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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3일 01시 0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장파(張法)

1954년 중국 충칭시에서 내어나 쓰촨 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 대학교에 진학,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1984년 런민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현재까지 재직하며 ‘중국미학사’, ‘중서미학연구’등을 강의하고 있다.

‘미학연구소’ 소장과 ‘전국심미문화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중국 미학계를 이끌고 있는 장파의 주요 저서로는 <중서미학과 비극의식>, <20세기 서구미학사>가 있다. 또 1998년 중국도서상을 수상한 <중국예술학>과 <중국 전통예술의 변천>, <천년 화하예술의 개관>을 비롯해 9편의 공동 저서와 80여 편의 논문이 있다.

2. 마음을 들어오는 글귀들

10-바로 이렇게 서양과 중국에서 동시에 사라진 아우라를 다시금 개척하고 이것은 현 지구 시대의 동서양을 넘어선 민중적 삶의 근본이요, 시민적 미 체험과 미의식의 기본인 ‘소통’으로부터 그 소통을 한 차원 넘어선 ‘초월’에로까지 연결시키려 하며 그 가능성을 중국과 서양의 전통적, 그리고 현대적인 미학의 제 영역으로부터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점에서 장파의 이 책은 동서간의 예와 지금 사이의 깊은 어둠 속에서 마치 흑요석처럼 신비롭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11-작품은 계몽자도 오락의 대상도 감정 이입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소통자로서 감상 과정에 들어오는 것이다. 작품은.... 감상자를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는 것이다. 감상 과정은 감상자와 작품이 양방향으로 초월하는 과정이다. / 그리하여 ‘소통’은 그 스스로 창조적 차원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초월 한다’. 여기에서 영성, 예감, 아우라가 바로 작품이라는 이름의 감각적 대상이나 텍스트의 물질적 규정 속에서 발현하게 된다.

32-중국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시대적 차이가 아니라 사상 유파의 차이이다. 중국에서 어떤 특징이 문화적 특징으로 간주되려면, 모든 유파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 서구문화에서 제일 중요한 차이는 중국과는 반대로 시대적 차이이다. 어떤 특징이 문화적 특징으로 간주되려면, 그 특징이 각 시대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중서 비교에서 중국의 경우는 시대적 차이에도 유의하면서 유파의 차이에 더 주목해야 하고, 서구의 경우는 유파의 차이에 유의하면서도 시대적 차이를 더 중시해야 한다.

36-“밖으로는 자연의 변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

38-“천하 만물은 모두 유에서 생기는데, 유는 무에서 생긴다.” ‘무’는 개별적 개념이 아니라, 도무이기가 일체화된 중국의 정체적 우주관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42-서구인이 우주의 본질을 추구할 때 중시하는 것은 유(Being)이고, 허공이 아니라 실체(substance)이다.

46-즉 ‘총체’로부터 객체를 부단히 독립시킴으로써 서구인은 결국 총체성의 허황함과 개체의 독특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개체가 문화적 기호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바뀌었든지 간에 결국 서구 문화는 실체의 차원에서 세계를 바라본 것이며, 언제나 실체의 세계를 그려 내려는 강박 관념 속에서 실체와 허공의 모델을 벗어나지 못했다.

46-무가 근본이며, 무에서 유로 나아간다.

47-중국의 유무상생론에서 무는 서구인이 이해하듯 실체가 차지하는 위치와 운동 장소로서의 허공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성하고 변화하고 창조하는 작용으로 충만한 기를 뜻한다. 허공은 바로 기이다. 형태가 없는 태허가 기의 본체이고, 그것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일시적 변화의 형태일 따름이다. -<정몽태화>에서 / 중국 문화에서 무로 이해되는 광대 무변한 우주 공간은 가로 가득 차 있다. 기는 떠돌아 흐르다가 만물을 파생시킨다. 기가 모이면 실체가 되고, 실체의 기가 흩어지면 그 사물은 없어져 다시 우주의 기가 된다. 하늘의 일월성신과 땅 위의 산천초목과 금수 등 온갖 만물은 모두 기에서 생겨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천지의 기를 향유하여 태어난다.

