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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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셩진아 인간재미 엇더하든요' 셩진이 머리을 따흐 뚜다리며 눈물을 흘여 왈, 이졔야 깨달나난이다' 셩진이 무상하와 도심이 덩답지 못하오니 맛당이 괴로온 셔게의 잇셔 기리 앙화를 바들거슬 사부 한 꿈을 환긔하야 셩진으 마암을 깨닷게 하오니 사부 은덕은 쳔만연이라도 갑지 못하리로소이다 대사 왈 '네 흥으 띄여 갓다가 흥이 진하매 왓스니 내 무삼 간셥하리료 또 네 셰상과 꿈을 달이 아니 네 꿈이 오히러 깨지 못하여또다 ' ……대사 크게 우셔 왈 '너히 진실노 꿈얼 알아쓰니 다시난 망염을 생각지 말나'하고 직시 대경법을 베푸러 셩진과 팔션여을 가라치니 인간 누싸년 변화난 다 꿈밧기 꿈이요 일심이 불법의 긴책하니 극낙셰게의 만만셰 무궁지락이로구나.
구운몽…주인공 성진과 8선녀…인생사가 한낱 구름과 같은 일장춘몽임을 깨닫고 불의에 귀의하여 극락세계로 가다. 질문 하나 하자. 성진…그대가 ‘인생이 덧없다’ 한 것은 세상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이 깨어보니 꿈이었기 때문인가? 성진! 그대가 말하는 아니 바라는 극락세계는 어떤 곳인가?
성진…그대에게 애기한다. 그대는 인생이 구름과 같은 덧없는 꿈이라 하지만 나는 바로 여기, 지금이 극락세계이면 좋겠다. 나의 극락세계는 내가 꿈꾸는 대로 사는 세상이다. 내게 꿈꾸는 대로 사는 세상은 내가 잘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세상이다. 오히려 지금껏 내가 잘 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알지 못 하고 살아온 세월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꿈나라에 있을 이 시간에 나는 내가 바라는 극락세계에 있기 위해 이 새벽을 깨울 것이다.
<전체적인 목표>
하루 두시간을 나의 필살기 수련을 위한 절대 시간으로 만들 것이다.
그 두시간은 다른 사람을 위한 생계를 위한 일상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꿈을 위해
투자하는 실천하는 시간으로 만들 것이다.
<중간 목표>
1. 단군의 신화 꿈벗 부족을 위한 우드펜 완성
2. 목공 기술 연마를 위한 주문 받은 시계와 독서대, 체스 SET 완성
3. 발상과 표현기법 독서
4. 지금 배우고 있는 목공 기술의 실습 및 반복 학습
<예상난관과 극복방안>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의 유쾌한 대화가 오가는 밤 늦은 술자리가 있은 뒤에도 새벽에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나를 믿지 않기에 12시 전에는 잠이 든다.
무리한 야근 뒤에 새벽에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나를 믿지 않기에 계획적인 업무 구성을 짠다.
구체적인 결과물이 없이는 나만의 2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믿지 않기에 결과물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다.
<목표 달성으로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100일간의 장정으로 평생 함께할 좋은 습관을 길들일 것임에 감사할 것이다.
이 때까지 함께 하지 못 했던 새벽을 함께 하고 한층 여유있는 하루를 시작할 것에 감사할 것이다.
100일간의 시간으로 엄청난 목공 기술과 디자인을 얻지 못 하지만 그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나에게 줄 보상>
1. 단군의 신화 생존자들에게 자비로 우드펜을 선물할 것이다.
2. 평소에 노리고 있던 목선반을 구입할 것이다.

감동입니다.!!!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협력을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전 없는 것에 한표... 재미있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이리 저리 상상해봅니다.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수련하고 계신 모습에 저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French Defence_063>
길게 쓸 수가 없다. 글도 생각해 뒀건만 일단 뒤로 미루고 보석합의 완성 사진만 간단히 올린다.

