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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아우성을 뒤로한채 4월의 봄날 속에서도 겨울바람의 여운이 계속되고 있던 어느날. 00거래처 현장 교육을 앞두고 사장님과 통화를 나누기 위해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교육 팀장입니다. 강의 받으시는 대상자 연령층 및 성향을 알고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나의 질문에 거래처장님은 경상북도 지방 특유의 사투리로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였다.
‘연령층은예. 가만있어보자 얼마쯤 되제. 평균 65세 이상 되고예. 인원은 서른명 정도 됩니데이.’
평균 65세 이상의 연령층 이것참 난감하다. 고민이 시작 되었다.
TV 대중매체에서 전국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전문 강사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수준을 중학교 2, 3학년의 눈높이로 정하고 강의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적당한 수준으로 통일된다’고.
그만큼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강의의 질은 중요하다. 너무 높으면 되질 않기에 어려운 외국어보다는 되도록 쉬운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수준을 너무 낮게 잡아서도 안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영업조직 특히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의 현장도 마찬가지이다. 30~50세의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직업현장에 나선다. 소일거리를 찾아서, 부업을 하기위해, 아이들 학원비 및 용돈을 벌기위해, 남편의 직장이 염려가 되어서 등등. 이런 이유들로 직업현장에 나서면서도 공통적인 마인드 중에 하나는, 아줌마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생계를 책임지는 남자들처럼 철저한 직업적인 관념이 조금은 부재하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커리어우먼들이 들으면 여성을 폄하(貶下)하는 발언이라고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 되지만 그것이 아직까지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대학교를 나와서 나름 세상물정에 대해 알만큼 안다는 여성들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정생활을 몇 년 거치고, 사회로 다시 진출할 때면 다음과 같은 여러 생각들이 드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내가 잘할수 있을까?
괜히 내가 헛짓 하는 것 아닌지?
남편말 듣고 아이들 뒷바라지나 계속할걸.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제품을 판다고?
자존심 상한다. 나도 한때는 잘나갔었는데.
고등학교 때 재보다 내가 훨씬 잘나갔었는데.
우리 남편이 원망스럽다.‘
그렇기에 특히 제품을 판매로 하는 주부여성을 상대로 하는 세일즈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그녀들의 기(氣)와 분위기를 상승 시켜주는 강의가 필요하다. 특히 이성적인 사고의 남성과 달리 감성을 파고드는 강의가 어필되기에 그런점들에 주력을 해야되는 것이다.
처음 주부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나섰을 때 나자신 몸둘바를 몰라 했었던 경험이 있다.
‘반갑습니다. 싱싱한 총각 이승호 입니다.’
기선제압을 하기위해 나름 쌈박한 멘트를 한다고 하였으나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구름같이 몰려드는 그녀들.
‘어머 총각이구나. 예쁘장하게 생겼네. 피부도 뽀얗고. 손도 탐스럽네.’
그러면서 거침없이 나의 손을 잡아끄는 그녀들.
이런 그녀들과 함께 공존하다보니 나의 스타일도 여느 남성들과는 다른 취향으로 조금씩 바뀌어 갔다. 야한 농담들을 일부러 수집하고, 주부들이 즐겨보는 드라마를 마눌님과 함께 시청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나도 극적인 장면에서는 눈물까지 흘리고... 흑흑흑...
노래방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광석이 형님 노래나 댄스 음악보다는 태진아, 현철 오빠와 이미자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나름의 경험으로 단련이된 나에게도 평균 65세가 넘는 할머니들 그것도 서른명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본사의 2/4분기 영업 매출의 전략적 런칭 제품인 신제품이 나왔기에 그 교육을 PPT로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결전의 날. KTX와 무궁화호를 번갈아타며 도착 끝에 들어선 거래처에는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풍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의 풍상을 겪은분들 답게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과 틀니가 번쩍이는 가운데, 슬리퍼를 질질 끌며 빛나는 몸뻬 바지의 시골 패션을 자랑하며 문을 열고 줄줄이 들어오는 할머니 부대들. 내머릿속은 하얗게 물음표의 꼭지가 이어져 나갔다.
‘우짜꼬.’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거래처 소장의 에어로빅이 시작되자, 저마다 준비해온 수건을 좌우로 흩날리면서 펑퍼짐한 엉덩이를 힘차게 실룩대며 난리 부르스가 이어진다.
‘아싸. 좋아좋아. 살리고.’
분위기가 점점 살아나는 그녀들과는 달리 나의 존재는 더욱 작아져 갔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할머니가 함께 추자면서 삶의 흔적이 그대로 배어나는 투박한 손을 내민다. 기가 죽어있는 나자신이기에 손사레를 쳐보지만 어느새 청일점인 나를 원으로 둘러싸며 간격을 잡혀오는 그녀들.
