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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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는 폴란드를 열렬히 사랑한 애국자인 아버지와 일곱 살 때 고아가 되어 불우한 성장을 한 폴란드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1889년 3월 12일 삼남매 중 차남으로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출생했다.
러시아의 사설극장이나 오페라 극장들이 많은 발레 마스터와 발레 군무를 바르샤바의 비옐케 극장에서 훈련 받은 예술가로 충당할 시점 니진스키의 양친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게 된다. 결국 그에게는 러시아가 제 2의 조국이 되었다. 니진스키 그리고 그의 여동생 브로니슬라바는 조국이 아닌 러시아에서 무용가로 성장하고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나중에 단지 러시아의 무용가로만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무용가로 성장하게 된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장인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형은 추락사고로 정신분열을 앓다가 끝내 수용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어머니는 자기 재능을 이용해 먹고 살기위해 서커스단에 가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는 남자의 애인으로 5년을 살아간다. 외할아버지나 장인과는 니진스키는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이런 큰일을 당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니진스키와 가장 밀접한 관계인 어머니와 아내라는 사실이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 고아로 혼자 살아왔고, 그의 아내 로몰라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착의 능력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다. 니진스키의 아내가 그에 대한 사랑에 대해 많이 운운하나 기본적으로 신뢰와 애착의 능력이 없었던 아내와 어려서부터 가난에 찌들어 살아온 어머니의 돈에 대한 애착은 보고 읽기만 해도 내 가슴까지도 답답했다. 이렇듯 그들의 정신적, 물질적인 것을 채워줘야 하는, 마치 환자같은 그의 가족들이 그를 정서적 혼란으로 내 몰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삶은 고달팠지만 어느 한 곳 푸근히 기대어 자기를 이해해주고 받아줄 만한 주변 인물은 없었다. 피터 오스월드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정신의학 조교수인 스테펀즈 박사와 공동으로 니진스키의 질병을 ‘자기애적 인격 분열의 정서적 혼란’으로 진단했다.
그는 1899-1907년 까지 그의 재능을 잘 살려 황실학교에서 수학하고 졸업했다. <아르미드 관> <지젤> 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 출연 극장에 독무자로 입단하여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며 무용수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 이외에도 <사육제> <레 실피드> <세헤라자데> <장미의 정령> <페트루슈카> 등에 출연하며 무용의 신으로 찬양되기까지도 했다. 1912년 직접 안무하고 출연한 <목신의 오후> 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안무가로도 명성을 떨친 바 있다.
1917년 9월 30일 대중 앞의 마지막 공연이 된 몬테비데오 적십자 자선공연 출연 이후 스위스 모리츠에 정착했는데, 1918년 정신질환의 증세가 심화되어 그의 무용수로서의 생명은 끝이 났다. 요양원을 전전하다 1950년 4월 8일 영국 런던의 사설 진료소에서 신장 질환으로 그는 더 이상 춤도 일기도 쓸 수 없는 고인이 되었다. 니진스키의 유해는 4월14일 장례 미사 후 세인트 메릴 번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가 1953년 6월 예술가들의 거리 몽마르트로 이장 되었다.
