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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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즐거움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이미 종이 위에 씌어진 숲을 가로질러
이미 종이 위에 씌어진 노루는 어디로 달려 가고 있는가?
자신의 입술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투사지 위에 씌어진 옹달샘,
그곳에서 이미 씌어진 물을 마시러 ?
왜 노루는 갑자기 머리를 처들었을까 ? 무슨 소리라도 들렸나 ?
현실에서 빌려온 네다리를 딛고서
내 손끝 아래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고요” 이 단어가 종이 위에서 바스락대면서
“숲‘이라는 낱말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하얀 종이 위에 도약을 위해 웅크리고 있는 글자들,
혹시라도 잘못 연결될 수도 있고,
나중에는 구제불능이 될 수도 있는,
겹겹으로 둘러싸인 문장들.
잉크 한 방울, 한 방울 속에는
꽤 많은 여분의 사냥꾼들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숨어 있다.
그들은 언제라도 가파른 만년필을 따라 종이 위로 뛰어 내려가
사슴을 포위하고, 방아쇠를 당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사냥꾼들은 이것이 진짜 인생이 아니라는 걸 잊은 듯하다.
여기에서는 흑백이 분명한, 전혀 다른 법체제가 지배하고 있다.
눈 깜작할 순간이 내가 원하는 만큼 길어 질 수도 있고,
총알이 유영하는 찰나적 순간이
미소한 영겁으로 쪼개질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명령만 내리면 이곳에서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내 허락 없이는 나뭇잎 하나도 함부로 떨어지지 않을 테고,
말발굽 아래 풀잎이 짓이겨지는 일도 없으리라.
그렇다, 이곳은 바로 그런 세상
내 자유 의지가 운명을 지배하는 곳.
신호의 연결 고리를 동여매서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내고
내 명령에 따라 존재가 무한히 지속되기도 하는 곳.
쓰는 즐거움
지속의 가능성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 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
********************************************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을 때,
나에게도 '내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기'를 바랬다.
그후 마흔이 넘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지도 모르면서 그저 마음의 희미한 등불을 따라 나섰다.
결국 이제는 글쟁이가 되었고,
나의 인생은 좋아졌다.
왜 좋아 졌을까 ?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
그게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능력이 많이 모자라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은 나에게 주어진 것 조차 모두 쓰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어제 누군가 하루종일 울었다 한다.
간혹 하루 종일 울 때도 있다.
이유야 사라지면 그만 인 것이고,
울 일이 생기면 울면 그뿐이다.
글을 쓸 수 있으면 글로 맞서고,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노래로 맞서고
사랑할 수 있으면 사랑으로 맞서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 눈물로 맞서면 된다.
돈이 없으면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눈깔이 빠지게 책을 읽으면 그것도 즐거운 하루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좋다. 두려워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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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여년 전, 마흔 고개를 넘나들 무렵 끌려다니다 말 제 삶에 억울한 게 어지간히 많았던지 소설을 썼습니다.
중앙 일간지 신춘 문예에 기고하여 두 번을 낙방하고 글쓰기에 주눅이 들어 낙담해 있던 때, 이창동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허섭쓰레기 같은 글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또 하나의 넝마 같은 내 글을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자조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 한 줄의 문장은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저를 아프게 찌르는 무기였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아니라도 글 잘 쓰는 사람이 하많은데 나까지 나서는 일은 주착이다.'며 쓰고 싶은 욕망의 씨를 아주 깨끗이 말려버렸습니다.
나는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을 잘 읽어드리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단정짓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글을 쓰지 않는 스스로의 부채감에서 헤어날 수 있어 아주 홀가분했습니다.
그렇듯 타인의 글을 읽는 일에 자족하며 또 2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습니다.
안방과 주방만을 오가며 인습의 굴레에만 갇혀 살던 제가 다시 용틀임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만 살다 갈 수는 없다'는 비명에 가까운 내면의 소리가 저의 일상을 온통 지배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차, 저는 우연히 변경연을 알게 되었고 수 없이 들락거렸고 선생님과 꿈벗, 연구원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손이 떨려 댓글 달기도 몹시 망설여졌었는데 이제는 많이 뻔뻔해져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제법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자유 의지가 운명을 지배하는 곳,'
'내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기'를 저도 간절하게 염원했던 모양입니다.
