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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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나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고 했던가. …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는 버겁고 나의 존재 의미는 오리무중인 것을. 겨우내 나는 불안과 조바심에 못 견디는 나를 애써 방치해 두었다. 도망치고 싶고 쉬고 싶은 욕구를 인정하며 기다렸다. _ 어이없게도 국수 서문가운데서’
同氣間
2014. 12. 16
찡~~하다. 나이 먹더니 뻑 하면 감동하고 그런다. 종종한테 말했다. “약 88%, 내가 책 낸거 같다.” 책은 그녀가 냈는데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고 고마운거냐! 국수가 책이 되었다. 어이없다. 생각도 못했다. 그녀가 컬럼에 몇 꼭지를 올릴때도 무덤덤했다. 카페에 초고를 올릴때도 별 느낌 없더라. 가벼운 단상들과 투덜거림과 국수가락 잡고 재잘거리는 수다정도라고 느겼다. 시작은 그랬을거다. 다들 그렇게 시작하니까…시작은 그렇게 다들 미약하니까. 그녀가 국수가락을 잡고 글타래를 엮어 낼 궁리를 한 것은 이년 전 이었다고 했다. 그 때 그녀는 잘 나가던 커리어 우먼에서 부엌떼기 아줌마로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마흔에 닥친 반전앞에 그녀는 적잖이 당황하고 혼란스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와 비슷한 시기다. 자영업(?)에 투신한거 말이다.
지난 한달 여 - ‘책을 써야지’, ‘무슨 책을 쓸거야’ - 온통 책 생각만하면서 보냈다.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질지경이다. 짤아봐야 기름밖에 안나오는 사유의 빈약함은 두자리를 겨우 면한 지능의 한계다. ‘이런 책을 쓰고 싶다’고 키워드를 뽑아보니 노트 페이지가 부족했지만 늘어놓고 보니 풀어낼 것이 없더라. 머리털말 쥐어 뜯었다. 십년도 넘게 생각해 오던 그리고 원고를 만들어 왔던 ‘일상 한 조각’ 이야기를 정리해서 과제를 만들었다. 변화와 혁신을 키워드로 모델을 만들겠다는 열망에는 아직 닿지못했다.
“종종! 놓는거…힘들지 않았어요?” 놓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을거다. 그녀 말대로 이 혹독한 반성의 시간에 그녀를 토닥이는 하나의 존재가 ‘어이없게도 국수’ 였다는 것이 그리고 이 것이 그녀의 첫 책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그녀 스스로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감당하지도 못하는 크고 무거운 ‘덩어리’는 놓거나 쪼개거나 해야지. 내가 주무를 수 있는 만큼으로 작아져야한다. 그렇게 하라고 삶은 도처에서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함께 국수 먹고 싶은 同氣間(同期가 아니라)이 있으니 우리는 정말 괜찮다.
12월(7차) 오프 과제 _ 내 책 쓰기
2014. 12. 09
1. 나는 어떤 책을 쓰려 하는가?
가제목, 후보 제목도 열거할 것. 셀프 브레인스토밍해서 도출할 것.
: 일상 한 조각_가장 빛나는 삶의 기록
핵심 메시지 (3줄 이내)
아마추어 사진가인 아빠는 언제나 구닥다리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까지 아빠의 카메라는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여기에 큰 아이가 다원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3년의 기록이 아빠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담겼다. 때때로 아빠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고 또 때대로 아빠는 아이들과의 일들을 일기처럼 기록했다. 이 모든 것은 아빠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아빠에게는 일상의 조각들이 가장 빛나는 삶이었다.
핵심 키워드 (2-3개)
: 가족, 일상의 소중함, 변하지 않는 것, 기록의 힘, 복고주의
이 책의 소개서 (이 책을 신문에 소개한다고 생각하고 1/2 페이지 이상 기술할 것)
아빠가 찍은 가족사진에는 아빠가 없다.
아빠는 사진 밖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언제나 눈을 맞추고 있으니까 …
봐바~ 지금도 마주보고 웃고 있잖아!
