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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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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7일 02시 41분 등록

멋드러진 거목을 조그만 화분에 구현해낸 분재는 매우 아름답다.
분재 매니아들은 분재의 아름다움 속에 우주의 신비가 숨어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가격도 비싼 것은 수억 원에 이른다. 분재는 이렇게 아름다움의 가치를 누리지만, 실상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다.
주인의 손길이 없이는 아름다운 자태를 지닐 수도 없고, 삶 자체가 위태롭다.
분재의 아름다움은 곧 주인의 표현력일 뿐, 스스로 뿜어내지 못한 그 아름다움은 분재에게 있어서 한낱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만고를 견디어서 영겁의 세월이 엿보이는 기묘한 자태로 못다 한 전생의 인연을 지키려는 듯 내 곁에 머물렀구나.

수백년 풍상의 세월을 간직한 분재. 마치 신의 숨결로 빚어낸 듯한 분재는 생명의 신비와 인간의 정성을 통해 살아 숨쉬는 작품이다.

세심한 관찰과 보살핌, 학문적인 지식과 미적 감각이 결합돼 태어나는, 한 그루의 살아 있는 예술품인 것이다.

그 조그만 나무가 자연 속 거목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니, 분재 매니아가 생겨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분재에는 남성적인 웅장함과 장엄함이 담겨 있기도 하며, 우아한 여성미를 자랑하기도 한다. 봄이 무르익어 날씨가 따뜻해지면 짙은 녹색 옷으로 갈아입는 사랑스러운 분재들은 분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분재의 가격은 종류와 예술성에 따라서 천양지차를 보인다.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몇 억 원대까지 나가는 분재가 있다.

화려한 꽃을 감상하는 매화·명자, 꽃보다는 열매를 감상하기 위한 애기사과·모과, 잎을 감상하기 위한 단풍·소사 등, 분재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분재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먹고산다. 주인의 사랑 없이 분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만큼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분재는 일조량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어야 하고, 정기적인 소독 및 병해충 방재를 해주어야 한다.

거름은 봄, 가을 두 번에 나누어 줘야 하고, 3년에 한 번 정도는 꼭 분갈이를 해야 한다.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큰 쟁반 같은 곳에 물을 담아놓고 그 안에 담가놓고 가야 한다. 말라비틀어진 분재를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우리는 분재라고 하면 흔히 식물을 떠올리는데, 미국에서는 ‘고양이 분재’라는 엽기적인 분재가 있다.
유리 용기에 고양이를 넣고 기르는 것인데, 고양이가 용기 안에 꽉 들어차 있어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집어넣느냐. 고양이가 작을 때 유리 용기에 넣고 기르면 된다. 숨쉴 구멍과 먹이 구멍, 배설물 구멍 등을 뚫어 3∼4개월 가량 기르면 그 속에서 고양이 몸이 자라면서 분재가 완성되는 것이다.

MIT 학생들의 변태적인 장난에서 비롯된 고양이 분재가 인터넷(www.bonsaikitten.com)을 통해 소개되자, FBI는 동물 학대와 불건전 정보 유통의 명목으로 내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분재>라는 단편소설도 있다. 소설은 한 젊은 남자와 돈 많은 과부가 결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남자와 결혼한 여자의 취미가 바로 ‘분재 가꾸기’였다.

여자가 돈이 많아 남자는 일부러 일할 필요가 없었지만, 나름대로 자기 일을 갖고 싶었다.
아내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장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가게를 차려 주었고, 사업하고 싶다고 하면 사업자금을 대주었다.

그런데 남자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가 하고 싶다는 일은 뭐든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랑했으므로.

또 다시 사업에 실패한 남자가 하루는 집에서 쉬고 있었다. 창가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아내가 분재를 손질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분재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정말 각별했다. 이곳 저곳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가꾸는 일을 무슨 신앙처럼 여기는 듯했다.

남자는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날 따라 분재를 손질하는 아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순간 남자는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분재 가위로 아내를 찔러 죽였던 것이다.
남자는 도망가지 않았고, 경찰서에 자수했다. 경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왜 아내를 죽였습니까? 아내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었 잖습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허탈한 듯 허공을 응시하던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아내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내에게 길들여졌고, 무엇을 해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실패해도 뒤에는 늘 아내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내가 나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나는 바로 아내의 분재였던 것입니다.”

그 남자는 자신을 분재처럼 키워 무능력하게 만들어버린 아내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건만 아내의 행동은 사내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당신은 혹시 ‘∼만 있으면 뭔가 해볼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물론 시작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로 매듭을 짓지 못한다면 모든 시작은 무의미하게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몇 번 실패를 경험하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기어이 운명을 탓하고야 말 것이다.

물론 실패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패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맞는 실패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일을 해볼 수 있다는 사람이 맞는 실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기어이 대지의 거목(巨木)으로 일어서겠지만, 후자는 실내의 분재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분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분재는 아름답지만 결코 그 이상의 무엇이 될 수는 없다. 비바람을 막아낼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줄 수도 없고, 찬란한 열매로 새로운 생명을 일구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주인이 버리는 순간, 자신은 어디까지나 남의 손에 의지하는 미력한 존재일 뿐임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인가? 그렇다면 조그만 화분에서 내려와서 광활한 대지에 뿌리를 박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곳에 바로 삶의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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