죽어 말라 비틀어진 줄만 알았던 씨앗 하나가 여직 발아를 꿈꾸고 있었나 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좋다. 두려워 마라.'
이 끔찍한 나이에 다시 세상 속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진술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구선생님!
감사합니다.
중앙 일간지 신춘 문예에 기고하여 두 번을 낙방하고 글쓰기에 주눅이 들어 낙담해 있던 때, 이창동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허섭쓰레기 같은 글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또 하나의 넝마 같은 내 글을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자조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 한 줄의 문장은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저를 아프게 찌르는 무기였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아니라도 글 잘 쓰는 사람이 하많은데 나까지 나서는 일은 주착이다.'며 쓰고 싶은 욕망의 씨를 아주 깨끗이 말려버렸습니다.
나는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을 잘 읽어드리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단정짓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글을 쓰지 않는 스스로의 부채감에서 헤어날 수 있어 아주 홀가분했습니다.
그렇듯 타인의 글을 읽는 일에 자족하며 또 2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습니다.
안방과 주방만을 오가며 인습의 굴레에만 갇혀 살던 제가 다시 용틀임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만 살다 갈 수는 없다'는 비명에 가까운 내면의 소리가 저의 일상을 온통 지배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차, 저는 우연히 변경연을 알게 되었고 수 없이 들락거렸고 선생님과 꿈벗, 연구원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손이 떨려 댓글 달기도 몹시 망설여졌었는데 이제는 많이 뻔뻔해져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제법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자유 의지가 운명을 지배하는 곳,'
'내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기'를 저도 간절하게 염원했던 모양입니다.
죽어 말라 비틀어진 줄만 알았던 씨앗 하나가 여직 발아를 꿈꾸고 있었나 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가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좋다. 두려워 마라.'
이 끔찍한 나이에 다시 세상 속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진술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구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루종일 운 사람
이렇게 멋진 방법으로 위로를 주시는 선생님.
감사로, 다시 눈물 샘이 터집니다.
어제 하루종일 운 사람입니다.
아침에 이 글을 보지 못하고 이제야,
하루가 지나고 새벽이 다가오는 이 시간에야 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눈물로 맞서면 된다.'
이 세상을 맞설 수 있는 방법이 눈물 밖에 없다는 것이 절망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힘을 갖지 못하고 언제나 흔들리는 자신이 가여워서 자주 울었습니다.
이제 저는 자주 울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갑자기 사는 것이 너무 막막해졌습니다.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리에 쏟아져내리는 맑고 평온한 초여름 햇살과,
조금씩 더 밝아지는 실록의 나무들과,
모든 것이 차분히 제 길을 가고 있는 평온한 일상이
갑자기 내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다가왔습니다.
힘든 것은 나 뿐인 것 같고, 흔들리는 것도 나뿐인 것 같은,
미묘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그 답답한 기분,
느닷없이 밀려든 그 기분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습니다.
내게 삶은 때로 치욕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새로운 태양이 떴고,
변함없이 성실하신 신의 자비에 몸을 떱니다.
감사로, 다시 눈물 샘이 터집니다.
어제 하루종일 운 사람입니다.
아침에 이 글을 보지 못하고 이제야,
하루가 지나고 새벽이 다가오는 이 시간에야 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눈물로 맞서면 된다.'
이 세상을 맞설 수 있는 방법이 눈물 밖에 없다는 것이 절망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힘을 갖지 못하고 언제나 흔들리는 자신이 가여워서 자주 울었습니다.
이제 저는 자주 울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갑자기 사는 것이 너무 막막해졌습니다.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리에 쏟아져내리는 맑고 평온한 초여름 햇살과,
조금씩 더 밝아지는 실록의 나무들과,
모든 것이 차분히 제 길을 가고 있는 평온한 일상이
갑자기 내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다가왔습니다.
힘든 것은 나 뿐인 것 같고, 흔들리는 것도 나뿐인 것 같은,
미묘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그 답답한 기분,
느닷없이 밀려든 그 기분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습니다.
내게 삶은 때로 치욕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새로운 태양이 떴고,
변함없이 성실하신 신의 자비에 몸을 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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