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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1일 17시 44분 등록

가을인데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을씨년스러운 아침. 오늘 같은 날은 세일즈를 하시는 분들도 활동하기가 수월치 많은 않다. 평소보다 출근율도 저하되는 가운데 사기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비가오고 낙엽이 질때면 카운슬러들의 마음은 정착을 못하고 사방팔방을 돌아 다닌다. 현장을 나가지 않고 사무실이나 따뜻한 곳에 짱박혀 막걸리 한잔과 파전을 벗삼아, 수다를 무기로 질펀한 하루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진다. 거기다 고도리 한판이면 분위기는 더욱 물이 오르고 나를 버리고 떠나간 옛날 애인이 생각 나기도 한다. 그럴때면 교육시 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지금 함께 살고 계시는 분이 첫사랑 이신분?”

애석하게도 손을 드시는 분은 일부 - 나는 순진하게도 첫사랑의 비율이 처음에는 많은줄 알았다 - 이다.

“그럼 현재의 바깥분이랑 다시 태어나도 희노애락을 하시겠다는 분?”

역시 아니올시오다. 그런데 남자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면 통계적으로 70% 이상이 손을 든다.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말년에 남자가 편하기 위해서는 와이프에게 평소에 잘해야 한다. 힘이 있을 때에야 쥐락펴락을 하고 지내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누구하나 쳐다보는 이가 없을 때, 가장 가까운 님에게서도 따뜻한 밥 한공기 얻어 먹지 못하고 구박을 당한다면 그것만치 서러운게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날이면 오히려 영업을 독려하기 위한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날씨도 춥고 그런데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시죠.”

“네. (기다렸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이럴 때 다른 사람들도 우리 마음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이순간은 평소 만나주지 않는 고객들을 공략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찬스가 되기도 합니다. 전화해도 받지 않고 외출이 많던 고객들도 주로 어디 계실까요. 집 혹은 찜찔방에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상대하기 힘든 분과 분위기 있는 까페에서 향기가 폴폴 나는 커피 한잔도 즐겨 보세요. 자, 출발.”

 

출근을 하는 분들의 복장은 어찌보면 전쟁터에 임하는 전사들과 같은 모습이다. 두툼한 옷차림, 방한복, 목도리에다 장갑. 벌써 골덴 바지를 꺼내 입으신 분들도 있다. 그런 그녀들에게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은 힘이 되는 말, 고객에게 거절을 당하더라도 기죽지 말라는 격려와 용기의 메시지를 나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런 기백을 안고 00거래처를 이른 아침에 방문 하였다. 따끈한 차한잔을 실장님이랑 나누고 있노라니 한분씩 입장 하신다.

“안녕하세요. 많이 추우시죠. 여기 불좀 쬐세요. 유해산소를 억제하고 허벌나게 젊어지는 따근한 루이보스티 차한잔도 서비스 해드릴께요.”

사장은 아니지만 아침 사무실 분위기가 그날 실적의 하루를 좌우할 수가 있기에, 본사의 녹을 먹는 나로서도 최대한 살갑게 대하며 활기차게 인사를 나눈다.

“아이구, 웬일이래요. 인터넷 방송에서 나오던 그양반 이구먼.”

 

시작 시간을 앞두고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갑자기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이 발생 하였다.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야이, XX아. 어디다 눈X을 들이밀고 쳐다봐.”

“나이만 XX었으면 다야. 보자보자 하니까”

“이런, XXXX이.”

“이거 안놔. 이X이 사람 죽이네.”

“누가 할소리를.”

십여년의 공간을 방문판매 업종에 종사 하였지만 이렇게 조회전에 난장판이 되는 상황이 일어 나기는 처음 이었다. 기분좋게 왔다가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이람. 내역은 이러하였다. 신입으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분이 평소에 실쭉샐쭉 거리는등 푼수끼가 조금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연세 드신 한분이 좋게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도 그러하였다.

“(못마땅한 듯) 뭐가 그리 좋아서 실실 쪼개고 다니세요?”

