간병사분들에게 찾아가 공헌을 했다. 나는 힘들어도 남들이 어려워하고 곤란해 하는 듯 하면 그것을 긍휼하게 여기는 성격이다 보니, 그것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 부분을 해결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그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흐뭇했고, 그것이 나를 진정으로 성숙시켰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참지혜를 얻어 가는 것 같다. 뭐를 하든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을 자청하고 그 과정을 즐기면서 도전하기 때문인 듯하다. 가장 힘든 환자분을 맡게 되면 협회장과 사무장 등 임원들은 물론, 그 분야에서 오래도록 근무했던 노련한 선배들에게서 관심과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맡은 환자분은 간병사분들 몇 백명이 거부한 환자였기에 우리 협회 간병사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주한 또 다른 협회 혹은 입주하지 않은 협회의 간병사들에게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원래 유별난 환자였기 때문에 그 모든 간병사와 환자 가족분들에게서도 위로와 칭찬을 받았다. 한 번은 사무장이 직접 나왔다. 하룻 밤을 나와 함께 지새면서 코치를 해 주었다. 자신이 몇 해 동안 터득한 노하우를 그 하룻밤 사이에 거의 대부분을 뱉어 낼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그러했기에 남들은 몇 년을 해서도 못 배울 것을, 몇 개월 아니 몇 일 만에 터득할 정도였다.
더불어 짧은 기간에 노련한 많은 분들과 가장 손쉽게 친해질 수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가장 난제를 해결하는 요령까지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기본 중의 기본인 매사에 옳고 바른 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자세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가면 갈수록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며, 뭐들 하든지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참지혜를 얻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어느 조직에든지 가장 잘하는 분은 있게 마련이다. 그 분을 쫒아 다니며 섬기고, 그 분의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예전에 삼성생명에서 영업할 때 그랬다. 한 LC(FC의 또 다른 이름)는 늘 영업왕이 되었다. 고객을 ‘이리 오시고, 저리 오시오.’ 라 한다. 자신의 스케줄에 맞추면서 큰 업적을 남기고 영광을 누린다. 거의 대부분의 영업사원들은 고객을 따라 다니며 힘들게 영업하지만 그분은 달라도 한참이 달랐다. 그런데 그 분이 너무 잘하긴 하나, 약간의 거만함이 있어, 같은 동료들에게 미움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장점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 분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그 분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어느 한 날을 잡아 내가 그 분의 스케쥴에 맞춰 약속을 잡았다. 내 차를 끌로 아침 일찍 그 분의 집에 갔다. 하루 종일 그 분이 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조언을 받았다. 밤 늦게 되어서야 그 분을 귀가시켰다. 그 분을 모시면서 운전비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분만의 많은 것을 전수 받았다. 그 분도 나의 순수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알고, 마음의 문을 열었고, 그 분의 많은 노하우를 내게 주었다.
나는 그 분야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각자 나름의 노하우까지 거의 모든 정수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경쟁력이 생기게 됨을 스스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나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더 중요시 할까? 생각해 봤다. 아마 ‘아니타 로딕’의 삶처럼, 영혼이 살아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생각해 봐도, 좀 특이한 체질과 성격을 가진 듯하다. 내 개인은 힘들어도 주위의 많은 분들이 흐뭇해 한다면, 그 힘든 것이 결코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내 안의 기운을 솟구치게 하고, 더욱 신명나게 했다.
한 때는 병실 전체를 혼자 담당하는 공동간병을 하기도 했다. 그 때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한 병실에 어르신 8분이 계시는데, 그 분들의 대소변을 치우면서도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그 일 자체를 즐겼다. 늘 그렇듯이 무엇을 하면, 그것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운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몸 전체의 관절이나 근육을 단련한다고 생각하며 즐기는 것이다.
‘깊은 인생’ 책 내용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188쪽).
일곱 번째 이야기는 자신을 스스로의 별로 만든 ‘아니타 로딕’의 이야기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대해 질 수 없다. 모든 위대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선 우주에 다가가는 것에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세속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은 고양될 수 없다. 평범함이 깨져야 위대함이 발아한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기쁨과 흐뭇함을 통해, 내가 보람과 희열을 얻었던 것이다.
나도 ‘간디’처럼, 특별한 순간은 없었는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로서는 의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강원도 모 부대에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참모직책을 수행하고 있었을 때이다. 부대 내에는 나보다 하급자인 준위들도 몇 분 있었는데, 그분들은 병과 특성상 우리 장교들보다 더욱 파워를 발휘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부대 내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고, 그 분위기가 나에게 특별나게 다가왔다. 나는 그 분들보다 접대의 우선순위가 밀려, 낮게 취급당하였고, 얕잡아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멸감이 치솟았다.
