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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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절도와 집중력의 힘 49!!!
변경과 함께 인생2막, 다시 살아보고픈 삶을 위한 혁명 2탄 (1탄은 지난 연구원생활)
새벽 글쓰기라는 습관의 힘에 의한 인생 역전에의 도전!!!
스승의 말씀처럼 100억 못지않은 유산 획득으로 느껴지는지 직접체험으로 증명해 보겠다.
이로써 내 모든 불운과 자책과 부적응과 부조리를 일단 날려버리고 합리성을 실천하겠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반복하고 발버둥 치며 지금 여기, 강력히 절도의 힘을 갈망한다.
이러한 도전 자체가 살아있는 날들의 즐거움과 生氣일 것이기에 어울리며 상생하고자 함이다.
2. 나의 전체적인 목표 (1~2 가지)
의지를 넘어 습관으로!!!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삶, 이것 하나만은 평생 하겠다! 는 각오다.
굶어죽지 않을 터, 실상은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책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내 인생의 가장 절실한 열망을 향해) 오롯한 恒常性으로 부단히 임하기 위함이다. 아무 재능 없어도, (늦게 배워 겨우 깨우치는), 오직 성실한 새벽 글쓰기 하나만으로도 삶의 위대한 힘(原動力)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겠다. 적어도 원하는 습관은 남을 것이니 괜찮은 실행이다. 아침 세 시간의 노력으로 단기적으로는 마음의 중심잡기요, 장기적으로 구체적인 항상성으로 삶의 원기회복과 일상의 생기를 누리기 위함이다.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3시간 글쓰기!
3. 중간목표(3~5가지)
* 7×3=21일(禁줄로 金줄 치기), 7×7=49재∙칠칠재, 100일 解喪∙解角 & 부활!!!
1) 카페 탐험 관련 책을 주 1권 이상 읽고 리뷰 (주로 일요일, 49일째까지)
2) 주 2곳 이상 카페 탐방 혹은 공간 조사 (49일째까지)
3) 카페 탐험에 대해 정리 & 마무리: 초안(?) 잡기 (49일째까지)
4) 매일 일기와 매주 1 칼럼 쓰기 (100일 동안)
5) <43살에 다시 시작하다> 10번 읽으며 각인하고, 스스로를 고무시키기 (100일 동안)
4. 목표 달성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난관과 극복 방안 (2~3가지)
1) 글쓰기 몰입 30분 전 기상, 생수 2컵 마시고, 매일 새벽 108배로 잠 깨기 & 염원 및 정진하기
2) 주 1회 이상 미사 참석으로 상생 작용 불러일으키기: 몸∙마음가짐 쇄신; 긍정성, 초지일관의 끈기 함양, 중간에 잡념과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윗몸일으키기, 염두에 둔(?) 좋은 상상 하며 마인드컨트롤, 낮에만 커피 & 차 마시며 피로회복 및 적응, 일찍 취침.
3) 글쓰기에 일관적 내용 다루기, 인문학적 사고와 지평 넓히기
4) 무엇이건 미루거나 집착하지 말고, 생각 즉시 메모로 남겨두고, 몰두하여 즉각 해결하기
5) 주변상황과 일과 등 자주 정리∙정돈하여 몸과 정신을 오롯하게 가다듬기
5.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내 삶에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 묘사(1~2)
100일 간의 생사고락을 연상하며 계획을 시도한다.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처럼 처음 3주간은 외부에 사실을 알리며 금기의 금줄을 치는 동시에 이로써 새로이 새벽 혁명으로 세상을 열어나간다는 의미로 심신에 균형과 절제의 황금의 라인을 두고 각인시켜 나가고자 하였다. 매일 아침 지난날의 부조리한 관습과 부유하는 잡념들을 엄숙히 떠나보내고, 정안수를 떠놓고 염원하듯 정갈한 마음으로 남은 새날들의 충만한 삶을 발원하며 49제를 올리듯 정심으로 임하였다. 처음 일을 도모할 때야 시작이 반이라 하지만, 완결을 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90보에서 멈추게 되면 애당초 아니 한 것만 못할 수 있으니, 100보까지를 온전히 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했다. 간혹 미련이나 유혹이 헛갈리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구태의연한 나를 말끔히 떠나보내고 새로운 나와 만나기 위하여 이를 악물었다. 100일 탈상 때까지는 節度와 신성성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일상을 初志一貫하게 확립해 나가는, 일상의 해각(解角)이 동시에 연마될 수 있도록 전심으로 必살기 수련에 몰입하였다.
새로운 나, 진정 살고 싶은 나, 일상을 심사숙고하게 주도하는 나로 집중, 변신∙부활을 꿈꾸다!!!
;불안 극복, 자신감 획득, 좋은 기운과 우주의 참 생기에 공명하며 일상을 즐겁게 영위하자!
도대체 평생의 스승님을 모셨다면서 한 가지라도 제대로 똑 부러지게 실행하고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따분했다. 늘 허욕만 왕성할 뿐 허장성세인 것도 안타까웠다. 게다가 허구한 날 매사에 징징대기 일쑤인 것은 또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이던가.
연구원 4년차, 4*세, 지천명의 나이를 목전에 둔 처지. 항상 할 일은 많지만 막상 하려면 언제부턴가 엄두가 나지 않는 기현상까지 초래되는 상황이다. 여전히 쓸데없이 근심 걱정에 휩싸여 속수무책으로 앞날을 염려하고, 인생에 연민하고, 세상살이를 한탄하고만 있는 것과 같은 모습에 분괴하여, 당연히 이러한 부조리들과 결별을 선언하고자 함이다.
무엇보다 끝까지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왕이면 가장 모범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혹여 중간에 페이스를 놓치게 되더라도 일단 목표를 완주에 두었다. 100일 동안 꾸준할 것이 첫째 목표였다. (행여 50일만 성공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할 계획이다. 150일로 연장해서라도 최소 100일을 지키겠다는 태도로 임하겠다.) 나날을 최대한 성실한 내용으로 참여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세 번째 이자 마지막 목표는 평생 지속하여 습관의 힘과 더불어, 스승의 가르침과 영감에 절연 되지 않으며, 알찬 일상을 영위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마침내 오늘 100일 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난히 수행하였다. 시간을 철저히 지켜 한 번도 늦지 않았다. 약속한 새벽 3시간을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반은 카페탐험의 창조놀이에 할애했고, 반은 쓰다가 만 자서전쓰기를 이어갔다. 몰아서 쓰는 3시간은 쉽지 않았다. 2시간 정도가 딱 적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1시간 더 노력하고 싶어 강행했다. 조금 더 몰입하는 자세를 확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그날 일을 점검하고 꼼꼼히 살피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좋다.
새벽 글쓰기를 통해 공상과 걱정에만 머물던 일들을 현실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하루를 개편하여 원하는 대로 지배하지 못하면, 꿈꾸는 일상과 노년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기꺼이 인내할 수 있었고,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떳떳함으로 당당할 수 있어 기쁘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중요한 이유를 心身에 새겼다. 또한 나는 앞으로 무엇이건 의욕하는 바대로 성실히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란 확신과 자신감을 회복했다. 한다면 하는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이 유쾌하다. 내가 몸소 체험한 바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신난다. 동참하여 일생을 함께할 글쓰기라는 작업을 실행하게 되어 다행이요, 이로써 인생의 새 역사를 맞이하고 그 길을 걷게 되어 벅차다. 아울러 우주의 좋은 빛이 깃들여져 나를 격려하고 온전히 마칠 수 있도록 성원하였음에 감사한다. 탈리다 쿰!! 명징함과 함께!!!
6.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에게 줄 보상(1~3가지)
1) 뺀 어금니, 최고급 임플란트 시술로 구강 및 안면 기형화 차단, 오래도록 맛 나는 것 먹으며 행복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노년 생활 준비에 아낌없는 총력을 기울이다.
2) 지난해 사고로 변형된 입술 성형 시술하기도 고려중이나 형편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3) 이참에 처진 눈꺼풀을 위한 쌍꺼풀 시술도 고려해볼까? ㅎㅎ ^-^*

추석 명절에 작은 오빠가 왔는데, 무심결에 보니 일어서고 앉을 때 안간힘을 쓴다.
"어?" "오빠 왜 그래?"
"응" "으음...... "
올케가 "글쎄", " 허리가 조금 아픈가보네."
어머니는 빨리 오빠를 치료해 주라고 성화시다. 오빠는 괜찮다고 하는데 영 죽을 맛인 것 같다.
다리가 땡긴다고 한다. 대게는 4~5번 요추의 척추뼈가 주저 앉아 신경을 누르거나 할 때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며, 오래되거나 심하면 좌골신경통까지 동반하며 방사통을 일으키게 되어있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병력을 캘 때 문진을 통해 여러 증상을 감지하며 원인과 예후를 예측하지만, 전적으로 환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지는 않는다. 참고하며 어느 정도 일치하는 가와 다른 어떤 소견이 발견 되는 가를 염두에 두고는 한다. 그러니까 환자가 설명하거나 호소하는 것에 치중하기보다 환자의 움직임 상태를 보면 대략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할 수 있고 그것이 훨씬 정확하다. 왜냐하면 통증을 감지하는 것에 개별적 편차가 심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엄살과 주 증상의 호소를 보다 정확히 찾아 내어 전반적인 상태를 살피며 치료에 들어간다. 물론 영상 자료 등을 참고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세를 통해 측정하기도 한다.
별로 대수롭지 않을 줄로 알았던 상태가 연후 직후 급히 병원을 찾아 검사 등을 해보니 상태가 심각하여 척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란다. 주 근거지가 서울이 아닌 데다가 일이 많은 사람이라 서둘러 한 병원을 찍고 수술을 한다고 알려와 뭐라 말은 못하고 딴엔 넌즈시 신중히 잘 생각해야 한다고만 여운을 남긴 채, 나름대로 수소문 해 알아보니 어쩐지 신통 찮아 보이는 병원이라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퇴원을 하고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연락이와 상태를 보고 왔다. 며칠 새 증세가 더욱 악화되었고 환자 본인이 스스로 판단해 볼때 수술을 해야 하는 것 같다고 이미 판단이 섰다. 통증이 심하여 일단 주저 앉듯 병원을 선택하였으나 진통제를 맞고 일단 한숨 돌리고서 심사숙고 해 보니 아무래도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병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병원을 검색해 보니 이 정도면 됐다 싶다.
왜 그런고 하니 요즘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뻑하면 제가 최고라는 말들을 너무나 쉽게 남발해서 정황을 정확히 살피지 않으면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은 구분을 하기가 어렵다. 아플 때 그저 심정을 이해해 주면 기분상 그 쪽에 기대기 십상이 되는 것이다. 이리 저리 옮겨봐야 돈만 깨지고 바쁘고 시간이 없다보니 더욱 서두르게 된다. 그렇더라도 바쁠 수록 둘러가라는 속담이 있듯이 정말 이럴 때 제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한 번 선택이 그야말로 평생을 좌우하는 예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병원이 못마땅했던 첫 번째 이유는 병원에 여러 의료진들이 나와 있기는 했으나 모다 젊고 경험이 별로 없어보이는 데다가 전문의 자격 프로필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고 나와 있는 사람에 대한 소개도 드물었다. 실제로 그 인원이 상시 근무를 한다는 것인지 잠깐식 다녀간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어수선해 보였다. 그런제 하루밤 입원을 하여 상황을 겪어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척추 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곳을 다시 찾아 예약을 해 두었단다. 다시금 그 병원을 클릭해 보니 우선 의료진의 프로필부터가 확실하고 의료진들의 구성이 탄탄하게 짜여 있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약력이란 것은 살짝 포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전문가를 표방하고 내세우려면 확실하게 내세울 만한 증거와 표방이 있어야 하는 데, 처음 병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얼렁뚱땅 군더더기 장식이 요란 했다. 이를 테면 비 전공의 들이 전문가 인양 두꺼운 분칠로 눈가림에 가까운 화장을 했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하다. 그래서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조차 신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가까이서 접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무엇이 어떤지 판별해 내는 안목과 기준이 뚜렷하게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니고서는 예를 들어 비리나 허위를 밝혀내지 못한다. 일반인 들은 믿고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더군다나 아플 때야 혼수상태가 아닌가. 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뜻 제살 뜯어먹기 식으로나 보일 수 있어도 그래서 제 식구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악인 오윤선이 왜 울고 불고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판명할 수 없다. 그러나 상대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뭔가 약간은 시원찮은 구석이 있었기에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것처럼 의료진들의 자기 병원 피알도 제대로된 양식과 소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부풀리기 작전이나 쓰면서 허세로 속이거나 위장하지 말고, 내실을 다져 진중하게 차근히 진정성을 모색해 나가면서 그로서 신뢰를 다져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두번째 병원은 외관상만을 보아도 체계가 잡힌 것이 보여 이전의 병원보다 훨씬 안심이 된다. 환자도 의료진도 서로가 잘 만나야 하고 맞아야 피차 간에 도움을 주고 나누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어쨌든 오빠의 수술이 잘 되어 빠른 회복이 되기를 바란다.() 노부모님께서 몹시 노심초사다.

오랜만에 카페 탐방을 나섰다. 아니 동네 구립 독서실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없어졌다는 소문이다. 허탕치기 싫어서 날씨도 좋고 하여 책을 하나 들은 채로 발길을 돌려 훌쩍 버스를 타고는 카페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요전에 언젠가 버스를 타고 지나오다가 눈에 뜨이는 곳이 하나 있길레 찜해 두었던 곳이다. 버스를 타고 어디쯤인가를 더듬거리다가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린 바람에 다시 거슬러 올라와야 했지만 그렇다고 짜증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은 마치 언제 태풍이며 억수같은 장대비가 쏟아졌냐는 듯이 화창하기 그지없다. 9월 들어 여러 일들이 겹쳐서 발생하여 바쁘게 처리를 하다 보니 요 며칠 몸살을 앓다가 추석 지나고 바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서야 조금 나아졌다. 그래서 오늘은 모처럼 만에 나들이를 하고 싶었나 보다.
한편 추석 명절을 쇠러 온 오빠가 덜컥 병이 나서 졸지에 척추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알려 오면서도 제발 아무도 방문하지 말것 이며, 더군다나 노부모님께 최대한 별 일 아니니 염려 붙들어 매라는 위로부터의 엄명이 떨어진지라 분부를 받잡고 집에서 조용히 책이나 읽자니 집중이 안 되어 책 하나를 들고 나가버렸다. 게다가 가을 늦장마와 함께 우리 집은 어디에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는 지하 방으로 물이 스며들어 원인을 찾느라 공사 일꾼들이 다녀갔으나 탐지기 작동비만 수십만 원 씩 나갈 뿐 도통 원인을 찾지 못해 허탕인지라 이래저래 심난하여 조용히 몇 시간 외출을 하고 와야겠다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는 가끔 길을 가다 우연히 유심히 보아둔 곳을 방문하여 확인할 때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되곤 한다. 그러한 시도들이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까닭이다. 마치 척 보면 아는 사람처럼, 스스로가 선택한 점괘에 만족하듯이.
카페 레트로도 버스를 타고 지나치다가 간판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길레 눈여겨 보아두었던 것이고, 언제고 시간이 나면 들려봐야지 하고서 다시 더듬더듬 찾아가 방문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떤 곳일까 궁금하고 나의 척 보는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 정확한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의 기분을 무어라고 해야 할까? 묵지빠하며 이기는 기분? 아니면 홀짝 하여 모두 맞출 때의 전율? 하여튼 뭐 내기를 하여 맞출 때의 기분 같은 거다. "어때?", "괜찮지?" 하고 나 스스로에게 묻고 혼자 대답하며 흡족해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즐겨볼 만 하다.
카페 레트로의 방문 역시 혹시나 했던 것이 과연! 으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아 나는 스스로의 예견에 만족해 했다. 게다가 입구를 향해 가다보니 작은 공원이 있어 간판을 찾자 마자 간판부터 한 방 찰칵 찍고 들어갈 때의 제법 삼삼한 기분이라니. 이만하면 볕 좋은 날 혼자서라도 가방하나 달랑 둘러매고 편안한 복장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서 가뿐한 마음으로 들어가 볼 만하다는 생각에 젖어들게 된다. 몇 번 나홀로 족이 되어 가보더니만 이제 제법 이력이 붙나보다. ㅋㅋㅋ 도둑질도 하면 는다고 처음에는 혼자서 청승 맞게 무슨 카페를 들어가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어느새 제법 익숙해지는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운 듯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머문다.
내부는 벽면에 스크린도 설치되어 있고, 카운터 바로 앞에는 10좌석 정도의 커뮤니티 탁자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운터 주변으로 앉기보다 바깥 창이 시원하게 뚤린 카운터의 정면이나 출입구 정면이며 카운터의 좌측 측면인 환한 창가를 향해 자리를 잡고 앉아, 바깥 풍경과 창문으로 불어오는 살랑이는 가을 바람을 즐기는 모습이다.
처음 카페를 향해 들어오며 계단을 오르는데,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상당히 신경을 썼고 분위기가 괜찮겠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도 들어갈 때는 내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입구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부에 들어가서 제법 만족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욱 애정이 가서 나올 때 더욱 유심히 벽면의 장식들을 다시금 살펴보게 되었다.
그래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서 혹시 카페 쥔장이 꽃누름(압화) 작가냐고 물으니 애됫 여종업원의 대답이 작가 인지는 모르겠으나 쥔장이 직접 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다음에 언제 기회가 닿으면 인터뷰를 해보아도 재미나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발걸음을 향해 나왔다.
처음에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점심 시간 이후의 오후인지라 제법 시간이 되었는데도 실내가 복잡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적한 공간을 골라 편하게 책을 읽다가 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잠시 후가 되니 사람들이 밀려들어와서 좌석을 거의 매우다시피 해 얼른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게 아닌가 순간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내 공간에 꽤나 여유가 있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젊은 층보다는 노년 층들이 많이 이용하며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으로 애용되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목청이 어찌나 크고, 한 편에서는 담배연기가 날아와 목을 컬컬하게 했지만 나의 독서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오늘 루쉰의 소설 전집의 일부분을 읽거나 필사했다.
참,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기념으로 주문한 것은 세트메뉴인데, 치즈 와플과 커피였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시켰는데, 웬걸 나오는 폼이 기대 이상이다. 여러 가지 과일까지 소복이 담겨져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와플은 치즈 와플인지 뭔지 솔직히 맛의 구분이 잘 가지 않았으나, 딸려 나온 과일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커피는 리필이 되느냐고 물으니까 추가 요금만 내면 가능하다고 해서 나중에 한 잔 더 시켜 먹으면 되겠구나 했는데, 마셔보니 진하게 느껴진다. 먹자 마자 가슴이 찌르르르 한 게 오늘 밤 잠을 안 오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천천히 마셨다. 잔도 크고 맛도 진해서 천천히 마시다보니 더 추가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마 한 잔을 더 마셨다면 아마도 내일까지도 잠이 안 올지도 모를 만큼 강한 맛이 느껴졌다. 내가 조금 예민한 상태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 정도의 분위기면 지인들과의 약속 장소로 기억해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터에 계산을 하며 보니 옆에 카페에 관한 책이 수북이 놓여 있다. 파는 거냐고 물으니까 독서용이라고 한다. 위의 우측 사진은 꽃누름을 하여 만든 장신구류로 판매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지인과 통화도 하는 등 그곳에서 간만에 휴일 낮의 한가로움을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띵~ 큰소리를 내며 문자가 날아들어 깜짝 놀라 받아보니, 오빠가 서둘러 입원한 병원을 옮겨 다른 곳을 예약하고 현재 집으로 옮겨와 쉬고 있다는 올케의 전갈이다. 안 그래도 조금 찜찜 했으나 경황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연히 걱정거리나 앉기는 듯 하여 속으로만 근심을 하였는데 잘 되었다는 생각에 얼른 답신을 보내주었다. 수술 후에 들여다 보려 했던 당초의 계획을 바꿔 집에 가는 길에 잠깐 오빠를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책읽기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오빠는 명절 때보다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걸음을 걷지 못하였다. 그새 얼굴이 반쪽이다. 신경이 눌려 마비증상이 오는 모양이었다. 명절이고 연휴라 애써 참았지만 통증이 심하다보니 꽤나 시달렸던가 보다. 아버지 모시고 큰댁에 가서는 차례상에 절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더니...... . 나이를 먹으면 병치레를 하며 늙는 일만 남았는데, 이렇게 늙어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좋은 의료진을 만나 빨리 쾌유되기만을 두 손 모아 빈다.
어쩐지 이래 저래 잠이 오지 않는다. 아프지 않아야 한다. 삶에 여유를 가지면서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p.s. cafe Retro: 관악구 남현동 / 사당역 6번 출구 낙성대 방향 / Tel: (02) 582-0230