무찌르는 글귀
역자서문
당대 영국 문학계의 기수로 알려진 윌슨은 스물아홉 살 때 쓴 이 작품 속에서 바슬라프 니진스키를 반 고흐, T.E. 로렌스와 함께 ‘실패한 아웃사이더’ 의 전형으로 꼽았는데, 니진스키가 정신의 붕괴를 예감하면서 ‘자기 분석서’ 라 할 <일기> 를 쓴 것도 스물아홉 살 때였다.[5]
월슨이 현대 사회의 소외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광범하게 인용한 니진스키의 <일기> 는 내게 일종의 전기 쇼크와도 비슷한 충격을 주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의 정신의 편력에 서 니진스키와의‘운명적인만남’ 이라 만한 것이었다.[5]
사실 우리의 일생은 대상과의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라 할 수 있지만, 진실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삶의 행로를 바꾸게 할 정도로 중요한 만남이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만남의 대상은 살아 있는 인간일 수도 있고,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 또는 역사 속의 인물일 수도 있다. 관념을 위해 우리는 삶을 희생할 수도 있고 이상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이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어떤 속에도 더없는 희열을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었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우리의 내면에 일대 지진을 일으켜놓는다면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6]
그의<일기>는 정신 의학도를 위한 텍스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온갖 환상과 기억들과 자유 연상의 숨 막히는 연속으로 이우어져 있는 까닭에 불합리한 문장도 그 자체로서 의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8]
역자 해설
그의 <일기> 는 이 양 극단의 가파로운 경계선에서 필사적으로 기록한 그의 ‘영혼의 자서전’이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으로부터 단절되어 내면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한 천재 예술가의 내면의 여로를 나침반도 없이 한없이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하게도 특이한 기록이다.[13]
1919년 1월19일부터 3월4일에 걸쳐 6주 반 동안 그가 사로잡혔던 ‘내면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일기> 인 것이다.[15]
두 살 터울인 이 오누이에게 나이와 성의 차이가 우정의 밀착된 유대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놀이와 장난과 슬픔까지를. 우리는 집에서나 황실극장의 학교에서도 함께 자랐다. 우리는 똑같은 교육을 받았고 같은 인상을 공유했으며, 같은 환상에 매혹되고 같은 꿈을 지니고 있었다.”[21]
프로이트, 융, 크레펠린을 포함한 세계의 가장 탁월한 정신병의들이 니진스키를 진료했지만, 끝내 정상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의 충고는 한결 같았다. “정신의학자의 간호 아래 그에게 최상의 상태로 육신을 편하게 해주고 조용한 환경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로 하여금 자신의 꿈에 잠겨 있도록 내버려두세요.”[22]
취리히 유명한 정신병의에게 자신의 정신상태를 진단받기 위해 생모리츠의 자택을 떠나기 직전까지 쓰고 있던 <일기>에서 니진스키는“ 의사들은 내 병을 모른다. 내 정신은 건강한데 내 영혼이 앓고 있다. 내 병은 너무나 위중해서 곧 치유될 수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아마도 그의 생각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병든 것은 그의 영혼이고, 그것은 의학이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22]
그의 춤을 목격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를 가리켜‘신처럼 춤춘다’ 고 말했지만, 그는 진실로 마치 새가 노래하듯이 춤을 추었다. 자신의 영혼을 쏟아부을 유일한 통로가 춤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당연한 단순성과 기쁨을 가지고 그는 춤으로 자기 존재를 표현했다.“그는 마치 춤추기 위해 태어난 존재요.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23]
“그의 모든 춤추는 동작 속에는 가장 어려운 기교를 요하는 스텝조차도 어렵거나 힘든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무대를 온통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날아다녔으며....... 위로 솟구쳐오를 땐 파리처럼 바닥에서 날아올랐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가 다시 도약할 땐 흡사 공처럼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27]
그는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관념을 전달하는 완벽한 도구로 만든 결과 어떤 역을 춤추든 완전히 자기가 맡은 배역의 인물이 돼버리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그의 춤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28]
니지스키의 아버지는 열렬한 애국자이긴 했어도 그의 전생활은 오직 극장에만 몰입해 있었다. 한편 니진스키의 모친 엘레오노라 베레다 역시 노련한 캐비닛 제조업자의 딸로서 무용가 가문 출신은 아니었다. 그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언니와 더불어 몰래 발레 수업을 받았으며 어릴 때부터 재능을 나타냈던 것이다.[30]
남성 댄서를 위한 안무의 의미는 니지스키로 인해 달라지게 되었다. 그는 남성을 위한 안무의 역할을 바꾸어놓았던 것이다.[35]
남성 댄서가 고전 발레에서 주도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니진스키 이후부터였다. 그는 남성 댄서를 발레리나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발레 예술에서 남성과 여성의 요소를 대등하게 만들어 놓았다.[36]
<판> 응 창조했을 때 니진스키의 나이 불과 스물세 살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제전>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도니 안무가로서의 경력이 그의 정신이상으로 인해 좌절되지 않았던들 인류는 그외 수많은 걸작들을 무용유산으로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창조는 슬프게도 너무나 일찍 동결돼버렸다.[49]
천재와 정신이상은 서로 근친이지. 정상과 비정상은 두 국가 사이에서처럼 국경이란 게 없어요.[52]