<French Defence_064>
그 분들이 오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은혜를 받았고 그 이상으로 되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분들...내 일본 생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분들...교환학생 시절의 교수님과 사모님... 지금까지 그 분들과 많은 애기를 하다 들어왔다. 며칠간은 그 분들과 동행한다.
내가 갔던 학교는 작은 도시에서도 한참 떨어진 학교였다. 한국 사람이라곤 우리 말고 유학생 한명 정도...나머지는 일본인... 한번씩 공부하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할 때면 하늘은 별로 뒤덮여 있고 길 옆에는 산에서 내려온 사슴들이 먹이를 찾고 벌들이 내 방 입구에 벌집을 짓는 촌구석이었다. 선배와 나는 할머니부터 큰아들 내외, 작은 아들 내외, 손자, 손녀까지 같이 사는 저택(?)의 이층 방에 세들어 살았기에 그야말로 서바이벌 일본 생활이었다. 가끔 여행을 갔다가 한국 사람 만나면 신기할 정도였으니...
그 시절, 나와 내 선배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교수님 댁을 찾아갔다. 교수님 댁을 찾아 가는 날은 축제의 날이다. 사모님의 갖가지 음식이 나오고 술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 안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애기들...교수님의 프로포즈 애기도 나오고 우리의 연애 애기도 나오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 정치 애기도 나온다. 그리고 가끔 교수님과 여행을 갔었다.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그리 모범생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생활하고 있던 외사촌형의 조언에 따라 "지금은 내가 실험실에 처박혀 공부할 시기가 아니다. 공부와 일은 나중에 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온 몸으로 일본을 알 시기니 많이 놀거라"라는 귀가 솔깃하는 말씀에 따라 정말 일본을 알기 위한 갖가지 풍파를 많이 일으켰다. 주로 기쁜 일이 많았으나 갈등도 많았었다. 그것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고 다 보듬어 주신 분들이 이분들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생활 전선에서 박박 기고 있을 때도 가끔 교수님 내외와 통화를 했었다. 무척이나 그리워 하셨다. 돌아온지 일년 뒤 일본에서 대학원 연수가 있어 참석했다가 야간 버스를 타고 교수님 내외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즐거운 대화와 술....
일본 주재원 시절...교수님의 따님분이 돌아가셨다. 일년 넘게 치료 방법을 알 수 없는 희귀병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다 숨을 거두었다. 차로 세시간 반을 운전해 교수님댁으로 달려갔다. 교수님과 따님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따님분이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가 때려치우고 약사가 되겠다고 다시 학교에 들어간 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셨던 것이리라. 교수님이 꽤 많은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그 날 늦은 밤 자리에서 일어설 때 나도 모르게 교수님을 꽉 안아 드렸다.
교수님은 술이 얼큰하게 취하시면 전화를 하셨다. 항상 안부를 묻고 '너 결혼 안 하냐?'고 가끔 물으셨다. 아마 이번에도 선배하고 나한테 물어보시겠지...
교수님 내외가 도착하실 즈음에 인천공항에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이 반입 수량 제한을 넘어서 위스키와 사케를 가지고 오셔서 세금을 징수해야 된다고 한다. 교수님은 자주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셨기에 반입 기준을 모르실리 없을 텐데도 한국 여행과 우리를 만나 술을 주실 생각에 깜박하셨나 보다. (그 지역 사케는 일본내에서도 최고다.) 다행히 이야기 잘 되어서 문제없이 호텔에서 뵐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며 사모님이 작은 꾸러미를 하나 주신다. 교수님이 올해 4월에 은퇴하시면서 사모님의 본가가 있는 사국(시코쿠)에 머무르고 계신데 거기 지역이 진주로 유명한 지역이라 그 지역 진주가 박힌 넥타이핀을 주셨다. 한국 사람들이 금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반면에 일본 사람들은 은색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진주가 박힌 은색의 넥타이 핀...그냥 보기에도 上品이다.
내 또래 중에 아직까지 넥타이 핀을 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내가 스스로 넥타이핀을 구입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진주 넥타이핀은 이미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수많은 시간이 축적되어야 아름다운 진주가 완성 되듯이 이 작은 넥타이핀에도 교수님 내외와 함께한 지난 8년간의 추억이 새록새록 담겨 있다. 디자인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 물건 속에 주고 받는 사람의 추억과 감성이 새록새록 새겨져 있을 때 디자인은 더욱 빛을 발한다.
즐거운 한국 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까지 교수님과 사모님에게는 내가 만든 것을 못 드린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한 실력이 아직까지는 모자란다. 다른 무언가를 준비해야 겠다.
※ 보석합 마무리... 이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술을 알게 되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무얼 부탁드릴까 고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다 마침 떠올랐습니다.
울 언니들이 공동작업장에서 악세사리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 작품들(목걸이, 귀걸이)을 전시할 걸이를 하나 만들어주세요.
제가 8월 24일 출국하여 인도 다람살라 달라이 라마 법회에 참석하여
9월 2일 입국하는날 언니들에게 줄 선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무리한 일정이면 천천히 만들어 주셔도 무방하구요.
염치없이 부탁하여 살짝 미안요^^
아참 글고 성우님이랑 수희향님 싸부님께서 보내주신 책들.
밑거름 삼아.
좋은 씨앗으로 움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열매로 키우기 위해
2011년 프로젝트 사업으로 프로포절을 여러기관에 의뢰해 놓았습니다.


