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田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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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관자를 읽으면서 2,700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과 비교가 되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같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더 다양한 도구와 편리함 매체로 기록되고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대화라는 Carr의 말처럼 근 3천년이 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관자는 많은 의미를 던져두고 있다. 이러한 화두를 가지고 책을 보게 되었다. 송나라 때 주자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편찬된 사서삼경의 테두리 속에 갇혀서 역사 속에 묻혀있는 무수한 보고를 외면한 채 한 곳만 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해하기 쉽게 틀을 짜고 구분을 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색깔들이 다 없어져 버리고 특징적인 한 색깔만 보아온 느낌이다. 내가 고전을 읽으면서 “공자는 인을 강조하였고, 맹자는 의를 중요시하였다.” 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고전을 이해하여 왔다. 논어나 맹자, 대학에 비하여 관자는 다양한 방면에 마음을 비우는 방법에서 치수, 경제를 살리는 방법까지 다양하고 방대한 분야에 대하여 저술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강의도 잘 읽었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저 달랑 호미 한 자루로 고전이라는 태산준령과 맞서는 겪이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어온다. 관자를 읽으면서 그토록 힘들어하던 한자와 정면으로 한번 붙어 보았다. 한글을 인용하면서 밑에 있는 한문도 같이 인용하였다. 그냥 밋밋한 한글보다 한글이 붙어 있어 보기는 좋았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을 사용하여 과제물 기간을 근 하루나 넘어버렸다. 인용하는 내용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자와 씨름하다 보니 중학교 때 배웠던 한자를 많이 되살려 내었다. 역시 한글로 읽는 것보다는 훨씬 힘도 있고 무게도 있다.
내가 바라보는 고전은 상투적으로 머릿속의 지식으로 남겨 두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끊임없이 읽고 암기하여 온 몸에 녹아들도록 활용해야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과 유혹과 정면으로 맞서는 순간을 겪게 된다. 그 미묘한 상황에서 머릿속에 들어있던 그 고전의 한 구절이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기막힌 반전이 일어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바로 49편 내업편이었다. 마음을 닦는 방법이 옛날에 우연히 만난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과 같았다. 그 당시에는 그냥 흘러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책을 읽다 보니 그 당시의 상황이 생각이 났다. 이것이 바로 작은 깨달음의 순간이 아닌가 한다.
(608) 형체가 바르지 않으면 덕이 오지 않는다. 마음속이 고요하지 않으면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형체를 바르게 하고 덕을 정돈하며 하늘의 어짊과 땅의 의로움을 본받으면 저절로 신명의 경지에 이르러 만물을 밝게 안다. 마음을 지켜 잘못되지 않도록 하면, 사물에 의하여 보고 듣는 감감 기관이 어지럽지 않고, 감각기관에 의하여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이를 마음을 깨우친 것이라 한다.
形不正, 德不來, 中不靜, 心不治, 正形攝德, 天仁地義, 則淫然而自至神明之極, 照乎知萬物 中守不忒, 不以物亂官, 不以官亂심 是爲中得
행동을 통제하고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고 외우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아직도 궁금한 점이 많다. 우리는 서구 쪽에서 말하는 리더십을 배우기 위하여 무지막한 연습을 한다. 대인관계를 좋게 하고, 발표를 잘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 바로 외형적인 면만 추구하는 것,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하지만 그런 연습과 노력만 가지고는 최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람의 깊이, 내면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는 것은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현대에 많은 교훈과 지침을 주고 있다.
2. 저자에 대하여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과 국가의 경영의 대가라고 보았다. 관중은 41세인 기원전 685년부터 80세 까지 약 40여 년 동안 제나라 환공의 재상으로 활동하였다.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으로 치면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가 싶다. 포숙아를 만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혼란한 정국에서 다시 친구의 도움으로 살아났으며,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훌륭한 왕을 모시는 재상이 되었다. 관자라는 책이 본인의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사후에 추록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라는 설이 많다. 관자에서 나온 그의 평가보다는 그 이후 같은 장소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평가를 찾아보았다.
논어를 보면 공자의 관중에 대한 평가가 두 번에 걸쳐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관중의 그릇은 작구나 (菅中之器小哉) 논어 팔일편) 나오는 구절로 관중이 사치를 한다는 이유로 그릇이 작다고 폄하를 하였다. 관중은 삼귀를 하였고, 부하에게 여러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그를 검소하다고할 수 있는가? 라고 호되게 제후도 아니면서 도에 넘치는 사치를 일삼는 다고 비판을 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공자는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를 제압하고 단번에 천하를 바로 잡았다.(菅中相桓公, 覇諸侯 一匡天下) 공자의 이와 같은 평가는 그릇이 작다고 한 평가와는 대조가 된다. 공자는 관중을 평가함에 있어 개인적인 잣대와 업적에 대하여 두개의 평가기준을 사용하였다. 관중의 사치스러움에 대하여 修身齊家라는 수신차원에서 비평을 한 것이고, 하나는 治國平天下의 잣대로 평가를 한 것 같다. 공자도 노나라의 재상으로 있었으나, 현실정치에 실망을 하고 낙향을 하여 제자들의 교육에 여생을 바친다. 재상의 어려움, 자기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 왕들에 대한 실망, 어쩌면 그런 점에서 공자는 관중의 재상으로서의 뛰어난 점을 칭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면 환공이라는 걸출한 왕을 만나 자기의 주장을 펼 수 있다는 기회를 잡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중적인 잣대로 관중을 평가한 공자님의 안목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자는 관중에 대하여 공자와 매우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관중은 그토록 오래 재상의 지위에 있었건만 그 업적인즉 보잘 것 없었다.(菅中行乎國政如彼其久也, 功烈如彼其卑也) 이는 맹자의 왕도 정치사상으로 비추어 볼 때 패도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관중보다 약 300년 정도 늦게 태어난 점을 감안을 하더라도 맹자의 평가는 너무 주관적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이 든다.
순자와 한비자는 아무래도 법가사상의 측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관중과 제환공은 오랑캐의 침입으로 망했던 형 나라와 위나라를 다시 세웠고, 끊어진 노나라의 군위를 잇게 하는 공적을 쌓았다. 시대를 달리하면서 같은 장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평가가 매우 다양하게 나온다.
결국 부국강병으로 일궈놓았던 제나라는 관중과 환공이 죽고난후 반란이 일어나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중이 죽기 전에 환공에게 포숙아, 빈서무, 개방, 수조 등을 후임을 논의하였다. 관중은 이들의 단점을 말하면서 모두 퇴짜를 놓았고, 마지막으로 습붕을 추천하였다. 관중과 환공이 죽고 난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섯 공자들이 난을 일으켜 그동안 쌓았던 패업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만다. 포숙아가 관중을 추천할 때의 말과 관중이 포숙아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대비된다. 물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늙은 재상의 우정을 넘어서는 우국충정 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그는 덕치와 법치를 조화시킨 이른바 덕법상보(德法相輔)의 입장과 왕도와 패도를 조합한 입장에서 국가존립과 국민부양을 실현시킨 뒤, 천하의 질서를 바로 잡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2700년을 뛰어넘어 현대의 복잡한 조직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 아마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제자백가 사상의 출발점, 모든 제가백가의 사상적 선구자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3. 가슴을 치는 구절
<관자라는 인물과 사상, 그리고 문헌>
(7) 오늘날 관중이 새롭게 부상하는 것은 그의 지도력이 우리 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를 중시하고 국제외교에도 능숙했던 대단히 실용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는 경제정책의 성공을 기초로 제나라의 국력을 키워서 국제외교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하고, 중국을 이민족의 침입에서 구출한 성공한 정치인이자 유능한 경영자였다.
(7-8) 관중은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 속에서도 난세를 극복하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용주의적인 대안을 모색하였다 .관중이 추구한 것은 이상주의자의 공허한 유토피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비자의 법가와 같은 무자비하고 냉혹한 현실주의자도 아니다. 이상을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하였다. 관중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익추구본성에 기초하여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끌어갈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2. 상인 출신의 정치가, 관중의 삶과 리더십>
(12) 신(포숙아)이 관중만 못한 것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백성에게 관대하게 은혜를 베풀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기강을 잡는 일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충성과 신의로 제후와 동맹을 맺는 것은 관중만 못합니다. 예의를 제정하여 천하에서 본받게 하는 것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갑옷을 입고 북채를 잡고서 군문에 서서 백성들이 모두 용맹하게 하는 것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관중은 백성의 부모입니다. 장차 자식 같은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백성의 부모, 즉 관중을 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관자 소광)
(14) 그리고 관자는 인치가 아니라, 설정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한 법과 확고한 상벌 체계를 구축하고 시스템으로 조직을 이끌어 간 시스템식 경영의 지도자였다.
<3. 관자라는 문헌>
(16) 겉으로 보면 그 내용이 논리적이고 체계가 부족하고 잡다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관자는 국가경영이라는 큰 목적을 위해 정치, 경제, 행정, 법률, 철학, 군사, 자연과학 등 제반부야에서 요구되는 지식을 집성해 놓은 국가경영의 백과전서라고 할 수 있다.
(18) 관중이 살던 시대는 학술계가 제자백가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시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특정한 한 가지 종류의 사상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었다. 현실의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상과 폭넓은 정책이 실용주의적으로 융합될 수 있다.
(19) 정치란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인식한다. 군주 집중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바람직한 정치는 백성들의 민심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데 있다.
<5. 성공과 번영의 길잡이>
(22) 평화와 번영은 하늘이 인가에게 내린 선물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혜와 노력과 의지로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본성과 권력의 본질과 사회생활에 대한 날카로운 사실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사회가 함께 잘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관자 제 1권>
<제 1편 목민(牧民)>
(32) 무엇을 네 가지 강령이라고 부르는가? 첫째는 예(禮), 둘째는 의(義), 셋째는 염(廉), 넷째는 치(恥)이다. 예란 절도를 넘지 않음이고, 의란 스스로 나아가기를 구하지 않음이고 염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음이고 치란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음이다.