니진스키의 생애를 훑어보노라면 마치 북구의 신화에 나오는 ‘우수부인’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그의 주변엔 항상 불운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56]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라고 일기 속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일찍부터 본능적으로 인생의 비참과 불행을 이해하고 있던 그의 영혼은 한평생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56]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이질적인 존재’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적의를 느끼는 법인데, 니진스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하는 돈이나 명성 또는 사회적 지위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에겐 어딘가 세속에 속해 있지 않은 듯한 수도사적 면모가 있었다.[62]
니지스키의 <일기> 에 자주 등장하는 ‘감정' 이란 낱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에서 볼 때 그가 말하고 있는 ’감정‘은 본능, 다시 말해 무의식의 심적 충동을 의미한다.‘생각’에 대응하는 '느낌’,‘논리’ 에 대응하는 ‘직관’에 가까운 것이다.[64]
선년의 문턱에서, 그리고 성인이 된 삶에서 니진스키는 그에게 결정적 의미를 지니는 세 명의 인물과 차례로 조유하게 되는데, 즉 파벨 드미트리예비치 류보프 왕자와 세르게이 파믈로비치 다이길레프 그리고 로몰라 드 풀츠키가 바로 그들이다.[69]
청춘에서 성인으로 성숙되는 결정적 시기 동안 니진스키의 아버지를 대신했고 조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젊은이의 성적 억제를 완화시켜준 둘의 관계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지만, 여러 모로 이것은 니진스킨에게 유익했다.[72]
두 사람에게 이것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디아길레프는 연인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곧 니진스키에겐 류보프와의 이별을 의미했다.[73]
천성적으로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그는 혼자가 되자 디아길레프와의 사랑이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라 성찰하게 되고, 치릴; 머든 것을 포기하고 시베리아로 가 수도승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만, 춤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에겐 사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같은 진퇴유곡 속에서 아마도 그는 ‘결혼’ 이란 제 3의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다.[79]
우리들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벽한 행복’은 영속하지 않는 법이다.[87]
1912년 어느 땐가 파리의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니진스키는 언제부터 춤을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나의 양친은 걸음마와 말하는 걸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춤추는 걸 가르치는 걸 당연한 걸로 여기셨다.”고 대답했다. “ 제 어머니조차 내 첫 이빨이 난 때를 기억하시지만 내가 정확히 언제부터 춤 수업을 시작했는지는 말해줄 수 없었지요.”{92]
니진스키에겐 춤을 추는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 또한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극장은 그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극장과 춤은 태어날 때부터 그를 위한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었다.[92]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극장과 단절되어 춤출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았던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는 아슬아슬하게나마 정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92]
그의 누이 브로니슬라비는 오빠와의 대화 도중 화제가 ‘춤’에 이를때면 언제나 그에게서 돌연한 의식의 불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92]
니진스키에게 ‘무용’은 신앙이요 생명이며 영혼이었다. 그러나 극장이 없었으므로, 니진스키는 자기 속에 깊이 물러가 자신의 고유한 ‘무용’ 의 내면세계에서 살기 위해 삶의 현실로부터 문을 닫아버렸던 것이다.[93]
영역자 서문
니진스키적 개념은 ‘메마름’에 대한 것이다. 그는 메마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느끼는’ 능력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게다가 또 다른 별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습관’이란 낱말을 사용한 그의 의도이다.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인공적으로 획득한 행동 양식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 습관이 없는 것은 온갖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98]
번역에서 재생시킬 수 없는 니진스키 저작의 한 가지 특징은 본텍스트와 제 4권의 공책 양쪽에 다 포함된 그의 시에 두드러진 대단히 강렬한 리듬인데, 그는 이 시가 지녔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수도 있는 어떤 의미와는 상관없이 거기에 집착한다. 이 강렬한 리듬은 댄서로서의 그의 언어적 표현이랄 수 있다.[100]
삶
나는 콩을 좋아하지만, 그것들은 메마르다. 나는 마른 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속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103]
나는 연주를 하고 싶지만 내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오랫동안 살고 싶다. 아내는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 그녀는 나 때문에 근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 나는 너무나 신경질적으로 연주했기 때문이다.[108]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던 것이다.[108]