48-기의 세계에서 유와 실체는 기이며, 기의 응집이다. / 무 역시 기로서, 유형의 사물의 시작이며 유형의 사물이 죽어 기가 흩어진 후 돌아가는 귀속처이다. 이렇듯 유와 무, 실체와 허공은 기의 두 가지 양상으로 이해되며 확연히 대립되지 않는다. 유무는 상반상생하고 허실도 상반상생한다.

49-항상 무에서 그 오묘함을 보려하고, 항상 유에서 그 돌아감을 보려 한다. 이 둘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이를 하나로 이름 할 때 현(玄)이라 한다. 현하고 또 현하니 모든 미묘함의 문이다. -<노자>1장에서- / “무는 만물을 형성하는 것이 그 임무로, 어디로 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한곳에 머물지도 않는다. 음양은 이것에 의지하여, 변화 생성하고 만물은 이것에 의지하여 꼴을 이룬다.

50-하나는 실체의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기의 우주이다. 하나는 실체와 허공의 대립이고, 다란 하나는 허실의 상생이다. 이것이 중서 문화의 우주 모델에 있어 각 방면의 차이를 양산하는 근본적인 차이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상이한 방식이다.

59-애초에 형식을 운용하려던 서구인의 바람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진리의 추구, 즉 세계를 진실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는 완전의 추구, 즉 세계의 총체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60-오행은 물, 불, 나무, 쇠, 흙을 말한다. 물은 적시며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말하고, 불은 위로 타오르는 것을 가리킨다. 나무는 굽음과 곧음을 말하고, 쇠는 종군을 가리키며, 흙은 수확을 돕니다. 적시며 흐르기에 그 맛은 짜고, 불타 오르기에 그 맛은 쓰다. 굽음과 곧음은 신맛을 낳고, 종군은 매운맛을 만든다. 농사지은 것은 달다.

62-이러한 우주는 소농경제와 통일된 농업 사회에서 생활하고 사유하던 사람들이 사회 형태와 자연 법칙을 서로 참조비교교류하여, 사회 속에 자연을 짜 넣고 자연 속에 사회를 짜 넣어 만들어 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우주이다.

66-우주적 차원이란 일종의 초월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서 발견하는 부분(예를 들어, 인체의 심장간비장폐신장)들도 실체가 아니라 정체 공능적이다.

67-모호함은 정체 공능의 특징이자 정체 공능이 추구하는 바이다. 마음으로 알 수는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정신으로 깨달을 수는 있지만 분명한 형체로 나타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77-도의 숭고함. 기의 우주는 미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끝내 궁극에 도달 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은 “우러러볼수록 더 높아지고, 뚫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앞에 있어 쳐다보면 어느덧 뒤에가 있는” 그런 느낌이다. 도는 끝이 업으며, 심원아득하다. 이것이 중국 문화에서 최고의 경지이며, 중국 예술에서 최고의 경지이다. 한편, 기의 우주는 기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인체 자체와 주위 환경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도를 파악할 수 있고, 도에 이를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동경한다. 이러한 믿음은 성인 이미 도를 터득했다는 것으로 구체화되며, 이러한 동경은 성인의 도에 대한 동경으로 구체화된다.

78-시는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도와 통한다.

79-세상에서 도를 얻기 위해 귀하게 여기는 것은 책이다. 하지만 책은 말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며, 말에는 소중히 여기는 것이 따로 있다. 말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뜻이다. 뜻은 그것이 따르는 것이 따로 있는데, 뜻이 따르는 바는 말로는 전할 수가 없다. -<장자천도(天道)>에서

80-“입으로는 말할 수 없고, 그 마음속에 비결이 있다.”, 다만 몸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가장 심오한 기술의 경지는 기술이 아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기술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며, 사람의 총명함과 재능의 문제이고, 사람이 도를 터득하는 문제이다. 이는 중국 문화에서 모든 기술이 예술화되고 신비화되도록 만들었다.

81-중국인은 인간은 본래 우주(기)에서 근원한 것으로, 우주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인간의 비밀과 우주의 비밀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87-사물이나 사상은 하늘에 걸려 있는 달이고 언어는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저것이 달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손가락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라는 것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달이므로 달을 보면 손가락의 존재는 잊어야 하듯이, 말은 의미 전달이 목적이므로 의미를 파악하면 말 자체는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배움에 있어서도 스승의 마음을 파악해야지 흔적을 좇아서는 안된다. / 사물의 가장 미묘한 부분에 대한 파악은 기호를 넘어선 마음을 통한 깨달음으로만 가능하다.