可爲四維? 一曰 禮, 二曰 義, 三曰廉, 四曰恥, 禮不踰節, 義不自進, 廉不蔽惡, 恥不從枉
(37)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천하에 재물이 모자람을 걱정하지 말고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할 인물이 없는 것을 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힘써 할 일 사람은 리로 세울 있고, 사심이 없는 사람은 관을 맡길 수 있다.
天下不患無臣, 患無君以使之; 天下不患無財, 患無人以分之, 故知時者, 可立以爲長, 無私者, 可置以爲政, 審於時而察於用, 而能備官者
<제2편 형세(形勢)>
(43) 오늘의 일을 잘 모르면 옛날을 비추어 보고,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겠거든 과거를 살펴보아라. 만사가 발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疑今者察之古, 不知來者視之往, 萬事之生也, 異趣而同歸, 古今一也
<제3편 권수(權受)
(53)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서 한 번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한 번 심어서 열배를 얻는 것은 나무이며, 한 번 키워서 백배를 얻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참으로 인재를 키우면 귀신같이 마음대로 그를 쓸 수 있을 것이니, 나라 다스리기를 귀신같이 자유롭게 하면 군주의 자격이 있다.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穫者, 穀也; 一樹十穫 者, 木也; 一樹百獲者, 人也, 我苞種之, 如神用之, 擧事如神, 唯王之門
(56) 법이란 백성의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것이다. 백성의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만큼 형벌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다. 형벌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회피와 억지가 생기고 회피와 억지가 생기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죄 있는 사람을 놓아주면, 신하가 반역하여 찬탈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작위가 천시되고, 녹봉과 상이 경시되고, 백성이 정치를 이반하고, 반역하는 신하가 난을 일으켜 득세한다. 이것을 나라패망의 교훈이라고 한다.
法者 將用民之死命者也, 用民之死命者 則刑罰不可不審 刑罰不審 則有辟就, 有辟就, 則殺不辜 殺不而赦赦罪, 則國不免於賊臣矣, 故 夫爵服賤, 祿賞經, 民閒其治, 賊臣首難, 此謂敗國之敎也
<제4편 입정(立政>
(58) 군주가 살필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대신의) 덕이 그 지위에 맞는지 아닌지, 둘째 공적이 그 녹봉에 맞는지 아닌지, 셋째 능력이 그 관직에 맞는지 아닌지 살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근본은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나라에는 덕과 의리가 조정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녹봉을 주면 안 된다. 일에서 백성에게 신임 받지 못한 사람이 큰 관직을 맡게 해서는 안 된다. 덕은 높은데 지위가 낮은 사람의 경우는 (신중함이) 지나친 것이라 하고, 덕은 낮은데 지위가 높은 이의 경우는 (경솔하여) 잘못된 것이라 한다. 차라리 군자처럼 신중함에 지나침이 있을지언정, 소인처럼 경솔함 때문에 잘못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君子所審者三; 一曰不當其位, 二曰功不當其綠, 三曰能不當基官, 此三本者, 故國有德義夫明
於朝者, 則不加於尊位, 功力夫見於國者, 則不可 授以重綠, 臨事不信於民者, 則不可使任大官, 故德厚而位卑謂之過, 德簿而位尊者爲之失, 寧過於君子, 而毋失於小人, 過於君子, 其爲怨淺 失於小人, 其爲禍審
<제5편 승마 (乘馬)>
(85) 실시(失時) 때를 잃은 것
농사에서 때는 농업생산에 매우 중요하며 숨기거나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오늘 힘써 일하지 않으면 내일 재화를 잃어버리니, 옛날은 이미 지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한다.
時之處事精矣, 不可藏而舍也, 故曰; 今日不爲 明日忘貨, 昔之日巳往而不來矣 (失時)
<제2권>
<제6편 칠법(七法)>
(90) 그러므로 법규를 세우는 일은 법칙을 알지 못하면 할 수 없고, 소재를 논하여 그 쓰임을 살피는 일은 그 현상을 모르면 할 수 없으며, 백성을 이끌어 하나로 통일하는 일은 그 법도를 모르면 할 수 없으며, 백성을 이끌어 하나로 통일하는 일은 그 법도를 모르면 할 수 없다. 풍속을 바꾸고 교육을 개혁하는 일은 교화가 무엇인지 모르면 할 수 없고, 대중을 목적한 곳으로 이끄는 일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할 수 없다. 법령을 반포하여 그것을 반드시 시행하려며 마음 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추진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려면 치밀한 계산이 무엇이니 알아야 한다.
故曰 錯儀晝制 不知則不可; 論材審用, 不知象不可; 治民一衆, 不知法不可; 變俗易敎쇼 不知化不可, 驅衆移民, 不知決寒不可; 布令必行, 不知心術不可; 擧事必成, 不知計數不可
<제7편 판법(板法)-정치의 요해>
(102) 무릇 군주가 국사에 임해서는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고 비바람처럼 규율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고, 가까운 곳과 먼 곳,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사람 모두 그 치적을 입게 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법도가 신중히 시행된 뒤에야 군주가 나라를 소유한다.
凡將立事, 正彼天植, 風雨無違, 遠近高下, 各得其嗣. 三經旣嗣君乃有國
<제8편 유관(幼官) - 군주의 일상생활과 정치>
(123) 전쟁이 빈번하면 군사들이 피로하고, 승리가 반복되면 군주는 교만해진다. 교만한 군주가 피로한 백성을 부리면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요. 그 다음은 단 한 번 싸워 이기는 것이다. 대승이란 여러 번 이긴 것을 모은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이 의로운 전쟁 아닌 것이 없어야 대승이라고 할 만하다. 대승이란 이기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는 도의 남방 방외에 위치한다.
數戰則士疲 數勝則君驕; 驕君士疲民, 則國危. 至善, 不戰; 其次, 一之 大勝者, 積衆勝, 無非義者焉, 加以爲大勝. 大勝, 無不勝也, 此居於圖南方方外
<제9편 유관도(幼官圖) - 군주의 일상생활과 정치에 대한 圖解)>
(136) 반드시 적국의 정세를 알아야 하고, 반드시 적국의 장수를 알아야 하며, 반드시 적국의 정치상황을 알아야하고, 반드시 적의 군사를 알아야 한다. 이 네 가지가 갖추어지면 잘 정비된 군대로 혼란한 적을 치는 것이며, 이길 수 있는 군대로 패주하는 군대를 치는 것이다.
必明其情, 必明其將, 必明其政, 必明其士, 四者備, 則以治擊亂, 以成擊敗
<제10편 오보(五輔)-정치에 요구되는 다섯 가지 조목>
(146) 민심을 얻는 방법은 (백성을)이롭게 해주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백성을) 이롭게 해주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밭은 개간하여 나라를 알차게 하고, 조정을 안정시켜 관청을 다스리며, 공정한 법을 실행하여, 사사로운 곡절을 금지하고, 창고를 가득 채우고 감옥을 텅 비게 하며,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여 간사한 사람을 물러나게 한다.
然則得人之道, 莫如利之; 利之之道, 莫如敎之以政, 故善爲政者, 田疇墾而國邑實, 朝廷閒而官府治, 公法行而私曲止, 倉廩實而囹圄空 賢人進而奸民退
(150) 무릇 사람은 반드시 예를 안 뒤에야 공경하고 공경한 뒤에야 존경, 양보하고, 존경, 양보한 뒤에야 젊은이와 어른, 귀한 이와 천한 이가 서로 넘나들지 않는다. 젊은이와 어른, 귀한 이와 천한 이가 서로 넘나들지 않으므로 어지러움이 생기지 않고 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예는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夫人必知禮然後恭敬, 恭敬然後尊讓, 尊讓然後少長貴賤不相踰越, 少長貴賤不相踰越, 則亂不生而患不作 故曰 禮不可不謹也
<제4권>
<제11편 주합(宙合)-천지만물의 조화 법칙>
(159)현명함은 바로 지혜로움이고, 지혜로움은 바로 현명함이다. 흥성한 뒤에는 곧 쇠락하니, 현명하고, 지혜로움은 크게 행해야 한다.
明乃哲, 哲乃明, 奮乃笭, 明哲喆大行
(161) 얕을 수도 있고, 깊을 수도 있으며, 뜰 수도 있고, 가라앉을 수도 있으며, 굽을 수도 있고, 곧을 수도 있으며, 말할 수도 있고, 침묵할 수도 있다. 하늘은 한때에만 머물지 않고, 땅은 한 가지 이로움에만 그치지 않으며, 인간은 한 가지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可天可深, 可浮可沈, 可曲可直, 可言可黙, 天不一時, 地不一利, 人不一事
(174)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을 밝게 살펴서 오직 하나의 사물에만 구애되지 않고, 사물의 공통된 원리인 도에 두루 통달한다. 도라는 것은 위로는 무한하고 광대함은 끝이 없어서 모든 사물에 운용된다. 그래서 겨우 하나의 언설에만 통하고, 한 가지 다스림에만 밝고, 한 가지 일만 전공하는 사람은 견해가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기 쉽고 전체를 폭넓게 바라보지 못한다.
明者察於事, 故不官於物, 而旁通於道, 道也者, 通乎無上, 詳乎無窮, 運乎諸生, 是故辨於一言, 察於一治, 攻於一事者, 可以曲說, 以不可以廣擧,
<제12편 추언(樞言)-정치의 관건>
(179) 관자가 말했다. “도가 하늘에 있는 것이 태양이고, 도가 사람에 있는 것이 마음이다. 그래서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죽으니, 생명이란 기에 의존하는 것이다. 명분이 맞으면 다스려지고, 명분이 없으면 어지러워지니, 다스림이란 명분에 달려있다 한다.
冠者曰 “道之在天者, 日也, 其在人者, 心也“ 故曰 有氣則生, 無氣則死, 生者以基氣, 有名則治, 無名則亂, 治者以其名.
(181) 선을 꾸미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따라서 선은 꾸밈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선왕은 선을 귀하게 여겼다.
