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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30일 21시 27분 등록
오병곤님을 통해서 이곳을 접하고 열심히 눈팅중이었는데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쓸려 예전에 썼던 글을 하나 올려봅니다..
여러분들의 글과 어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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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석달전에 회사근처에서 카퍼필드 내한공연 포스터를
보자마자 난 바로 인터파크에 접속해서 가차없이 로열석 티켓
두장을 끊었었다. 그건 몇년전부터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었으며 내 두눈으로 직접 그의 창의적인
마술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석달의 기다림끝에 드디어 지난주 금요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으로 발걸음을 향했고 주최측의 요청대로 20분전에 입장하여 조용
히 환상적인 쇼의 시작을 기둘리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시작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마니 비어있는
것을 보고 좀 의아스럽게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분명 처음 내한했
을때의 인기도는 마니 떨어진듯 했다.



드디어 조명 네개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쇼의 시작을 알렸고
예의 익숙한 음악이 깔리며 카퍼필드 등장 마술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터라 다른 관객들의 탄성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박수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찌 이 정도 기본적인 마술
에서 박수를 칠 수 있단 말인가. 옆에 있던 탐미도 내 생각에 동
의하는지 두손을 얌전히 두고만 있었다.ㅋㅋ)



그런데 뒤에서 거의 쇳소리에 가까운 젊은 여자의 찢어지는듯한
괴성이 나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미친줄 알았다. 아마도 데이빗
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여성인가보다 했는데 몇번 더 괴성을 지르
자 관객들 모두 짜증이 동반된 째림을 날려 이상한 여자의 굉음을
잠재워 버리는데 성공한다.



몇개의 마술 에피소드가 흘러가는 동안에도 당췌 박수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훌쩍 나이가 들어 약간은 구부정한 몸매
의 카퍼필드의 모습 어디에서도 나를 압도했던 카리스마 철철 넘쳐
흐르는 신비스런 마술사의 매력은 찾아볼 수 없었고 별로 새로울게
없이 이미 티비를 통해 여러번 봤던 마술 에피소드에 약간에 변화를
준 소재는 더더욱 나를 실망시켰다. 애초부터 이번 공연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던 탐미의 반응에서도 그건 분명해 보였다.ㅜㅜ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내 개인적인 느낌이나 불만을 떠나서 그의
마술에는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와 낭만적인 음악이 있고 사람들
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유머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고 이번 공연
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한 '할아버지의 꿈' 에피소드에서는 공연장
에 있던 모든 관객들을 감탄시켰다. 나 역시 이 대목에서는 과장없
는 박수를 맘껏 쳐댈 수 있었을 정도였다.



많은 마술사들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구조의 마술을 많이
선보이고 있지만 카퍼필드의 그것은 확실히 스케일이나 난이도에
서 확실한 차별성이 있다.



일단 임의의 숫자 여섯개와 세가지 관객과 관련된 옷차림, 마지막
섹스후 경과된 시간, 생일 등을 적게한후(물론 짜고치는 고스톱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주 랜덤한 방법으로 도우미를 뽑는 과정을
거쳤다) 미리 이중자물쇠로 잠긴채 공연시작전부터 관객들의 눈앞
에 매달려 있던 상자속에 그와 같은 숫자와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인
데 이게 될법한 이야기인가 말이다.



이런 기본적인 골격에다가 카퍼필드는 자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덧씌운다. 링컨 콘티넨탈을 갖고 싶어하셨던 할아버지가 그 번호로
로또를 계속 했고 아예 자동차 번호판으로 만들어 그에게 남겼다고
말이다. 결국 그의 할아버지는 꿈을 이루지 못한채 그 번호판만을
데이빗에게 남겼고 그가 할아버지의 못다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 관객들앞에서 확인해 보자는 스토리였던 것이다.



과연 임의적으로 선택된 관객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과 선택이 그의 할아버지의 로또 복권과 일치할 수 있을 것인가
예상들은 하셨겠지만 놀랍게도 어설픈 한국말로 또박또박 답변내용
이 적혀있는 종이위에 고스란히 관객들이 선택한 여섯개의 숫자가
확인됐을때만 해도 무언가 관객들이 선택을 한 이후에 야료가 있었
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는순간 그의 할아버지가 남겼다는 정말 오래
되어 보이는 자동차 번호판에 그 숫자가 선명히 박혀 있으니 할말이
없을 수 밖에.. 모두들 나와 같은 심정으로 신기해 하는게 역력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도우미가 되었던 관객들의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의 꿈을 완성시켜 버린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서 관객
들이 두눈 시퍼렇게 보고있는 상황에서 그의 할아버지가 평생동안
꿈꿨던 너무나 멋진 그린색의 링컨 콘티넨탈이 중앙의 두 기둥을
받침삼아 늠름히 나타나 버리는게 아닌가. 할아버지의 꿈이 간직된
번호판을 차 앞뒤에 기분좋게 달고 그가 운전석에 앉자 커튼이 소리
없이 닫혔다. (모두들 그순간 한번쯤 어린시절로 돌아가 인자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나도 그랬으니까.)



역시 마무리는 지난번 내한때와 같은 오토바이와 함께 사라졌다
관객석에서 나타나는 마술로 꾸며졌는데 무대 커튼뒤로 사라지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이 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눈썰
미 있고 의심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맨몸도 아니고 그 휘황찬란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
이에 탄채 관객석 중간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를 일이다. 그저 그의 마술의 감탄하는 수 밖에..ㅋㅋ



(공연중간에 그가 조금 더 젊은 시절 미국에서 펼쳤던 위험천만
탈출마술을 비디오로 보여주었는데 웬지 성의없다는 생각이 들기
도 했지만 아마도 다른 마술보다 훨씬 더 긴장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고난도의 마술임은 틀림없다. 물론 그걸 인정해줄리 없는 관
객들의 반응이야 썰렁할 수 밖에..)



이런저런 궁시렁대기도 하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지만 분명
아직까지 그를 능가할만한 마술사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술
적인 부분에서라면 몰라도 이야기와 낭만이 있는 마술의 세계에
서 그는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다. 세월은 금세기
최고의 마술사 역시 비껴갈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어 씁쓸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간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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