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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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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0일 11시 19분 등록

보이지 않는 사랑 / [12-3 환자컬럼]    

경찰이 출동했다. 보안요원과 경찰 두명이 할아버지 환자와 보호자를 원무팀으로 모셔왔다. 진료실에서 안과의사의 멱살을 잡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진료실에 가서 그냥 드러눕겠다고 계속 소리를 치고 계셨다. 보호자로 따라 온, 아들도 흥분을 못 이기고 ‘그 의사 개놈의 OO! 그게 사람이냐? 내가 컴퓨터 업종에 있는 사람인데, 의사 면허증을 박탈하게 해 주겠다’며, 걸쭉한 육두문자를 연신 날리고 있었다. 간신히 진정시키고 사연을 들어보니, 화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백내장 수술을 한 69세의 환자였다. 백내장은 매우 간단한 수술이지만 이 할아버지는 혈전억제제를 복용중이었고 신장이 좋지 않은 수술 고위험군 환자였다. 수술 중 홍체부위에서 자가출혈이 생겨 시술결과가 좋지 않았고, 인공수정체를 삽입했지만 재수술을 해야 했다. 안과 의사는 국내최고를 자랑하는 OO 성모병원 안과에 근무하다 온 교수였다. 젊고 친절한 교수였는데, 간단하게 생각했던 수술결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미안해했다. 그런데 재수술을 위해서 꼭 필요한 첨단 레이저 장비가 우리병원에는 없어서, 자신이 근무했던 OO 성모병원에서 재수술을 하시라고 권유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수락했지만, 문제는 재수술비용이었다. 할아버지는 수술결과가 좋지 않으므로 더 이상 돈을 낼 수 없다며, 병원에서 책임을 지라고 했다. 안과 교수는 병원의 어른들게 얘기해서 도움을 받아보고, 안 되면 자기 돈으로라도 치료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할아버지에게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 병원에서는‘Peer Review (동료의사 평가)’라는 과정을 거친다. 진료 과정상에 있어서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수술과정의 오류는 없는지, 책임이 있다면 그 과실이 어느 정도인지, 동료이기 이전에, 의료인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질병의 완치를 위해 의료기관을 이용하지만, 모든 환자가 100%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유명한 병원, 소문한 명의일수록 의료분쟁으로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 드러내지 않기 때문일 뿐, 수술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의료과오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Peer Review 결과는 특진(선택진료) 의사 비용을 감면해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수술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의료적인 과오를 찾을 수는 없었기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불가항력이라 하더라도, 수술결과가 좋지 않고 재수술이 필요한 경우이므로, 도의적 차원에서 특진비를 감면해주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감면 된 특진비는, 새롭게 재수술해야 할 비용의 50% 수준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원무팀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병원의 입장과 상황을 설명하고, 50% 의 금액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자, 바로 진료실로 가서 욕설과 함께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든 것이다.  

처음에는 선의를 가지고 환자를 도와주고자 했으나, 욕설을 먹고 멱살을 잡힌 의사는 감정이 악화되었다. 수술 동의서도 받았고,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설명도 있었으며, 시술과정이 잘못된 것도 없으니 법대로 하라는 식으로 말하며, 상한 기분을 표시했다. 환자는 재수술 하는 것도 억울한데, 자기 돈을 추가로 더 낼 수는 없다고 소란을 피웠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한 것이었다.  

대략 난감했다. 병원장님이 오후에 오시면 연락 드릴테니 집에 가 계시라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답을 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도, 싫다고 하셨다. 같이 응대하던 나 역시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안산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나오신 어려움부터 시작하여, 자식들 키워도 소용없이, 지금은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고단한 인생사까지 들어가며, 할아버지의 말벗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예정된 회의는 모두 취소되었고, 할아버지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종일 내 방에 앉아 계셨다.  

오후 3시, 긴급위원회를 열고 할아버지의 요청사항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결론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특별한 의료과오가 없는 상황에서 수술결과가 좋지 않다고, 재수술비용을 100% 책임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의 씨앗이 될 수 있었다. 재수술을 해서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좋을 때까지 몇 번이고 무한 책임을 지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건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위원회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고민 고민하다가 병원장님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할아버지에게 수술 1회에 한해서만 비용을 100% 책임진다는 서약서를 받을 테니, 재수술 비용을 해주자고 설득했다. 의사가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돈으로라도 해주겠다고 말한 부분은, 비록 법적 효력은 없고 월급을 받는 고용의사의 구두발언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병원의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또한 대책없는 할아버지의 예측불가능한 진료방해 행위가 충분히 예측되고, 금액이 소액인 점 등을 들어 겨우 승락을 얻었다.