밤은 깊었다. 어느새 알코올 농도도 깊어진다. 더불어서 교수님 내외와의 대화와 추억도 깊어진다. 교수님께 꿈을 애기한다. 교수님은 그 꿈을 꾸게 된 계기와 지나온 시간을 궁금해 하신다. 교수님도 꿈이 있다.
교수님이 가르치셨던 과목은 영어영문학...주된 연구 내용은 세익스피어... 지금은 농업 전문가이다. 돌아가시면 은퇴한 학교에서 다시 많은 학생에게 농업에 대해서 세미나를 하신다고 한다. 우리의 애기는 어느새 지금의 일, 지금까지 해온 일과 앞으로의 꿈의 연관성에 대해서 애기한다. 교수님이 영어영문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농업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것...갓 학교를 졸업한 유능한 젊은 신문기자가 와서 여쭈었다고 한다. '선생님. 세익스피어와 농업이 연관성이 있나요?' 나 역시 여쭙는다. '제가 하는 일과 제 꿈에 연관성이 있을까요?'
미묘한 웃음과 함께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연관성이 있단다. 하지만 내 입으로 애기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구나'
밤이 깊었고 우리의 대화는 술과 함께 수많은 단어로 그 의미를 찾아가며 넘쳐난다.
※ 교수님 내외에게 무엇을 드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아직은 모자라다. 무엇을 원하실까 생각에 잠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 무덥지 않은 오후. 북촌 한옥마을로 걸음을 옮긴다. 기와를 둘러쓴 집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긴다. 젊은 연인들이 골목길 사이로 지나친다. 'Choi군. 오늘 기분이 이상해. 이곳에 와 젊은 연인들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려. 내 나이 66세인데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면 이상한 것일까?'라며 교수님이 웃으신다.
이날 우리는 10km 넘게 걸었다. 사모님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 택시로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사모님은 힘들지만 더 걷고 싶어하신다. 택시로 이동하면 많은 것들을 직접 보고 느끼지 못 하고 그냥 지나처 버리기에 싫다는 것이다. 사모님은 혼자서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보신다. 한국 사람들과 직접 애기를 해 보고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고 싶어하신다. 안타까운 것은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모우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면 사물을 보는 각도가 달라진다. 자동차로 여행할 때에는 자동차라는 테두리 안에 있게 된다. 그것은 이제 하도 익숙해져서 의식은 못 하지만, 자동차의 창문을 통해 사물을 보는 것은 마치 안방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수동적인 관찰자로서 우리가 관찰하는 사물은 차창이라는 틀 속에서 지루하게 변해가는 영상인 것이다. 모우터 사이클에는 창틀이 없다. 우리는 외계와 혼연일체가 된다. 우리는 이미 관찰자가 아니라 그 장면의 일부로서 현실감에 압도되어 버린다. 다섯치 발 밑에선 콘트리트 바닥이 질주한다. 눈의 촛점을 맞출 수가 없어서 시각적으로는 흐리지만 발을 조금만 내리면 발바닥이 콘크리트 바닥과 마찰하기 때문에 느끼는 현실감은 직접적이다. 경험 전체가 의식과 밀착한다. '
선과 오토바이 정비 기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로버트 M 퍼시그, 국내 번역서 : 잊을 수 없는 여행) 中
여행에도 여러가지가 있고 어떤 여행들은 마치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는 경험 전체가 의식과 밀착된 여행이다. 꿈도 마찬가지고 지금의 단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고 직접 행하는데서 오는 경험이 있어야 꿈이 꿈이 아닌, 프로젝트가 과정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교수님과 여행이 이렇게 계속되길 빌며...

