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 조회 수 226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1. 1일차
성당안은 비워져 있다.
거기에 신과 내가 있다.
나는 그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밀린 잠은 정직하다. 졸음을 쫓기위해 머리를 흔들어 보지만 여전히 정신은 몽롱하다.
몸이 근질근질. 명현반응이 시작된다.
3일 동안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연신 시계를 본다. 저녁기도를 기다린다.
무엇이든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바심이 마음을 재촉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느릿느릿한 시간. 변하지 않는 풍경. 마음만 바삐 뛴다.
혼자만의 시간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혼자 있다는 것이 익숙치 않기에.
나도 변했구나. 본인 스스로 이곳에서 보내겠다고 해놓곤 막상 삭막하기 그지없는 건물에 들어서니 말그대로 고생을 사서 한다는 느낌.
받아 들이고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고독, 외로움, 혼자라는 느낌.
더디가는 시간속에 나는 적응 되어야 한다.
신문을 보고 싶은 세상을 알고 싶은 유혹이 일어난다.
이곳 골짜기까지 와서 바깥 소식을 궁금해 한다.
무어가 그리 알고 싶은지.
그시간도 참지 못하는 나는 바보.
오후에 이곳에 들어와 접수를 하고 방안에 박혀 있지만 솔직히 아무 할 일이 없다. 성당에도 있어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평화와 안식을 구하고 내안의 모습을 좀더 잘보기 위해서 왔지만 나는 세상을 달리고 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저곳에.
침묵이 버겁다.
그녀들의 터전인 이곳은 작은 결계가 처져있다.
잠겨져 있진 있지만 결코 넘어 가서도 넘어서도 안되는, 일반인과 그녀들과의 무언의 약속인 작은 칸막이가 우리 사이에 처져 있다.
세상도 이와 같다. 나와 너. 나와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장애물의 공간.
누가 우리를 갈라 놓았을까.
그들일까. 아니면 나자신.
그리고 그것은 쉽게 허물어질까.
혼자 기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래가기 위해서는 함께 기도해야 한다.
그녀들은 왜 공동체를 선택 했을까?
우리는 왜 연구원을 선택 했었을까?
혼자 기도해도 혼자 글을 써도 되는데 왜?
멀리가기 위해서이다. 함께가기 위해서이다. 오래가기 위해서이다.
혼자 하는 기도와 함께 하는 기도는 다르다.
그렇기에 새벽 기상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혼자가 아닌 함께 여정을 가기에 끝까지 갈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다른 이들에게 감사를 올려야 한다.
식사를 하였다. 침묵을 유지해야 하기에 앞만 보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타인의 보조에 맞추어 간다.
밥을 먹는다. 밥알을 씹는다.
시간을 깨문다. 혀로 살살 굴린다.
침을 크게 삼킨다.
꿀꺽.
천둥소리가 났다.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또하나의 밥알 무게를 숟가락으로 들었다.
어느새 밤이다.
2. 2일차
그분께서 부르신다는 표현대로 맞추어 놓은 핸드폰 알람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서둘러 전원을 껐다.
새벽 3시30분.
하루 첫 번째의 갈등이 시작된다.
더잘까 말까. 새벽 기상의 익숙함이 조금은 단련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너무 이르다.
매일 매일 그녀들의 수도원 일상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반복화, 습관화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습관화로만 정착이 될 때 나중에 이것은 반복적인 행동과 의식적인 행위로만 남는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수도원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이 행위에서 이 가운데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가지 못한다.
우리의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어떻게?
결국 습관화와 반복화 = 기쁨, 즐거움이 같이 수반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관건이다.
수도자가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평생 수도원에서 살수가 있겠는가?
글쓰는 사람이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평생 글을 쓸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것은 ‘참 지혜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룰수 있다.’라고 <신화의 힘>에서의 어느 샤먼이 말했던 것처럼, 하나의 과정을 넘어서야 만이 이룰수 있는 단계이다.
그렇다면 고통은 필요 불가결의 과정.
그런데...
잠이 온다.
습관화를 만들어 가면서 이것이 고통과 힘듬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으로 승화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마음가짐 아니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등반가나 마라토너들은 기뻐서 즐거워서만 산을 오르고 마라톤을 뛰는 것일까?
산을 올라갈 때의 힘든 여정.
황영조 선수가 말했듯 달리는 도중 너무 힘들어 지나가는 자동차에 뛰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왜 힘든 산을 오르고, 심장이 터질것만 같아 포기하고픈 마라톤을 뛰는 것일까.
직업 때문일까. 금전적 이유 때문일까. 명예 때문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그 업을 함께하는 그들의 여정.
