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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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가 돈다. 집 앞 마당에서 아이들이 팽이를 돌리며 놀고 있다. 나는 툇마루에 손님으로 앉아 있는데, 이 주책맞은 호기심이 온 몸의 신경을, 주인과의 대화도 잊어버리게 하고 자꾸 저 쪽의 팽이로 잡아끈다.
그 누구의 집을 가봐도 나보다는 여유 있어보이고 그리 바쁘지도 않으니, 이 정신없는 도시에서 늘 쫓겨 다니듯 살고 있는 내 눈에는 모든 게 별세계같기만 한데, 아까부터 앞 마당에서는 마치 ‘달나라의 장난’처럼 팽이가 돌고 있다. 아이가 팽이에 끈을 묶어 바닥으로 내어던지면 온 몸이 회색빛으로 변하여 그 자리에 서서 도는 것이다.
팽이가 돈다. 아이들이 돌리고 있는, 신기하게 돌고 있는 저 팽이에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시큰거린다. 그래. 그저 혼자서 묵묵히 “생각하면 서로운 것인데 /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 공통된 그 무엇으로 위하여 울면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아무것도 아닌 저것이 나를 울린다.
황망히 인사를 마치고 그 집을 빠져나온 후에도 내 마음 한 귀퉁이 어딘가, 팽이가 돈다. 까맣게 돌아가는 팽이가 내게 묻는다. ‘너는 스스로 돌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돌고 있는가? 세상을 돕고 싶다는 거창한 거짓부렁 말고, 대체 무엇을 위해 돌고 있는가?’
* 김수영의 시 '달나라의 장난'을 기초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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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심바시역에서 유리카모메라는 무인 전철을 타면 레인보우 브릿지를 지나서 오다이바가 나옵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도쿄만에 위치한 매립지를 주거, 관광 및 쇼핑을 중심으로 재개발한 인공 도시입니다.
예전에 도쿄로 처음 여행을 왔을 때 보았던 오다이바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물론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무인 열차도, 레인보우 브릿지도, 오다이바의 빌딩들과 저 멀리 보이는 도쿄의 스카이라인도 미래 도시에 온 듯 멋지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최근 다시 찾아간 오다이바는 왠지 지쳐보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쇼핑을 하는 관광지이긴 하지만, 마치 촬영을 끝낸 영화 세트장처럼 퇴색한 듯 느낌이 드는 것은 저 만의 생각일까요? 아니면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근근히 떠받치고 있는 인공 도시의 본래 모습일까요?
어제 갑자기 연락이 온 지인과 맥주를 한잔 들이키며 도쿄와 오다이바를 잇는 레인보우 브릿지를 바라보다, 제가 애써 가닿으려는 곳이 저 오다이바처럼 인공 섬과 같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물어봅니다. 자신있게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살짝 오른 취기 탓만은 아닌 듯 해서 오늘은 저도 김수영 시인처럼 서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