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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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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9일 21시 35분 등록

#10. 신치가 사는 법

#2. <신치의 모의 비행> 두 번째 서문 쓰기

영심이, 룰라, 김완선, 강수지,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뉴키즈온더블럭.

이 단어들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면, 당신은 지금 청춘이다. 하지만 모두가 똑 같은 추억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각기 다른 것들에 열광했다.

그리고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은 지금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나름의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픈 청춘’,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의 망원경을 만들어 우리들을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며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와 내 친구들이 무슨 생각으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저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를 자기들 마음대로 정의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청춘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얘기하면서 안타까워하고, 미안해 하며, ‘이 또한 지나갈 거라며힘을 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힘들지 않다. 아프지도 않다. 나만의 방식으로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매 선택의 순간에 내가 가장 즐거울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서 오는 장애물들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그 순간들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인생에서 마주하는 선택에 대한 결정이 매번 즐겁고 기쁠 수만은 없다. 선택 때문에 힘들어 질 수도 있고, 상황이 악화되기도 하며, 그로 인해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은 청춘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10대 때도 좌절했던 순간이 있었고, 앞으로도 시간이 흐르면 그 나이대의 고민과 선택들로 인한 또 다른 좌절의 순간들이 나를 찾아 올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생각과 나의 삶을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살면서 겪고 있는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들. 굳이 나를 걱정 해 주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고 있음을 얘기하고 싶다. 나를 위로하려는 당신과 당신의 청춘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과 선택들로 지금의 삶을 만들어 왔듯이, 나 역시 나만의 생각과 선택들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를 포함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내 삶이 표본이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보지 않으련?’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하나 없지만, 나는 여전히 나만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고민에 누군가는 공감해 주고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삶에서 어떤이는 자신의 삶을 찾아서, 공감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이 책이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니? 우리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구나?’라는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흔히 세상이 정해놓은 청춘이라는 카테고리에 함께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을 수 없다. 눈이 부신 한 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해 수백만가지의 색으로 나누어지듯, 우리들의 삶도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의 삶에서 공감을 느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들 중 하나일 뿐이다. 지난 8월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는 여름에 열흘 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내 삶에서 선택의 기준이 책임에서 자유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자유로운 삶내가 즐거울 수 있는 삶을 꿈꾼다. 4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도시락을 싸다니며 아낀 점심값으로 내년에는 이탈리아 루카로 떠날 것이다.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꾼다. 누군가는 내게 철없다’, ‘결혼은 언제 할거냐라고 물어볼 것이다. 나는 남들이 사는 대로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결혼을 의무감으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내 삶이 흐르는대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다가 내 마음과 발길이 멈추는 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싶다. 그곳이 꼭 대한민국일 필요는 없다. 세상은 넓고 내 발길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많다. 내 삶이 어디로 갈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도 모른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라 가다 보면 그 곳에 내가 원하는 삶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내 인생의 맞춤형 답안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꼭지7. 부모님을 부양하는 청춘?>

