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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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라고 살았는데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허허로울 때면, 새벽 3시 목욕탕에 가시게. 딱히 꼬집어 불만이 없는데도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확신이 안 설 때면, 그역시 새벽 목욕탕이 제격일세.
얼마전 혼자 찜질방에서 밤을 지낼 기회가 있었지. 여성전용이라 불편하지 않았는데도 왠지 잠자고 싶지 않았어. 그냥 목욕탕에서 밤을 새기로 했지.
간헐적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이 딱 끊기고 순간 목욕탕에 정적이 돌았어. 갑작스러운 정적에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지. 둥글거나 네모난 탕과, 녹색이거나 갈색의 물에 내리쪼이는 반조명이 무슨 세트장같았어. 샤워기나 의자같은 소품나부랭이들조차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마치 먼 뒷날 내가 도달해야 할 재판정에 미리 와 있는 기분이었어.
뜻하지않게 나의 실존에 부닥뜨린거지. 시계를 보니 정각 세시더군. 거울을 보았어. 허걱! 거기에 나는 어디로 가고 친정어머니가 계시더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아직 젊고 대책없이 낭만적인 모습인데, 거울이 진실을 알려주는거야. 완연히 쇠퇴하기 시작한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절망스러웠지. 이제 소멸은 실제상황이야. 세상에 태어날 때의 모습그대로 너는 무엇이냐, 과연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이냐. 너무도 초라한 대답에 울다가 웃다가 꼭 미친 것같았지. 한참을 그러고 있다보니 정화의 순간이 오대.
왜 목을 놓아 울고나면 카타르시스가 되잖아. 그런거였겠지.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거울을 보았어. 젊은 날의 나는 통 거울을 보지 않았지. 너는 그렇게 걷는게 멋인줄 아니. 천생 여자인 언니가 혀를 찰 정도로 나는 머스매같은 아이였지. 당연히 거울을 볼 일도 없었어.
요즘 나는 거울을 자주 봐. 그것은 내가 나를 보는 일이고,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일이기도 하지. 사람이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는 뜻이기도 해.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사라지니 차분한 설계가 가능하대. 지금의 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는지금의 모습이 아니고는 어떤 모습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람이었어. 그러니 더욱 나답게 걸어갈수밖에, 도대체 그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어?
마치 커다란 의식이라도 치룬 사람처럼, 새로운 전의가 다져졌어. 샤워기를 틀어 멀리서 얼굴에 대고 뿌려댔지. 시원하게 포말이 부서졌어. 아주 시원해서 싱긋 웃음이 나왔어. 웃고나니 마음이 아주 좋더군.
비가 한 소끔 지나간듯 새벽 플라타너스 거리는 젖어있었어. 그 역시 시원하고 상쾌했어. 혼자놀기의 목록에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었지. 새벽3시의 목욕탕을 발견하는 일.
IP *.108.80.74
얼마전 혼자 찜질방에서 밤을 지낼 기회가 있었지. 여성전용이라 불편하지 않았는데도 왠지 잠자고 싶지 않았어. 그냥 목욕탕에서 밤을 새기로 했지.
간헐적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이 딱 끊기고 순간 목욕탕에 정적이 돌았어. 갑작스러운 정적에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지. 둥글거나 네모난 탕과, 녹색이거나 갈색의 물에 내리쪼이는 반조명이 무슨 세트장같았어. 샤워기나 의자같은 소품나부랭이들조차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마치 먼 뒷날 내가 도달해야 할 재판정에 미리 와 있는 기분이었어.
뜻하지않게 나의 실존에 부닥뜨린거지. 시계를 보니 정각 세시더군. 거울을 보았어. 허걱! 거기에 나는 어디로 가고 친정어머니가 계시더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아직 젊고 대책없이 낭만적인 모습인데, 거울이 진실을 알려주는거야. 완연히 쇠퇴하기 시작한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절망스러웠지. 이제 소멸은 실제상황이야. 세상에 태어날 때의 모습그대로 너는 무엇이냐, 과연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이냐. 너무도 초라한 대답에 울다가 웃다가 꼭 미친 것같았지. 한참을 그러고 있다보니 정화의 순간이 오대.
왜 목을 놓아 울고나면 카타르시스가 되잖아. 그런거였겠지.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거울을 보았어. 젊은 날의 나는 통 거울을 보지 않았지. 너는 그렇게 걷는게 멋인줄 아니. 천생 여자인 언니가 혀를 찰 정도로 나는 머스매같은 아이였지. 당연히 거울을 볼 일도 없었어.
요즘 나는 거울을 자주 봐. 그것은 내가 나를 보는 일이고,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일이기도 하지. 사람이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는 뜻이기도 해.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사라지니 차분한 설계가 가능하대. 지금의 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는지금의 모습이 아니고는 어떤 모습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람이었어. 그러니 더욱 나답게 걸어갈수밖에, 도대체 그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어?
마치 커다란 의식이라도 치룬 사람처럼, 새로운 전의가 다져졌어. 샤워기를 틀어 멀리서 얼굴에 대고 뿌려댔지. 시원하게 포말이 부서졌어. 아주 시원해서 싱긋 웃음이 나왔어. 웃고나니 마음이 아주 좋더군.
비가 한 소끔 지나간듯 새벽 플라타너스 거리는 젖어있었어. 그 역시 시원하고 상쾌했어. 혼자놀기의 목록에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었지. 새벽3시의 목욕탕을 발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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