아큐정전
제 1 장 서(序)
내가 아큐(阿Q)를 위하여 정전(正傳)을 쓰려고 한 것은 이미 한두 해의 일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면 그만 망설여졌다. 그것은 내가 '말을 후세에 전할'만한 위인이 못 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불후(不朽)한 문장만이 불후의 인물을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사람은 글로써 전해지고 글은 사람에 의해서 전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대체 누가 누구에 의해 전해지는 것인지 점점 애매해진다. 결국 아큐를 전하겠다는 결정에 이르고 보니, 어쩐지 내가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마저 든다.
아무튼 금방 잊혀질 이 한 편의 문장을 쓰기로 작정하고 붓을 들자, 곧 여러 가지로 곤란을 느끼게 되었다.
첫째로 문장의 이름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名不正則言不順)."고 하셨다. 이것은 마땅히 매우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전(傳)의 이름은 매우 많다. 열전(列傳), 자전(自傳), 내전(內傳), 외전(外傳), 별전(別傳), 가전(家傳), 소전(小傳)...... . p96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 모두가 적합하지 않다. '열전'이라고 하자니 결코 이 글이 많은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정사(正史) 속에 배열될 수가 없고, '자전'이라고 하자니, 내가 바로 아큐는 아닌 것이다. '외전'이라고 한다면 '내전'은 어디에 있는가? '별전'을 쓰자면 먼저 '본전(本傳)'을 작성하라는 유시가 없는 것이다. - 비록 영국의 정사(正史)에는 '박도별전(博徒別傳)' 이 없음에도 문호 디킨즈가 '박도별전' 이란 책을 저술한 적이 있다지만 그것은 문호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나 따위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은 '가전'인데, 나는 아큐와 동족인지 아닌지조차 모르며, 또한 그의 자손으로부터 의로를 받은 적도 없다. 또는 '소전' 이라 해도 아큐에게는 따로 '대전' 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이 한 편은 역시 '본전' 이 되겠으나, 내 문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문체에 품위가 없어 '수레를 끌면서 콩국을 파는 사람'이나 쓰는 말이기 때문에 감히 본전이라고 주제넘게 지칭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학자축에도 못 끼는 소설가들이 쓰는 '한담(閑談)은 그만두고 정전으로 돌아가서' 라는 틀에 박힌 문구에서 '정전(正傳)' 이라는 두 글자를 끄집어내어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설령 옛 사람이 편찬한 '서법정전(書法正傳)'의 '정전'과 글자가 똑같아서 혼동될 염려가 있긴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둘째로 전기의 통례로서 첫머리에는 대게 '아무개, 자(字)는 무엇이며 어느 곳 사람이다' 라고 쓰는 것이나 나는 아큐의 성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한 번은 그의 성이 짜오(趙)인 것 같았으나, 그 다음날에는 곧 모호해졌다. 그것은 짜오(趙) 나으리의 아들이 수재(秀才)에 급제하였을 때였다. 둥둥하는 바라 소리와 함께 그 소식이 마을에 전해졌을 때, 아큐는 마침 황주를 두어 잔 들이키고는 몹시 좋아 날뛰면서 이것은 그 자신에게도 퍽 영광이라고 했다. p97
왜냐하면 그는 원래 짜오 나으리와 동족이며, 꼼꼼히 항렬을 따져보면 그는 수재보다 삼 대나 윗 항렬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몇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경외감을 느꼈다. 그런데 다음날, 지보(地保)- 지방 자치 경찰- 가 오더니 아큐를 짜오 나으리 댁으로 끌고 갔다. 나으리는 아큐를 보자 온통 얼굴을 붉히며 호령했다.
"아큐, 이 발칙한 놈아, 내가 너의 친척이라고?"
아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짜오 나으리는 볼수록 더욱 화가 치미는지 며 발짝 앞으로 쫓아 나서며 말했다.
"감히 터무니없는 소릴 지껄이다니! 나에게 어떻게 네 놈 같은 동족이 있을 수 있단 말이야!네 성이 짜오냐?"
아큐는 입을 열지 않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짜오 나으리는 달려들어 따귀를 한 대 때렸다.
"네 놈이 어떻게 해서 성이 짜오란 말이야? 네 놈이 짜오 씨라니 당치도 않다."
아큐는 자기 성이 확실히 짜오라고는 한 마디도 항변하지를 않았다.
다만 손으로 왼뺨을 문지르면서 지보와 함께 물러났다. 밖에 나오자 이번에는 지보가 그를 닦아세웠다. 그래서 아큐는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술값으로 2백 닢을 바쳤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아큐가 너무 황당한 말을 하고 다녀서 스스로 얻어맞을 짓을 한 것이라고들 말했다. 그는 아마도 틀림없이 짜오 가는 아닌 것 같다. 설사 진짜 짜오 가라 해도 짜오 나으리가 여기 있는 한 그런 허튼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뒤부터는 아무도 그의 성씨에 대하여 운운하지 않았으므로 나도 아큐의 성이 무엇인지 결국 모르게 되었다. p89
셋째로 나는 또 아큐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조차 모른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들 아Quei라고 불렀다. 죽은 뒤론 누구 하나 아Quei를 입에 올리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니 '역사에 기록한다'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는가? 만약 '역사에 기록한다'고 말한다면 이 문장이 아마 최초가 될 것이므로 먼저 이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이런 모로 생각해 보았다. 아Quei라는 건 '아꿰이(阿규)' 일까. 아니면 '아꿰이(阿貴)일까? 만약 그에게 월정(月亭)' 이라는 호가 있다든가 혹은 8월에 생일잔치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아꿰이(阿규)' 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호가 없었고 - 호가 있었을지도 모르나 다만 아무도 그걸 아는 사람이 없다. - 또 생일잔치에 와달라는 초청장을 돌린 적도 없으므로 '아꿰이(阿규)' 라고 쓰는 것은 독단인 것이다.
또 만약 그에게 '아푸(阿富)' 라는 이름의 형이나 아우가 있었다면 그 자신은 틀림없이 '아꿰이(阿貴)' 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형제가 없으므로 '아꿰이(阿貴)' 라고 부를 근거가 없다. 그 밖의 Quei라는 소리가 나는 어려운 글자로는 더욱 알맞은 게 없다. 이전에 나는 짜오 나으리의 아들인 수재 선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으나 그렇게 박학한분도 별 수가 없었다. 그의 결론에 의하면 천두슈(陳獨秀)가『신청년(新靑年)』을 발행하고 서양 문자를 제창했던 까닭에 국수(國粹)가 멸망되었으므로 고증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의 최후의 수단은 다만 같은 고향의 어느 친구에게 의뢰하여 아큐의 범죄조서를 조사해 달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8개월 뒤에야 겨우 회신이 있었으나 조서 중에는 아Quei와 비슷한 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없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조사도 해보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나 이제는 더 이상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주음자모(注音子母)는 아직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것 같으니 부득이 서양 문자를 써서 영국에서 유행하는 병음법(倂音法)으로 아Quei라고 쓰고, 간략히 아Q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신청년』에 맹종하는 것 같아 내 자신도 매우 유감이지만 수재 선생조차도 모르는 걸 나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넷째로는 아큐의 본적이다. 만약 그의 성이 짜오라면 현재 군중(郡中)의 명문이라고 들먹이기 좋아하는 예에 따라, '근명백가성(郡名百家姓)'의 해석에 의해 '농서천수(朧西天水)의 사람' 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성이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되므로, 본적 또한 결정하기가 어렵다. 그가 미장(未莊)에 오래 살긴 했지만, 때로는 다른 곳에 살기도 했으므로 미장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 설령 '미장 사람이다' 라고 한다 해도 여전히 사법(史法)에 어긋나는 것이다.
내가 조금 자위하는 바는 그래서 '아(阿)'자 하나만은 매우 정확하여 절대로 억지로 붙였거나 빌려다 쓴 결점이 없으므로 어떤 대가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다. 그 밖의 점에 있어서는 모두 천학(淺學)으로써 구명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다만 역사벽과 고증벽이 있는 후스(胡適) 선생의 문인들이 장차 혹 많은 새로운 단서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만, 나의 이『아쿠정전(阿Q正傳)』은 그 무렵에는 벌써 소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상으로써 서문을 대신한다. p100
제 2장 승리의 기록
아큐는 성명과 본적이 분명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적 또한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미장 사람들의 아큐에 대한 관심은 다만 그에게 일을 부탁할 때나, 그를 두고 농담할 때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그의 '행적'엔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쿠 자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과 말다툼할 때 이따금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도 그 전에는 ...... 네까짓 놈보다는 훨씬 더 잘살았어! 네 따위가 무어야!"
아큐는 집도 없이 미장의 사당(祠堂) 안에 살고 있었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다만 날품팔이를 하면서, 보리를 베라면 베고, 쌀을 찧으라면 쌀을 찧고, 배를 저으라면 배를 젓기도 했다. 일이 좀 오래 걸릴 때는 임시로 주인집에서 묵기도 했으나 끝나면 곧 돌아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바쁠 때에는 아큐를 생각해 내나, 그것도 시킬 일이 있을 때뿐이지 그의 '행적' 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한가해지면 아큐라는 존재자체도 잊어버리는 판국이니 '행적'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꼭 한 번 어느 노인이 "아큐는 정말 일꾼이야!'' 하며 칭찬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아큐는 온통 옷을 벗은 채로 멋쩍은 듯이 말라빠진 몰골로 그 노인 앞에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 말이 진심인지 빈정거럼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아큐는 대단히 기뻐했다.
아큐는 또한 자존심이 강했다. 미장 주민들은 하나같이 눈에 차지 않았고 심지어 두 분의 '글방 도련님' 에 대해서까지도 일소(一笑)의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 무릇 '글방 도련님' 이란 장래 수재로 변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짜오 나으리와 치엔 나으리가 주민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도, 돈이 많다는 것 이외에 두 사람 모두 '글방 도련님'의 아버지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독 아큐는 마음속으로 특별히 존경한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었다면 더 훌륭했을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몇 번 성 안으로 들락거렸던 일은 자연 그의 자부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 p101
그러나 한편 그는 성 안 사람들까지도 퍽 경멸하였다. 예컨대, 길이 석 자, 폭 세 치의 널빤지로 만든 걸상을 미장에서는 '긴 걸상'이라고 부르며, 그도 '긴 걸상'이라고 불렀는데 성 안의 사람들은 '긴 의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것은 틀린 일이며 가소로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도미를 튀길 때 미장에서는 모두 반 치 길이의 파를 얹는데 성 안에서는 잘게 썬 파를 얹는다. 이것도 틀린 것이며 가소롭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장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모르는 가소로운 시골뜨기들로 그들은 성 안의 생선튀김은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아큐가 '옛날에는 잘살았고', 견식도 높고, 게다가 '정말 일꾼'이니 본래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만하지만, 가련하게도 그에겐 약간의 신체상의 결점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놀림을 받는 것은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부스럼 자국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큐의 생각에도 비록 그의 몸에 생긴 것이기는 하나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곧 '부스럼' 이라는 말뿐 아니라, '부스럼 자국' 과 비슷한 발음의 말조차 꺼려했으며, 그것이 점점 더 확대되어 '빛나다' 라는 말도 , '밝다' 하는 말도 금기로 삼았고 더 나아가서 '등불' 이라든가 '촛불'이라는 말까지 금기시하는 것이었다. 그 금기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고의든 아니든 아큐는 부스럼 자국까지 붉혀가며 화를 내었다. 상대를 어림쳐 봐서 말솜씨가 좋지 않은 놈이면 욕을 퍼붓고, 힘이 약한 놈이면 두들겨 주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아큐가 당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츰 방침을 바꾸어 대개는 화난 눈으로 노려보기로 했다.
아큐가 '노려보기주의'를 채택한 뒤로 미장의 건달들이 더욱더 그를 놀려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만나기만 하면 짐짓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이구, 밝아졌다!" p102
그러면 아큐는 틀림없ㅇ 성을 내고 노려보았다.
"여기 원래 보안등이 있었군 그래."
그러나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큐는 할 수 없이, 따로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네깐 놈들과는 상대도 안 돼...... ." 이 때 그는 마치 자신의 머리에 있는 것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부스럼자국이지, 평범한 부스럼자구기 아닌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큐는 견식이 높은 사람이므로 '금기'에 조금 저촉된다는 걸 알고서 그만 말을 잇지 않는 것이었다.
건달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를 계속 놀려대어 마침내 치고받는 싸움이 된다. 그러나 아큐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한다. 놈들은 노란 변발을 낚아채고, 벽에 퍽퍽 그의 머리를 네댓 번 짓찧는다. 건달들은 그러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간다. 아큐는 잠시 동안 우두커니 서서 '내가 자식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세상은 돼먹지 않았어...... .'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해서 의기양양해 가버린다.
아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말해 버린다. 그래서 아큐를 곯려주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이러한 정신적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놈들이 그으 노란 변발을 낚아챌 때는 먼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큐! 아것은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아큐는 양손으로 변발의 머리꼭지를 잡고, 머리를 비틀며 말했다.
"벌레를 치는 거야! 됐어? 나는 벌레야. - 이래도 놓지 않겠어?" p103
벌레라고 했건만 건달들은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가까운 데 아무 데나 대고 퍽퍽 대여섯 번 머리를 찧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놈들은 이번에야말로 아큐도 혼이 났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큐도 역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제 1인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경멸할 수 있다'는 말을 생략하면 남는 것은 '제 1인자' 라는 말이다. 장권급제한 사람도 '제 1인자' 가 아닌가?
"네 까짓 것들이 다 뭐냐?"
아큐는 이러한 갖가지 묘수로 원수들을 굴복시킨 다음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서 술을 몇 잔 마시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한바탕 놀림을 당하거나, 입씨름을 하다가 또 이기고 나면, 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가 머리를 쑤셔 박고 자버리면 그만이다.
만약 돈이 있으면 그는 도박을 하러 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에 쭈그리고 않아 있는데, 아큐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가운데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기를 거는 소리 중에서도 가장 컸다.
"청룡에 4백!"
"자- 엽니다!"
물주가 상자뚜껑을 연다. 그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읊어대는 것이었다.
"천문이로다-. 각은 비기고, 인과 천당은 졌다. - 아큐의 돈은 내가 먹었어...... ."
"천당에 100-150이다!"
아큐의 돈은 이런 노랫가락을 타고 땀을 뻘뻘 흘리는 다른 사람의 허리춤으로 점점 흘러들어갔다. 마침내 그는 사람들에게서 밀려나고 만다. p104
그러나 뒷전에 서서 남들의 승부에 마음을 졸이며 끝까지 노름판을 지켜본다. 그리고 판이 끝나면 아쉬운 듯 사당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날은 눈이 퉁퉁 부어 일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만사(人間萬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 다. 아큐는 불행히도 딱 한 번 이기고는, 도리어 낭패를 보게 되었다.
그 날은 미장에서 마을 축제를 지내던 날 밤이었다. 이 날 밤은 관례대로 무대를 차리고, 무대 주변엔 으레 많은 도박판이 벌어졌다. 연극무대의 꽹과리 소리와 북 소리도 아큐의 귀에는 십 리 밖 먼 데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에겐 물주의 노랫가락 소리만이 들렸다. 그는 따고 또 땄다. 동전이 은전이 되고 작은 은전이 큰 은전이 되었다. 큰 은전이 쌓이고 쌓였다. 그는 매우 신바람이 났다.
"천문에 두 냥!"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욕하는 소리, 때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란이 한바탕 벌어졌다. 그가 간신히 기어나왔을 땐 노름판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몸의 몇 군데가 아픈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얻어맞기도 하고 발길질을 당한 것 같기도 했다. 몇 사람이 그를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사당으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그의 은화 무더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축제날에 벌어지는 노름판의 대부분은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그것을 찾겠는가?
새하얗게 번쩍번쩍 빛나는 은화더미! 더구나 그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이다. 자식놈이 가져간 셈 쳐보아도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스스로가 벌레라고 말해 보아도 역시 편치 않다. 그도 이번만은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p105
그러나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린 후에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 멎은 것은 또 다른 자신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같이 -비록 아직도 얼얼하지만 - 몹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드러누웠다.
그는 푹 잠들었다.
제 3장 속(續) 승리의 기록
아큐가 비록 항상 승리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짜오 나으리에게 따귀를 맞고 난 뒤에야 겨우 유명해졌다.
그는 지보(地保)에게 2백 닢의 술값을 치른 후 화가 나서 드러누워 있다가 나중에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 말이 아니야. 자식 놈이 제 애비를 때리다니..... .'
그러나 갑자기 짜오 나으리의 기풍당당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자식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의기양양해져서 몸을 일으켜「청상과부 성묘 가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술집으로 갔다. 그때 그는 짜오 나르리가 딴사람보다 한층 더 고상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 과연 사람들이 각별히 그를 존경하는 것 같았다. 아큐로서는 자신이 짜오 나으리의 부친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모르나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미장의 통례로는 아치(阿七)가 아빠(阿八)를 때렸다든가, 혹은 이사(李四)가 장삼(張三)을 때렸다 하는 것은 본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으며 반드시 짜오 나으리 같은 유명한 사람과 관련되어야 비로서 그들의 입에 오르는 것이다. 한 번 입에 오르면 때린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므로 맞은 사람도 그 덕에 유명해진다.
잘못이 아큐에게 있음을 물론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짜오 나으리에게는 잘못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잘못이 있다면 어째서 사람들이 그를 각별히 존경하겠는가? 이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아큐는 짜오 나으리의 동족이라고 주장했으니 비록 얻어맞긴 했어도 그게 어쩌면 정말일지 모르므로 조금 존경해 두는 게 나으리라는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공자묘(孔子廟)에 바친 황소는 비록 돼지나 양과 같은 짐승이면서도 성인(聖人)이 젓가락을 댔기 때문에 선유(先備)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아큐는 우쭐하였다.
어느 해 봄, 그는 얼큰히 취해 길을 걷고 있었다. 양지 바른 담 밑에 왕털보가 벌거벗고 이를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걸 보니 갑자기 자신의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이 왕털보는 부스럼 자국도 있고 털도 많아서 딴사람들은 그를 왕부스럼털보라 불렀으나, 아큐만은 부스럼자를 떼고 왕털보라 부르며 무척 경멸하고 있었다. 아큐는 의견으로는 부스럼 자국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바 없으나, 볼을 덮은 수염은 정말 기이하여 보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아큐는 그와 나란히 앉았다. 만일 딴 건달이었다면 아큐는 감히 가까이 앉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왕털보 옆이라면 무서울 게 무엇이 있나? 사실 그가 앉아준 것만으로도 그에게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된다.
아큐도 누더기가 된 저고리를 벗어서 한 번 뒤집어 봤다. 새로 빨아서 그런지, 아니면 허투루 봐서 그런지 한참 만에 서너 마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왕털보를 보니 한 마리, 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입안에 털어 넣고 바작바작 깨문다. p107
처음에 아큐는 실망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약이 올랐다. 볼품없는 왕털보가 저렇게 많은데, 자신은 이렇게 조금밖에 없다니, 이건 정말 체통을 크게 잃는 꼴이지! 한두마리라도 큰 놈을 찾아내려고 했으나 끝내 없었다. 가까스로 어중간한 놈 한 마리를 잡아내 투박한 입술을 사납게 벌려 집어넣고 힘껏 꽉 씹었다. '툭'소리가 났으나 왕털보의 소리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의 부스럼 자국이 온통 붉어졌다. 옷을 땅바닥에 냅다 던지고 침을 취기며 말했다.
"이 털복숭이야!"
"부스럼쟁이야! 네가 누굴 욕하냐?"
왕털보는 경멸하듯 눈을 치뜨며 말했다.
이 무렵 아큐는 남들로부터 비교적 존경도 받고 있어 전보다 더욱 거들먹거렸지만 그래도 싸움 좋아하는 건달들을 보면 겁이 났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매우 용감했다. 이따위 털보가 제멋대로 지껄이게 내버려둘 수가 있는가?
"누굴 욕하냐고? 물라서 물어?"
그는 일어서서 두 손을 허리에 짚고 말했다.
"너 맞지 못해 근질근질하냐?"
왕털보도 일어나 옷을 걸치며 말했다. ]
아큐는 그가 달아나려는 줄 알고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주먹이 상대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잡아끌자 아큐는 비틀비틀 끌려갔다. 그리고는 곧 이어 왕털보에게 변발을 휘어잡히고 담으로 끌려가 그전처럼 머리를 짓찧게 되었다.
"군자는 말로 하지, 손찌검은 하지 않는다!"
하고 아큐는 고개를 꼬며 말했다. p108
왕털보는 군자가 아닌 것 같았다. 전혀 상대로 하지 않고 연속 다섯 번이나 처박고 나서 힘껏 밀쳐버렸다. 그 바람에 아큐가 여섯 자나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제서야 왕털보는 만족하며 돌아갔다.
아큐의 기억으로는 아마도 이것이 평생에 첫 번째로 굴욕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왕털보는 그의 볼을 덮은 털의 결점 때문에 아큐에게 놀림을 받았으면 받았지, 아큐를 깔본 적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손찌검 따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마침내 손찌검을 한 것이다. 참으로 뜻밖이었다. 설마 세상에 떠도는 소문대로 황제가 과거시험을 중지하여 수재도 거인(擧人)도 없어지고, 따라서 짜오 씨네 위풍도 사라져버린 것일까? 이 때문에 그들도 아큐를 깔보는 것일까?
아큐는 어쩔 줄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 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의 적이 또 나타난 것이다. 이 사람도 아큐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바로 치엔 나으리의 큰아들이었다. 그는 이전에 성 안의 서양학교에 들어갔으나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또 일본으로 건너갔다. 반 년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는 걸음도 곧바로 걷고 변발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모친은 열 번 이상이나 울며 법석을 떨어ㅛ고 그의 아내는 세 차례나 우물에 뛰어들었다. 나중에는 그의 모친이 어디를 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머리채는 술에 취했을 때 나쁜 놈들에게 잘리고 말았대요. 본래 훌륭한 관리가 될 수 있었는데 머리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아큐는 그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를 '가짜 양놈' 이라 했고 또 '외국놈의 앞잡이' 라고도 불렀다. 그를 보기만 하면 반드시 속으로 은근히 욕을 해댔다.
아큐가 가장 '심각하고 절통하게 증오' 하는 것은 그의 가짜 변발이었다. 변발이 가발이라면 사람 구실을 할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가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보면 그녀도 훌륭한 여자가 아니다. p109
그 '가짜 양놈'이 다가왔다.
"까까머리, 당나귀...... ."
평소라면 아큐는 뱃속에서만 욕지거리를 할 뿐 입으로 내뱉는 법이 없었는데, 이번만은 마침 분통이 치밀고 앙갚음을 하고 싶은 기분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욕이 새어나고 말았다.
뜻밖에도 이 까까머리는 노란 니스칠을 한 지팡이- 즉 아큐가 말하는 상주지팡이- 를 둘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순간 아큐는 아마도 얻어맞겠거니 하고 온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솟구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딱! 하는 소리가 났는데 확실히 자기 머리에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저 애보고 말한 거예요."
아큐는 곁에 있던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딱! 딱!"
아큐의 기억으론 이것이 아마 평생 두 번째의 굴욕적인 사건이리라. 다행히도 딱딱하는 소리가 나고 나서는 그것으로써 사건이 일단락된 듯싶어 도리어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게다가 망각이라는 선조 전래의 보물도 효력을 나타냈다. 그가 천천히 걸어서 술집 문 앞에 도착했을 때쯤엔 이미 기분이 다소 좋아져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정수암(靜修庵)의 젊은 비구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큐는 평소에도 비구니를 보면 침을 뱉고 싶어지는데 하물며 지금은 큰 굴욕을 치른 직후다. 그는 굴욕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어째 오늘 이렇게 재수가 없나 했더니 바로 너를 만나려고 그랬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p110
그는 그녀 앞으로 마주 가서 큰소리를 치며 침을 뱉았다.
"캭! 퉤!"
그러거나 말거나 젊은 비구니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머리를 숙인 채 걷고만 있었다. 아큐는 그녀 곁으로 바싹 다가가서 손을 쑥 내밀어 그녀의 새로 깎은 머리를 쓰다듬고 껄껄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까까머리야. 얼른 돌아가. 중놈이 널 기다리고 있어...... ."
"왜 나한테 직접거리는 거야?"
비구니는 얼굴이 새빨개벼서 그렇게 말하고는 잽싸게 걸어갔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아큐는 자기의 공로가 인정되는 것을 보고는 더욱 흥이 나서 의기양양해졌다.
"중놈은 집적거려도 되고, 난 안 된단 말이야?"
그는 비구니의 볼을 꼬집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아큐는 더욱 신이 나서 이 구경꾼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힘주어 꼬집었다. 그리고 나서야 풀어주었다.
그는 이 일전으로 왕털보와의 일을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가짜 양놈과의 일도 잊어버렸다. 오늘 이 모든 불운에 대하여 전부 원수를 갚은 것만 같았다. 신기하게도 전신이 딱딱 얻어맞을 때보다 더욱 가벼워져 펄럭펄럭 날아갈 듯 상쾌했다.
"이 씨도 못 받을 아큐놈아!"
멀리서 젊은 비구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아큐는 매우 자랑스럽게 웃었다.
"하하하."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신이 나서 웃었다. p111