그들이 나를 환자로 생각하니 정말 유감이다. 나는 아주 건강하고 게다가 내 힘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춤출 것이다. 나는 춤을 가르치고 싶고, 그래서 매일 조금씩 일할 작정이다. 나는 쓰는 이 역시 하고 싶다. 나는 더 이상 저녁 파티 따위엔 가지 않겠다. 내 평생 이 같은 종류의 흥청거림을 지겹게도 맛보았다. 나는 흥청거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흥청거림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나는 유쾌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 흥겨움은 곧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흥청거림은 마음의 죽음인 것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삶을 사랑한다.[116]
나는 모든 사람이 니진스키는 미쳤다고 말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괘념하지 않는다. 이미 나는 집에선 미친 사람처럼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지만,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춤을 아주 잘 추고 내게 부탁하는 누구에게나 돈을 주기 때문이다,[118]
죽음은 삶이다. 인간은 신을 위해 죽는다. 신은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필요한 것이다. 육체는 죽지만 정신은 산다. 나는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손은 힘이 빠지고 있다. 손이 내게 복종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127]
나는 너무나 젊었고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했다. 모든 젊은이들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른다. 나는 균형을 잃었고 그래서 매춘부들을 찾아 파리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나는 여자가 건강하고 아름답기를 바랐기 때문에 오랫동안 찾아 다녔다.[131]
나는 하루에 여러 명의 매춘부들과 사랑을 했다. 나의 행동이 끔찍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나의 버릇은 강박관념이 되었고 날마다 나는 매춘부들을 찾아다녔다.[131]
가난한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선물을 좋아한다. 나는 어떤 법석도 떨지 않고 그냥 허물없이 선물을 준다. 선물을 줄 때 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내게 감사하고 싶어 할 때면 나는 그들에게서 도망친다. 나는 감사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감사를 받기 위해 베푸는 게 아니다.[150]
나는 나의 감각을 발달시키기를 좋아한다. 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몸 속에 이가 득실거리는 유대인을 좋아한다. 그들이 내게 귀를 기울인다면 내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리라.[151]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주진 않겠다. 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사랑을 원한다. 나는 아내가 나를 걱정함을 느낀다.[153]
내가 사람들을 해칠 광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는 싫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광인이다. 나의 광증은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인 것이다.[154]
나는 결점을 가진 인간이다. 나는 학자다운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감정의 상실을 초해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의 관심을 끄는 일들을 쓰면서 나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알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해 평화를 원한다.[158]
로이드 조지는 끔찍한 인간이다. 디아길레프는 끔찍한 인간이다. 나는 끔찍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살해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독수리들이다. 그들은 작은 새들의 삶을 방해한다. 다라서 우리는 그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나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진 않는다.[161]
디아길레프는 나쁜 인간이고 소년들을 사랑한다. 이런 사람들의 의도가 실현될 수 없도록 온갖 방법으로 막지 않으면 안 된다.[163]
나는 온 세상이 다 볼 수 잇도록 디아길레프에게 결투를 제안하고 싶다. 나는 디아길레프의 모든 예술은 난센스라는 걸 입증하고 싶다. 만약에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면 나는 그들이 디아길레프를 이해하는 걸 도와주리라.[170]
나는 다이길레프였다. 나는 디아길레프 자신이 그를 아는 것보다 한층 더 잘 그를 안다. 나는 그의 약한 면과 당한 면 모두를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170]
나는 결혼한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이생을 알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은 과오를 범하지만, 그들은 생활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내와 남편 양자이다.[175]
나는 식당에서 아내와 프렝켈과 더불어 한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프랭켈 박사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나 자신 이기적인 인간인 체했다. 만약 그가 나의 속임수를 간파한다면 화를 낼 것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괘념치 않는다.[196]
나는 악을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랑을 원한다. 나는 사악한 인간으로 잘못 여겨지고 있다. 나는 사악하지 않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진실을 썼다. 나는 진실을 말했다. 나는 허위를 쓰지 않는 다. 나는 선을 원하지 악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악귀가 아니다. 나는 사랑이다.[200]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친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려고 십자가를 걸었다. 사람들은 조용한 사람들은 좋아한다. 나는 조용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바란다. 나는 신뢰 받기를 바란다.[200]
