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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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본 인간들의 삶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 보면 참 재미있다. 아침, 저녁 열심히 씻는다. 입을 크게 벌리고 거울을 들여다 보며 이빨을 닦는데도 이빨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팽팽 코 안까지 청소를 하고, 귀 구멍까지 청소를 해야 몸단장이 끝난다. 그리고 부엌으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가는 엔지의 뒤를 나와 방울이는 쪼르르 따라간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그리고는 도마에다 무엇인가 놓고 사정없이 자르고 두드리고 참 부산스럽다. 냄새가 근사해 옆에 앉아 끝까지 지켜본다. 한 점이라도 흘리는 것을 먹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맛 없게 먹는 밥을 하나도 안 흘리고 먹는다. 도대체 매일 다른 반찬으로 먹는 밥이 왜 사료를 먹는 개들보다 즐거워 보이지 않을까……. 이제 먹었으니 달그락 거리며 설거지를 한다.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손을 씻고 나면 단 한끼의 식사가 끝난 것이다. 그녀는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서 마신다. 그 냄새는 정말 구수하다. 냄새라도 맡으며 옆에 앉아 있는 것도 행복하다. 엔지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밥을 먹고 치우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인간들은 커피를 먹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틀림이 없다. 커피를 다 마시면 후다닥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저 놈을 피해 몸을 숨기고 피해 도망 다니는 시간이다. 몇 년을 보아도 적응 되지 않는 기계과 소리가 청소기이다. 이 시간이 우리의 운동 시간이다. 피하며 뛰고 숨고 한바탕 숨바꼭질 놀이라도 하듯 집안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오전의 일은 끝이 난다.
점심이 되면 또 움직이기 시작한다. 먹고 치우기를 반복하고 집에서 일을 하는 날엔 집에 있고 엔지가 일이 있는 날엔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다. 또 저녁이 되면 지지고 볶고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가 끝나면 욕실로 들어간다. 거울을 들여다 보며 눈을 크게 뜨고 거울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이리저리 살피고는 씻고 나오면 하루는 이미 어두운 밤이 되어 있다.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두드린다. 인간의 수명을 80세까지 친다면 인간은 136,600 번의 밥을 먹고 58,400을 씻는다. 그러면서 늙어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갑자기 얼굴을 두드리며 좀 더 덜 늙어보겠다고 얼굴에 잡힌 주름에 영양크림을 펴 바르는 엔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엔지는 늘 맛 없는 딱딱한 사료를 두 끼 먹고, 잠으로 시간을 보내며 주인을 기다리는 우리를 안쓰러워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저 지쳐 들어오는 그들에게 꼬리를 치고 반가와 해 주는 일 밖에 없다. 그래도 인간들은 그 일 하나에 지친 피로가 풀리는 얼굴로 안아주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엔지는 자신이 힘이 들거나 마음이 울적한 날에 나와 방울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때는 분명 자신의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반대로 나타나는 보상심리이다. 사료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부엌에서 시간을 더 보내기도 하고, 더 많이 안아주고 산책을 시켜준다. 생각이 있는 개로서 나는 그것이 그다지 좋기만 하지를 않다. 그녀의 일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 들인다.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알기에 열심히 돌아간다. 사람들도 자신의 해야 할 일에 열심히 돌아가다 기계보다 잦은 고장으로 무기력하게 주저 앉는다. 하지만 개들이 보는 인간들의 세상은 재미있고 부러운 일이 많다. 딱딱한 사료보다 부드럽고 늘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다는 점은 상상만해도 침이 흐른다. 구수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그 시간의 여유 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도 멋져 보인다. 자신을 치장하고 매일 다른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아마도 인간들에게 개들과 삶을 열흘만 바꾸어 살자고 하면 어떤 반응을 할까? 인간들이 부러워하는 개들의 삶과 바꾸자는 제안은 그들에게 달콤한 유혹일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의외로 단순하다. 매끼 반찬 걱정을 안하고 밥을 먹을 수 있고 일을 안 해도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게다 잠을 실컷 잘 수 있다는 제안에 개가 소고기를 덥석 물듯 물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인간은 개들에게 삶을 다시 바꾸자고 쫄랑쫄랑 따라 다닐 것이다. 마치 개처럼 말이다. 그러나 개들은 그 일을 계속 지속적으로 해나가며 즐길 수 있기에 바꾸지 않겠다고 멀리 도망 다닐 것이다. 인간은 놓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개들처럼 얼마 되지 않는 사실을 모른다. 입고 태어난 한 벌의 털옷으로 사계절을 산다. 아니 평생을 산다. 매일 같은 사료를 먹고, 잠을 자거나 주인을 기다리는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개들이 인간의 다양한 변화를 맛 보며 사는 삶을 살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로 안 바꿀 것이다. 자신의 일상이 지겹다고 느끼는 인간들이여 나에게 오라! 언제든 나는 당신의 삶과 바꿔 줄 준비가 되어 있다. 단 절대 다시 바꾸자는 제안은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시각이 되어보는거, 아니지, 견공의 시각이 되어보는 묘미가 있어요.
근데, 언니, 난 좀더 다이나믹한 거시 당기니 이도 취향의 탓으로 여겨주시길 ^^;;
언니가 이전에 해준 잼나는 이야기들을 칼럼으로 마구 풀어주면 대박일텐데, 그거이 계속 기다려지네요.
막 생각나는 거 하나만 들면,
언니가 지난 졸업여행때 입고 온 옷, 그 옷에 얽힌 에피소드 같은 것을 오리오의 시각으로 풀어주면 어떨까요?
왜 인간은 옷에 집착하는가, 털이 약해 추위에 덜덜 떨지라도 옷입는 걸 거부하는 오리오가 볼때 참 신기한 인간들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가볍고 잼있게, 그리고 날아가게, 그런데 읽다보면 무언가 한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거,
이거 언니 주특긴데...
언니,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길 계속 기다릴께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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