걱정이 되셨는지 아침에 어머니는 꿈자리가 사납다고 신경을 쓰셨다. 은근 오늘 오빠가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오빠 수술은 내일로 잡혔다. 좋은 의료진과 무사하고 성공된 수술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여러 차례 집안 누수 현상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이 다녀갔다. 아직도 원인은 추측만 난무하고 ...
그런데, 이 시간에 또 비가내리누나. 이러면 점점 원인을 규명해 나가기가 힘들어지는데...
마음 편히 책도 잘 읽히 잖고 일들은 터지는데, 풀어주어야 할 사람은 들은 척 만 척 막무가내이고 ... 몹쓸 인연...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행여 이해나 할 수 있으려는지 ... 해도 너무 한다... 시린 인간관계여...
제 5장 생계문제
아큐는 사죄식(謝罪式)이 끝나자 여느 때처럼 사당으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나니 아무래도 점차 세상이 야릇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그 원인은 자기가 벌거숭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누더기 겹옷이 또 있음을 생각해 내고 그걸 겹쳐 입고는 드러누웠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태양이 이미 서쪽 담 위에 비치고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면서 "제기랄!...... ." 하고 투덜댔다.
그는 일어나자 평소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벗고 있을 때처럼 피부를 찌르는 추위는 없었으나 또 어쩐지 세상이 야릇하다는 느낌이 점차 들었다. 이 날부터 미장의 여인들은 갑자기 부끄럼을 타는 모양인지 아큐를 보기만 하면 저마다 대문 안으로 몸을 숨겼다. 심지어는 오십이 가까운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마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숨었으며, 더구나 열한 살짜리 계집애까지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아큐에게는 퍽 이상스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들이 갑자기 모드ㅜ 아씨 흉내를 내는군. 이 화냥년들이...... .' 그러나 그가 더욱 세상이 괴상해진 것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난 뒤였다. 첫째, 술집에서 외상을 주지 않는 것이다. 둘째, 사당을 관리하는 늙은이가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는 품이 그를 내쫓으려는 것 같았다. 셋째, 며칠이나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으나 하여튼 꽤 여러 날 아무도 그에게 날품을 시키러 오지 않는 것이었다. 술집에서 외상을 안 주는 것은 참으면 그만이고 늙은이가 내쫓으려 해보았자 투덜대는 대로 내버려두면 그뿐이지만 아무도 날품을 얻으러 오지 않는 것은 아큐의 배를 곯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아주 '제기랄' 할 일이었다.
아큐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옛날 단골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 짜오 씨 댁만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런데 사정은 달랐다. 반드시 남자가 나와서 귀찮다는 얼굴로, 겆지라도 쫓아버리듯 손을 내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없어, 없어, 꺼져!" p119
아큐는 더욱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이런 집에서는 일이 없던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고 갑자기 일이 없어질 리가 없다. 여기에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주의하여 알아본 결과 그들은 일이 있으면 소(小D)는 몸도 작고 힘도 없고 말라깽이이어서 아큐의 눈에는 왕털보보다도 한 수 아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애송이에게 그의 밥그릇을 체인 것이다. 그래서 아큐의 분노는 평상시완 달랐다. 너무나 성이 나서 길을 걸어가다가 별안간 손을 휘저으며 노래를 불렀다.
"쇠채찍으로 네 놈을 치리라...... ."
며칠 뒤 그는 치엔 씨 댁 담에서 소디와 마주치게 되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아큐가 다가서니까 소디도 멈추섰다.
"개새끼!"
아큐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입가에서 침이 튀었다
"나는 벌레야. 그럼 됐지?...... ."
소디가 말했다.
이 겸손이 도리어 아큐의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쇠채찍이 없었으므로 그냥 덤벼들어 소디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소디는 한 손으로 자기 머리채 꼭지를 누르면서 다른 한 손으로 아큐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큐도 놀고 있는 한쪽 손으로 자기의 머리채 꼭지를 눌렀다. 그전의 아큐 같았으면 소디쯤은 상대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는 요사이 배를 주려 소디 못지않게 말라 있어서 힘이 엇비슷한 맞수의 상대가 되었다. 네 개의 손이 두 개의 머리를 서로 움켜쥐고 허리를 구부리고 버텨섰다. 둘 다 푸른 옷을 입고 있어 마치 치엔 씨네 긴 담벼락에 검푸른 무지개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반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p120
"이젠 됐다! 됐어!
구경꾼들이 말했다. 아마도 말리려는 것인가 보다.
"됐어, 됐어!"
구령꾼들이 거듭 말했다. 말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부추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둘 다 들은 척도 않는다. 아큐가 세 발짝 나서면 소디는 세 발짝 물러서서 멈춘다. 소디가 세 발짝 나서면 아큐가 세 발짝 물러나 멈춘다. 거의 반 시간,- 미장에는 시계가 없으므로 정확한 시간을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20분이었는지도 모른다. - 그들의 머리에서 는 김이 무럭무럭 솟았고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아큐의 손이 늦춰졌다. 같은 순간에 소디의 손도 늦춰졌다. 둘은 동시에 허리를 펴고 물러나 군중 속으로 헤쳐나갔다.
"두고 보자, 개새끼...... ."
아큐가 돌아보면 말했다.
"개새끼, 두고 보자...... ."
소디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한 판의 '용과 호랑이의 싸움'은 무승부로 끝난 것이다. 구경꾼들이 만족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나 아무도 거기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큐에게는 여전히 날품을 시키는 사람이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매우 따뜻한 어느 날이었다. 살랑거리는 미풍에 벌써 여름 기운이 났으나, 아큐만은 으스스 추위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그래도 견딜 만 했다. 제일 곤란한 배가 고픈 것이었다. 솜이불, 털모자, 홑옷은 벌써 없어졌고, 그 다음에는 솜옷도 팔아먹었다. 이제는 바지만 남았으나 이것만은 벗을 수가 없었다. 누더기 겹옷이 있기는 하지만 남에게 주어 신창이나 하라고 하면 모를까 팔아서 돈이 될 것도 못 된다. p121
그는 길거리에서 돈이라도 주웠으면 하고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다. 자기의 부서진 집 어딘가에 돈이 떨어져 있지 않을까 하고 황망히 둘러보아도 집은 말짱하게 비어서 휑뎅그렁했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가 구걸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구걸할 작정이었다. 낯익은 술집이 눈에 띄었다. 낯익은 만두집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는 모두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걸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가 구하려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자신도 잘 몰랐다.
미장은 본래 큰 마을이 아니므로 빠져나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을을 벗어나면 모두 논인데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파릇파릇한 못자리였다. 그 사이에 여기저기 움직이는 둥그스름한 검은 점들은 논을 매는 농부들이다. 아큐는 이러한 전원 풍경도 감상하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이 풍경들과 그의 '구걸' 하는 길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드디어 정수암의 담 밖에까지 이르렀다.
암자의 주위도 논이었다. 신록 사이로 흰 벽이 우뚝 나와 있고, 뒤쪽의 낮은 토담 안쪽은 야채밭이었다. 아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낮은 담장을 기어올라가 하수오- 새박뿌리- 의 덩굴을 움켜잡았다. 담흙이 부석부석 떨어지고 아큐의 발도 후들후들 떨렸다. 가까스로 뽕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안으로 뛰어내렸다. 안은 참으로 푸릇푸릇 무성해 있었으나 황주나, 만두나 그 밖에 먹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서쪽 담을 따라서는 대밭이 있고 그 속엔 많은 죽순이 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모두가 삶아 익힌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벌써 씨가 든 유채(油菜)도 있었고 갓은 이미 꽃이 피어 있었으며 잔배추도 장다리가 돋아 있었다.
아큐는 마치 글방도령이 낙방했을 때처럼 무척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는 밭으로 난 문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갔다. 이 때 그는 갑자기 놀랍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분명히 무밭이었다. 그는 주저앉아 무를 뽑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문 안에서 동그란 머리가 힐끔 내다보더니 바로 들어가 버렸다. 틀림없이 젊은 비구니였다. 젊은 비구니 따위는 아큐의 눈에 본래 먼지나 쓰레기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무를 네 개 뽑아서 잎을 잘라버리고 저고리 속에 숨겼다. 그러자 늙은 비구니가 벌써 나타났다.
"나무아미타불. 아큐! 어째서 채소밭에 몰래 들어와 무를 훔치는 거야. 암, 죄악이지. 나무아미타불."
"내가 언제 당신 밭에 들어가 무를 훔쳤어?"
아큐는 달아나면서도 힐끔힐끔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지금...... . 그건 뭐냐?"
늙은 비구니는 그의 품속을 가르켰다.
"이게 당신 거라고? 당신이 부르면 무가 대답이라도 하우? 당신...... ."
아큐는 말도 맺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커다란 검정개가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본래 정문에 있던 것인데 어떻게 뒤꼍밭에 왔는지 모르겠다. 검정개가 으르렁대며 쫓아와 아큐의 다리를 막 물려는 순간 요행히 품에서 무 한 개가 굴러떨어졌다. 개는 깜짝 놀라 주춤 멈춰섰다. 그 틈에 아큐는 뽕나무를 탁 토담 위로 기어올라갔다. 그리고 무와 그가 함께 담 밖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뒤에선 아직도 검정개가 뽕나무를 향해 짖어대고, 늙은 비구니는 염불을 외고 있었다. p123
아큐는 비구니가 또 검정개를 풀어놓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무를 주워들고 뛰었다. 뛰어가면서 돌을 몇 개 주웠으나 검정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큐는 돌맹이를 버리고 길을 걸으며 무를 씹어 먹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여기는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나아...... .'
무 세 개를 다 먹었을 때에 그는 벌써 성으로 들어갈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p124

제 4장 연애의 비극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떤 승리자는 적수가 호랑이나 매처럼 사납기를 원하며 그래야만 승리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가령 양 같거나 병아리 같다면 도리어 승리의 허무감을 느낀다고 한다. 떠 어떤 승리자는 모든 것을 정복하고 난 뒤에, 죽을 사람은 죽고 항복할 사람은 항복하여 '신은 황공하옵고 황공하옵게도,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되면 이미 그에게는 적도 없고, 상대도 친구도 없고 오직 자신만이 높은 자리에 있게 되어, 그 외로움, 처량함, 적막감으로 오히려 승리의 비애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아큐는 그런 겁쟁이가 아니다. 그는 영원히 우쭐해 하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중국의 정신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보라, 그는 훨훨 날아갈 것만 같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의 승리는 그를 좀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나절 동안이나 훨훨 날아다니다가 사당으로 훌쩍 돌아왔다. 여느 때 같으면 드러눕자마자 코를 곯았을 것이다. 헌데 이 날 밤만은 쉽게 잠이 들지 못할 줄이야 누군들 알았겠는가? 자신의 엄지와 검지가 보통 때보다 이상하게 매끄럽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젊은 비구니의 얼굴에 뭔가 매끄러운 것이 있어서 그것이 그의 손에 옮겨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손가락이 미끈미끈해지도록 젊은 비구니의 뺨을 만진 탓일까.
"이 씨도 못 받을 아큐놈!"
아큐의 귓속에 이 말이 울려왔다. 그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하나 있어야 한다. 자손이 끊어지고 나면 밥 한 그릇 올려 놓아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여자가 있어야 한다.
무릇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후손이 없음이 가장 큰 것이다."고 하였고, 또 "후손이 없어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렇게 된다면 또한 인생의 크나큰 비애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 생각은 기실 모두가 성현의 경전에 합치되는 것인데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후에라도 그 '싱숭생숭한 마음을 수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자, 여자...... .'
그는 생각했다.
'...... 중놈은 손을 댈 수 있어도...... . 여자, 여자, 여자!'
그는 또 생각했다.
그 날 밤 몇 시쯤 아큐가 잠을 잤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손끝이 매끈매끈한 느낌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이때부터 몸이 하늘하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여자......'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이 일단의 사건만 보아도 우리는 여자란, 사람을 헤치는 존재임을 알 수가 있다.
중국의 남자들은 대부분 성현이 될 수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모두 여자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상(商)나라는 달기(달己)로 망하고, 주(周)나라는 포사(褒사) 때문에 허물어졌다. 진(秦)나라도 ...... 비록 역사에 기록은 없지만 여자 때문이라고 가정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한(漢)나라의 동탁(董卓)은 분명히 초선(貂蟬)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쿠는 본래 올바른 사람이다. - 우리는 그가 어떤 위대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남녀유별'에 대해서 지금까지 매우 엄격했다. 또한 이단(異端)을 배척하는- 젊은 비구니라든가 가짜 양놈 따위를 배척하는- 정의감이 투철했다. 그 학설은 이렇다. '모든 비구니는 틀림없이 중놈과 간통을 하며, 여자가 혼자서 바깥으로 나다닌다면 틀림없이 남자를 유혹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며, 남녀가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는 틀림없이 수상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그는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때로는 노려보기도 하고, 혹은 큰소리로 '잘못을 꾸짖는' 말을 하기도 하며, 훅은 으슥한 곳에서라면 등 뒤에서 돌을 던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삼십의 나이에 마침내 젊은 비구니 때문에 마음이 하늘하늘해지도록 해를 입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 하늘거리는 마음은 유교도덕상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므로 여자란 정말 증오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령 젊은 비구니의 얼굴이 매끈매끈하지 않았더라면 아큐는 넋을 뺏기지 않았을 터이고, 또 만약 비구니가 얼굴에 베만 한 겹 덮어썼더라도 아큐는 넋을 뺏기지 않았을 거다. - 대여섯 해전에 그는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서 한 여자의 허벅지를 고집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녀가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늘하늘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 그러나 벎은 비구니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것 또한 이단이 미워할 만한 것임을 충분히 증명하는 것이다.
"여자...... ."
아큐는 생각했다.
'틀림없는 남자를 유혹한다고 생각되는' 여자에 대하여는 언제나 주의하며 지켜보았으나 그런 여자들은 결코 그에게 웃음을 던지지 않았다. 함께 이야기하는 여자의 말도 주의하여 들어보았지만 결코 수상한 관게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 이 또한 여자를 미워해야 할 일면인 것이다. 그 여자들은 모두 '시치미를 떼고 안 그런 척' 하고 있는 것이다. p114
그 날 아큐는 하루 종일 짜오 나으리 댁에서 쌀을 찧었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는 부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른 집이었다면, 저녁밥을 먹고 나면 돌아갈 수가 있지만, 짜오 나으리 댁은 저녁밥이 이르다. 여느 때는 등불을 켜지 못하게 해서 저녁밥만 먹으면 자곤 했는데, 어쩌다 몇 가지 예외가 있었다. 하나는 아들 수재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는 등불을 켜고 쌀을 찧는 것을 허락했던 것이다. 이 예외의 덕분에 아큐는 쌀을 찧기 전에 부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짜오 나으리 댁의 유일한 하녀인 우어멈(吳 ) 거지를 끝내고 걸상에 앉아서 아큐와 잡담을 했다.
"마님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자시지 않았다우. 나으리께서 젊은 시앗을 보려고 하시니까...... ."
'여자...... 우어멈...... 이 청상과부...... .'
아큐는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마님은 8월에 기를 낳을 거라우."
'여자...... .' 하고 아큐는 또 생각했다.
아큐는 담뱃대를 놓고 일어났다.
"젊은 마님은 말에요...... ."
우어멈은 계속 지껄였다.
"너, 나하고 자자, 나하고 자.,"
아큐는 갑자기 달려들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아악!"
우어멈은 질겁을 하고 갑자기 벌벌 떨더니 큰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뛰면서 떠들어댔다. 나중에는 울먹이는 듯했다. p115
아큐는 벽을 향해 꿇어앉은 채 멍하니 있다가 두 손으로 빈 걸상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겁이 났다. 당황해서 담뱃대를 허리띠에 찔러넣고 곧 쌀을 찧으러 가려고 했다. 순간 딱! 소리와 함께 무언가 묵직한 것이 머리에 떨어졌다. 급히 돌아다보니 수재가 굵은 대나무 몽둥이를 들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너! 허튼 수작을 부렸것다. ...... 네 이놈...... ."
굵은 대나무 몽둥이가 또 그를 향해 내리쳤다. 아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딱 하더니 바로 손가락에 맞았다. 이번에는 정말 아팠다. 그는 부엌문을 튀어나왔다. 등에 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짐승 같은 놈!"
수재는 등 뒤에서 표준어로 욕을 퍼부었다.
아큐는 방앗간으로 뛰어들어가 혼자 서 있었다. 손가락은 아직도 아팠다. '짐승 같은 놈' 이란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런 말은 본래 미장의 시골뜨기들은 쓰지 않았다. 오로지 관청의 훌륭한 분들만이 쓰는 말이므로 각별히 두려웠고 인상도 각별히 깊었다. 이 통에 그의 '여자......' 하는 생각도 사라졌다. 더구나 매를 맞고 욕을 얻어먹고 나서는 사건이 그것으로 결말이 난 것 같아 도리어 마음이 후련해져 곧 쌀 찧기에 착수했다. 한참 찧자니까 더워져서 일손을 놓고 웃옷을 벗었다.
웃옷을 벗었을 때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천성적으로 구경을 좋아하는 아큐는 곧 소리나는 곳으로 뛰어나갔다. 소리나는 쪽을 찾아서 점점 가다 보니 짜오 나으리 댁 안마당까지 와버렸다. 어둑 할 무렵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많은 사람을 분간할 수는 있었다. 짜오 씨 집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이틀이나 밥을 먹지 않았다는 마님까지 나와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의 쪼우 씨 댁 일곱째 아주머니( 七 )도 있고 진짜 친척인 짜오바이엔(趙白眼)과 짜오쓰천(趙司 )도 있었다. p116
마침 젊은 마님이 우어멈의 손을 끌고 방에서 나오면 말했다.
"너, 이리로 나와...... 네 방에 숨어 있을 건 없어...... ."
"네 행실이 바르다는 걸 누가 모르나...... . 절대로 쓸데없는 생각은 말아라."
쪼우 씨 댁 일곱째 아주머니도 옆에서 거든다.
우어멈은 울면서 무엇인가 지껄이기는 하나 분명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큐는 생각했다.
'흥' 재미있군. 저 청상과부가 왜 저렇게 떠들어 대는지 모르겠군.'
그는 알아보고 싶어서 짜오쓰천 옆으로 다가갔다. 그 때 문득 짜오 나으리가 그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게다가 손에는 굵은 대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 굵은 대나무 몽둥이를 보자 돌연 조금 전에 자기가 맞은 게 지금의 소동과 관련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방앗간으로 도망해 가려고 했으나 뜻하지 않게도 대나무 몽둥이가 그의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몸을 돌려 할 수 없이 뒷문으로 달아났다. 오래지 않아 그는 이미 사당 안에 와 있었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피부에 소름이 돋으며 한기가 들었다. 비록 봄이라곤 하지만 밤에는 자못 추웠다. 맨몸으로 견딜 만한 때가 아니었다. 저고리를 짜오 씨네 집에 두고 온 생각이 났으나 가지러 가자니 수재의 몽둥이가 무서웠다. 그러고 있는데 지보가 들이닥쳤다.
"아큐, 네 이 놈! 짜오 씨 댁의 하녀한테까지 희롱을 하다니, 그거야말로 배신이지 뭐야, 덕분에 나까지 밤에 잠도 못 자게 됐잖아. 망할 녀석!" p117
이러쿵저러쿵 한바탕 설교다. 아큐는 물론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밤중에 폐를 끼쳤다 해서 지보에게 평소의 배액인 4백 닢을 술값으로 지불해야만 했다. 아큐는 마침 현금이 없었으므로 털모자를 잡히고, 게다가 다섯 조항의 서약까지 했다.
1. 내일 홍촉(紅燭) - 무게 한 근짜리 - 두 개와 향(香) - 한 봉지를 가지고 짜오 씨 댁에 가서 사죄할 것
2. 짜오 씨 댁에서 도사(道士)를 불러 목맨 귀신을 떨쳐버리는 굿을 하는데 그 비용은 아큐가 부담할 것
3. 아큐는 앞으로 짜오 씨 댁 문턱 안에 들어가지 말 것
4. 우어멈에게 앞으로 만약 이변이 생기면 모두 아큐으 책임으로 함.
5. 아큐는 품삯과 웃옷을 달라는 요구를 하지 말 것
아큐는 물론 이 모든 것을 승낙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돈이 없었다. 다행히 이미 봄이 왔으므로 솜이불은 없어도 견딜 수 있었다. 그것을 2천 닢에 저당 잡혀서 서약을 이행했다. 벌거벗은 몸으로 머리를 조아려 사죄한 뒤, 몇 푼인가 돈이 남아서 그 돈으로 모자를 찾지 않고 몽땅 술을 마셔버렸다. 한편 짜오 씨네 집에서는 그 향과 초를 쓰지 않고 부처님 모실 때 쓰려고 큰마님이 간수해 두었다. 그 떨어진 윗도리 태반은 젊은 마님이 8월에 낳을 아기의 기저귀가 되었고 좀 남은 누더기는 우어멈의 헝겊신 밑창으로 쓰여졌다. p118