어느 순간, 나의 손은 어깨 위에 달려 있던 계급장으로 올라 갔고, 슬그머니 그것을 떼어 호주머니에 넣었다.(당시에는 대위 진급을 한 후 얼마되지 않아 자긍심이 강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내심으로 삭히고 소화하면서 진취적 자극으로 삼지만, 그 때는 좀 그랬다.) 거의 대부분의 장교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지나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광경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았고,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자존심으로 수용하였고 승화시켰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러한 자존심이 나를 더욱 성장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의지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더욱 많은 노력을 지속했다. 일신우일신에 대한 의지를 높이기 위해 MBC-TV에서 예전에 방영했던 ‘성공시대’나 성공학 강연 등 자기계발 프로그램들을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최근에는 ‘단군의 후예’라고,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작년 9월 5일부터 시작한 이래 하루도 지각하지 않고 의지를 굳게 하고 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5시 30분에 출석체크한다.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500일이다. 아마 1000일까지는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기상하는 습관은 예전에 어느 정도 갖췄다. 원래 잠이 많았던 터라 예전부터 도전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환자 간병을 하면서 밤잠을 다스린다는 각오로 임했다. 그 때 어느 정도는 정복했었던 것이기에 지금의 정도는 그리 어려움이 아니다. 한 단계 나아가 기상후 새벽 활동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2000년부터는 수많은 모임이나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솔선수범하며 ‘서번트 리더십을 익혔다.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총무를 자원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특히 종친회에서도 근 10년 동안 참여하면서, 총무를 약 5년간 맡았다. 6~80되신 고령자 분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40대의 젊은이가 총무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신임을 받았고,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을 체질화했다. 미래에 필요한 진정어린 역량을 키운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면서 배우고 익혀, 성장하려는 자존감이 나에게는 강렬하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열정이 너무 강해 다소 낮추면서 그 분위기에 맞춰 나갔다.
수많은 강연이나 컨퍼런스 등에 참여하여 나의 성격인 전방위적 사고를 깊게 하였다. 강연 등이 끝나면 그대로 있지 않았다. 그 분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뒷풀이를 요청하기도 했다. 뒷풀이 때는 참여한 분들 몇 명이 함께 가자고 해서 그들의 의견도 함께 흡수하려 했다. 그렇게 생각의 크기를 키우고자 고군분투하면서 절차탁마했다. 나 스스로를 ‘톱으로 자른 듯하고 줄로 썬 듯하며 끌로 쫀 듯하고, 숫돌에 간 듯하게 단련을 하였다. 온몸으로 각종 체험을 하면서 옥돌을 다듬듯 학문과 덕행에 힘써 왔던 것이다.
지난 약 10년 동안, 세미나 포럼 등에 참여한 것을 친다면 국내에서 아마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특히 미래는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미래포럼, 인재양성 HRD포럼 등에 많이 다니며 나의 역량을 키웠다.
이제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거의 완벽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게 준비했다. 나 개인의 준비를 끝낸 것이다. 도요타 자동차의 철학처럼, 1분의 시간도, 1원의 비용도 아끼며 더욱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 혼자서만 너무 심하게 하면 그 주위 분들이 힘들어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 맞추어 나를 조절하는 요령까지도 터득했다. 누구든 마음과 마인드만 맞으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해 온 것이다. 넓고 깊게 그리고 멀리 보면서 나 자신을 낮춘 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감을 더욱 크게 하였다.
나에게는 포부와 야망이 생겼다. 나름대로 심도있게 절차탁마를 거듭하다 보니, 결코 작지 않은 포부가 생긴 것이다. 20년 전, 결혼식을 할 때는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거행하고자 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고, 내가 존경하던 황필호 철학교수님을 주례선생님으로 모시며 식을 올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기념관측으로부터 그런 관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고, 결국 무산되어 평범한 예식장에서 식을 치뤘다. 이렇듯 나의 마음과 마인드는 젊었을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아산 현충사 바로 인근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름의 포부와 야망이 생기게 된 듯하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든지 민간기업의 유사부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만의 준비된 강점인, 통합경쟁력 촉진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과 역량을 진정으로 아우르고 통합하여 선의의 경쟁력을 키워 나갈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런 나의 포부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개인 혼자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재능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지금 내게 남은 가장 소중한 과제의 하나가 되었다.
내 개인을 넘어서는 것은 거의 끝났기에,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마지막 넘어섬이 남았다. 스승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이제 나에게 남은 마지막 소명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분들도 나름의 인터뷰자료를 정리해 보시고, 여러분만의 뭔가를 찾으시기 바란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마음을 거의 닫고 산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아마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정의가 거의 사라진듯하다. 진정한 그 마음들을 상처받지 않게 누군가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진정어린 삶을 살아가려는 분들이 있다면 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맑고 밝은사회로 만들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간디가 인도 전체를 위하여 일하였듯, 나는 그런 큰 일을 능력은 못된다.
그러나 약간의 소모임에서 내가 그런 것은 충분히 할 수있다. 좀 더 큰 모임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우선 급한 것이 그 구성원분들이 각자의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가 공헌하고자 한다.
마음을 터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제는 그 마음들을 열 수 있을까?
누군가 진정으로 그런 분위기 잡는 사람이 필요하다. 전방위적 사고를 하는 누군가가 말이다.
뭐든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 뭐든지 좋다. 그런 것들 중에 뭔가 소중한 힌트를 얻을 수 있고, 그것들을 조합하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런 분위기 그런 사람은 어디 없는가? 그렇게 된다면, 진정으로 신나고 흐뭇한 순간들을 보낼 수 있을텐데...

오늘 수련 굿
*인터뷰놀이(깊은 인생, 책출간용) . 윤인희
주제: 깊은 인생, 나는 준비된 사람인가?
“나는 왜 신나고 흐뭇한 삶을 갈구하는가?”
나에게는 삶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인생을 깊고 멀리 보면서 참지혜를 얻는 것’이다. 나이가 경쟁력이 되게 하는 것, 나이 들수록 더욱 신나고 흐뭇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보다 나중에 더 큰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긴다.