90-이해득실을 바르게 하고, 천지를 움직이게 하며, 귀신을 감동 시키는 데에는 시가 제일 좋다. 선왕들은 시를 통해 부부간의 관계를 바로잡고, 사람들이 효도하고 공경하게 만들었으며, 인륜을 두텁게 하였고, 교화를 아름답게 하였으며, 풍속을 교정하였다. -<모사서>에서

106-<여씨춘추대악>은 “음악의 유래는 오래되었다. 그것은 도량에서 생겨났으며, 우주에 근본을 둔다”로 시작되며, <역대명화기>는 “대저 그림이라는 것은 교화를 이루고 인륜을 도우며, 자연의 변화를 궁구하고 미세한 기미를 예측하는 것으로, 육경과 동일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사계절과 함께 운행 한다”로 시작된다.

110-유사성에 의거한 경계를 이용하면 사물의 내면 깊은 곳에 도달 할 수 있다. “한 글자도 더하지 않고 풍류를 다 얻는 것이다.” 이는 무엇인가 말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생생한 풍경을 통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을 깨닫는 것이다.

118-순수 이론적 차원에서 보면, 화해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뜻한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구체적 사물로 표현될 때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된다. / ‘화해’는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우러진다는 의미, 그리고 그 다른 것들을 용납한다는 의미를 포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20-음악은 가장 신비로운 것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124-음악시노래음악춤 “다섯 가지 맛이 기를 충실하게 하고, 다섯 가지 색이 마음을 정화시키며, 다섯 가지 소리가 덕을 밝혀 주는” 것이다. / 입으로 다섯 가지 받아들이고 귀로 다섯 가지 소리를 듣는데, 이 맛고 소리에서 기가 생겨난다. 기는 입에서 말이 되고 눈에서 밝음이 되는데, 말은 명분을 신실하게 하고 밝음은 행동을 시의 적절하게 한다.

126-“맛으로 기를 움직이고, 기로 뜻을 충만케 하고, 뜻으로 말을 확정하고 말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즉 ‘맛-기-뜻-말-명령-정치’의 논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간추리면 맛의 화해, 기의 화해ㅡ 마음의 화해, 정치의 화해이다.

130-“상반상생(相反相生)” 유와 무가 상생하고 쉬움과 어려움이 서로를 이루며, 장과 단이 서로를 형성하며 높고 낮음이 서로 기울고, 음과 성이 서로 어우러지며, 앞뒤가 서로 따르는 것이다. 즉, 어떤 요소는 그것과 상반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위가 없으면 아래가 없고, 추함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있을 수 없다. 서로 대립하고 배척하는 것들이 함께 결합되어야만 사물이 존재하고 세계가 존재되는 것이다. “음과 양이 갈마드는 것을 일러 ‘도’라 하는 것이다”

145-중국 그림은 형상의 유사함이 아니라 신기(神氣)를 중시한다. 신(神)과 기(氣)가 바로 개체와 정체가 상통하는 바이다.

148-중국의 회화에서 보듯이 빈 공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집안의 허는 서구적 허가 아니라 우주의 영기(靈氣)이다. “텅 비었으니 영기가 왕래할 수 있다.” 건축의 허는 사람들로 하여금 폐쇄된 원 내에서 자연의 기운, 우주의 차고 비는 것을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158-화해는 문화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극치이며, 비극성은 가장 현실적인 극치이다. 화해는 인간으로 하여금 꿈과 희망으로 충만하게 한다. 하지만 비극성은 사람들에게 보고 싶지 않는 일을 보여 준다. 그 속에는 냉혹한 사실과 절망적인 고통만이 있을 따름이다. 모든 문화에는 화해와 현실적 비극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비극 의식은 성숙한 문화만이 가질 수 있다.

203-토템의식에 대하여

207-“지나치게 강렬한 빛은 시각적 감각 기관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객체를 소멸시키기 때문에 암흑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223-“큼(大)” 아름답긴 아름답지만 아직 크지는 않다. 충만한 것을 이르러 아름답다 하고, 충만하면서 빛을 발하는 것을 일러 크다 한다.

