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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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5일 토요일 오후 4시 44분 김선형 사망
나이 44살.
죽음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살아있을때는 죽고 싶어안달했고, 죽어서는 살고 싶다고 몸부림쳐보지만 1g의 몸부림도 허용되지 않았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하지 못해서 걱정이고, 그래서 ‘다른 것’을 선택하면 포기한 또 ‘그 하나’ 때문에 걱정이었다. 선택하고, 걱정하고, 후회하고 이런것의 반복이었지만 죽음만큼은 내가 선택하고, 걱정하고, 후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을 알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자기가 죽는지도 모른채 죽어가야하는 지도 모른다.
‘죽음’만큼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해주는 말도 없지만 ‘죽음’만큼 인간을 가장 솔직하고 뜨겁게 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죽음앞에서는 커다란 고민도 작은 티끌처럼 보이고, 자신의 큰 목표를 향해서 달렸던 동작들을 한순간에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리고 많은 후회를 남기게 된다.
왜 그렇게 작은일에 분개하고, 의미없는 것을 향해서 달려야 했는지... 사회에서 그런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와중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나이지만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었는데 ‘성공’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달려왔던 시간들이었다.
‘나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2주동안 그동안의 나의 삶들을 돌이켜보았다.
딸셋에 아들하나의 집에 셋째로 태어나 인생의 반은 대부분 여자들과 인생의 반은 남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딸보다는 아들이 최고라는 시대에 태어났고, 회사에 와서는 여자들이 거의 없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게 나의 문제일까? 여자여서 그런것일까?’를 늘 고민하게 만들었던 시간들이었다. 특히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살게 되면서 이러한 고민은 더 깊었다. 물론 좋은 일도 많이 있었다. 일을 잘하여 우수사원상도 받고,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의 한달 연수도 갔다오고 승진도 빨리 하였고, 신규사업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2010년. 하던사업이 정리가 되고, 다른 부서로 배치받으면서 같이 일하던 팀원들과도 헤어지고 근무지도 서울에서 수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해 세명의 죽음. 아이들을 봐주셨던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작은아버지의 죽음과 법정 스님의 죽음.
인생에서 가장 큰 혼란의 시기였고, 갑작스럽게 찾아드는 죽음이 무서웠고, 삶이 공허하기만 했다. 새로운 부서에서 자리를 잡아 승진도 하긴했지만 이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것도 많았던 나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알수가 없었다.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다. 그냥 조용히 책을 보고, 책쓰면서 아이들과 집에서 뒹글 뒹글하고 싶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보기로 하고 육아휴직을 내기로 했다.
가족들에게 얘기를 하고, 회사에 부서장과 인사팀과 몇차례 면담을 거친 후 육아휴직을 냈다. 육아휴직을 내고나서 변경연에서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고 지원하게 되었다. 타이밍이 이렇게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치 연구원을 위해서 육아휴직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1월부터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나의 장례식을 보내게 되었다.
(참고로 육아휴직이라고 해서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부가설명을 드리면,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 초등6학년 남자아이들로, 회사에서 여사원을 위한 제도로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여사원들에게 허용되는 제도가 2년전부터 생겨서 그때부터 계속 고민하다 막내가 6학년이 되었기에 이제 더 이상 육아휴직을 낼 수도 없는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해서 고민 끝에 휴직을 내게 되었습니다. 단 무급입니다.)
2주라는 시간동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3/24일이 나의 생일이어서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였다. 부모님도 함께 하면서 식사를 했다. 가기전에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남편이 사주었기에 남편에게 더 고맙게 생각했다. 또한 이날은 내가 108배를 시작한 날이다. 법륜 스님이 108배를 100일간 하게 되면 내 꼬라지를 알게 된다고 해서 시작한 날이고, 나의 죽음을 생각해보면서 강남 성모병원의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구본형 선생님의 장례식을 치루기도 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집근처 국립중앙 도서관을 갔다가 내려오는길에 생각이 나서 들르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들한테 물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엄마한테 섭섭한것이나 아쉬웠던 적 없었어? ”하고 물었더니, “없었어. 다른 친구 엄마들에 비해서 엄마가 이해해주고 잘해주고 있어.” 하면서 “엄마의 모든 죄를 사하노라” 해서 아이들한테도 죄를 사면 받았다. 그 말을 들으니 얼마나 힘이 되었던지.
4월1일에 이번주에 엄마 장례식이 있어서 엄마가 유언장을 준비중이라고 아이들한테 애기했더니, 만우절날 하는 거짓말로만 받아들여서 "그럼 나도 내일 죽겠네"하면서 아이들이 맞장구 쳤다. 아이들한테도 엄마의 죽음이라는 말은 싫었던 것이다.