3년 전, 병원에서 환자 간병을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생활에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뭔가 특별한 삶을 원했다. 나름대로 ‘깊은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간병사 일 자체가 환자 곁에 붙어서 24시간 동안 동고동락을 하며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병상에 누워 고통과 좌절 속에 신음하고 있는 환자분들에게 ‘희망의 바이러스가 되고 싶었다. 그분들의 마음까지 섬세하게 이해하고 진정으로 어루만져 드리면서 ‘희망의 빛'이 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병상에 눕기 이전보다 더 성공한 삶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환자를 선택할 때도 간병협회에 특별 주문했다.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환자분을 소개해 달라 한 것이다. 간병사들이 가장 꺼려하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 낸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을 위해 밤낮없이 치열하게 일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자간병사분들에게 찾아가 공헌을 했다. 나는 힘들어도 남들이 어려워하고 곤란해 하는 듯하면, 그것을 긍휼하게 여기는 성격이다 보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 부분을 해결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그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흐뭇한 순간들이었다.
‘상처를 힘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자주적 힘이고, 사람의 품에 큰 숲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 란 말이 있다. 나도 한 동안 약간의 시련을 겪은 적이 있다. 그 상처가 나를 많이 성숙하게 하였고 그 때문에 아마 간병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내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참지혜를 얻어 가는 것 같다. 뭐를 하든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을 자청하고 그 과정을 즐기면서 도전하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환자분을 맡게 되면 협회장과 사무장 등 임원들은 물론, 그 분야에 오래도록 근무했던 노련한 선배들에게 관심과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맡은 환자분은 간병사분들 몇 백명이 거부한 환자분이었기에 우리 협회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주한 또 다른 협회들, 혹은 입주하지 않은 협회의 간병사들에게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너무도 유별난 환자(그분께 죄송)였기 때문에 많은 간병사들과 환자가족 분들에게서도 위로와 칭찬을 받았다.
어느 한 날은 사무장이 직접 병실을 방문하여, 하룻 밤을 함께 지새웠다. 그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몇 해 동안 터득한 거의 대부분의 노하우를 뱉어 낼 정도로 내게 코치를 했다. 또 가장 노련한 간병사 분들이 그렇게 나와 그 환자에게 다가왔다. 때문에 남들은 몇 년을 해서도 못 배울 것을 몇 개월 만에 터득할 정도였다. 더불어 짧은 기간에 노련한 많은 분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성격상 가장 기초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연의 원리를 기반으로 터득하고자 하는 것, 매사에 옳고 바른 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자세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경쟁력이 강화되고, 자신감이 커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자연스럽게 가장 난제를 해결하는 요령까지 터득하게 되었다.
참지혜를 얻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어느 조직에든지 가장 잘하는 분에게서 본 받는 것이다. 그 분을 쫒아 다니면서, 섬기고 배운다. 예전에 삼성생명에서 영업할 때 그랬다. 어느 Life Consultant는, 고객을 ‘이리오시오, 저리오시오.’ 라 할 정도로, 자신의 스케줄에 맞추면서도 늘 영업왕이 된다. 그런데 그 분에게도 단점이라면 단점인, 약간의 거만함이 있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고, 많은 분들은 그 때문에 그의 장점을 본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좀 달랐다. 그 분의 장점을 높이 사면서 그 장점을 내 것으로 하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분의 아버님이 돌아 가셨고, 업무를 끝낸 나는, 서울에서 차를 끌고 장례식장이 있는 경상도 김천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새벽 1시경이었다. 그곳에서 나름의 봉사를 했고, 조문객이 뜸한 시간에 그 분과 어머니, 그 분의 외삼촌, 그리고 내가 한 테이블에 앉았고, 거의 밤새우다시피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참으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한 날은 별도로 그 분의 스케쥴에 맞춰 약속을 잡았다. 내 차를 끌로 다니면서 운전비서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그 분이 하는 일거수일투족의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 보면서 배우고 익혔다.
이렇듯 내가 본 받고 싶은 분을 만나면 늘 비서 역할을 하는 등으로 그 분에게도 도움 되고, 나도 그 분의 노하우 익히기를 즐겼다. 황농문교수님의 ‘몰입’에 대한 강의를 듣고도 그랬고, 성공사관 학교장님의 강연 후에도 그랬다. 또한 TV에서 방영한 중요한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관련된 분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 존경을 표하면서 더깊은 노하우를 얻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는 더 진득하게 했다. 대인관계 면에서 장점이 많은 형님과 의형제를 맺어 한 동안 친하게 지니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배웠다. 특히 그 분 지인의 장례식장에는, 내 차에 모시며 가서 접대하는 것을 지켜본 후 새벽3~4시경에 귀가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덕분에 사교성이 많이 부족했던 내가, 사교성에 상당한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나는 왜 나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더 중요시 할까? 생각해 봤다. 아마 ‘아니타 로딕’의 삶처럼, 영혼이 살아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생각해 봐도, 좀 특이한 체질과 성격을 가진 듯하다. 내 개인은 힘들어도 주위의 많은 분들이 흐뭇해 하면, 그 힘든 것이 결코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내 안의 기운을 솟구치게 하고, 더욱 신명나게 했다.
한 때는 병실 전체를 혼자 담당하는 공동간병을 하기도 했다. 8분의 어르신께서 입원해 생활하시는 병실에서, 그 분들의 대소변을 치우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았지만, 콧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늘 그렇듯이 무엇을 하면, 그것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성격 때문이다. 몸 전체의 관절이나 근육을 단련한다고 생각하며 즐기니, 나에게 있어 어려움이란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약이 되는 것이다.