爲善者, 非善也. 故善無以爲也. 故先王貴善
(184) 관직도 이와 같다. 때에 맞으면 하늘의 도움을 얻고, 의리에 맞으면 사람의 지지를 얻는다. 때에 맞고 의리에도 맞아 두 가지가 어울리면 하늘의 도움과 사람의 지지를 함께 얻을 수 있다.
官職赤然 時者得天, 義者得人, 旣時且義, 故能得天與人
(189) 무릇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장점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실수하는 것은 그가 잘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못에 빠져 죽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은 황야에서 사냥하거나 싸우다 죽는다.
凡國之亡也, 以其長者也, 人之自失也, 以其所長者也, 故善游者死於梁池, 善射者死於中野
<제6권>
<제16편 법법(法法) -법의 제정과 시행>
(244) 그림쇠와 곡척은 사각형과 원형의 표준이다. 정교한 눈과 날렵한 손이라도 변변찮은 그림쇠와 곡척을 사각형과 원형의 표준으로 삼는 것만 못하다. 정교한 사림이 그림쇠와 곡척을 만들었으나, 그림쇠와 곡척을 폐기하고서 사각형과 원형을 그릴 수 없다. 성인이 법을 만들었으나, 법을 폐기하고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그러므로 명철한 지혜와 고상한 행실이 있어도 법을 등지고 다스리면 이는 그림쇠와 곡척을 폐기하고서 사각형과 원형을 그리는 것과 같다.
規矩者 方圜之正也. 雖有巧目利手, 不如拙規矩之正方圜也, 故巧者能生規矩, 不能廢規矩而正方圜, 雖聖人能生法, 不能廢法以治國, 古雖有明智高行, 背法以治, 是廢規矩而正圜也
<제17편 병법(兵法)-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
(266) 관중이 말했다. “신하가 군주에게 힘을 다하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고, 믿지 않으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직은 안정될 수 없을 것이네,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두 가지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네.”
菅中曰, “爲人臣者, 不盡力於君, 則不親信, 不親信, 則言不聽, 言不聽, 則社稷不定, 夫事君者無二心” 鮑叔許諾
(276) 소홀은 죽어서 산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었고, 관중은 살아나서 죽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었다.
召忽之死也 賢其生也野 菅中之生也, 賢其死也
<제8권>
<제19편 중광(中匡)- 군주를 보좌하는 방법(2)>
(308) “신이 듣건대, 환락에 빠진 사람은 우환에 젖고, 맛을 중시하는 사람은 덕행을 가벼이 하고, 조정을 태만히 여기는 사람은 정사를 그르치고, 국가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사람은 사직을 위태롭게 한다고 합니다. 신은 이 때문에 감히 군주께서 베푸신 연회를 나왔습니다.”
臣聞之, 沈於樂者洽於憂,厚於味者薄於行, 慢於朝者緩於政, 害於國家者危於社稷, 臣是以敗出也
<제20편 소광(小匡) - 군주를 보좌하는 방법>
(344) 환공은 천하 작은 나라의 제후들이 자기를 친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음을 알아서 이에 또 크게 은혜를 베풀었다. 근심해야 할 경우에는 그를 위하여 근심을 하고, 도모해야할 경우에는 그를 위하여 도모하고, 행동해야 할 경우에는 그를 위하여 행동했다. 담나라와 내나 라를 정벌했으나, 그 땅을 차지하지 않으니 제후들이 어질다고 칭송했다.
桓公知天下小國諸侯之多與己也, 於是又大施惠焉. 加爲憂者爲之憂, 可爲謀者爲之謀, 加爲動者爲之動, 伐譚萊以不有也, 諸侯稱仁焉
<제21편 왕언(王言) - 전하지 않음>
<제 9권>
<제 23편 패언(覇言)-패업과 왕도의 형세>
(369) 성인은 기미를 두려워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밝게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니, 성인이 증오하는 것은 안에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증오하는 것은 밖에 잇다. 성인은 장차 행동하려 할 때 반드시 미리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닥쳐도 피하지 않는다. 성인은 때를 살펴서 때를 어기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잘 도모하나 때를 알아서 행동하는 것보다 못하다. 때를 잘 살피는 사람은 짧은 시간이라도 공이 많다.
聖人畏微 而愚人畏明, 聖人之憎惡也內, 愚人之憎惡也外; 聖人將動必知, 愚人至危勿亂, 聖人能輔時, 不能遠時, 知者善謀, 不如當時, 精時者, 日少而功多
(371) 그 군주가 현명한 것 같은데 현명하지 않고, 그 장수가 현명한 것 같은데, 현명하지 않으며, 그 백성이 농사짓는 것 같은데 농사짓지 않으면, 세 가지 지킬 것(三守)을 이미 잃어서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땅이 넓지만, 농사짓지 않는 것을 토만(土滿)이라 하고, 백성이 많지만 다스리지 않는 것을 인만(人滿)이라 하고, 백성이 많지만 다스리지 않은 것을 무만(武滿)이라 고한다. 이 세 가지만이 그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땅이 넓지만, 경작하지 않으면 자기 땅이 아니고, 장수가 존귀하지만 신하로서 복종하지 않으면 자기를 섬기는 장수가 아니고, 백성이 많지만 서로 친하지 않으면 자신의 백성이 아니다.
其君如明而非明也, 其將如賢而非賢也, 其人如耕者而非耕也, 三守旣失, 國非其國也, 地大而不爲, 命曰土滿; 人衆而不理, 命曰人滿, 兵威而不止 命曰武滿, 三滿而不止 國非其國也, 地大而不耕, 非其地也; 卿貴而不臣, 非其卿也, 人衆而不親, 非其人也
<제 10권 >
<26편 계(戒) - 정치에서 경계할 사항>
(393) 날개가 없으나 날 수 있는 것은 말소리이며, 뿌리가 없으나, 확고한 것은 감정이며, 지위가 없으며 존귀한 것은 바로 덕성입니다. 공께서도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하시고, 말을 삼가시면 엄격한 위엄이 유지되어 덕성이 존중될 것입니다. 이를 도가 빛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無翼而飛者 聲也, 無根而固者, 情也, 無立而貴者, 生也, 公亦固情謹聲, 以嚴尊生, 此謂道之榮
<제30편 군신(君臣) 상- 군주와 신하의 도리>
(420) 윗사람이 밝고 아랫사람이 신중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모두 덕을 갖추면, 순환하면서 질서를 이룬다. 군주가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신하가 그 직분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서로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데 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덕에 힘쓰고, 아랫사람이 직분을 지켜서 예의가 위에서 형성되고 선함이 아래로 백성에게 흐르면, 백성은 위로 군주에게 귀부하여 친해지고, 아랫사람은 농사에 힘을 다한다.
上明下審 上下同德, 代相序也, 君不失其威, 下不曠其産, 而莫相德也 是以上之人務德, 而下之人守節, 儀禮成形於上, 而善下通於民, 則百姓上歸親於主, 而下盡力於農矣
(428) 도란 참으로 인간의 본성이다. 도가 아닌 것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성스러운 왕과 현명한 군주는 이를 잘 알아서 이끄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백성을 다스리는데 는 변함없는 도가 있고, 재물을 생산하는 데는 변함없는 법칙이 있다. 도란 만물의 요체다. 군주가 요체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면 아래에 간악하고 거짓을 일삼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어도 감히 죽이려 들지 못한다. 도란 무형으로 설정되어 있어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통하지만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막힌다. 도가 아니면 사람을 다스릴 수 없고, 도가 아니면 재물을 생산할 수 없다.
道者, 聖人之姓也, 非, 在人也, 而聖王明君, 善知而道之者也, 是故治民有常道, 而生財有常法, 道也者, 萬物之要也, 爲人君子, 執要而待之, 則下雖有姦僞之心, 不敢殺也, 夫道者虛設, 其人在則痛, 其人亡卽寒者也, 非玆是無以理人, 非玆是無以生財, 民治在育, 其福歸於上,
<제11권>
<제32편 소칭(小稱) - 수신의 방법과 중요성>
(451) 자기가 착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단청은 산속에 묻혀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들고, 아름다운 구슬은 깊은 물속에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든다.
身不善之患, 毋患人莫己知, 丹靑在山, 民之而取之; 美珠在淵, 民之而取之
(453) 관자가 말했다. “자신에게 죄를 돌리는 사람은 백성에게 죄를 얻지 않고 자신에게 죄를 돌리지 않는 사람은 백성이 죄를 준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은 강하고, 자시의 절도를 다스리는 사람은 지혜로우며, 다른 사람에게 불선하지 않는 사람은 어질다.
管子曰 “善罪身者, 民不得罪也, 不能罪身者, 民罪之, 故稱身之過者, 强也, 治身之節者, 惠也;”
<제12권>
<제 35편 치미(侈靡) - 경기부양의 조건>
(474) 너무 부유한 사람은 부릴 수 없고, 너무 가난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물은 평평하면 흐르지 않고 근원이 없으면 빨리 마릅니다. 구름은 평평하면 많은 비가 내리지 않고 짙은 구름이 없으면 비가와도 빨리 그칩니다. 정령은 화평하되 위엄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되 친함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흐르고, 친근한 신하가 쓰여야지 쓰이지 않으면 비유하건대 서로 피하며 원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점이 있는 이를 윗자리에 두고 장점이 많은 이를 아래 자리에 두어서 헤아림 없이 쓰면 근본을 위태롭게 합니다.
0富不可使, 0貧不知恥, 水平而不流, 無源則速竭, 雲平而雨不0, 無秀雲, 雨則速已, 政平而無威 則不行, 愛而無親則流, 親在有用, 無用則辟 若相爲有兆怨, 上端下長, 無度而用 則危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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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권>
<제36편 심술(心術) (上)>
(507)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 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지혜여, 지혜여, 바다 밖으로 던져서 억지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무릇 바른 사람이은 지혜를 구하지 않으므로 허무에 처할 수 있다.