4월3일 집에 있던 햄스터가 죽었다. 그저게 밤에 유난히 집틀을 갉는다고 생각해서 눈길이 가서 물통에 물도 갈아주면서 아들한테 물통 제대로 끼워주라고 했었는데 죽어 있었다. 그게 아마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한 몸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넘게 햄스터를 키우면서 20마리 넘었다가 나눠주고 죽고 해서 결국에 마지막 한마리 남았는데 죽었다. 인간으로 치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죽은것이다. 그런데 마치 나의 장례식을 대신해서 죽은것 같은 기분이었다. 큰아이가 키웠던 햄스터기에 다음날 함께 묻어주었다. 어디에 묻을까를 아들과 협의하다가 목련나무를 찾다가 못찾아서 큰 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오래된 아파트이다 보니 나무의 높이가 10층이 넘어가는 큰 나무였다. 햄스터를 묻고 명복을 빌어주며 돌아 왔다.
엄마의 죽음을 햄스터의 죽음에 비유하면서 얘기를 해보려고 했다가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다. 엄마도 나중에 이런 큰 나무 밑이면 좋을 것 같다고..
장례식 전날인 4월 4일이 되어서 마침내 유언장을 쓰게 되었다. 국립중앙 도서관의 노트북석에 앉아서 노트북을 펴고 쓰기 시작했는데, 몇줄 쓰다보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아서 1인석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휴지도 없어서,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가지고와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서, 남편, 아이들, 부모님, 시아버지와 데카상스 멤버들을 떠올리면서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다. 언니들과 동생까지 다 떠올리면서 쓰려고 하니 진이 빠져서 다 쓸수가 없었다.
한번 눈물이 나오니 멈추질 않았다. 한명 한명씩을 떠올리면서 그간의 시간들을 정리하려니 내가 그들에게 한 것은 별로 기억이 안나고 그들에게서 받은 것과 내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들이 동시에 들었다. 바쁘다고 하면서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한순간에 올라오는것이었다. 이렇게 가슴속 깊이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왜 그렇게 가까이 할 수 없었을까? 지금이라도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국립중앙 도서관을 나와서 다시 한번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잠시 들렀다. 내가 죽었을 때 과연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싶은지 다시한번 물어보았다.
죽음앞에서 후회없이 지금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이대로 행복한지?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것인지?
이곳을 떠나기전에 가족과 아는 지인들게 인사하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하는 날이다.
1박 2일의 여정인데, 이제는 좀더 자신에게 솔직해지자고 했다.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하던것에서 이제는 마음가는대로 해보고, 나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마음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압구정 현대백화점 주차장으로 향했다.
1~9기까지의 선배님들과 한차에 타고 가니 이제 정말로 변경연 10기 연구원이 된 것이 실감났다. 차 속에서 자신의 소개와 변경연을 통해서 달라진 자신의 삶의 모습들을 하나씩 소개를 했다. 예전에는 앞에서면 얘기도 못하고 어떻게 얘기할까 고민많이 했는데, 그런 생각없이 편안하게 얘기하게 되었다고 하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듣고 나도 그냥 해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앞에서 얘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얘기할까 생각들을 많이 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편안하게 하기로 했다. 말의 앞뒤는 좀 맞지 않았지만, 편안하게 얘기하려고 하니 더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왔다.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직은 처음이라 낯설고 어색한 면이 없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리라 생각한다.
어제 Kpop star 3 시즌의 마지막 날에 양현석이 그동안 참가자들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40대 중반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젊었을 때 무엇을 했는가 보다는 누구를 만났는가가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20대의 젊음은 아니지만 좋은 분들을 한번에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성수련원 가는 중에 부일식당에서 맛있는 산채비빔밥과 두부, 옛날 맛나는 된장을 먹고 청태산 자연 휴양림에서 산책을 했다. 그런데 4월에 강원도에 갑자기 눈이 내려서 산은 흰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신기하게도 우리가 가는곳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과 봄을 함께할 수 있었다. 마치 겨울은 죽음을 뜻하고, 봄은 탄생을 의미하듯이 봄과 겨울을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책을 하면서 올라가는 중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서 구본형 선생님이 연구원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았다. 내려올때는 눈도 그치고, 여성수련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나의 장례식장.
선배님들과 동기가 준비한 푸짐한 음식에 너무 감사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
국화꽃과 양초로 장식되어진 엄숙한 분위기에서 유언장을 동기들이 읽어가기 시작했다. 유언장을 읽으면서 다들 눈물을 흘렸다. 어제 유언장을 쓸 때 울었고, 차타고 오면서 유언장을 수정하면서 울었기에 내가 발표할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했고, 울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의 차례가 되어서 나에 대한 것을 읽을때는 덤덤히 읽어나갔다가 남편에 대한 것을 몇줄 읽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음을 간신히 진정하고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아이들에 대해서 읽어나가니 갑자기 엉엉 울게 되었다.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감정이었다. 감정의 주체도 안되고... 계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감정의 주체가 안되어서
그냥 눈물 범벅으로 읽어나갔다. 빨리 읽고 마무리 하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끝나고 자리에 와서 앉았는데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의 감정에 나 스스로 놀랐다.
