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3단계,

세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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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9일 22시 4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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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7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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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17:54:17 *.124.233.1

264일차 (3월 14일)

2차 레이스를 통과했다. 사부님의 댓 글을 읽고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잠시 눈을 감고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이내 영광을 해체시켰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앞으로도 이런 관문이 수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를 낮추고 또 낮추어야 한다고 되뇌었다. 앞으로 나는 나와 함께 할 사람들에게 어떤 공헌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저들이 나와 함께 함으로써 어제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이 동아리와 함께 하기 위해 1년 이상을 준비해 왔다. 그 동안 내가 맺고 있는 관계 또한 최소화시켰다. 아내와 가족, 회사, 그리고 단군. 친구들조차 만나지 못했다. 그만큼 이 동아리는 내게 절실했다. 시간이 흐르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기며 뿌듯해 할 것이다. 내 꿈의 첫 번째 풍광이 점점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선택해 들어온 이 동아리에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서로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공헌하며 나를 바치고 싶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데 갑자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 눈에 들어왔다. 운명적인 마주침임을 직감하고 책을 빼내어 가방에 넣고 출근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바로 나타났다. 바로 '자발적 빈곤'이란 말이 다가온 것이다. 더욱이 오늘은 월요일, '자발적 빈곤의 날'이다. 이렇게 책의 작은 글귀가 운명처럼 나를 찾아와 주었다. 다음주 검진이 있어서, 출근길에 병원에 들러 채혈을 했다. 도착하니 평소 도착시간보다 20분 정도 밖에 늦지 않았다. 법정스님의 저서를 필사했다. 스님의 글에는 언제나 맑은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사부님의 달아주신 2차 레이스 합격 댓 글을 보고 기뻤다.

병곤 형님께서 먼저 기별을 주셔서 오후에 지하 매점에서 만나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나는 참 행운아인 것 같다. 미래 유명인사의 현존을 만나 스스럼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바로 이럴 때 나는 신을 느낀다. 신이 아니고서는 어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마치 누가 미리 정해놓은 것 마냥 만날 수 있을까? 복잡한 탐색의 과정 없이 단 몇 마디 대화만으로 바로 핵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만남. 그런 만남 가졌다. 마음을 가라 앉히기 위해 3페이지 정도의 모닝페이지를 휘갈겨 적었다. 고맙고 또 고마운 하루다. 지나가는 아무라도 붙잡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그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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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2011.03.15 20:11:15 *.76.121.103
축하.
셈도 나지만.. ^^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그대에게 영광도 함께 하길..~~
그대의 글과 마음과 정성을 이렇듯 가까이 읽고 느끼는이 나에겐 크나큰 즐거움이자 행복.
또 한걸음씩 시간을 쌓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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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1.03.14 20:12:55 *.12.196.18
emoticon 김경인, 정말, 정말, 정말 추카해~!! 하모하모, 기뻐해도 되고 말고. 당근이지!!
누나는 그대야가 정말 자랑스러워. 그대의 빛나는 북리뷰. 정말 훌륭했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는 그 에너지가 읽은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어. 더불어, 그대를 통해 우리 단군이들이 더욱 빛날 수 있어 그 또한 감사해.
이젠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면접은 가벼운 마음으로 또 다시 "있는 그대로의 김경인"으로 하면 되. 알지? ^^
다시 한번, 추카. 또 추카! 애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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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5 04:02:50 *.109.24.73
누나! 너무너무 고마워요! ^^*
아마도 샤머니 누나가 힘내라는 주문과 기도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방심하고 자만하지 않고,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해 레이스에 임할께요!
고마워요 누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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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2011.03.15 06:12:40 *.180.198.147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일지를 보는 제가 혹 방해가 될까 숨 죽여 지켜보아야만 했거든요..
이렇게 용기내어 댓글을 달수있어서 정말 제가 더 기쁨니다. 많이 부럽구요..
경인님으로 통해 많이 배우고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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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5 16:25:26 *.124.233.1
고맙습니다 혜진님! ^^
혜진님의 내면 여행, 저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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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5 13:07:42 *.243.13.23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보내는 사우를 보며..
대단하다는 감탄과 함께 그의 용기가 못내 부럽습니다.
그가 가진 저 엄청난 재능이 탐나기도 하지만...

지금은 진정으로 축하해야 할 때이니까
승자의 귀환에 꽃을 뿌려드려요.

장합니다. 우리 단군1기 사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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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5 16:26:56 *.124.233.1
아... 코 끝이 짠해지네요 형님...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단군 1기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사우들.. 너무나 많이 보고 싶어요 형님!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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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5 16:12:37 *.109.24.238

265일차 (3월 15일)

분주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면접여행이 있을 것이고, 그 전에 모두 모여 저자를 찾아가 만나야 한다. 아마도 '함께' 찾아가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면접 여행을 가기 전에 미리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라는 것이 사부님의 의도가 아닐까? 레이스의 모든 절차 하나하나가 어떤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확대해석 한 것일까? 이 동아리는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속했던 동아리인 학교, 회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무적인 가입이었다. 물론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아주 약간 나의 선택이 들어있기도 했지만 둘 모두 나의 자발성에서 비롯된 온전한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아주 소중한 인연이 될 것이기에 아주 조심스럽기도 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임해 보려고 한다. 순수한 나의 의지로 선택한 이 동아리, 더는 자발적인 선택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경계선에서 선택한 이 동아리. 어쩌면 이 동아리로 흘러 들어오기 위해서 나는 앞장서지 않았다. 물론 답답증이 잃어 솔선수범 나서기도 했지만, 감투를 쓰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를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다. 회사에서도 그러했고, 여타 동아리에서도 그래왔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다르다.

누구나 자신이 적극적으로 속하려고 하는 동아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사적인 만남일 수도 있고, 어떤 동호회가 될 수도 있다. 누구나 그런 동아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 아주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고,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사실 그 동안 그렇게 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경계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홀로 지내는 것이 홀가분하고 마음 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의 이런 생각은 대학교 2학년 ○○ 연합동아리 회장직을 1년간 하면서 생긴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 같다.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잘 해야 본전, 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깨기 힘든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버렸다.

내가 선택을 했고, 힘겹게 들어오게 된 이 동아리에 대해서도 두려운 마음이 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주' 다른 생각을 가진 개성이 매우 강한 사람들로 구성된 이 동아리 속에서 과연 나는 적응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이들과 이 동아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면 될 것인가? 스승이라는 아주 커다란 구심점이 있지만 내가 속하게 될 동아리는 그 구심점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지구 같은 행성이 될 것이다.

가족 다음으로 중요한 동아리가 될 것이다. 어차피 회사는 본업이 아니라 부업이라 생각한지 오래다. 물론 현실을 놓아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우선순위를 달리 하겠다는 의미다. 솔선수범 할 것이다. 아주 작지만 이 동아리에 나를 온전히 바쳐볼 생각이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하게 되는 공헌을 결코 밑지는 장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덕이라는 것은 베풀어지는 순간 삭제시켜야 한다. 내가 뭔가 공헌하는 것에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거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진정헌 공헌도 아니요 덕이라 할 수 없다.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정말 잘 해보고 싶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 인위적으로 내 감정을 조절하지는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기대는 최소화 하고, 공헌은 최대화 한다. 무엇을 얻어올까가 아닌 무엇을 공헌할까가 중심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한 배를 탔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의해 움직이지 말고, 스스로의 자발적 의지로 움직일 것이다. 인정해 주면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이 결코 나의 동기가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말 대로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할 것이다.

처음에만 바짝 닳아 올랐다가 금새 식어버리는 냄비의 속성을 나는 증오한다. 초지일관 하는 모습으로 임할 것이다. 그런 초지일관의 의지는 오로지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은 그 기대수준이 떨어지고, 인정이 사라지는 순간 금방 식어 버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장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용의 머리로 시작해서 뱀의 꼬리로 끝나버리는 '용두사미(龍頭蛇尾)'의 어리석음이다. 스스로, 오로지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오직 그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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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7 04:29:46 *.109.24.238

266일차 (3월 16일)

스스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새롭게 몸담기로 마음 먹은 곳에서는 승승장구를 달리고 있는데, 오랜 시간 몸 담아 온 곳에서는 팽 당하는 분위기다. 팽. 이 말 참 재미있는 말이다. '토사구팽'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 데 사냥할 때 이용한 사냥개가 필요 없어지자 삶아 먹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처럼 나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고유한 선택권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잘못한 것일까? 잘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좀 더 영리하게 처신할 수 있었다. 좀더 윗사람 입맛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작지만 결정적인 차이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여하튼 지금 이순간 이 조직이 나에게 차지하는 의미는 밥벌이 그 이상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시키는 것이라면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입사한 것이 벌써 만 5년이다. 3년 이상은 내가 한 약속을 이행했지만 2년 정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질문하면 안 되겠구나. 어쩌다가 나는 변심하게 되었는가? 이미 입사 후부터 뼛속까지 이 일은 나의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마음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밥벌이를 하고, 여자를 만나고, 결혼이란 것을 하기 위해 조직이란 틀에 나를 맞추기로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타고난 반골 기질은 어찌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내 마음 속에서는 딱 3년만 하자. 딱 5년만 하자. 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 꿈을 놓칠 수가 없었다. 2002년 따뜻한 봄날 도서관 앞에서 움튼 씨앗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2004년에 움튼 마음의 산업과 NLP의 씨앗도 끈질기게 살아 남아 있었다. 2007년 우연한 기회에 만난 변화경영 연구소. 몰래 내 가슴 속에 꽃씨와 불씨를 뿌려 놓았다. 2009년. 진배형님과의 만남으로 몰래 뿌려진 그 꽃씨와 불씨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온 꿈의 새싹들이 쭉쭉 뻗어나가더니 이제는 묘목이 되었다.

이 조직에서 내가 더 얻을 것은 있는가? 이제는 철저하게 1인 기업의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회사가 원하는 것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두 마리에 토끼를 잡는 것이 나의 욕심이었으나 아주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고 있다. 이곳은 나의 존재를 고양시켜 주고, 저곳은 내가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해준다. 너무나 극명한 대비다. 존재를 고양시킴과 동시에 밥도 먹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순간 내가 맺은 필연적인 관계가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족쇄처럼 여겨진다.

오로지 내가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내 마음뿐. 이렇게 글로나마 털어 놓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식습관에 적신호를 켠다. 많이 먹기 시작했다. 위가 아픈 것은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위가 늘어났기 때문에 생긴 공복현상 때문이다. 저녁에 운동을 다시 한다. 그리고 저녁에 먹지 않도록 한다. 당연한 귀결이다. 진정한 습관은 무의식이 의식으로 넘어 왔다가 다시 무의식으로 가는 것이다. 힘겹게 의식의 세계로 끌어 올린 무의식의 에너지를 자만과 방심으로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새롭게 시작한다.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와 함께 새로운 기회가 나를 찾아올 것이란 예감이 든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하는 예언이다. 내가 생각했던 풍광을 도울 수 있는 조력자의 손길이 나타날 것이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모습으로 다가 올 것이다. 짜릿하고 다이내믹 하고 스펙터클 할 것이다. 내 삶도 내겐 빛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간절하게 탈출구를 마련해 보자.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자. 간절하게 원했던 곳에 언제나 답은 있었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나라면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웃자! 그저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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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7 18:26:41 *.124.233.1

267일차 (3월 17일)

어제 아주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났다. 거의 1년 만인 듯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제처럼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다. 외모, 생각, 철학, 직장, 직업 등 어느 것 하나 공통되게 없는 개성이 강한 녀석들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구구절절 한 부수적인 설명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잘 설명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잘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전적으로 설명을 제대로 못한 내 잘못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도 마시고 욕지거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 반이었다. 2시간도 채 못 잔다.

아슬아슬하게 눈을 뜨고 병진형님께 문자로 출석 체크를 했다. 모닝페이지를 썼다. 오랜만에 꾸벅 꾸벅 졸았다. 서둘러 씻고 출근을 했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었다. 2번째 이야기 '살았던 곳과 그 목적', 소로우의 주옥 같은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 진도가 많이 나가지 못하고 오래 머물렀다. 소로우는 내가 존경하는 법정스님의 스승 같은 존재다. 또한 사부님의 스승이기도 하다. 소로우의 글귀에서 법정스님과 사부님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다. 피곤한 새벽 나는 '월든' 호수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명상을 즐길 수 있었다.

출근하여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를 필사했다. 필사 자체가 명상적이다. 오래오래 필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용규 선생님의 회신 메일이 왔다. 부담이 되셨을 텐데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주셨다. 짜릿하다. 바로 동료들에게 기쁜 사실을 알렸다. 모두 함께 기뻐해 준다. 점심에 병곤 형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아.. 통찰력.. 내공.. 내가 가려워 하는 곳을 정확히 짚어 내시고, 대안까지 이야기 해주셨다. 결코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을 그 어떤 중간 과정 없이 전달했고, 정확하게 이해되었고, 좋은 방향이 제시되었다. 아! 너무 좋다!

