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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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동안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삼삼한 글을 써 보려는 욕심에서 시작한 것도 아닌데 손끝은 무겁기만 하다.
“엄마 , 맛난 빵 한 조각 드시고 하세요.”
둘째가 내미는 빵에 눈길을 보낸다.
노르스름한 것이 먹음직스럽다.
8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한 자신과의 약속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빵의 유혹에 넘어간다. 입안에 사르르 녹는 맛이 그만이다. 반쪽만 먹겠다는 나의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손바닥넓이보다 더 큰 빵은 금방 사라지고 없다.
맛있는 글
처다만 보아도 군침이 도는 음식처럼 맛난 글은 없을까?
달콤한 빵 같은 글은 어떤 글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러본다.
‘그래, 맞다. 할머니의 호박죽이다.’
탄성이 나온다.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유년의 달콤한 호박죽 맛이 되살아난다.
맛있는 글쓰기의 해법이 생긴 셈이다.
할머니께서 끓인 호박죽의 맛은 특별했다. 달콤한 것은 물론이고 깊고 은은한 맛은 그 어떤 언어적 표현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특별한 재료를 사용 하신 것도 아니다. 늙은 호박에 팥을 넣고 푹 고아 만들었던 것이 어느 집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면 그 특별한 맛은 어디서 왔을까?
숨은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할머니의 호박죽이 그렇게 달콤했던 비법을 찾아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비법에 ‘달콤한 글’쓰기의 해법의 고리를 하나씩 연결해 보는 거다.
해법 하나
호박죽의 특별한 맛은 할머니께서 심고 가꾼 그 일련의 과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 맛있는 글은 우리의 삶이 글 속에 녹아 있을 때 가능하다.
호박죽을 끓이는 준비 작업은 음력 이월말경부터 시작된다. 밭 언덕배기에 커다랗고 깊은 구덩이를 판 후, 그 속에 소똥이며 인분, 지푸라기 등을 넣고 한 달 가량을 둔다. 푹 썩어 거름이 되기 위함이다. 삼월 말경에서 부터 사월 초 사이에 호박씨앗을 심고 작은 온상을 만들어 싹을 틔우고 정성으로 가꾼다. 호박은 심어만 두면 잘 자란다지만 할머니께서는 심기는 물론이고 언덕배기를 지날 때면 호박을 쓰다듬고 풀을 뽑고 가꾸셨다. 사랑 없이 그저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었으랴.
맛있는 글도 호박씨를 심고 가꾸는 일련의 과정처럼 우리의 삶의 과정이 겹겹이 녹아들어야 할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만든 피상의 세계가 아닌 손으로 만져지고 맛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삶이 녹아들어 있는 글이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글이리라.
- 기상청예보에 따르면 오늘 최저 기온이 영하 8도란다. 꽤나 춥겠다.
- 꽁꽁 얼어붙은 개울물의 얼음을 깨고 걸레를 빨았다. 손이 시리다 못해 푸르죽죽해졌다. 대청마루에 올라서서 문고리를 잡는 순간 손이 쩍 달라붙는다.(맛있는 글)
해법 둘
할머니의 호박죽은 나누어 먹는데 그 깊은 맛이 있었다.
맛있는 글은 누가 읽어도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할머니의 호박죽은 언제나 마을 전체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무쇠 솥에 호박 두 덩이 정도를 푹 고아 죽을 끓인 다음 한 양푼씩의 호박죽을 집집마다 돌린다. 물론 배달꾼은 나였다.
십 여 호가 훨씬 넘는 집을 일일이 도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호박죽에 대한 감사의 말을 직접 듣는 나로서는 힘들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했다.
- 지하철을 타는 재미는 마음 놓고 꾸벅꾸벅 조는데 있다. 특히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는 따끈따끈한 의자까지 있어 그 맛을 더한다. 꾸벅거리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약간의 부딪침이 있을지라도 크게 염려할 것은 못된다. 셋에 두 사람은 함께 조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 공감할 수 있는 소재)
해법 셋
할머니의 호박죽 맛은 다듬고 썰고 씻고 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 녹아 든 정성의 맛이었다. 맛있는 글은, 글 속에 녹아 든 글쓴이의 정성이다.