229-누대에 올라 우러러 우주의 위대함을 살피고 아래로 만물의 번영을 관찰함으로써 사방을 멀리 조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대 중국인이 우주와 인생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 숭고이다.

237-중국 철학에서 ‘공’은 서구적인 ‘비어있음’이 아니다. “공즉시색(空則是色)”이다. 공령(空靈)은 예술의 최고 경지이다. ‘무’도 서구적인 무가 아니다. 무는 유를 포함하여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허(虛)’는 진실보다도 더 진실하며 “도는 허로 모여들고”, 허공이 없으면 만물은 생겨나지 않는다. “정(靜)"에 대해서도, 중국인은 자연 법칙에 따라 운행하는 우주는 움직이면서도 고요하다고 여긴다. 결국 중국인의 ‘공무허정’에는 우주의 영기가 충만하다. ”고요한 까닭에 뭇 움직임이 명료하고, 비어 있기에 만물을 받아 들을 수 있다.”[소식]

239-<노자>에서는 “도라는 것은 있는 듯 없는 듯 아스라이 희미하다”

243-산 하나를 놓고 ‘정상을 보고 뒤를 보고 멀리 보며’, 우리의 시선은 움직이며 변화한다. 높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깊은 곳에서 다시 가까운 곳으로 왔다가 다시 평원을 거쳐 횡으로 먼 산을 바라보면서, 리듬화된 행위를 이룬다. -춤-

251-그 공식으로는 왜 하필 ‘내’가 실연을 당해야 하는지는 해명해 주지 못한다. 게다가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교통 사고를 당하거나 실연을 당한 후에 어떤 법칙이나 이론으로 그것을 설명하거나 혹은 나의 재난이 그 법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사고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이며, 당시의 독특한 고통이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피해자화-

254-서구 현대인의 실존주의적 자유는 신이 사라진 자유이며, 법칙을 부정한 자유이고, 필연에서 벗어난 자유이다. 이러한 자유와 필연적으로 결합된 것이 부조리 이며, 따라서 자유와 부조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262-무릇 본성을 잃는 데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갖가지 색이 눈을 어지럽혀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둘째, 갖가지 소리가 귀를 어지렵혀 청각을 둔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갖가지 냄새가 코에 열이 나게 하여 코가 막히고 골치가 아프게 하는 것이다. 넷째, 갖가지 맛이 입을 더렵혀 맛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다섯째, 취사선택이 마음을 어지렵혀 본성을 들뜨게 하는 것이다. -<장자천지(天地)>에서

262-심재좌망(心齎坐忘) 좌망은 심재의 외적 체득이다. 즉 “사지와 육신을 버리고 귀와 눈의 작용을 물리쳐서, 형체를 떠나 앎을 없애는 것”이다. 형체의 존재를 망각하면 일상적인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이 없어지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심재는 좌망의 내적 상태이다. 그것은 내면적인 기(氣)의 흐름에 전념하여, “뜻을 하나로 하여,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고, 마음이 아닌 귀로 듣는 것”이다. 인체의 기는 우주의 기와 상통한다. 바로 기공(氣功)의 상태가 인체의 기가 자연의 기와 교류하는 상태이다. “기는 비어 있어서 만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도는 빈 곳으로 모이니.” 도가에 있어 기공의 경지는 “대도와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경지이다.

273-‘밖으로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자나 하는 짓거리’라 했다. 그대가 상황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곧 진(眞)이다. 절로 해탈의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281-즉 문은 일종의 외관이다. 그것의 첫 번째 특징은 식(飾, 꾸밈) 즉 수식성이다. 이후 식은 발저낳여 다양성이 통일된 조화의 사상이 되는데, 식은 본래 단일한 것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물로는 무늬를 이룰 수 없다.”
291-내적인 ‘마음비우기’-고요히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형(形)과 아(我)를 잊고 도와 하나되는 것-를 하난 한편, 외적인 소요-물(物)에 연연하지 않고 생사를 초탈하여 천과 하나가 되는 것-를 추구한다.