힘든 과정을 거친후에 느끼는 벅차 오르는 감정, 희열, 카타르시스, 오르가슴이 아마도 그들을 계속 그 업에 임하게 했으리라.
이말에 빗대어 말해보면 어쩌면 모든일이 그러하듯 새벽 기상과 글쓰기에도 필연적으로 고통과 힘듬, 시련이 동반되는 것이라 할수 있다.
이런 과정을 겪고나서야 만이 정상에 오르고 결승점의 테이프를 끊게할수 있으리라.
답은 나왔다.
오르고 난뒤에 거치고 난뒤에 느끼는 만족감과 기쁨 및 성과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답은 나왔다.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전문적으로 행하는 마라토너, 등반가, 발레리나등 각종 직업인들도 일을 즐거워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고 만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의례를 거쳐야 되는 것이리라.
그들에게도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일과는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몇백년 동안 내려오는 가운데 정립된 1년 365일 똑같은 시스템 내에서 각자 정해진 노동과 행위가 매일 반복이 된다.
결코 그녀들도 이 모든 것이 즐거움만 가득해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구원에 대한 확신 등이 그들을 이곳에서 생활하게 만드는 끈이 될 것이다.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정상에 서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라.
고통을 즐겨라. 그뒤에 그너머에 네가 바라는 그것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지치지 마라. 멈추지 마라.
뛰지 못하더라도 걸어라.
나아가라 당당하게.
너는 잘하고 있다. 계속 전진하라.
그녀들을 본받아 고개를 천천히 앞으로 최대한 숙이고 다시 원위치 해본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라는 기도문은 참 좋은 것 같다.
화가 날 때, 참아야 할 때, 분노가 치밀어 올 때, 내뜻대로 되지 않을 때, 못마땅해질 때 위의 문구를 읊조려 보아야 되겠다, 마음을 다스리는 기도.
이곳 수도자들은 하루 7차례 성당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기도를 드린다.
번민과 고뇌, 갈등, 회의가 젖어 들어올 때 그들은 어떻게 할까?
마음과 몸의 방황이 끝을 달할 때 그들은 어떻게 할까?
중간에 포기할까? 기도를 멈출까? 휴식을 취할까?
일반인들은 이와 같은 피정(避靜, retreat)을 통해서 재충전을 한다지만 그럼 그들은 그러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내 생각엔 이러하다.
그렇다고 기도를 멈추면 안된다.
수도자가 기도를 멈춘다는 것은 전쟁터의 병사가 총을 버리는 것과 같다. 산모가 출산을 해놓고 아기를 유기하는 것과 같다.
글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방향이 보이지 않아도 회의과 좌절이 들어도 글은 이어나가야 되는법.
기도를 멈추면 안된다.
글을 멈추면 안된다.
사는 것을 멈추면 안된다.
달려들어라. 더 달려들어라.
오히려 유혹이, 번민이 달아날 때까지 맞서 싸워라.
묵상(默想, meditation)도 마찬가지다.
오늘 묵상처럼 잡생각이 많이 들고 잠이 밀려 들어 오더라도 멈추지 마라.
묵상의 바다에 빠져라.
‘그분을 알때만 너희는 멈추어라.’
칠흙같이 어두운 겨울밤이 모든 불을 삼킨다.
하루의 노동과 기도가 마쳐지고 성당의 모든 불들도 꺼졌다.
무섭다.
혼자 이곳에 남아 있는데 무섭다.
누군가 다가올 것 같다.
그럴 때 멀리 한줄기 밝혀주는 불빛이 있다.
감실(龕室)의 성체등이다.
모든 불이 다꺼짐에도 그 불빛 하나만 세상 홀로 켜져 있다.
무서움을 참아가며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밝혀주는 그 불빛.
그분을 밝히는 그분을 지키는 작은 불빛.
그 불빛이 있음에 나는 위안을 가지고 안심이 되고 격려가 된다.
성체등은 항시 모든 어둠속에서도 불을 밝혀야 된다.
멈추면 안된다. 희망의 등. 믿음의 등이기에.
홀로 그분과 나는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3. 3일차
침묵속에 잠든 새벽이 종이 울림으로써 비로소 깨어난다.
매번 기도시간 시작 때마다 울려지는 종소리.
뎅그렁 뎅그렁.
종은 세상을 사람을 만물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종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세상은 깨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종을 울리는 조금의 수고로움 조금의 희생을 하는 누군가의 역할이 있음으로 인해 그것은 가능해진다.
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
머리로는 다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서야 가슴으로 거듭 깨닫게 된다.
추운 겨울 새벽 그녀들이 지루하게 독서기도와 그에따른 응답송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물었다.
