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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7일 11시 58분 등록

칼럼. 존재감 없는 아이.

 

종혁이가 사라졌다. 아이가 4교시부터 사라진 것을 반 아이들도 심지어는 짝궁도 몰랐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급식당번인 종혁이가 없는 것을 난 아침부터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을 떠올리며 보건실에 갔겠구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종례시간이 되어서야 여전히 종혁이의 자리가 빈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물었으나 종혁이가 사실 언제부터 자리에 없었는지 녀석의 짝궁을 비롯한 반 아이들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웃으며 “관심받고 싶었나봐요.”라고 말하며 종혁이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그토록 종혁이가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나, 내가 아이에게 너무 관심이 없었나 하는 생각에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종혁이는 왜 ? 언제 어디로 갔을까?

사실 6교시에 6반에 들어갔다가 그 반에 아이들 3명이 어느 순간 없어졌는데 언제 없어졌는지 그 반 아이들이 아무도 모른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여겼는데 황당하게도 6반 녀석들과 우리반 종혁이가 함께 없어진 것이었다. 알고보니 종혁이는 6반의 3명과 단짝이었다. 6반 아이들도 사라진 아이들이 왜 학교를 나갔을까 궁금하게 여겼다. 무단 조퇴를 하며 전혀 말썽을 피울 아이들이 아니었기에 그 애들이 왜 나갔을 것이라고 묻는 내 말에 튀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라며 어이없어했다.

종례를 마치고 마음이 급해져 종혁이 핸드폰에 전화를 했지만 꺼져있다. 어머니에게 바로 연락을 했더니 근무중이라 한참 뒤에 전화를 받으시고는 깜짝 놀라셨다. 서로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기로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 모두에게 연락이 되지 않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아니면 자주 이렇게 학교를 나서는 아이들을 풀어 직접 발로 뛰는 거나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내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오늘 저녁에 집에 들어오나 기다려본 후 나머지 방법을 취해보겠다고 하셨다.

이른 아침 출근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린다. 종혁이 어머니가 어제 밤에 종혁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나보다 더 마음 졸였을 텐데 죄송하다고 말씀하신다. 학교에 가서 다른 반 아이들에게 연락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학교에 가니 3명이 한꺼번에 나간 6반 담임샘이 다행히 3명중 1명은 어제 전화가 되었고 집으로 들어가 오늘 학교에 올 것이라고 했다. 유일하게 돌아온 6반 오군에게 어제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같은 반 황군이 학교를 나가서 놀자고 제안을 했고 단짝인 녀석들 모두 ‘그래 나가보자’라고 동의를 해서 함께 나가서 간 곳은 PC방이었다고 한다. 오후 내내 PC방에서 4명의 총 자금인 문화상품권 1만원을 사용하고 돈이 떨어져 나왔는데 자신은 집에서 전화가 계속 와 겁이나 먼저 집으로 들어왔고 아이들은 더 놀겠다며 어디론가 갔는데 그 뒤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오군도 지금 아이들이 어디쯤 있을지 짐작을 못했다. 아이들의 행방이 묘연했다. 없어진 아이중 황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배고픈 것을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들어하니 곧 들어올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더욱 불안하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고, 종혁이 어머니도 회사를 조퇴하고 아이들이 놀만한 곳을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결국 실종신고를 했다.

아이들이 없어진지 이틀이 지난 다음날 아침 6시쯤 종혁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종혁이가 들어왔다며 종혁이를 데리고 아이들 등교시간에 맞추어 학교로 오겠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종혁이가 교실 복도에 서있다. 아침 일찍 일을 나가야하는 어머니는 종혁이를 나에게 인도한 후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시며 사라졌다. 새벽에 들어왔다더니 눈이 반쯤 풀린 졸린 눈의 종혁이가 안쓰러워 보이지만 강하게 나가야지 다짐하며 학교를 나가서부터 오늘 새벽에 집에 들어오기까지 무엇을 했는지 적으라고 했다.

종혁이는 어차피 학교에 있어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노니까 나가서 더 재밌게 놀자는 친구의 말에 따라 나갔다고 한다. 자신에게 있던 1만원 문화상품권으로 4명이서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놀다가 저녁에 아는 형들을 만나 그들이 사주는 밥을 먹고 지하도에서 형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간간히 새우잠을 자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배도 고프고 힘들기도 한데다 더 놀다가 들어가면 정말 많이 혼날 것 같아서 오늘 새벽에 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다시는 무단으로 학교를 나가거나 가출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종혁이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가출을 한 뒤로 종혁이는 여전히 마음을 못잡는 듯 보였고 선생님들도 종혁이가 요즘 특히 멍한 표정으로 수업시간 내내 무기력하게 있는다며 한 번 다갔다 온 뒤로 이상해졌다고 말씀들 하셨다. 종혁이가 다시 돌아온 뒤 1주일이 흘렀을까 출근하기도 전인 이른 아침에 종혁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종혁이가 아파서 오늘 병원에 들른 후에 학교에 가야겠다고 말씀하신다. 무슨 일인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묻는 나에게 어머니는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다가 종혁이가 사실 아버지에게 맞았다며 머리를 때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종혁이가 피하다가 머리를 맞아 심하게 찢어졌다며 치료를 하고서 학교에 보내겠다고 하신다. 반나절이 지나서 학교에 온 종혁이는 수술 부위를 가리기 위해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넋이 나간 아이처럼 멍하니 나를 보며 머리를 꿰맸다고 하며 진료확인서를 건내준다.