제 7장 혁명
선통(宣統) 3년 9월 14일- 아큐가 짜오바이엔에게 팔아버린 날 - 한밤중에, 뜸을 덮어씌운 시커먼 대형 배 한 척이 짜오 나으리의 저택이 있는 강기슭에 닿았다. 이 배가 어둠 속을 저어올 무렵 마을 사람들은 깊이 잠들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배가 떠날 무렵에는 이미 새벽녘이엇으므로 겨우 몇 사람이 목격하였다. 이리저리 조사한 결과 그것이 거인 나으리의 배임을 알았다.
그 배는 미장에 큰 불안을 실어다 주었다. 정오도 도기 전에 온 마을의 인심은 매우 술렁거렸다. 배의 사명에 대하여 짜오 씨 댁에서는 물론 극비에 붙이고 있었으나, 찻집이나 선술집들에서는 모두 혁명당이 입성하려고 하므로 거인 나으리께서 우리 마을로 피난해 왔다고 말했다. 오직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만은 그렇지 않다면서, 그것은 거인 나으리가 낡은 옷상자 몇 개를 좀 맡아달라고 했는데 짜오 나으리가 거절하여 돌려보낸 것이라고 했다. 사실 거인 나으리와 짜오 수재는 절친한 사이가 아니므로 '고난을 함께 할' 만한 정분은 원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는 짜오 씨 댁 이웃에 살고 있으니 소식이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울 것이므로 아마도 그녀의 말이 옳을 것이다. p131
그러나 낭설은 매우 성했다. 소문인즉, 아마 거인 나으리가 직접 오지는 않은 모양이나 장문의 서신을 보내어 짜오 씨 댁과는 먼 친척이 된다고 늘어놓았다느니 짜오 나으리는 배알이 틀렸으나 자기로서는 손해될 일이 없으므로 그대로 상자를 받아놓았다가 지금은 그것을 마누라의 침대 밑에 처박아놓았다느니 하는 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혁명당이 그 날 밤에 성 안으로 들어왔는데 저마다 흰 투구에다 흰 옷을 입고 있었고, 그것은 명조(明朝)의 숭정(崇正) 황제에 대한 상복을 입은 것이라고 했다.
아큐의 귀에도 혁명당이라는 말은 벌써부터 들여오던 터였다. 금년에는 혁명당원이 살해되는 걸 제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디서 얻은 생각인지는 몰라도 혁명당이란 바로 반란을 일삼는 무리들이며 반란은 그에게 고난을 가져온다고 여겼으므로 그러기 때문에 그는 줄곧 이를 '몹시 증오' 하고 있었다. 헌데 뜻밖에도 백 리 사방에 그 이름을 떨치는 거인 나으리까지도 그토록 두려워한다니 그로서는 '신명' 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미장의 어중이떠중이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큐는 더욱더 유쾌해지는 것이었다.
' 혁명이란 것도 괜찮구나.'
하고 아큐는 생각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을 죽여버리자! 더러운 놈들을! 미운 놈들을...... . 나두 혁명당에 투항해야지. '
아큐는 그 무렵에 쓸 돈도 궁색해져 있었고 다소 불평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빈 속에 낮술을 두어 잔 들이켜 얼큰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는 생각하며 걸어가는 도중에 다시 하늘하늘해졌다. 어찌된 셈인지 갑자기 자신은 이미 혁명당이며 미장 사람들은 모두 그의 포로가 된 것 같았다. 그는 기쁜 나머지 크게 부르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란이다. 반란이야!"
미장 사람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을 아큐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걸 보자 한여름에 얼음물을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는 더욱 신이 나서 걸으면서 고함을 질렀다. p132
"자! 탐나는 것은 모두가 내 것.
맘에 드는 계집도 모두가 내 것.
덩기 덩기 덩더쿵!
후회해도 소용없다. 취해서 잘못 쳤구나, 정(鄭) 가의 아우를.
후회해도 소용없어, 아,아,아...... .
쿵덕쿵, 쿵덕쿵!
쇠채찍으로 너를 치리니...... ."
짜오 씨네의 몇몇 어른들이 마침 그 때 대문 앞에 모여 혁명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아큐는 그것도 보지 못하고 머리를 똑바로 쳐들고 계속 읊어대며 지나가려고 했다.
"쿵당 쿵당...... ."
"큐 선생."
짜오 나으리가 겁먹은 눈으로 맞으면서 작은 소리로 불렀다.
"쿵당."
짜오 나으리가 겁먹은 눈으로 맞으면서 작은 소리로 불렀다.
"쿵당."
아큐는 자기 아름에 '선생' 이란 말이 붙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자기와는 관계 없는 다른 말이라 생각하고 그저 노래만 불렀다.
"덩더쿵 쿵!"
"큐 선생."
"후회해도 소용없다...... ."
"아큐!"
수재는 할 수 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큐는 그제서야 멈춰서서 고개를 꼬며 물었다.
"뭐요?"
"큐 선생...... 요즈음...... ."
짜오 나으리는 막상 할 말이 없었다. p133
"요사이...... 돈 잘 버나?"
"버냐구요? 아무렴요. 필요한 것은 모두가 내 것...... ."
"아...... 큐형, 우리 같은 가난뱅이 동무들은 괜찮겠지요...... ."
짜오바이엔은 마치 혁명당의 말투를 흉내내듯이 조심조심 말했다.
"가난뱅이 동무라고? 당신은 나보다 돈이 많아."
아큐는 말하면서 떠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망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짜오 나으리 부자는 집에 돌아와 저녁 나절이 되어 불을 켤 때까지 의논했다. 짜오바이엔은 집에 돌아오자 허리춤에서 전대를 풀어 아내에게 주며 상자 밑에 감추어 두게 하였다.
아큐가 하늘하늘 나르듯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당에 돌아왔을 때에는 술기운도 깨끗이 가셨다. 이 날 밤에는 사당지기 노인도 의외로 친절해서 그에게 차를 권하는 것이었다. 아큐는 그에게 떡 두 개를 달라고 해서 다 먹고 나자, 불을 켜기 위해 넉 냥짜리 초 한 자루와 나무 촛대 하나를 달라고 했다. 촛불을 켜고 홀로 자기의 작은 방에 드러누웠다. 그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신선하고 유쾌했다. 촛불은 정월 보름날 밤처럼 환하게 밝았고, 그의 공상은 점점 더 날개를 펴는 것이었다.
"발란? 재미있군...... . 한 무리의 흰 갑옷에 흰 투구의 혁명당이 쳐들어온다. 저마다 청룡도며, 쇠채찍, 폭탄, 총, 세날박이칼, 갈고리창을 들고서 사당 앞을 지나가며 '아큐, 함께 가세?' 하고 부른다. 그러면 나도 함께 가는 것이다...... .
이 때 미장의 어중이떠중이들은 볼 만할 거야. 무릎을 꿇고 '아큐, 목숨만은 살려줘!' 하고 소리칠 테지. 쳇, 누가 들어둔대? 맨 먼저 죽일 놈은 소디와 짜오 나으리지. 그리고 수재, 가짜 양놈...... 몇 놈이나 남겨둘까? 왕털보는 남겨둬도 상관없지만, 안 돼...... . p134
그리고 물건은...... 곧바로 뛰어들어가 상자를 연다. 말급은, 은화, 모슬린 홑옷...... 먼저 수재 마누라의 영파식 침대를 사당으로 옮겨야지. 그 밖에도 치엔 씨네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고- 그러지 말고 짜오 씨네 것을 쓸까, 난 손대지 말고 소디에게 운반시킨다. 빨리 날라! 꾸물대면 뺨을 갈겨줄 테다...... .
짜오스천의 누이동생은 정말 추물이지. 쪼우 씨 댁 일곱째아줌마의 딸은 아직 젖비린내 나고, 난가짜 양놈ㄹ의 마누라는 머리채 없는 사내와 동침했으니, 흥, 좋은 물건은 못돼! 수재의 마누라는 눈두덩 위에 흉터가 잇고...... . 우어멈은 오랫동안 못 보았군, 어디 갔을까...... . 그런데 아깝게도 발이 너무 커."
아큐는 공상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코를 곯았다. 넉 냥짜리 양초는 아직 반쯤 밖에 타지 않았고 빨간 불꽃이 그의 헤벌어진 입을 비추고 있었다.
"어어!"
아큐는 별안간 큰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넉냥짜리 초가 눈에 띄자 또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그는 꽤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길거리에 나가 보아도 모든 것이 전과 같았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생각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느릿느릿 걷다가 보니 어느덧 정수암에 이르렀다.
정수암은 봄철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흰 벽에 검은 문이었다. 그는 한참 생각하다가 앞으로 나가 문을 두드렸다. 개가 안에서 짖어댔다. 그는 급히 기와조각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검은 문에 수많은 곰보자국이 졌을 때야 비로소 누군가 문을 열기 위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p135
아큐는 서둘러 기와조각을 움켜쥐고 다리를 쩍 벌려 검정개와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암자의 문이 빠끔히 열렸을 뿐 안에서 검정개는 뛰어나오지 않았다. 들여다보니 늙은 비구니 한 사람뿐이었다.
"너 또 무엇하러 왔어?"
그녀는 깜짝 놀라며 말한다.
"혁명이야...... 알고 있어?"
아큐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혁명이라구? 혁명은 벌써 끝났어...... . 너희들이 우리를 어떻게 혁명하겠다는 거지?"
늙은 비구니는 두 눈이 새빨개져 가지고 말했다.
"무어라구?"
아큐는 이해가 안 갔다.
"넌 모르고 있냐? 그 사람들이 벌써 혁명을 해버렸어!"
"누가?"
아큐는 더욱 이해가 안 갔다.
"저 수재와 가짜 양놈이!"
아큐는 너무 뜻밖이라 부지중에 깜짝 놀랐다. 늙은 비구니는 그의 풀이 꺾인 것을 보자 날쌔게 문을 닫아버렸다. 아큐는 다시 밀어 보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시 두드려보았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것은 오직 오전 중의 일이었다. 짜오 수재는 잽싸게도 혁명당이 밤중에 입성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올리고 이제껏 사이가 좋지 않던 가짜 양놈을 방문했다. 때는 바야흐로 '모든 것을 유신(維新)하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 기회를 타기로 이야기가 되자, 즉각 의기투합하는 동지가 되어 서로 혁명하기로 서약했다. 그들은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정수암에 '황제 만세!'라고 쓴 용패(龍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속히 없애버리기로 했다. 그들은 곧장 함께 암자로 혁명하러 갔다. 늙은 비구니가 나와서 방해하므로 두어 마디 말을 해보고 그들은 그녀가 만주정부(滿洲政府) 편이라고 간주하고 단장과 주먹으로 머리를 실컷 때렸다. 두 사람이 돌아간 뒤에 비구니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려보았더니 용패는 물론 산산이 부서져 땅에 흩어져 있었고, 또 관음상 앞에 모셔두었던 선덕(宣德) 향로가 없어져 버렸다.
그러한 사실을 아큐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자기가 늦잠 잔 것을 퍽 후회했으나 또한 그들이 그를 불러주지 않은 것을 무척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는 다시 한 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설마 그 놈들이 내가 혁명당에 가담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p137

할 일이 많은 주다. 늦기 전에 빨리빨리 처리해야 한다.
..........................
제 6장 중흥에서 말로까지
마장에 다시 아큐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그 해 중추절 바로 뒤였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아큐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그가 어디에 가 있었을까 하고 수군대는 것이었다.
아큐는 전에 여러 번 성 안에 다녀왔는데 대개는 미리 신이 나서 사람들에게 떠들어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그가 혹 사당을 관리하는 노인에게만은 털어놓았을지도 모르나, 미장의 관례로는 짜오 나으리, 치엔 나으리, 또는 수재 선생이 성 안에 가는 경우에만 사건으로 삼았다. '가짜 양놈'도 아직 그 축에 끼지 못할 정도니 하물며 아큐쯤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노인이 그를 위해서 선전을 했을 리도 없고 미장의 사회에서도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큐가 이번에 돌아온 것은 전과는 딴판으로 확실히 깜짝 놀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날이 저물 무렵 그는 멍하게 졸리는 눈을 하고 술집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카운터 옆으로 걸어가 허리춤에서 손을 뺐다. 한 움큼 가득 은전과 동전을 카운터 위에 던지며 말했다. p124
"현금이야. 술 좀 줘!"
입고 있는 것은 새 겹옷이었다. 자세히 보니 허리춤에 큰 전대를 차고 있는데 묵직하여 허리띠가 그 곳만이 축 늘어져 있었다. 미장의 관례는 조금이라도 사람의 눈을 끄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을 경멸하기보다는 오히려 존경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그가 아큐라는 것은 확실하 알고 있지만 누더기 옷을 입은 아큐와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비란 사흘만 떨어져 있어도 다시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한다." 라고 했기 때문에 점원도, 주인도, 손님도, 길 가던 사람도, 자연 일종의 의심을 품으면서도 존경의 태도를 표시했다. 주인은 우선 머리를 꾸벅하고는 이어서 말을 걸었다.
"허허! 아큐. 자네가 돌아왔군!"
"돌아왔지."
"벌었군, 벌었어. 자네- 어디서...... ."
"성 안에 갔었지."
이 소문은 이튼 날 온 미장에 퍼졌다. 사람들은 모두 현금을 갖고 새 겹옷을 입게 된 아큐의 중흥사(中興史)를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술집과 찻집 그리고 절간의 처마 밑에서 조금씩 정보를 입수해 갔다. 그 결과 아큐는 새로운 종경을 받게 되었다.
아큐의 말에 의하면 그는 거인(擧人) 나으리의 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이 나으리는 성이 바이(白) 씨이고 성 안에서는 유일한 거인(擧人)이었으므로 성을 붙일 필요도 없이 그냥 거인이라고 하기만 해도 그를 가르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미장에서뿐만 아니라 백 리 사방에서 모두 그랬다. 이 사람의 집에서 일했다면 당연히 존경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큐의 얘기는 이제 두 번 다시 일하러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까닭인즉 이 거인 어른은 실제로 너무나 '제기랄 놈!' 이기 때문이라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듣는 사람은 한숨을 쉬기도 하고 또 속시원해 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큐 따위는 거인 나으리 댁에서 일을 거들만한 위인이 못 되지만, 그렇다고 그런 집에 일을 거들러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p126
아큐의 말에 의하면, 그가 돌아온 것은 성 안 사람에 대한 불만도 한 원인인 것 같았다. 그것은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긴 걸상'을 '긴 의자'라고 부른다든가, 생선을 튀길 때 파를 잘게 썰어넣는다든가, 그 외에 최근에 관찰하여 발견한 결점으로, 여자가 걸을 때에 엉덩이 흔드는 모습도 별로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러는 탄복할 만한 점도 있었다. 즉 미장의 시골뜨기들은 서른 두 장의 죽패 놀이밖에 할 줄 모르고, 오직 '가짜 양놈' 만이 마작을 할 줄 아는데 성 안에서는 조무래기들도 모두 익숙하다는 것이다. 가짜 양놈 따위는 성안의 여남은 살 조무래기 속에 놓아두면 금세 '염라대왕 앞의 은 도깨비'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게 했다.
"자네들, 목을 자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하고 아큐가 말했다.
"흠, 볼 만하지. 혁명당원을 죽이는 거야. 정말 볼 만해...... ."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의 맞으편에 있던 짜오스천의 얼굴에 침을 튀겼다. 이 이야기는 사람을 섬뜩하게 했다. 그러다가 아큐는 또 사방을 한 번 둘러보고 갑자기 오른손을 쳐들고는, 목을 빼고 이야기에 넋이 빠진 왕털보의 뒤통수를 향하여 똑바로 내리치면서 말했다.
"싹둑!"
왕털보는 깜짝 놀라면서, 동시에 전광석화처럼 재빨리 머리를 움츠렸다. p126
듣는 사람들도 모두 섬뜩했으나 즐겁기도 했다. 이런 다음부터 왕털보는 오랫동안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다시는 아큐 겉에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미장 사람들의 눈에 비친 아큐의 지위는 짜오 나으리보다 위라고는 할 수 없어도 거의 동등하다고 해도 아무런 과장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이 아큐의 명성은 온 미장의 규방에까지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비록 미장에는 치엔 씨와 짜오 씨만이 큰 저택을 가지고 있고, 그 나머지는 십중팔구가 초라한 집들이지만 그래도 규방은 역시 규방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도 신기한 사건이라고 칠 만했다. 여인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수근거렸다.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가 아큐에게서 푸른 비단치마를 샀는데, 고물이긴 하지만 값은 90전 밖에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짜오바이엔의 어머니- 일설에는 짜오쓰천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미상임- 도 아이에게 입힐 붉은 모슬린 홑옷을 샀다고 한다. 거의 새것이나 다름 없는 것인데 값은 단지 3백 문(文)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여인들은 모두가 아큐를 몹시 만나고 싶어했다. 비단치마가 없는 사람은 비단치마를, 모슬린 홑옷을 갖고 싶은 사람은 모슬린 홑옷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 얼굴을 보아도 달아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아큐의 뒤를 따라가서 불러 세우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큐, 비단치마가 아직도 있어? 없다구/ 모슬린 홑옷도 사고 싶은데, 있겠지?"
마침내 이 소문은 나으리댁 마님에까지 전파되어 갔다. 쪼우 씨 댁 일곱째 아주머니가, 자랑스러운 나머지 자기가 산 비단치마를 짜오 마님에게 보이러 갔고, 또 그것을 짜오 마님이 짜오 나으리에게 이야기하면서, 아주 좋은 것이라고 칭찬했기 때문이었다. 짜오 나으리는 저녁상 머리에서 수재 선생과 의논을 했다. 아큐는 아무래도 기이한 놈이다. 우리가 문단속을 단단히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그의 물건 중에 아직도 살 만한 것이 있을지도, 어쩌면 좋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등이었다. 그리고 짜오 마님은 품질 좋고 값이 적당한 모피조끼를 사고 싶어하던 참이었다. 이리하여 가족회의를 한 결과 곧장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에게 아큐를 불러오도록 하고, 게다가 그것을 위해 세 번째 예외를 베풀어 그 날 밤만은 특별히 등불을 켜는 것을 허락하기로 했다.
등불의 기름이 다 말라가는데도 아큐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짜오 씨 댁의 온 가족은 모두 조급해서 하품을 하거나, 아큐가 너무 뽐낸다고 미워하기도 하고, 또는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가 약삭빠르지 못하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짜오 마님은 아큐가 봄날 밤의 그 일 때문에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짜오 나으리는 바로 자기가 부르러보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과연 짜오 나으리의 견식은 높았다. 마침내 아큐는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를 따라서 들어왔다.
"그는 없다. 없다고만 하는군요. 그래서 자네가 직접 가서 말씀드리라고 말해도 그는 여전히 없다고만 해서, 저는 ...... ."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는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면서 말했다.
"나으리."
아큐는 희미하게 웃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는 처마 밑에 멈춰 섰다.
"아큐, 듣자 하니 다른 곳에서 돈을 벌었다고 하더군."
짜오 나으리는 천천히 걸어가더니 그의 온몸을 아래 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잘했어, 잘했어. 그런데...... 낡은 옷가지들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모두 가져와서 한 번 보여주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좀 필요한 게 있어서...... ." p129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에게 다 말했습니다. 모두 팔렸어요."
"없어?'
짜오 나으리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놀렸다.
"그렇게 빨리 모두 나갔다고?"
"친구 것이라서요. 원래 많지도 않은데다 모두들 사갔어요."
"아직, 조금은 남아 있겟지."
"이제, 문발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럼, 문발이라도 가져와 보게."
짜오 마님은 급히 말햇다.
"아니, 내일 가져와도 좋아."
짜오 나으리는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아큐, 다음에 무슨 물건이 있을 땐 모두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게."
"값은 결코 딴 집들보다 덜 내지 않겠어!"
하고 수재가 말했다. 수재의 처는 아큐가 감동했는지 안 했는지 알아보려고 재빨리 아큐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나는 모피조끼가 필요해."
하고 짜오 마님이 말했다.
아큐는 비록 응답은 했으나 꺼럼칙한 모습으로 나가버렸으므로 그가 정말 마음에 새겨뒀는지 어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짜오 나으리를 매우 실망케 했고, 화를 돋우고 근심시켜 하품까지도 멈추게 했다. 수재도 아큐의 태도가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이런 짐승 같은 놈은 조심하지 앟으면 안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지보에게 일러서 미장에서 쫓겨내는 것이 좋아!" 하고 말했으나, 짜오 나으리는 그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서, 그런 짓을 하면 원망을 사게 된다고 하고 게다가 이런 장사꾼은 대체로 "매는 둥우리 옆의 먹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마을은 도리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밤에 문단속만 엄중하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p30
부친의 교훈을 듣고 수제는 마음속으로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고 아큐를 추방하자는 제의를 즉각 철회했다. 그리고 쪼우 씨 댁 일곱째 아주머니에게는, 이 이야기가 절대로 남에게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고 단단히 당부했다.
그러나 다음날, 쪼우 씨 댁 일곱째아주머니는 푸른 치마를 검게 물들이러 나간 김에 아큐가 수당하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수재가 아큐를 추방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아큐에게 물리한 결과를 초래했다. 첫째는, 지보가 찾아와, 그가 가지고 있던 문발을 빼앗아 가버렸다. 아큐가 짜오 마님에게 보일 것이라고 해도 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다달의 상납금(上納金)을 내라고 위협했다. 그 다음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존경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였다. 비록 아직 감히 멋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어딘지 그를 멀리 피하려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색은 이전의 '싹둑' 자르듯 막던 때와는 달리 상당히 '경원(敬遠)' 하는 요소를 띠고 있었다.
다만 일부 건달들만이 여전히 시시콜콜 아큐로부터 자세한 것을 물어보려 했다. 아큐도 벌로 숨기려 하지 않고 거만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곤 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비로소 그는 졸개에 지나지 않고, 담을 넘거나 또는 창고에 숨어가지도 못하고 다만 밖에서 기다렸다가 받은 역할만 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밤, 그에게 꾸러미 하나을 던져주고, 두목이 다시 숨어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는데, 놀란 그는 얼른 도망쳐 밤을 틈타 성을 빠져나와서 미장으로 돌아온 것인데, 이제부터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로 아큐는 더욱더 불리해졌다. 마을 사람들이 아큐를 '경원'한 것은, 실로 원한을 사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인데, 이제 와서, 그는 두 번 다시 도둑질을 하러 가지 않겠다는 도적이라는 것을 누군들 알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 되느니라'인 것이다. p130