승리한 이는 패배자의 모든 것을 말살한다. 옛백제의 수도인 부여를 방문하며 느낌 첫 이미지다. 삼국 통일을 신라가 아닌 백제가 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백제의 이 찬란의 문화와 기술이 더 화려하게 꽃 피지는 않았을까? 교수님은 백제가 일본에 미친 불교와 문화의 영향을 알고 싶어 갑자기 부여를 방문하고 싶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그리 삼국사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본 부여의 기술은 참으로 놀랍다. 이것이 어디 그 옛날의 기술이란 말인가... 이렇게 알기 전과 안 후에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틀려질 수 있는 것인가...
"물건이 사람을 찾아온다." 저녁 술자리에서 내가 교수님께 뜬금없이 꺼낸 말이다. 어디서 읽은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문구다. 그냥 떠올랐다. 왠지 맞는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해 온 것 같다. 교수님이 놀라시며 일본에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이 있는데 한국에도 그와 같은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알기로는 없다. 물건(モノ)이 사람을 찾아온다...... 여기서 말하는 물건(モノ, 좀 더 좋은 한국어 표현이 있으련만 잘 모르겠다.)은 우리 주위의 사물도 애기하지만 바람, 공기, 태양 등의 무형의 자연도 포함한다고 한다.
이 길에 들어서기 전에 부여를 방문했다면 박물관의 전시물은 죽은 역사의 유물일 뿐이었겠지. 이 길에 들어섰기에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것이겠지.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백호도(白虎圖)...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세월에 그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자유로운 호랑이의 모습으로 내 앞에서 다시 살아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부여에서 白虎가 나를 찾아왔다......


다시 돌아오고픈 하루
교수님 내외, 선배와 이천의 도자기 마을을 갔었다. 나는 또다시 가게마다 특색있게 진열되어 있는 도기들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이천 도자기 마을의 특징은 각 가게마다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곳은 생활도기, 어떤 곳은 고급스러운 청자, 백자, 어떤 곳은 아기자기한 예쁜 장식용 도기들...
가게들을 둘러보고 카페에 앉자 우리의 즐거운 대화를 이어간다. 교수님과 나는 Art에 대해서 애기하지만 같이 온 선배는 Art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우스개 소리로 세상 모든 것이 Art라고 애기하지만 화공과 박사를 마치고 기술 연구소에서 엄밀한 수와 공식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선배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럴 기회가 없어서일까...(기회라는 것은 단순히 전시장을 가거나 콘서트를 가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 사건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Art라는 건 화랑과 전시장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건만.... 선배가 편하다며 앉아있는 투박한 의자 역시 Art다. (선배가 앉은 의자와 같은 것을 만들어 달란다. ㅎㅎ)
교수님 내외는 지금 일본 시코쿠의 시골에 계신다. 시코쿠는 일본의 중간에 있는 큰 섬이다. 일본 내에서도 가장 개발이 안 된 곳이다.(우리나라 예전 전라도 같은 곳이다.) 예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인심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시코쿠 안에서도 앞에는 바다, 뒤에는 산을 둔 시골 중의 시골이다. 교수님 내외는 매일 밭을 일구시고 무언가를 만드신다. 교수님 밭과 사모님이 밭이 따로 있으셔서 서로가 각자 심고 싶은 것을 밭에 키우신단다. 교수님은 피자를 굽는 화로와 도자기 가마를 지으실거라고 하신다. 올해 가을이 될지, 내년 여름이 될지 모르나 시코쿠의 교수님 시골에 가서 교수님과 함께 많은 것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곳은 목재가 풍부한 곳이라 재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나저나 이 카페...까페 탐험대가 한번 와 볼만한 곳이다. 도기 가게 이층에 자리한 이곳은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내부는 보는 사람으로금 하여금 놀라게 한다. 더군다나 향 좋은 커피와 질 좋은 커피잔...가격도 일반 커피숍과 동일하다. 연인끼리 온다면 좋지 않을까...
여러가지를 일하는 분에게 물어봤다. 결국 여기는 커피숍 하나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다. 일층에 도기 판매점과 이층의 커피숍 주인이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앉은 의자, 주위의 도구들, 커피를 가는 맷돌 등을 잘 살펴보면 모든 곳에 조그맣게 가격이 적혀져 있다. 이층에서 우리가 경험한 커피잔, 포트, 의자 등은 일층 도기 판매점에서 다 파는 것들이다. 커피를 팔아서 이득을 보는 가게가 아니다. 여기는 일층과 연계된 또다른 판매장이다. 단순히 만들고 시장에 내놓은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하는 영업 방식...좋은 것을 하나 실감했다.




카페 내부...사진보다 실제가 낫다.


도자기 진열대와 사용한 도자기를 말리는 모습...하나같이 예쁘다.