내가 태어나자마자, 돌도 지나기 전에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셨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생활비는 줄어들었고,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정부의 돈을 받기 시작했다. 두 다리의 길이가 달라 걸을 때 절룩거리긴 하셨지만, 평소에는 잘 걸어 다니시던 아버지가 왜 동사무소 사람들만 오면 전혀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지 어릴 적엔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던 수 많은 편법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시에 했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우리 가족의 생활비 중 일부인 그 돈을 받기 위한 연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애등급이 그렇게 받기 힘들다는 장애 1급이라는 것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연례 행사처럼 치러지는 엄마아빠의 쇼를 보고 있자니, 언제부턴가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꼭 저렇게까지 해서 돈을 받아야 해?’ 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슴의 또 다른 한편에는 우리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빨리 돈 벌어서 저 돈 안 받아도 될 정도로 잘 살아야지.’와 같은 기특한 생각도 하곤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연기까지 해서 돈을 받아보려는 엄마와 아빠가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창피함은 결국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의 불씨를 크게 지펴주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오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의 단절이 필요했다. 나와 내 가족을 전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로지 로써만 보여줄 수 있는 세계, 그것이 내게는 바로 대학이란 공간이었다. 어렵게 찾은 나만의 세계에서 내가 그토록 창피해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행동으로 받을 수 있었던 그 돈의 일부가 매달 생활비가 되어 내게로 돌아왔다. 당장 내 눈 앞에서 보여지는 창피함은 사라지고, 창피함에 대한 결과인 돈만 내 통장으로 들어오니, 죄책감은 조금씩 사라졌다. 결국 당연히 받는 것이 되고 말았다. 대학교 4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존재했기에 그나마 정당하게 받을 수 있었던 그 돈이 끊길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여동생과 내가 2평 남짓의 고시원에 살고 있던 서울로 남동생과 엄마가 이사를 오기로 결정을 하면서 우리 집,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에게는 비상시국이 되었다. 당장 먹고 사는 것도 걱정인데, 그 돈마저 끊기면 정말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나는 원래부터 고시원비를 제외한 각자의 생활비와 학비는 아르바이트와 장학금 그리고 학자금 대출 등로 해결하고 있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당장 고3인 남동생이 문제였다. 그래서 엄마는 서울에 집 한 칸이라도 얻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에 일을 하러 갈 결심을 하게 된다. 젊은이들이 워킹할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가서 농장일이나 소시지 공장 등에서 일하면 한국에서 버는 것보다 최소 2배 이상을 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에 가면 50대 아줌마인 엄마가 한국에서 하루 종일 설거지하면서 한달 꼬박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의 최소 두 배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 가 불법체류 노동자의 삶을 시작하고, 우리 3남매는 서울에서의 고시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본에 가 있던 엄마에게 가끔 전화가 왔다. 엄마는 소세지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우리들 살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하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그저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랑 다르게 음식도 참 깔끔하게 먹는다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가끔 들려주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가 함께 사는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어서 마음 고생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당시만 하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휴학을 하고 1년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오던 때였다. 하지만, 내게 휴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빨리 졸업을 하고 돈을 벌어서 엄마의 경제적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2005년 가을, 엄마가 일본에 가기 전에 해당 공무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잘 한 덕분에 아빠가 살아 계실 적에 누리던 혜택을 다행히 계속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운이 좋게 지금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엄마는 일본에서 고생하며 번 돈 300만원을 우리에게 보내주었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서울 하늘 아래 오손도손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생겼다. 여전히 엄마는 서류 상으로 아픈 사람이고, 우리는 그 덕분에 나라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와 내 동생들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매해 한 두번씩 임대아파트에 살 자격을 검사하는 그 날이 돌아왔다. 지금까지는 서류로만 확인을 했는데 이번에는 아파트로 사는 모습을 직접 보러 온다는 것이다. 정말 서류에서처럼 엄마 혼자서 살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실사를 하러 왔던 사람이 돌아간 저녁, 엄마가 내게 말했다.

 

이제 서류상 너희가 엄마를 부양할 수 있는 나이라서 자격을 유지하기가 힘들 수도 있데. 근데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식들이 부모 부양하는 게 가능하냐? 부모한테 손 안 벌리고 지 앞가림이라도 잘 하면서 살면 다행이지

 

엄마의 이 말을 듣는데, 쓴웃음이 나온다. 거짓이 아니라 엄마가 정말 거동도 할 수 없고, 경제활동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분명히 나와 내 동생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각자의 꿈을 찾아 미국과 호주로 떠나지 못했을 것이고, 내년에 이태리로 떠나겠다는 나의 계획 같은 건 상상도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달 받을 월급의 크기가 아닌 마음의 소리만을 쫓아다니면서 4군데의 회사를 옮겨다닌 2011년이 내 인생에 아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6년째 회사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있으나 엄마에게 생활비를 드린 기억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취업을 하고 나서 부모님에게 매달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꾸준히 드리는 친구들은 드물다. 정말 엄마 말처럼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쁘니 말이다. 취직 못해서 부모님께 손이라도 안 벌리면 정말 다행인 세상이다. 1년 내내 원서 내고 취업 준비만 하다가, 결국 군대로 다시 들어간 친구가 생각이 난다. 친구가 처음에 그런 결정을 내리고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서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 아직 젊은데, 조금 더 시도해 보면 안되? 군대는 언제든지 갈수 있잖아?”

