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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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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17시 02분 등록
<일의 발견>이란 책에서 여가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문득 학교 때 영어회화수업 시간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What did you do last weekend?” 혹은 “What do you do in your free time?” 이란 질문에 차례로 대답하는 시간이었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은 대개 몇 가지로 간단했다. “쉬었어요”, “친구만나서 영화 봤어요.”, “음악 들어요.”, “책 봐요.” 등이다. 나 역시 대답하기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조금은 따분하고 곤혹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다 지금 내가 이 질문을 받으면 무엇이라 답할까 생각했다. 역시 그 때 했던 대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일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나는 내가 그간 여가를 상당히 과소평가하였음을 알았다. 일단, 여가는 자유 시간과 다르다. 자유 시간은 강제성을 주는 어떤 일 외의 시간이다. 여가(餘暇)의 사전적 의미 ‘남는 시간’이란 뜻이다. 언뜻 여가는 자유 시간과 뜻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나 사회적 의미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가’라는 말에서 무엇인가 자유롭게 선택된 즐거운 활동들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래서 그런 활동을 ‘여가 활동’이라고 한다. 여가는 자유 시간 이상이다. 그리고 여가는 생계의 부담감이 없고, 강제성과 필요성이 줄어들고 자발성과 즐거움이 부각된다. 나는 여가에서의 자유와 즐거움이라는 요소를 소홀히 여기고 있었다.

나의 일은 납기가 빡빡한 수많은 작은 업무로 채워져 있고, 일이 몰릴 때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쫓긴다. 퇴근 할 때가 되면 더 이상 무엇도 못할 듯한 공황상태에 빠지는 느낌이 들 때도 종종 있다. 기질적으로 이런 상황을 잘 못 견디는 나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게다가 수 년 간 하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회의를 많이 느끼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오는 괴리감에도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여가라는 것은 릴랙스의 의미 이상이 없었다. <일의 발견>에서 시울라는 ‘직장인이 주말에 TV만 보는 까닭’은 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오락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에 시달리고 만족이 없다보니 ‘TV 응시’ 처럼 수동적인 활동으로 여가가 채워지는 것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고, 의욕을 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에서 빠져나와 있다는 그 자체가 위안이었다. 하지만 업무일 시작 전인 일요일 저녁에 밀려드는 허무감과 우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무엇에서 여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시울라는 <일의 발견>에서 여러 사람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가에는, 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예컨대 뭔가를 배우거나 더 잘하거나 하는 욕구의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직장에서 나타내지 못하는 창조성이나 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떤 다른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상호작용을 보충할 수 있다 하였다.

나는 여가에서 릴랙스나 리프레쉬의 기능도 중요하게 여긴다. 일 속에 있던 심신을 잠시라도 다른 곳에 두는 것이다. 눈 감고 공상에 잠기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그냥 함께 있는 것,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여가를 보내는 한 방법이다.

또 일에서 얻을 수 없는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성취를 이루는 기능도 가치 있게 여긴다. 그래서 나를 일이 아닌 것으로 발휘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물론 이는 모두 자발적으로 즐겁게 하는 것들이다.

일과 여가, 무엇이 중요한가? 나에게는 둘 다 중요하다. 없을 수 없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질문은 무의할 수 있다. 일이 중요할 때도 있고 여가가 중요할 때도 있다. 일과 여가는 같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일과 여가는 상호작용을 한다.

시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일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여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이 지루하거나 따분하거나 스트레스를 줄 때, 사람들은 때때로 여가조차 만족스럽게 즐길 수 없다고 한다. 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여가를 추구하고, 지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수동적인 여가에 만족하곤 한다고 한다.” 무척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나의 일을 만족스럽고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직장을 옮길 수도, 직업을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은 나에게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나는 가슴 울리는 음악을 크게 틀고 눈을 감고 빠져들어 있을 것이다. 장대한 산과 맑은 하늘이 펼쳐진 한 편의 그림과 사진을 바라보며 나를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교외의 공기 맑은 곳을 거닐며 그곳의 따뜻한 바람을 맞을 것이다. 때로는 바닷가에서 바다와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볼 것이다.

나는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을 접할 것이다. 그 세계로 들어가 볼 것이다. 저자의 사상에 젖어보고 그 안의 인물들과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기록하고 정리할 것이다.

나는 모임에서든 개인적인 자리에서든 다양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들의 일상을 느껴볼 것이다. 그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공유할 것이다. 가르침이 있다면 새길 것이다. 장점을 본받으려 할 것이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이다. 마음과 머리를 열고 그들을 대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 위할 것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교감할 것이다. 더 울고 웃을 것이다. 곁에 있는 그들의 소중함을 더 느낄 것이다.

적고 보니 의미있으면서 적극적이고 치열하기까지 한 여가생활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러면서도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려 할 것이다. 자유와 즐거움을 잊지 않을 것이다.


여가는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소중한 시간이다. 무엇과 바꾸거나 미룰 수 없는 시간이다.
IP *.204.8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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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瀞
2007.03.25 20:31:32 *.142.243.87
이제 이 글이 마지막이었다. 보고 또 보다가, 여기에 올리고 도망치듯 이 페이지를 빠져나왔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았다.

시원하면서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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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지원자
2007.03.26 02:51:48 *.72.153.12
왜 마지막이라 그러셔~?
레이스 안하면 책 안읽을거 아니면서....

책 읽으면서 여기에 또 글 올려줄거라 믿어요(강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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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26 07:21:36 *.167.160.37
好瀞이가 顯山보다 훌륭하다.
글을 읽노라면 질기고, 끈끈한 노력과 아픔을 이긴 모습이보인다.
잘 지냈지? 일과 글, 보통여인이 아니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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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瀞
2007.03.26 09:26:03 *.244.218.10
감사합니다. 초아선생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한 달이었습니다.

곧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앞에 '연구원 지원자'님..

레이스가 마지막이었다는 얘기죠~~
저 계속 책 읽고 글 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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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6 23:15:59 *.140.145.63
일도 아닌 것이 여가도 아닌 것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로서는
의미심장한 글이었습니다. 여가같은 일을, 아니 여가에서 즐기던 것을
일로 만들려는 과정에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

민선님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으나 잘 실감하거나 인정해 주지
못하는 재능과 강점에 대한 자부심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그걸 북돋워줄 필요가 있겠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때 더 행복하고 즐거워
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생하셨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분들이
주변에 많아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민선님은.. 계속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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