커피를 맷돌(?)로 갈아서 준다. 이것이 얼마일까? @@

일본분이 오셔서 그랬는지 평소에는 내놓지 않는 거라며 금과 은으로 코팅된 잔을 내어 왔다. (실내에 흐르는 음악도 어느새 일본 음악으로 바뀌어 놓았다...)
좋은 사람들, 아늑한 곳, 즐거운 이야기...그 속에서 어느새 내 마음은 시코쿠 작은 시골에서 섬들이 두문두문 놓인 바다를 내려다보며 웃통을 벗은 체 대패질과 톱질을 하고 있는 나를 그려보고 있다. 그날이 그립다.
※ 그 동안 아껴두고 있었던 파오로사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구하기 힘든 나무인데 운 좋게 어린애 팔뚝만한 크기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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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의뢰받은 것 중에 새로 필요로 하는 기술이 있어 수강하고 왔다. 금속 공예...이런 것도 있었구나. 앞으로 내 독서와 함께할 "고양"군이다. ㅋㅋㅋ (오늘 완성했다. 톱으로 잘랐다.목공으로 단련된 톱질이 한 몫 했다는...ㅋ)


공예품에 이 곡과 같은 감성을 집어넣을 디자인을 만들 수 있을까?
이천 도기 마을을 둘러보고 시외의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인사동 근처의 한정식 식당을 갔으나 평판보다 영 부실하여 실망이 컸던 차에 이천 근처에 괜찮은 한정식 집이 있다 하여 간 곳이다. 한옥과 숲이 주는 여유로움, 저녁이 주는 고즈넉함, 마당까지 잔잔하게 흐르는 가야금 소리가 어울려 나름의 멋을 뿜어내는 곳




교수님 내외와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다. 그리 많은 애기가 오고가진 않았다. 지난 며칠간 걸으며, 차를 타며, 마시며 수많은 애기를 나눴다. 불현듯 취직이 결정되고 나서 교수님 댁을 잠시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그 자리를 일어날 때 사모님(お母さん-사모님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들의 부르는 명칭은 어머니이다.)이 따로 나와 흰 봉투를 하나 건네 주셨다. 취직 축하금이라고...
내일 한국을 떠나시면 다시 보실 수 있을까... 시코쿠에서의 재회를 약속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마당에 섰을 때, 식당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가야금 연주가 다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애잔한 음악...왠지 모르게 사람의 아픈 상처를 생각나게끔 하는 곡이다. 그 저녁의 분위기와 함께 아픔을 애잔하게 할퀴고 있었다. 깨어나지 못 할 정도로... 선배야 무덤덤했지만 교수님 내외와 나는 각기 그 누군가의 기억 때문에 곡에 귀를 기울였다. 교수님은 옆방에서 꼬마 둘이 딸린 가족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이 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신다. 이 곡이 이제 이 세상에 없는 따님을 생각나게 하셨으니라.

주인에게 물어 곡 이름은 잘 모르지만 연주단 이름만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출국하는 교수님께 선물로 CD로 건넸다. 떠나시는 날 아침 어렵게 수배하여 찾은 CD건만 선물로 드려야 될 지는 막상 주저했다. 이 곡들이 교수님 상처를 더 깊게 하지는 않으련지...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마트 폰으로 곡을 다운받아 틀었을 때, 교수님이 '지금은 에너지가 필요하니 듣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씀하셨기에 생각 끝에 CD를 드렸다.
나는 이 곡들과 같은 감성을 내가 만드는 것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감성과 체계적인 교육...여러가지 요소들을 생각해 본다.
※ 무더위 때문인지, 여행 때문인지 그다지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몸이 말이 아니다. 지난 잔업, 과로의 휴유증이 교수님과의 여행을 마치고 남은 휴가 기간에 나타나고 있다. 쉬자... 푹 쉬자...