왜 그런것일까? 그들에 대한 미안함인가?사랑인가? 이해안되는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다들 눈물범벅으로 유언장 읽기를 마치고, 회집으로 저녁을 먹으러갔다. 어제까지 다들 유언장을 쓰느냐 심신이 피곤하고, 다시 부활한 기쁨에 술과 노래가 이어졌다. 그냥 즐기기로 했다. 다시 태어나서는 이제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의무에 얽매이기 보다는 나에게 좀더 가까워져서 나의 천복을 찾아서 삶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회집에서 늦게까지 있다가 2차 뒷풀이가 있었다. 다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소감을 얘기하고 마무리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방에서 새로운 탄생을 한 것이다. 요즈음 나를 알아보기 위해 아침에 108배를 하고 있었는데, 어제 술도 마시고 해서 피곤하고 이런데 와서 하기어려울 것 같아 집에 돌아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전날밤에 책과 염주를 챙겨가지고 왔다.
그런데, 아침에 화장실을 갔다 나왔는데 같은 반 배정 받으신 8기 권윤정 선배님이 먼저 자신이 108배를 해야되서 양해부탁한다는것이 아닌가. 아니 이런 인연이. 알고봤더니 1993년 천일결사 1차때부터 시작 했다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같이 기도를 시작했다. 동해 바다가보이는 창에서 기도문을 같이 읽고 저는 108배를 선배님은 300배를 하시고 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마무리를 했다. 기념으로 서로의 염주를 교환하였다. 선배님은 초심으로 돌아가고 나는 계속정진하는것을 기원하며...
그리고선 샤워를 했다. 욕조가 바다를 향해 있어서 욕조에 가득 물을 채우고, 욕조 속에 가만히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니 내가 바다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엄마의 자궁속의 양수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선 다시 엄마 배속에서 나왔다. 세상을 다시 맞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신기했다. 그동안 내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가야할 길이 하나둘씩 펼쳐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무언가 선택하는 것이 두려웠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한것인지 많이 고민했고,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이 안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펼쳐진 길을 따라 그냥 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열린 마음으로 변경연도 불교공부도 함께 해나가다보면 나 스스로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벨이 얘기했던 영웅의 모험, 삶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같은 방에 잤던 엘리스한테 미안했는데 나중에 얘기해보니 오히려 뒤에서 두분의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해를 해주어서 너무 고맙게 생각했다.
아침을 먹고, 바다를 구경하면서 나와 나의 가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이 사랑하자고 생각을 했다.
서울에 다시 도착했다. 가족을 다시만나서 다시 일상을 맞이했다. 중간에 남편이 전화가 왔다. 장례식 여행 오기전에 주말에 큰아이 여름 교복 사야 한다고 알려주고 왔는데, 자기는 지금 회사에 와 있어서 못샀으니 같이 가서 사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화가 나서 뭐라고 얘기하려는 마음이 들었다가 바쁜 남편도 더 이해하자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은 그동안 피자,중국집, 라면 등 가능한 인스턴트 음식 총동원해서 이틀을 보냈다. 피곤해서 짜장면으로 때우려고 했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아이들을 위해서 밥과 고기를 준비해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했다. 엄마의 장례식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아이들이기에 살아 있음에 대해서 더 기뻐할 수 있었다.
장례식을 갔다온 후 며칠이 지났는데 유언장을 읽으면서 내가 왜 그렇게 엉엉 울었는지 그것에 대한 의문이 계속 풀리지 않아서 생각을 계속해보았다. 무엇 때문에 내가 그렇게 울었을까? 계속 내 마음속으로 질문을 해보면서 생각들을 정리해보다가 알게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해서 ‘부부, 가족’이라는 역할에 너무 얽매이다 보니 그저 ‘부인,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기에 바빴다. 일에 있어서는 성공하고 싶어서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었다. 슈퍼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각보다 너무 컸던 것이다.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계발도 열심히 해야 했고, 집에와서는 아이들도 열심히 봐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남편과는 같이 할 시간이 더더욱 없고...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빨리 해치워버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13년을 보내다 보니 마음속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나 아이들이 소중하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굳이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함께 웃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데, 꼭 뭔가 해야했고, 집에 가만히 있기보다는 바쁘게 무언가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래야 성공하고 그래야 나중에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미래를 담보로 현실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시간 바쁘게 보내다보니 마음속에 응어리진 여러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이러한 마음을 하나둘씩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생각을 했다.
역시 죽어봐야 사는맛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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