道 不遠而難極也, 與人竝處而難得也, 虛其欲, 神將入舍, 掃除不潔, 人乃留處, 人皆欲智, 而莫索其所以智乎, 智乎 智乎 投之海外無自, 求之者 不得處之者, 夫正人無求之也, 故能虛無
(513) 인위적으로 하려고 함이 없으면 사물의 차이를 인정한다. 사물의 차이를 인정하면 텅 빈다. 텅 빔이란 만물의 시작이기 때문에 “천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人者立於强, 務於善, 夫於能, 動於故者也, 聖人無之, 無之, 則與物異矣, 異則虛, 虛者, 萬物之始也, 故曰 “可以爲天下始”
<제38편 백심(白心) - 마음의 함양과 심령의 정화
(526) 남의 말이 듣기 좋아도 듣지 말고, 남의 말이 듣기 싫어도 듣지 말라. 평정을 지켜 비방과 명예를 기다리고, 마음을 비워 맞서고 싸우지 말아야 깨끗하게 절로 맑아진다. 부풀린 말로 성공했다고 하지 말고, 살피고 검증하여 교묘히 꾸미는 말을 듣지 말라. 만물이 되돌아오면 아름다움과 악함이 절로 드러난다.
人言善, 亦勿聽, 人言惡, 亦勿聽, 持而待之, 空然勿兩之, 淑然自淸. 無以旁言爲事成. 察而徵之 無聽辨, 萬物歸之, 美惡乃自見.
<제15권>
<제43편 정(正) - 정치의 사명>
(570) 형으로 재단하고, 정으로 명령하고, 법으로 막고, 덕으로 기르고 도로 밝힌다. 형으로 재단하여 백성이 목숨을 잃지 않게 한다. 명령을 욕심을 없애고 시비를 밝혀 사악함으로 가지 않게 한다. 법으로 막아 생각의 단서를 끊어 백성이 요행을 바라지 않게 한다. 덕으로 길러 나쁜 행실을 고쳐서 반드시 몸소 시작하게 한다. 도로 밝혀서 그 성정을 살펴 반드시 그 이치를 따르게 한다.
<제16권>
<제49편 내업(內業) -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
(608) 형체가 바르지 않으면 덕이 오지 않는다. 마음속이 고요하지 않으면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형체를 바르게 하고 덕을 정돈하며 하늘의 어짊과 땅의 의로움을 본받으면 저절로 신명의 경지에 이르러 만물을 밝게 안다. 마음을 지켜 잘못되지 않도록 하면, 사물에 의하여 보고 듣는 감감 기관이 어지럽지 않고, 감각기관에 의하여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이를 마음을 깨우친 것이라 한다.
形不正, 德不來, 中不靜, 心不治, 正形攝德, 天仁地義, 則淫然而自至神明之極, 照乎知萬物 中守不忒, 不以物亂官, 不以官亂심 是爲中得
<제51편 소문(小門)-다양한 문답과 지혜
(630) 환공이 마구간을 시찰하다가, 마구간 지기에게 물었다.
“마구간에서 어떤 일이 가장 어려운가? 마구간 지기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관중이 대답했다.” 저는 일찍이 말을 길러 본적이 있는데, 우리를 짜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말 우리를 짤 때 나무막대를 엮으며 짜는데, 먼저 굽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굽을 나무를 써야 하고, 굽은 나무를 쓰면 곧은 마루를 엮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곧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곧은 나무를 써야하고, 곧은 나무를 굽은 나무를 써서 엮을 수가 없습니다.
桓公觀於廐, 問廐吏曰 廐何事最難? 廐吏夫對 菅中對曰 “夷吾當爲園人矣, 傳馬棧最難 先傳曲木,木又求曲木, 曲木已傳 直木毋所施矣. 先傳直木, 直木又求直木, 直木已傳, 曲不亦無所施矣
<제17권>
(654)
<제52편 칠신칠주(七臣七主)- 군주와 신하의 일곱유형>
(647) 무릇 창고는 까닭 없이 텅 비지 않고, 상인과 관리는 까닭 없이 무너지지 않고 법령은 까닭 없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나라는 까닭 없이 망하지 않는다. 저 계절에는 몸과 가을이 있고, 해에는 풍년과 흉년이 있으며, 정사에는 서둘러 할 것과 천천히 할 것이 있다. 정사에 서두러 할 것과 천천히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물간 값에 높고 낮음이 있다. 해에 풍년과 흉년이 있기 때문에 백성에게 남고 모자람이 있다.
夫倉庫非虛空也, 象管非虛壞也, 法令非虛亂也, 國家非虛亡也, 彼時有春秋, 歲有賑凶, 政有急緩, 故物有輕重, 歲有敗凶
(651) 그러므로 백성은 반드시 나아갈 바와 반드시 그만두어야 할 바를 알아서 밀면 나아가고 부르면 다가오는 것이 마치 높은 곳에서 무거운 것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땅에 도랑을 파서 물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쉽게 따른다. 그러므로 법령이 번잡하지 않고, 관리들이 수고롭지 않아도 백성이 금령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가 백성을 거느려도 백성은 군주를 원망하지 않는다.
故見必然之政, 立必勝之罰, 故民知所必就, 而知所必去, 推則往, 召則來, 如墜重於高, 如瀆水於地 故 法不煩吏不勞 民無犯禁, 故宥百姓, 無怨於上矣
<제53편 금장(禁臟) - 군주의 통치전략>
스스로 금지해야할 원칙을 가슴 속에 감추어 두어야 재앙을 만 리 밖에서 피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써서 재앙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을 잘 헤아리고 다른 사람을 잘 살피기 때문이다.
禁臟於洶脅之內, 而禍避於萬理之外, 能以此制彼者, 唯能以己知人者也, 夫終日之下濫 非愛冰也
<제20권>
<제64편 형세해(形勢解) - 형세편의 해설>
(733) 제때 일어나고, 절도에 맞게 음식을 먹으며, 기후가 알맞으면 몸에 이로워서 수명이 늘어난다. 제때 일어나지 않고, 절도에 맞지 않게 음식을 먹으며, 기후가 알맞지 않으면 몸에 쌓여서 수명이 줄어든다. 사람이 게으르고 사치스러우면 가난하고, 노력하고 검소하면 부유하다. 무릇 사물은 까닭 없이 생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장수하거나 단명한 것, 가난하거나 부유한 것은 아무런 이유없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起居時, 飮食節, 寒暑適, 則身利而壽命益, 起居不時, 飮食不節, 寒暑不適, 則形體累而壽命損, 人惰而侈則貧, 力而儉則富, 夫物莫虛至, 必有以也, 故曰 壽失貧富無徒歸也
(741) 현명한 군주가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근하게 하는 것은 그 핵심이 마음에 달려있다. 이른바 야행이란 마음이 몰래 하는 것이다. 마음 깊이 진심으로 덕을 행하면 천하에 그와 겨룰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오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보이지 않는 덕행이나 음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明主之使遠者來而近者親也, 爲之在心, 所謂夜行者, 心行也, 能心行德, 則天下莫能與之爭矣 故曰 :“唯夜行者, 獨有之乎!”
(746) 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광대해 질수 있다. 산은 흙과 돌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높아질 수 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 수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선비는 배우는데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성철이 될 수 있다.
海不辭水 故能成其大, 山不辭土石, 故能成其高, 明主不壓人, 故能成其衆, 士不壓學, 故能成其聖
(755) 도란 자기를 변화시켜서 바른 이치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몸에 있으면 말이 저절로 순조롭고, 행동이 저절로 바르며, 군주를 섬김에 충성하고, 부모를 섬김에 효도하며, 사람을 만남에 이치에 맞다. 그러므로 “도가 베풀어지는 곳에서는 몸이 변화한다. 고 한다.
道者, 所以變化身而之正理者也, 故道在身, 則言自順, 行自正 事君自忠, 事父自孝, 過人自理, 故曰 “道之所設, 身之化也.”
<제21권>
<제66편 판법해(判法解) - 판법 편의 해설>
(782) 다스림의 근본은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고, 둘째는 일을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쓰임을 구해야 하고, 일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치밀하게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람에는 거스르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있고, 일에는 정확히 측정하는 칭량이 있다. 사람이 마음을 거스르면 쓰지 않는다. (일에) 칭량을 잃지 않으면 손상이 있다. 사람은 쓰이지 않으면 원망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는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서 무리하지 않게 하고, 사업을 완성하는 데는 필요한 재물을 부족하지 않게 지원한다. 고 한다.
治之本二, 一曰人, 二曰事, 人欲必用, 事欲必工, 人有逆順, 事有稱量, 人心逆, 則人不用, 失稱量, 則事不工, 事不工則傷, 人不用則怨, 故曰 取人以己 成事以質
4.내가 저자라면
연구원 과제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었다. 한문에 너무 욕심을 내어 읽고 정리를 하다가 과제 제출일까지 하루를 넘기고 말았다. 한문과 한번 정식으로 붙어보니 몇 몇 구절은 한글보다 더 또렷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천여페이지가 넘는 책은 책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을 바꾸어 놓은것 같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미완의 시대, 노동의 종말, 부의 미래등이 작게만 보인다. 책의 두께에 대한 공포를덜었다고나 할까? 한문에 대한 새로운 열의가 생겼다. 내년에는 한자급수 시험준비도 병행을 하면서 고전을 읽어볼 계획이다.
관중의 부국강병과 그가 이룬 제나라는 그가 죽은 후 반란이 일어났고,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안에서 인위적인 것에 대한 자연의 반발이 생각났다. 강력한 정부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우리는 짧은 시간안에 무역대국으로 성장을 하였다. 힘의 논리에 의한 패권주의는 사상누각처럼 주춧돌이 하나 없어지자 와르르 무너지는 형국이다. 공자가 인과 덕치로서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성장과 배분이라는 거대한 담론과는 별도로 발전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현 세대에게 주는 교훈도 신선하다.