정해진 시간 정해진 규칙을 명징하게 따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 비몸사몽간에 쓰고 세 시간 후에 자나 좀 더 자고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하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나태한 정신상태와 타협을 했다. 그런데 수양이라는 것은 이런 게으름과 방심들과의 단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대충 끼워넣기 식으로는 변화를 흉내낼 수 있을 뿐 스스로가 정한 변혁을 결코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총체적인 일상의 균형감 없이는 이뤄내기 힘든 작업이다. 명심하자!!!
허리가 아팠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바닥에 몇 시간 서당의 학습처럼 앉아 있었던 것이 피곤했던 것 같다. 평소 자세가 안 좋다는 이야기다. 실상 나는 그러한 자세(좌식)로 오래 앉아있지 못한다. 오히려 의좌식 자세가 편하기도 하거니와 내 몸의 유연성과 균형감이 떨어져 몸살을 앓거나 불과 몇 시간 안 되는 일조차 힘들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직업,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경제사정도 살펴야 하고 요즘 쉬 피로감에 젖는 것을 보면 무엇보다 체력 관리가 급선무다. 심적 스트레스가 많기도 하지만 몸 상태가 너무 엉망이기 때문이다. 어느 욕심을 줄여 어디에 투여하고 어디를 잘라 어떻게 메꿔나가야 할까?
시급한 여러 당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음에도 대책을 취해 주어야 할 당사자는 사정을 알렸음에도 전혀 못 본 척 초지이일관 무시때리기로 외면하고만 있다. 제 일에만 흔들림 없이 몰두하고 말겠다는 심사로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양 하며 꿀 먹은 벙어리마냥 "배 째라"로 일관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치욕과 모멸스러운 관계의 흐름이다. 일찌기 이런 관계를 유지시켜 온 적이 없다. 어떻게 살아 지켜온 삶인가! 확실히 방심한 내 탓의 결과다. 세상은 믿을 것이기보다 겪어보아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 '한 길 우물 속 깊이는 알아도 한 치의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에는 생활의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요즘이다. 저급한 술책이 대단히 히한하고 모욕적이다.
제 8장 혁명금지
미장의 인심은 날로 안정되어 갔다. 전해 오는 소식에 의하면 혁명당이 성 안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별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지사(知事) 나으리는 그대로 있고 뭐라고 명칭만 고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인 나으리도 뭐라는- 이러한 명칭은 미장 사람들은 들어도 잘 모른다. - 관직을 맡았다고 한다. 군대의 책임자도 역시 예전의 늙은 부대장이 맡고 있다는 것이고 단지 한 가지 두려운 사건은 아주 악한 혁명단원이 몇 사람 섞여 있어서 난폭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다음날부터는 변발을 자르기 시작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이웃 마을의 뱃사공 칠근(七斤)이 개시로 걸려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미장 사람들은 별로 성 안에 잘 가지 않으며, 어쩌다 성 안에 가려고 했던 사람이라도 재빨리 계획을 바꾸어버리면 위험에 부딪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큐도 성 안에 들어가 그의 친구를 찾아볼 작정이었으나 이 소식을 듣고는 중지해 버리고 말았다. p137
그러나 미장에도 개혁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며칠 후 변발을 머리 꼭대기로 둘둘 말아올린 자들이 차츰 늘어났다. 이미 말했듯이 가장 먼저 한 사람은 물론 수재 선생이었다. 다음은 짜오쓰천과 짜오바이엔이었고 아큐는 그 다음이었다. 여름이라면 사람들이 변발을 머리 위헤 틀어올리거나 묶어도 별로 진기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가을도 깊었으므로, 이것은 '겨울에 삼베옷' 격이라 머리를 틀어 올리는 자들은 대단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미장이 개혁과 무관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짜오스천이 뒤통수를 휑하니 비워 갖고 걸어오자, 그것을 본 사람들은 와글와글 떠들어 댔다.
"야아, 혁명당이 오셨다."
아큐는 이 말을 듣자 몹시 부러웠다. 수재가 변발을 틀어올렸다는 소식을 그도 벌써 듣고 있었지만, 자신이 흉내낼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이제 짜오스천도 그렇게 한 것을 보니, 비로소 흉내낼 생각이 났고 실행하자고 결심했다. 그는 대젓가락으로 변발을 머리 꼭대기로 틀어올리고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대담하게 거리로 나갔다.
그는 거리를 싸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처음에는 몹시 불쾌했고 나중에는 대단히 불만스러웠다. 그는 요사이 툭하면 골을 잘 냈다. 사실 그의 생활은 반란 전에 비하여 어려워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공손했고, 상점에서도 현금을 내라고 말하지 않았으나 아큐는 암만해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이 느껴졌다. 혁명을 한 이상 이와 같아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일전에 만난 소디가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p138
소디도 변발을 머리 꼭대기 위로 둘둘 틀어올리고 있었다. 그도 역시 대젓가락으로 틀어올린 것이었다. 아큐는 설마 그가 이런 흉내를 내리라곤 생각도 못했고 또 그가 그런 흉내를 내도록 버려둘 수도 없었다. 소디란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냐! 그는 당장 소디를 거머잡고 그 대젓가락을 분질러 버리고 그의 변발을 풀어헤치고 싶었다. 그리고 귀싸대기를 몇 대 갈겨주고, 자기 분수를 잊고 감히 혁명당이 되고자 했던 죄를 다스려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보나주기로 했다. 다만 노려보며 "퉤!" 하고 침을 뱉기만 했다.
요 며칠 사이에 성 안을 다녀온 사람들은 그 가자 양놈 한 사람밖에 없었다. 짜오 수재도 옷 상자를 맡아준 인연을 믿고 직접 거인 나으리를 방문할 셈이었으나 단발의 위험 때문에 중지하고 말았다. '아주 정중한' 편지를 한 통 써서 가짜 양놈에게 부탁하여 성 안으로 보내고 아울러 신정부의 자유당에 입당할 수 있도록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가짜 양놈은 돌아와서 숮재에게 은화 4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 뒤로부터 수재는 복숭아처럼 생긴 은배지를 저고리 옷깃에 달게 되었다.
미장 사람들은 모두 놀라 탄복하며, 이것은 자유당의 휘장으로 한림(翰林)에 해당하는 것이라고들 했다. 짜오 나으리는 이 때문에 거드름을 피웠는데, 일찍이 자식이 수재가 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했다. 그래 눈에 뵈는 것이 엇었고 아큐 따위는 만나더라도 본 척 만 했다.
아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시각각 영락하고 있다고 느끼는 터에 이 은으로 만든 복숭아 이갸기를 듣고 나자, 그는 금세 자신이 냉대받는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혁명을 한다면 입당한다고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변발이나 틀오올리는 정도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먼저 혁명당과 사귀어야만 한다. 그가 평생에 알고 있는 혁명당은 두 사람뿐이었다. 성 안에 있던 한 사람은 이미 '싹둑' 죽고 말았다. 이제는 그 가짜 양놈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얼른 찾아가서 가짜 양놈에게 상담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는 것이다. p139
치엔 씨네 저택의 대문은 마침 열려 있어서 아큐는 조심조심 소리 나지 않게 들어갔다. 그는 안에 이르자 깜짝 놀랐다. 가짜 양놈이 뜰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전신이 새까만 옷을 입고, 아마 양복이란 것이겠지만, 더구나 그도 은으로 만든 복숭아를 달고 있었다. 손에는 아큐가 얻어맞은 적이 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한 자 정도나 길어진 변발을 풀어헤쳐서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헝클어진 머리칼은 흡사 그림에 그려져 있는 유해선인(劉海仙人) 그대로였다. 그 맞은편에 꼿꼿하게 서 있는 사람은 짜오바이엔과 세 사람의 건달들인데, 바로 공경스러운 태도로 말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아큐는 조용히 다가가서 짜오바이엔의 뒤에 섰다. 말을 걸고 싶었으나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가짜 양놈이라 불러서는 안 될 말이다. 서양 사람이라 해도 좋지 않다. 혁명당도 역시 타당치 않고, 서양선생이라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 같았다.
서양 선생은 그를 보지 못했다. 마침 눈을 희번득이며 말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성질이 급하기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이렇게 말했어. '홍(洪)형! 우리 시작합시다.' 그런데 그는 늘 '노' 라고 말했다. - 이건 서양 말이 되어 너희들은 못 알아들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성공했을 테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가 일을 하는 데 신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어. 그는 거듭해서 나더러 후베이(湖北)로 가라고 부탁했으나, 나는 아직도 승낙을 안했지. 누가 그런 자그마한 고장에서 일하기를 원하겠어?....."
"저......그게."
아큐는 그의 말이 멈추기를 기다렷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을 뗐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결코 '서양 선생' 이라고 부르지는 못했다. p140
말을 듣던 네 사람은 모두 깜짝 놀라며 그를 돌아다보았고, 서양 선생도 보았다.
"뭐야?"
"저어...... ."
"나가!"
"저도 참가하려고...... ."
"꺼져!"
하고 서양 선생은 상주막대기를 들어올렸다.
짜오바이엔과 건달들은 소리소리 질렀다.
"선생님이 나가라고 하셨다. 그래도 못아듣겠냐!"
아큐는 머리를 감싸고 자신도 모른 사이에 문밖까지 뛰어달아났다. 서양 선생이 쫓아오지는 않았다. 그는 60보쯤 달리고서야 겨우 천천히 걸었다. 그의 마음속에 슬픔이 솟구쳤다. 서양 선생이 그에게 혁명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이제부터 결코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모든 포부, 의지, 희망, 전도는 사라져버렸다. 건달들이 소문을 퍼뜨려 소디나 왕털보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일 따위는 외히려 둘째 문제였다.
이렇게 무료해 보기는 그는 여태까지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변발을 틀어올린 일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모멸하고 싶었다. 분풀이로 곧장 변발을 풀어버리려고 생각했으나 끝내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밤이 될 때까지 헤매다가 술을 두어 잔 들이키자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머릿속에서는 흰 투구와 흰 갑옷에 대한 생각들이 토막토막 떠오르는 것이었다. p141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처럼 밥 늦도록 헤매다가 술집이 문을 닫을 때가 되어서야 사당으로 돌아왔다.
펑! 우르르!...... .
갑자기 그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폭죽소리는 아니었다. 아큐는 본래 구경을 좋아하고 참견하기도 좋아했으므로 곧장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앞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고 서 있는데 갑자기 한 사나이가 맞은편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었다. 아큐는 그것을 보자마자 재빨리 몸을 돌려 함께 도망쳤다. 그 사내가 멈추어 섰다. 아큐도 멈추어 섰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사내는 소디였다.
"뭐야?"
아큐는 언짢아졌다,
"짜오 ...... 짜오 씨네 집이 당했어!"
소디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큐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소디는 말을 마치자마자 가 버렸다. 아큐는 도망하다가는 두세 차례 멈췄다. 그러나 그는 뭐라 해도 '이런 장사'를 해보았던 사람이어서 의외로 간이 컸다. 그는 김모퉁이에서 기어나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시끌시끌 한 것 같았다. 옷 장사, 가구, 심지어는 수재 마누라 것인 영파 침대까지 줄을 지어 꺼내가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보이질 않아서 좀더 앞으로 나아가서 보려 했으나 두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날 밤은 달이 없었다. 미장은 어둠 속에 매우 고요했다. 고요하기 짝이 없어서 복희씨(伏義氏) 시대처럼 태평스러웠다. 아큐는 선 채로 싫증이 나도록 보고 있었다. 역시 전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나르고 있었다. 상자를 메어 내오고, 가구도 메어 내오고 수재 마누라의 영파 침대도 메어 내오고...... 너무 내오는 바람에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자기 거처로 돌아왔다. p142
사당 안은 깜깜했다. 그는 문을 닫고 더듬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누워 있으려니까 그제야 기분이 가라앉아 자신의 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은 분명히 왔으나 결코 그를 부르러 오지는 않았다. 좋은 물건을 많이 날랐으나 자기의 몫은 없다. 이것은 전부 밉살스런 가짜 양놈이 나에게 반란을 허락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에 어째서 내 몫이 없단 말인가?
아큐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고 나중에는 마음 가득한 통분을 참을 수가 없어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지껄였다.
"나에게는 반란을 허락하지 않고 네 놈만 반란할 셈이었군? 제기랄. 가자 양놈- 어디 보자. 네 놈이 반란했것다! 반란은 목이 잘리는 죄야. 내 어떻게 해서든지 고소해서 네 놈이 관청으로 잡혀들어 가 목이 싹둑 잘리는 걸 보고 말테니- 온 집안이 목이 잘리는 것을0 싹둑! 싹둑!" p143
제 9장 대단원
짜오 씨 댁이 약탈을 당한 뒤 대개의 미장 사람들은 통쾌해 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아큐 역시 통쾌하면서도 두려웠다. 그러나 나흘 뒤 아큐는 밤중에 갑자기 체포되어 성 안으로 연행되어 갔다. 그 때는 마침 캄캄한 밤이었다. 한 떼의 병사, 경비단, 경찰 그리고 또 다섯 명의 탐정까지 몰래 미장에 들어와 어둠을 이용해서 사당을 포위하고 문 맞은편에 기관총을 대어놓았다. 그러나 아큐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부대장은 초조해졌다. 스무 냥의 현상금을 걸었다. 비로소 두 사람의 경비단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담장을 넘어들어 가서 바깥의 사람들과 호응하여 단숨에 쳐들어가 아큐를 끌어내었다. 사당 밖에 걸어놓은 기관총 곁으로 잡혀 나왔을 때에야 그는 겨우 정신이 좀 들었다. p143
성 내에 도착하니 이미 정오였다. 아큐는 자기가 처음 허름한 관청으로 끌려들어 가 대여섯 번 모퉁이를 돌고 나서 조그만 방에 처박힘을 알았다. 그가 비틀비틀하는 찰나에 통나무로 만든 목책의 문이 그의 발꿈치를 따라오듯 닫혔다. 목책 이외의 삼면은 모두 벽인데 자세히 보니 방 귀퉁이에 또 두 사람이 있었다.
아큐는 좀 불안했으나 결코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사당침실이라야 이 방보다 더 밝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두 사람도 시골뜨기인 모양인데 차차 그들과 사귀게 되었다. 한 사람은 그의 조부 대에 체납한 묵은 소작료를 지불하라고 거의 나으리에게 고소당했다는 것이며, 또 한 사람은 무슨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아큐에게도 물었다.
"나는 반란하려 했기 때문이오."
하고 아큐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는 오후에 또 목책문 밖으로 끌려나갔다. 대청에 가보니 상좌에는 머리를 빡빡 깎은 늙은이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큐는 그가 중인가 의심했다. 아래쪽을 보니 1소대의 군인이 서 있고 책상 옆에도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십여 명 서 있는데 이 늙은이처럼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도 있고, 한 자 남짓한 긴 머리를 가짜 양놈처럼 뒤로 늘어뜨린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험상궂은 얼굴에 성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반드시 내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자 그는 별안간 무릎의 힘이 빠져 꿇어앉고 말았다. p144
"서서 말씀드려라! 꿇어앉으면 안 돼!"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이 모두 꾸짖었다.
아큐는 그 말뜻을 알아듣기는 했으나 암만해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어 그만 꿇어 엎드리고 말았다.
"노예 근성!...... ."
긴 두루마기를 입은 인물이 경멸하듯 말했으나 또 서라고는 하지 않았다.
"너 사실대로 불어라. 그러면 고생은 덜 할 거야. 우리는 이미 모두 알고 있어. 털어놓으면 널 석방해 줄 테다!"
까까머리 늙은이가 아큐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며 침착하고 똑똑히 말했다.
"자백해!"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도 큰소리로 말했다.
"사실 전...... 먼저 찾아오려고...... ."
아큐는 어물어물 생각하다가 겨우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왜 오지 않았느냐!"
하고 늙은이가 부드럽게 물었다.
"가짜 양놈이 허락하질 않았습죠!"
"허튼 소리 마라! 이제 와서 말해도 늦었어. 지금 너희 패는 어디 있어?"
"무슨 말씀인지?"
"그 날 밤 짜오 씨 댁을 약탈했던 놈들 말야."
"그 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어요. 제놈들끼리 멋대로 실어가 버렸습니다. "
아큐는 이렇게 말하고는 툴툴댔다.
"어디로 달아났지? 말하면 너는 석방해 준다."
늙은이는 더욱 부드럽게 말했다. p145
"전 모르는 걸요...... . 그 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도 않았으니까요...... ."
그러나 늙은이가 한 번 눈 짓을 하자 아큐는 또 다시 목책문 안에 갇혔다. 그가 두 번째 목책문으로부터 끌려나온 것은 이튼 날 오전이었다.
대청의 광경은 모두 전과 같았다. 상좌에는 여전히 까까머리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아큐도 역시 어제처럼 꿇어앉았다.
늙은이가 부드럽게 물었다.
"더 무슨 할 말은 없느냐?"
아큐는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할 말이 없었으므로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가지고 와 아큐 앞에 놓고 붓을 그의 손에 쥐어주려고 했다. 아큐는 이 때 거의 혼비백산하도록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손이 붓을 쥐어보기는 이번이 철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 쥐는 것인지 정말 몰랐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한군데를 가리키며 그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저는 ...... 저는 ...... 글을 쓸 줄 모르는 뎁쇼...... ."
아큐는 붓을 덮석 움켜잡고 황송하고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면 너 좋은 대로 동그라미 하나 그려라. "
아큐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으나 붓을 잡은 손이 떨리기만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를 우해 종이를 땅 위에 펴주었다. 아큐는 엎드려 평생의 힘을 다 쏟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워 동그랗게 그리려고 마음먹었으나 이 밉살스런 붓이 지나치게 무거운 데다 또 말을 듣지 않아 떨면서 간신히 그렸다. 거의 완성하려 할 때 붓이 위로 솟구쳐 수박씨 모양이 되고 말았다. p146
아큐는 자기가 동그랗게 그리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으나 그 사람은 문제 삼지도 않고 재빨리 종이와 붓을 가지고 가버렸다. 여러 사람들이 또 그를 재차 목책문 안에 처넣었다.
그는 두 번째로 목책문 안에 들어갔어도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때로는 감옥에 들어가는 일도 있을 게고, 또 때로는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동그라미가 동그랗게 그려지지 않은 것만은 그의 일생에 하나의 오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곧 마음이 풀렸다. 손자대가 되면 동그라미를 아주 동그랗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잠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날 밤 거인 나으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부대장과 시비를 했다. 거인 나으리는 도난물의 반환이 급선무라고 주장했고, 부대장은 본보기로 징계하는 것이 선무라고 주장했다. 부대장은 요사이 거인 나으리를 그다지 안중에 두지 않게 되었으므로 책상을 두드리고 걸상을 치면서 말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입니다. 보십쇼! 내가 혁명당이 된 지 20일도 안 되는데 약탈사건은 10여 건이 되고 사건은 전혀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니 내 체면은 무엇이 된단 말이오? 기껏 해결해 놓으면 당신은 또 엉뚱한 소릴 하고, 안 돼요! 이건 내 권한이니까!"
거인 나으리는 난처했으나 그래도 자기주장을 견지하면 만약 도난품을 돌려주지 않으면 자기는 즉각 민정업무를 협조하는 직책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대장은 도리어
"마음대로 하시구려!"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거인 나으리는 그 날 밤 한잠도 못 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다음날도 사임하지는 않았다. p147
아큐가 세 번째로 목책문을 끌려나온 것은 거인 나으리가 한잠도 못 잔 그 밤의 다음날 오전이었다. 그가 대청에 이르러 보니 상좌에는 역시 예의 까까머리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아큐도 역시 전처럼 꿇어앉았다.
늙은이는 아주 부드럽게 물었다.
"너 무슨 할 말이 없느냐?"
아큐는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할 말도 없으므로 곧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과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 여럿이 별안간 그에게 무명으로 된 흰 등거리를 입혔다. 거기에는 무슨 검정 글자가 씌어 있었다. 아큐는 대단히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상복을 입은 것 같았으며 상복을 입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싱 그의 양손은 뒤로 묶여졌고, 곧장 관청 밖으로 끌려나왔다.
아큐는 포장없는 수레에 떠메어 올려졌다.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 사람 그와 같은 자리에 탔다. 수레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엔 총을 멘 군인과 경비단원들이 있고 양쪽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많은 구경꾼이 있었다. 뒤는 어떤가? 아큐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퍼뜩 깨달았다. 이것은 목을 '싹뚝' 하러 가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귓속이 멍해져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때로는 조급해지기도 했으나 때로는 도리어 태연해졌다. 그의 심중으로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바에야 때로는 목이 잘리는 일도 없으란 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길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째서 형장 쪽으로 가지 않는 것일까? 그는 이것이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조리 돌림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설사 그가 알았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때로는 조리 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니까. p149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멀리 돌아서 형장으로 가는 길이다. 틀림없이 싹둑! 하고 목이 잘리는 것이다. 그가 경황없이 좌우를 둘러보니까 인파가 개미처럼 따르고 있었다. 뜻밖에도 길가의 사람 무리 속에서 우어멈의 모습을 발견했다.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녀는 성 안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큐는 갑자기 자기가 배짱이 없어 노래 몇 마디 부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는 한 가지 생각이 마치 회오리 바람처럼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청상과부의 성묘」는 당당하지가 못하고,「용호상쟁」중의 '후회해도 소용 없다......'도 따분하다. 역시「손에 쇠채찍을 둘고 네 놈을 치리라」로 하자. 그는 동시에 손을 쳐들려고 했으나, 비로소 손이 묶여 있음을 상기했다. 그래서「쇠채찍을 들고」도 부르지 못했다.
"20년만 지나면 또 한 사람...... ."
아큐는 정신이 없는 중에도 이제까지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말이 '스승 없이 스스로 통달'한 듯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잘 한다."
군중 속에서 늑대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수레는 쉬지 않고 전진했다. 아큐는 갈채 소리 가운데서 눈알을 굴려 우어멈을 찾았다. 그녀는 조금도 그를 보지 않고 있는 듯하였으며 그저 병정들이 메고 있는 총만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큐는 그래서 환호하는 사람들을 주욱 휘둘러보았다. p149
이 찰나 또 한 가지 생각이 회오리바람처럼 뇌리에서 소용돌이쳤다. 사 년 전, 그는 산기슭에서 굶주린 늑대 한 마리를 만났었다. 늑대는 가까이 오지도 않고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채 어디까지고 그의 뒤를 따라와 그의 고기를 먹으려고 했다. 근는 그 때 무서워서 거의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손에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믿고 담이 세어져 간신히 미장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 늑대의 눈알은 영원히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흉측하고도 무서웠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도깨비불처럼 두 눈이 멀리서도 그의 육체를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또 그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더욱 두려운 눈을 본 것이다. 그것은 둔하고 또 날카로워 벌써 그의 말을 씹어 먹었을 뿐만이 아니라 또 그의 육체 이외의 무엇인가를 씹어 먹으려는 듯 언제까지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이 눈알들이 하나로 이어졌나 싶더니 벌써 그 곳에서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람 살려...... ."
그러나 아큐는 입밖에 내서 말하지 못했다. 그는 벌써부터 두 눈이 캄캄해지고 귓속이 멍해져 마치 온몸이 작은 티끌같이 분해되어 흩어지는 듯함을 느꼈다.
당시의 영향으로 말하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오히려 거인 나으리였다. 끝내 도난물이 반환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온 집안이 울부짖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은 짜오 씨 댁이었다. 수재가 성 안으로 고소하러 갔다가 악질 혁명당에게 머리채를 잘렸을 뿐 아니라 스무 냥의 포상금을 뜯겼기 때문에 또 온 집안이 울부짖었다. 이 날부터 그들은 점차 망한 왕조의 신하 같은 냄새를 풍겼다.
여론으로 말하면 미장에서는 별로 이의도 없었고 자연 모두들 아큐를 나쁘다고 말했다.
"총살당한 것은 그가 나쁘다는 증거지! 그가 나쁘지가 않았다면 무엇 대문에 총살을 당한단 말이니가."
그러나 성 안의 여론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그들의 대부분은 불만이었다. 총살은 목을 베는 것보다 재미가 없으며 더군다나 어떻게 되어먹었는지 웃기는 사형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거리를 끌려 돌아다니면서 끝내 노래 한 마디 못 부르다니. 그들은 공연히 따라다니느라 헛걸음만 했다는 것이었다.
1921년 12월 p151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매 마음이 미치겠다. 종일 괴로웠다. 자책과 한숨과 가슴과 몸이 아프다. 어떻게 헤어나야 하는가? 분하고 억울하고 괘씸하고 마음이 상한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온몸이 내려 앉듯 피로하다. 방황 끝에 사부님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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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오고 나면 지나온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길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던 것을 그 길을 다 벗어 난 다음에야 알게 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전체를 보는 힘이 강해지듯 시간적으로도 전체를 다 조망할 수 있는 시간적 포인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학창 시절 전체가 보이고 여기저기 아쉬운 일들이 생각나 듯, 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객관적으로 회사 생활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20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종종 다른 사람보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 내가 퇴근할 때, 야근을 위해 저녁을 먹고 회사로 되돌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 수고하라고 손을 흔들어 주지만 내심 '저 입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라고 느낀 적이 제법 있었다. 나는 좀 게으른 사람이다. 언제나 열심히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꿀벌 같은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다. 나는 일의 전체적 윤곽을 알아야 움직이고, 그 일을 좋아하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안달복달 하지만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 내 DNA 여서, 스스로 이런 방식을 존중해 준다. 그래서 나는 늘 나를 부지런히 몰아치는 상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부하직원도 늘 부지런하라고 들볶지 않았다. 우리는 자기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알아서 그 일을 했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미덕이다.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필요에 따라 이 근면을 몰아 쓰는 것이 전략적으로 훨씬 더 더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하자면 작은 댐 같은 개념이다. 매일 부지런히 흐르는 개울물은 자연의 상태여서 맑고 깨끗하다. 그 자체로 좋다. 그러나 그것은 수량이 작아 큰 일을 시키기 어렵다. 종종 물을 모이게 만드는 작은 댐을 쌓아두면 큰 힘으로 쓸 수 있다. 매일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은 개울물의 부지런함으로 훌륭하게 해낼 수 있지만 새롭고 창조적이고 집중적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치수의 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똑 같은 일을 반복하기 위해 매일 아주 많은 야근을 하고 있다면 그 부지런함은 격무를 몸으로 때우고 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끝없는 야근을 종료하려면 지금의 프로세스에 도전해야한다. 새로운 프로세스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내가 나서서 만들어 내야하는 것이다. 시키는 일을 마치는 것, 이것이 내 직무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해야할 일을 잘해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 역시 내 직무의 영역인 것이다. 바로 이런 인식의 고양이 주도적 리더십의 핵심이다. 이때 손발의 부지런함은 두뇌의 활동으로 확장되며, 매일 반복되는 저부가 가치의 일이 일의 방식을 바꾸는 프로세스의 혁신 프로젝트로 전환된다. 작은 댐을 쌓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는 일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자발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풋의 증가를 통해 아웃풋을 높이려는 노력은 말하자면 매일 야근하는 고역에 해당한다. 그것은 한계가 있다. 혁신과 혁명은 기존의 input-output 고리를 단절하고 전혀 새로운 프로세스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기준에는 크게 네 가지 수준의 차원이 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초보적 부지런함의 단계다. 말하자면 성실한 초보의 단계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내는 것이다. 그 일을 마감시간에 맞추어 잘 끝내는 것이다. 이 수준이 바로 성실한 일꾼의 차원이다. 이때 생산성은 투여한 노력 즉 INPUT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는 없다. 과거가 답습된다.
두 번째 차원은 시키는 일, 즉 과업을 달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이 경우는 대체로 성과의 목표는 주어지지만 목표에 이르는 수단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기존의 프로세스가 개선되고, 획기적인 효율성이 제고된다.
세 번째 차원은 지금 까지 해오던 일을 하는 대신 새로운 개념의 할 일을 찾아 내는 차원이다. HOW를 바꾸는 것이 프로세스 혁신 수준이며 효율성의 차원이라면 세 번째 차원인 WHAT을 바꾸는 것은 일 자체를 전환하는 것으로 효과성의 차원이다. 이 차원에서는 쉬지 않고 비즈니스 자체가 재정의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가장 창의적인 집단의 구성원들이 가지는 자세다. 예를들어 구굴은 경영자조차 자신이 어떤 비즈니스로 진화할지 잘 모른다. 서너 명으로 구성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팀들에 의해 거듭된 혁신이 만들어 진다. 날마다 이루어지는 혁신에 의해서만 선두를 지킬 수 있고, 이것이 스스로 진화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도는 80% 이상 실패로 끝나고 만다. 표현이 이상할 지 모르지만 그들은 실패를 지향한다. 성공은 오히려 수많은 실패의 부산물이다. '즉각적이고 동적인 대응, 말하자면 매일매일의 광속의 적응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창조해 나간다.
네 번 째 차원은 일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때 일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웰빙에 기여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나대로 이 네 개의 차원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첫 번 째 차원은 일을 땀으로 보는 노동의 차원이다. 두 번째 차원은 일을 연결과 접속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실험의 차원이다. 세 번째 차원은 일이 즐거움이 되는 놀이의 차원이다. 네 번째 차원은 일이 예술이 되는 차원이고 이때 우리는 땀 대신 피를 쏟아 붓게 된다. 직업인은 적어도 두 번 째 차원에 이르러야 일의 고삐를 쥐었다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도달해야 전문가라 불릴 수 있다. 세 번째 차원에 다다르게 되면 축복받은 것이다. 평생 경제적으로 보상받으며 놀 꺼리가 있으니 행운이다. 네 번째 수준에 이르면 고통스럽고 고독하다. 운이 좋으면 영광도 크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천복을 따르는 길이니 인생 전체가 보답하게 된다.
나는 욕심이 많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한 번은 적어도 일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경험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맛을 영혼에 한 번 각인 시켜야 그 일에 관해서는 하늘로 오를 수 있다. 푸른 하늘에 하나의 심상을 띄워두자. " 나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하나를 피로 키우자"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어느 날 작은 도시의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저녁 모임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경기는 어려웠고, 실업은 늘었으며, 매출은 줄었다. 사람들은 의기소침해 있었고 모두 정부와 불경기를 탓했다. 글로벌 환경도 좋지 않아 경기의 회복을 더욱 어둡게 했던 때였으므로 그녀를 초청한 주체측은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기대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그녀는 아주 커다란 종이 한 장을 들고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종이의 한 가운데에 마크 펜으로 선명한 검은 점을 하나 찍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이는지요 ? "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응답했다. "검은 점 하나요" 그녀는 다시 확인했다. "검은 점 하나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지요 ? " 사람들은 유심히 그 커다란 백지 위에는 살폈지만 역시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여러분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하얀 종이 말입니다. 인생에서, 비즈니스에서, 가정에서,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적인 일에서 우리는 바로 이 검은 점 하나와 같은 작은 실수와 실패 때문에 온통 마음이 심란해 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이 하얀 여백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꿈을 그려넣을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부정적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향이 있다. 실수가 마음에 걸리고, 나를 탓하게 된다. 열패감에 빠지게 하고 후회하게 하고 되씹게 만든다. 그것을 우리는 자기반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 감독은 배움 보다는 좌절과 자기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자제력을 요구하고 더 근신할 것을 명하지만 자제력이란 소모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사용하다 보면 파김치가 되고 만다. 커다란 하얀 종이에 찍힌 검은 점 하나라는 어둠에 집착하게 됨으로써 삶의 밝음을 상실한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며, 기쁨과 축복을 삶으로부터 박탈해 가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히 자기성찰이 강한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엄격한 편이라 더욱 많이 볶아대는 기질이다.
스스로에게 늘 타이른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다음 샷이며, 다음 샷에서 성공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설득해 본다. 그러나 뻔한 곳에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수시로 잃곤 했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하고, 작은 실수와 실망이 생겨날 때 마다 나를 훈련하곤 한다. 소심한 내가 조금 씩 바뀌어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내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밝음 경영'이라고 부른다.
나는 우선 밝음 경영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을 정립했다. 나의 가정은 이렇다.
"나는 이 우주를 항해하는 행성이다. 수없이 많은 다른 별들이 바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우주를 닮았다. 따라서 나도 우주의 법칙에 따른다. 우주에는 밝음과 어둠이 있다. 어둠은 나의 약점이기도 하고 나의 문제점이기도 하고 나의 실수와 상처이기도 하다. 밝음은 나의 강점이며, 나의 성공이기도 하고 나의 감탄과 삶의 기쁨이기도 하다. 나는 늘 내 문제점을 해결하고, 잘못을 고치고, 못하는 것을 잘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에 지배되고 있다. 지금부터, 당장 이 생각을 뒤집도록 하자. 나는 어둠을 품은 밝음이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나의 밝음을 확산하는 것이다. 어둠을 지우는 대신 먼저 밝음을 키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 전략이다. "
그리고 이 가정을 지지할 전술적 실행 원칙을 신속하게 정했다.
첫째, 무슨 일을 계획하든 어두운 부분, 즉 문제를 먼저 고치려 하지마라. 그 대신 밝은 부분, 즉 잘하는 일을 확장하는 것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아라. 책을 읽고, 이론을 체계화하고,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몰입하라. 그 일들이 내 하루를 지배하게 하라.
둘째, 잘하는 일에 몰입하여 신속히 작은 승리를 만들어 내라. 승리는 가장 짜릿한 동기부여다. 일 년에 한 권은 책을 내라. 책은 훌륭한 성과물이다. 한 해에 열 명씩 연구원을 배출하고 프로그램들을 돌려 절실한 젊은이들을 만나라. 사람이 남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일 년에 두 번은 꽤 긴 여행을 가라. 자유를 즐길 수 있어야 자유인이다. 일주일에 3번은 강연해라. 그러나 그 이상은 하지 마라. 아읏풋과 인풋의 균형을 잡아라.
셋째, 끊임없이 삶의 에너지를 주입하라. 에너지는 기분과 감정이다.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감성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삶의 기쁨을 느끼고 감탄이 많은 하루를 보내라. 더 많이 산에 다니고, 더 많이 새소리를 듣고, 더 많이 좋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이 꽃과 채소를 기르고, 뿌리가 젖을 정도로 물을 줘라. 사심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이가 많아서도 새친구를 사귀어라.
명심하자. 너무나 많은 자제력을 요구하는 극기 훈련은 삶의 기쁨을 앗아가 영혼을 지치게 한다. 자제력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서만' 쓰도록 해야 한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는 데 써야할 에너지를 비축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고 에너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지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찬란한 봄에 감사한다. 밝음 경영은 내 안의 봄을 키우는 것이다. 내 안의 여름을 키우는 것이고, 내 안의 가을을 키워 열매 맺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조용히 명상하듯 숙고하여, 계획대로 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집착과 미련을 떨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차원이 달라진 새로운 세상을 말이다.
(혁신경영 원고 2010 5월 )