호박죽을 끓이는 날이면 양철로 된 양동이에 물을 10번 이상은 길러 날라야 했다. 호박을 다듬어 썰고 씻고 하는 모든 과정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의 지론이셨기 때문이다.
물을 길러 나르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나에게는 꽤나 힘든 일이지만 할머니의 한 말씀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는 일이 어디 있더냐.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느니라.”
나누어 먹는 음식이라 정성은 평소의 몇 갑절이다. 씻고 또 닦아 낸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호박죽 끓이는데 온 정성을 다한다.
맛있는 글은 순식간에 써 내려간 글은 아니다. 다듬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내가 쓴 글에 애정을 가지고 돌 본 글이어야 한다. 한 만에 쭉 써내려간 글, 그리고 휙 던져 놓은 글, 깊은 맛이 녹아 날리 없다.
- 산골의 동짓달은 춥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 산골의 동짓달은 길고 추웠다.
- 산골 동짓달의 추위는 문풍지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부터 시작된다. 황소바람은 문풍지 사이에 끼워 둔 걸레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달콤한 호박죽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 해의 땀이 배이고 정성이 녹아 든 결과다. 그리고 나눔에 그 맛이 더해졌다.
고작 3시간 넘는 글쓰기 작업에서 한 줄도 써 내려가지 못한 나의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 적이나 부끄럽다.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시작된 것 또한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끄러움과 미안한 일은 ‘맛 난 글’의 충분조건을 알기위한 일련의 과정이었기에 더 이상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다만 좀 더 겸손해지고 주어진 모든 것에 사랑의 눈길을 보낼 일이다. 유년 시절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느티나무였던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의 검버섯 가득한 따뜻한 손이 그립다.
IP *.86.177.103
삼삼한 글을 써 보려는 욕심에서 시작한 것도 아닌데 손끝은 무겁기만 하다.
“엄마 , 맛난 빵 한 조각 드시고 하세요.”
둘째가 내미는 빵에 눈길을 보낸다.
노르스름한 것이 먹음직스럽다.
8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한 자신과의 약속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빵의 유혹에 넘어간다. 입안에 사르르 녹는 맛이 그만이다. 반쪽만 먹겠다는 나의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손바닥넓이보다 더 큰 빵은 금방 사라지고 없다.
맛있는 글
처다만 보아도 군침이 도는 음식처럼 맛난 글은 없을까?
달콤한 빵 같은 글은 어떤 글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러본다.
‘그래, 맞다. 할머니의 호박죽이다.’
탄성이 나온다.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유년의 달콤한 호박죽 맛이 되살아난다.
맛있는 글쓰기의 해법이 생긴 셈이다.
할머니께서 끓인 호박죽의 맛은 특별했다. 달콤한 것은 물론이고 깊고 은은한 맛은 그 어떤 언어적 표현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특별한 재료를 사용 하신 것도 아니다. 늙은 호박에 팥을 넣고 푹 고아 만들었던 것이 어느 집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면 그 특별한 맛은 어디서 왔을까?
숨은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할머니의 호박죽이 그렇게 달콤했던 비법을 찾아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비법에 ‘달콤한 글’쓰기의 해법의 고리를 하나씩 연결해 보는 거다.
해법 하나
호박죽의 특별한 맛은 할머니께서 심고 가꾼 그 일련의 과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 맛있는 글은 우리의 삶이 글 속에 녹아 있을 때 가능하다.