‘깊은 인생’ 책 내용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188쪽). 자신을 스스로의 별로 만든 ‘아니타 로딕’의 이야기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대해 질 수 없다. 모든 위대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선 우주에 다가가는 것에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세속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은 고양될 수 없다. 평범함이 깨져야 위대함이 발아한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타인의 기쁨과 흐뭇함을 통해, 내가 보람과 희열을 얻었던 것이다. 나 혼자 기쁘고 주변 분들이 기쁘지 않으면 진정한 기쁨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나보다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성격 탓일 것이다. 진정한 기쁨이란 내 주위분들이 함께 기뻐하고 흐뭇해 할 때 일 것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의 기쁨보다 남들의 기쁨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되는 것이다. 힘든 환경이 오히려 자신 안의 긍정의 에너지를 더욱 분출되도록 하고, 그 조직 전체가 신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발전되며, 결국 그 조직의 생산성이 더욱 극대화 되는 것이다.
나도 책 속에 있는 그들처럼, 특별한 순간은 없었는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로서는 의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강원도 모 부대에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참모직책을 수행하고 있었을 때이다.
부대 내에는 나보다 하급자인 준위들도 몇 분 있었는데, 그분들은 병과 특성상 우리 장교들보다 더욱 파워를 발휘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부대 내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고, 그 분위기가 나에게 특별난 각성을 주었다. 나는 그 분들보다 접대의 우선순위가 밀려, 낮게 취급당하였고, 얕잡아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그 이전에 이런 저런 복합적인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모멸감이 치솟았다. 어느 순간, 나의 손은 어깨 위에 달려 있던 계급장으로 올라 갔고, 슬그머니 그것을 떼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당시에는 대위 진급을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자긍심이 강했기에 그런 광경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그렇게 한 듯하다. 물론 지금은 거의 대분의 것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내심으로 삭히고 긍정적 진취적 자극으로 삼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러한 자존심이 나를 더욱 성장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의지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내 스스로 더욱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예전에 MBC-TV에서 방영했던 ‘성공시대’, 성공학 강연 등 자기계발 프로그램들을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최근에는 ‘단군의 후예’라고,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작년 9월 5일부터 시작한 이래 하루도 지각하지 않고 의지를 굳게 하고 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5시 30분에 출석체크한다.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500일이다. 아마 1000일까지는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기상하는 습관은 예전에 환자간병을 하면서 어느정도 마스터했다. 원래 잠이 많았던 터라 예전부터 정복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금은 기상후 새벽 활동을 습관화하여 나의 천복을 천직으로 발전하는 것이 남은 과제이다.
2000년부터는 여러 모임이나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솔선수범하며 ‘서번트 리더십을 익혔다. 조직과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인생을 많이 배울 수 있는 총무를 자원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부설 부자특성연구소에서 운영하는 ’부자스쿨‘을 몇 개월 수강한 적이 있다. 부자들의 마인드와 그들의 노하우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다. 그곳에서 총무를 자원했고, 나 자신보다 모두가 잘 되도록 공헌했다. 분위기는 매우 활성화 되었고, 강의실 분위기는 흐뭇했고 즐거웠다.
종친회에서도 근 10년 동안 참여하였다. 젊은 나이에 무슨 종친회!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네!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친께서 평생을 양자종손이라는 멍애을 안고 가문의 몇 분에게 많은 수모를 당하셨다. 또한 그 몇 분의 어르신이 종토를 이리저리 빼돌리기도 했다. 효자라면 효자고, 불의를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자연스레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부친의 명예회복과 종토의 원상복귀라는 사명을 위한 나의 운명이었다. 총무를 약 5년간 맡으면서, 위의 두 가지를 모두를 달성했다. 거의 7~80의 고령자 분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40대의 젊은이가 총무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혼나기도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신임을 받았고, 낮은 자세로 섬겼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의 행위들이 미래에 꼭 필요한 ‘서번트 리더십’을 체질화하는 긍정의 효과까지 본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면서 배우고 익혀, 성장하려는 자존감과 심층적인 연습들이, 어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성장시켰다. 그러한 노력과 함께 ‘인사성과 진정어린 관심’이 더욱 나를 발전시켰다. 누구를 만나든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만나는 사람 관계 속에서 무관심하다. 뭔가 어색하게 생각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관계에서 인사를 안하면 오히려 뭔가 어색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니 몇 번 만나는 관계라면 거의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편이다. 그 대상은 남녀노소, 직업의 귀천이 없다. 상대방이 순수 건전하고 긍정적이라면 금방이라도 친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수많은 강연이나 컨퍼런스 등에 참여하여 폭넓은 지식을 섭렵했다. 특히 미래는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가? 등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미래포럼, 인재양성 HRD포럼 등에 즐겨 다녔다. 강연이나 포럼 등이 끝나면 그대로 있지 않았다. 관련 분께 다가가 대화를 나누웠고, 때로는 뒷풀이를 요청하기도 했다. 함께 참여한 분들 몇 명에게 동석하자고 하여 그들의 의견도 함께 흡수하며 객관적이며 균형잡힌 지식을 습득하려 했다.
군 전역 직후에는 나의 성격인 전방위적 사고를 깊게 하기 위해 애썼다. 발명가가 되고자, 거의 1년 정도 관련 강의를 듣고 책을 사서 읽었으며, 발명가를 찾아 다니며, 나의 유연함과 창의적인 성격을 키웠다. 또한 약 5년 동안 고3 학생들의 학습지도(280여명, 고교자습실)를 하면서 학습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했다. 뇌과학에 관심이 높아 여러 강의와 심포지엄 등을 즐겨 찾아 다녔고, 책을 읽었다.