그랬다. 그러하였다. 어느 먼옛날 아프리카 어느곳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있었지.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마탕 축제 의식의 향연을 벌이던 부족들속에 잡혀온 제물들의 심정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무써워졌다. 나를 잡아먹을 듯한 그녀들.
나의 존재의 필요성을 빨리 찾아야 한다. 어떡하든지 분위기 전환을 시켜야 한다.
꿈이 끝난후 현실의 강단에 선후 심호흡을 해본다. 하나둘 하나둘. 기가 죽으면 안돼.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겪은 그녀들의 조금은 흐릿한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먼저 탐색전의 질문을 해보았다.
‘에어로빅 하신다고 예정된 시작 시간이 조금 지연 되었는데 몇시에 마쳐 드릴까요.’
이런 나의 질문에 내심 그래도 멀리 서울에서 왔는데 최소한의 예의적 답변이 나올줄 알았다.
‘정시에 마쳐야 돼유. 2차 가야되니까유. 늦으면 안돼유.’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머릿속은 어지러워진다.
2차라. 그러하였다. 그녀들은 말그대로 선물부대였다. 어느곳에서 선물을 준다고 하면 우르르 달려가 선물을 타고 끝나고 나면 다시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는.
이런 그녀들에게 조직의 자긍심, 제품의 특성, 영업화법이나 스킬, 정신무장 등의 교육은 어찌보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일 뿐이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강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수정하였다.
첫째, 준비해온 약두시간여의 강의를 정시에 마칠려면 40분으로 핵심내용을 재구성해야 한다.
둘째, 그녀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나의 필살기(必殺技)의 연출이 필요하였다.
결론은 사전 준비해온 내용을 버리기로 하였다. 철저히 그녀들이 바라는 코드를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기위해 먼저 마이크를 거머쥐고 박상철의 ‘무조건’으로 냅다 한곡조를 뽑았다. 잡아먹을듯 했던 그녀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이때를 놓칠세라 이어지는 장윤정의 ‘트위스트’ 음악에 맞추어 랄랄라 차차차의 가사가 시작되자 엉덩이를 들썩이는 그녀들.
두곡의 노래를 마치고 이마의 땀방울을 양복 소매로 훔치노라니 쏟아지는 박수세례. OK. 좋았어. 그녀들의 마음의 문이 이제 열리기 시작하였다. 지금이 기회야. 이때를 놓치면 안된다.
‘여성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중에 하나가 치매입니다. 치매의 예방법중에 하나는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고 소일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 여기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여사님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태어나는건 순서가 있지만 돌아가시는 것은 순서가 없습니다. 이왕 짧은시간 오신 것 단하나라도 건지십시오. 그것이 제품이 되었든 벽에 똥칠(?)하는 비법이 되었든...’
거침없이 내지르는 나의 멘트에 그녀들과 나는 조금씩 동화가 되어져갔고 어느새 약속된 시간이 다되었다. 강의를 마치자 선물부대는 예정되었던 2차 목적지를 찾기위해 다시 정찰을 나서기 시작 하였고, 그런 그녀들을 나는 진심으로 한분 한분씩 문앞에서 배웅을 해드렸다. 그러자 전자의 모습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금칠의 누런 앞니를 드러내며 시골 특유의 인심좋은 아낙네의 모습으로 변신한 몇몇이 한마디씩을 거든다.
‘아따, 젊은 양반이 입담이 참좋소. 또오이소.’
‘재미있게하네. 오늘 교육 잘들었어유.’
‘우리땜에 욕봤지예. 수고많았심데이.’
배우들은 연극이 끝난후 관객이 돌아간 텅빈 무대를 보노라면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러하였다. 내가 아닌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어색하기도 하였고, 꼭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었었다. 어떨때는 삐에로 같다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때였던가 나의 마음속 꼭꼭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가운데에서도 대중 앞에서의 강연의 모습에서 나의 존재성을 확인한다.
나의 목소리로 누구에겐가 줄수 있다는 것. 깊은 울림의 역할을 할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희열에 빠뜨리게 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오늘 내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것을 주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달란트로 나의 갈고 닦은 재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을 잠시나마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에 무엇인가를 심어줄수 있는 도구로써 최선의 소임을 다하였기에.
자족의 느낌속에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마흔 하나에 작성한 나의 사명서를 다시한번 읊조려본다.
“나의 목소리로 세상을 밝게 합시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서른명의 할머니들은 너무 무써웠어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