위의 교수님과의 일화에서 생긴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고자 몇가지 책을 구입하였다. 존 러스킨, 윌리엄 모리스 관련 서적을 서점에서 찾았으나 재고가 없는 상태라 야나기 무네요시의 책을 일단 구입했다. 바로 옆에 얇은 책 한권이 놓여 있었는데 내용이 눈에 들어와 추가 구입(어윈 에드만 저서)...
베스트셀러 책을 사본 적은 그다지 없다. 서적 분류를 막론하고 책방을 배회하다 보면 그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좋은 책을 만나게 된다. (반나절 이상을 서점에서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능력(?) 탓에 주위 지인들한테 꽤 민폐를 끼쳐왔었지..) 다치바나 다케시가 말했듯이 한 서점만 둘러봐서는 숨은 보배 찾기가 힘들다. 각 서점의 진열 기준, 마케팅 기준 등이 틀리기에 자신에게 맞는 좋은 책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삼성역 반디앤루니스의 책 배열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한반퀴 휘익 돌고나서 각 분야의 전문 서적을 불편함 없이 볼 수 있다.) 세이노님이 애기한 한국의 독서 실태-지독히도 책을 안 읽는-때문에 긴가민가한 책은 절판될 가능성이 많아 일단 사둔다. 그리고 서점에서 책 위에 가방을 얹거나 책을 놓여진 그 상태로 읽어 다른 사람이 내가 읽고 있는 책 주위의 책이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도록 하는 민폐는 끼치지 않도록 한다. 서점에서 확인하고 다음에 살 책 목록 등은 사진으로 찍어 둔다. (일본 서점에서 책 표지 찍으면 법에 저촉된다고 해서 한바탕 싸워드린 적도 있으나 아직까지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 정도가 나의 서점에서 놀기의 규칙일까...
어쨌든 내 질문의 답을 찾고 싶다. 분명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테고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겠지... 지금의 나는 어줍잖은 아마추어다. 그래서 좋다. zero니까. 채우는 일만 남았으니깐....
※ 지난번 사과 모양 보석합의 의뢰자한테서 연락이 왔다. 여친에게 주었는데 최고(!!!)였다고...의뢰자의 여친이 이 말을 토씨 하나 빼먹지 말고 그대로 전해 달라고 했단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과 제작은 내가 했지만 보석합을 부탁한 의뢰자한테 감사해야 되는데...^^;;; 어쨋든 좋은 Feed back을 받아 기분은 쵝오!)
※ 합 연습을 했다. 일부러 이상한 형태로 만들어 보고 무엇이 불편한지, 무엇이 언짢은지 바라보고 있다.



우드펜을 나눠주기만 했지. 나를 위한 펜은 아직 만들지도 선물하지도 못 했다. 귀하디 귀한 파오로사 나무로 우드펜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는 코코보로가 가장 인기가 있고 무늬도 예쁘다. 흑단은 Black으로 치장된 굉장한 고급감을 가지고 있다. (두 나무 다 유명 만년필 브랜드에 쓰이고 있다. 코코보로는 모르겠으나 흑단 종류 중 완전한 검은색을 띄는 African Black Wood는 그야말로 고급 수종이다.)
파오로사는 악기 재료로도 많이 쓰인다. 유럽 악기 제조하는 곳에서는 이 나무를 20년 혹은 그 이상 자연 건조시켜 다음 세대가 사용하기도 한다. 흑단과 마찬가지로 매우 단단하다. 섣불리 평칼을 갖다 되었다가는 작업을 망치기 안성맞춤이다. 환칼로 조심스레 작업하여 완성했다.
아름다운 무늬, 자연스러운 나무의 눈매가 골고루 나타났다.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거...아까워서 쓸런지...^^:

SONO FACTORY( http://www.sonofactory.com/ )
3년전부터 홍대 앞의 이색적인 공간으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복합 공간(카페, 전시)이다. 지금 당장 '소노 팩토리'라고 검색하면 관련 글들이 주르륵 뜬다. 이 카페의 이색적인 점은 젊은 연인들 혹은 결혼할 사람들이 자신들 스스로 커플 혹은 결혼 반지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자본주의에서 자신들이 직접 체험하는 문화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블로그에 One day course를 보면 하루만에 전문가 빰 치는 커플링 완성품이 나온다. @@ 금속공예는 일반일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했던 기존 인식을 과감히 타파하고 소비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소노 팩토리...목공 세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비지니스 형태다. 이런 비지니스가 가능한 것은 반지가 주는 감성적인 의미가 강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소노 팩토리를 만든 이는 고슴도치 전략의 세가지 원에다 무엇을 집어 넣은 것일까? 하드웨어로만 생각하면 '카페 & 전시장 & 교육장', 소프트웨어로 본다면 '커뮤니케이션 & 체험 & 문화'가 아닐런지. 이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적인 강점을 바탕으로 홍대 번화가에서는 제법 벗어난 지리적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부럽다...What?