아빠는 간절했다. 시간이 훌러덩 지나간다는 것을 아빠는 본능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사진가인 아빠는 구닥다리 카메라를 들었다. 따뜻한 가족의 일상을 필름에 담았다. 늘 바쁜 아빠는 아이들과 자주 놀러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진들이 집과 그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큰 아이 다원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3년의 시간 동안 다윤이가 태어나서 언니만큼 자랐고, 아이들이 어린시절 함께 뒹굴던 강아지 두리는 별이 되었다. 대책없이 긍정적인 엄마는 여전히 씩씩하고, 걱정많은 아빠는 아이들 쉬야하는 것, 응가하는 것, 목욕하는 것, 뽀뽀하는 것을 더 이상 찍을 수 없다는 것이 사무친다. 여기 여자 셋과 사는 한 남자의 기록이 속살 그대로 고스란히 담겼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 기록들이 낯설지 않다. 독자들의 일상에서도 비슷하게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거나 지나게 될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고 여기서 훌륭한 통찰을 얻는다. 여기 모인 기록들은 특별한 날의 특별한 기록이 아니다. 우리 살아가는 소소한 날들의 단상들이다. 평범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일상 한 조각은 오히려 특별하다. 사진가 아빠는 이 기록들은 십년 주기로 갱신하겠다는 꿈을 꾼다.
이 책은 전몽각 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의 오마주다. 아빠사진가의 전통은 선생을 이어 저자에게로 이어졌다. 매일의 힘으로 찍은 뿌연 흑백 사진은 자극적인 피사체, 빼어난 구도, 손이 베일 것 같은 선명한 사진의 감동을 넘어선다. 따뜻한 아빠의 시선은 사진적 완성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2. 나는 왜 이 책을 쓰려하는가? (1/2 페이지 이상)
적어도 3가지 이유를 들어라. 더 많아도 좋다. 책을 쓰는 이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책으로 나올 확률이 높다.
#1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오랜동안 꾸준히 해온 기록이다. 무엇보다 이 순간만큼 언제나 즐거운 것은 없었다. 첫 책은 잘 할 수 있는, 꾸준히 해 온, 늘 즐거운 이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첫 책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선배들의 충고를 기억했다. 시작은 빈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2
언젠가는 책을 내겠다고 시작한 기록이다. 큰 아이가 시집가는 날 결혼식을 갤러리에서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은 또 출간기념일이기도 하다. 이 것은 오래된 꿈이다. 십년마다 갱신하겠다는 생각은 구본형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즈음에 한 대목으로 끊어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십년쯤 후에는 큰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거나 사회 초년병쯤 될 것이고 또 다시 십년쯤 후가 되면 큰 아이는 또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십년쯤 후가 되면 나는 삶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시간들이 가족이라는 주제로 기록되고 엮어진다면 굉장할 것이다.
#3
‘사진이 좋다.’는 말 만큼 기본 좋은 칭찬은 없는 것 같다. 사진으로 칭찬받을 때 ‘더 좋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경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경력을 만드는 강력하고 정통한 방법이다. 순수사진으로 선수(프로)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 그들은 삶을 바쳐 올인한다. 나는 아마추어의 한계를 오히려 무기로 쓰려한다. 선수들은 십년, 이십년, 삼십년 프로젝트를 할 수 없다. 더구나 더디고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드는 흑백 사진은 아마추어라서 가능한 것이다. 통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시도해 볼 수 있다.
#4
더구나 우리는 책을 내야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3. 내 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과 어떻게 차별적인가? (1 페이지)
5가지 이상의 차별성을 들어라. 그대 책들의 참고서적을 서칭하고 그 책의 소개서를 잘 보고 자신의 책과의 차별점을 찾아낼 것. 참고서적은 1월 달까지 확정해라. 1월 달 과제에 포함될 것이다. (10-20권) 지금까지 읽은 책들의 ‘내가 저자라면’을 유심히 보고 찾아내도 좋다. 차별적 원본을 확보해야 책으로 나올 확률이 높다. 책을 내고 못 내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1 [다카페 일기]와의 차별성
공전의 히트를 친 이 책이 실은 왜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름 대중적인 코드를 담아냈다느데는 동의가 되지만 그렇다고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책인지는 … 그런데 벌써 3편이 나왔다. 저자는 일본의 파워블로그쯤 되는 모양이다. 아내와 아이와 강아지와 세련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집에서 펼쳐지는 일상들이 일기처럼 엮여진 책이다. 전달하는 메시지는 ‘따뜻한 일상’, ‘가족’ 등과 같이 차별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용은 제법 다를 것이다. 다카페 일기의 사진들은 이미지 컷(스튜디오에서 찍은 것 같은)의 느낌이라면 내 책의 사진들은 겉저리 같은 느낌의 사진들이다.