294-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 소리와 그림의 외형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할 수 있다. -<법언문신>

315-인물품평론 : 심미적 인물 품평에서 중시하는 것은 구체적인 느낌과 ‘몸으로 깨닫기’이다. / 사람은 “유일의 본원을 품음으로써 원질을 형성하고, 음양을 부여받음으로써 본성을 이루며, 오행을 체화하여 형체를 이룬”것이니, 애초부터 정체 공능적이다. / 그것은 외형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몸으로 느낄 수 있지만 확정적으로 위치 지을 수는 없으며, 마음으로 알 수는 있어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319-중국 미학은 언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읽으려면 언어를 통해야 하지만, 언어를 통해 작품의 경계 속으로 들어가면 언어는 잊혀진다. 근본적으로 말은 하나의 층차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 너머의 의’이다.

325-“몸과 사물이 접촉하여 경이 생겨나는 것이다.”

332-그 개성이 아무리 독특해도 그것은 보편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성을 부각시키면서 그 보편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또한 보편성을 그러내면서 그 개성을 어떻게 부각시킬 것인가, 즉 개성과 보편성의 관계를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가 근대 전형론의 핵심이 되었다.

333-낭만주의는 천재를 표방했다. 천재의 특징은 상상이다. 상상은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모방하지 않고 현실을 창조해 낸다.

347-유협의 팔체 : 즉, “각자의 마음에 의거하여 창작하니, 그 작품이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서로 다른” 개별 유형들을 하나의 전체적 유형으로 포괄하기 위해서이다.

349-때와 사람에 따라 말하는 방식에는 각기 적합한 것이 있다.

355-‘신’은 유가의 신이며 ‘일’은 도가의 신이다. 유가의 신은 문화의 신으로, “음양을 알 수 없는 신이며”, “신은 형체가 없고 방향이 없는” 법도를 초월한 성질을 지닌다. 하지만 그것은 유가의 신으로서, 법도에서 출발하여, 형에서 신이 되고 법도로 법도를 초월하며, “만물에 상응하여 그 모양을 본뜬 것”에서 시작하여 “구상이 신과 하나 됨”을 거쳐 결국에는 신의 경계에 이르고자 한다.

370-당대의 화가 장조도 “밖으로는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을 얻는다”고 했다. ‘조화’는 자연을 가리킨다. 조화를 본 받는다는 원칙으로 인해 중국의 예술세계는 대부분의 자연 세계이다. 중국에서 자연은 기의 우주 속에 존재하는 자연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같은 산, 같은 물도 춘하추동아침낮저녁밤에 따라 형상, 색채, 정취가 끊임없이 달라진다.

372-“그는 모방이 현실을 충실하게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자유롭게 처리하는 것이며, 예술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여겼다.”

376-마음에 잘 쌓아 두었다가, 한참 익은 후에 그린다. / 큰 것으로 작은 것을 살피는 방식이란 화가가 많은 경험을 하고 충분히 유람하며 충실히 수양을 쌓아 아름다운 산과 강이 “가슴속에 역력해지면”, 그것을 우주적 차원에서 그려내는 것이다.

385-중국의 우주는 기의 우주이다. 그래서 중국의 시와 회화에서는 산점 투시를 사용한다. 그림의 배경은 대개가 여백이며, 시의 최고 경계 역시 “글의 끝이 저 아득하고도 아득한 곳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387-중국의 내유는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비운 것’을 전제로 한다.

389-중국의 기의 우주는 비어 있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만물의 운동 법칙을 규정하는 우주의 기를 인식하는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 마음을 비우고 한 가지에 집중하여 고요해지는 것, 이것을 대청명(大淸明)이라 한다. 대청명의 경지에 이르면 만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니 모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 모습을 보아 논할 수 없는 것이 없으며, 논하되 합당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방 안에 앉아서도 천하를 볼 수 있고, 오늘날에 살면서도 아주 먼 옛날을 논할 수 있으며, 만물을 관찰하여 그것의 정을 알 수 있다.

390-“고요하면 뭇 움직임이 확연해지고, 비어 있으면 모든 경을 받아들일 수 있다.”[소식]고 믿었다. 이에 예술가는 내유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 잡념 없는 마음이라고 여겼다.