힘들게 애를 썼지만,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말썽이었다. 무조건 눈이 다 나을 때까지 무한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의료는 완치를 책임지고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학에서 가능한 범위의 치료를 목적으로 돈을 내는 것이라는 것을 간신히 설득하고, 더 크고 시설 좋은 최고의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해드리겠다고 가시라고 해도, 자신은 버스비도 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직원을 시켜 병원차로 그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고, 검사와 수술예약까지,‘최고의 vip 에스코트 친절 서비스’를 해 드렸다. 
 

맹자의 고사가 생각났다.
제나라 선왕은 우연히 제사의 희생물로 쓰이기 위해 끌려가는 소를 보게 되었다. 동물의 본능으로 죽음을 직감한 소는 절망적으로 저항하며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선왕은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나라 안에 퍼지자 백성들은 왕이 인색하다는 비난과 함께 수군거렸다.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느냐?' 는 비웃음을 산 것이다. 선왕 자신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소가 불쌍하다면 양은?“ 이라는 자문에 이르니 변명할 길이 없었다.  

맹자가 그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었다. 즉 ‘소는 보고 양은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준 것이다. 맹자는 제 선왕이 눈에 보이는 소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보였기에 천하의 왕이 될 자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백성을 어찌 긍휼히 여기겠느냐는 것이다.  

왕이 소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측은지심이다. 측은의 마음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여행가 한비야를 월드비전의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하게 한 것은, 오지에서 만난 아이의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이었다. 눈에 보여야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이 사람이다. 할아버지의 재수술 비용의 경우, 일반적으로 병원의 원무팀은 중재를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재수술결과가 좋지 않으면 일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과의 젊은 교수님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재수술비용이 들어가지 않게 해주고 싶어 했던, 측은의 마음을 살려주고 싶었다. 나 또한 하루종일 그 할아버지의 인생사를 직접 듣지 않았다면, 원무팀의 조정범위를 넘어서는 경영진 설득과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할아버지는 OO 성모병원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고, 검사와 수술예약까지 해주었더니, 자신의 집까지 데려다 달라 떼를 쓴다며, 직원이 하소연을 한다.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12월 24일 수술 잡았다며? 당신이 올해 할아버지의 산타클로스라고 생각하라’말하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 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보이는 사랑’을 실천하기도 이렇게 어려운데,‘보이지 않는 사랑’은 얼마나 힘들까? 솔직히 재수술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걱정이 좀 된다. 수술이 잘 되어서, 할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이 시력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를 보내고 저녁하늘을 쳐다보니 눈이 내릴 것 같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눈이 이 세상에 가득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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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12.20 12:40:57 *.236.3.241
보이지 않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랑

제목이 오타인 듯 한데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보니 의미가  있는데요 ㅎㅎ
의료행위는 대상이 사람입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관계에서 갈등이 벌어지면
사람이라는 주체는 사라지고 감정과 이해관계가 판을 이끄는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형이, 또 다른 병원 직원이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제때 물꼬를 터주지 않았다면 일이 복잡해질 뻔 했네요. 도 닦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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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2.21 01:24:44 *.129.207.200
형 글을 보니, 글은 잘 쓸려고 애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경험한 바를 서술하면 되지요. 문제는 그 경험이 무엇이냐.겠고요. 

글은, 자기가 가진 만큼만 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나 전업작가가 아닌이상, 자기 경험을 술하는 방식이 바람직하겠지요. 

할아버지는 좀 막무가내네요. 저는 안봐서, 좀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병원 경영도 남는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그 의사 선생님은 참 좋으신분이세요. 자기 돈으로 수술비를 대겠다는 분. 요즘 세상에 드문데요. 

아무쪼록, 책쓰기는 경험을 쓰는 것이지, 머리로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 형글에서 배워요. 그리고, 뒤에 맹자 이야기는 앞의 내용과 아귀가 딱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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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0.12.21 06:54:55 *.168.224.196
갑자기 아빠가 백내장 수술을 한 사실이 떠오르네요. 계속 수술이라는 것이 겁이나셔서 미루다했는데 다행이 결과가 좋았죠.
그 할아버지는 눈이 잘 보이는 않는 두려움에 가족이 있어도 다 소용없고 자기밖에 없다는 외로움까지 더해져 마치 세상의 끝에 놓여있는 듯한 심정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같아요. 측은지심이 발동했다가도 물론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염치없어지는 그런 행동들에 점수를 깍아먹고 계시는 게 더 안타깝지만요.
사부님말대로 어떤 그을 채집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느낌이 이번글을 읽으니 더 확실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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