이렇 듯, 환자간병을 하면서 EQ를, 여러 모임에서 솔선수범하면서는 NQ와 SQ를, 발명과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CQ를, 각종 어려움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면서 AQ를 구축했다. 입체적인 균형감각과 사리분별력을 키우고자 고군분투하였고, 생각의 크기를 확장시키고자 절차탁마한 것이다. 나 스스로를 ‘톱으로 자른 듯하고 줄로 썬 듯하며 끌로 쫀 듯하고, 숫돌에 간 듯하게 단련했다. 온몸으로 각종체험을 하면서 옥돌을 다듬듯, 사공ㄹ을 푹 고와 진국을 만들 듯, 학문과 덕행에 힘써 왔던 것이다. 때문에 단순히 책을 통해 머리로써 지식을 습득한 것들과 비교되는 것이기에 가치가 남다르다.
오늘날 격변하는 새시대를 ‘꿀벌의 시대’라고 재정의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영국의 영파운데이션 상임이사인 ‘제프 멀건’이다. 그는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나무사이를 날아다니며 어떻게 연결시키고 꽃을 피워낼 것인가를 고민한다.”라고 하면서, 이제 더 이상 한 가지 해법으로 명료하게 규명하고, 또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경계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소통하고 매개하고 촉진하는 ‘꿀벌’과 같은 중간자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무성히 우거진 나무와 숲속 생태계에서는 수많은 돌발변수와 복잡한 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사회문제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를 ‘꿀벌 같은 존재’로 유연하면서도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였고, 준비되었다. 사회각계 각층, 남녀노소, 직업의 귀천없이 모두를 아우를 정도도 갖췄기에,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거의 완벽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도요타 자동차의 철학처럼, 1분의 시간도, 1원의 비용도 아끼며 더욱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도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개인 혼자서만 너무 심하게 하면 그 주위 분들이 힘들어 할 수 있다. 때문에 그 분위기에 나를 맞추는 요령까지도 터득했다. 성공의 제1요소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 PQ를 조절하는 능력까지 터득한 것이다. 누구든 마음과 마인드만 맞으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넓고 깊게 그리고 멀리 보고, 나 자신을 낮추며 발전시킨 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감을 더욱 높아진 것이다.
20년 전, 결혼식을 할 때는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거행하고자 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고, 내가 존경하던 황필호 철학교수님을 주례선생님으로 모시며 식을 올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기념관측으로부터 그런 관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고, 결국 무산되어 평범한 예식장에서 식을 치뤘다. 이렇듯 나의 마음과 마인드는 젊었을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것 같다.
2009년 말에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에 들어가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관련 특보(당시 김덕룡, 그 때는 못 만났지만, 추후 그 분이 강연하는 곳에 찾아가 결국 만나 대화를 나눴다.)를 만나러 청와대에 방문하였으나, 응해 주지 않아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그 때의 답변(문자메시지, 2009.8.5일: 대통령님과의 면담은 곤란하오나 하고 싶은 내용을 우편으로 보내주시면...)을 휴대폰에서 삭제하지 않고 수시로 의지를 확인하며 가다듬고 있다.
지금의 꿈은 그 사회통합위원회에 들어 가든지, 민간기업의 유사부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만의 준비된 강점인, 통합경쟁력 촉진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과 역량을 진정으로 아우르고 통합하여 선의의 경쟁력을 키워 나갈 것이다. 나는 낮은 자세로 섬기면서 나보다 모두가 서로 잘 되도록 공헌할 것이다. 물론 구성원 중에는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진정으로 다가서려는 마음과 마인드를 갖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큰 문제가 안된다. 함께 할 기회와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그곳에 맞는 나의 역할을 찾아낼 것이고, 현재의 성과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해 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뭐를 하든 동고동락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하지만, 거의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고, 그 차선책으로 회의나 세미나 등에 참관하면서 섬세하고 전방위적으로 관찰하며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 퍼실리테이터 역할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 특별한 능력이 내게는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포부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개인 혼자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임을 실토한다. 그래서 나의 재능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지금 내게 남은 가장 소중한 과제의 하나다. 내 개인을 넘어서는 것은 거의 끝났기에,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마지막 넘어섬을 위해, 스승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이제 나에게 남은 마지막 소명인 것이다.

어제는 집에서 수련을 못해 사부님 댁 부근에 도착하여 신문을 깔아 놓고 수련했다.
야지에서 햇빛을 받으며, 그렇게 하니 더욱 효과 만점이다.
늘 뭔가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하는 마이드, 어색하지만 그것에서 색다른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인드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1.
7기 오프수업 청강, 매우 좋았다. 원두막에서 하니 참 색다른 수업이었다. 좋은 분들의 수업에 참여하니 역시 유익 만점.
귀가하면서 김경인 연구원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경인연구원은 장점이 많다. 겸손하면서도 조언을 들으려 한다.
아래는 7기 웨버와 총무에게 발송한 이메일 내용이다. 발송은 110619일, 약간의 수정보완 후 발송함
늘 노고가 많으시군요.
수업중에 느낀 개인적인 것을, 혹여 7기 수업에 참고가 될까 이메일 발송하려다가,
나의 좀 특이한 성격과 생활방식이 안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제서야 발송하니 참고할 수 있으면 참고하세요. 부담갖지는 마시고 연구원끼리 소통이 잘 되어 수용이 된다면 좋을 듯합니다.