그녀가 나를 두려워하지만 나를 떠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정신병원에 보내질 것이 두렵다. 또한 나의 모든 작품을 잃게 될 것도, 나는 내 노트들을 찬장 뒤에 숨겨 놓았다. 나는 내 노트들을 잃어버리기엔 너무나 그것들을 사랑한다. 나는 필요한 것들을 썼다. 나는 감정의 북음을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나는 울 수가 없다. 눈물이 노트 위에 떨어질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영혼 속에서 운다.[205]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소설 속에서 찾는 것은 소설의 소재가 아니라 진실이다. 졸라는 소설 속에서 진실을 위장했다. 나는 위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장은 위선적인 원칙이다.[213]
나는 삶을 파괴하는 불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온기를 부는 물꽃을 좋아합니다. 불꽃이 없이는 온기를 창출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215]
스트라빈스키는 메마른 인간이다. 나는 영혼을 지님 사람이다. 나는 아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이기주의자인가 아닌가’ 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256]
그녀는 나를 비판한다. 프렝켈 박사는 항상 옳고 나는 그르다는 것이다. 신이 원치 않는다면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256]
나는 미소짓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지어낸 미소는 싫다. 나는 디아길레프의 미소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건 그의 미소가 억지웃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걸 느끼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269]
나는 사시나무 잎처럼 떨었다. 나는 그를 증오했지만 속임수를 썼다. 그러지 않으면 나와 어머니가 굶어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첫 순간부터 디아길레프를 파악했다. 그래서 그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척했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선 살아만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므로 내가 치르는 희생이 무엇이든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춤추는 데 너무나 나를 혹사했기 때문에 언지나 피로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디아길레프가 따분해하지 않도록 하려고 즐거움을 가장 했고 피곤하지 않은 척 했다.[278]
나는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나는 혼자서 슬퍼했다. 나는 홀로 흐느꼈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고 매일 매일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들 편지 속에서 울었다. 나는 나의 미레에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무얼 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무얼 썼는가를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비통하게 울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어머니는 이걸 느꼈다. 편지 속에서 나의 슬픔에 응답해주었기 때문이다.[291]
나는 무얼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살았고, 삶은 계속되었다. 나는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걸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신이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레슨을 했다 . 레슨에선 나는 단순했다. 나는 돈을 벌게 되어 행복했다. 나는 자주 내 방에서 울곤 했다. 나는 나 자신의 방을 갖고 있는 게 좋았다. 만약에 나만의 방을 가졌다면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나만의 방에서 나는 실컷 울 수 있었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다.[293]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스스로 양육하기를, 낯선 이들에게 애들을 맡기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낯선 사람들은 애들에게 싫증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294]
나는 육체적 힘이란 음식으로부터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마음이 당신을 먹여 살리지는 않을 거라고 말할 테지. 마음은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나는 말하리라. 왜냐하면 마음은 음식을 분해해주니까 말이다. 나는 마음이 내게 먹으라고 하는 만큼만 먹는다.[330]
그 여인은 내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왔던 길을 따라갔다. 나는 슬픔을 느꼈다. 슬픔은 너무나 깊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그 초라한 집으로부터 나 자신의 초라한 집을 보았고 그래서 울었다. 나는 비통하게 울었다. 견딜 수 없게 쓰라린 마음이었다. 나는 흐느껴 울고 싶었지만, 나의 불행은 너무나 심대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슬펐다. 나는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334]
죽음
나는 빛을 원한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빛 말이다. 나는 반작이는 별빛을 좋아하지 반작거리지 않는 병들은 싫다. 반작이는 별들은 삶이고 반짝이지 않는 별들은 죽음인 것이다. 별들이 나를 보고 반짝일 때 내가 무얼 해야 하는가를 나는 안다. 나는 반작이는 별들의 의미를 알고 잇다. 나의 아내는 반짝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반짝거리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았다. 누군가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면 나는 흐느껴 운다. 죽음이 무엇인가를 나는 알고 있다. 죽음은 빛이 소멸된 삶이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우리는 빛을 잃은 생명이라고 부른다.[358]
이 책을 끝마치고 나서 나는 이전에 살았던 것처럼 살진 않겠다. 나는 죽음에 대해 쓰고 싶다. 따라서 생생한 인상이 필요한 것이다. 한 사람이 그가 경험한 일들에 대해 쓸 때 나는 그걸 생생한 인상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가 경험한 일체의 것에 대해 쓰겠다. 나는 경험을 쌓고 싶다. 나는 죽음속의 인간이다.[359]
사람은 어디서나 살 수 있다는 걸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고양이들이 책상 밑에서 똥오줌을 싸대는 동안 무용기보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불결함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오물을 쏟아내는 것이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398]