나의 선택이다. 연구원 생활을 내 삶에 중심에 끌어올 것이다. 그 동안 치열하게 다투던 회사는 그 다음이 되었다. 그러나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병곤형님과의 대화를 통해 중단기 플랜이 생겼다. 어떤 것으로 특별해 질 수 있을지. 아! 이제는 혼자가 아니구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지만 내 마음은 늘 고립되어 있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뛰어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 몸을 낮추고 또 낮춘다. 큰 배움을 주실 사부가 계시고, 멋진 사형들이 계시다. 이 얼마나 클래식 하고 멋진 문화인가? 물론 아직 최종적으로 연구원으로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되어 꿈에 그리던 이 동아리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또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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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8 19:01:12 *.109.83.68

268일차 (3월 18일)

양평에 내려가는 날이다. 4주만이다. 레이스를 위해 주말에 두문불출 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 돌아갈 따뜻한 품이 있다는 것은 나에겐 축복이다. 들어 드리고, 또 들어 드릴 것이다. 내일 새벽은 동네 산을 다녀온 후 아버지를 모시고 꼭 목욕탕에 가야겠다. 결혼을 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가능한 아주 많이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고 싶다. 점점 좁아지고 작아지고 약해지는 아버지의 등. 그래도 밀어드릴 수 있는 아버지의 등이 있기 때문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새벽활동으로 5일째 법정스님의 책을 필사하고 있다.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맑고 투명한 시간이다.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성성해진다. 사부님께서 7기 연구원 커리큘럼을 올려주셨다. 설레고 두근거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했다. 사부님의 안내를 따라 이 여정을 마치고 나면 또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싶다! 그러다 지치고, 또 다시 기운을 내어 읽고 쓰고 또 읽고 쓸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거듭거듭 단련하고, 거듭거듭 다시 태어날 것이다.

조직개편 등으로 회사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 부서에 5년 이상 근무한 나로서는 연구원 활동을 위해 익숙한 곳에서 더 머무르길 원하지만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 1년 간 매너리즘에 빠져 너무나 괴로움을 겪었다. 그 괴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딴 짓'을 할 수가 있었던 셈이다. 연구원 생활과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일의 시작. 두 개의 태양을 맞이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내겐 좋은 기회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차라리 새로운 일이 하기 싫은 일 보다 낫다.

그렇다. 익숙한 이곳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너리즘에 찌들어 상사에 대한 악감정을 품고 있는 것도 더는 견딜 수도 없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기회들을 모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내게 시련을 주시는 것인지, 기회를 주시는 것인지 알 수 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시련이든 기회이든 내게 주어진 환경을 잘 가다듬어 멋진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연금술을 발휘해야 한다. 두렵고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도전해볼 일이다. 훌훌 털고 일어나 양평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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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0 04:43:43 *.109.25.233

269일차 (3월 19일)

새벽 기상 후, 모닝페이지를 썼다. 아버지께서도 벌써 일어나 계셨다. 정말 부지런하시다. 조용히 집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으셨다. 물론 불법이긴 하지만, 양평 집은 외진 곳에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제외한 쓰레기는 작은 소각장을 만들어 태워버린다. 그리고 지난주에 돌풍으로 나무로 된 자재창고가 무너져 뜯어내고 샌드위치 판넬로 새로 창고를 만들어 이전 창고의 잔해들을 태워야 했다. 서둘러 나가 아버지를 도와 드렸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집안 일을 못하게 하신다. 서울에서 일하느라 고단한테 집에까지 내려와서 일할 필요 뭐 있냐면서, 궂은 일은 손도 대지 못하게 하신다.

날씨가 풀렸다고 해도 서울보다 추운 양평에서 맞이하는 새벽은 참으로 쌀쌀하다.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볍게 요즘 내 근황을 말씀 드렸고, 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이렇게 아버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코 끝이 찌릿해 옴을 느꼈다. 물론 시간이 흐르는 한 부모님과의 시간 뿐 아니라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뿌리인 부모님. 그들과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건만. 나는 무엇에 쫓겨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나 들어와 새벽활동을 했다. 6일째 법정스님 책 필사. 필사를 하는 내내 나는 스님과 함께 불임암을 거닐기도 하고, 남도를 한 바퀴 돌기도 했고, 강원도 오두막에서 차 한잔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리고 6시 반쯤 집을 나섰다. 개군산을 오르기 위함이다. 지난 번 꿈서리 산행 때 산 등산용 지팡이 2개를 가지고 내려왔다. 걸음이 많이 불편해지신 부모님께 드리기 위함이다. 그 중 하나를 들고 나섰다. 이제는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 일러져서 집을 나서 남한강변을 거닐 땐 주위가 많이 밝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앞만 보고 그저 걷기만 했을 텐데, 오늘은 중간에 서서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다. 강은 흐르고 있었지만 고요했다. 물위의 오리들이 잠시 날았다가 이내 물위로 내려올 때의 첨벙거리는 소리 말고는 주변은 그야말로 침묵 그 자체였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풍광이다. 내가 꿈에 그리던 삶이다. 이미 나는 하루 속에 작은 꿈 풍광을 이뤄냈다.

그렇게 주변을 거닐고 산을 올랐다. 지난 번 설에 올랐던 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눈이 다 녹아 내렸고, 녹아 내린 그 자리엔 맑은 기운을 머금은 풋풋하고 푹신한 오솔길이 대신하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봄이 바로 곁에 와 있음을 마음으로 그리고 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아 정말 행복하다. 걷는 일은 이렇게 행복한 일이다. 사회생활이라는 경험이 충분해지면 다음 번 나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라이프 스타일은 이런 삶이 될 것이다. 걷고 명상하고, 읽고 쓰는 삶. 머지 않아 그런 나의 풍광이 현실로 될 것임을 직감한다. 지금의 나는 부단이 터를 잡고 땅을 고르며, 씨앗을 심고 있는 단계다. 그 씨앗이 움 트고, 묘목이 되어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는 일. 철저히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오랜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인고의 시간마저 삶의 아름다운 요소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감사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한 없이, 한 없이 착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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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04:38:31 *.109.25.233

270일차 (3월 20일)

새벽, 중랑천으로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내리는 봄비인가. 이 촉촉한 기운이 너무나 좋다. 이 촉촉한 기운이 봄을 재촉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내리는 비가 검은 점퍼에 닿아 얼룩이 되었다. 황사 비, 흙비였다. 비가 조금 더 내려도 의정부까지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짧은 코스를 한 바퀴 돌았다. 집으로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고, 법정스님 책을 필사했다. 7일차 만에 한 권을 통째로 필사했다. 필사는 단순하고 간소한 작업이라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다. 필사를 마치는 시간과 세탁기가 다 돌아가서 빨래를 널었다. 빨래를 너는 일은 귀찮은 일일 수 있지만, 마음 하나 돌려 먹으면 말끔한 성취감을 주는 즐거운 일이다.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 드는 성성한 마음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할 때 못지 않은 몰입감을 준다. 단순하고 간소한 일들의 매력이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단순하고 간소한 일들로 시작했다.

그렇게 아침 일을 마치고 의자에 앉았더니 새록새록 졸음이 몰려왔다. 일어나 안방에 가서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아. 달콤하다. 이 얼만의 낮잠인가? 오늘 오후 결혼식이 있어 아내가 깨워 일어났다. 아내가 잠을 잘못 자서 어깨가 뭉쳤단다. 어깨를 주물러 주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이다. 사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피로연장에 가서 식사를 했다. 사람이 무척 많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반가운 얼굴들이 굉장히 많았다. 인사만으로는 너무 아쉬운 분들이 많았음에도 인사만하고 돌아서려니 너무나 아쉬웠다. 잠시 교회당에 들어가 결혼 미사를 보다 약속이 있어 나왔다. 오랜만에 아내와 걸었다. 결혼식이 있던 성당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조금 걸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 보다 한 정거장을 더 걸었다. 날씨는 약간 쌀쌀했지만 손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걸으니 별로 쌀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함께 1년을 지낼지도 모르는 분들과의 첫 대면식이 있어 약속 장소로 향했다. 불편한 정장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려 했는데, 시간이 빠듯하여 그냥 약속장소로 향했다. 책을 들고 나서지 않아서 휴대 전화로 이전 연구원들이 작성한 북 리뷰를 보았다. 볼수록 대단한 분들이다. 배우고 또 배우고 싶다.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장소를 향했다. 역시나 처음 보는 모습이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아마도 몸의 거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심리적 거리는 레이스를 통해 가까워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보며 어떤 기운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눈을 감고 그들을 느꼈다. 모두 함께 할 수도 있고, 이들 중 일부는(나를 포함하여) 중도 하차를 할 수도 있다. 그들과 내가 얼마나 뜨거운지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중 한 분께 나무와 같은 맑은 수액이 도는 기운을 느꼈는데, 그 분과는 함께 꼭 연구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받은 질문지 메일을 취합하여 김용규 선생님께 메일로 보냈다. 뭔가를 주도하고 이끌어 가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끙끙거리며 할 일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저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진행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언제나 좋은 결과가 있었다. 선생님과의 만남. 내 삶의 아주 즐거운 체험으로 남을 것이다. 고매하고 깊은 정신세계, 뻐근하고 또 뻐근한 오랜 기간의 작업을 마치고 아주 저력 있는 작품을 내는 저자를 곁에서 만나 그의 에너지 장 속으로 들어가 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다. 미리 함께 만나 대면을 하고, 함께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며 좋은 경험도 하고, 서로를 알아 나갈 수 있는 기회로 삼아라. 아마도 이것이 스승이 우리에게 준 진짜 미션이 아닐까? 오늘 하루도 아주 단순하고 간소하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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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04:32:09 *.109.52.73
아이코~ 이 누추한 곳 까지~
저도 찾아가 기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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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미
2011.03.21 06:07:55 *.23.188.173
경인님 안녕하세요^^
단군하신다길래 들러봤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인님의 일지를 보니 쫌............... 반성이 되는걸요~쪼끔 부끄러워졌어요~
어디가서 단군한단 말 안해야겠어요~ㅋㅋㅋㅋ
항상 앞장서서 이끌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럼~ 인터뷰자리에서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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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04:31:35 *.109.52.73

271일차 (3월 21일)

가져간 그릇이 너무 작았다. 아니 애초부터 작은 그릇을 지니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바로 이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김용규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인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큰 에너지 장에 속해 있다 나올 때 이런 체험을 하게 된다. 약 3시간 가량의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선생님의 말씀에 빨려 들어갔다. 애당초 큰 기대 없이 찾아갔고, 그나마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우리였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말 그대로 '콸콸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가져간 그릇을 채우고도 훨씬 넘치는 말씀들을 해주셨다.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난 후,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른 새벽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가지지 않는다.

이날 선생님과의 거대한 에너지 장 속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 그저 좋은 책을 쓴 저자와의 만남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인생의 역정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아포리즘 들로 인해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저 차나 한 잔 하고 돌아가세요.'라고 말씀 하실 줄 알았다. 아마도 그의 인생의 역정을 들은 독자는 우리가 최초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구상하는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우리가 최초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 예비 연구원들의 의미 있는 선택을 인정해 주었다. 아.. 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물결을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앞으로 스승과 함께 하는 1년 또한 이런 넘침의 경험을 수없이 되풀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내 그릇의 크기를 조금씩 늘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연구원에 대하여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분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김용규 선생님께서는 H출판사 대표로부터 사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통상 글을 잘 쓰며 인격이 떨어지는 사람, 인격은 좋으나 글은 잘 쓰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데, 사부님께서는 글 솜씨와 인격을 모두 겸비한 훌륭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한다. 이미 나의 직관은 두 위대한 스승들의 아름다운 만남을 그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벚꽃 비를 맞으며 따사로운 경주에서 함께 하실지도 모르는 두 분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인가. 사부님의 해맑은 웃음과 김용규 선생님의 수줍은 듯한 맑은 웃음이 너무나 닮아있었다. 자리를 파하는 순간 예비 연구원들의 표정에서 단 하나의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바로 간절함이었다. 망설임은 사라진 지 오래. 모두 하나같이 '꼭 연구원이 되어 오늘과 같은 에너지 장 속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그들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걱정이다. 이 벅찬 3시간의 여운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지. 우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편지를 쓸 것이고, 함께 자리한 분들에게서 속속 도착하는 사진과 스크립트들을 취합할 것이다.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지 않을까. 처음의 짧았던 첫 만남 첫 번째 에피소드가 될 것이고, 김용규 선생님과의 만남이 두 번째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짧지만 영원 같았던 3시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나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이틀간의 경험을 어떻게 읽어낼지 말이다. 감당하기 벅찬 경험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경험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찾아 나선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경험임을 직감한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난 초심자의 행운이란 것이 이러한 것이구나. 또한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시련들의 규모에 대한 복선일 수도 있을 게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는 이미 모험을 떠나왔다. 떠나온 이상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금니 꽉 깨물고 굳은 각오를 하고 성큼성큼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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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19:39:39 *.124.233.1

272일차 (3월 22일)

비교체험 '극과 극'이다. 어제 김용규 선생님을 만나 짜릿한 영적 카타르시스를 맛 보았다면, 오늘은 견디기 힘든 낙담을 한 하루다. 내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이 소중한 나의 하루를 스스로 폄하하는 일이다. 그 어느 때도 나는 나의 하루를 절망적이다. 무의미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만큼은 하루와 하루가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것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제 김용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 하나가 사원은 자기가 사원이라고 생각하고 사원만큼의 일을 하기 때문에 사원이고 과장은 과장이라 생각하고 과장만큼 일하기 때문에 과장에 머문다고 했다.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태도로 임하는 사람은 신입사원일지라도 격이 다를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명박이 그런 마인드로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띈 대표적인 인물이라 말씀해 주셨다. 아..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주인은커녕 하루하루 회사의 암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암울한 기분이 든다. 중성자 폭탄 잭웰치의 눈에 띄었다면 1호 퇴출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회사의 일이 하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이 때문이다. 그게 그건가?