저는 지방이라 변경연에서 소통하게 된 많은 사람들로부터
유익한 정보를 얻어 곳곳에 숨은 진주을 찾는 느낌을 갖거든요.
그래서 변경연이 좋구요^^
SONO FACTORY는 처음 들어보네요. 카탐대원들도 모르고 있는 것 같고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공간도 SONO FACTORY고슴도치 전략과 일맥상통하네요.
하드웨어 '카페 & 전시장 & 교육장',
소프트웨어 '커뮤니케이션 & 체험 & 문화'로 비젼을 세우고 준비중임다.
SONO FACTORY도 저희의 벤치마킹 대상지에 넣어볼께요^^
홍대앞에 '성수동 그가게'를 가봐야 해서요.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금속공예를 배우면서-학원도 아닌 취미반이고 이제 겨우 2번 가놓고선...ㅋㅋㅋ-목공예 작업과의 교집합, 차집합을 느낀다. 사실 목공도 목선반을 잘 하는 편이지 다른 것들은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 글 쓰기가 창피하다. 하지만 뭔가를 배울 때는 하나를 기본으로 잡아 파고 들어가면서 주위의 파생되는 것들을 같이 배워나가는 것이 내 방식이다.
쓰이는 도구들은 비슷한데 그 재료의 특징으로 인하여 차이가 발생한다. 목공 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금속 공예에서도 응용된다. 더불어서 금속 공예에서 배우는 것들을 목공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목공예도 그렇지만 금속 공예는 배우는 사람들, 분위기가 좋다. ㅋㅋㅋ
목공과 금속 공예가 잘 버무려진 그 무언가를 만들 날까지 화이팅!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결국 목공 사부님께 가서 목선반 칼 연마법을 배우고 왔다. 이 때까지는 칼 연마를 사부님께 부탁하면서 작업을 해 왔다. 칼 연마는 어느 정도 이상 레벨이 되어야 배울 수 있다. 그 만큼 나무를 많이 다루어 보어야 그에 맞는 칼 연마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칼 연마로는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검도에서도 어느 수준 이상이 되지 않으면 진검을 뺄 수 없다. 실력이 모자라면 자기 손으로 뺀 진검에 자기가 화를 입기 때문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예전에는 없던 일들이다. 이 일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하나만 분명하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나 단단한 땅이 있으면 그 땅을 밟으면 될 것이고 허공이 있으면 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프 타임의 고수들 中)
※ 칼 연마 연습

금속공예 두번째 과정...반지 만들기...--;;; 내가 만들고 싶은 거 만들려면 통과해야 하는 입문 과정, 반지 줄 사람도 없건만,,,,
내가 낄 반지를 만들기로 했다. 반지 디자인에 관한 책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책 속에서 갖가지 보석류들과 함께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내고 있다. 반지 역시 창의적인 작업이구나...아름다운 디자인들... 그 중에 한가지를 골랐다. 역시 금속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기에 나무와 결합할 수 있는 디자인이 좋다. 나무와 결합하되 기존에 다른 사람들이 작업한 스타일은 싫다. 조금이라도 색다른 형태가 좋다.
간단한 반지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쉽다. 다만 기술과 경험에 따라 제작 소요 시간이 틀려진다. 4시간만에 은반지를 완성했다. (어딜 가도 피할 수 없고 시간 잡아 먹는 끌질, 사포질...) 이 반지에 나무 작업을 더해 완성시킬 예정이다.

(원재료와 반지 가공에 들어간 모습, 원재료가 꽤 비싸서 놀랐다.
사진은 열풀림 과정 후 링을 용접하기 전의 모습)

(반지 형태가 완성되었다. 앞쪽 부분을 보면 일부러 절단한 공간이 보인다.
오른쪽과 같이 링과 직각으로 자르는 것은 쉽다. 왼쪽과 같이 경사 있게 자르는 것은 꽤 힘들다고 한다.
그런 것도 몰랐는데 의외로 잘 잘랐다. ^^;)

(사진의 그림자를 보면 이 반지가 어떤 형태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반지 둘레에 홈이 파져 있다. 이유 있는 홈이다.
여기까지 금속 반지의 제작은 완성)
※ 단군 200일 프로젝트 때는 단군영웅반지를 만들어 볼까나...ㅋㅋㅋ

지난번에 만들었던 은반지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그 위에 가느다란 나무링이 씌워질 것이다. 두께나 폭이 가늘어서 흑단 이외에는 작업이 힘들 것 같다. 나무링을 만들기는 쉽다. 하지만 가느다란 나무 링을 분리해 내서 양면을 가공하는 작업에서 많이 실패했다. 제대로 작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겠다.
아래는 겨우 완성한 링...은반지에 끼우다가 바로 깨져 버렸다.



