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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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여는 자가 자아이며 말솜씨가 뛰어났다. 그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이렇게 물었다.
“부모의 상을 삼년이나 치르는 것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군자가 삼 년간 예를 닦지 않는다면 예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삼 년 동안 음악을 팽개친다면 음악도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나면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햇곡식이 익고, 나무를 비벼 얻던 불씨도 한 해에 한 번씩 바꿉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상도 일 년이면 됩니다.”
<중략>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년상은 세상의 합의된 예의이다.”
-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 “자식은 태어 난지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난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을 때 나는 생각했다. “삼년? 벗어나? 그게 가능한 거야?” 물론 공자가 이야기하고자 한 바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자식이 삼년 만에 부모 품을 벗어난다고 얘기한 공자가 조금은 어이없었다.
그로부터 하루 이틀이 지났을까. 33개월 쯤 되는 딸아이는 아침에 돌연 어린이집을 가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제법 울먹이는 딸을 몰아세울 수 없었다. 선생님께 할머니를 내보내고 아이와 누워 이야기를 시도했다. 아직은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아이다. 나는 최대한 무언가를 캐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하루쯤은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온 할머니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아이는 어제 한 시간 가량을 울었다고 했다. 처음의 운 이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친구들이 달래도 선생님이 달래도 그치지 않고 한 시간을 자신의 고집대로 버텼다고 한다. 그래, 그 사건 때문이구나. 암담했다. 아이는 가야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평소 아이가 기대는 할머니를 집밖으로 내쫓았다. 아이와 마주 앉았다. 아이의 울음은 잦아들어 있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레 가지 않겠다고 우겼다.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확인한다. 울었다 한다. 친구들이 달래 주었다 한다. 그래도 울었다는 대답을 하면서는 나를 보지 않는다. 나를 닮았다. 눈물이 나려 한다. 아니, 눈물이 난다. 너무나도 나를 닮은 아이 앞에서 눈물이 난다. 그 모습이 서럽다. 나를 닮아 힘든 아이가 마음 아프고 서럽고 눈물이 난다. 아이를 안으며 애써 눈물을 삼킨다.
단호하게 아이에게 가야한다 말하고 아이의 옷을 입히고 아이의 가방을 챙긴다. 아이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식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다. 아이는 울며 내 다리를 안아온다. 나중에는 포기했는지 울음을 그치고 평상시로 돌아온다. 학원 아이들에게 받은 과자 한 개를 쥐어주고 아이를 태워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와 헤어지기 삼 단계를 마치고 어린이집으로 들여보낸 후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대체로 수업을 잘 따라간다고 한다. 너무 어린나이에 떨어뜨려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말로 표현하는 법도 제법이라고 한다. 순간 우쭐해진다. 그래 내 딸인데 누굴 닮겠어?
감정의 표현이 아직 힘들다는 말을 한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들다 한다. 말랐지만 키도 크고 형제가 없어도 말을 제법 잘하는 아이인데 아이는 감정적인 면에서 아직은 또래 아이들보다도 어리다 한다. 만 3세가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기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욕구도 많아진단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시키기도 하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조금 뒤에서 바라봐 준다고 한다.
아이는 사돈의 팔촌까지 들먹여도 혼자다. 아직 누군가 배에 담고 있는 아이도 없으니 적어도 일 년은 그럴 것이다. 가까이 있는 친구들 중에서도 나는 단연 빨랐다. 아이는 그렇게 아빠는 없어도 많은 식구들과 이모들 사이에서 자랐다. 태어났을 때 2.56kg. 하품하는 것도 신기했고 울음소리도 신기했다. 무언가를 하나 해낼 때마다 탄성과 감탄사의 연발이었다. 가장 철없는 엄마에게서 태어나 한 가지가 부족해 보이는 아이는 모두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아이에게 부족해 보이는 한 부분을 메우려 우리는 엄청난 사랑(?)을 표현했다.
걷기 싫으면 돌려가며 누군가 안아주었다. 아침이면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7시면 문을 여는 동네 빵집의 단골손님이다. 졸린 아이를 차에 태워 동네를 열 바퀴쯤 도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수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우리는 단 한명의 아이를 그렇게 예쁘게 키웠다. 한 없이 어리고 작은 존재 그게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이제는 자라나 스스로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자립심과 책임감을 배우고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아도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해도 아이는 그 정도의 단계에 와있다고 한다. 이제 아이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뒤로 놓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 한다.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미 자란 아이를 어린애 취급하며 아직은 요람 안에 머물게 하고 있는 나와 달리 어린이집에서는 하나의 몫을 하도록 했으니 아이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그래 자연히 집이 더 좋았겠지. 새로운 세상에 두려움이 생겼겠지.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나가는 것 보다 자신의 껍질 안이 편했겠지.
차로 돌아와 운전대를 잡으며 생각한다.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밥도 다 먹여주고 오늘처럼 네가 힘든 날이면 항상 안아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아이는 나아가야 한다. 후퇴처럼 보이는 길일지라도 제 자신이 지나가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긴 터널처럼 보이는 그 길로 아이를 밀어 넣고 출구를 향해 죽자 살자 뛰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기다리다 안아주는 수밖에 없다. 그 터널을 제 자신이 지나가지 못했을 때 기다리는 것은 더 길고 험한 터널임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3년. 아이는 그만큼 자라있었다. 나는 그간 자랐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아이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잠든 아이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던 순간이 있었다. 작은 불빛 아래 아이를 바라보다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나에게 해 준 것들을. 그것을 이제는 이 아이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은 두렵고 과연 해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이미 부족한 것을 안긴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를 낳아야 제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이제 우리 부모가 잠잘 때 나를 쓰다듬어 주고 이불을 덮어주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이면 나를 보고 마음아파 하던 그 마음이 조금이나마 헤아려진다. 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가 덜 할 수가 있을까? 사랑하면서도 표현할 수 없었던 부모를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지금쯤 온갖 이불을 다 차며 자고 있을 게다. 어렸을 때부터 세 번만 차면 발을 드러내놓던 아이이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거다.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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