관자가 살았을 당시에 이러한 도, 마음에 대한 방법론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세계에서 역사에 대한 기록을 남겨 현대에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문명은 황화문명이 유일하다고 한다. 3천년전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오늘의 지혜로 삼는 중국인들의 중국인들의 모습에 중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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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를 읽으면서 2,700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과 비교가 되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같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더 다양한 도구와 편리함 매체로 기록되고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대화라는 Carr의 말처럼 근 3천년이 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관자는 많은 의미를 던져두고 있다. 이러한 화두를 가지고 책을 보게 되었다. 송나라 때 주자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편찬된 사서삼경의 테두리 속에 갇혀서 역사 속에 묻혀있는 무수한 보고를 외면한 채 한 곳만 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해하기 쉽게 틀을 짜고 구분을 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색깔들이 다 없어져 버리고 특징적인 한 색깔만 보아온 느낌이다. 내가 고전을 읽으면서 “공자는 인을 강조하였고, 맹자는 의를 중요시하였다.” 라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고전을 이해하여 왔다. 논어나 맹자, 대학에 비하여 관자는 다양한 방면에 마음을 비우는 방법에서 치수, 경제를 살리는 방법까지 다양하고 방대한 분야에 대하여 저술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강의도 잘 읽었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저 달랑 호미 한 자루로 고전이라는 태산준령과 맞서는 겪이라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어온다. 관자를 읽으면서 그토록 힘들어하던 한자와 정면으로 한번 붙어 보았다. 한글을 인용하면서 밑에 있는 한문도 같이 인용하였다. 그냥 밋밋한 한글보다 한글이 붙어 있어 보기는 좋았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을 사용하여 과제물 기간을 근 하루나 넘어버렸다. 인용하는 내용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자와 씨름하다 보니 중학교 때 배웠던 한자를 많이 되살려 내었다. 역시 한글로 읽는 것보다는 훨씬 힘도 있고 무게도 있다.
내가 바라보는 고전은 상투적으로 머릿속의 지식으로 남겨 두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끊임없이 읽고 암기하여 온 몸에 녹아들도록 활용해야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과 유혹과 정면으로 맞서는 순간을 겪게 된다. 그 미묘한 상황에서 머릿속에 들어있던 그 고전의 한 구절이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기막힌 반전이 일어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바로 49편 내업편이었다. 마음을 닦는 방법이 옛날에 우연히 만난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과 같았다. 그 당시에는 그냥 흘러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책을 읽다 보니 그 당시의 상황이 생각이 났다. 이것이 바로 작은 깨달음의 순간이 아닌가 한다.
(608) 형체가 바르지 않으면 덕이 오지 않는다. 마음속이 고요하지 않으면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형체를 바르게 하고 덕을 정돈하며 하늘의 어짊과 땅의 의로움을 본받으면 저절로 신명의 경지에 이르러 만물을 밝게 안다. 마음을 지켜 잘못되지 않도록 하면, 사물에 의하여 보고 듣는 감감 기관이 어지럽지 않고, 감각기관에 의하여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이를 마음을 깨우친 것이라 한다.
形不正, 德不來, 中不靜, 心不治, 正形攝德, 天仁地義, 則淫然而自至神明之極, 照乎知萬物 中守不忒, 不以物亂官, 不以官亂심 是爲中得
행동을 통제하고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고 외우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아직도 궁금한 점이 많다. 우리는 서구 쪽에서 말하는 리더십을 배우기 위하여 무지막한 연습을 한다. 대인관계를 좋게 하고, 발표를 잘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 바로 외형적인 면만 추구하는 것,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하지만 그런 연습과 노력만 가지고는 최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람의 깊이, 내면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는 것은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현대에 많은 교훈과 지침을 주고 있다.
2. 저자에 대하여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과 국가의 경영의 대가라고 보았다. 관중은 41세인 기원전 685년부터 80세 까지 약 40여 년 동안 제나라 환공의 재상으로 활동하였다.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으로 치면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가 싶다. 포숙아를 만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혼란한 정국에서 다시 친구의 도움으로 살아났으며,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훌륭한 왕을 모시는 재상이 되었다. 관자라는 책이 본인의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사후에 추록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라는 설이 많다. 관자에서 나온 그의 평가보다는 그 이후 같은 장소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평가를 찾아보았다.
논어를 보면 공자의 관중에 대한 평가가 두 번에 걸쳐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관중의 그릇은 작구나 (菅中之器小哉) 논어 팔일편) 나오는 구절로 관중이 사치를 한다는 이유로 그릇이 작다고 폄하를 하였다. 관중은 삼귀를 하였고, 부하에게 여러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그를 검소하다고할 수 있는가? 라고 호되게 제후도 아니면서 도에 넘치는 사치를 일삼는 다고 비판을 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공자는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를 제압하고 단번에 천하를 바로 잡았다.(菅中相桓公, 覇諸侯 一匡天下) 공자의 이와 같은 평가는 그릇이 작다고 한 평가와는 대조가 된다. 공자는 관중을 평가함에 있어 개인적인 잣대와 업적에 대하여 두개의 평가기준을 사용하였다. 관중의 사치스러움에 대하여 修身齊家라는 수신차원에서 비평을 한 것이고, 하나는 治國平天下의 잣대로 평가를 한 것 같다. 공자도 노나라의 재상으로 있었으나, 현실정치에 실망을 하고 낙향을 하여 제자들의 교육에 여생을 바친다. 재상의 어려움, 자기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 왕들에 대한 실망, 어쩌면 그런 점에서 공자는 관중의 재상으로서의 뛰어난 점을 칭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면 환공이라는 걸출한 왕을 만나 자기의 주장을 펼 수 있다는 기회를 잡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중적인 잣대로 관중을 평가한 공자님의 안목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자는 관중에 대하여 공자와 매우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관중은 그토록 오래 재상의 지위에 있었건만 그 업적인즉 보잘 것 없었다.(菅中行乎國政如彼其久也, 功烈如彼其卑也) 이는 맹자의 왕도 정치사상으로 비추어 볼 때 패도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관중보다 약 300년 정도 늦게 태어난 점을 감안을 하더라도 맹자의 평가는 너무 주관적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이 든다.
순자와 한비자는 아무래도 법가사상의 측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관중과 제환공은 오랑캐의 침입으로 망했던 형 나라와 위나라를 다시 세웠고, 끊어진 노나라의 군위를 잇게 하는 공적을 쌓았다. 시대를 달리하면서 같은 장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평가가 매우 다양하게 나온다.
결국 부국강병으로 일궈놓았던 제나라는 관중과 환공이 죽고난후 반란이 일어나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중이 죽기 전에 환공에게 포숙아, 빈서무, 개방, 수조 등을 후임을 논의하였다. 관중은 이들의 단점을 말하면서 모두 퇴짜를 놓았고, 마지막으로 습붕을 추천하였다. 관중과 환공이 죽고 난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섯 공자들이 난을 일으켜 그동안 쌓았던 패업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만다. 포숙아가 관중을 추천할 때의 말과 관중이 포숙아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대비된다. 물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늙은 재상의 우정을 넘어서는 우국충정 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그는 덕치와 법치를 조화시킨 이른바 덕법상보(德法相輔)의 입장과 왕도와 패도를 조합한 입장에서 국가존립과 국민부양을 실현시킨 뒤, 천하의 질서를 바로 잡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2700년을 뛰어넘어 현대의 복잡한 조직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 아마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제자백가 사상의 출발점, 모든 제가백가의 사상적 선구자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3. 가슴을 치는 구절
<관자라는 인물과 사상, 그리고 문헌>
(7) 오늘날 관중이 새롭게 부상하는 것은 그의 지도력이 우리 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를 중시하고 국제외교에도 능숙했던 대단히 실용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는 경제정책의 성공을 기초로 제나라의 국력을 키워서 국제외교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하고, 중국을 이민족의 침입에서 구출한 성공한 정치인이자 유능한 경영자였다.
(7-8) 관중은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 속에서도 난세를 극복하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용주의적인 대안을 모색하였다 .관중이 추구한 것은 이상주의자의 공허한 유토피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비자의 법가와 같은 무자비하고 냉혹한 현실주의자도 아니다. 이상을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하였다. 관중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익추구본성에 기초하여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끌어갈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2. 상인 출신의 정치가, 관중의 삶과 리더십>
(12) 신(포숙아)이 관중만 못한 것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백성에게 관대하게 은혜를 베풀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기강을 잡는 일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충성과 신의로 제후와 동맹을 맺는 것은 관중만 못합니다. 예의를 제정하여 천하에서 본받게 하는 것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갑옷을 입고 북채를 잡고서 군문에 서서 백성들이 모두 용맹하게 하는 것을 신은 관중만 못합니다. 관중은 백성의 부모입니다. 장차 자식 같은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백성의 부모, 즉 관중을 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관자 소광)
(14) 그리고 관자는 인치가 아니라, 설정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한 법과 확고한 상벌 체계를 구축하고 시스템으로 조직을 이끌어 간 시스템식 경영의 지도자였다.
<3. 관자라는 문헌>
(16) 겉으로 보면 그 내용이 논리적이고 체계가 부족하고 잡다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관자는 국가경영이라는 큰 목적을 위해 정치, 경제, 행정, 법률, 철학, 군사, 자연과학 등 제반부야에서 요구되는 지식을 집성해 놓은 국가경영의 백과전서라고 할 수 있다.
(18) 관중이 살던 시대는 학술계가 제자백가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시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특정한 한 가지 종류의 사상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었다. 현실의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상과 폭넓은 정책이 실용주의적으로 융합될 수 있다.
(19) 정치란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인식한다. 군주 집중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바람직한 정치는 백성들의 민심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데 있다.
<5. 성공과 번영의 길잡이>
(22) 평화와 번영은 하늘이 인가에게 내린 선물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혜와 노력과 의지로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본성과 권력의 본질과 사회생활에 대한 날카로운 사실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사회가 함께 잘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관자 제 1권>
<제 1편 목민(牧民)>
(32) 무엇을 네 가지 강령이라고 부르는가? 첫째는 예(禮), 둘째는 의(義), 셋째는 염(廉), 넷째는 치(恥)이다. 예란 절도를 넘지 않음이고, 의란 스스로 나아가기를 구하지 않음이고 염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음이고 치란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음이다.