 

하지만, 친구가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알고 있었지만, 졸업하고 1년 이상 지난 상황에서 언제 끊길지 모르는 아르바이트로만 연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자 결국 친구 자신으로써도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군대에 다시 입대했다. 하지만, 몇 달 후, 그 친구는 사회에 대한 미련이 남아 결국 군대 생활을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사회로 나왔다. 그렇게 돌아와서 보낸 1. 취직을 해 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보는 면접마다 족족 떨어졌다. 너무 지쳐버린 친구는  결국 사회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얼마 전에 다시 군대로 돌아 갔다. ‘이번에는 진짜 말뚝 박을거다라는 비장함을 남기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적 소수의 가정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사회 속에서 숨쉬고 있기에 가슴 한 켠에는 늘 죄책감을 안고 살아 간다. ‘내가 조금 더 잘 살았더라면,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었을텐데, 졸업하고 6년이 지나고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혼자 살기에도 벅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그리고 누군가 더 어려운 이들이 누려야 할 사회적 혜택을 내가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말이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꾼다. 언젠가 지금껏 내가 받아왔던 이 모든 혜택들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멀리 그리고 거창하게 꿈꾸자면, 재단을 만들어 지금껏 내가 받아온 혜택들을 과거의 나 혹은 현재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돌려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회적인 이슈들과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혜택들을 더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알고, 진단할 수 있고, 그에 적합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을 사회의 리더로 뽑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꼭지8. 돈 안 쓰고 버티는 법>

나는 평일 930분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고, 매달 13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것도 이것저것 세금을 제하고 나면, 내 통장에 실제로 들어오는 급여는 12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광화문으로 출근한 첫날, 과장님, 차장님과 함께 근처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판의 점심메뉴 중에 가장 싼 게 7,000원이다. 일주일에 팀점심이 있는 화요일을 제외하고 내가 써야 하는 점심값은 28,000원이다. 한달이면 거의 10만원이다. 지난 5년간 일하면서, 그리고 돈을 적게 벌 때, 일을 전혀 하지 않고 놀았던 두 달간 썼던 신용카드 값, 인터넷, 전화요금 그리고 학자금 대출 등을 내는 데만 최소 60-70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과거에 썼던 돈들이 월급날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나면 내 수중에 남는 돈은 거의 없다. 그나마 조금 남는 돈도 사람들을 만나면 금새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생활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처음 두 주동안에는 내 돈을 쓰지 않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회사 1층에 있는 카페에 가서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랬더니 배가 고파서 오후 근무 시간에 집중이 되지 않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기진맥진해서 집에 가면 점심에 못 먹은 밥까지 먹으면서 본의 아니게 폭식을 하게 되고, 기운이 없어 아까운 저녁 시간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방법을 달리 하기로 했다. 점심에 도시락을 싸 다니기로 한 것이다. 사무실에 도시락을 싸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처음에는 회의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것이 조금 꺼려졌으나, 하루 이틀 점심을 싸서 가다 보니 점점 혼자 먹는 점심시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11 50분이 되면 점심약속이 있는 사람들이 슬슬 밥을 먹으러 나가기 시작한다. 12시쯤 되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제서야 나는 도시락을 가지고 회의실로 들어간다. 점심을 다 먹고 나면 12 15. 도시락을 가방에 넣어 두고, 읽을 책을 챙겨 1층 카페로 내려간다. 1층 카페가 넓다고 하지만, 커피를 시키지 않고 앉아 있는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하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는 12시반쯤 되면 슬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밥값도 아까운데, 커피값은 더 아까워 어떻게 하면 눈치 보지 않고 카페에 앉아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을까를 궁리하던 중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월요일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내려가 가장 저렴한 커피를 주문한다. 그리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카페에서 받은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책상 위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다른 날의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빈 테이크아웃 잔에 회사에 있는 커피를 담아 카페로 내려간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본다. 이렇게 점점 나의 낯은 두꺼워지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내 삶을 즐겁게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 한동안은 저녁에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게 되면, 그 동안 아꼈던 돈이 사라지는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부터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약속이 있던 어느 날 저녁,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서 늦을 거야.”

엄마 왈, “니 돈 쓰니?”