예전에 같은 부서에 있던 과장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마음을 터 놓는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미 위험한 주사위를 던진 셈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내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 길이 회사와 가진 교집합의 영역은 아주 작았다. 하고 있는 일에서 필살기를 찾아낸다면 아주 멋진 일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은 사다리를 오르는 길과 내가 원하는 길을 동시에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중요성이란 테마를 가진 내가 인정받는 주류의 길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다. 그러나 이것은 더 큰 주류가 되기 위한 아픔이라 여기려 한다. 이 작은 웅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한 곳에서 함몰될 때, 또 다른 곳에서 기회를 얻었다. 두 가지 모두를 취하고 싶지만 한 가지는 버려야 한다. 나는 내 꿈을 선택하려 한다.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아직 희미하기만 하지만 나의 북극성을 따라가려 한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 위해 사다리를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괴롭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영영 인정받을 수 없는 곳으로 물러설 수도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직 세 번째가 아직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분명하지 않은 것은 간절하게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찾지 않음은 게을렀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극한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보여주었지만 나의 정신은 나의 육체적 헌신을 따라가지 못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이 둘은 종이의 앞면과 뒷면과도 같다. 지금 나는 살아 있는 현장에서 고뇌하고 있다. 살을 파고 드는 정신적 추위와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영광의 빛을 쬐고, 한쪽에서는 좌절과 절망의 그림자 속을 헤맨다. 이 보다 멋진 역설이 어디 있을까? 두려운가? 정녕 두려운가? 그렇다면 뼛속까지 두려워하고 뼛속까지 괴로워하라. 결국 나는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즐기라. 미친 듯이 즐기라. 내가 선택한 '자발적 빈곤'과 '내 길을 선택한 대가'가 나를 미친 듯이 괴롭힌다. 답은 없다. 어디에도 없다. 그럴 땐 그저 가슴으로 품어라. 가슴으로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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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04:36:39 *.109.24.52

273일차 (3월 23일)

이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장생활이란 것이 어차피 남의 밥을 먹는 일이고, 어딜 가나 매 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조직 내에서 내가 몸담길 원하는 곳을 명확하게 준비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지금 내 삶의 최우선 순위는 연구원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어딜 가든 매 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결국 명확한 밑그림과 로드맵 없이 여차 저차 구구절절 하게 내 이야기를 피력하여 눈 밖에 나는 일 보다 함구하여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 과연 이게 정말 옳은 판단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기분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어디에 소속되던 간에 회사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어차피 이방인이고, 내 길을 갈 것이다.

출근 내내 김용규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지하철 역에서 회사로 걸어가는 30분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아주 잘 만들려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두의 간절함을 담은 총대를 앞장서서 맨 만큼 대충 만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빈 종이에 대략 레이아웃을 그렸다. 어제 재경 누님이 보낸 인터뷰 내용 요약 본을 열어 보았다. 와. 4장 분량이지만 너무 훌륭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와. 김용규 선생님께서 회신을 해주셨다. 코 끝이 찡할 정도로 아름다운 회신이었다. Alt-Tap 신공을 활용하여 오전, 오후 내내 정리하고, 사진을 취합하고, 편집하는 작업을 했다.

내일이나 내일 모레까지 완성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과 사진들이 충분하다 보니 미룰 필요가 없었다. 2~3번 읽어본 후 커뮤니티에 등재했다. 예비연구원 동기들과 사부님께 문자메시지로 알려드렸다. 다행이다. 인터뷰 전체 스크립트와 녹음파일은 따로 정리하여 메일로 보내도록 할 것이다. 커뮤니티에 올린 인터뷰에 선생님의 개인사를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함께 인터뷰에 참가했던 분들과 사부님께만 우선 보내드리고 개별적으로 요청하는 분들께 보내드리도록 해야겠다. 이틀을 녹음파일을 들으며 출퇴근을 했는데, 그 감동과 여운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내 길이 어딘지 더욱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커뮤니티에 올린 인터뷰 내용에 사부님께서 직접 댓 글을 달아주셨다.

"그대들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을 것이다.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소중함이다. 연구원을 마친다는 것도 책을 쓴다는 것도  함께 시작한 동지를 평생  껴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온 힘을 다해 그 시간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힘껏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냐?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느냐?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들만 면접에 오도록 해라."
   
아.. 나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너무나 많이 부족하다. 사람, 관계, 소중함, 동료애, 사랑.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간절하고 치열한 마음을 내 속에서 길어 올려 연구원 생활에 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모든 걸 다 바쳐서 할 것 같은 열의를 가지다 이내 식어버리는 냄비가 되고 싶지 않다. 내 삶에서 그랬던 몇 개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괴롭고 수치스럽다. 이번에는 다르다.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 균형과 조화의 가치를 버리지는 않겠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가슴을 울리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뿌리 같은 동아리라 여기며 살아보고자 한다. 여기서 모든 것이 비롯되어 회사를 비롯한 차가운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따뜻한 영혼의 모음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이끌어 나가고 싶다. 오늘 하루 나는 아주 많은 것을 얻었다. 이것이 순리였고, 이미 적혀있던 일이라면 이렇게 말하는 수 밖에 "마크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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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04:55:26 *.201.121.165





always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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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16:45:12 *.124.233.1
고마워요 형님! 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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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16:44:34 *.124.233.1

274일차 (3월 24일)

문요한 선생님의 칼럼이 가슴을 무찔러 온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드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저처럼 지금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렇다. 나는 분명히 제대로 고민하고 있지 않고 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하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방치되어 늘 고민으로 남아 있는 그 고민은 곪고 썩어 내 정신적 살을 파고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고민만 끌어 안고,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용기 있는 결단 없이 불평불만 가득한 넋두리만을 늘어 놓을 것인가? 이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자에 대한 이 세상의 저주인가?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 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은 그 만큼 내 마음이 내게 수 많은 행동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원하는 삶의 윤곽이 드러날 수록 지금의 삶과의 괴리감은 나의 가슴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퀸다. 쓰라리다. 너무나 쓰라리다. 지금의 상황은 극복해야 하는 상황인가, 아니면 벗어나야 하는 상황인가 묻는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밥벌이 그 이상의 이유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벗어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감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제기랄. 바로 그 지긋지긋한 두려움 때문이다. 말로는 뭐든 지껄인다.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둥, 이거 아니면 먹고 살게 없느냐는 둥' 하며 말이다. 분명 중간 지점이 있을 텐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뭔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과 가슴에 품고 있는 전제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지내다가는 내 가슴은 검게 타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과제들을 수행하다 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지만, 면접 여행 후 바로 연구원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책도 읽고, 칼럼도 쓰고, 죽음 편지도 써야 한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아내와 가족들의 미묘한 감정변화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때 일수록 더 큰 그림을 보자. 김용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자기계발에서 자기실현으로 자기실현에서 가치실현으로" 그렇다. 더 큰 그림을 보자. 분명 문제가 있다. 내가 나에게 하는 의식적인 질문과 나도 모르게 진행되는 무의식적 질문들에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아니한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러한 삶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자존심을 위해 쓸데 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귀를 틀어 막고, 눈을 가리며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것도 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용기를 내어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과도기적인 상황의 불가피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허나 자꾸 돋아 나는 문제의 잔가지만을 가지치기 해서는 결코 이 문제더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과감하게 뿌리로 파고 들어가 송두리째 근본원인을 동강 낼 필요가 있다. 해결책은 '대화'와 '먼저 손 내밀기'다. 과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내게 자신의 '의견'을 줄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문제를 끌어 안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나의 불 같은 가슴은 과연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버리고, 가볍게 그리고 단순하고 간소하게. 그러나 제대로 고민하고, 제대로 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용기를 내어 온 마음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온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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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5 19:10:27 *.124.233.1

275일차 (3월 25일)

처음엔 조셉캠벨의 <신화와 인생>이 <신화의 힘>보다 쉬웠다고 생각을 했는데, 조금 더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진득하게 앉아 집중할 수 있는 절대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주문했다. 김용규 선생님 책 두 권과 연구원 필독서 중 삼국유사와 괴테 자서전을 구입했다. 분량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간절하게 읽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고전과 위대한 삶.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책 속에 흠뻑 빠져들고 싶다. 현실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은 이 달콤한 유혹들이 요즘 나를 자꾸 충동질 한다. 허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하다. <신화와 인생>의 진도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지 않고 있다. 레이스 이후 긴장의 끈을 잠시 내려 놓았기 때문이다. 내일과 내일 모레 면접여행을 다녀온 뒤 바로 과정이 시작된다. 레이스 때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다음 주 과제의 책을 이번 주말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읽어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럴 시간이 없다. 다행히도 <신화와 인생>은 이미 읽은 책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고, 저자에 관한 자료도 레이스 때 갈무리 해두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문제는 지금과 같이 와해된 일상의 패턴에서 필사와 칼럼을 써내야 한다는 것. 마음을 다 잡고 레이스보다 더 간절하고 치열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엄청난 분량의 책, 그리고 과제, 과중한 회사업무, 놓칠 수 없는 관계와 현실의 끈. 아주 아주 위태위태한 외줄타기와 같다. 아주 정교하고 또 정교한 각도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한 편 미친 듯이 설렌다. 매주 위대한 스승들을 만나고, 한 꼭지의 나의 칼럼, 내 책의 초고를 쓴다. 그리고 매달 사부님과 사우들을 만난다. 몸은 엄청나게 고되겠지만 이 스펙터클 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내일 면접여행을 가면 이미 그 과정을 따끈따끈하게 경험하고 나온 선배들을 만난다. 너무나 설레고 기대된다.

아내가 많이 보고 싶다. 늘 곁에 있어주는 아내. 매일 새벽 아기같이 자는  모습을 보고 나와 퇴근하고 잠깐 대화를 나누다 잠든다. 매일 곁에 있는데도 너무 보고 싶고, 너무 그립다. 어머니, 아버지, 장모님, 장인어른, 동생네와 조카들, 처남내외. 소중한 친구들, 단군 사우들. 모두 그립고 보고 싶다. 죽음 편지를 쓰려고 한다. 모두 잠든 밤, 초 하나 켜놓고, 와인 한잔 하고 적어볼 것이다. 내가 떠난 세상을 그려볼 것이다. 아직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는데, 모두가 그립다. 죽었다고 가정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살고 싶다. 정말로 살고 싶다. 정말로 내가 되어 살고 싶다. 보고 싶고, 살고 싶다. 삶은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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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7 05:44:59 *.100.137.99

276일차 (3월 26일)

나를 진실되게 연다는 것은 이렇게도 힘든 일이다.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한 입문의례가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어제 밤 내가 나를 얼마나 닫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를 알고, 춤을 알고, 노래를 알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왜 쉽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그만큼 가둬두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한가? 정말 진실이 그러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분위기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문화에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다. 6기 선배들도 작년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음주가무로 나의 간절함을 측정했다면 나는 그리 높은 점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는 너무나 피곤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 견뎌냈다.

아내에게 연락을 못했다. 피곤했다. 잠이 부족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명료한 정신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일련의 나의 이러한 부적응(?) 행동들이 감점요인이라면 과감하게 받아들이겠다.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승의 깊은 눈빛과 쉽지 않은 동료들. 이 속으로 나는 들어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볼만한 멋진 일이다. 말로만 자꾸 지껄이게 되면 가슴이 공허해진다. 입다물고 몸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높은 기대를 하고 있다. 즐거운 일이다. 허나 굉장히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청년이다. 실수도 많이 하고, 어설프고, 부족하기 짝이 없다. 초반의 형성된 사람들의 높은 기대 수준과 여기서 비롯된 고정관념은 내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과제다.