지난 1년간 청강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첫째, 발표할 때 미리 1장짜리로 자신의 발표내용을 압축 정리합니다. 수업준비하기도 힘든데 무슨? 그럴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 시간이 안되면 '버전 1'이라도 준비하여 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되고,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각 개요를 쓰는데, 첫문장은 완전문장(주제문, 완전문장이 아니라도 OK)이고, 나머지는 개요만을 정리한 개조식으로 요약합니다. 자신의 발표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므로, 자신이 준비하면서 가장 애로가 있었고 조언 듣고 싶은 부분에 대해 씁니다.
참고로, 진짜 조언받고 싶는 상처나 그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시선이 염려되어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자세가 일반화 된다면, 그런 믿음을 서로가 갖게 된다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많은 고민거리를 수업중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부님의 고견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이 아닐런지? 그런데 이부분은 매우 예민한 부분이어서 서로 낮은 자세로 상대를 , 혹은 전체 연구원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면 결코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내적성숙이 전제되지 않으면 힘든 부분입니다. 내가 종국으로 원하는 것이고, 자신하는 부분이 그런 역할인데 지금은 아직이라...
각 연구원들은 그 1장 짜리를 매달 누적하여 그 연구원에게 코멘트할때 참조합니다. 그러면 좀 더 치밀한 내용으로 그 당사자에게 진정어린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머리 좋은 사람은, 메모는 무슨 메모? 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모하고 나서, 그 메모에 또 추가하는 형식으로 누적시킨다면, 그 효능효과는 커질 것입니다.
그것을 1년간 누적시키면 각자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수 있기 때문에 진정어린 '깊고 멀리가는 사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발표자는 사우들에게 깊이있는 조언을 얻어서 좋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매우 큰 소득이 될 것이고 참으로 성숙한 삶, 큰 어려움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음이 열려있지 않은 분들에게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이런 부분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식입니다만...
물론 중요한 것은 한명이라도 그 분위기를 역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업중의 대화, 특히 그 사람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사안은 남들에게 비밀로 하여 그사람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참고로 나의 경우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처나 치부를 듣게 되면, 그사람에 대해 더욱 애착이 가고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 성격이고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최소한 여기에 들어온 연구원들은 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발전을 더 중요시 한다면, 설혹 약간의 누설로 인해 창피를 당해도, 무시해 버리거나 의연하게 대처하면 될 것입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약간의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해도, 더 크고 소중한 것을 얻으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더욱 커져, 신나고 흐뭇한 순간들이 될 것입니다. 수업 자체가 기다려 질 것이고, 서로에게 크나 큰 수확이 될 것입니다.
둘째, 수업중에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은 사안은 사이트 '연구원 커뮤니티'에 올려 공론화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고견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음 달 수업때 참고하면 더욱 생산적인 학습이 될 것입니다.
셋째, 오프수업이 아닌 별도 모임을 할 때, 짜임새있는 시간활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자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나 특별난 일이나,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약 5~10분 분량으로 준비해 오는 것입니다. 미팅을 시작하면서 그것을 각자 발표합니다. 그러면 서로 각 개인에게 몇 번씩이나 같은 이야기 하는 것을 절약할 수 있고, 순식간에 깊이를 더해 갈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 내가 각종 모임을 다니면서 느낀 안타까운 현상들입니다. 시간을 금으로 생각하는 효율성과 창의적인 마인드가 아닌, 보통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오프수업 종료후 시간활용입니다.
선배들이 오프 수업에 참관하게 될 경우, 수업 종료 후에 유연한 시간 활용을 함으로써 현역들끼리 대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수업후 식사나 뒷풀이 시간을 선배들과 함께 섞여서 시간을 가지게 되므로 현역들끼리 대화 나눌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늘 시간에 쫓겨 생활하는 현역입장에서는 그 오프수업 시간이라도 잘 활용하면 좋을텐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처음 30분이나 한시간 정도는 현역은 현역끼리, 선배는 선배끼리 나누어 좌석배치를 합니다. 처음의 시간은 사부님을 선배들과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가지시게 하고, 현역은 현역들끼리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역들은 수업중에 못다한 이야기 등등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고, 선배들도 사부님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자유롭게 섞여 대화를 나누며 여흥을 즐십니다.
이러한 것들이 좀 복잡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금입니다. 예전 수업시간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미국에서 미국민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뽑으라 했을 때, 가족보다 시간을 선택했다 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계속 그럴 필요는 당연히 없을 것이고, 때로는 느긋하고 신나게 즐기는 것도 좋을 거고요.
여하튼 지금도 잘 하고들 있으니 나중에 좋은 결실이 있을 것임을 모르지 않으나, 약간이라도 더 큰 유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습니다.
웨버님 총무님 화이팅!
2. 아이들이 약간의 것을 가지고 서로 신경이 날카롭다. 수업받는 중에 전화를 받았고, 한참을 통화했다.
더 아이들에게 신경써야겠다. 큰 아이는 내달 11일이면 취직된 그곳으로 근무하러 간다. 좀 더 빨라질 수 있다한다. 그래서 큰아이가 약간 불안해 하는것 같다.ㅎ ㅎ

어제는 그제 다하지 못한 수련까지 완료함. 굿
역시 미래풍광처럼 쓰니 효과 만점.
어제는 사랑의 교회 권사님이 오셔서 많은 대화를 했다.
역시 순수한 마음의 그 권사님과 함께 하니 그저 신나고 화기애애하다.
그분의 부군께서 함께 함께 오신다 했는데 딸 아이가 불편하다 하여 혼자 오셨다.
아이는 아직 어색할 것이다. 나는 그저 좋은 분 만나면 신나는데...