아니 얻어먹어. ㅋㅋㅋ

엄마 왈, “다 빚이다

 

그렇다. 사실 요즘은 매번 만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얻어 먹는데, 얻어 먹는 마음도 무척 씁쓸하다. 내가 요즘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나마 마음이 좀 편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을 만나면, 앉아 있는 자리 자체가 가시 방석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잘 만나지 않는다. 특히 학교 행사처럼 많은 재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 졸업생으로 가야 하면 더욱 참석하기가 꺼려진다. 돈이 있건 없건 거의 매일 술 마시고, 택시 타고 집에 오는 것이 일상이었던 예전에는 몰랐다. 그 때는 어떻게든 카드 값을 낼 수 있는 돈을 벌었고, 지금처럼 자금줄이 꽉 막히지는 않았기에 그저 나 하고 싶은 대로 마시고 놀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꽉 막혀 있는 자금 상황이 현실로 닥치자,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흥청망청, 놀고 싶은 대로 놀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때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자, 도시락을 싸서 다닐 수 있게 되었고,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무한 리필하면서 카페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차비와 담뱃값 말고는 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근무시간에 담배를 못 피면서, 점심시간과 퇴근 길에 한 두대 피는 담배가 전부라 담뱃값도 줄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맨다 하더라도, 나의 마지막 즐길거리인 담배와 어쩌다 한번 마시는 카페에서의 여유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이 시간만이 요즘 내게 유일한 유흥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회사와 집만을 왔다갔다 하다가 주말에 동네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일주일을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이다. 그 시간만 있으면 지금처럼 1, 2년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처럼 술 마시고, 사람 만나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시기였다면, 돈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지금의 내 삶을 너무 우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놀만큼 놀았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만큼 만났으며, 돈도 쓸 만큼 썼다. 그리고 그때 흥청망청 살았던 여파로 지금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 남들이 봤을 때는, 지금의 내 삶이 안 됐다.’ ‘답답하겠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술자리등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책과 커피로 충분히 즐기고 있다. 지금의 이 시간이 내게는 인생에서 한번쯤은 꼭 겪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도 어느 정도 카드 값을 메울 수 있는 정도의 자금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흥청망청 놀고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이 내게 주어졌기에, 여럿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동안 사색을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돈이 없어도 충분히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일요일 저녁 제주도로 놀러 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함께 모임을 하는 다른 친구가 많이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괜찮은지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다. 월요일 오전,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 저녁에 술을 한잔 하자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홍대에 가서 친구를 만났다. 하루 종일 울다가 온 친구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와 두세시간 그 동안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요즘 돈이 없어서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깊이 공감하며 내게 말했다.

나도 그랬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애써 외면하면서 돈도 안 되는 일들로 연명할 때 쌓였던 빚을 얼마 전에야 겨우 다 청산하고 플러스 인생이 된지 얼마 안 됐거든. , 오늘 내가 쏠 테니까 마음껏 먹어!!!!”

 

그 친구처럼 나도 지금의 이 생활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 지금의 마이너스 인생이 플러스 인생으로 돌아서는 시점이 내게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힘들어 하고 있는 친구에게 마음껏 마시라고 얘기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고,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훌쩍 떠날 수 있는 날들이 찾아 올 것이다. 단지 그 때가 오면 그 상황을 더 감사해할 수 있고, 더욱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지금의 이 상황이 내게 온 것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살다가 한번쯤은 힘든 상황이 찾아온다. 다가오는 그 상황들 자체를 컨트롤 할 수는 없다. 상황이 오는 것을 애써 막을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단지 그런 상황들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의 처지를 선택하지는 못해도, 그 처지에 대한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는 칼리 피오리나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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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11.30 06:45:16 *.35.244.10
미나야. 수고했다.
나는 아직 수정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좌선생님이 올려두신 피바다 보았니?
문장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한번씩은 생각해볼 과제인 것 같구나...

미나가 부러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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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12.01 10:02:45 *.32.193.170
오라버니. 문장..ㅋㅋ.. 난 왜 한글로 쓰는데 한글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건지... 번역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주어를 뒤에 두고 싶은 이상한 욕망..ㅋㅋㅋ..

글은 수정을 하긴했는데.. 뭔가 많이 부족하다는.. ㅜㅜ... 이번주는 뭘 써야하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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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11.30 11:03:32 *.1.160.2
스물넷. 대학원 다닐 때였다.
 학문에 대한 원대한 포부보다는
왠지 이대로 사회에 나가선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때문에 선택한 대학원 생활.

그때 20년 과선배인 교수님과 나누던 대화.

"선생님! 얼마나 더 살아야 인생이 보이기 시작해요?"

"힘드냐?"

"아뇨..그냥 불안해서요."