강원도의 풍광은 아직도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에 봄이 찾아오려면 빨라도 5월초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보았다. 그리고 아직은 스스로의 가슴에 묶인 나의 영혼과 몇몇의 영혼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내게 주어진 1년 동안 내가 이르러야 할 곳이 바로 저들과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리라. 아주 견고한 껍질로 닫혀진 나의 마음을 어떻게 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심장을 감싸고 있는 호두껍질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시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 말씀이 옳았다. 우리, 아니 적어도 나는 시를 모르는 세대다. 철저하게 산문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그래서 가슴이 메마르고 열리지 않았다. 철옹성으로 단단하게 결박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웅의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1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귀환할 것인가? 어떤 불로장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올 것인가? 경쟁하지 않을 것이다. 솔선수범하고, 모두에게 배우고 익히며, 공헌하고 또 공헌할 것이다. 알고 있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뼛속까지 개인주의로 점철되어 온 삶이 공헌을 몸에 녹여낸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잘 하고 싶다. 정말로 잘 하고 싶다. 모두와 함께 한 배를 탄 운명. 나 그리고 너 우리 모두 앞에 어떤 험난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항해를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의 가슴 속엔 무엇이 남아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1년 뒤 이곳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날, 그날을 어떤 풍광일까? 이미 내 안에 씨앗은 뿌려졌고, 움텄다. 1년간 어떤 꽃으로 피어날 것인가? 스스로에게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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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04:28:13 *.124.233.1

277일차 (3월 27일)

'너는 할지니', '~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감은 자유로움을 차단하고 마음을 위축시킨다. 나에게는 큰 기대와 부담이 그렇다. 바로 이 부담과 기대야 말로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나를 위축시키는 찬물이 되기도 한다. 이미 빚은 과거의 영광은 이미 해체시키기로 다짐을 한지 오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에겐 충분한 시간이 없다. 내게 주어진 아주 짧은 시간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 지난 4주 간의 레이스 동안 나는 운이 참 좋았다. 주말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었고, 평일 날도 레이스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분주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주 앞서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다르다. 회사의 분위기도 조직개편의 시기라 뒤숭숭하고 조심스럽고, 주말에도 분주했다. 더욱이 지난 리뷰들에 대한 좋은 평가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는 그만큼 내게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불편한 감정들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레이스 때만 잘한 속 빈 강정이 되기 십상이다.

즐겁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연구원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위대한 스승을 모시고, 훌륭한 가르침을 얻고,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내 뜻과 가치, 전문성과 기술을 한 권의 책으로 엮기 위해 연구원에 지원했다. 이것이 내가 연구원에 지원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함께 하게 될 동료들과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그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배우고 그들에게 공헌하는 사우의 관계를 갖는 것 이 것이 내가 연구원에 지원한 두 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내가 몸 담고 있는 가정, 가족, 회사 안에서의 관계와 역할들, 다시 말해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보고자 함이다. 늘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애당초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가슴에 담지 않기로 했다.

함께 하기 이전에 홀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내게 있어 분명하고 자명한 진리다. 홀로 있을 수록 함께 할 수 있다.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속에 떨어진다. 특히 나와 같이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의 경우 더더욱 홀로 있는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라는 것은 지팡이의 한 쪽 끝이다. 한 쪽 끝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억지 감정을 자아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마음에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한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주말에 신성한 새벽 순례 길을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제 새벽 면접여행지에서 산책을 했지만 아주 짧았고 깊지 못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데 있다.' 다시 말해, 행복의 비밀은 모순과 역설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과 역설 속에서 어떻게 나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행복한 가정생활, 회사에서의 성취, 그리고 나를 발견하는 연구원 생활. 이런 내 역할의 트라이앵글에서 나는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인가? 때로는 조화와 균형이, 또 때로는 모두에 대한 몰입과 거리 둠이 필요할 것이다. 의지와 바램이 출발의 원동력은 될 수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손과 발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주변이 단순하고 간소해야 한다. 사부님처럼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앞서 장황한 다짐은 하지 않겠다. 거창하다고 해서 거창한 뭔가가 나오는 것은 아니니깐. 오로지 단순하고 간소하게, 입다물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일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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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19:25:38 *.124.233.1
드디어 정식으로 누나의 후배가 되었어요! ^^
너무너무 고마워요 누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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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09:40:15 *.98.16.15
경인아.. 추카해..^^
작년 5월 그대야 단군 킥오프에서 처음 만난게 눈에 선한데.. 이제 후배야가 되었네..
함께 오래 잘 걸어가보자. 아름다운 우리들의 삶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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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19:24:53 *.124.233.1

278일차 (3월 28일)

오늘 아침 7시 44분 나의 10대 풍광 중 한 가지가 현실이 되었다. 접혀져 있던 질서가 펼쳐지는 아름답고 위대한 순간이었다. 열 개의 꽃 송이 중 한 개의 꽃이 활짝 펼쳐지는 낭만적인 감상도 잠시, 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영광을 해체하고 서둘러 다음 여정을 위한 채비를 시작했다. 사우들과 함께 가상의 공간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줄 것이다.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 저곳 손볼 곳이 많다. 1등 항해사가 캡틴을 돕는 일이 이번 항해에서의 나의 막중한 임무다. 설렘에 가슴 뛰고 벅차 오르고, 부담감에 어깨가 무겁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빠듯할 것 같다. 이미 읽은 책이지만 읽을 수록 깊게 다가와 진도를 나가기가 어렵다. 깊게 읽고, 빨리 읽고, 많이 남기고 싶다. 이 모두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 내고 싶다. 시간이 부족하다 하여 대충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내 사전에 대충이란 없다. 선택의 패러다임이 아닌 몰입의 패러다임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몰입한 것과 몰입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깊이부터가 다르다. 절대적인 시간의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상대적인 몰입도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다. 또한 방법론에 얽매이지 않고, 지체 없이 읽어 내려가고, 써 내려가도록 할 것이다.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늘 곁에 있어주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 보라. 부모님들과 가족들. 300일 내내 함께 한 단군사우들, 이곳으로 나를 이끌어준 지혜의 여신 수희향 누나, 내 가슴 속에 영웅의 여정의 원형을 심어준 승완이 형 아니 승완 사부, 사우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명기형, 한규형. 100일차, 200일차, 300일차를 함께 해 온 사우 모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힘든 순간에 내 눈물을 보아주며 멘토링 해준 희석이 형, 휴대폰이 없어 형님께 연락할 방도가 없어 너무나 아쉽다. 모두에게 받은 도움에 누가 되지 않도록 2년간의 연구원 생활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할 것이며, 반드시 2년 후 나의 이름으로 된 책을 발간해야 하는 것으로 그 보답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결심이 오래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초심(初心)을 잃기 때문이다. 앞으로 2년 동안 내가 천착하고 또 천착해야 할 한 단어가 바로 '초심'이다. 레이스를 할 때의 그 간절함, 아니 그 이상의 간절함으로 매 주 책을 읽고, 칼럼을 쓴다. 이렇게 굳은 의지와 함께 중요한 것이 유연한 마음가짐이다. 뻣뻣하면 부러지기 쉽다. 말랑말랑 유연한 마음으로 스승과 동료들의 지혜와 긍정적 비판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든다. 어쩌면 내게 주어진 2년 동안 내가 가슴에 품어야 하는 것은 '불가능'일 것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들, 모순, 역설들을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가슴 속으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진 그것이 내면의 우주의 힘을 얻어 아름다운 창조로 빛을 발하게 하는 것.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재료로 한 연금술을 꿈꾼다.

아.. 잘 살고 싶다. 정말로 잘 살아보고 싶다. 삶을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다. 단 한 번 주어진 이번 생을 아름다운 소풍이라 기억하고 싶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이고, 인생은 슬픈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인생은 선물이고, 아름다운 여행이다. 아픈 은유보다는 아름다운 은유로 가득한 인생을 살고 싶다. 미친 듯이 공부하고, 미친 듯이 어울리고, 미친 듯이 놀고, 미친 듯이 향유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나의 꿈은 조르바의 영혼이다. 2년 후 이 세상이, 이 삶이 내게 주는 넘치는 이 가슴 벅찬 아름다움을 가득 담을 수 있는 더 큰 그릇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래! 나도 한 번 시처럼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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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9 16:06:01 *.124.233.1

279일차 (3월 29일)

단순하고 간소하게. 해야 할 일이 많고 주변이 분주할 수록 단순하게 간소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머리가 과부하 상태가 되기 전에 '일단 멈춤'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던 것을 잠시 내려 놓을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러한 들뜸을 가라 앉히기 위해서다. 지금 여러 가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우선은 가장 중요한 이번 주의 연구원 과제, <신화와 인생>은 오늘 중으로 필히 완독을 할 것이고, 내일부터 틈나는 대로 필사할 것이다. 이미 레이스에서 자료를 조사한 저자라 부담은 덜하다. 기존에 작업해 놓은 부분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추가하고자 한다. 금요일까지 저자에 관한 자료와 책의 구성에 관한 부분을 마무리 짓는다. 칼럼의 경우 오늘 새벽 모닝페이지를 쓰며 화두를 찾는 작업을 했다. 역시나 쉬운 주제는 아니다. 금요일을 데드라인으로 하여 북 리뷰, 칼럼초고를 완성한다. 주말에는 최대한 시간을 내어 다음 주 과제 도서를 읽는데 몰입한다. 미리 해두지 않으면 봄 꽃 만발한 4월이 고민 만발한 4월로 탈바꿈 될 수가 있다.

9~10일에 연구원 여행이 있을 것이고, 중순쯤에 회사의 목표달성 결의대회가 있을 예정이다. <변신 이야기>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모두 쉬운 책이 아니므로 최대한 토요일, 일요일 연속되는 시간 진득하게 앉아 몰입하여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연구원 생활 패턴에 관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지난 1년 의 새벽기상과 4주간의 레이스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최대한 초반에 저력을 발휘하여 미리 책을 읽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4주차의 두 번 읽기 기간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읽기 보다 더욱 더 몰입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의미를 가슴 속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연구원 과제를 해치워야 하는 번거롭고 귀찮은 과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처음부터 버려야 한다. 이는 내가 왜 연구원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미를 항심(恒心)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1년간 나는 스승이 마련해준 커리큘럼을 따라 그리고 스승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신화? 대체 그게 뭔데? 왜 스승은 신화를 연구원 과정에 처음에 포진시키셨을까? 신화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신 걸까? 선배들이 쓴 칼럼을 찾아 읽어 보아야겠다. 그러면 신화를 다양한 각도에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회계 년도 말이 되니 회사 내부도 뒤숭숭하다. 이런 뒤숭숭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과감하게 독립하는 길이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역량만 갖추어 놓으면 조직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스스로 선택한 고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 변모한 삶의 태도가 고립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영원한 겨울은 없다. 내게 다가올 것이 가혹한 시련일지, 따뜻한 봄날의 행운일지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내게 주어진 삶을 가슴으로 품을 것이다. 두렵고 떨리지만 견딜만하다.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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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0 17:15:21 *.243.13.23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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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04:07:18 *.109.80.2

280일차 (3월 30일)

분명하게 느꼈다. 새벽의 눈뜸이 설렘이 아닌 두려움임을. 그리고 또 동시에 쫓기는 마음을 느낀다. 단군일지를 써야 하는데. 이렇게 불편한 감정은 뭔가를 정리 정돈해야 한다는 행동신호이다. 나는 무엇에 쫓기고 있는가? 아마도 연구원 활동에 쫓기고, 회사의 마감에 쫓기고, 관계의 압박에 쫓기고 있다. 자! 관점을 달리해보자. 지나친 관심은 사절이지만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초대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던가? 나의 무의식은 그러한 것을 원하지 않았느냐? 늘 인정 받고, 관심 받는 일, 그것이 내가 늘 원하던 일이 아니던가? 이렇게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 미리 앞서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새벽에 불안함에 눈을 뜨고, 안 아프던 배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나의 마음이 현재 불안정한 상태라는 의미다. 과도기적인 불안감이다.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지는 않겠다.

이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각오는 이미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레이스를 할 때는 모든 상황과 여건이 나에게 맞게 돌아가 주었다. 가족들의 이해, 회사 내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남 등으로 충분한 나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게 운이 좋았던 것이고, 지금의 번잡한 상황이 어찌 보면 1년 동안 내가 겪을 나날의 표본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나는 날 수 없다. '누가 뭐라 하든 마음에 두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던가?'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성적에 대한 압박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주문하던 글귀다. 그렇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도 나오듯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한 때일 뿐인 것들이다. 그러한 것들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묵묵하게 내 페이스로 한 걸음씩 걸어나갈 것이다.