다카페 일기가 대리만족을 주는 사진들이라면 내 책은 생활 그대로의 사진들이다. 다카페 일기가 ‘아~나도 저런 곳에서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정도의 느낌이라면 내 책은 ‘아~이건 내 모습이야’ 또는 ‘나도 이런적이 있었지.’ 정도의 느낌일 것이다.
다카페 일기가 감각적인 디지털 칼라 사진인데 반해 내 책은 아날로그 흑백사진이다. 이 땅의 수 많은 현재와 미래의 아빠 사진가들에게는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카페 일기는 날짜와 한두줄의 글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 책은 제법 긴 문장들의 글이 엮여진다. 호흡도 훨씬 긴 사진들이고 글들이다.
#2 [윤미네 집]과의 차별성
이 책은 [윤미네 집] 덕분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큰 아이가 태어날 무렵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 책은 기획되지 못했지 싶다. 아니면 다른 형태의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급박하게 변하고 또 변화를 강요하고 있지만 절대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가족, 사랑 따위의 가치들 말이다. 이런 가치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차별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윤미네 집은 흑백 사진집이다. 이 시절엔 흑백필름으로 말고는 방법이 없다. 물론 칼라필름도 이후에는 가능했겠지만 사진가인 전몽각 선생은 스스로 사진을 만들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는 21세기 디지털이 세상의 중심이 된 시점에 흑백 아나로그 사진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흑백에 향수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감회나 감동이 자신의 추억과 닿을 수 있을 것이고, 흑백사진에 향수가 없는 젊은 세대에게는 복고주의의 맛, 전통의 맛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디지로그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트랜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순수 아나로그 사진으로 엮여진 책이 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나도 사뭇 궁금하다.
윤미네 집은 사진집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 동안 기록해 둔 일기, 편지, 에세이들을 모아 함께 엮었다. 사진과 사진 사이에 글을 넣을 것인지, 부록 처럼 별도로 엮을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간 써 놓은 꼭지들이 제법 된다. 종이로 만들 가치가 있도록 다듬어야 할 것이지만 사진집만으로는 대중성을 갖기 힘들 것이므로 그 동안 끄적거려 놓았던 글들을 모아 넣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4. 저자소개를 써라. (1 페이지 이내)
간의단한 약력과 함께 이 책과 연관하여 자신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할 것
수업할 때 가장 자기답게 하고 올 것. 피울과 참치와 희동이가 그대들의 사진을 하나씩 찍어줄 수 있도록.
아빠사진가, 공학박사, 경영품질전문가, 質(바탕) 연구가
꼬박 16년간 직장인으로 살았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천성은 결국 갇힌 삶을 걷어차고 풍찬노숙의 삶을 선택했다. 1인 기업 BnH Grobal을 세우고 조직과 개인의 성장을 위한 최적화 자문과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청춘들의 집나간 자긍심을 데려오는 일에 관심이 많다. 대학에서 청춘들과 뒹굴거리며 그들의 꿈 마중물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두터운 현실의 벽을 인정하기로 하고, 스스로 아카데미를 만들겠다는 꿈으로 설레인다. ‘조직과 개인의 변화와 혁신’을 키워드로 인문학을 직장으로 끌어와 따뜻하고 촉촉한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산대로 쓰고, 쓴 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산다.’ 는 꿈은 언제나 그를 설레게 한다.
그리고 그는 아빠사진가로 20여 년간 질기고 모질게 사진과 연애중이다. 까칠하게 살다보니 늘 외로웠다. 세상과 타협점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다가 가족이 생겼다. ‘딸기아빠_두 딸의 아빠라고 막창집 아줌마는 이렇게 불렀다.’가 되고 부터는 물고 부비고 뒹굴며 아이들을 키웠다. 가족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었고, 가족들과의 삶을 통해 데면데면하던 그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도 배웠다.