옛날 그라나다에 한 무어인 왕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모두 아기 왕자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어 그에게 알 카멜(완벽한 사람)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점성가들은 이 왕자가 성년이 될 때 까지 다정한 열정을 조심하여 사랑에 빠지지 만 않는다면 죽을 때 까지 한결같이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왕은 이 왕자를 위대한 현자의 손에 맡겨, 성년이 될 때까지 알함브라 궁전의 여름 정원인 헤네랄리페에 갇혀 지내게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왕자는 정원을 거닐며 생각에 잠기게 되고 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비둘기는 왕자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 주었다.
"그것은 혼자에게는 고통이고, 둘에게는 행복이며, 셋에게는 원한이자 싸움이랍니다. 그리움에 지친 낮이며 잠 못 드는 밤이랍니다. 두 존재를 끌어 당겨 하나로 모아 주는 것이지요"
비둘기의 말을 듣고 왕자는 깊은 여름 정원의 담을 넘어 멀고 험한 사랑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순례는 아름다운 알데곤다를 만남으로써 완성되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많고 많은 전설 중에서 아흐메드 알 카멜 왕자의 사랑의 순례이야기는 백미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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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짧은 생각 하나가 스쳐 적으려고 들어오다 댓글에 기가 막혀 잊어버리다. 그리 길지 않은 생각이었는데......
아침에도 적어두려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도 홀라당 까먹었다.......
그렇다면 지금 순간 떠오르는 글귀들을 적어놓자.
1. 아Q가 말한 여자...... 에 대한 상대적 의미의 남자...... 에 대해
2. 식인의 사회
옛날 그라나다에 한 무어인 왕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모두 아기 왕자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어 그에게 알 카멜(완벽한 사람)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점성가들은 이 왕자가 성년이 될 때 까지 다정한 열정을 조심하여 사랑에 빠지지 만 않는다면 죽을 때 까지 한결같이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왕은 이 왕자를 위대한 현자의 손에 맡겨, 성년이 될 때까지 알함브라 궁전의 여름 정원인 헤네랄리페에 갇혀 지내게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왕자는 정원을 거닐며 생각에 잠기게 되고 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비둘기는 왕자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 주었다.
"그것은 혼자에게는 고통이고, 둘에게는 행복이며, 셋에게는 원한이자 싸움이랍니다. 그리움에 지친 낮이며 잠 못 드는 밤이랍니다. 두 존재를 끌어 당겨 하나로 모아 주는 것이지요"
-> 여자들의 위기 의식과 전쟁
3. 소설 같은 이야기, 연극 같은 인생, 예술처럼 흐르는 세월
운명 재단하기
sestion 1
작업 하나, 웃음 참기
작업 둘, 목소리 깔기
작업 셋, 무덤덤하기
작업 넷, 간격 유지
작업 다섯, 긴장 늦추지 않기
작업 여섯, 표정 관리
작업 일곱, 꼿꼿하기
작업 여덟, 핵심 요약
작업 아홉, 말수 절제
작업 열, 맵시 있게
* 세상을 내 맘음 대로 움직이게 할 때 절대적 필요 요소 : 균형감- 이상과 현실의 접점 유지와 견제동물 보호법: 사람이상으로!!

20대의 어느 가을날의 대화......
가을이 되면 어깨가 무거워보였던 어느 이가 남긴 한마디가 떠오르곤 한다.
9월 마지막날에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서 하차하여 마을버스로 갈아타는데,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 정말 부담없이 곱게 피어있더라.
앗, 코스모스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아, 그래서 요즘이 한창 코스모스가 피는 계절임을 그제사 알았다.
피식 웃음을 자아내며 세월 흐른 후 어록처럼 남아 있는 한마디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불숙 튀어나오다......
"무슨 꽃이 좋아?"
"...... 코스모스"
"왜?"
"부담이 없는 꽃 같아서...... ."
마을버스 간에서 급하게 찰칵!
좀 더 가까이...... 드리대며, 하나 더 ......
그리고 오늘 10월 3일 개천절날에 구립 독서실에서 베껴쓰기 노동체험. ㅋㅋㅋ
오랜만에 종이 글씨 써보니 손가락과 어깨 너무 아프당. ㅠㅠ

전체 내용이 잘 나타나 있는 자서 부분을 다시 한 번 베껴쓰기 하며 저자와 같은 글쓰기 연습 시도. ㅋㅋ
글을 베껴쓰기 하며 자꾸 읽다보니 리뷰한 것을 자주 읽으라고 하시던 사부님 말씀이 생각난다...... . 사정상 내 글로 토달기를 앞부분 밖에는 못하였는데, 일과 처리 후 다시 이어가기를 해야겠다.
자 서 (두 번째 베껴쓰기)
나도 젊었을 때는 많은 꿈을 가졌다. 나중에 대게 잊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별로 애석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추억이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적막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음속의 실 한 가닥으로, 지나가버린 쓸쓸한 시간을 메워둔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한 데에서 나는 오히려 고통을 느낀다. 그 완전히 잊혀질 수 없는 일부분이 지금 『납함( )』을 쓰게 된 원인이 되었다.
나도 젊었을 때는 많은 꿈을 가졌다. 나중에 대게 잊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별로 애석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추억이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적막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음속의 실 한 가닥으로, 지나가버린 쓸쓸한 시간을 메워둔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한 데에서 나는 오히려 고통을 느낀다. 그 완전히 잊혀질 수 없는 일부분이 지금 납함을 쓰게 된 원인이 되었다.
나는 청년이 되었을 때까지 세상이 온통 내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질 줄 알았다. 지금은 무엇을 꿈꾸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 져가는 감이 없지 않다. 다만 때로 내가 무엇을 하는 건지 꿈속을 헤매는 것 같고, 곧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함에 가슴이 쿵하고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듯한 적막감을 느끼게 되곤 한다. 내 마음의 진실을 기만한 채 많은 날들이 흘렀다. 잊으려는 노력만으로 잊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과 의식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까닭이다. 적지 않은 날들의 이야기들을 이제는 하나의 스토리로 마무리해야겠다고 느낀다.
나는 일찍이 4년 남짓한 동안 거의 매일같이 전당포와 약방을 출입했던 적이 있다. 몇 살 때인가는 잊었지만, 아무튼 약방 계산대가 내 키만큼 높았으며, 전당포의 계산대는 내 키의 갑절이나 되었다. 나는 내 키의 갑절이나 되는 계산대 위에 옷이며 장신구 따위를 놓고, 경멸어린 눈초리 아래 돈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내 키만큼 높은 한약방의 계산대로 가서 오랜 병으로 앓고 계신 아버지를 위해 약을 짓고는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일로 바쁘기만 했다. 왜냐하면 약을 처방한 의원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기에 소용되는 보조약 또한 아주 기이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한겨울의 갈대뿌리, 3년간 서리 맞은 사탕수수, 교미중인 귀뚜라미, 열매 맺힌 평지목(平地木) 등, ......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은 날로 더해서 끝내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와 헤어져 세상에 홀로 나왔을 때 나는 마치 발가벗겨진 채 거리를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쳐다보는 것 같았다. "너, 결혼생활 하나도 온전히 지탱하지 못하는 바보로구나. 제 자식 하나 키우고 보살피지 못하는 멍청이로구나. 도대체 너는 그동안 뭘 배우고 익혔으며 그 나이까지 무얼 위해 살았다는 것이냐? 네가 한 공부와 가정교육과 인생관은 무엇이며, 도대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살았기에 겨우 꼴란 그 지경이 되고야 만 것이냐?"라고 한껏 비웃으며 돌팔매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언제는 좋다고 신앙도 버리듯 엉겨 붙어서 내질러놓고 불과 채 5년도 못 살고 뛰쳐나오며, 줄줄이 낳아놓은 제 새끼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파렴치하고 한심한 여자라고 ...... 비웃고 경멸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도저히 얼굴을 들고 밖을 나돌아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24시간을 일에 파묻혀 살아도 도저히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울분과 설움과 한숨을 잠재우는 길은 미친 듯이 일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어떤 다른 방도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오로지 죽지 않고 살기위해 미친 듯 매달려 일하고 뛰어다니며 공부하고 차곡차곡 돈 모아 일단 자립부터 해야 하는 것이라고 오직 그것 하나만을 염두에 둘 뿐이었다.
나는 누구든 안락한 환경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 반대의 생활로 떨어져 버렸다면, 그 떨어지는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N시로 가서 K학당에 입학하려 한 것도 아마 다른 길, 다른 지방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과 사귀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8원의 여비를 마련해 주시며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우셨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절은 경서(經書)를 배워서 과거를 치르는 것이 정도(正道)였고, 사회통념상 소위 양학(洋學)을 배운다는 것은, 갈 곳 없는 사람이 서양 오랑캐에게 영혼을 팔아넘기는 것으로 간주되어, 몇 배의 수모와 배척을 당해야만 하는데다가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을 만나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장 밀접하게 내 사정을 그나마 아는 친구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예전의 나로 받아드리지 않았다. 놀랐고 상당한 서운함을 느꼈다. 그렇게 어떻게 사느냐고 네가 너무나 변했다고 울분을 토할 때와는 달리, 이혼을 하고서 만난 친구의 태도는 냉랭했다. 처음부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하느님을 영접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녀가 독실한 신자를 자처하며 주장하는 바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그렇게 귀결 짓는 데에는 아무리 친구라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때 그 순간에는 친구이기보다 재판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반발할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신앙까지 뒤로하며 그에게 맞춰 보려했던 일들까지 수포로 돌아간 마당에야 그녀에게는 우상의 신까지 섬기는 대역죄를 범한 죄인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남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었지만, 그나마 친구이기에 마주 앉아 있는 것과 같은 대단히 아량을 베푸는 처사와 같은 고자세였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까지도 달게 받으려 했고, 이러한 현실은 미리 예상해 둔 바이기도 해서 놀라기보다 확인이 되는 점이기도 했다. 또한 스스로도 결혼을 통해 어쨌거나 냉담을 하게 되었으니, 온전히 내 책임으로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죄의식이 자리해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혼을 하고 나니, 결혼생활 중에는 그토록 애원하다시피 하던 천주교회에 나가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낙인을 찍은 것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기도가 되지 않았다. 결혼 전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를 내가 스스로 아무런 겁도 없이 낙관적인 섣부른 희망만을 가지고 달려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함께 성당에 나가게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가톨릭에 대한 그의 생각도 긍정된 측면이 많으니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며, 다만 좀 시일이 걸릴 뿐이라고 얼마나 당연한 희망만을 품었던가. 하지만 약혼이후 손가락의 묵주반지를 슬며시 빼더니, 결혼 후 단 한 번도 성당에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 가족들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여 부부 불화와 싸움이 너무 잦자 상태를 진정시키며 어떻게든 화합해 보려고 그렇다면 절에 라도 나가자고 까지 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했건만, 그러한 노력조차도 진실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자신 불교 신자가 아니라 늘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답답하면 고작 무당에게나 달려가는 정도의 어설픈 종교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샤머니즘과도 같이 순전히 자기 영달과 이기적 구복만을 위해 비책이나 찾아내려는 심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철학이나 이념 종교관 따위가 부재한 상태에서의 임시방편과 힘들지 않은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관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결국 N시로 가서 K학당에 입학했다. 이 학당에서 나는 비로소, 세상에는 소위 물리라든가 수학, 지리, 역사, 미술 및 체육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리학은 별로 배우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목판본의『전체신론(全體新論)』이니『화학위행론』이니 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기억하고 있던 옛날 의원들의 이론이나 처방을 새로이 알게 된 것과 비교해 보고는, 한방의(漢方醫)가 결국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일종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그들에게 속은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에게 동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번역된 역사책에 의해 일본의 유신(維新)은 대부분 서양의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p 4
이혼 후 근 10년이 다 되어갈 무렵, 어느 날 나는 여러 가지 모색으로 갈팡질팡 하게 되었다. 10년의 세월을 앞만 보며 살아왔건만 오로지 혼자만의 고군분투일 뿐, 아무것도 변화된 것이 없어보였다. 스스로는 여러 변화를 이루어왔지만, 정작 바라고 기대하는 거짓 이혼의 환상은 근사하고 멋들어지게 쉽사리 돌이켜지는 굴레가 아니었다. 여전히 남과 북의 적극적 대치처럼 요원할 뿐이었다.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악의적 앙심을 품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듯이, 상대편에서는 서슬 퍼런 시선으로 절대로 보지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사자의 태도가 아니라 주변인의 완강한 태도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적 권리행사를 하고 그 지경을 쫒는 당사자가 있음에야 말해 무엇 하나.해서 공연히 아이들 잡겠다 싶어 그 뒤로부터는 아예 성년이 될 때까지는 애달픔도 모질게 참아 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여기며 체념하여 지냈다. 그러자니 그 속이 오죽하랴. 그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울분과 반발심을 어떻게 억제해 나가야 좋을지 분노와 상처가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너무 시달리니 정말 스스로가 문제가 있고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이며,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한 이유와 사태가 무엇으로 어떻게 치달을 것인지에 대한 예측과 그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탱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심도 깊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자각이 일었다.
그래서 스승을 모시기로 하고 그때부터 마음을 잡고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에 몰입하기로 작정하며 건전한 커뮤니티를 만나 생각들을 다듬어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또 어려운 고비를 슬기롭고 순탄하게 지나올 수 있었다.
이런 유치한 지식 덕분에, 나는 일본 어느 시골의 의학전문학교에 학적을 두게 되었다. 내 꿈은 부풀어 있었다. 졸업하고 귀국하면 나의 아버지처럼 잘못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리라. 또 전쟁이 일어나면 군의(軍醫)가 되고,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유신의 신앙을 촉진시켜 주리라. 이런 등등이었다. p4
나는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방법이 지금은 어느 만큼 진보하였는지 잘 모르지만, 어떻든 그 당시에는 환등(幻燈)을 사용해서 미생물의 형태를 비춰 보여주었다. 가끔씩 강의가 끝나고 나서도 시간이 남을 때면 교수님은 풍경이나 시사에 관계되는 필름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그것으로 남은 시간을 때우곤 하였다. 그 때가 마침 일・러 전쟁중이어서 자연히 전쟁에 관한 필름이 비교적 많았다. 나는 그 강당에서 항상 동급생들의 박수갈채에 장단을 맞춰야 했다. 한 번은 나는 마침 화면에서, 오래 전에 헤어졌던 많은 중국인들을 갑자기 보게 되었다. 가운데에 한 사람이 묶여 있고, 주위엔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장면이었다. 모두 건장한 체격이긴 했지만 넋이 빠진 듯 멍청한 표정들이었다. 해설에 의하면, 묶여 있는 중국사람은 러시아를 위해 군사상의 기밀을 정탐했기 때문에, 본보기로 일본군이 목을 자르려 한다는 것이었다. 둘러선 사람들은 이 본보기가 되는 큰 일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2학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동경(東京)으로 나와버렸다. 그 필름을 한 번 본 뒤로는 의학이란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이기의 재료나 관객밖에는 될 수 없었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런 일은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p5
그러므로 우리들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정신상태를 뜯어고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당시에는 당연히 문예(文藝)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문예운동을 제창하리라고 작정했다. 동경의 유학생들 대부분이 법학, 정치, 물리, 화학 및 경찰, 공업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 문학이나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냉담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다행히 몇 명의 동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필요한 몇 명의 동지를 모아 상의한 결과 제일보는 잡지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잡지 이름은 '새로운 생명' 이라는 뜻을 취하기로 하고, 그 당시 우리가 복고적인 경향을 띠었기 때문에, 그냥 『신생(新生)』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신생』의 출판날짜가 가까이 다가왔으나, 맨 먼저 원고를 담당한 몇 사람이 자취를 감추었다. 뒤이어 자본을 댈 사람마저도 도망가 버려서, 결과적으로 일 전 한 푼 없는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시작할 때부터 이미 세태에 맞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실패했을 때도 물론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나중에 남은 세 사람도 서로 자신의 운명에 쫓겨 한자리에 모여 장래의 꿈을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탄생도 시키지 못했던 『신생』의 결말이다.
내가 난생 처음 무료함을 느끼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였다. 나는 당초에 왜 그런지 까닭을 몰랐다. 얼마 뒤에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즉, 한 사람의 주장이 남의 찬성을 얻으면 전진하게 되고, 반대를 얻게 되면 분발하게 된다고. 그러나 낯선 사람들 속에서 홀로 외쳤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면, 즉 찬성도 반대도 없다면, 마치 끝없는 벌판에 홀로 버려진 듯 자신을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비애인가! 나는 내가 느꼈던 것을 적막이라고 생각한다.
이 적막감은 하루하루 자라기 시작하여, 마치 커다란 독사처럼 나의 영혼에 칭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p6
나는 비록 끝없는 비애 속에 빠져 있었지만, 결코 그로 인해 분노를 터뜨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경험은 나를 반성하게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이었다. 즉 나는, 내가 한 손을 높이 쳐들고 외치면 나에게 호응하여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는 그런 영웅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 스스로의 적막감만은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나 자신의 영혼을 마취시키고, 나를 민중 속에 몰입시켜 옛날로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그 뒤에도 더욱 적막하고 비애스러운 일을 몇 번 직접 경험하고 방관도 해보았지만, 모두 돌이켜 생각해 보기조차 싫고, 그것들과 나의 머리를 한꺼번에 진흙 속에라도 파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마취법이 효과가 있었던지, 청년시절의 비분강개하던 생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S회관에는 세 칸짜리 방이 하나 있다. 마당에 있는 홰나무에서 옛날에 한 여자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애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 그 홰나무는 사람이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이 자라 있지만, 그 방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몇 년 동안 나는 그 방에 틀어박혀 옛날 비문(碑文)을 베끼고 있었다. 손님들의 내왕도 별로 없었고, 그 비문 중에서 무슨 문젯거리나 주의(主義)를 만나는 일도 없었다. 그러면서 나의 생명은 점점 깜깜한 어둠 속으로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또한 나의 유일한 바람이기도 했다. 모기가 한창 극성이던 여름밤, 부들부채로 부채질을 하며 홰나무 아래에 앉아 무성한 잎 사이로 반짝이는 푸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늦게 깨인 홰나무 벌레가 섬뜩하게 목 위에 떨어지기도 했다. p7
그 때 가끔 놀러 와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옛 친구인 진신이(金心異)였다. 그는 손에 든 커다란 가죽가방을 낡은 책상 위에 놓고 웃옷을 벗어던지고는 마주 보며 앉는다. 개를 무서워하므로 그 때까지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모양이었다.
"자네 이런 걸 베껴서 무엇에 쓰려고 하나?"
어느 날 밤, 그는 내가 베낀 옛 비문의 초본을 펼쳐보며 궁금한 듯이 물었다.
"아무 소용도 없어."
"그러면 무엇 때문에 베끼고 있나?"
"아무 이유 없네."
"내 생각엔 자네가 글을 좀 썼으면 해...... ."
나는 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신청년(新靑年)』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엔 특별히 찬성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필시 그들도 아마 적막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말했다.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서 모두 숨이 막혀 죽을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사멸되어 가고 있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 따위는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비교적 의식이 뚜렷한 몇 사람을 깨워 일으켜서, 그 소수의 불행한 이들에게 구제될 수 없는 임종의 고초를 겪게 한다면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비록 내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희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희망이라는 것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글을 쓰겠다고 응답했다. 이것이 처녀작인 「광인일기(狂人日記)」이다. 그 때부터 이왕 한 발 내디딘 이상 되돌릴 수도 없고 해서, 친구들의 부탁이 있을 때마다 소설 비슷한 글을 쓰고, 그렇게 쌓이게 된 것이 십여 편에 이르렀다. p8
나 자신은 현재 이미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결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아직 그 때 나 자신이 가졌던 적막한 비애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고함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적막 속에서 치닫는 용사들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고 그들이 앞장서서 달려가는 데 거리낌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함성이 용맹스러운 것인지, 슬픈 것인지, 증오스러운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러나 함성인 이상에는 당연히 지휘관의 명령을 들어야 하므로, 가끔 곡필(曲筆)을 들어「약(藥)」속에 나오는 위얼(瑜兒)의 무덤에 이유 없이 꽃다발을 놓거나,「내일(明天)」에서 산쓰(單四) 부인이 아들을 만나는 꿈을 꾸지 못했다고 쓰지 않았던 것은 그 당시의 대장이 소극적인 것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으로서도 내가 겪기에 고통스러웠던 적막감을, 내 젊은 시절과 같이 꿈에 부풀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결코 다시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면, 나의 소설이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게다가 한 권의 책으로 낼 기회까지 얻고 보니 어쨌든 요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행이란 점이 나를 불안하게 하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사람들 사이에 읽어줄 이가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떻든 그나마 기쁜 일이다. p9
그래서 나는 나의 단편소설들을 모아 인쇄에 붙이고, 또 앞에서 말한 연유로 해서『납함』이라 이름 붙이기로 했다.
1922년 12월 3일 북경에서
루쉰 씀