최상의 것을 추구하고 싶다. 아마도 나의 최상주의 테마와 성취자 테마가 나를 늘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매주 마감일이 있고, 주어진 절대적 시간이 있다. 아직도 수긍하긴 힘들지만 수긍할 것은 수긍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무리수를 던져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되면 금새 지치게 될 것이다. 나는 시간이 자유로운 아름다운 백수가 아니다. 또한 나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더 좋은 과제와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패러다임은 늘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레이스에서 어떤 두각을 나타냈건 간에 그런 영광들은 이미 해체했어야 한다. 동료들을 통해 내가 미처 놓쳤던 부분을 배우며 반성하고 보다 넓은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지, 저들의 선전을 시샘하거나, 저들의 어려움에 쾌재를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벌써부터 힘들고 버겁다면 생각해 볼 것. 이 길은 누가 선택한 것인가? 연구원의 길을 찾은 것은 누구인가? 누가 나를 여기로 불렀는가? 사부님인가? 선배 연구원들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왜 연구원을 지원했는가? 스승과 동료들을 통해 배우고 익히며 성장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을 통해 나의 첫 책을 쓰기 위함이다. 탁월하게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힘들게 갈 필요는 없다. 100% 완벽한 것도 없다. 최선을 다하되 주어진 시간을 다 활용했다면 미련을 버리고 과감하게 내려 놓고, 다른 과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So Cool 한 면모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다시 한 번 읊어본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에 두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의 도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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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18:36:40 *.124.233.1

281일차 (3월 31일)

험난한 파도가 동시에 몰아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정식 연구원이 되어 치러야 하는 첫 번째 과제 수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분주함과 동시에, 몸담고 있는 조직은 회계 년도 마감과 동시에 조직 개편으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출항과 동시에 큰 파도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이 격랑을 피하고자 한다면 모두 그만두면 된다. 회사를 그만 두거나 연구원을 그만 두거나 아니면 둘 다 그만 두거나.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어떤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누구도 내게 강요한 적이 없다. 이 회사도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해서 들어온 곳이고, 연구원 또한 1년 이상의 간절한 준비과정을 통해 들어온 과정이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가슴 속에 이는 격랑은 두 개의 거대한 파도의 부딪침이리라.

솔직히 말해 힘들다. 두 어깨에 얹혀진, 두 손에 꽉 움켜쥔 것들을 모두 놓아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지금 내 가슴 속은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격랑으로 요동치고 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수 많은 재능, 기질, 자아들 간의 마찰, 그리고 관계의 문제. 삐끗.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련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 시련의 시간은 잠시 일렁거리는 물결일 수도 계속해서 몰아치는 거친 파도일 수도 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걷거나 계단을 오르자. 명상하는 순간만큼 모든 것을 내려놓자. 이미 나는 길을 떠나왔다. 다시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이 모든 현상은 결국 내가 빚어낸 것들임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의 한계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 결단은 그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하더라도 늦지 않다. 연구원 생활에 더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 조직에 남아 미래에 겪게 될 풍랑을 당겨서 경험하는 것이다. 세상의 맛은 생각보다 매콤하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고통은 분명 상대적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그렇다. 일 순간 지나가는 바람이리라. 설사 이런 격한 바람이 다음 날 또 다음 날 불어온다 하더라도 오늘을 최선을 다해 보내리라.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삶은 정말로 힘든 삶인가? 견디기 힘들만큼 힘든 삶인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 정말로 없는 것인가?

살기 위한 새로운 생존 방법을 간절하게 찾으라는 행동신호다. 그래서 연구원의 길을 택했다.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사회적 의무들. 나의 가장 커다란 고민인 그것이야 말로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잘 되었다. 지금 더 불행하다면 그 반대편에는 더 행복한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판 위에 나는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한다.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평온하게 눈을 감고 나를 덮쳐오는 파도를 온전히 맞으리라. 그렇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나를 부단히 비우는 일이다. 나를 부단히 비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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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1 18:06:34 *.124.233.1

282일차 (4월 1일)

4월의 첫 날이다. 조직개편이 있었지만 5년간 몸담아온 부서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같은 부서의 차장님이 부서장으로 되었다. 하늘이 나를 도운 것일까? 주변 환경변화가 최소화 된 셈이다. 연구원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게 된 나로서는 다행스러워 할 수 밖에. 내심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바라기도 했지만, 지금 내 삶의 최우선이 연구원 활동인 만큼 익숙한 곳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낫다. 그런 면에서 하늘은 분명히 나를 도와준 셈이다.

점심에 연구원 선배인 병곤 형님, 경빈 형님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연구원 초기 두 사람의 연구원에 같은 건물에 함께 있다는 사실도 내게는 어떤 운명이나 계시처럼 느껴진다. 그들과는 어떠한 장벽이 없다. 내 고민의 배경을 구구절절 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고민의 본질에 닿을 수 있다. 이런 동아리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두 선배들로부터 정신적 위로를 얻었다. 오전은 정말 외롭고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나도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 내 작은 바램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것.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두 형님은 너무 고립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 굳이 고립될 이유는 없다. 스스로 고립을 택했던 이유는 나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너는 할지니..'로 점철되는 조직의 타성으로부터 나를 해체시키고, 익숙한 것과 결별을 통해 나를 찾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관계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다시 같은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고, 같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잘 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좀 더 완곡하게,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자연스레 마당으로 나아갈 것이다. 억지 웃음을 자아내지 않을 것이고, 나를 버리고 관계를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조직에 목숨 걸지 않더라도 내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쉬워 할 것은 없다. 아쉬움을 자아내는 것은 인정받고, 인기를 얻고 싶다는 나의 욕심과 집착 때문임을 안다. 그저 어떤 작위적인 행동 없이 자연스레 마당으로 나가 어울릴 것이다. 저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저들 또한 나와 같이 두 어깨와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든 측은한 낙타의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더 이상 상황논리의 노예가 되어 알고 보면 선량한 나의 이웃을 악마로 투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내가 극복해야 할 삶의 장애다. 이제는 양손에 든 날카로운 비수를 내려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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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3 04:41:25 *.109.54.94

283일차 (4월 2일)

뭔가 두렵고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아무래도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여러 차례 생각을 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완전함이 아닌 탁월함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고, 우선은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완성하고 그 안을 점점 다듬는 방식을 써나갈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마음보다, 내 마음에 더 충실한 것이 낫다. 적어도 내겐 그게 더 옳다. 지금은 너무나 분주하고 걱정되고 두려워 앞뒤, 좌우 분간을 하기도 어렵다. 또한 내가 정말로 잘 하고 있긴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따뜻한 봄이 다가와 가슴은 두근거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나와 함께 하고자 하는 가슴들의 메아리들이 들려오지만 나는 침묵하며,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다.

내 삶은 지금 이대로도 완전하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삶 자체가 불완전 한 것이고, 불안정 하며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지금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파도 없이 잔잔하게 고여있는 물은 살아 있는 물이 아닌 썩은 물이다. 일렁이는 파도 이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비록 내 마음은 작은 풍랑과 파도에도, 스쳐 지나가는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하지만 이제는 살갗을 애는 듯한 고통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미리 두려워 했던 것 이상으로 괴로웠던 적은 없었다. 아니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게 해결책인 것 같다. 삶은 고통의 바다이고, 슬픈 곳이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의 것들은 아니다. 죽여버려라! 죽이고 또 죽여버려라! '너는 할지니!'라고 외치는 모든 것들을.

잠이 부족하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연구원 생활은 힘들 것이다. 언제는 내가 충분한 잠을 잔 적이 있던가? 그리고 이제와 갑작스레 잠 부족을 탓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가? 아마도 건강을 위한 항상성 본능이 감정을 거쳐 이성을 향해 강력한 항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먹을 것과 잠자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긴 힘들지만, 나의 의지로 제어하고 싶었고, 한 동안 그래왔다. 최근 들어 그런 모습들이 조금씩 와해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기반이 흔들린다는 메시지다. 나의 일상을 받쳐주고 있는 든든한 새벽기상은 여전하지만, 건강을 받쳐주던 운동량이 줄어들고, 음식을 조절하는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월요일 마다 거행하는 '자발적 빈곤'을 너무 의존하는 것 같다. 다시 적게 먹기를 시작한다. 잠은 참 풀기 힘든 숙제이다. 충분한 수면은 수련의 절대 시간을 잡아 먹고, 부족한 수면은 집중력과 각성의 질을 떨어뜨린다. 두 가지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이 나를 찾아와 줄 것이라 믿는다.

죽음 편지를 쓸 것이고, 중랑천을 걸을 것이며, 이번 주 과제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이번 주 그리고 이번 달의 계획을 할 것이며, 여러 가지 밀린 사안들에 대해 정리 정돈을 할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들에 대한 집착은 몇 곱절씩 쌓여만 간다. 아마도 출가한 사람들의 마음이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도(道)가 높아질수록 인심(人心)은 성글어진다는 말을 법정스님의 수필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출가하지 않고 재가를 택하여 수련하기로 한 이상 있는 그대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늘 내 마음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허둥대지 말 것. 과욕을 부리지 말 것. 오직 한가지씩 차근차근 해 나갈 것. 한 걸음씩 나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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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1.04.03 23:54:50 *.105.125.156
경인씨
지난 면접여행 때 고마웠고 즐거웠어요.

우리 좀 더 크게 생각합시다. 그러면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요.
좀더 깊이 있고 높고 멀리까지 생각하면서 함께 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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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4:27:35 *.109.25.31

284일차 (4월 3일)

주말이라고 예외는 없다. 이렇게 주말, 쉬는 날 할 것 없이 새벽에 일어나게 된 것이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렇다. 쉬고 싶은 마음도 많다. 하루 정도는 새벽 기상 따위 무시하고 기절한 듯이 자고 싶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나를 다그친다. 쉬지 말고 가라고. 다른 사람의 눈 의식하지 말아라. 그들이 네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니.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써본 적은 없다. 솔직히 말해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글을 씀으로써 가슴 속에 담겨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은 선악이 없는 그저 감정의 원형들인 경우가 많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이러한 감정의 표출이 없었다면 어떻게 삶을 살았을까? 새벽, 글쓰기, 그리고 독서가 없었다면 지난 1년과 지금의 내 삶은 어떠했을까? 후회가 되는 것이 있다면 맑은 정신을 쓰지 못했고, 제대로 된 독서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많이 웃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지낸 시간이 많았다는 것.

이번 주 중 하루는 오롯이 시간을 내어 나의 유언장을 만들어야 한다. 아.. 별로 경험하고 싶지가 않다. 죽고 싶지가 않다. 벌써 내 마음 속 방어기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자꾸만 미루고 있다. 그러나 한 번은 마주쳐야 할 내 삶의 종점이다.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감하고 싶지만,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벌써부터 가슴이 찌릿해 온다. 언제쯤 작성하는 것이 좋을까? '자발적 빈곤'을 실천하는 오늘 밤에 고즈넉한 마음으로 써볼까? 심리적 부담이 크겠지만 그냥 써보자. 미루지 말고 써보자. 과연 내가 없는 빈자리를 보며 나는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 생에 대하여 나는 얼마만큼의 애절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있는가?

<변신이야기>를 읽었다. 여전히 시간은 부족하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막힘은 없다. 스승의 옛 이야기의 많은 TOPICA가 여기서 나온 것을 보니 더욱 더 즐겁게 읽혔다. 그리고 고전이라는 부담과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술술 읽히는 그런 류의 책이다. 원래는 하루에 다 읽기를 목표로 했지만, 역시나 절대시간이 필요하다. 다음 주로 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겠다. 새벽에 '중랑천 순례길'을 걸었다. 지난 주는 면접여행이라, 사부님과의 산행과 팬션 근처 새벽 산책으로 갈음했다. 그래도 한 주 빼먹었다는 느낌은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아닌 걸, 내 마음은 온갖 짜증과 수다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지난 한 주간 너무나 많은 것을 담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들어주려고 했다. 내 마음은 낯설어진 환경에 대해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하고 있었다.

같은 부서가 두 개로 갈라지고, 사람을 혹사시키기로 유명한 상사가 보직을 부여 받았다. 그리고 프로젝트 하나를 추진하게 되었다. 회사 프로젝트, 개인 프로젝트, 두 개의 길을 동시에 걷게 된 것이다. 그렇다. 어찌 보면 지난 6개월간 무위도식한 기분이었다. 밥값은 해야지. 이왕에 하는 것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임하자. 1인 기업이 되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여긴다. 하루의 포트폴리오를 짜임새 있게 재 구축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지난 한 주 너무 분주하여 수첩에 기록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번 주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기록은 여유다. 내 마음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다 지난 기록을 못한 것을 탓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 기록해 나가면 되나. 형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본질이 위축된다. 이 점 명심해야 한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고, '자발적 빈곤의 날'이다. 오늘 하루 더 행복하게, 더 많이 웃으며, 덜 스트레스 받고, 더 어울리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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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4:22:57 *.109.25.31

285일차 (4월 4일)

마음이 들뜨거나 주변이 번거로워질 때 내가 취하는 방법 중 하나는 침묵이다. 가장 좋은 마음 가라 앉히기 방법이다. 입다물고 나를 번거롭게 하거나 들뜨게 하는 것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별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냥 순간적으로 감정이 일렁여서 생기는 일들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들뜨게 되면 생기는 안 좋은 현상이 뜨거운 기운이 얼굴로 올라와 벌겋게 달아오르고 피로가 밀려온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번거로운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 하나로 침묵을 필요로 하는 상태 중 하나가 부담감이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주변의 기대와 시선들 그리고 일들. 이러한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내 가슴 위에 큰 돌을 얹어 놓은 듯한 답답함을 가져다 준다. 요즘 들어 이 들뜸, 번거로움, 부담, 쫓김 등으로 명치 콕콕 찔리듯 아프다. 아마도 신경성 위 뭐시기가 도진 것 같다.