"짜식. 언제부터 인생이 보이기 시작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지.
불안이 불행은 아니라는 거. 인생이 어찌 풀릴지 몰라 불안하다지만 그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얘기 아니냐?
네 나이때는 불안이 곧 자산이다."

".........."

"뭔소린지 모르겠지? 별 수 있냐? 살아보는 수 밖에."

들을 땐 에궁..내 입이 웬수다! 했다. 괜한 소리해 들으나 마나한 잔소리만 벌었네..싶었거든.
근데...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어느날. 문득 '아!' 싶더라.

미나의 글을 읽으며 느낀다.
'참 똘똘한 녀석이네. 난 이제사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는데
이 아인 벌써, 자기 주머니속의 다이아몬드를 알아봤구나!'

미나야.
넌 크게 될거다. 것도 엄청.
지금 쓰고 있는 행복한 다이아몬드 활용기가 너를 그리 만들어줄 것 같은 예감이든다.
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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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12.01 10:09:52 *.32.193.170
불안이 불행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더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 확.. 꽂혔음!!! ^^
언니 얘길들으니 나도 조금은 '아!' 하고 알것 같아욤.
훔.. 언니.. 난 내 다이아몬드가 뭔지 아직 모르겠는데.. ㅋㅋㅋ.

하지만 나를 '크게 될 사람'이라 이야기 해 주고, 그렇게 믿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대한 확신을 더 가질 수 있게 되고, 계속 묵묵히 걸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줄듯!!
그래서 완전 기쁘고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고마워요 언니!!!! ^^ 덕분에 앞으로 앞으로 더 씩씩하게 걸어나갈 수 있을 듯!!!!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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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1.12.01 13:55:15 *.152.247.226

미나야, 서문은 고민해서 다시 써야겠다.
서문이야말로 책을 이유와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꼭지 하나하나는 무척 좋다.
젊은 청춘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울림을 준다.
아주 좋다.
역시 청춘의 고민과 몸부림만큼 좋은 이야기도 없는 같다.

그러나 꼭지를 독자들이 읽게 하기 위해서는 서문과 목차가 좋아야 한다.
알다시피 한편 쓰는 것과 한권 쓰는 것은 다르다.
아직 네가 책을 쓰는 목적과 주제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나중에 서문을 수정할지언정 서문이 명확해야 원심력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글을 일관성있게, 재미있게 써갈 있다.

'
나는 힘들고 아프지 않다. 나답게 잘살고 있다. 그러니까 한번 읽어보고 공감해봐'
서문으로 보면 네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대략 이렇게 정리되는데...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정리해봐라.

 

아프니까 청춘이면 나도 청춘이다.

아픔이 젊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

그저 트렌드에 맞춘 출판사의 위로전략일뿐이지.

미나 같은 청춘이 다른 청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 있을까?
그것은 위로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야기를 통한 공감이 수반되어야 좋겠지.


나같으면 메시지를 이렇게 해보겠다.

쫄지마! 불안해도 괜찮아. 스타일대로 움직여

 

대략 목차의 얼개는 이렇게 해보겠다.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도 나는 쫄지 않았다.

불안은 불안에 대한 불안.

나의 불안했던 시절 + 다른 사례(조셉 캠벨의 우드스탁같은…)

나를 찾아 몸부림치다

미나의 모의 비행(현재와 이미 미래)

 

일이 바빠 여기까지.

자세한 피드백은 12 연구원 수업 시간에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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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12.01 16:13:09 *.32.193.170
으앗.. 완전 감사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리 디테일하게 코멘트 해주시다니 완전 감동이에요~!!!

ㅋㅋㅋㅋ.. 역시 서문이 문제네요.ㅎㅎㅎ.. 이번에는 좀 다르게 써볼려구요~!! 임팩트 있게! 쓰고 싶은데... 일단은 써봐야알 것 같구요.ㅜㅜ..

꼭지글은 좋아해주시니 너무너무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울림'이라는 단어를 써 주시다니.......
감개무량하네용!!!! 헤헤헤..^^

앗.. 써주신 목차 얼개가.. 아주 맘에 드는데욤?? ㅎㅎㅎㅎ... (물론. 이렇게 날로 먹으면 안 되겠죠.;;;)

병곤선배님, 감사합니당~!!!!^^ 오프수업 때 완전 기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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