종혁이는 머리를 다친 이후 더욱 멍한 표정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수업에 도무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엎드려 자는 시간이 더욱 들었다. 그런 종혁이를 보면서 아무리 잘못을 해서 때려도 사실 다른 곳을 때리려다 머리가 맞았다고 해도 이건 심한 폭력이라는 생각도 들고 혹시 종혁이의 가출이 이렇게 매 맞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보니 새학기가 시작된지 2달이 꼬박 지났는데도 종혁이와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질 못했다. 종혁이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친구들과 집에 가려는 종혁이를 불러세워 도서관으로 갔다. 마침 중간고사 시험점수도 나왔으니 이참에 상담을 해야겠다 싶었다. 종혁이의 점수를 보니 이미지와 너무나 다른 끝에서 3번째. 이 점수가 이번 가출 때문에 떨어진 것인지 원래 이런 점수였는지를 물었다. 종혁이는 원래 이런 점수였다며 자기는 공부를 해도 소용이 없다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풀이 죽어 말을 한다. 공부를 언제 해봤냐고 물으니 2학년 때 예습도하고 복습도 했는데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고등학교 진학하고 싶냐고 물으니 지역에서 가장 점수 낮은 정보고 이름을 댄다. 정보고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니 아무 공장에서나 일을 하겠다고 한다. 원래 꿈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냐고 물으니 꿈을 포기한 이후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졌다고 한다.

종혁이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대신 매일 게임을 한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집중이 안 되고 게임만 생각하고 집에 와서도 자기 전까지 게임을 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게임만하기를 중학교 2학년 초까지. 그런데 그렇게 게임만 해도 공부를 못하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집에 가서 복습을 하고 학원을 다니고 종혁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이제는 공부하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포기하고 나니 그냥 더 놀게 되었다고 한다.

종혁이에게 아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미래를 그려보니 행복하냐고 물었다. 행복하지 않다고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행복하지 않은 길인 것을 뻔히 알면서 그 길을 가고 싶냐고 물었다. 물론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누구나 행복한 길을 가고 싶지만 행복의 길을 선택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종혁이도 그 방법을 아직 못 배웠을 뿐인데 벌써 인생에서 포기하는 것을 먼저 배운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이번 학기 새로 시작한 대학생 멘토 수업에 종혁이를 추천했다. 그룹과외식으로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학교에 와 방과후에 아이들을 지도해주는 것인데, 종혁이가 대학생멘토들과의 수업에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기쁨과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겠지하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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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5:21:10 *.230.26.16
어떻하면 좋을까. 가정환경이 힘들어도 나름대로 목표가 목표가 있는 아이들은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간다. 최소한 참고 견디기라도 하지. 그 목표가 어른들이 보기에 아무리 우스워보여도, 반대로 세상물정 다 아는 애늙은이 같아 보여도 그들에겐 확실한 힘이 된다. 그런데 아예 이렇게 벌써 무기력을 배워버린 아이들은 어떻하면 좋을까.
연주샘의 글을 읽다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매 순간 그런 질문에 부딪치며 고민할 연주가 참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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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17 18:03:50 *.236.3.241
노력해도 안 되더라는 경험은 참 독이지.
어른이나 아이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건
참기 어려운 일이지. 대학생멘토들과 연결시켜
준 건 종혁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고생 많으셔, 연주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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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1.05.17 21:48:57 *.42.252.67
이번에 작은 아이 고등학교 졸업식을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고
나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수 없이 혼자 한다.
엄마도 없이 혼자 학교에 다니며 얼마나  수 없는 유혹과 힘든 일이 있었으랴만은
졸업을 한다니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다.
아이를 낳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한 인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일이기도 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선생님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보람 된 직업인 것 같아.
연주야 가정이 아이를 버려도 선생님만은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 주어야 한다.
참 잘하고 있는 연주샘의 아이들에게 어린 시선과 관심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 많은 부모들이 공감하는 날이 오리라 나는 믿고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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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08:43:48 *.10.44.47
어째 내 눈엔 종혁이보다 종혁이 엄마의 고단한 일상이 먼저 들어온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또 얼마나 스스로를 꾸짖고 있을지...
만약 종혁이 부모님께서 더 살뜰히 아이를 살펴주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던 걸까?
아니 오늘의 종혁이에게 가장 절실한 영양소는 결국 부모의 사랑인걸까?
혹 정말 그런거라면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은 그녀에게 또 얼마나 무겁게 느껴질까?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연주야. 부디 힘 내라!!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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