30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명료한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알 수가 있다. 잠이 부족하여 흐릿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겐 졸음으로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명료한 정신 상태에서는 몇 장의 책을 아주 깊게 읽을 수 있는, 그 행간에서 인류의 역사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을 체험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이렇게 상대적인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충분한 수면이고 휴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단한 길을 자처한 것은 다름 아닌 나. 달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걷고자 한다.

지금의 내 삶을 고통이라 여기는 것, 다시 말해 언젠가 다가 올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희생의 재물로 쓰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 오늘,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 집 한 채를 위해, 차 한 대를 위해, 베스트 셀러 한 권을 위해, 유명인사가 되어 명예를 얻기 위해, 돈을 긁어 모으기 위해 소중한 '오늘'을 희생의 재물로 쓰는 것에 반대한다. 오늘, 지금의 고단함은 그런 현재의 희생에 대한 고됨이 아니라, 나의 '천복과 희열'을 누리는 행복한 고됨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행복하게 고된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희생으로 지금 이 순간 불행하다고 여겨지는가?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좋고, 금연하는 것도 좋고, 살을 빼는 것도 좋고, 운동하는 것도 좋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물어라. 희열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그저 따라가는 척하긴 하나 괴로운 것인지.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수련하고 있는 내게, 새벽 수련과 고된 연구원 생활과 회사 일은 어떤 것인지 명료한 정신으로 맑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차를 타는 여전히 고된 낙타가 되는 것인지, 포효하는 사자가 되기 위함인지 매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 쉬운 일은 한 가지도 없다. 나뿐만이 아니다. 보기에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쉬운 삶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그림자, 삶의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무게에 숫자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오늘 내가 읽을 책, 그리고 수없이 써내려 갈 글들은 고된 낙타의 삶으로 가고 있는 행위인 것인가 아니면 사자로 거듭나기 위한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이왕 가는 것 행복하게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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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18:26:51 *.124.233.1

286일차 (4월 5일)

불현듯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겉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라는 회의다.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애당초 무리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들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들은 나의 간절함에 대한 시험일 것이다. 용두사미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불안함이 밀려왔다. 그렇다. 시간이 부족할 때도 넉넉할 때도 있을 것이다. 자신감 있게 수행할 수 있는 과제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할 과제도 있을 것이다. 나의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할 수 있는 과제가 있을 수 있고, 절반도 채 발휘할 수 없는 과제가 있을 수도 있다.

초점을 놓치지 말라. 과제를 해야 하는 것은 뭔가를 해치우듯 해야 하는 일이 아니고, 인류의 스승에게 배우라는 것이다. 1주일이라는 시간은 분명히 짧다. 위대한 고전을 읽어내고 제대로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무리한 과제를 우리에게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런 패러다임부터 바꾸어야 한다. 스승이 우리에게 과제를 부여했다고 여기는 수동적 자세는 뼛속까지 파고든 제도권 교육의 독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수동적 자세는 버린다. 물론 내가 만든 지적 컨텐츠는 누군가에게 보여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배제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주가 아니라는 얘기다. 리뷰를 통해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위대한 스승의 정신을 배우고, 고전의 주옥 같은 문장을 배우고, 저자에 빙의 되어 내 책을 만드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내 책의 꼭지 글을 쓴다. 한 주간에 해내기는 정말로 벅찬 과제임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누가 이러라고 시켰던가? 어릴 적 학교 가기 싫은 아이를 떠미는 부모님처럼 누가 이 과정을 등 떠밀듯 떠밀었는가? 스승이 이리로 와서 이거 좀 해보라고 부탁하셨는가? 이 모든 선택은 전적으로 내가 한 것이다. 훌륭한 스승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법을 배우고 익히고, 그렇게 얻은 배움을 초석 삼아 내 것, 내 세상을 하나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세상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빚어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고행 길, 아니 꿈 길이다.

아마도 이 길을 걷는 동안 수 많은 갈등과 시련, 위기와 만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간절함에 대한 하늘의 시험이 될 것이다. 이 길 말고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다. 회사 안에서 버티고 버티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속세를 떠나 출가의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고, 자연으로 가서 전원 생활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풍성한 삶이다. 그렇다. 아직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타성에 나를 맡기고 싶지가 않다. 지금이야 때 되면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의 가치가 내가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는 가치들 보다 월등히 앞서지만, 내가 하는 것들이 매일의 힘, 이것에 의지하면 세월이 나를 키워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라 믿는다.

힘들고, 지치고 두렵다.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징징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다. 다시 같은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내 선택은 다르지 않다. 이 이상 완벽한 점진적 출가가 어디에 있는가? 절대적인 시간의 문제와 밥과 존재의 갈등은 평생의 과제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내가 바라는 안락함은 죽음밖에는 없을 것이다. 정지되어 있는 것은 죽은 것이다. 고여 있는 것은 썩게 된다. 부단히 변신하고, 부단히 변화해야 한다. 그렇게 역동적으로 흐르고 또 흘러야 한다. 한 연구원 선배의 말처럼 나는 인생의 단 한 번의 '인생 MBA'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번잡할 수록 단순하고 간소하게 생각한다. 삶은 복잡하지 않다. 자연도 복잡하지 않다. 인간의 인식만이 복잡하다. 모든 것은 결국 단순하고 간소하다. 삶을 기뻐하라. 스스로 기뻐라 하라. 그렇게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뻐하게 하고, 삶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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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1.04.06 12:33:25 *.136.209.2
경인아.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 같구나. 생업과 꿈이라는 두가지를 다 가지고 가야하지. 이성은 두개의 균형을 잘 잡아가리라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무척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단다. 이건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니 자신 있게(?) 애기할 수 있지.

너의 글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해. 하지만 경인이 넌 (피 틀리니 ㅋㅋ) 잘 해 낼거다. 그리고 그 균형점을, 조화를, 대극의 합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여다오. 너, 그리고 네가 나침반이 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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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19:22:12 *.124.233.1
힘들어요 형님..ㅜㅡ
곧 보게 되겠지요?
보고싶구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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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19:21:26 *.124.233.1

287일차 (4월 6일)

초심자의 행운이 끝나고 가혹한 시련이 시작되는 것인가? 상황이 어찌되었든 징징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상황과 현실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내가 현실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을. 당황스러워 하지도 허둥대지도 않을 것이다. 무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틸 것이다. 또 알고 있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진짜로 현명하고 지혜롭기 위해서는 '주관적 몰입'과 '객관적 관조'의 조화가 필요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객관적 관조'다. 지금 나의 정확한 좌표와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가 1년간 공부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마음이 가는 분야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러나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 두려움, 바로 그 밥 그릇, 그 지긋지긋한 현실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치솟는 독기를 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길. 오로지 짬을 내어 글을 쓰는 것만이 나를 위로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상황이 나를 묶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를 묶는 것인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없다. 그리고 회사 밖에 있는 시간을 결코 회사일로 얼룩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다. 한 지점이 있다.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한 지점이 있다. 나는 그 한 지점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리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즐길 수 있다. 결국 행동을 가로막는 것은 과중한 일이라기 보다는 쫓기는 마음, 두려운 마음, 두려울 것이라는 마음 들이다. 사부님의 깨달음. 두려움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치솟는 독기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에너지는 감정적, 감성적, 정서적 에너지다. 이 에너지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다. 알고 있다. 그렇게 나온 글은 배설적인 글이고, 형편없는 글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렇게라도 뿜어내지 않으면 그 뜨겁고 독한 열기는 나의 내면을 태울 것이다.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분출할 수 있고, 분출시킨 후 가라앉힐 수 있어서 다행이다. 행운이다. 상황에서 벗어나 마음을 홀가분하게 내려 놓자. 그리고 혼탁해진 마음의 침전물들을 가라앉힌 후 차분한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그래야만 경솔해지지 않을 수 있다. 현실에 적용시키지 못하는 정신은 공허하다. 공허해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거다. 내가 있는 모든 곳에서 아름다움을 느껴보기 위해 버티는 것이다. 정 견딜 수 없다면 그때 그만 두어라.

이렇게 치일 때는 늘 나보다 힘겨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된다. 바람 부는 강에서 다슬기를 잡으실 나의 아버지, 공사장에서 힘겹게 육체노동을 하는 분들, 밤을 지새며 운전을 하시는 분들, 독거 노인들, 굶는 아이들, 생존 자체가 지상과제인 저 먼 아프리카의 아이들. 내가 불행한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라. 정말로 불행한가? 정말로 불행하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행하단 말인가? 이 불행을 빚은 것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다. 결국 나다. 결국 나 자신이다. 이 모든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다. 결국 내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은 정신적 불행인 것이다. 그렇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오로지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허나 이 마음 하나가 가장 어려운 걸 어쩌랴. 순간 순간 모두 내려 놓는 연습을 하자. 좋아질 것이다. 좋아지리라 믿는다. 가혹한 시련? 추운 겨울? 자신의 삶에 대한 무례한 은유다. 삶을 기뻐하는 삶, 삶 자체가 선물인 삶을 살 것이다. 부정적인 꼬마 병아리에게 불꽃 슛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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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7 18:26:59 *.124.233.1

288일차 (4월 7일)

한 쪽이 더욱 더 빛을 바랠 수록 반대편의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지금 나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은유다. 내 꿈이 더 분명해지고, 더 간절해질수록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생활의 그림자는 짙어진다. 업무 자체의 성과, 관계 모두가 삐걱거리며 힘들다. 하루도 이런 고민과 회의에서 자유로운 날은 없었다. 모험을 떠나오기 전이라고 해서 이런 고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막연하게 나마 나는 내 삶을 살 것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 삶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여기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내가 살아야 할 삶이 점점 명료해질 수록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과 이곳을 가르는 경계선은 현실과 의무라는 미명아래 나에게 낙타의 삶을 종용하는 밥벌이다.

지금 내가 힘들어하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바로 시간과 관계이다. 내 꿈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한 수련시간이 필요하다. 새벽 2시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하나는 관계다. 가족, 친구, 회사의 기대수준, 그리고 의무 그것이 가장 무겁고 버거운 멍에다. 내 의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런 류의 라이프스타일 밖에는 없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야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이런 소모적인 수련만이 답인가? 지금 내 이야기의 전제는 모두 외부의 어떤 강압이다. 그 강압을 과감하게 떨치고 떠나느냐 아니면 묵묵히 감내하느냐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무엇이 나를 가로 막고 있는지 알고 있다. 바로 매월 들어오는 그 먹이, 그 밥이다. 그 먹이와 밥이 사라지고 나면 당장 내 아내, 내 가족이 힘들어진다. 그로 인하여 생길 고통이 지금 견디고 있는 이 고통보다 더 클 것이라는 무의식적 판단, 아니 의식화 되어버린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는 할 말이 없어진다.

좀더 세분화하여 표현하자면 가정, 회사, 연구원 생활의 불균형 때문이다. 불균형은 나의 과욕에서 비롯된다. 내가 현재 시점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량이 100이라고 하자. 그리고 각각의 역할에서 평균이상 수준의 성과를 내기 위한 에너지가 50이상이라고 하면 각각의 역할에서 최소한 평균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겐 총 150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나의 역할은 가정과 회사 이 두 가지 밖에 없었으므로 50:50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살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삶은 내 삶이 아니며 장기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판단에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다른 역할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100뿐이다. 33:33:33은 모두가 어정쩡하다. 마음은 회사를 떠나 가족들의 양해를 구해 40:60의 비율로 연구원 생활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회적 다르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레이스를 하며 가정:회사:연구원=30:20:50 비율로 유지해왔다. 그러나 갑자기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맡고, 바쁜 일들이 덕지덕지 붙어 20의 에너지로는 턱없이 부족해지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 나의 괴로움의 근원이 되었다.