可爲四維? 一曰 禮, 二曰 義, 三曰廉, 四曰恥, 禮不踰節, 義不自進, 廉不蔽惡, 恥不從枉
(37)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천하에 재물이 모자람을 걱정하지 말고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할 인물이 없는 것을 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힘써 할 일 사람은 리로 세울 있고, 사심이 없는 사람은 관을 맡길 수 있다.
天下不患無臣, 患無君以使之; 天下不患無財, 患無人以分之, 故知時者, 可立以爲長, 無私者, 可置以爲政, 審於時而察於用, 而能備官者
<제2편 형세(形勢)>
(43) 오늘의 일을 잘 모르면 옛날을 비추어 보고,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겠거든 과거를 살펴보아라. 만사가 발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疑今者察之古, 不知來者視之往, 萬事之生也, 異趣而同歸, 古今一也
<제3편 권수(權受)
(53)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서 한 번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한 번 심어서 열배를 얻는 것은 나무이며, 한 번 키워서 백배를 얻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참으로 인재를 키우면 귀신같이 마음대로 그를 쓸 수 있을 것이니, 나라 다스리기를 귀신같이 자유롭게 하면 군주의 자격이 있다.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穫者, 穀也; 一樹十穫 者, 木也; 一樹百獲者, 人也, 我苞種之, 如神用之, 擧事如神, 唯王之門
(56) 법이란 백성의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것이다. 백성의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만큼 형벌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다. 형벌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회피와 억지가 생기고 회피와 억지가 생기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죄 있는 사람을 놓아주면, 신하가 반역하여 찬탈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작위가 천시되고, 녹봉과 상이 경시되고, 백성이 정치를 이반하고, 반역하는 신하가 난을 일으켜 득세한다. 이것을 나라패망의 교훈이라고 한다.
法者 將用民之死命者也, 用民之死命者 則刑罰不可不審 刑罰不審 則有辟就, 有辟就, 則殺不辜 殺不而赦赦罪, 則國不免於賊臣矣, 故 夫爵服賤, 祿賞經, 民閒其治, 賊臣首難, 此謂敗國之敎也
<제4편 입정(立政>
(58) 군주가 살필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대신의) 덕이 그 지위에 맞는지 아닌지, 둘째 공적이 그 녹봉에 맞는지 아닌지, 셋째 능력이 그 관직에 맞는지 아닌지 살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근본은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나라에는 덕과 의리가 조정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녹봉을 주면 안 된다. 일에서 백성에게 신임 받지 못한 사람이 큰 관직을 맡게 해서는 안 된다. 덕은 높은데 지위가 낮은 사람의 경우는 (신중함이) 지나친 것이라 하고, 덕은 낮은데 지위가 높은 이의 경우는 (경솔하여) 잘못된 것이라 한다. 차라리 군자처럼 신중함에 지나침이 있을지언정, 소인처럼 경솔함 때문에 잘못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君子所審者三; 一曰不當其位, 二曰功不當其綠, 三曰能不當基官, 此三本者, 故國有德義夫明
於朝者, 則不加於尊位, 功力夫見於國者, 則不可 授以重綠, 臨事不信於民者, 則不可使任大官, 故德厚而位卑謂之過, 德簿而位尊者爲之失, 寧過於君子, 而毋失於小人, 過於君子, 其爲怨淺 失於小人, 其爲禍審
<제5편 승마 (乘馬)>
(85) 실시(失時) 때를 잃은 것
농사에서 때는 농업생산에 매우 중요하며 숨기거나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오늘 힘써 일하지 않으면 내일 재화를 잃어버리니, 옛날은 이미 지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한다.
時之處事精矣, 不可藏而舍也, 故曰; 今日不爲 明日忘貨, 昔之日巳往而不來矣 (失時)
<제2권>
<제6편 칠법(七法)>
(90) 그러므로 법규를 세우는 일은 법칙을 알지 못하면 할 수 없고, 소재를 논하여 그 쓰임을 살피는 일은 그 현상을 모르면 할 수 없으며, 백성을 이끌어 하나로 통일하는 일은 그 법도를 모르면 할 수 없으며, 백성을 이끌어 하나로 통일하는 일은 그 법도를 모르면 할 수 없다. 풍속을 바꾸고 교육을 개혁하는 일은 교화가 무엇인지 모르면 할 수 없고, 대중을 목적한 곳으로 이끄는 일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할 수 없다. 법령을 반포하여 그것을 반드시 시행하려며 마음 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추진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려면 치밀한 계산이 무엇이니 알아야 한다.
故曰 錯儀晝制 不知則不可; 論材審用, 不知象不可; 治民一衆, 不知法不可; 變俗易敎쇼 不知化不可, 驅衆移民, 不知決寒不可; 布令必行, 不知心術不可; 擧事必成, 不知計數不可
<제7편 판법(板法)-정치의 요해>
(102) 무릇 군주가 국사에 임해서는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고 비바람처럼 규율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고, 가까운 곳과 먼 곳,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사람 모두 그 치적을 입게 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법도가 신중히 시행된 뒤에야 군주가 나라를 소유한다.
凡將立事, 正彼天植, 風雨無違, 遠近高下, 各得其嗣. 三經旣嗣君乃有國
<제8편 유관(幼官) - 군주의 일상생활과 정치>
(123) 전쟁이 빈번하면 군사들이 피로하고, 승리가 반복되면 군주는 교만해진다. 교만한 군주가 피로한 백성을 부리면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요. 그 다음은 단 한 번 싸워 이기는 것이다. 대승이란 여러 번 이긴 것을 모은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이 의로운 전쟁 아닌 것이 없어야 대승이라고 할 만하다. 대승이란 이기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는 도의 남방 방외에 위치한다.
數戰則士疲 數勝則君驕; 驕君士疲民, 則國危. 至善, 不戰; 其次, 一之 大勝者, 積衆勝, 無非義者焉, 加以爲大勝. 大勝, 無不勝也, 此居於圖南方方外
<제9편 유관도(幼官圖) - 군주의 일상생활과 정치에 대한 圖解)>
(136) 반드시 적국의 정세를 알아야 하고, 반드시 적국의 장수를 알아야 하며, 반드시 적국의 정치상황을 알아야하고, 반드시 적의 군사를 알아야 한다. 이 네 가지가 갖추어지면 잘 정비된 군대로 혼란한 적을 치는 것이며, 이길 수 있는 군대로 패주하는 군대를 치는 것이다.
必明其情, 必明其將, 必明其政, 必明其士, 四者備, 則以治擊亂, 以成擊敗
<제10편 오보(五輔)-정치에 요구되는 다섯 가지 조목>
(146) 민심을 얻는 방법은 (백성을)이롭게 해주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백성을) 이롭게 해주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밭은 개간하여 나라를 알차게 하고, 조정을 안정시켜 관청을 다스리며, 공정한 법을 실행하여, 사사로운 곡절을 금지하고, 창고를 가득 채우고 감옥을 텅 비게 하며,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여 간사한 사람을 물러나게 한다.
然則得人之道, 莫如利之; 利之之道, 莫如敎之以政, 故善爲政者, 田疇墾而國邑實, 朝廷閒而官府治, 公法行而私曲止, 倉廩實而囹圄空 賢人進而奸民退
(150) 무릇 사람은 반드시 예를 안 뒤에야 공경하고 공경한 뒤에야 존경, 양보하고, 존경, 양보한 뒤에야 젊은이와 어른, 귀한 이와 천한 이가 서로 넘나들지 않는다. 젊은이와 어른, 귀한 이와 천한 이가 서로 넘나들지 않으므로 어지러움이 생기지 않고 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예는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夫人必知禮然後恭敬, 恭敬然後尊讓, 尊讓然後少長貴賤不相踰越, 少長貴賤不相踰越, 則亂不生而患不作 故曰 禮不可不謹也
<제4권>
<제11편 주합(宙合)-천지만물의 조화 법칙>
(159)현명함은 바로 지혜로움이고, 지혜로움은 바로 현명함이다. 흥성한 뒤에는 곧 쇠락하니, 현명하고, 지혜로움은 크게 행해야 한다.
明乃哲, 哲乃明, 奮乃笭, 明哲喆大行
(161) 얕을 수도 있고, 깊을 수도 있으며, 뜰 수도 있고, 가라앉을 수도 있으며, 굽을 수도 있고, 곧을 수도 있으며, 말할 수도 있고, 침묵할 수도 있다. 하늘은 한때에만 머물지 않고, 땅은 한 가지 이로움에만 그치지 않으며, 인간은 한 가지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可天可深, 可浮可沈, 可曲可直, 可言可黙, 天不一時, 地不一利, 人不一事
(174)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을 밝게 살펴서 오직 하나의 사물에만 구애되지 않고, 사물의 공통된 원리인 도에 두루 통달한다. 도라는 것은 위로는 무한하고 광대함은 끝이 없어서 모든 사물에 운용된다. 그래서 겨우 하나의 언설에만 통하고, 한 가지 다스림에만 밝고, 한 가지 일만 전공하는 사람은 견해가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기 쉽고 전체를 폭넓게 바라보지 못한다.
明者察於事, 故不官於物, 而旁通於道, 道也者, 通乎無上, 詳乎無窮, 運乎諸生, 是故辨於一言, 察於一治, 攻於一事者, 可以曲說, 以不可以廣擧,
<제12편 추언(樞言)-정치의 관건>
(179) 관자가 말했다. “도가 하늘에 있는 것이 태양이고, 도가 사람에 있는 것이 마음이다. 그래서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죽으니, 생명이란 기에 의존하는 것이다. 명분이 맞으면 다스려지고, 명분이 없으면 어지러워지니, 다스림이란 명분에 달려있다 한다.
冠者曰 “道之在天者, 日也, 其在人者, 心也“ 故曰 有氣則生, 無氣則死, 生者以基氣, 有名則治, 無名則亂, 治者以其名.
(181) 선을 꾸미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따라서 선은 꾸밈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선왕은 선을 귀하게 여겼다.