무료하던 일상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LOMO라는 토이카메라를 중고로 구입하면서 그의 사진생활은 시작되었다. 큰 아이 다원이가 태어날 무렵에는 제법 사진에 취미가 붙어있었다. 기록으로써 사진의 가치를 중요시하던 그에게 ‘가족사의 기록’은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다. 밥 먹다가도 찍고, 자다가도 찍고, 심지어는 쉬하고 응가하는데까지 따라다니면서 찍었다. 여기에 큰 아이가 다원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3년의 기록이 따듯한 아빠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담겼다. 때때로 그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고 또 때대로 그는 아이들과의 일들을 일기처럼 기록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에게는 일상의 조각들이 가장 빛나는 삶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의 힘으로 ‘가족의 역사’를 사진으로 쓴다.
이제 그는 [삶의 품격]이란 제목으로 책을 쓰고, 강연 다닐 작정을 하고 있다.
5. 책의 서문을 써라. (1페이지 이상)
서문은 첫 인상이다. 임팩트있게 써야 한다. 책의 주제와 관련된 가장 극적인 스토리를 넣고 풀어 쓰는 방식이 가장 좋지만 여기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밖에 없던 세상에 나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_ 구본형
2014. 06. 01 Rev 0.
2014. 12. 09 Rev 1.
#1. 내 역사는 내가 쓴다.
삶은 오늘이 모인 덩어리다. 오늘 다 살아내지 못한 삶이라 해서 미뤄두었다가 다음날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기록되어야 한다. 기록되지 않는 모든 것은 소멸한다. 나는 기록의 역사를 존중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는 없다. 소소한 개인의 역사라 하여 위대한 인물들의 역사와 차별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개인사를 기록해야 할 절실한 이유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디며 사기를 완성해 낸 사마천은 그의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천한 노복이나 하녀조차도 능히 자결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저와 같은 사람이 어째서 자결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고통을 감내하고 구차하게 더러운 치욕 속에 있으면서도 마다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 속에 다 드러내지 못한 바가 있어,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경우에 후세에 문채(文彩)가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러이 여겨서입니다.” 후세에 이름한자 남기지 못하고 비루하게 사라져버릴 자신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디게 했다.
또 한분의 걸출한 인물의 흔적을 더듬어 보자. 다산은 긴 유배 생활동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살얼음 같은 날들의 공포를 집요한 성실함으로 승화시켰다. 저술에 집중하느라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을 정도라고 하니 그의 성실함은 지독하리만큼 모질다. 그는 어째서 이렇듯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일까! 아들들에게 공부와 독서를 권면하는 편지에서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사헌부의 계문과 옥안만 믿고서 나를 평가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취급받겠느냐?”라며 걱정했다. 그의 고뇌와 두려움은 직접적인 고 현실적이다. 당신의 존재가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스러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죽음 같은 공포를 넘게 했던 모양이다.
사마천과 다산은 역사의 중심에서 중심의 역사를 기록했다. 역사의 변경에 있는 평범한 개인들의 이야기는 누가 대신 기록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가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변경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시처럼 살고 싶었던 변화경영 사상가 구본형은 변경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했다. 그는 스스로 써낸 자신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남겼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한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 경영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그는 문하들과 함께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 프로젝트>를 비중 있게 진행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자신만의 과업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쓰라고 독려했다.
나는 사마천의 치욕과 다산의 두려움 사이에서 공명했다. 이분들은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썼다. 처음엔 의지가 글을 밀고 나갔지만 종국엔 글이 그들을 끌고 갔다. 그래서 그것은 속수무책이었다. 신화학자 조셉 켐벨은 이런 것을 두고 ‘천복’이라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분들의 터럭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어깨너머에서 동냥한 것을 시늉 정도는 해 보아도 좋지 않겠는가!
나는 내가 쓴 역사가 ‘먹고 싸다가 죽었다.’ 라는 한 줄의 역사이길 바라지 않는다. 수단과 방편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쫓아 매일의 삶 그 자체로 실험하고 실증하며 그렇게 삶을 담아낼 것이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주목하여 성찰하고 이것을 삶 속으로 끌어와 소박하지만 빛나는 하루를 빚어낼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을 기록하여 실천적 증거로 삼겠다. 나는 여기에 ‘나의 이야기’를 쓴다.