그렇다. 내게 필요한 것은 경영이다. 자기경영이 내게 필요하다. 희소한 자원을 제대로 운영하여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 그것이 경영의 정의라면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경영이다. 힘들지만 내적 자원을 역할별로 고루 분배하여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하다며, 그만 둘 수도 없는 회사에게 독설을 퍼부어가며 징징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연금술이다. 삶의 연금술이 내겐 필요한 것이다. 연금술이란 무엇인가? 아주 미묘한 영약과도 같은 것이다. 단 1의 에너지를 100으로도 올릴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마법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그런 것만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서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 연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다. 그것은 사람 과의 관계 속에서도 발휘될 수도 있고,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발휘될 수 있으며, 연구원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도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영리함, 지혜로움, 적절한 상황판단력, 따뜻한 눈매 등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영향력의 원' 밖에 있는 일들에 치일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정성껏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나를 하더라도 정성껏 성의있게 하는 마음, 하나에게 하나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지혜롭게 넘어갈 수 있는 유연함, 탁월하진 않더라도, 완벽하진 않더라도 부족한 시간을 가꾸어 성의 있게, 정성을 담아 수행한 연구원 과제.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자. 불평과 불만은 시간낭비다. 그것은 에너지를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방출하는 소모적 행위다. 삶의 연금술. 좋다 '삶의 연금술' 나의 새로운 목표는 삶 속에서 연금술을 연마하고 이 연금술로 내 삶을 가치 있는 삶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지독한 부정에서 또 지독한 긍정을 이끌어 낸다. 이 또한 삶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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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22:14:53 *.109.24.233

289일차 (4월 8일)

밤 10시가 다된 시각 홀로 사무실에 남아 있다. 일도 물론 많지만 평소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야근 족들이 모두 일찍 퇴근하여 조용할 것 같아서다. 아내도 오늘 부서에서 워크샵을 가서 집에 없다. 무엇보다 연구원 활동을 함에 있어서 가장 귀한 시간인 주말이 내일과 모레 연구원 총회로 납부되었기 때문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나태해지는 집보다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회사가 낫다. 더 좋은 건 아무도 없이 조용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아주 하루하루가 슈퍼 초 ULTRA 스펙터클 하다. 하루에 도대체 몇 가지의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남편, 아들, 종업원, 프로젝트 리더, 연구원, 상담가, 작가 등 수 많은 역할을 오가며 정신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는 한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역동적이었던 이때를 가장 가슴 깊게 추억하지 않을까 싶다. 이 명치를 쿡쿡 쑤시는 긴장과 스트레스의 나날, 나에게 주어진 낙타의 삶을 한탄하면서도 꿈 또한 악착같이 붙잡아 매달리는 근성. 무엇보다도 폭풍우 같이 요동치는 내면의 격랑을 관찰하고 다독이는 내적 성찰이야 말로 이 시기를 거치며 얻게 될 가장 귀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나의 목표는 지금이 아니다. 나의 목표는 '별'이다. 지금 내가 무지막지 읽고, 무지막지 쓰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별'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끊임없이 꾸준히 공들여온 시간이 그 첫째일 것이고, 비효율을 과감하게 잘라버린 그 스마트 함이 두 번째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 무식하고 용감하기만 하다. 현명하고 지혜롭지 못하다. 물론 내가 추구하는 것이 효율 지상주의는 아니지만, 불필요한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불필요한 어리석음, 무식한 부지런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깊은 글을 쓰는 것은 근육을 키우는 것과 너무도 닮아있다. 처음엔 그 벽을 넘기가 너무나 뻐근하다. 뻐근해져서 쉬면,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딱 거기까지거나 그 근육은 말랑말랑 해지는 것과 같다. 그 뻐근한 한계를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넘어서면 딱 그만큼 깊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한 근성이 필요한 것이다. 스승이 해주신 말씀을 늘 잊지 않는다. '성실하다고 모두가 위대한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나,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모두 성실하다.' 그렇다. 스마트하게 성실하자. 그리하여 매일 해내고, 매일 깊어지자.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따끈한 내 책 한 권이 내 손에 쥐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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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23:53:57 *.109.24.233

290일차 (4월 9일)

그렇다. 나는 형광등이었던 적이 많다. 그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때의 추억을 가슴 시리게 추억하고는 한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 느껴지는 것은 벚꽃의 아름다움 보다는 오랜 시간을 차 안에서 보는 뻐근한 피로감, 그리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꼈을 때 느껴지는 번잡함이다. 아마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르게 되면 여행의 추억이 사무치게 다가올 것이다.

나는 언제쯤 현재를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는 어제 제대로 죽었는가? 라고 자문해 본다. 그 어디에도 '~해야 한다'라는 규정은 없다. 그저 언제나 내가 쓰고 싶은 만큼의 페르소나를 쓰고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의무감이란 없다. 다만 내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싶은 것은 지금을 살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언제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현재의 가치를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말이다.

벌써부터 머릿속에 온갖 번뇌망상이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당장 완성하지 못한 지난 주 과제의 필사자료와 다음주 읽기 시작할 책의 만만치 않은 분량, 선배를 탐색한 결과를 담은 꼭지 글. 대충을 잘 못하는 내겐 육중한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온갖 걱정들이 피어 오른다. 이것도 습관인 것 같다.

교류를 통해 나를 더 확장시킬 수 있었고, 나의 한계 같은 것도 볼 수 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는 나를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지금 당장은 피로감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크지만, 이러한 부연 피로감이 사라지게 되면, 아름다운 맑은 추억들이 생각날 것 같다. 포항 구룡포와 경주 벚꽃, 입학식과 장례의식, 진평왕릉에서의 기억과 사부님과의 산책 등 아주 많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하게 올 봄의 추억으로 간직될 것 같다.

하루라도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글쓰기 없는 하루가 이렇게 공허하게 다가올 수도 있구나.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불편했다. 집에 돌아오니 너무나 좋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단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오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아마도 죽었다 다시 태어나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리라. 아내가 너무 보고 싶었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웃으며 나를 기다려주는 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겐 행운이다. 아.. 고맙구나 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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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04:31:30 *.109.24.233

291일차 (4월 10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이렇게도 지속적으로 내게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이게 정말 맞는 선택이었을까? 이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내가 정말 제대로 가고 있긴 한 걸까? 아마도 이러한 내 선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내내 내 주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명료하게 이 질문에 대해 답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만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단 한 번도 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찌 보면 정말 나에게 유리한 것만 취하기 위해 이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자!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는 패턴을 과감히 중지시키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순간부터 내가 행복해지려면 나는 무엇을 하면 되는가?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서, 행복을 뒤로 미루지 않고, 지금부터 행복해지려면 나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 되는가?

우선은 허둥지둥 대는 그 마음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실체가 아닌 내적 비난과 외적 비난의 볼륨을 줄인다.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직접, 잘했다 혹은 못했다라고 이야기 한 적 없다. 오로지 나의 인식과 고정관념, 나약함이 불평 불만을 다른 사람의 눈과 목소리를 빌어 나를 차갑게 바라보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의 실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심마에서 당장에 헤어나오지 않으면 제압당할 수 밖에 없고, 그 제압 당함은 슬럼프로 자신을 추락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는가?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영향력의 원의 영역과 그 밖의 관심의 영역을 분명히 구분한다. 그리고 영향력의 원 안에 것들에 역량을 집중한다. 그 영향력의 원 안에 것들을 한 가지씩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늦을 것이라는 두려움, 내용이 형편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회사일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일 뿐 그 어느 것도 실제로 일어난 것들은 없다. 따라서 모두 영향력의 원 밖의 일들이다. 그렇다. 내게 주어진 새벽의 2시간, 출퇴근 길 지하철 안, 점심 시간이 나의 영향력의 원 안의 시간들이다. 모두 그렇지만은 않다. 약속이 있을 수도 있고, 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그 시간들을 활용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씩 차근차근 실천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걱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이러한 걱정은 지금이기 때문에 생긴 그런 류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홀로 독립하게 될 경우 마치 쓰나미처럼 쏟아져 들어올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나는 이런 문제들을 아주 이른 시기에 아주 깊게 체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꽤 괜찮은 나이, 괜찮은 시기에 문제의식을 가졌고, 아이가 있어 시간 내기가 아예 불가능해 진 것도 아니다. 이 두 가지 환경이 모두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도전하고, 그 도전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이 모든 고뇌와 두려움 모두가 수련의 과정이다. 언제 어디서고 이러한 두려움이 나를 또 제압할지 모른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다시 찾아오지 않길 바라는 것은 배고픔이 졸음이 찾아오지 않길 바라는 것과 같다. 자연스러움이다. 굳은 살처럼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바로 이것이 관념적인 것이 아닌 실존적, 실제적,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 말로만 지껄이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는 나를 비롯하여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변화와 성장을 안겨줄 수 없다. 완벽하게 가고자 하는 그 굴레를 박살내 버리고 저리로 뻥 차버리자. 쉽게 가자. 그래 쉽게 가자. 그리고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가자. 그렇게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늦은 것은 없고, 불가능한 것은 없다. 모두가 처음 한 걸음에서 비롯되고, 그 한 걸음이 조금씩 쌓여 그 긴 길을 완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려운 감정으로 상징되는 완벽주의와 성급주의를 내 세계에서 과감하게 걷어내고 부족함을 엉성함을 즐기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한 걸음씩 간다. 역시 글은 이렇게 자기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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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18:24:19 *.124.233.1

292일차 (4월 11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새벽에 일찍 눈이 떠졌다. 물론 수면 시간은 5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여독이 풀렸는지 풀리지 않았는지도 느끼기 힘들다. 아무리 정신이 없더라도 한 번에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된다. 그래서 가장 먼저 희석 형님 인터뷰를 정리하고 칼럼을 쓰기로 했다. 출근 길에 어제 버스 안에서 녹음한 인터뷰 내용을 들으며 메모를 통해 아웃라인을 잡았다. 이거 참 매력적인 일이다. 지난번 김용규 선생님 인터뷰 후 녹음된 내용을 다시 들으니 아주 좋았는데, 이번 희석형님과의 인터뷰도 다시 들으니 당시에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인간의 기억은 참으로 부질없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증발해 버린다.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기억은 영영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간다. 의식적으로 남긴 기억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물가물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메모하고, 문명의 힘에 기대어 당시의 흔적을 생생하게 기록해둔다.

출근하자마자 내리 글을 썼다. 가까운 사람이고, 책을 통해, 대화를 통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던 터라 생각보다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었다. 써내려 가며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아! 나보다 큰 사람이구나! 배울 게 정말 많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가 등불이 되어 나와 같은 어리석은 후배들이 등불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그라면 가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형님이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시길 바란다.

아직 지난 주 과제의 필사가 끝나지 않아 점심시간을 이용해 필사를 했다. 생각보다 많이 쓰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되도록 일찍 퇴근하여 필사에 전념해야 할 것 같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도 만만치 않은 책이다. 물론 그 다음주가 2번 읽기 주라 조금 숨통이 트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다. 2번 읽기라는 과제가 주어진 그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의미를 놓치지 않고 익히려면 오히려 처음 읽을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각오하고 있는 바다.

매일 홀로 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찌 보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나갔을 때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다. 더러운 꼴 보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치밀하고, 치열하게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쇼생크를 탈출한 앤디 듀프레인처럼 매일 숟가락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아 딱 적절한 은유인 것 같다. 이제는 내가 하는 일을 회사 안에서 언급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위치를 제대로 파내야 한다. 들키지 않도록 영리하게 처신해야 한다. 쇼생크 탈출의 은유가 찾아와 준 것은 내게 아주 커다란 행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보아야 겠다. 오늘 중으로 꼭 필사를 끝내도록 하고, 되도록이면 이번 주 과제도 신속하게 끝낼 수 있도록 차근차근 한가지씩 집중력을 갖고 처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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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2 18:48:44 *.124.233.1

293일차 (4월 12일)

그렇다. 이렇게 여러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 서로 상충되는 가치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경영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경영이다. 경영이란 무엇인가? 한정된 자원, 즉 자산을 잘 운영하여 이익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위이다. 나에게 있어서 이익과 부가가치란 나의 몸값, 다시 말해 연봉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잠재력을 계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런 패러다임을 실감하니, 아 내가 정말 1인 기업의 CEO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Star Craft 게임에서 이야기 하는 '운영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분명 나라는 존재를 하나의 기업으로 바라보고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부족함이 많은 패러다임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 패러다임만을 고수하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다양할수록 삶이 스펙터클 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경영이라는 패러다임을 통해 뭔가 많은 것을 도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글의 소재 등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훌륭한 경영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 경영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리더십하고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기업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리더십과 자기계발 분야를 조망하니 모든 것이 아주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아주 새삼스럽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최근 내게 일어나는 역할간의 충돌, 정신적 신체적 자원의 분배 등 문제 상황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분명 나의 의지, 열정, 노력은 변치 않았다. 나는 새벽 4시에 기상하고, 밤 11시가 다 되어 잠 자리에 든다. 깨어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기상 후 글쓰기 수련을 위해 모닝페이지를 쓰고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는 연구원 과제 서적을 읽는다. 그리고 출근 후 일과가 시작되기 전 1시간 반 혹은 2시간 가량 연구원 과제를 수행한다. 그리고 점심시간 또한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한다. 심지어는 일과시간까지 동원하여 과제 작업을 한다. 이러한 자원의 투입으로 연구원 과제는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만 내 삶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회사생활이라는 균형이 휘청거리게 되었다.