오후부터 대전 성모병원 영안실에 문상을 갔다가 지금 돌아왔다. 학과장님이셨던 김용주 교수님께서 소천하셨다. 제법 오래 병치레를 하셨다. 이제 그만 고생을 멈추시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슬하에 자녀가 없으신 외로운 분이시나 제자 중의 한사람이 오래도록 자식 노릇을 하며, 병수발에 크게 도움을 드려왔다. 오래 복 받을 일이다.
그분께 배운 공부로 중년의 귀한 밥벌이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동문들과 다른 교수님도 만났다. 세월이 지나니 누가 교수고 학생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함께 늙어가는 모습이다. 사람들과 동행하느라 장시간 기다리며 몇 시간 씩 차를 타고 다녀왔더니 몸이 피로하고 지친다. 오늘은 새벽 일어나기를 쉬어야겠다. 김용주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의 가르치심 귀하게 쓰였고 쓰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부디 편안히 가시옵소서. ()

약속이란 무엇인가?
깊은 밤...... .
두 발 뻗고 자는 이
다리에 이어진 몸뚱이의 주인이 아니다.
아픔을 느끼는 자
그가 잠 못 이룰 뿐이다...... .
약속이 지켜지는 날까지
상처에 다른 약은 없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아무 것에도 마음을 못 주게 될 지도 몰라 가슴이 철렁.
증인 1
나는 아네.
하늘하늘 노골노골한 가지로 휘어지고픈 굳은 껍질의 나무가 덜컹덜컹 춤 추던 모습
하회탈을 뒤집어 쓴 월매 속에서 무아지경에 터져나오던 소녀 춘향이의 시작(詩作)!
벽이 움직이고 기둥들이 몰입해 드는 장면이었지.
매혹과 미혹사이...
꺽꺽이고 잦아들곤 하던 불씨 골천백번
삼 년 그리고 사 년, 그 혹독한 세월이라는 년들과 홀로 피터지게 싸워대던
뚝심 하나로 완강히 버티고 애착할 줄 아는 지독한 년!
나긋나긋 무덤덤히 흐드러지고 굽이지는 그 년의 담담한 가을 노래를 듣네.

어찌 수습해야 할까?
할 수 없이 예저에 써 둔 글 하나를 고쳐보았다. 에고~ 엉망진창이었는데, 여적 붙여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다시 써보기>
모녀가 함께하는 '흰 그늘의 미학'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며 느낀 점이지만 나의 경우는 쓰기보다 읽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한마디로 못 읽어서 못 쓴다.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어학을 잘 못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내 이야기가 금세 수긍이 갈 만하리라.
내 어머니는 왜정시대라 불리던 일제 때 소학교를 나오셨다. 보국대다 뭐다해서 남자들은 징용가고 여자들은 위안부로 끌려가던 시대에 유년의 시절을 보냈다. 몸에 맞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왜식 이름으로 억지 창씨개명創氏改名 당하여 불리며, 일인들의 치하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말쌀당한 채 학교에 가서도 일어를 사용하고 배워야 했다. 따로 우리말을 익힐 새도 없이 우리말을 사용하다 걸리면 잡혀간다는 공포에 떨며,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고 일본 선생에게서 일본글과 문화를 강제 당했다. 그러다 우선 정신대 등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른들께서 정해주는 혼처를 따라 서둘러 결혼에 임하시었다. 그렇게 우리 정씨 집안과 인연을 맺어 삶을 시작한 것이 회혼례回婚禮를 넘기고 지금까지 팔순의 노부부로 살아가신다.
어머니는 당시 소학교 때 배우신 짧은 일본글과 지방 사투리 대화법 정도를 기반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해 오셨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어머니의 언어체계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배우게 된 일본글은 강제된 문화를 익히는 것이었기에 반감이 들었을 뿐, 필요성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에 임하지 않으셨단다. 그렇다보니 어머니는 일본글도 아니고 한글도 아닌 두 언어가 뒤죽박죽 된 형태의 언어구사력을 취하며 생활해 오셨다. 한글은 주먹구구식으로 익혀서 늘 자신이 없고, 결혼과 더불어 해방 후에는 일본글이나 말을 사용치 않다보니 자연 잊어버렸다. 그래서 평소 쓰기보다 말하고 기억하기를 주로 하면서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써야 할 때면 받침이 어려운 한글을 기피하고, 대신 머리를 이용하여 외우고 암기하는 기억력으로 일관하신 것이다.
그러다가 연세가 들면서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니 다급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0여 년 전 연세가 거의 70에 이르러서야 집안일 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신 것을 계기로 복지관 등을 이용해서 다시 한글 공부에 적극 매달렸다. 약 4년간을 줄곧 한글공부에 매진하신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부터 다시 읽고 쓰기를 반복하시며 꾸준히 반복학습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기억에만 의존할 수 없고, 또 평생에 답답해하던 한恨을 풀어, 마침내 하나하나 또박또박 한글을 바로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이국의 천리만리千里萬里 떨어져 사는 손자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쓰시고는 맞춤법이 잘 맞는지를 물어오셨다. 처음 쓰신 글이라며 쑥스러운 듯 내어놓으셨지만 그 문장은 마치 시詩를 쓰신 것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때에 알았다. 저토록 문장력文章力이 있으셨는데, 세상과 살림살이에 찌들어서 그동안 마음 편히 연필 한번 제대로 잡으실 겨를 없이 지내셨구나. 그 열정과 의욕은 넘치도록 강렬했으나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어 표현도 못하시고 글로써 옮겨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으니 오죽이나 답답하였을까. 조금만 더 일찍 배우고 익히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저 노인당에나 가서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정도의 뒷방 늙은이로는 절대 살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하시더니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스스로를 장하고 빛나게 이끄신 기쁨과 보람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
젊어서는 언제나 은행에 가시면 입출금 종이를 넉넉히 가지고 오시어 집에서 찬찬히 써가지고 가야만 마음 놓여 하시던 것을, -서비스의 발달과 노인이라고 청원경찰 등의 안내자들이 도와주려고 해도,- 이제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써낼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하여 그리 좋을 수가 없다고 하시며 흐뭇해하시는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도 내게 새로운 가짐으로 다가온다.
이런 어머니의 젊어서의 모습과도 같이 요즘에 내가 어머니의 그 답답한 심정을 많이 느껴서 일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대충 살아갈 때야, 뭐 그리 쓸모가 있나 어학 따윌 잘하지 못해도 사는데 큰 지장 없다고 체념하고 자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 때에 부지런히 공부하여 익히지 않은 관계로 영어만 보면 도망부터가고, 컴퓨터도 워드나 겨우 다루는 지금의 내가 바로 21세기형 문맹文盲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실이 그렇다. 컴퓨터야 점점 좋은 기술로 발전되니 몇 가지 조작 기술만 익히면 된다손 치더라도, 어학실력의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아 묘연杳然하다. 그러니 앞으로 더욱 곤란에 처할 확률이 높다. 생각 같아선 한 3년에서 5년 어디 외국에라도 나가서 살다가 올까, 외국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날에는 불같이 솟구치지만 돌아와서는 늘 그냥 흐지부지하여 타령에 그치고야 마니 어머니와 같은 고충이 내게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이제라도 지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야 하리라.
이번에 읽는 과제 장파의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은 한글의 우리말 번역임에도 상당히 어렵게 읽혔다. 꽤나 심도 있는 깊이감에 우선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 이만한 글이라면 찬찬히 읽고 흡수할 절대적 시간의 부족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난해함은 번역의 문제나 시간의 절대부족이라기보다 동ㆍ서양의 맥을 이루는 역사적 문화사조와 미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체계와 사전지식의 부족에 기인함이라고 생각된다. 전체를 꿰뚫는 해박한 안목과 지식의 부족 탓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경心境이다.
연구원 과정을 하며 적어도 자신의 책 한권을 내보겠다고 하면서, 일부분에 걸친 편협하고 한정된 독서와 언어 구사력에 머물러 있던 지난 시간들의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자꾸만 부끄러운 소회所懷에 젖어드는 것을 숨길수가 없다.
지난한 인생의 고달픔 가운데에서도 애써 굽은 허리를 이끌고 만학의 꿈을 이루시는 어머니의 열정에 새삼 숙연해진다. 스스로가 찾고 즐기는 어머니의 늦은 공부는 아름다운 삶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뛰어넘어 희열까지 체득케 한다. 매운 겨울바람 이기고 약동하는 봄의 새싹들같이 화사한 책읽기와 쓰기로 노년의 새로운 일상을 열어가는 모습이 감격스럽다. 또한 노익장을 과시하며 인생에의 도전과 지평을 넓혀가는 모습은 얼마나 흐뭇하고 신선한 광경인가.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늙은 나목裸木과도 같이 흰 머리카락으로 뿜어내는 열정熱情 가득함은 당신 정신의 웅혼雄渾한 통찰洞察과 투지鬪志로서, 역사의 어두운 그늘까지도 말끔히 씻어내고자 하는 장렬함이다. 또한 창아淸雅한 아름다운 일상으로 거듭 치환置換시켜나가는 강인함이다. 이 땅 이 겨레의 아지랑이 꿈 꽃처럼 쉼 없이 피어나는 자기 구원自己救援과 해탈解脫의 변증법辨證法적 풍류風流와 운치韻致가 감도는 내 어머니 당신께 배우고 익히는 또 하나의 ‘흰 그늘의 미학’ 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부족함을 무릅쓰고 느린 걸음으로 어우러져 노모와 함께 책 읽는 소리, 밤늦도록 서로에 대한 무언의 격려와 뿌듯함을 간직하며 책장 넘기는 소리, 우리 집 담장을 넘어간다.

11월은 이제 너희가 그 문화에 참여할 때다. 다음을 준비하여 발표하라.
1. 내가 쓸 책의 제목
2. 나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 (1/2 페이지)
3, 이 책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다룰 것인가 ? (대상/주제/범위)
- 이 책의 예상 독자는 누구이며, 이 책을 통해 나는 그들에게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1/3 페이지)
- 이 책은 어디에 focus를 맞출 것인가 ? 가장 중요한 3가지 핵심 내용을 기술하라 (1/2 페이지)
- 이 책은 어떤 것을 다루지 않을 것인가 ? (1/3 페이지)
4. 동종 분야의 다른 책들과 내 책의 특별한 차별성은 무엇인가 ?
3 가지 차별성을 밝혀라 (1/2 페이지)
5.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나는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게 될 것인가 ? (1/2 페이지)
( 예) 사례수집- 사례 분류- 작동원리 연구- 가설 모델- 실험 - 모델의 수정...)
모차르트는 타고 난 음악의 천재였을까 ? 몇 년 전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마침 모차르트 탄생 250 주년이 되는 해였으므로 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와 빈은 공연장마다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죽은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부러웠다. 다섯 살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고, 여덟 살에 공식 석상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였으며, 평생 수백 곡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 많은 작품들이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 되었고, 더욱이 이 모든 업적은 35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가 천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천재성에 대하여 회의적인 쪽으로 확연히 기울고 있다. 재능은 탁월한 성과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성공과 관련해서도 그의 재능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고 연주자였다. 그리고 어린 모짜르트를 위하여 헌신적이었다. 어려서부터 작곡을 가르쳤고, 연주를 위한 체계적 훈련을 시켰다. 어린 시절의 작곡들은 아버지가 '바르게 고쳐' 준 습작품들이었고, 수많은 초기의 작품들은 작곡가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훈련된 모방과 편곡들이었다는 것이다. 걸작으로 평가 받는 첫 번 째 작품은 그가 스물 한 살 때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9번'이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이미 18년 가까이 혹독한 훈련을 받은 다음 나온 최초의 성과인 셈이다.
유사한 연구 결과들이 속출하고 있다. 타이거 우즈는 과연 골프의 신동으로 태어났을까 ? 타이거 우즈의 성공 뒤에도 그가 걸음마를 시작하기도 전에 어린 아들의 손에 골프채를 쥐어 준 골프광 아버지 얼 우즈가 있었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타이거 우즈가 한 대답 역시 재능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답이다. 그는 말한다. "나에게 골프는 가장 존경하는 분, 바로 아버지를 닮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세기의 명연설문인 링컨의 게티즈버그의 연설문은 전쟁터로 가는 기차 안에서 졸지에 만들어졌고, 아르키메데스는 부력을 발견하고, 과연 알몸으로 목욕탕에서 뛰쳐나오며 유레카를 외쳤을까 ? 모두 아니다. 게티즈버그의 연설문의 초고들이 백악관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튀어나온 이야기의 원전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창의성과 통찰력 그리고 천재성에 대한 그럴 듯한 이야기들은 천재성에 대한 과장된 일화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천재성과 통찰력 그리고 혁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천재들의 활동으로 알려진 위대한 성과의 비밀은 타고난 천재성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다음과같은 요소의 융합 산물들이다. 첫째는 정교하게 계획된 엄격한 훈련이다. 모차르트나 타이거 우즈 모두 어려서부터 그렇게 훈련 받은 특혜자들이다. 둘째는 특별한 분야에 대한 헌신이다. 그들은 몰입했고 오랫동안 한 분야에 헌신했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침묵의 10년' 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이 정도의 긴 기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땀의 시간을 보내야 그럴 듯한 창조적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것은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불리고 있다. 셋째는 한 분야에 쌓인 방대한 지식이 영감과 통찰력의 토양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종종 너무 많은 지식은 오히려 창의성을 방해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뉴튼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인력을 발견해 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평생을 그 일을 위해 애써온 과학자였다. 창의적인 면에서 21세기 과학사 최대의 기념비적인 사건인 DNA 구조의 발견을 이룩한 제임스 왓슨이나 프랜시스 크릭은 누구도 깨닫지 못한 결정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우연처럼 보이는 영감과 통찰은 대체로 모두 이런 전문적 지식과 몰입의 산물들인 것이다. 탁월한 창조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오랜 헌신과 그 분야의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재능을 위대한 성과에 이르는 지름길로 활용하려면, 먼저 정교한 훈련 계획을 수립하자. 그리고 '침묵의 10년'이라는 땀의 계곡을 행진하자. 그리고 누구보다 더 깊이 한 분야에 몰입하고 헌신하여 전문성을 쌓아두자. 그러면 그 분야에 대한 방대하고 심원한 지식의 바탕 위에 자연스럽게 창의성과 통찰력 넘치는 걸작들이 만들어 질 것이다. 이때 평범한 우리는 한 분야의 차별적인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우연이 그저 운명이 되지는 않는다. 오직 땀으로 준비한 사람에게만 재능은 공명하여 위대한 창조적 작품을 선사하는 것이다.
(부산일보/대구 매일신문, 2010년 10월 11일)

아침에 일찍 나갔다 밤 늦게야 돌아왔다. 어머니가 멍하니 계신다. 무슨 일인가 놀라 물었다. 외가에는 어머니 형제가 7남매 중 어머니를 포함해 3분이 남았었는데, 그 중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기별이 왔다. 몹시 상심이 크시다. 아끼던 동생이셨다. 지난 일요일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둘이서 청주의 외삼촌댁에 다녀오셨다. 추석 명절 때에 안부를 묻다가 병환으로 고생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시간을 내신 거였다. 다녀오자마자 어머니는 침통해 하셨다. 그 정도로 위중하신 줄 몰랐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하셨다. 상심이 크시어 다녀오신 후로 당장에 몸살이 나셨다. 오늘 아침에는 목이 잠겨 말씀도 못하셨다. 다녀오신지 하루 만에 외삼촌은 눈을 감으신 거다. 누이인 엄마를 기다리셨던가 보라고 더욱 애달파 하신다.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던 외삼촌이다. 내 꼴이 이래서 찾아뵙는 것도 미루며 살았는데, 기어이 그냥 가시게 하고야 말았다. 크게 많이 잘못됐다. 한 번 오라고. 보고싶다고 그리 말씀 하셨거늘...
올해는 부고가 많이 날아들었고, 다른 때와는 달리 유난히 마음이 쓰이곤 한다. 이제 막 50이 된 동창, 전공을 가르치셨던 학과장님, 그리고 외삼촌. 이 세 사람의 죽음이 내게 주는 의미가 각별하다. 특히나 외삼촌에게는 정말 죄스러움이 크다. 나를 너무나 예뻐해주셨고 나도 외삼촌이 참 좋아 잘 따랐다. 학식도 많고 마음씨도 좋으시고 잘생기셨으며 문장력도 글씨도 잘 쓰시는 국문과 출신의 인테리젠트한 공직생활자였다. 외삼촌이 대학에 다닐 때에는 시로서 사람을 울리고 얼르고 하셨다고 어머니는 늘 자부심을 가지고 말씀하셨다. 너무 멋져서 당시에 군수가 누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느냐고 하며 조카사위를 삼아버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인 이셨다. 특히 맹자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혼자 그 책을 읽으시곤 하시어 새 완역본이 나왔을 때 보내드린 적이 있었다.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시며 고마워하셨더랬다. 외삼촌 죄송합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면서 좋아하시던 시, 서체, 문학 등 많이 읽으시고 쓰시며 즐기셔요. 외삼촌, 부디 명복을 빕니다. 사랑해요... ()

근처를 지나다가
차 한잔 나누려고
차린지 얼마 안 된 신장개업집에 들어갔다. 어쩐지 안보다 밖이 좋은 것 같아 작고 아담한 테라스에 앉았다.
젊은 남자 주인 혼자서 8평 규모의 가게에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쏟으며 운영하고 있었다.
100% 소고기 수제버거라고 해서 어떻게 해줄까 기대하다가 실망, 가격에 비해 빵이 너무 작게 보였죠.ㅋㅋ
맛도 그저 그렇고,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사발 같은 잔에 하나가득 눌러줌. 리필 1,000냥 추가.
아기자기하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는게
배란다 같은 테라스까지. ㅎㅎ
화장실은 키를 가지고 옆의 중개업소 뒤로 돌아가야 함.
건물 자체는 주위가 재개발 지역붐을 타는 곳이라 허름하지만 아담하게 찻집을 차렸음.
어쩔 수 없었겠지만 주방의 위치가 안으로 들어가게 하여 정면과 마주 보게 했으면 넓고 시원한 감이 들었을 텐데 아쉬웠으며, 바리스타가 커피를 제조하는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한 것 같고, 쇼케이스까지 내보일 필요가 있었나 싶었음. (위 첫 번째 사진)
맛보다 편안하게 해주려는 카페지기의 정성스러운 배려가 좋았고, 무엇보다 젊은 남성이라는 점도 귀여워 나름 참신해 보였음.^^ 참, 무언가를 더 주고 싶어하며 처음이라 그런지 커피 리필까지 서비스로 주는 센스! 역시 이뻐!!ㅎ~ ^-^*
http://club.cyword.com/dearmypeople


아하, 아침에 일지를 빼먹었고나. 일찍 적어 놓고 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ㅋㅋ
늦게까지 잤는데, 전투를 벌인 것처럼 몸이 쑤셨다. 할 일이 있어 오후에 나갔다가 이제 돌아왔다. 매일 하기의 항상성이 끊기고 있다. 한 두시간 만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을 깃들이고, 더불어 일상의 맥락 잡기를 정신차리며 점검해 나가자. 벌써 스산해 진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고, 또 한 해가 금세 저물 것이다. 강력하게 일상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향상과 진화를 이룰 수 없다. 분명하고 이성적으로 분별력을 기르자. 끙!