우리 사회에 그런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할 일이 그런 분들의 그런 마음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분위기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그런 분들이 마음의 상처받지 않고 신나고 흐뭇한 삶을 계속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늘은 약 10년간 만남을 지속해온 학교운영위원장들 만나는 날이다.
오늘도 정말 좋은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인희 화이팅!

어제는 자기다움 동북모임에 다녀 왔다.
'중년의 행복'이란 주제로 시청하고 토론했다.
중년의 나이에 불안해 하는 것에 대한 토의였다.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마인드를 가진 좋은 분들과 진지한 토의를 했다.
나는 좀 다르다고 했다. 중년이후에 오히려 자신감이 더욱 커지고 더 신나는 나날이 기대된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라고 했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나?
지난 10여년간 미래를 준비한 덕이다. 미래포럼, HRD, 미래는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등에 자주 참석하여 시대의 흐름을 파악했고,
나의 강약을 점검하여 그 흐름에 맟춰왔기 때문이다.
항상 바른 생각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자연의 이치에 맞게 배우고 익히려 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지난 10여년이 나에게 역경이었고, 남들에게 한심하게 보였을 것이지만,
다행스럽게 참으로 준비가 잘 된 케이스 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 하루였다.

키워드: 꿀벌 자질
(희망제작소의 글 인용)
요즘 같이 복잡한 시대에서 서로 소통하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꿀벌, 즉 사회혁신가나 사회적기업가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자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소통하는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다종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고 설득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이렇게 말해보자. 조찬모임에서 외국계 기업재단 담당자를 만나 펀딩을 설득하고, 점심에 이웃 어르신들을 만나 막걸리 한잔 걸치며 공동체 대소사를 이야기하다가, 저녁에는 국회에서 열리는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학자들과 발제하고, 정치인들에게 로비한 뒤에야, 비로소 집에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잠드는 일과를 연중무휴로 소화해야만 하는 것이라 말한다면, 조금은 생생한 비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바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충분히 공감했다면 진정성을 갖고 끈기있게 설득해야 한다. 저기 빈 곳을 메우기 위해서는 당신의 여유자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야만 한다.
진정으로 그들이 갈망하는 것을 나는 찾아낼 수 있다.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내가 적격임을 아는데...

아래는 어느 선생님께 받은 메일에 대한 답신 내용이다.
어떻게 제 마음을 전달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다가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의 진정어린 마음을 충분히 압니다. 강의 기회 주심과 지난 번 맥주 사주신 것에 대해서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기에 답답합니다.
저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과 다릅니다.
제 착각일까요? 저도 착각인지 등등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고 나름대로 검증을 거쳤습니다.
뭣을 하든지 확실하지 않으면 망설여지고 그것을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확인한 후에 적극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습과 창조성, 쇄신과 도발'이 부족하다고 하시는데 결코 아닙니다. 너무도 넘쳐날 정도입니다.
쇄신보다 혁신 쪽이고, 또한 매우 도전적입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그렇지 않아 보여 제가 오히려 절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많이요.
학습에 대해서
예전에 약 5년간 고3학생 학습지도를 하면서는 282명(메꾸기까지 포함하면 하루인원 300여명, 성적순 입실)의 학교인원을 지도 감독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좋은 학습방법을 알려 주고자 애썼습니다. 가장 잘하는 학습의 달인들을 만났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 뇌과학에 대해서도 심포지엄에도 참여했고, 많은 강연들도 접했습니다.
아래는 7기 연구원 김경인에게 보내려고 준비한 메일입니다.( 단군일지에 초안을 일단 쓴 것이고, 정리 후 발송할 예정임)
귀가하면서 김경인 연구원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경인연구원은 장점이 많다. 겸손하면서도 유연하고 조언을 들으려 한다. 내가 지난 1년간 청강하면서 느낀 바를 약간 알려 주었다.
첫째, 발표할 때 미리 1장짜리로 자신의 발표내용을 압축 정리하다. 수업준비하기도 힘든데 무슨?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안되면 '버전 1'이라도 해서 주면 된다. 듣는 사람에게도 배려가 되고,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으로 돌아온다.
각 개요를 쓰는데, 첫문장은 완전문장(주제문, 완전문장이 아니라도 좋다.)이고, 나머지는 개요만을 정리한 개조식으로 요약한다. 자신의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므로, 자신이 준비하면서 가장 애로가 있었고 조언 듣고 싶은 부분에 대해 쓴다.
참고로, 진짜 조언받고 싶는 상처나 그늘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주위의 시선이 염려되어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자세가 일반화 된다면, 그런 믿음을 서로에게 갖게 한다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많은 고민거리를 수업중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부님의 고견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아닌가?
각 연구원들은 그 1장 짜리를 매달 누적하여 그 연구원에게 코멘트할때 참조한다. 그러면 좀 더 치밀한 내용으로 그 당사자에게 진정어린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물론 머리 좋은 사람은, 메모는 무슨 메모 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메모하고 나서, 그 메모에 또 추가하는 형식으로 누적시킨다면, 그 효능효과는 크다.