393-“신은 마음속에 거주하는데, 그 활동 작용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의 의지와 기질이다. 만물은 눈과 귀를 통해 마음을 다다르는데, 그것을 주관하는 표현 도구는 언어이다.

395-상상은 감각을 가진 사람에겐 누구나 있는 능력이다. 이런 기능은 기억과 관련된다. -볼테르-

399-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하려면, 우선 그 사람의 마음을 대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꿈에서 왕래하고 혼이 되어 함께 노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의 처지가 되어 보겠는가? 단정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려면 응당 처지를 바꿔 단정한 생각을 대신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사악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려 해도 응당 정도를 버리고 권모술수를 따름으로써 잠시나마 사악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403-우주의 오묘한 이치는 텅 비어 있으면서도 변화무쌍한 것이다. 예술가의 현유가 중시하는 것은 실체가 아닌 하늘의 기가 드러난 모습이며, 사물의 전형화가 아닌 형상의 기운화로서, “정신을 집중하고 생각을 멀리 보내어, 사물과 은연중에 통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중국에는 서구의 상상에는 없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있다. / 그림을 자 그리는 사람은 용사의 검무를 보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등짐을 지고 서둘러 걸어가는 사내를 관찰하며, 거문고를 잘 타는 사람은 비에 젖은 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탕현조의 <서악모백고>에서

409-‘기흥’이란 예술적 감정이 일어남을 뜻한다. 흥은 일으키는 것이다. -유협 / 사물과 저복함으로써 정이 일어나는 것, 이를 흥이라 한다. -이중몽

413-문장이란 흥이 일어 짓는 것이다. 먼저 기를 움직이는데, 기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마음은 말로 드러나고 귀에 들리며 눈에 보이고 종이에 기록된다.

422-(1)마음의 어지러움을 떨쳐 버리고 사고의 길이 막히지 않도록 하여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무르익으면 즉시 붓을 들어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을 펼쳐놓아야 한다. 그러나 원래 의도했던 글의 구상이 막히게 되면 즉시 붓을 놓아 사색을 중단하고는 이리저리 거닐면서 피로를 풀고 담소를 나누며 권태감을 몰아내야 한다. (2) 늘 마음을 여유롭게 하여 자신의 재능이 예리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정력이 흘러넘치도록 하며, 항상 사고의 칼날을 지금 막 숫돌에 갈아 놓은 것처럼 유지하고 이치에 따르되 조금도 지체됨이 없도록 해야 한다.

428-한참을 고심해도 머리 속의 상과 딱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지력이 고갈되면 마음속의 구상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그러면 우연히 경이 떠올라 어느새 시가 되기도 한다. -왕창령의 <시격>에서

429-그 순간 시인은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사물인지를 모르는” 몰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는 인인 영감에서 작중 인물에 빠져들 때 겪게 되는 첨예한 대립이 없다. 따라서 이때의 “광기”는 탈속적이며, 자연과 하나 되어 도를 깨닫는 “잊음의 경지”로 표현된다. “잊음은 도가 가는 길이다.”

442-글은 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글은 배운다고 능해질 수는 없지만, 기는 길러서 이를 수 있다.

444-화가의 육법 중에서 그 첫째가 기운생동인데, 기운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으로 하늘이 준 것이다. 하지만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여행하여 흥중의 더러운 먼지를 털어내고, 자연의 산천을 마음속에서 경영하면서, 경계를 이루어 손 가는 대로 그려 내면, 그것으로도 산수의 신을 전달 할 수 있다. -<화선실수필>에서

446-몸소 겪은 일을 입으로 말해야 한다. 장사꾼은 장사에 관해 말하고 농사꾼은 농사일을 말하니, 뚫을수록 맛이 나고 진정으로 덕을 담은 말이어서, 듣는 사람이 싫증나질 않는다. -이지의 <답경사구>에서

449-세상에서 진정으로 문장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애초부터 글에 뜻을 둔 것이 아니었다. 경치만 봐도 감정이 생겨나고 그 눈에 닿는 것마다 탄식을 자아내니, 남의 술잔을 뺏어서 단단히 맺힌 자신의 울분 위에 들이붓고, 맘속의 불평을 호소하며 천년 세월 중에도 불운한 팔자를 느낀다. 발광하며 소릴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니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455-이런 고찰이 선종 용어니 ‘참(參)’, ‘깨달음(悟)’ 등으로 통일되었다. 증계라는 위의 글 뒤에, “들어가는 곳은 달라도 사실은 서로 통하는데 깨달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459-깨달음과 흥은 다른 것이다. 흥은 시 창작의 돌발성을 강조할 따름이지만, 깨달음에는 작품의 높은 경지에 대한 추구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깨달음에 관한 논의는 인품론과 더 유사하다.