“웃으면 좋지 않나요. 우거지상으로 다니는 분(이야기 하는 상대방을 지칭)보다는 백배 낫죠.”

“우거지상?”

“그렇지 않나요. 영업 한다는 분이. 인상이 그게 뭐예요.”

“말이면 단줄아니. 안그래도 눈에 가시처럼 여겼었는데 오늘 너 잘만났다.”

“흥. 그러면 무서워 할줄알고. 나이살이나 X먹었으면 가만히나 있지.”

그러면서 시비가 붙었던 것이다. 주위분들이 뜯어 말려는 와중에도 고함소리는 점점 커지고 머리채를 서로 쥐어잡는등 상황은 더욱 악화가 되고 있었다. 그러다 한분이 급기야 책상위에 있는 꽃병을 들고 던지려는 포즈를 취하였다.

“아이구, 드디어 평소 XXXX 성격이 나오는 모양이구먼. 그래 던져라 던져. 누가 겁낼줄 알고.”

“이X이 정말...”

아마 본사 직원이 없었으면 더큰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나마 다행히 거기서 상황은 종료 되었다.

 

정리가 되어지고 조회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분위기는 싸늘해져 있다. 거기다 당사자중 한분은 분에 못이기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린다. 뒷수습을 어떻게 하여야 하나. 어떤 식으로든 기분 Up을 시켜야 한다.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런 아침 상황이 이어지는한 다른 동료들에게도 악영향이 미칠수 있는 것이다. 강사인 나라도 재롱을 떨어야 한다. 이럴땐 비장의 꼼수를 꺼낼 수밖에.

“옛날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중간에 욕이 조금 나오는데 심한 것은 아니니까 귀엽게 봐주시고요. 옛날에 옛날에~”

조회시에 주부 조직원들 눈높이에 맞추어 일명 Y담이나 조금 걸쭉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열심히 주무시던 분들도 그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번쩍 뜨고 은근히 집중을 해대신다. 총각 시절에는 그런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부끄러워 하였었는데, 이제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하는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는 모양이다.

 

영업부 재직시 팀장급 카운셀러들을 대동하고 태국 시상 여행 인솔을 하였던 적이 있다. 서른명이 넘는 인원을 여행사 직원과 함께 담당을 하였었는데 기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분도 힘든데 버스 한차 인원을 관리 하기는 여간 힘들지 않았던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집결을 하기를 하나, 배정된 룸에 주무시기를 하나, 다른 차량에 탑승을 하기도 하였다. 거기다 늦은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불침번까지 섰으니. 덕분에 나는 여행 내내 관광은 커녕 차에서 못다 이룬 잠을 청해야먄 했다. 그런 와중에 가이드가 옵션 코스를 제안 하였다. 흔히 말하는 그렇고 그런 야한 쇼였다.

“그런 쇼를 보겠습니까?”

나는 우리 조직원들 수준을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는 투로 그에게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일단 소개는 해보시죠. 선택사항 이니까.”

역시나 우리 조직원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였다.

“어머, 망칙스럽게. 그런걸 어떻게 봐요. (민망한 듯)”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결국은 몸이 불편한 한분을 제외한 전원이 공연을 관람 하였다. 기를 쓰고 무대의 현장에 몰입하는 그녀들의 진지한(?) 모습들. 거기에다 한분이 내지르는 걸쭉한 고함 소리에 나는 더 이상 할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앞사람들 머리 때문에 안보이는데 마카 수구리. (경상도 사투리로 모두 머리를 숙이라는 말)”

그분은 여행 내내 가장 조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분이었다.

 

조회를 무사히(?) 마치고 삶의 치열한 현장으로 나가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짜한 마음이 가슴속 스며든다.

육중한 몸매. 굵은 팔뚝. 상대방을 제압하는 포스. 부리부리한 눈매.

그런 파워가 있기에 온갖 별의별 고객을 상대할수 있으리라.

그런 기세가 있기에 힘든 영업 생활을 견뎌낼수 있으리라.

 

낮이 되니 날씨가 풀리고 햇살이 쏟아진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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