그것을 1년간 누적시키면 각자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수 있기 때문에 진정어린 '깊고 멀리가는 사우'가 될 수 있다. 또한 그 발표자는 사우들에게 깊이있는 조언을 얻어서 좋다. 이렇게만 된다면 매우 큰 소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음이 열려있지 않은 분들에게는 공염불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수업중에서의 대화, 특히 그 사람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사안은 남들에게 비밀로 하여 그사람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처나 치부를 듣게 되면, 그사람에 대해 더욱 애착이 가고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최소한 여기에 들어온 연구원들은 말이다. 그래도 인간이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발전을 더 중요시 한다면, 설혹 약간의 누설로 인해 창피를 당해도, 무시해 버리거나 의연하게 대처하면 될 것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약간의 자존심이 상한다 해도, 더 크고 소중한 것을 얻으려는 마음가짐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진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더욱 커져 신나고 흐뭇한 순간들이 될 것이다. 수업 자체가 기다려지고 즐기면서 크나 큰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둘째, 수업중에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은 사안은 사이트 '연구원 커뮤니티'에 올려 공론화한다. 많은 분들의 고견을 듣는 것이다. 그것을 다음 달 수업때 참고하면 더욱 생산적인 학습이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오프수업이 아닌 별도 모임을 할 때, 시간을 짜임새있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자신의 특별난 일이나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약 5~10분 분량으로 준비해 온다. 미팅을 시작하면서 그것을 각자 발표한다. 그러면 서로 각 개인에게 몇 번씩이나 같은 이야기 하는 것을 절약할 수 있고, 순식간에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평소 내가 각종 모임을 다니면서 느낀 안타까운 현상들이다. 시간을 금으로 생각하는 효율성과 창의적인 마인드가 아닌, 보통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하다.
창조성과 쇄신 도발 등등에 대해서도 남들과 매우 다릅니다.
예전에는 발명을 한다고 쏘다니기도 했습니다. 당시 발명과 창조에 관한 책을 읽고 강연을 찾아 다니고, 발명가를 찾아 나녔습니다. 특히 실용지능 차원에서 많이 돋보입니다. 늘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새롭게 하기 때문에 시간과 나이가 경쟁력이 되게 한다고 믿습니다.
"읽고 쓰지는 못하지만 공헌을 하겠다는 말씀도 조금 곤혹스러웠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공헌력 한 가지로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읽고 쓰는 것이 지금은 미흡하나, 나중에 다른 사람보다 더 진중한 발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저의 나름의 학습방법을 믿기 때문입니다.
공헌력에도 깊이가 있지 않을까요. 제가 병원에서 간병하면서도, 가정방문하여 요양보호 활동하면서도 저는 늘 남달랐습니다. 가장 어려운 환자, 까다로운 환자를 소개받았고, 그곳에서 신임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환자 어렵다 하면 그 센터에서도 그럼 포기해야 한다. 할 정도로 했습니다.
환자중 서울대 정외과(고건총리와 동기동창이면서 절친한 분) 출신 분을, 서울대 법대 출신인 분 등등을 모시면서 매우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그 분의 까다로움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참 모시기 매우 어려울 정도 였습니다.
정외과 출신인 분은 지금도 저를 오라합니다. 그러나 제가 건강상 사양합니다. 하도 까다로와서 그곳에 붙어있는 간병사가 없고, 또 그 사모님이 보통의 간병사는 원하지도 않습니다.
단순하게 보이는 것만으로 공헌한다는 정도였으면, 저는 지금처럼 공헌한다고 헤매지 않았을 것이고 남들처럼 그저그렇게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결코 아닙니다. 제가 부자스쿨에서 총무, 재경향우회(약 600명 회원)에서 총무, 예비군 훈련 때 대대장(약 150명), 예비역 소령 진급교육(202명)때 행정장교, 학교운영위원장 협의회(2001년 당시 80여명, 지금은 약 20명 정도로 하여 10여년 이상 매월 모임하고 있음)에서 정책실장을 보는 등 각종 모임이나 단체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공헌을 했지만, 지금의 이곳에서 소극적으로 하기는 처음입니다. 수강생분들이 모두 조용하고 미온적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모임인 행복한 상상의 '책통자'에서도 수강생중 총무를 자원하여 맡으면서, 그 당시 수강인원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등 연락처를 처음부터 공유했고,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분도 있습니다. 당시 그 책통자 수업하면서 매우 흐뭇할 정도였습니다. 그 책통자 대표와 강사님에게서 칭찬을 받고, 더우기 동료들에게는 매우 신임을 받아 몇 명은 저에게서 기를 받는다고 할 정도로 깊은 유대관계를 가졌습니다.
예전에 종친회때 총무본 것이 세상물정 모른다고요? 그것은 단순한 계기가 아닌 좀 복잡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인터뷰놀이 내용 인용:
종친회에서도 근 10년 동안 참여하였다. 젊은 나이에 무슨 종친회!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네!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친께서 평생을 양자종손이라는 멍에를 안고 가문의 몇 분에게 많은 수모를 당하셨다. 또한
그 몇 분들이 종토를 이리저리 빼돌리기도 했다. 효자라면 효자고, 불의를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자연스레 참여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군 전역후 부친의 명예회복과 종토의 원상복귀라는 사명이 아마 나에게 있었던 것, 나의 운명이었다. 총무를 약 5년간 맡으면서 많은 일을 했다. 거의 7~80의 고령자 분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40대의 젊은이가 총무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혼나기도 많이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신임을 받았고, 낮은 자세로 섬겼다. 그러면서 위의 두 가지를 모두를 달성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의 행위들이 미래에 꼭 필요한 ‘서번트 리더십’을 체질화하는 긍정의 효과까지 본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좀 더 깊고 넓게, 멀리 생각하는 차원의 것도 있고, 그것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섬세함과 집요함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우려하시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여 제 나름대로 뭔가를 찾을 것입니다.
정모 공저 참여기회를 주시면 결코 도움은 되었지 손해는 없을 것입니다.
정 아니다 싶으면 괜찮습니다. 그동안 염체없는 배려에 고마울 따름인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정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