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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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도서관 / [11-4 환자컬럼]
참 잘 생겼다. 커다란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 시원시원한 눈매에 살짝 웃는 미소까지, 매력만점의 순정만화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이름은 김형욱, 올해 31세의 오지 여행자다. 세계의 오지라 불리는 곳에서 학교에 갈 수도 없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된 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어주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읽지 않는 영어 책이나 장난감 등을 기부받아, 인도와 네팔 오지의 아이들에게 전해준다. 'KBS 특집다큐, 희망으로 지은 히말라야 도서관‘,‘EBS 네팔, 세상의 가장자리에서’,'SBS 길위의 아이들, 히말라야에 서다’ 등 방송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얼마 전에는 도서관을 짓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꿈과 여행기를 ‘손 끝에 닿은 세상’이라는 책으로 발간한 유명인사다.
그는 한 권의 책이 하나의 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dreamer 다. 그에 의하면 [룸 투 리드 Room to read] 재단을 만든 존 우드는 10년이 되지 않아 3천개의 도서관과 2백개의 학교, 150만권의 책을 세상에 전했다고 하니, 결코 황당무계한 꿈은 아니다. 인도와 네팔에 만든 도서관이 벌써 7개, 10년 안에 천개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지구별을 여행하는 그가 병원에 온 것은 몸 때문이었다. 낭만적인 여행자로 보였지만, 몸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8천 킬로미터 자전거 실크로드 횡단과 히말라야 원정 등 수년간 오지 여행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한 것이다. 식사는 물론 잠자리도 현지인들과 같이 한다고 한다. 큰 병은 없었고 타고난 강골에 건강한 젊음의 힘으로 버텼지만, 풍찬노숙하는 고단한 삶에서 비롯된 척추의 통증과 호흡기 질환이 그를 괴롭혔다. 다행히 의미있는 일을 하는 그를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후원회가 있었고, 우리병원의 원목신부님이 후원회원이셨다. 좋은 일을 하는 친구가 계속 기침을 하는 것을 보고 신부님의 측은지심이 발동하셨다. 신부님은 괜찮다는 그를 병원에 데려오셨고, 치료와 함께 다른 질병이 있는지도 몽땅 체크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독신의 그는, 후원회원이라는 중년여성과 함께 왔다. 조용한 1인실에서 치료와 함께 푹 쉬도록 해주었다. 병실에 인터넷이 없어서, 그만을 위한 전용인터넷 라인도 설치해 주었다. 세계의 오지를 다니며 피곤했던 탓이었을까? 가끔식 병실에 둘러보면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허리통증, 호흡기질환의 치료와 함께, 다른 질환의 여부까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진행했다. 병원에 오는 환자는 대부분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내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게 되면 모든 초점은 자신과 고통스러운 몸에 집중된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자신의 몸을 독하게 챙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지구별 여행자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초점은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풍찬노숙의 삶, 자신의 꿈을 이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바램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치료도 잘 되었고, 검사 결과도 좋아서 일주일 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홍보를 해주고 싶어서 메일로 그의 꿈 이야기를 담은 동영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메일 닉네임이‘로빙화’다. 로빙화? 무슨 뜻이지? 그의 책에 사연이 적혀 있었다. 대만영화의 제목인데, 'the dull ice flower. 멍청한 얼음 꽃’이란다. 잠깐 피었다가 시들어버리는 로빙화는 농부들이 차나무 밑에 두면 거름이 되어서 차나무를 잘 자라게 만든다. 죽어서도 좋은 향기를 전해주는 꽃! 자신의 몸을 태워 누군가에게 양분이 되는 존재, 그는 로빙화처럼 자신이 걷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태워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단다. 사진과 꿈 이야기로 가득찬 책의 말미에 그는 자신의 소망을 적어놓았다.
기억해 주십시오.
가장 불행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이 기특한 젋은이가 내게‘고맙다’며 자신의 책에 아래의 문장을 적어 선물로 주었다.
최우성 님께
늘 가슴 뛰고, 설레임 가득한 날들만 있으시길...
살아보면 알게 된다. 늘 가슴 뛰고 설레임만 가득한 것이 생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그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가슴 뛰는 설레임을 왜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거지?
'그래, 가장 멋진 일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의 책은 사진이 아름답다. 중동, 인도, 네팔, 티벳 등의 풍경화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풍경화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아름다움이, 인물사진에서는 뜨거운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특히 아이들의 사진이 많았다. 배운 적도 없는 카메라에 오지 아이들의 눈망울과 웃음소리를 담는다고 했다. 뜨거우면서도 얼음처럼 서늘한 사진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0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국제사진전 인물부문 대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은 사진은 아니지만, 그의 책에 있는 한 소녀의 얼굴이 계속 눈길을 잡아 끌었다. (저작권 생각않고 걍 스캔했다) 그를 계속 꿈꾸게 하고 지구별 여행자로 떠돌게 하는 이유를 이 소녀의 눈빛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사진과, 영혼을 움직이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 아래, 그의 홈페이지로 가보시라.
세상의 끝에서, 꿈꾸는 자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니...
www.worlded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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