#2. 가장 빛나는 삶의 기록
오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아내고 싶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세상과 내가 만드는 역사를 사진으로 쓴다. 내 방식으로 만나는 세상을 필름에 남기는 것이다. 글을 잘 썼더라면 펜을 들었지 카메라를 잡지 않았을 것이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세상을 가두는 것이 내겐 언제나 경이로운 작업이었다. 그 대상이 풍경이건 사람이건 파인더 너머의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파인더로 본 세상에 매료되어 카메라를 만지작한지도 어는 덧 강산이 두 번쯤 변할 만큼이나 되었다. 카메라에 대한 기계적 관심과 주변의 소소함 들을 묶어두고자 시작한 것이니 예술 할 생각은 애시 당초 없었다. 내게 카메라는 기록의 도구이며 철 안드는 사내의 장난감이다. 그래서 내게 사진은 놀이였고 기록이였다. 찍은 것이 아니라 쓴 것이니 글을 읽듯이 읽어야 한다. 잘 쓴 사진은 읽기에 좋다.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현란한 구성과 자극적인 피사체, 빼어난 구도, 손이 베일 것 같은 선명한 사진을 넘는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글이 진솔하고 소박한 글에 비에 비해 빨리 물리고 씹는 맛이 덜하듯이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사진이 담박한 사진에 비해 빨리 물리고 씹는 맛이 덜하다. 글을 위한 글이 읽히지 않듯이 사진을 위한 사진은 뻑뻑해서 삼키기 힘들다.
나는 프레임 안에서 다루어지는 작업이 삶의 기록이길 바란다. 사진으로 쓰고 모자란 것이 있으면 글로 보태고 내게 기록이란 이런 것이었다. 더불어 사진 찍기는 내게 더 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놀이다. 사진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속수무책일 테지만 말이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서 절정의 쾌락을 경험하곤 한다. 대상 … 삶이 될 수도 있겠는데 … 이 프레임 안으로 녹아들어 투영되는 순간 셔터를 끊는다. 순간이다. 길어야 30분의 1초! 이 짧은 순간은 그대로 필름에 녹아 맺힌다. 시간을 잡겠다는 욕망은 이렇게나마 실현되었다. 이로써 그, 그들 또는 그것의 시간은 24×36 mm의 조그만 플라스틱 조각에 영원히 갇혔다. 역사를 소유한다는 것에 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다른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즐거움이자 경이로움이다.
나는 기록하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왜이토록 모질게 기록에 집착 하는 것일까! 기록은 유전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은 불멸의 영속을 위해 자신을 기록한 유전자를 다음세대에 전달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다음세대에 복기된다. 기록의 속성을 이토록 명징하게 증명하는 것이 또 있을까? 결국 인간은 기록의 도구로써 유전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문화적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림을 그리고 문자를 만들었으며 종이를 만들고 드디어 카메라를 만들었다. 사진은 결국 기록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다름 아니다.
#3. 일상 한 조각
그 동안 기록해 온 몇 가지 가운데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 온 기록은 ‘일상 한 조각’이다. 이 땅의 수많은 아빠사진가들 가운데 비교적 열심인 한명쯤 일 테지만 이 작업은 내게 너무나 중요하고 일방적인 것이어서 마치 몸의 일부인 냥 곁에서 떠난 적이 없다. 감전된 듯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벌써 십수 년이 훌러덩 지나버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늘 카메라를 끼고 살았다. 먹을 때도, 씻을 때도, TV를 볼 때도, 화장실에 있을 때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 때조차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카메라를 메고 다닐 때 나는 생활속에서 아이들을 담았다. 부비고 깔깔대며 함께 뒹구는 이곳이 내겐 더 없이 좋은 우리들의 성소(聖所)였다. 옹알이를 하고, 뒤집고, 기어 다니고, 작은 이가 뽀얗게 상아처럼 올라오는 모든 일들이 축제였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촉각을 세우다 보면 하룻저녁에 서너 통의 필름을 소모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주먹만 하던 녀석들이 그 사이 자라서 유치원엘 가고 학교엘 가더니 어느새 제법 가슴과 엉덩이가 생겼다. 맨 몸으로 함께 부비고 뒹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딸기아빠는 초조하고 바쁘다.