461-“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니, 인간도 크다.” -<노자>

466-산수화가 처음 출현했을 때, 종병은 “마음을 맑게 하여 만상을 맛 본다”는 말로 그 심미적 특징을 묘사했다 .최초의 순수 시학의 기반을 다진 종영도 “우러나는 맛”이란 용어로 시의 미적 특징을 표현했다. 이처럼 중국의 심미를 설명하려면 ‘맛’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맛을 몸으로 느끼다’, ‘맛을 즐기다’, ‘맛을 찾다’, ‘맛을 궁구하다’, ‘맛을 음미하다’, ‘맛을 세밀하게 느끼다’, ‘맛을 깊게 느끼다’ 등은 상용어가 되었다.

494-눈으로 응하여 마음으로 깨닫는다. 눈으로 응대하고 마음으로 깨닫게 되면 비로소 자연의 신묘함을 느낄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신묘함을 초월하여 자연의 깊은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

512-유가적인 시인은 감각으로 경치를 돌아보면서 내면으로는 역사를 살핀다. 그들의 우주 의식에는 흥망성쇠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눈 돌리기를 하면서 산수에 자신의 감정을 담고, 망국의 역사와 세상사에 자신의 신세 한탄을 담는다.

513-중국 문화에서 기의 우주는 텅 비어 있으면서도 변화무쌍하여 예측하기 힘든 것이어서,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살펴야만 우주의 정신을 느끼고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로아래로멀리가까이 눈을 돌리는 과정의 리듬은 바로 중국의 순환 리듬과 일치한다. 중국의 천도는 순환적이며, 미적 감상의 시선도 순환적이다. 올려다 보면 반드시 내려다보고, 멀리 보다가는 반드시 가까이 보고, 시선이 갔다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중국인은 이렇게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우주를 획득하고 우주를 획득함으로써 자아를 획득한다.

522-글을 읽을 때는 다음 여섯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째, 작품의 전체적인 체재의 안배를 볼 것, 둘째, 문장이나 말의 배치를 볼 것, 셋째, 작품에서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변화의 추구를 볼 것, 넷째, 표현 수법상의 정아함과 기이함을 볼 것, 다섯째, 소재의 운용을 볼 것, 여섯째, 성률을 볼 것. 이것은 모두 실질적 요소이며, 눈 돌기도 실질을 위주로 한다. ‘보기’, ‘맛보기’, ‘깨닫기’는 중국 미학에서의 감상의 세 단계를 뜻한다. 먼저 위로아래로멀리가까이 보고, 그 다음에 형상과 재질을 봄으로써 의경을 맛보는 것이다. 말을 통해 뜻으로 들어가고 문(文)을 거쳐 정(情)에 이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깨닫기에 이른다. 한참 동안 맛을 즐기면 자연스럽게 깨달음에 이르러, 상 너머의 상경물 너머의 경물맛 너머의 맛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528-혜강과 이세민의 ‘소리 자체에는 슬픔과 즐거움이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혜강은 음악과 마음은 그 체계가 달라 “길과 궤도가 서로 다르니 그 방향도 다르다”고 하면서 “음악은 선악을 위주로 하므로 슬픔이나 즐거움과는 상관이 없다. 슬픔과 즐거움은 정감을 위주로 하므로 음악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기쁜 사람이 들으면 즐거워지고, 애달픈 사람이 들으면 슬퍼지는 것이다. 슬픔은 마음에 달린 것이지 음악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어찌 음악이 슬프다고 즐거운 사람이 슬퍼지겠는가?
530-‘물에 뜻을 기탁하는 것’은 물이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지 내가 물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물에 뜻을 남기는 것’은 온 마음을 물에 빼앗기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면서도 잘 성명하고 있는 것이 소옹의 ‘물로써 물을 보는 것’이다. / 성인은 만물의 정을 하나로 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돌이켜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이른바 돌이켜 본다는 것은 나로써 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나로써 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로써 물을 보는 것이다. 물로써 물을 볼 수 있으니, 그 사이에 어찌 ‘나’가 끼어들 수 있겠는가?

