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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5일 08시 37분 등록
인연의 길잡이들.jpg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마음은 매번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한다.

또 하나의 결심을 가지고 행동에 옮길 때 과연 그것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새벽 수련을 통해서 무언가 이루어 보겠다는 여정이 300일차 마지막 차수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 동참한 이들을 위한 킥오프의 모임.

한 사람 한 사람의 꿈들이 모였다.

영어, 달리기, 독서, 글쓰기, 내면의 지적 탐구등 자신의 달성할 목표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주인공들이 참석 하였다.

학교 선생님, 직장인, 가정주부 등 다양한 직업들과 개인의 사연들이 있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

자신의 천복(天福)을 찾고 그것을 심화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였던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긴 밤을 하얗도록 새우고 말았다.

아마도 서로를 채워주는 꿈들의 인연이 그날의 시간을 그토록 오래도록 연결시켜 주었나 보다.

살아오면서 겪어 보니 나란 인간이 그렇게 미덥지 많은 않다.

그래서 그런 약함을 알기에 이런 과정에 참여 하여서라도 함께하는 분들의 격려와 지지로써 나약함과 의지박약을 떨쳐 버린다.

 

떠올려 보니 세상사 모두가 내가 잘나서 혹은 저절로 혼자서 된 것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크든 작든 소소한 갈래들이 모여서 현재의 나를 형성 하였다.

내가 성장해온 과정도 그러하였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수많은 만남과 인연의 길잡이들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 친구, 회사 동료, 그리고 …….

 

어린 시절. 몸의 허약함으로 방과 후 집에 가는 도중 너무 지쳐 어느 점포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 문을 열고 나와 따뜻하게 건네는 누군가의 보리차 한잔으로 나는 힘을 얻었다.

밤을 새운 나의 미술 작품에 참 잘했어요! 파란 도장을 찍어주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무한한 기쁨과 행복감을 만끽 하였다. 그때 나도 잘하는 것이 있구나 라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가질 수 있었다.

초등학교 교생 선생님. 그녀로 인해 여성 이라는 존재감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덕분에 어수룩한 내가 결혼을 하여 토끼 같은 마눌 님이랑 그나마 이렇게 싸우지 않고 살고 있다.

당시는 그렇게도 싫어했었지만 음악을 전공하신 담임선생님. 그로인해 처음으로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접하게 되었다. 내 인생 언제 다시 그런 기회가 있으랴.

파격 이었다. 교과서가 중심이 아닌 학생들의 궁금한 점을 칠판에 가득 적어놓고 응답을 해주셨던 국민윤리 선생님. 어머니란 타이틀의 숙제에 대해 A3 용지 앞뒷면을 빽빽이 채워 과제를 열심히 제출한 나에게 과분할 만큼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마도 내가 책을 출간케 된다면 이의 마리츠버그 역의 시발점은 여기였었으리라.

담임선생님은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아셨는 모양이다. 기대에 못 미쳐 죄송했지만 처음으로 월례고사때 전체 석차에서 중간으로 오르게 하였던 화려한(?) 전적을 만들어 내게 해주셨다.

기술 수업시간. 시험을 치루고 나면 틀린 개수만큼 매질을 하였다. 그것도 교단 앞으로 나와서 아이들의 새까만 눈동자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바지와 팬티까지 내리게 하는 매질을. 어찌 보면 비인격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 덕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독을 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결심이 서게 해주었다.

고등학교 3년을 함께한 아이들. 인생 전반부의 쓰레기들이 모였다. 연합고사 시험에 떨어지고 갈 데가 없어 나처럼 모인 삼류 인생들. 하지만 거기에도 장미꽃은 피었다. 이렇게 인생을 살면 안 되겠다는 독한 결심과 각오로써 깡을 키워준 그들.

대학교의 생활. 동아리 선후배들을 통해 낭만과 한없는 자유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 인생 그렇게 원 없이 놀아 보기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신학교에서의 동기들. 짧은 기간 이었지만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헌신하려는 꿈들을 가진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신부가 되거나 혹은 나처럼 결혼을 한사람도 있지만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였던 그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아직도 나는 작은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

직장에서의 영업부 첫 상사. 당신은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었지. “이승호. 이렇게 직장생활 하는 데에 눈치가 없고 수식이 어두워서 영업부 생활을 제대로 하겠어?” 나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놓고 나를 깨는 그 상사로 인해 나는 더욱더 기가 죽었다. 매출에 대한 증원에 대한 부담감이 백배가 되어 나를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게 하였다. 사표를 언제 낼 것인가 그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덕분에 그런 생활을 통하여 그나마 사회에 대한 조직에 대한 적응력을 조금이나마 키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대단한건 나 자신이 포기를 안했다는 점.

 

다양하게 스쳐간 그리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길 위의 도반(道伴)들.

그들의 관계 속에 나는 성장이 되고 배운 것의 보시(布施)를 통해 세상은 돌아간다.

거기에 각자 생김의 역할이 있고 쓰임새가 있다.

그 속에 바람이 있다면 그들의 진면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포용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자기의 그릇대로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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