爲善者, 非善也. 故善無以爲也. 故先王貴善
(184) 관직도 이와 같다. 때에 맞으면 하늘의 도움을 얻고, 의리에 맞으면 사람의 지지를 얻는다. 때에 맞고 의리에도 맞아 두 가지가 어울리면 하늘의 도움과 사람의 지지를 함께 얻을 수 있다.
官職赤然 時者得天, 義者得人, 旣時且義, 故能得天與人
(189) 무릇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장점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실수하는 것은 그가 잘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못에 빠져 죽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은 황야에서 사냥하거나 싸우다 죽는다.
凡國之亡也, 以其長者也, 人之自失也, 以其所長者也, 故善游者死於梁池, 善射者死於中野
<제6권>
<제16편 법법(法法) -법의 제정과 시행>
(244) 그림쇠와 곡척은 사각형과 원형의 표준이다. 정교한 눈과 날렵한 손이라도 변변찮은 그림쇠와 곡척을 사각형과 원형의 표준으로 삼는 것만 못하다. 정교한 사림이 그림쇠와 곡척을 만들었으나, 그림쇠와 곡척을 폐기하고서 사각형과 원형을 그릴 수 없다. 성인이 법을 만들었으나, 법을 폐기하고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그러므로 명철한 지혜와 고상한 행실이 있어도 법을 등지고 다스리면 이는 그림쇠와 곡척을 폐기하고서 사각형과 원형을 그리는 것과 같다.
規矩者 方圜之正也. 雖有巧目利手, 不如拙規矩之正方圜也, 故巧者能生規矩, 不能廢規矩而正方圜, 雖聖人能生法, 不能廢法以治國, 古雖有明智高行, 背法以治, 是廢規矩而正圜也
<제17편 병법(兵法)-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
(266) 관중이 말했다. “신하가 군주에게 힘을 다하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고, 믿지 않으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직은 안정될 수 없을 것이네,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두 가지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네.”
菅中曰, “爲人臣者, 不盡力於君, 則不親信, 不親信, 則言不聽, 言不聽, 則社稷不定, 夫事君者無二心” 鮑叔許諾
(276) 소홀은 죽어서 산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었고, 관중은 살아나서 죽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었다.
召忽之死也 賢其生也野 菅中之生也, 賢其死也
<제8권>
<제19편 중광(中匡)- 군주를 보좌하는 방법(2)>
(308) “신이 듣건대, 환락에 빠진 사람은 우환에 젖고, 맛을 중시하는 사람은 덕행을 가벼이 하고, 조정을 태만히 여기는 사람은 정사를 그르치고, 국가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사람은 사직을 위태롭게 한다고 합니다. 신은 이 때문에 감히 군주께서 베푸신 연회를 나왔습니다.”
臣聞之, 沈於樂者洽於憂,厚於味者薄於行, 慢於朝者緩於政, 害於國家者危於社稷, 臣是以敗出也
<제20편 소광(小匡) - 군주를 보좌하는 방법>
(344) 환공은 천하 작은 나라의 제후들이 자기를 친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음을 알아서 이에 또 크게 은혜를 베풀었다. 근심해야 할 경우에는 그를 위하여 근심을 하고, 도모해야할 경우에는 그를 위하여 도모하고, 행동해야 할 경우에는 그를 위하여 행동했다. 담나라와 내나 라를 정벌했으나, 그 땅을 차지하지 않으니 제후들이 어질다고 칭송했다.
桓公知天下小國諸侯之多與己也, 於是又大施惠焉. 加爲憂者爲之憂, 可爲謀者爲之謀, 加爲動者爲之動, 伐譚萊以不有也, 諸侯稱仁焉
<제21편 왕언(王言) - 전하지 않음>
<제 9권>
<제 23편 패언(覇言)-패업과 왕도의 형세>
(369) 성인은 기미를 두려워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밝게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니, 성인이 증오하는 것은 안에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증오하는 것은 밖에 잇다. 성인은 장차 행동하려 할 때 반드시 미리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닥쳐도 피하지 않는다. 성인은 때를 살펴서 때를 어기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잘 도모하나 때를 알아서 행동하는 것보다 못하다. 때를 잘 살피는 사람은 짧은 시간이라도 공이 많다.
聖人畏微 而愚人畏明, 聖人之憎惡也內, 愚人之憎惡也外; 聖人將動必知, 愚人至危勿亂, 聖人能輔時, 不能遠時, 知者善謀, 不如當時, 精時者, 日少而功多
(371) 그 군주가 현명한 것 같은데 현명하지 않고, 그 장수가 현명한 것 같은데, 현명하지 않으며, 그 백성이 농사짓는 것 같은데 농사짓지 않으면, 세 가지 지킬 것(三守)을 이미 잃어서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땅이 넓지만, 농사짓지 않는 것을 토만(土滿)이라 하고, 백성이 많지만 다스리지 않는 것을 인만(人滿)이라 하고, 백성이 많지만 다스리지 않은 것을 무만(武滿)이라 고한다. 이 세 가지만이 그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땅이 넓지만, 경작하지 않으면 자기 땅이 아니고, 장수가 존귀하지만 신하로서 복종하지 않으면 자기를 섬기는 장수가 아니고, 백성이 많지만 서로 친하지 않으면 자신의 백성이 아니다.
其君如明而非明也, 其將如賢而非賢也, 其人如耕者而非耕也, 三守旣失, 國非其國也, 地大而不爲, 命曰土滿; 人衆而不理, 命曰人滿, 兵威而不止 命曰武滿, 三滿而不止 國非其國也, 地大而不耕, 非其地也; 卿貴而不臣, 非其卿也, 人衆而不親, 非其人也
<제 10권 >
<26편 계(戒) - 정치에서 경계할 사항>
(393) 날개가 없으나 날 수 있는 것은 말소리이며, 뿌리가 없으나, 확고한 것은 감정이며, 지위가 없으며 존귀한 것은 바로 덕성입니다. 공께서도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하시고, 말을 삼가시면 엄격한 위엄이 유지되어 덕성이 존중될 것입니다. 이를 도가 빛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無翼而飛者 聲也, 無根而固者, 情也, 無立而貴者, 生也, 公亦固情謹聲, 以嚴尊生, 此謂道之榮
<제30편 군신(君臣) 상- 군주와 신하의 도리>
(420) 윗사람이 밝고 아랫사람이 신중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모두 덕을 갖추면, 순환하면서 질서를 이룬다. 군주가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신하가 그 직분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서로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데 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덕에 힘쓰고, 아랫사람이 직분을 지켜서 예의가 위에서 형성되고 선함이 아래로 백성에게 흐르면, 백성은 위로 군주에게 귀부하여 친해지고, 아랫사람은 농사에 힘을 다한다.
上明下審 上下同德, 代相序也, 君不失其威, 下不曠其産, 而莫相德也 是以上之人務德, 而下之人守節, 儀禮成形於上, 而善下通於民, 則百姓上歸親於主, 而下盡力於農矣
(428) 도란 참으로 인간의 본성이다. 도가 아닌 것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성스러운 왕과 현명한 군주는 이를 잘 알아서 이끄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백성을 다스리는데 는 변함없는 도가 있고, 재물을 생산하는 데는 변함없는 법칙이 있다. 도란 만물의 요체다. 군주가 요체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면 아래에 간악하고 거짓을 일삼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어도 감히 죽이려 들지 못한다. 도란 무형으로 설정되어 있어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통하지만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막힌다. 도가 아니면 사람을 다스릴 수 없고, 도가 아니면 재물을 생산할 수 없다.
道者, 聖人之姓也, 非, 在人也, 而聖王明君, 善知而道之者也, 是故治民有常道, 而生財有常法, 道也者, 萬物之要也, 爲人君子, 執要而待之, 則下雖有姦僞之心, 不敢殺也, 夫道者虛設, 其人在則痛, 其人亡卽寒者也, 非玆是無以理人, 非玆是無以生財, 民治在育, 其福歸於上,
<제11권>
<제32편 소칭(小稱) - 수신의 방법과 중요성>
(451) 자기가 착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단청은 산속에 묻혀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들고, 아름다운 구슬은 깊은 물속에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든다.
身不善之患, 毋患人莫己知, 丹靑在山, 民之而取之; 美珠在淵, 民之而取之
(453) 관자가 말했다. “자신에게 죄를 돌리는 사람은 백성에게 죄를 얻지 않고 자신에게 죄를 돌리지 않는 사람은 백성이 죄를 준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은 강하고, 자시의 절도를 다스리는 사람은 지혜로우며, 다른 사람에게 불선하지 않는 사람은 어질다.
管子曰 “善罪身者, 民不得罪也, 不能罪身者, 民罪之, 故稱身之過者, 强也, 治身之節者, 惠也;”
<제12권>
<제 35편 치미(侈靡) - 경기부양의 조건>
(474) 너무 부유한 사람은 부릴 수 없고, 너무 가난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물은 평평하면 흐르지 않고 근원이 없으면 빨리 마릅니다. 구름은 평평하면 많은 비가 내리지 않고 짙은 구름이 없으면 비가와도 빨리 그칩니다. 정령은 화평하되 위엄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되 친함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흐르고, 친근한 신하가 쓰여야지 쓰이지 않으면 비유하건대 서로 피하며 원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점이 있는 이를 윗자리에 두고 장점이 많은 이를 아래 자리에 두어서 헤아림 없이 쓰면 근본을 위태롭게 합니다.
0富不可使, 0貧不知恥, 水平而不流, 無源則速竭, 雲平而雨不0, 無秀雲, 雨則速已, 政平而無威 則不行, 愛而無親則流, 親在有用, 無用則辟 若相爲有兆怨, 上端下長, 無度而用 則危本
0
<제 13권>
<제36편 심술(心術) (上)>
(507)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 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지혜여, 지혜여, 바다 밖으로 던져서 억지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무릇 바른 사람이은 지혜를 구하지 않으므로 허무에 처할 수 있다.