536-사마천은 “높은 산 우러러보며, 넒은 길을 따라간다. 비록 그 경지에 이르진 못할지라도, 마음만은 그[공자]를 향하리라.”고 말했다. / “마음으로 그를 향해 가는 것”은 좋은 작품을 감상할 때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지난 동양의 역사는 자신을 지워나간 기억 상실의 시대에 살았다. 자신의 문화 속에 미학이 없을 경우, 이미 체계를 갖춘 서구 문학을 주저 없이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중국 수천 년의 역사 속에는 ‘체계’를 갖춘 미학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문화는 아편 전쟁 이후의 지난한 현대화 과정 속에서 줄곧 세 가지 문화 세력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현대화로 나아간 서구 문화이며, 마지막 하나는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스탈린의 사상이 융합된 소련 문화이다. 문화대혁명 이후에는 중국이 현대화를 훨씬 광범위한 차원에서 진행시키려고 했고, 이에 따라 전통 미학과 서구 미학의 영향이 강화되었다. 이 세 방향의 자기장이 서로 끌어당기는 상황에서, 중국 미학의 현대화 과정은 세 가지 힘의 충돌과 융합 과정을 통해 다시 형성되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그 원류와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의 제목에서 한눈에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동양과 서양의 미적 관점과 실천에 대한 차이를 비교론적 관점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비추는 두 거울을 찾아서'라는 번역서의 부제에도 암시되었듯이, 저자의 비교론적 관점 도구는 전체적으로 미학을 균형 있게 대비시켜 바라 볼 수 있는 투명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5장은 동일한 또는 유사한 개념에 대해서 중국과 서양에서 미학개념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6~12장은 중국과 서양에서 전개된 대비되는 미학개념들의 짝을 몇 개의 범주로 묶어서 비교론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동서양 문화사와 철학, 종교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서술 태도는 총론격인 서론에서부터 시작해 창작과 감상의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개념들을 비교론적 관점에 따라 차례로 서술함으로써 매우 통일성 있게 논하고 있다. 또한 비교를 통해 한쪽을 비판하거나 우월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대비적 서술에는 '혁신'과 '보존'이라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다소 도식적 관점이 깔려있지만, 다름을 받아들이고 비교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미의식은 ‘소통’이며, 그 소통을 한 차원 넘어선 ‘초월’까지 연결시키는 가능성을 통해 서구와 중국의 미학을 서로를 부각시키는 '비교'의 미덕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비교론적 관점을 통해 상생과 조화의 철학을 아래와 같이 말해주고 있다.

“사상은 하나의 도구이며 여러 다양한 사상은 갖가지 다양한 도구에 해당하고, 각 도구는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용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와 같은 인류의 도구들을 잘 이해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현실적 수요에 근거하여 새로운 도구를 창조해냄으로써 도구 창고들의 재고를 증가시키는 일입니다. 다양한 여러 사상은 문화적이며 동시에 인간학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이 어떤 사상들 간의 융합을 필요로 한다면 그 사상들은 자연히 융합되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중국의 다양한 고전은 물론 서양건축사 문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헌을 참조하면서 미학 이론을 고찰하고 있다. 따라서 미학에 대한 동서양의 역사적 성과를 잘 보여주는 동서고금의 중요한 미학문헌들을 차례로 맛보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이 책을 포함하여 몇 권의 중국 고전을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발걸음을 디뎌야 할 길인 것이다. 동서의 경계가 붕괴되는 세계화의 시점에서, 우리 자신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장파(張法)의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을 읽는 것은 한국미학 및 코리아니티를 발견하고 설명해 내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의미 있는 읽기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번의 속독으로는 미흡한 이해와 정리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안에 담겨진 동양과 서양의 미학에 대한 혼재를 투명하게 바라보게 하고, 다시금 정리하고, 내가 흔히 사용하는 동양적 미학개념을 좀더 정확하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의 미학적 사고의 정리, 확장으로 이끌어준 책으로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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