‘이런 수도생활 혹은 글쓰기 생활, 새벽 생활 속에서 어떻게 기쁨을 발견할 것인가?’
어떻게? 라는 명제 속에서 계속 되물었다.
그때 문득 느껴졌다.
그렇구나. 혼자가 아닌 함께 수도생활을 하는 그들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구나.
아파도 혼자라면 감내하기 힘든 생활속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이 생활을 감내할수 있지 않을까.
혼자가 아닌 함께 한다는 것!
이것이 기쁨을 발견하는 비법이 아닌가.
혹시나 내가 깨달은 이것이 과연 맞는가 독서 내용을 통하여 응답을 달라고 요청을 하니 전해진 그분의 말씀.
‘그분은 나를 업고 다니신다.’
비유를 하자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은 사자의 무리와 같다.
각기의 캐릭터를 가진 개인들이 모여 형성된 구성집단.
그렇다면 호랑이의 생활을 하는 사제와 같은 분들은 어떻게 기쁨을 발견하나 라는 의문도 생겨났다.
평신도들을 통해서 아니면...
아마도 그분과 함께 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함께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혼자 독신을 지키면서 사제 생활을 평생 수행해 나갈수 있는 것에는 그분이 함께하고 그분이 함께 가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이길.
조심스럽게 처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3일간의 기간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나.
내가 했던 일은 오로지 한곳을 바라 보았다는점.
오로지 하나를 생각하고 꼬리를 물었다는점.
돌아갈 즈음에 앞서 이젠 나를 털어 낸다.
빗자루로 나의 흔적을 먼지를 쓸어 내린다.
휴지통에 휴지를 나의 과거를 감정을 버려 내린다.
이불 커버속에 나의 땀과 간밤의 역사를 벗겨 내린다.
그리고 새로운 짐을 챙겼다.
► 트라피스트(Trappist)
<칠층산>의 저자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으로 유명한 트라피스트회는, 1098년 프랑스 시토에서 출범한 가톨릭 관상(觀想) 및 봉쇄수도원(封鎖修道院)으로 속세와 교제를 끊은 채 금역(禁域)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엄격한 고행과 침묵을 통해 기도하는 정신을 이어가는 곳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92 | <소설> 우리 동네 담배가게 아저씨 나폴레옹(2) [4] | 박상현 | 2010.12.28 | 2344 |
2091 | 꼬리 달린 대리인간의 행복 [2] | 이은주 | 2010.12.28 | 2337 |
2090 |
부티크 호텔의 매력 1 - 엄마와 딸의 여행 ![]() | 불확 | 2010.12.22 | 2723 |
2089 | 강에 대한 기억들 [9] [3] | 신진철 | 2010.12.20 | 2680 |
2088 | [컬럼] 보이지 않는 사람 [3] | 최우성 | 2010.12.20 | 2307 |
2087 | 그녀와의 극적인 만남- 절망에서 희망으로 [11] | 이은주 | 2010.12.20 | 2338 |
2086 | 12월 오프과제- version 3.0 [1] | 이은주 | 2010.12.20 | 2214 |
2085 |
칼럼. 겁쟁이가 아니야~ ![]() | 김연주 | 2010.12.20 | 2179 |
2084 | <첫 책 기획> - Version 3.0 [2] | 김연주 | 2010.12.20 | 2139 |
» | 라뽀(rapport) 36 - 트라피스트(Trappist)의 겨울에 봄이 왔다 | 書元 | 2010.12.20 | 2261 |
2082 |
하계연수 단상36 - 죽음 ![]() | 書元 | 2010.12.20 | 2888 |
2081 |
하계연수 단상35 - 북극성 ![]() | 書元 | 2010.12.20 | 2711 |
2080 | 마법이 사라진 '인생의 사막'에서 [1] | 박경숙 | 2010.12.20 | 2416 |
2079 | 첫책 목차, 외식업 마켓팅 [2] | 맑은 김인건 | 2010.12.20 | 2439 |
2078 | 어떻게 손님을 끌 것인가? [3] | 맑은 김인건 | 2010.12.20 | 2720 |
2077 | [첫책 기획] version 2.0 목차 | 최우성 | 2010.12.20 | 2206 |
2076 | <첫 책 기획> Version 2.5 | 박상현 | 2010.12.20 | 2099 |
2075 | <소설> 우리 동네 담배가게 아저씨 나폴레옹(1) | 박상현 | 2010.12.20 | 2519 |
2074 | [칼럼] 따로 또 같이, 그와 나의 취미생활(2) [8] | 이선형 | 2010.12.19 | 2273 |
2073 | <첫 책 기획> version 2.0 | 이선형 | 2010.12.19 | 22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