장가나 가겠냐며 놀림을 받더니 어느새 결혼을 하고 토끼 같은 두 딸을 얻어 가정을 이루었다. 그 사이 큰 아이(다원)는 올해(2014년) 13살이 되었고 작은 아이(다윤)는 11살이 되었다. 생긴 것이나 마음 씀씀이가 엄마, 아빠의 장점을 고루 받은 큰 아이는 덤벙거리지만 전체를 관조하는 눈을 가졌고 친구를 좋아한다. 활동적이고 관계 지향적이다. 맞이라서 그런지 이 녀석을 보면 제법 든든하다. 삼가고 배려하는 힘을 조금 더 키웠으면 좋겠다 싶긴 하지만 부질없는 욕심인 것을 안다. 속살이 아빠를 많이 닮은 작은 아이는 섬세하고 꼼꼼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깊다. 이 아이 속에는 도대체 뭐가 얼마나 많은 게 들어있는지 다채롭고 호기심 가득 찬 세상이 넘친다. 사랑이 넘치는 아이다. 슬픈 동화를 읽고 몇 날을 울 수 있는 아이다. 특별한 음식이 있으면 반드시 남겨서 남은 가족들에게 먹여주는 아이다. 펑펑 울다가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아이다. 몸과 마음의 힘을 조금 더 키웠으면 좋겠다 싶긴 하지만 역시나 애비의 부질없는 욕심이다. 녀석들을 물고 부비고 뒹굴며 키웠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기저귀 한번 갈아 채워주지 못했고 쓰레기 한번 버려주지 못했지만 아내는 불평한번 없었다. 평소 난 아내가 천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직 나랑 살아 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천사 말고는 없을 것이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스스로 몸을 녹여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워 냈으며 살림을 일궈냈다. 사내놈들이 하는 이런 저런 호작질 따위에도 언제나 응원해 주었다. 특히 사진재료만큼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었고 조그만한 집에 암실을 마련하는 것 까지도 기꺼이 수용해 주었다. 고쳐 생각해 봐도 난 천사랑 사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쓴 이 기록들은 전몽각 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의 오마주다. 큰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2002년)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한참 사진에 심취할 무렵이었다. 우연히 선생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 안의 이야기를 미리 풀어 놓으셨던 것이다. 가족사의 기록은 카메라를 든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한 세대 앞서 살면서 같은 이유로 사진을 찍고 그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 놓으신 그리고 한 장 한 장 사진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가 가득한 가족들의 눈동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감동이었다. 책으로 보고 싶었다. 1990년 1000부 밖에 발행되지 않은 사진집이 아직 서점에 남아있을 리 없었다. 전국의 헌책방을 수소문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해를 넘겨 지났을 즈음 서울의 한 헌책방에서 이 책을 찾게 되었고 지인의 도움으로 구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궁하면 통하는 모양이다. “김정옥 동문에게, 몽각이가” 라는 친필 사인이 오롯이 남아 있는 이 낡은 사진집엔 1964년 큰 딸 윤미가 태어나면서부터 1989년 시집가는 날까지 26년간 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이 책은 2010년 복간되어 이제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사진은 이야기다. 사진을 보는 순간 까마득하게 물러나 있던 기억들이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오래된 기억도 찰나간의 이야기도 사진은 그것을 또렷하게 재생해낸다. 나는 이 기록을 10년마다 새롭게 펴낼 것이다. 새롭게 펴낼 때는 이전의 기록을 다시 추리고 새로운 10년을 추가하는 형식이면 좋을 것이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개인의 역사를 내가 아니면 누가 써 주겠는가. 내 역사는 내가 쓸 것이다. 그 사이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장소가 갤러리였으면 하고 생각한다. 양쪽으로 이 기록들을 걸어두고 그 가운데로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삶의 조각들을 이어주는 일상의 황홀한 기록들이 앞으로도 필름과 함께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찬란한 기록이 될 것이다.
PS:
여기에 기록된 사진은 2002년 다원이가 태어나면서부터 2015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3년의 기록이며 모두 흑백필름으로 담겨진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보다 쉽고 빠르게 사진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흑백필름을 고집한 것은 나름대로 ‘차별성’을 고려한 때문이다. 서툰 솜씨를 아날로그란 향수로 만회해 보고자 하는 얄팍한 의도와 함께 내 아이들이 흑백필름으로 기록되는 지구에서 마지막 세대일거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현상과 인화는 모두 개인작업실에서 직접 했으며 나는 이 과정을 몹시 즐겼다. 사진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즐거움이다. 흑백작업을 고집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용된 필름은 대부분 Tri-X 이고, D-76 표준데이터로 현상하였다. SLR 카메라가 있었지만 RF 카메라에 35mm 렌즈를 주로 사용하였다. 삼각대는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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