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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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에 관한 보고서
권혁용
아버지는 오후가 되면 직장 동료들과 함께
우리 집으로 외근을 나오곤 했다
초여름 녹음이 당구장에서 얻어온 푸른 용처럼
부드럽고 아늑한 거기서
아버지와 직원들은 진지하게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지닌 카탈로그는
아동문학전집, 건강자석 요, 장식용 청자, 알로에
개인용 휴대 헤어컬 등 다양했으나
아버지의 영업방식은 한결 같았다
오늘의 운세를 타고난 사람에게
차비와 식비를 몰아주는 것
늘 담배를 입에 물고 패를 뒤집느라
새우 눈을 한 직원, 오른손 검지와 엄지가 없어
왼손으로 패를 섞곤 했던 직원
허리가 아프다며 베개와 이불더미에 기대어
패를 치던 직원 그리고
아버지 가운데 하나가 그날의 일당을 타갔다
청단처럼 푸르른 나날
홍단처럼 발그레한 나날
어느 날, 새우 눈을 가진 직원이 판을 엎었다
손가락 없는 지원의 서툰 손재주가 문제였다
허리 아픈 직원은
다친 허리 때문에 엎드려 있었고
말리던 아버지만 소주병에 맞았다
아버지 혼자 피박과 광박을 다 덮어썻다
병을 깬 직원은 청단처럼 서슬이 파랬고
병에 맞은 아버지 홍단처럼 얼굴이 붉었다
마당의 닭들이 고도리처럼 날아올랐다
청단처럼 푸르른 나날
홍단처럼 발그레한 나날
그 후로 아버진 스쿠알렌만 팔았다
심해 상어의 간에서 만들었다는 신비의 약
상어처럼 늘 움직여야 하는 아버지
재수가 없던 아버지
십 여 년 후 심해로 잠수해서는
다시는 ㅗㄹ라오지 않던
지금도 재수를 뗴는 어머니를 보면
그 시절이 여전하다는 걸
알 것 같다, 이를테면
청단처럼 푸르른 나날
홍단처럼 발그레한 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