이렇게 고민을 하게 된 오늘의 사건은 오늘 제출한 지난주의 과제, 그리고 과제에 대한 피드백, 이번 주 과제 도서 독서, 과제 수행, 이와 동시에 회사에서 새롭게 추진하게 된 프로젝트, 연구원 총무로써의 행정적인 일 등. 연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신체적, 정신적 리소스가 필요한 역할이 새롭게 추가됨으로써 생긴 급격한 일상의 불균형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CPU와 메모리를 초과해 버리는 덩치 큰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컴퓨터가 느려지는 현상과 흡사하다. 해결 방안은 하드웨어 자체를 업그레이드 하거나, 리소스를 최적화 하여 운영할 수 밖엔 없다. 컴퓨터에 비유한다는 것이 차갑고 속될 수도 있지만 꽤 괜찮은 비유라고 여겨진다. 나쁜 은유도 있고, 좋은 은유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은유를 통해 유연하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운영할 수 있는 자원은 나의 신체 에너지, 나의 정신 에너지, 그리고 시간이다. 당장 업그레이드는 힘들다고 가정한다. (업그레이드는 1만시간의 법칙에 의거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결국 한정된 자원과 다양한 역할 그리고 내게 주어진 다양한 프로젝트들. 도무지 동시에 수행하기 불가능한 것들 사이의 무게 중심을 찾고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운영의 묘미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경영의 묘미가 아닐까? 아.. 이와 관련해서 간질간질 거리는 것이 뭔가 나올 것 같다는 감이 온다. 누군가 이미 다 이야기 한 것들일 수도 있지만, 자기경영과 관련된 나름대로의 좋은 아이디어, 좋은 모형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 아주 절실한 문제이고, 이 문제를 해결을 통해 내게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문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변화와 성장의 모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이 느껴진다. 속된 말로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분명 죽으라는 법은 없다. 이미 연구원 생활과 직장생활의 병행을 통해 자신의 책을 쓴 선배들도 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종결자는 자기 자신뿐이지만 스스로를 돕고, 나와 같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는 다는 것은 참 해볼만한 일인 것 같다. 오늘 글은 짜임새도 없고, 유려하진 않지만 가능성으로 가득 차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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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3 18:01:19 *.124.233.1

294일차 (4월 13일)

이게 과연 최선일까? 새로운 가능성을 선택할 여지는 없는 걸까? 앞만 보이고 옆과 뒤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무모하게 돌진하는 코뿔소나 버팔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원 활동에 시간을 할애할수록 회사 일은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이 나를 옥죄어 온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이것이 최선인가? 무의미한 푸념이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더욱 더 준비를 위한 박차를 가해야 한다. 내가 연구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책을 한 권 쓰기 위함이다. 그럼 어떤 책을 쓸 건데? 여기서부터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여기가 지금 내 고뇌의 방점이 된다. 지난 5년 동안 몸담아온 그리고 향후 몇 년은 더 몸담을 이곳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지난해 10월 꿈 벗 여행을 통해 꿈의 직업 세 개를 도출해냈다. 작가, 강사, 컨설턴트. 이렇게 세 가지 직업을 도출해 내었다 그 이후로 내가 그 직업을 위해 노력한 것은 무엇인가? 그래 매일 썼다. 그리고 개인사도 아주 많은 양 작성했다. 레이스와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며, 북 리뷰와 칼럼도 몇 개 썼다 그렇게 작가를 위한 수련을 매일 했다. 강사가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바로 이 지점이 갈등이 생기는 지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관련성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서에서 친분을 가진 사람들을 몇 명 상담해 주었다. 그냥 사적인 상담수준이었지 컨설팅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의문을 갖는다. 나는 강사로서의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 해봤어야 알지. 글쓰기는 이미 2년 전부터 아니 그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원 생활을 하며 엄청나게 수련을 할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사와 컨설턴트는 아직이다. 과연 꿈의 직업이 맞긴 한 건지 실험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런 걸 하면 잘 어울리겠다라는 이야기만 몇 번 들었다 뿐이지 그런 일을 해보지는 못했다. 비범함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련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전혀 수련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경력을 몇 시간씩 쌓아가고 있을 것이다. 과연 나에게 시장가치가 있을까? 자! 그렇다면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나의 핵심역량을 찾아보자. 내가 전문성을 쌓아 나가기 위한 핵심역량은 무엇인가? 변화? 성장? 그래 이게 나의 관심사인 것은 맞는데, 이걸로 대체 뭘 할 건데? 책을 쓴다고? 어떤 책을 쓸려고 하는데? 쓰면 누가 사서 읽는 건데?

자. 이런 대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 세계로 뛰어 나가지 못하는 이유다. 정당화 하지도 말고, 합리화 하지도 말아라. 이런 고민은 5년 전에도 똑같이 했었다. 아니 그 때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고민했었다. 10년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이런 생각이 싫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가서 경력을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엔서니라빈스가 NLP를 알고 전국을 폭풍처럼 누비며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나는 안락함을 원한다. 겉으로는 변화를 표방하지만, 한 꺼풀 벗기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나는 변화를 두려워 하고 있다. 변화했을 때의 일시적 고통이 지금의 고통을 넘어설 것이라며 두려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급여수준이면 그럭저럭 괜찮고 안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바로 이런 현재에 대한 무의식적, 아니 숨겨진 태도가 변하지 못하는 큰 이유다. 그 이유는 '현실적'이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번뇌와 번민만 조장하고, 뭔가 해볼라 치면 달아나 베일 뒤로 숨어 버린다.

비겁한 그대여 당장 나타나 당당하게 겨루자! 늘 나는 가능성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늘 그 수준뿐이었다. 늘 완성을 지향하는 미완의 대기. 그게 늘 내 모습이었다. 이번 연구원 입학식 때에도 나는 제대로 죽지 못했다. 눈물을 쏟아내는 것만이 진정 죽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제대로 죽지 못하고 죽다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겁쟁이다. 두려움이 싫어 그럴싸하게 미사여구로 나의 신성한 죽음을 포장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고난과 시련 앞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교묘하고 야비하게 피해가며 스스로를 기만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빌딩 숲 사이로 해가 저문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곳에 앉아 해가 저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일까? 왜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말인가? 그 빌어먹을 '현실'이 무엇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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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4 19:33:24 *.124.233.1

295일차 (4월 14일)

한곳에만 몰입했다. 회사 일은 그 다음. 위험한 줄타기다. 부담스러운 일을 우선 끝마쳤다. 오늘 새벽은 일어나기 힘들었다. 머리도 지끈거렸다. 출석을 하고 모닝페이지를 한 후 20분 정도 눈을 붙였다. 핑계를 대고 하루 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내 고개를 흔들고 일어나 씻고 첫 차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힘들다가도 막상 집을 나서면 금새 괜찮아 진다. 책을 읽었다. 앞부분 영웅의 여정은 흥미진진했는데, 피곤해서인지 내용이 실제로 어려워서인지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청담역에서 회사로 걸어오며 과제를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는 그냥 생각이 마음껏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다. 길가에 핀 벚나무를 보니 마음이 촉촉해 지며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아직 다 피진 못했지만 만개한 벚꽃. 다 지기 전에 꼭 아내 손 잡고 꽃 비를 맞아야지.

모든 것은 100일이 고비다. 연애할 때도 그랬고, 지난해 단군 프로젝트를 할 때도 그랬다. 처음의 그 으르렁거림을 극복하고 나면 이내 평온이 찾아온다. 다음주면 지난 1년여 동안 이어온 단군 프로젝트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삶의 모든 순간이 영웅의 여정이 될 수 있다. 지난 한 해가 하루 2시간을 위한 혁명이었다면, 다시 말해 인생의 하드웨어를 위한 혁명이었다면, 올 한해는 나의 지적 영역 확대를 위한 혁명,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혁명이 될 것이다. 지난해 보다 더 큰 괴물, 보다 깊은 심연, 보다 가혹한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쉬울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미 각오한 바다. 꿈이 있고, 뜻이 있고, 스승이 있으며, 사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해보기는 해야 한다.

매일 <단군의 후예들>에만 올리던 단군일지를 처음으로 <연구원 카페>에 올려보았다. 단군 사람들은 이미 300일 이상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내 일지에 익숙해져 있지만 연구원 동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시 재경누나와 주선누나가 먼저 관심을 가져주었다. 모두 '과유불급'을 조언해 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조언이다. 그 내용이 따뜻한 배려든, 날카로운 비판이든 누군가 내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누나들에게 너무 고맙다. 그건 내가 나에게 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때로는 다 내려 놓고 쉬어 갈 수도 있고, 목 놓아 울 수도 있는 일이다. 한곳만을 향해 돌진하는 <초점>과 대충하는 법을 모르는 <최상주의> 그리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려는 <성취자> 테마는 늘 나를 고되게 한다. 물론 늘 그랬던 건 아니었고, 지난해 단군 프로젝트를 하며, 그리고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런 성향이 더 강해졌다. 맞다 피곤하고 지친다.

누나 말대로 마라톤이다. 촌놈 마라톤 하다가 쪽 팔리게 중간에 퍼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과제 자체도 수행해야 하고, 과제의 품질수준도 어느 정도 맞춰야 하고, 그런데 시간은 없고. 딜레마다. 이 딜레마가 올 한해 내게 주어진 메가 프로젝트다. 불가능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Impossible is Nothing. 아디다스 광고 문구다. 아주 마음에 든다. 단군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아주 신봉하게 된 아포리즘이 하나 있다. "매일 하면 오래가고, 함께 하면 멀리 간다." 그렇다. 난 혼자가 아니다. 이미 매일 하는 습관은 만들었으니 함께 하기만 하면 된다. 내 옆에 일곱 명의 사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갈 수 있다. 불가능?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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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6 04:24:14 *.206.57.69

296일차 (4월 15일)

굳이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한 주간 쌓인 피로로 몸은 너무 피곤하다. 그리고 회사에 다닌다는 <다르마>로 인하여 술을 마시게 되고, 뒤늦게 잠자리에 들 수 밖에 없다. 저기 있는 저 용은 내가 처단을 해야 하는 바로 그 용인가? 저 용을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나는 이곳에서 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저 용을 죽여버리던지, 아니면 이곳을 떠나던지 둘 중 하나다. 내 몸이 최우선이다. 과제도 좋고, 가족을 챙기는 것도 좋고 다 좋다. 내 몸은? 내 몸은 어떻게 챙길 것인가? 건강이라는 것이 한 번 망가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있을 때, 내 곁에 있어줄 때 잘 챙겨야 한다.

결국 내가 잔 시간은 3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출석체크도 했고, 모닝페이지도 썼겠다 다시 위로 올라가서 잘까? 7시에는 어르신과 산책이 있다. 그곳만큼은 꼭 함께 가고 싶다. 그 사이에 과제를 할까 고민 중이다. 전혀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좋지 않다. 결국 2시간 잠을 자고 과제 수행은 오후로 미룰 수 밖에 없다. 크게 아웃 라인은 작성해 놓았다. 그래도 뒤로 미룰 수는 없는 일. 한 꼭지라도 작성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늘 질과 양의 문제 사이에서 갈등한다. 내가 2시간을 더 눈을 붙이면 나머지 하루를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몸은 이곳에 있지만 이미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100일 간의 여정을 벌써 3번이나 다녀왔다. 지금 내가 살아 숨쉬는 이 공간이 바로 현장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내 소속은 회사라는 곳에 속해있지만, 그래서 그곳이 나의 물리적인 현장, 삶의 주 무대가 되지만, 이미 3번의 여행을 다녀온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여정을 통해 불사의 영약을, 깨달음을 얻어 왔지만, 아직 세상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너무나 어설퍼 나의 깨달음을 전달하고 나누는 데 서툴다. 다시 말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품질 기준을 지키기 위해 한 자리에 앉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페이지 이상의 글은 써내려 간다. 비록 그 흔적은 나의 작은 USB 메모리 속에만 남겠지만, 이 모든 과정은 내 손 끝을 거쳐 나의 두뇌를 통해 나의 무의식 속 기억의 저장고에 모두 고이 접혀 보관될 것이다.

누나 말대로 이건 마라톤이다. 나의 2년은 마라톤이 될 것이다. 나는 늘 지구력이 약했고, 뒷심이 약했다. 전형적인 용두사미 형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반짝 질주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중간에 쪽 팔리게 퍼져서 낙오된다.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시나리오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톱날을 가는 휴식이 필요하다. 스티븐 코비도 7가지 습관의 마지막 습관을 '쇄신' 영어로는 'Sharpen the saw' 즉 다시 톱을 잘 사용할 수 있게 톱날을 갈라고 이야기했다. 자꾸 스스로를 혹사시켜 가며 건강과 내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방전시키지 마라. 힘차게 걷다가 잠시 앉아 쉬며 땀도 닦고, 물도 마시고, 파란 하늘의 구름과 시원하게 부는 솔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 오래 멀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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