네번째 실패... 어떻게 하더라도 나무 본체에서 나무링을 완성하여 끊어낼 때 절단하는 힘을 이겨내지 못 하고 나무링이 깨진다.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순간 접착제를 도포해 본다. 링을 끊어낼 때 작은 톱을 사용해 본다. 나무 결을 바꾸어 본다. 단 한번도 같은 방법으로 작업하지는 않았다. 2시간을 넘긴 끝에 온전한 나무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은반지에 끼워보니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내일 다시 다른 무늬목으로 작업을 해야 겠다.


교수님 내외와 부여를 여행할 때 신문기자의 인터뷰에 교수님이 응한 적이 있다. 그다지 의미를 안 뒀었는데 조선일보 사회면에 아주 짧게나마 기사가 나왔다. (선배가 이미 번역해서 교수님께 편지 드렸다고 한다.) 문화란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몇백년, 몇천년 뒤의 사람을 불러 여행하게 하는가? 그들은 한류 스타와 멋거리에도 열광하지만 이제 한국의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옛 백제도 보고자 한다. 손은 자판을 치고 있지만 어느새 눈길은 예전에 샀던 탁석산 씨의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에 가 있다.
※ 음...15번 정도 실패했나? 은반지에 내가 원하는 무늬의 나무를 덧씌우기가 쉽지 않다. 링을 그대로 다 감싼다면 작업은 쉽다. 나무링이 반지의 중앙 부분만 감싸기 때문에 힘들다. 나무링이 힘을 견뎌내지 못 한다. 오히려 느는 것은 작업 방법과 숙련도...다양한 작업 방법을 생각하고 숙련도가 올라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끝에 완성했다. (진작에 완성했으나 이제야 올린다.) 다시 한번 '순서'에 대해서 생각한다. 순서를 약간 바꾸는 것만으로도 성공과 실패가 나뉜다.
은색 부분은 은이다. 금속 공예 배우면서 만들었고 그 위에 흑단을 덧씌웠다. 디자인 자체는 외국 서적에서 가져왔다. 다만 금속으로 되어 있던 검은색 부분을 나무로 바꾸었다.
예전 단군일지에 있던 은반지 자체의 날카로움은 많이 줄어들어 다른 느낌의 반지가 되었다.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위의 반지와는 별도로 나무 반지를 의뢰하신 분이 있어 나무로만 된 반지를 만들었다. 몇날 며칠을 실패하며 반지를 만드는 과정이 이번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다가 단단한 흑단(에보니)으로 작업했다. 중간중간 검은색과 갈색이 섞여 있어 재미있다. 흑단은 단단하기는 하지만 가공 중에 깨어지기 쉽다. (이건 전공시간에 배웠구나.)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추가로 별도의 작업을 했다. 디자인은 의뢰자의 요청대로 가장 단순한 타입. 처음 만드는 것이라 이것 역시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홉수... 万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하나... 많은 날들을 즐겁게 잘 달려오고서도 마지막 하나-수많은 결석과 지각-에서 힘이 든다. 九千九百九十九에 一를 더하는 것은 재능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오로지 끈기와 꾸준함이다. 100일이 다가온다는 점, 어느정도 습관화가 되었다는 자만감, 독이 되었던 여유가 경계하고 조심하던 마음을 풀어버렸다.
사부님이 왜 '꾸준함'을 강조하셨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이 100일이 꿈을 향한 나의 실제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되고 있다. 현실을 그저 살아가는 것이 나의 꿈 바로미터의 1기압을 나타낸다. 중력의 압박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나태하게 생활한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 사는 생활...그것이 내 꿈 바로미터의 1기압의 정의다.
하루 두시간 일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낸 지난 두달여 휠씬 높은 기압에서 생활한 날들이다. 드래곤볼의 초사이어인 손오공이 우주선 안에서 일부러 중력을 높여서 수련한 것과 같다고 할까?
지금은 일상의 1기압보다 낮은 중력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음의 문제다. 단순히 이 일이 정말 꿈이 될 수 있을까? 현실의 To do list에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등의 질문과 대답은 이미 끝냈다.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은 아나 그 마음의 문제를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그 마음에 문제가 있을 때 잠시나마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꾸준함이다. 내가 생각하는 꾸준함은 마치 우리가 자고 있을 때나 운동하고 있을 때나 항상 뛰고 있는 심장과 같은 것이다. 규칙적으로 흐트러짐 없이 움직여 나라는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항상 움직이고 있다. 아주 단순한 움직임밖에 못 하지만 이 기관이 있어 복잡한 뇌 역시 살 수 있다.
지금 내 마음이 아플 때, 꾸준함이 필요하다. 새벽시간에 아주 단순하지만 반복적인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