道 不遠而難極也, 與人竝處而難得也, 虛其欲, 神將入舍, 掃除不潔, 人乃留處, 人皆欲智, 而莫索其所以智乎, 智乎 智乎 投之海外無自, 求之者 不得處之者, 夫正人無求之也, 故能虛無
(513) 인위적으로 하려고 함이 없으면 사물의 차이를 인정한다. 사물의 차이를 인정하면 텅 빈다. 텅 빔이란 만물의 시작이기 때문에 “천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人者立於强, 務於善, 夫於能, 動於故者也, 聖人無之, 無之, 則與物異矣, 異則虛, 虛者, 萬物之始也, 故曰 “可以爲天下始”
<제38편 백심(白心) - 마음의 함양과 심령의 정화
(526) 남의 말이 듣기 좋아도 듣지 말고, 남의 말이 듣기 싫어도 듣지 말라. 평정을 지켜 비방과 명예를 기다리고, 마음을 비워 맞서고 싸우지 말아야 깨끗하게 절로 맑아진다. 부풀린 말로 성공했다고 하지 말고, 살피고 검증하여 교묘히 꾸미는 말을 듣지 말라. 만물이 되돌아오면 아름다움과 악함이 절로 드러난다.
人言善, 亦勿聽, 人言惡, 亦勿聽, 持而待之, 空然勿兩之, 淑然自淸. 無以旁言爲事成. 察而徵之 無聽辨, 萬物歸之, 美惡乃自見.
<제15권>
<제43편 정(正) - 정치의 사명>
(570) 형으로 재단하고, 정으로 명령하고, 법으로 막고, 덕으로 기르고 도로 밝힌다. 형으로 재단하여 백성이 목숨을 잃지 않게 한다. 명령을 욕심을 없애고 시비를 밝혀 사악함으로 가지 않게 한다. 법으로 막아 생각의 단서를 끊어 백성이 요행을 바라지 않게 한다. 덕으로 길러 나쁜 행실을 고쳐서 반드시 몸소 시작하게 한다. 도로 밝혀서 그 성정을 살펴 반드시 그 이치를 따르게 한다.
<제16권>
<제49편 내업(內業) -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
(608) 형체가 바르지 않으면 덕이 오지 않는다. 마음속이 고요하지 않으면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형체를 바르게 하고 덕을 정돈하며 하늘의 어짊과 땅의 의로움을 본받으면 저절로 신명의 경지에 이르러 만물을 밝게 안다. 마음을 지켜 잘못되지 않도록 하면, 사물에 의하여 보고 듣는 감감 기관이 어지럽지 않고, 감각기관에 의하여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이를 마음을 깨우친 것이라 한다.
形不正, 德不來, 中不靜, 心不治, 正形攝德, 天仁地義, 則淫然而自至神明之極, 照乎知萬物 中守不忒, 不以物亂官, 不以官亂심 是爲中得
<제51편 소문(小門)-다양한 문답과 지혜
(630) 환공이 마구간을 시찰하다가, 마구간 지기에게 물었다.
“마구간에서 어떤 일이 가장 어려운가? 마구간 지기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관중이 대답했다.” 저는 일찍이 말을 길러 본적이 있는데, 우리를 짜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말 우리를 짤 때 나무막대를 엮으며 짜는데, 먼저 굽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굽을 나무를 써야 하고, 굽은 나무를 쓰면 곧은 마루를 엮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곧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곧은 나무를 써야하고, 곧은 나무를 굽은 나무를 써서 엮을 수가 없습니다.
桓公觀於廐, 問廐吏曰 廐何事最難? 廐吏夫對 菅中對曰 “夷吾當爲園人矣, 傳馬棧最難 先傳曲木,木又求曲木, 曲木已傳 直木毋所施矣. 先傳直木, 直木又求直木, 直木已傳, 曲不亦無所施矣
<제17권>
(654)
<제52편 칠신칠주(七臣七主)- 군주와 신하의 일곱유형>
(647) 무릇 창고는 까닭 없이 텅 비지 않고, 상인과 관리는 까닭 없이 무너지지 않고 법령은 까닭 없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나라는 까닭 없이 망하지 않는다. 저 계절에는 몸과 가을이 있고, 해에는 풍년과 흉년이 있으며, 정사에는 서둘러 할 것과 천천히 할 것이 있다. 정사에 서두러 할 것과 천천히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물간 값에 높고 낮음이 있다. 해에 풍년과 흉년이 있기 때문에 백성에게 남고 모자람이 있다.
夫倉庫非虛空也, 象管非虛壞也, 法令非虛亂也, 國家非虛亡也, 彼時有春秋, 歲有賑凶, 政有急緩, 故物有輕重, 歲有敗凶
(651) 그러므로 백성은 반드시 나아갈 바와 반드시 그만두어야 할 바를 알아서 밀면 나아가고 부르면 다가오는 것이 마치 높은 곳에서 무거운 것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땅에 도랑을 파서 물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쉽게 따른다. 그러므로 법령이 번잡하지 않고, 관리들이 수고롭지 않아도 백성이 금령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가 백성을 거느려도 백성은 군주를 원망하지 않는다.
故見必然之政, 立必勝之罰, 故民知所必就, 而知所必去, 推則往, 召則來, 如墜重於高, 如瀆水於地 故 法不煩吏不勞 民無犯禁, 故宥百姓, 無怨於上矣
<제53편 금장(禁臟) - 군주의 통치전략>
스스로 금지해야할 원칙을 가슴 속에 감추어 두어야 재앙을 만 리 밖에서 피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써서 재앙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을 잘 헤아리고 다른 사람을 잘 살피기 때문이다.
禁臟於洶脅之內, 而禍避於萬理之外, 能以此制彼者, 唯能以己知人者也, 夫終日之下濫 非愛冰也
<제20권>
<제64편 형세해(形勢解) - 형세편의 해설>
(733) 제때 일어나고, 절도에 맞게 음식을 먹으며, 기후가 알맞으면 몸에 이로워서 수명이 늘어난다. 제때 일어나지 않고, 절도에 맞지 않게 음식을 먹으며, 기후가 알맞지 않으면 몸에 쌓여서 수명이 줄어든다. 사람이 게으르고 사치스러우면 가난하고, 노력하고 검소하면 부유하다. 무릇 사물은 까닭 없이 생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장수하거나 단명한 것, 가난하거나 부유한 것은 아무런 이유없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起居時, 飮食節, 寒暑適, 則身利而壽命益, 起居不時, 飮食不節, 寒暑不適, 則形體累而壽命損, 人惰而侈則貧, 力而儉則富, 夫物莫虛至, 必有以也, 故曰 壽失貧富無徒歸也
(741) 현명한 군주가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근하게 하는 것은 그 핵심이 마음에 달려있다. 이른바 야행이란 마음이 몰래 하는 것이다. 마음 깊이 진심으로 덕을 행하면 천하에 그와 겨룰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오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보이지 않는 덕행이나 음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明主之使遠者來而近者親也, 爲之在心, 所謂夜行者, 心行也, 能心行德, 則天下莫能與之爭矣 故曰 :“唯夜行者, 獨有之乎!”
(746) 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광대해 질수 있다. 산은 흙과 돌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높아질 수 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 수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선비는 배우는데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성철이 될 수 있다.
海不辭水 故能成其大, 山不辭土石, 故能成其高, 明主不壓人, 故能成其衆, 士不壓學, 故能成其聖
(755) 도란 자기를 변화시켜서 바른 이치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몸에 있으면 말이 저절로 순조롭고, 행동이 저절로 바르며, 군주를 섬김에 충성하고, 부모를 섬김에 효도하며, 사람을 만남에 이치에 맞다. 그러므로 “도가 베풀어지는 곳에서는 몸이 변화한다. 고 한다.
道者, 所以變化身而之正理者也, 故道在身, 則言自順, 行自正 事君自忠, 事父自孝, 過人自理, 故曰 “道之所設, 身之化也.”
<제21권>
<제66편 판법해(判法解) - 판법 편의 해설>
(782) 다스림의 근본은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고, 둘째는 일을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쓰임을 구해야 하고, 일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치밀하게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람에는 거스르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있고, 일에는 정확히 측정하는 칭량이 있다. 사람이 마음을 거스르면 쓰지 않는다. (일에) 칭량을 잃지 않으면 손상이 있다. 사람은 쓰이지 않으면 원망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는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서 무리하지 않게 하고, 사업을 완성하는 데는 필요한 재물을 부족하지 않게 지원한다. 고 한다.
治之本二, 一曰人, 二曰事, 人欲必用, 事欲必工, 人有逆順, 事有稱量, 人心逆, 則人不用, 失稱量, 則事不工, 事不工則傷, 人不用則怨, 故曰 取人以己 成事以質
4.내가 저자라면
연구원 과제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었다. 한문에 너무 욕심을 내어 읽고 정리를 하다가 과제 제출일까지 하루를 넘기고 말았다. 한문과 한번 정식으로 붙어보니 몇 몇 구절은 한글보다 더 또렷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천여페이지가 넘는 책은 책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을 바꾸어 놓은것 같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미완의 시대, 노동의 종말, 부의 미래등이 작게만 보인다. 책의 두께에 대한 공포를덜었다고나 할까? 한문에 대한 새로운 열의가 생겼다. 내년에는 한자급수 시험준비도 병행을 하면서 고전을 읽어볼 계획이다.
관중의 부국강병과 그가 이룬 제나라는 그가 죽은 후 반란이 일어났고,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안에서 인위적인 것에 대한 자연의 반발이 생각났다. 강력한 정부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우리는 짧은 시간안에 무역대국으로 성장을 하였다. 힘의 논리에 의한 패권주의는 사상누각처럼 주춧돌이 하나 없어지자 와르르 무너지는 형국이다. 공자가 인과 덕치로서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성장과 배분이라는 거대한 담론과는 별도로 발전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현 세대에게 주는 교훈도 신선하다.
관자가 살았을 당시에 이러한 도, 마음에 대한 방법론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세계에서 역사에 대한 기록을 남겨 현대에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문명은 황화문명이 유일하다고 한다. 3천년전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오늘의 지혜로 삼는 중국인들의 중국인들의 모습에 중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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