새벽에 알람이 울렸는지 안 울렸는지 모르겠다. 잠결에 꺼버렸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찌된 노릇인가 하고 보니 울린 흔적이 없다. 그리고 나중에 두 번째 알람이 울렸다. 하여튼 늦은 취침 후 06시 반이 넘어 문자 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마도 비몽사몽간이었나보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하며 마저 더 잤다. 어제는 조금 자고 일찍 일어난 후 종일 눈꺼풀이 무거워 커피를 연거푸 마셔댔다. 저녁이 되고 난 후에야 겨우 잠이 조금 달아나는 것 같았다. 잠을 푹 자고 나지 않으면 새벽에 일어나 글쓰기나 책일기는 성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종일 피곤할 따름이다. 그럴 때는 앉아 책을 읽던 글을 쓰던 집중이 안 되니 차라리 푹 쉬어 주는 것이 좋다. 집이였더라면 한잠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혼
"아이구ㅡ 무(木) 아저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돈 많이 버시고요."
"안녕하신가? 빠산(八三)! 복 많이 받게나...... ."
"네에, 네.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꾸(愛姑)도 여기 있군...... ."
"아, 무 할아버지......!"
쭈앙무싼(莊木三)과 그의 딸인 아이꾸가 목련고 머리에서 연락선에 오르자 배 안에서 한꺼번에 와아 하고 인사말이 쏟아졌다. 그 중 몇 삶은 두 손을 모으록 예를 하기도 했다. 동시에 뱃전 자리 판잔에 네 사람 정도 않즐 수 있는 자리가 비워졋다. 쭈앙무싼은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자리에 앉아, 긴 담뱃대를 뱃전에 기대놓았다. 아이꾸는 그의 왼쪽에 갈고리같이 생긴 전족의 두 다리를 빠싼의 바로 옆에 여덟팔(八)다 모양으로 마주하고 앉았다.
"무 영감님은 성안으로 가십니까?"
게딱지 같은 얼굴을 한 사나이가 물었다.
"성 안으로 가는 게 아닐세."
무 영감은 약간 기운이 없는 것 같았지만, 본래 검붉은 얼굴에 주름이 많이 져 있기 때문에 별다른 큰 변화를 알 수가 없었다. p372
"팡 마을까지 가는 길이네."
온 배 안이 조용하여지고 사람들은 그들만을 보고 있었다.
"그럼, 역시 아이꾸의 일 때문입니까?"
잠시 후에 빠싼이 물었다.
"이 애 일 때문일세. 나도 정말 진절머리가 나. 벌써 꼭 삼 년이나 법석을 떨었단 말이야. 싸우고는 또 매번 화해하곤 했지만, 아무튼 끝장이 난지 않으니...... ."
"이번에도 웨이(慰 ) 어른 댁으로 가십니까?"
"그 어른 집으로 가네. 그 어른이 그들을 화해시키겠다고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네. 내가 모두 따르지 않았지만. 그런 그렇고, 이번 정월에는 친척들의 모임이 있어서 시내의 치 어른까지도 오신다더군...... ."
"치 어른이요?"
빠싼은 눈을 동그렇게 떴다.
"그 노인 어른까지 관여를 하시나요? 그건...... . 기실은, 작년에 우리들이 그들의 부엌을 모두 때려부숴 놓았으므로 아무튼 화풀이를 한 셈이지만. 게다가 아이꾸가 그 쪽으로 돌아가니, 사실은 뭐 좋을 것도 없겠고...... ."
그렇게 말하고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저도 결코 그 곳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건 아니에요. 빠싼 오빠."
아이꾸는 화가 나서 머리를 들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나서 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짐승 같은 아들놈은 젊은 과부와 눈이 맞아서 나를 싫다고 하니, 일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있겠어요? '짐승 같은 아비'는 자식놈의 편만 들면서 내가 필요없으니 나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대로요! 치 어른이 어떻다는 거예요? 설마하니 현 지사 어른들과 의형제라 하여 사람으로서 할 말을 안 해도 되나요? 그 분은 웨이 어른처럼 '그저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말만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저는 아무튼 제가 이 몇 년 동안에 겪은 고생을 이야기하고 어느 쪽이 잘못했는지를 치 어른에게 물어보려고 해요." p373
빠산은 설복되어서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철썩철썩 뱃머리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들려올 뿐, 배 안은 매우 조용했다.
쭈앙무싼은 손을 뻗쳐 담뱃대를 집더니 담배를 재었다. 맞은편 빠싼 곁에 앉아 있던 뚱뚱한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부시를 꺼내어 부싯깃에 불을 붙이고 대통에다 얹어주었다.
"미안해요."
하고 무싼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우리들이 뵙기는 처음입니다만, 무 아저씨의 성함은 벌써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하고 뚱뚱한 사나이는 정중히 말했다.
"그렇고 말구요, 이 바닷가 열여덟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스(施) 씨 댁 아들이 과부와 눈이 맞았다는 이야기는 우리들도 벌써 들어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무 아저씨가 여섯 아드님을 데리고 몰려가서 그 집 부엌을 부숴버린 것에 대해 옳다고 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 노인장께서는 어떠한 고관대작의 집이라도 거침없이 들어가실 수 있는 분이시니 그것들을 무얼 겁내시겠습니까!"
"당신은 정말 사리에 밝으시군요."
아이꾸가 기쁜 듯이 말했다.
"저는 비록 이 분이 누군신지 모르기는 합니다만." p374
왕더꾸에이(汪得貴)라고 합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재빨리 대답했다.
"저를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치 어른도 좋고, 빠 어른도 좋아요. 나는 어쨌든 그들 가정을 패가망신시키고 말테니까요. 웨이 어른이 저를 네 번씩이나 달래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까지 위자료를 보시더니 탐이 나서 머리가 이상해지고...... ."
" 저 년이!"
무싼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듣기로는, 작년 연말에 스 씨 댁에서 웨이 어른에게 주연(酒宴)을 한상 차려보내 주었다면서요? 빠 할아버지!"
게딱지 얼굴이 말했다.
"그건 상관 없는 일이에요."
하고 왕떠꾸에이가 말했다.
"주연으로 사람을 현혹시킬 수가 있겠소? 만약 주연으로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다면, 대단한 요리를 보낸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학문을 닦아 도리를 안다는 분들은 남들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한다구요.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았을 때 그들이 나타나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데, 술을 얻어먹었다느니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작년 연말에 우리 마을의 룽(榮) 어른이 베이징에서 돌아오셨는데, 그 분은 대처에서 지내던 분이시라 우리 시골꾸앙(光) 부인을 쳐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또...... ."
"우앙쟈후에이토우의 손님 내리시오."
하며 사공이 큰소리로 외쳤다. 배는 이미 멈추려 하고 있었다.
"내려요, 내려!"
뚱뚱한 사내는 곧 담뱃대를 쥐고 선창에서 뛰어나와 앞으로 나아가는 배를 따라 기슭에 올랐다. p375
"미안합니다."
하고 그는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배는 곧 새로운 정적 속에서 전진을 계속했다. 물소리가 또 철썩철썩 들려왔다. 빠싼은 끄덕끄덕 졸기 시작하더니, 맞은편의 갈고리같이 생긴 발을 마주하고 점점 입을 쩍 벌렸다. 선창 앞머리의 두 노파가 작은 소리로 염불을 외고 있었다. 그녀들은 염주알을 만지작거리며 아이꾸를 보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꾸는 눈을 크게 뜨고 배의 천장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장차 어떻게 하면 녀석들의 집을 패가망신시키며, 어떻게 하면 '짐승 같은 아비'나 '짐승 같은 아들놈' 을 궁지에 몰아넣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웨이 어른 따위는 그녀의 안중에도 없었다. 두 번 만나봤지만 둥근 대갈통에 난쟁이에 지나지 않앗다.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 마을에도 수없이 많다. 얼굴색이 그보다 좀더 검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만.
쭈앙무싼의 담재가 다 타서 대통 밑바닥에서 담뱃진이 찍찍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그는 계속 빨아대고 있었다. 그는 우앙쟈후에이토우를 지나면, 다음이 팡 마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괴성각이 이미 명확히 보였다. 그는 팡 마을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웨이 어른에게 갔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딸이 울면서 돌아왔던 일, 사돈집과 사위의 가증스러운 일들, 그 뒤에 얼마나 그들로부터 피해를 받았는지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지나간 일들이 하나하나 눈앞에 전개됐다. 그리고 그 사돈집을 한바탕 괴롭혀준 일을 생각하면 그는 언제나처럼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웬일인지 모르게 갑자기 뚱뚱한 치 어른이 그의 뇌리에 그려져 있는 정경등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p376
고요한 거운데 배는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다만 염불을 외는 소리만이 한층더 커졌을 뿐, 그 밖의 모든 것이 무싼과 아이꾸를 따라 깊이 상념에 잠겨 있는 듯했다.
"무 아저씨, 내리시지요. 팡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무싼이 사공의 말소리에 놀라 깨었을 때 괴성각은 이미 눈앞에 있었다.
그는 언덕 위로 뛰어 올랐다. 아이꾸도 뒤를 따랐다. 그들은 괴성각 밑을 지나 웨이 어른의 집쪽을 향해 걸었다. 남쪽으로 서른 집쯤 지나가서, 다시 모퉁이를 한 번 도니, 바로 웨이 어른의 집이었다. 네 척의 검은 뜸 배가 문 입구에 한 줄로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검은 칠을 한 대문을 들어가 문간방에 안내되었다. 대문 뒤에는 벌써 두 개의 탁자에 사공과 머슴들이 꽉 들어차 앉아 있었다. 아이꾸는 감히 그 쪽을 보지 못하고 흘깃 눈길을 던졌을 뿐이다. '짐승 같은 아비' '짐승 같은 자식'의 종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인이 떡국을 가져왔을 때 아이꾸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초조하고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녀 자신도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현 지사 어른과 의형제간이라고 해서 사람다운 말을 못할라구?'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학문을 하고 도리를 아는 사람은 공정한 판단을 내린다니 아는 치 어른에게 세세하게 말을 해야겠다. 열다섯 살에 시집와서, 며느리가 된 것부터 시작해서...... .'
그녀는 떡국을 다 먹고 나자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어비지와 함께 하인을 따라 대청을 지나고 또 한 번 모퉁이를 돌아, 드디어 응접실의 문지방을 넘어섰다.
응접실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자세히 둘러보지 못했다. 또 많은 손님들이 있는데, 번쩍번쩍 빛나는 빨갛고 파란 두꺼운 비단의 마고자만이 보였다. 이들 중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치 어른임에 틀림없으리라 생각되었다. 비록 둥근 머리통이긴 하지만 웨이 어른보다는 훨씬 당당한 풍채였다. 커다랗고 둥근 얼굴에 가느다란 두 눈과 시커먼 가는 수염, 또 머리 꼭대기는 벗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 머리와 얼굴은 혈색이 좋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아이꾸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곧 스스로 해명했다. 저것은 틀림없이 돼지기름을 바른 것이라고. p377
"이건 비색(庇塞)이라는 물건인데, 비로 옛날사람들이 염을 할 때 항문에 꽂았던 거야." 치 어른은 조약돌 비슷한 것을 손에 들고 말하면서 코 옆을 두어 번 문지르더니 이어서 말했다.
"아깝게도 출토(出土)된 지 오래지 닪은 것이군. 살 수야 있겠지. 늦어도 한(漢)나라 때야. 자아 이 반점이 수은침[썩지 않게 하기 위해 뿌렸던 수은의 반점-역주]이야...... .'
수은침의 주변에 곧 몇 개의 머리가 모엿다. 한 사람은 물론 웨이 어른이었다. 그 밖에 젊은 나으리들도 몇몇 있었다. 다만 위세에 눌려 말라빠진 빈대처럼 납작해 있었기 때문에, 그 때까지도 아이꾸의ㅣ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ㅇ이ㅑ기의 후반은 알 수 없었다. 재미도 없었거니와, 게다가 수운침이라는 거슬 감히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알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몰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랫더니 '짐승 같은 아비'와 '짐승 같은 자식'이 그녀위 뒤, 입구 가까운 벽에 바싹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비록 흘깃 보긴 했지만 반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때보다는 확실히 조금 늙어 보였다.
조금 있다가 사람들은 수은침의 주위에서 흩어졌다. 웨이 어른은 '비색' 을 받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쭈앙무싼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p378
"자네들 둘뿐인가?"
"네에."
"자네 자식들은 하나도 안 왔어?"
"모두들 시간이 없어서요."
"신년 정월부터 자네들을 오라고 하기는 좀 안됐다만 그 일 때문에 말이야...... . 내 생각에 자네들도 할 만큼은 다 했네. 벌써 두 해나 지나지 않았나? 내 생각인데, 원한은 풀어야지 맺는 것이 아니야. 아이꾸는 남편과 맞지 않고, 시부모의 마음에도 안 든다 하니...... , 역시 전에 말했듯이 헤어지는 것이 좋겠어. 나는 체통이 서지 않아서인지 말을 잘라 할 수가 없구나. 치 어른이 가장 공정한 판단을 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은 자네들도 알겠지. 지금 치 어른께서도 나와 의견이 같으시네. 그러나 치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어. 양쪽 모두 재난이라 여기고 스 씨 집에서 10원만 더 내어 90원으로 하라고 말이야."
"...... ."
"90원! 자네들이 설령 고소를 해서 상감마마 앞에서 재판을 한다 해도 이렇게 잘 처리되지 못할 거야. 이런 말은 우리들의 치 어른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야."
치 어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쭈앙부싼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엿다.
아이꾸는 일이 조금 위급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다. 그녀는 평소에 바닷가 주민들로부터는 어느 정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왔던 가기 아버지가 여기선 어쨋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것인지 매우 이상했다. 그녀는 그렇게끼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치 어른의 말을 듣고 나자, 비록 말뜻은 잘 몰랐지만, 웬지 모르게, 아무튼 이 사람은 전에 멋대로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결코 아니고, 사실은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치 어른은 학문을 하셔서 도리를 분별할 줄 아시는 분이시니 가장잘 아실 것입니다." p379
그녀는 용감해졌다.
"저희 촌사람들과 같지 않으십니다. 저는 원한이 있으면서도 호소할 데가 없어서, 치 어른을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시집을 온 이후로는 정말이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드나들었고, 한 번도 예의에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사람들은 한결같이 저를 적대시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흉악한 인간' 과도 같았습니다. 어느 해인다 족제비가 제일 큰 수탉을 물어죽였을 때만 해도, 어디 제가 문단속을 안 한 것입니까? 그것은 죽일 놈의 개가 재강이든 먹이를 훔쳐먹으러 왔다가 닭장문을 부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 짐승 같은 놈' 이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느닷없이 제 뺨따귀를 때렸습니다...... ."
치 오른은 흘깃 그녀를 보았다.
"저는 그것에 까닭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치 어른의 밝으신 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화양년에게 빠져서 저를 내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육례(六禮)를 갖추고 꽃가마 타고서 시집을 왔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저는 반드시 저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소송을 걸어서라도 해보겠습니다. 현청에서 안 되면 부청(府廳)도 있을 거구요...... ."
"그런 일에 관해서는 치 어른께서도 모두 알고 계시다."
하고 웨이 어른이 얼굴을 들고 말했다.
" 아이꾸, 네가 만약 생각을 달리 하지 않으면 이로울 게 없을 거야. 너는 언제나 이 모양이구나. 아버지를 보라구. 모든 것을 잘 알아 듣고 있지 않아. 너와 네 형제는 모두 네 아버지를 닮진 않았구나. 소송을 걸어 부청으로 가보라구. 설사 관부에선들 치 어른과 상의하지 않을 것 같은가? 그 때 가서는 개인의 사정이나 정실에 따르지 않는 '공개적인 일'로 처리하게 되지. 그렇게 되면...... 넌 틀림없이...... ."
"그렇게 되면 전 목숨을 걸고 해보겠습니다. 모두가 패가망신하겠지요." p380
"그건 목숨을 걸 일이 아니야."
하고 치 어른이 비로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아직 나이가 젊구나. 사람은 부드러워야 해. '화기로우면 재물이 든다' 라고, 그렇지? 나는 단번에 껑충 10원을 올려 주었다. 그건 정말 일찍이 없었던 일이야. 안 그래도 시어머니가 나가라면 나갈 수 밖에! 부청은 고사하고 상하이, 베이징, 나아가서 외국이라 해도 모두 그런 거야. 믿지 못한다면 저기 방금 베이징에서 서양학교를 다니다 돌아온 사람이 있으니 직접 물어보라구."
"그렇지?"
"틀림없습니다."
하고 턱이 뽀족한 청년은 서둘러 몸을 꼿꼿하게 하고, 공손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이꾸는 자기가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걸 느꼈다. 아버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형제들은 감히 오지도 못했다. 웨이 어른은 본래 그들을 도와주고 있고, 치어른도 믿을 수 없게 되었으며 턱이 뾰족한 청년까지 말라빠진 빈대처럼 납작해져 맞장구를 치고 있은.. 그러나 그녀는 멍청해진 머리 속에서 다시 최후까지 분투해 보리라 결심하는 듯싶었다.
"어찌하여 치 어른까지도...... ."
그녀의 두 눈에서는 놀라움과 실망의 빛이 나타났다.
"네...... 알고 있어요. 우리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의 아버지가 세상의 의리나 인정조차 모르고 멍청해져 있는 것을 원망합니다. 그러니 저 '짐승 같은 늙은이' 와 '짐승 같은 놈' 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밖에요. 그들은 마치 초상을 알리러 가듯이 서둘러 남 모르게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인간들이에요." p381
"치 어른께서 좀 보십시오."
그녀 뒤에 묵묵히 서 있던 '짐승 같은 놈' 이 갑자기 말을 열었다.
"어른 앞에서까지 이 모양입니다. 집에서는 온통 개돼지까지도 불안해 합니다. 아버지를 '짐승 같은 놈' 이라느니 '화냥년의 새끼' 라고 불렀답니다."
"화냥년이 너를 화냥년의 새끼라고 불렀지 않아?"
아이꾸는 얼굴을 돌리고 큰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치 어른을 향해,
"저는 또 여러분들이 있는 앞에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어디 점잖은 데가 있습니까? 입을 얼었다 하면 '못된 종자' 라느니 '에미가 어떻게 했다' 느니, 그 화냥년과 사귄 두리로는 저희 조상까지 들먹거리면서 악담을 했습니다. 치 어른께서는 저의 이 같은 일을 판단해 주십시오. 이...... ."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급히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치 어른이 갑자기 눈을 위로 치켜뜨고 둥근 얼굴을 위호 젖히면서, 동시에 가늘고 긴 수염으로 둘러싸인 입에서 높 고 큰, 꼬리를 길게 끄는 목소리가 튀어나왔기 땜눈이었다.
"이리 오너...... 랏!"
하고 치 어른이 말했다.
그녀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같이 느껴졌다. 이어서 두근두근 하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대세가 물러가고 판국이 모두 뒤바뀌는 것 같았다. 발을 혓디뎌 물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p382
즉시, 곤색 두루마기에 검은색 조끼를 걸친 남자가 들어와서 치 어른 앞에 나무 몽둥이처럼 손을 늘어뜨리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마주섰다.
응접실 전체가 '쥐즉은 듯이' 조용했다. 치 어른이 입을 움직였으나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도 정확히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이미 알아들었고, 게다가 그 명령의 위혁이 마치 그의 뼈속까지 꿰뚫고 들어간 듯이 몸을 두어 번 곷두 세우며 마치 '머리카락이 오싹' 하고 일어나는 것같이 곧 대답했다.
"네."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야 몸을 돌려 나갔다.
아이꾸는 뜻하지 않았던 사건이 곧 닥칠 것으로 알았다. 그 일은 번혀 예상할 수도 없고, 방비할 수도 없는 것이리라. 그녀는 이 때 비로서 치 어른의 실제 위엄을 알았다. 전에는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방자하고 어리석은 짓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몹시 후회하면서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는 원래부터 오직 치 어른의 분부에 따르려고 했는데...... ."
응접실 전체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녀의 말이 비록 실처럼 가냘픈 것이긴 했지만 웨이 어른에게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치 어른은 정말 공평하셔. 아이꾸도 정말 잘 알고 있구나!"
하고 그는 칭찬하면서 쭈앙무싼을 향해 말했다.
"쭈앙 영감, 이렇게 되면 자네는 물론 할말이 없겠지. 이 애 자신이 이미 대답했으니 말일세. 홍록첩(洪綠帖)-옛날 쓰던 결혼증서- 은 틀림없이 가져왔겠지. 내가 통지해 놓았으니까 말야. 그러면 양쪽에서 모두 가지고 오게...... ."
아이꾸는 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서류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p383
나무 몽둥이 같은 그 남자도 들어와서 조그마한 거북 모양의 새까맣고 납작한 것을 치 어른에게 건네주었다. 일에 변고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이꾸가 급히 쭈앙무싼을 보니 그는 이미 찻그릇을 올려놓은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남색 무명 보자기를 펴고서 은화를 집어내고 있었다.
치 어른은 거북의 머리 부분을 빼고 그 몸체 안에서 무엇인가를 약간 손바닥에 쏟았다. 나무 몽둥이 같은 남자가 그 납작한 것을 받아가지고 나갔다. 치 어른은 곧 한쪽 손의 손가락으로 손바닥의 것을 찍어서 그것을 자기 콧구멍 속에 두어 번 밀어넣었다. 콧구멍과 인중이 곧 노랗게 되었다. 그는 콧등에 주름을 잡고 재채기를 하려는 듯했다.
쭈앙무싼은 은화를 세고 있었다. 웨이 어른은 아직 세지 않은 돈꾸러미에서 얼마 가량을 집어서 '짐승 같은 늙은이' 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두 장의 홍록첩을 바꾸어서 양쪽에게 밀어주면서 말했다.
"자아, 받아두게. 쭈앙 영감 잘 세어보라구. 이건 무슨 장난이 아니야, 돈에 대한 것이라구...... ."
"엣취!"
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꾸는 치 어른이 재채기를 한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치 어른은 입을 벌리고 여전히 콧등에 주름을 잡은 채로 있었고, 환쪽 손의 두 손가락으로 먼저의 그 '옛사람이 염할 때 항문에 꽂았던 것'을 집어 콧대 옆을 문지르고 있었다.
쭈앙무싼은 겨우 은화를 다 세었다. 양쪽이 각각 홍록첩을 거두었다. 모든 사람의 허리뼈가 모두 훨씬 더 펴진 것 같았고, 지금까지 긴장했던 얼굴모습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응접실 전체에 어느것 온화한 공기가 감돌았다. p384
"됐어.! 일이 원만히 끝났군."
웨이 어른은 양쪽이 모두 돌아가려고 하는 기새을 보이자 한숨을 푹 쉬고 나서 말했다.
"그러면, 응, 더이상 무슨 다른 건 없겠지? 축하한다. 축하해! 아무튼 해결된 셈이군. 자네들, 가려고 그러나?
가지 말고 우리집에서 새해 술이나 한 잔씩 들고 가게나,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거야."
"저희들은 안 마시겠어요. 남겨두시면 내년에 다시 와서 마시지요."
하고 아이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웨이 어른, 저희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또 볼 일이 있어서요."
쭈앙부싼과 '짐승 같은 아비' '짐승 같은 자식' 이 모두 한 마디씩 하고는 공손히 물러났다.
"음 어때? 한 잔 하지 않겠나?"
웨이 어른은 맨 나중에 나가는 아이꾸를 주시하면서 말했다.
"아니오, 그만두겠어요, 웨이 어른, 고맙습니다."
1925년 11월 6일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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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화), 049.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아이폰으로 내용에 이모티콘을 넣어 시간을 찍었다.
요즘 내 폰이 나를 잘 깨우지 못한다. 03:35분에 한 번 03:40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울리게 되어 있는데, 두 번째는 또 울리지 않았다. 한 번 더 울릴 것을 기다리며 계속 자고 있다가 눈을 뜨니 04:00이었다. 시간을 넘겨버렸다는 생각에 금세 일어나기가 싫어졌다. 컴퓨터를 부팅하는게 빠를까, 그냥 아이폰으로 이 자리에서 찍을까를 그 사이에 고민하며 아이폰으로 찍었다. 물론 컴퓨터 부팅시간보다 더 걸렸다.
아이폰의 화면이 잘 안 바뀌어 여러 번 눌렀더니 위의 리모티콘 들이 찍혔나 보다. 내가 누르긴 했겠지만 기억에 없다. 얼결에 손에 스쳐 찍혀진 것도 있다는 예기다. 그러고 보니 마치 무엇을 자축한 느낌이 들어 그냥 놔두려 한다. ㅎㅎㅎ
더듬어보니 혼자 일어나기 49제 탈상날 이로구나. 요즘 날씨가 추워지면서 게을러지고 있다. 마음보다는 오히려 몸이 그러하다. 어제, 그제 2틀 동안 책 좀 읽으려고 동네 구립 독서실에 틀어박혔는데, 어제는 돌아와 세수를 하려고 쪼그리고 앉으니 종아리가 부어서 앉을 수가 없을 정도로 거북하고 통증이 왔다. 요즘 생체 변화는 내가 장시간 앉아 있을 경우 특히 다리가 퉁퉁 부어 올라 아주 흉칙하게 된다는 거다.
이번 그리스 터키 여행에서도 좁은 공간에 갇혀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날, 특히 돌아올 때는 볼상사납도록 심하게 부었었다. 술을 마신 날에는 더한 것 같았다. 아마도 신장의 기능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검진을 받아봐야겠다...... .
이 가을을 재미 없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즐겁지만 누릴 것이 많은데, 침울하게 또 노력하지 않고 보내는 감이 든다. 모두가 내 탓이다. 내 주변일도 나로 인해 발생하고 연관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