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숙인
  • 조회 수 335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2월 1일 10시 17분 등록

얼마 전 회사 부서 회식을 했다. 선배 한 명이 다른 부서로 전배를 가게 되서 모인 송별회 자리였다. 술이 몇 차례 돌고 제법 모두들 취기가 돌기 시작했을 무렵, 떠나가는 선배가 자리에 일어나서 한 마디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꿈과 비전' 때문에 이동을 한다고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그러자 그 말을 받아 부서 내 일 잘하기로 소문난 한 선배가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까지 부서를 꽤 많이 옮겨다녔거든. 인사, 컨설팅, 금융, 그리고 지금 이 곳까지 말이야. 근데 여러 번 옮겨 봐도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같애.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

 

상당히 의외의 대답이었다. 해외 유학파인 그는 누가 보아도 최고의 인재였고, 일처리가 깔끔하기로 유명해 선후배 모두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단 말인가?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학습이나 일에는 경험론이 옳다고 믿어. 공부를 할 때 원리를 이해하기도 전에 통째로 암기를 하잖아. 어렸을 때는 왜 이런 것을 외워야 되는지 답답했고, 시험만 아니면 아무 데도 쓸 데 없는 지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통째로 외우고 익히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원리가 자연스럽게 터득이 되더라고.. 그리고 나중이 되면 그 쓸데 없어 보였던 지식들이 나에게 굉장히 유용한 지식으로 변신을 해 도움을 주더라.

 

사람들은 이유를 먼저 알고 움직이려고 하는데, 보통은 먼저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그 숨은 뜻을 알게 되는게 세상사의 이치인 것 같애. 회사일의 경우도 그 나물에 그 밥이긴 하지만, 쓸모 없어 보이던 그 나물들이 없으면 멋진 비빔밥이 탄생하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무엇을 향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노력들이 나중에 다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어."

 

제법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평소에 장난스럽기로 유명한 선배인데, 분위기 탓인지 제법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날 부서 사람들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예전에 좌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처럼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나이가 50이 되도, 60이 되도 계속 하는 질문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학비 문제로 자퇴를 하고, 청강으로 Typography 수업을 들었던 스티브 잡스는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흥미로 들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맥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고스란히 빛을 발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미래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여러분은 미래를 바라보며 순간들을 연결하기는 힘듭니다. 오직 과거를 돌아보면서 순간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직관을 따라가되, 지금 이 순간이 의미 없어보이더라도 나중에 어떻게든 내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라는 이야기였다.

 

친구를 만나 부서 회식때 나왔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이와 같이 대답한다.

 

"난 그 선배 의견에 반대야. 물론 닥치고 외우고, 일하면 그 속에서 자신의 뜻이나 꿈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의미 없이 헤맬 수도 있어. 자신의 뜻과 일치한다는 믿음 하에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해야 능률적일 뿐만 아니라 고통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근데 말이야. 일단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많이 부딪혀보야 되지 않을까? 그게 맞는지 그른지 모르지만 일단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의외로 나와 맞는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 머릿 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더 헤맬 수 있을 것 같애. 그냥 믿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들이 내 인생에 무의미하거나 가치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특히 젊을 때는 더더욱 그래야 될 것 같애."

 

회사 선배의 말처럼 처음의 시작은 경험론이 맞는 것 같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는 것도 그 의미를 알고 단어를 내뱉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엄마, 아빠의 말을 따라 하고 암기하다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그 뜻을 '아하' 하고 알게 된다. 그러나 친구의 이야기처럼 학습의 경험론이 계속 지속되다 보면 중간 중간 우리는 '왜?'라고 외치며 헤매고 되고, 학습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잃게 될 수 있다.

 

학습을 하든 일을 하든 일단은 '학습의 경험론'을 믿고 지금의 사소한 일이 언젠가는 내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동시에 그 속에서 나에게 계속 질문을 해야 한다. 톰 피터스가 'Brand YOU'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즉 '경험론'과 '합리론'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순환하는 구조로 움직여야 한다. 이 세상의 놀라운 진리들의 발견들 역시 '경험론'과 '합리론'의 합작품이지 그 어느 한가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IP *.244.197.254

프로필 이미지
숲속나무
2010.02.01 20:34:49 *.33.169.195
정말 좋은글이네요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0.02.04 23:01:47 *.168.23.196
숲속 나무님께 좋은 글이었다니, 기분이 좋네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