호박죽을 끓이는 준비 작업은 음력 이월말경부터 시작된다. 밭 언덕배기에 커다랗고 깊은 구덩이를 판 후, 그 속에 소똥이며 인분, 지푸라기 등을 넣고 한 달 가량을 둔다. 푹 썩어 거름이 되기 위함이다. 삼월 말경에서 부터 사월 초 사이에 호박씨앗을 심고 작은 온상을 만들어 싹을 틔우고 정성으로 가꾼다. 호박은 심어만 두면 잘 자란다지만 할머니께서는 심기는 물론이고 언덕배기를 지날 때면 호박을 쓰다듬고 풀을 뽑고 가꾸셨다. 사랑 없이 그저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었으랴.
맛있는 글도 호박씨를 심고 가꾸는 일련의 과정처럼 우리의 삶의 과정이 겹겹이 녹아들어야 할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만든 피상의 세계가 아닌 손으로 만져지고 맛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삶이 녹아들어 있는 글이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글이리라.
- 기상청예보에 따르면 오늘 최저 기온이 영하 8도란다. 꽤나 춥겠다.
- 꽁꽁 얼어붙은 개울물의 얼음을 깨고 걸레를 빨았다. 손이 시리다 못해 푸르죽죽해졌다. 대청마루에 올라서서 문고리를 잡는 순간 손이 쩍 달라붙는다.(맛있는 글)
해법 둘
할머니의 호박죽은 나누어 먹는데 그 깊은 맛이 있었다.
맛있는 글은 누가 읽어도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할머니의 호박죽은 언제나 마을 전체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무쇠 솥에 호박 두 덩이 정도를 푹 고아 죽을 끓인 다음 한 양푼씩의 호박죽을 집집마다 돌린다. 물론 배달꾼은 나였다.
십 여 호가 훨씬 넘는 집을 일일이 도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호박죽에 대한 감사의 말을 직접 듣는 나로서는 힘들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했다.
- 지하철을 타는 재미는 마음 놓고 꾸벅꾸벅 조는데 있다. 특히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는 따끈따끈한 의자까지 있어 그 맛을 더한다. 꾸벅거리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약간의 부딪침이 있을지라도 크게 염려할 것은 못된다. 셋에 두 사람은 함께 조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 공감할 수 있는 소재)
해법 셋
할머니의 호박죽 맛은 다듬고 썰고 씻고 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 녹아 든 정성의 맛이었다. 맛있는 글은, 글 속에 녹아 든 글쓴이의 정성이다.
호박죽을 끓이는 날이면 양철로 된 양동이에 물을 10번 이상은 길러 날라야 했다. 호박을 다듬어 썰고 씻고 하는 모든 과정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의 지론이셨기 때문이다.
물을 길러 나르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나에게는 꽤나 힘든 일이지만 할머니의 한 말씀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는 일이 어디 있더냐.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느니라.”
나누어 먹는 음식이라 정성은 평소의 몇 갑절이다. 씻고 또 닦아 낸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호박죽 끓이는데 온 정성을 다한다.
맛있는 글은 순식간에 써 내려간 글은 아니다. 다듬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내가 쓴 글에 애정을 가지고 돌 본 글이어야 한다. 한 만에 쭉 써내려간 글, 그리고 휙 던져 놓은 글, 깊은 맛이 녹아 날리 없다.
- 산골의 동짓달은 춥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 산골의 동짓달은 길고 추웠다.
- 산골 동짓달의 추위는 문풍지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부터 시작된다. 황소바람은 문풍지 사이에 끼워 둔 걸레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달콤한 호박죽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 해의 땀이 배이고 정성이 녹아 든 결과다. 그리고 나눔에 그 맛이 더해졌다.
고작 3시간 넘는 글쓰기 작업에서 한 줄도 써 내려가지 못한 나의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 적이나 부끄럽다.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시작된 것 또한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끄러움과 미안한 일은 ‘맛 난 글’의 충분조건을 알기위한 일련의 과정이었기에 더 이상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다만 좀 더 겸손해지고 주어진 모든 것에 사랑의 눈길을 보낼 일이다. 유년 시절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느티나무였던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의 검버섯 가득한 따뜻한 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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