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톨스토이를 읽었다. 독서는 휴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하루하루 살아갔다. 나는 춤을 연습했다. 나는 근육을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나의 근육은 탄탄하게 되었지만 내 춤을 나빴다. 이것은 내 춤의 죽음이라고 느꼈으므로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다.[399]
나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원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기심과 짐승 같은 행동들을 문화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노동자 계급과 부자 계급 그리고 빈자들 계급을 좋아한다. 나는 만인을 사랑한다. 나는 동등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사랑하기를 바란다.[419]
편지
엘레오노라 니진스키에게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언제나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어머니로부턴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 편지는 되돌아왔구요. 저는 행복합니다. 어머니를 죌 수 없어 저는 불행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해요. 제게 와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저는 집을 한 채 빌려 제 자신이 설비를 했답니다. 어머니를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저를 길러주셨으니까요.[504]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에게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급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신경과민이라 생각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나는 과민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침착하게 쓸 수 있습니다.[510]
나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목표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 부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의 적임을 알기 때문이지요.[511]
당신은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지요. 나는 당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윌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나는 타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타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당신에게 굴종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요.[511]
나는 감정과 이성을 지닌 인간입니다. 당신은 지성을 지녔으나 감정이 없는 인간입니다. 당신의 감정은 사악합니다. 나의 감정은 선합니다. 당신은 나를 파면시키고 싶지요. 나는 당신을 구제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나를 싫어하지요. 나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당신은 내가 불행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신경과민을 가장했더랬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척 했었지요. 나는 어린애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짐승이지만 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이제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들을 누구나 사랑합니다.[512]
영역 편집자의 말
니진스키는 한가지에서 다른 것으로 진행할 때 공책을 넘기면서 반대편 페이지의 끝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건 틀림없이 니진스키가 일기를 시작하기 전에 기보작업을 끈냣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이것은 일기에 나타난 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육필- 한층 세련되고 한층 세심한 필치로 쓰여졌으며, 따라서 한층 침착한 정신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518]
니진스키가 일기에서 중요한 구분을 한 것은 단 한군데뿐이다. 세 번째 공책의 25페이지 부분이 그것인데, 여기서 그는 앞선 내용에다 서명을 하고, 그런 다음 새로운 부분을 시작하면서 그걸‘제2부, 죽음에 대하여’ 라고 쓰고 있다. 확실히 그는 앞의 모든 내용이 ‘제1부’ 가 된다는 걸 말하고자 했던 것이며 그래서 거기가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제2부’ 의 첫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나는 첫 번째 책을 ‘삶, 그리고 이번 것을 ‘죽음’ 이라고 부르겠다.”[519]
타마라 니진스키 인터뷰
1953년 어머니가 편집한 영국판 <일기> 를 읽었다. 1956년의 혁면 루 헝가리를 떠나게 됐을 땐 원본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한순간도 마음이 상하진 않았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했고 나와 아버지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보았다. 이를 테면 두려움은 어린아이 때부터 줄곧 나를 지배해온 감정인데 아버지 역시 두려움에 대해 말씀하신다.[522]
아빠는 말이 별로 많지 않앗다. 발병 전에도 수다스런 분이 아니었다. 아빠의 고독한 모습은 진정제와도 같았다. 나는 아빠의 난폭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 아빠는 나의 외조모인 에밀리아 마루크스의 엽서들을 내 앞에서 쓸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땐 참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악의적인 폭력이 아니었다. 나는 이 같은 거동을 장난처럼 느꼈다. 나의 고모 브로니아 니진스키는<회고록> 속에서 바슬라프가 얼마나 익살스러웠던가를 쓰고 있다. [523]
어머니는 평생을 니진스키를 추억하는데 바쳤다. 어머니는 네게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또한 생제르맹 오슬로에선‘프라하의 성모상’ 앞에서 자신의 사랑의 맹세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했다는 사실도 말해주었다. 어머니는 매번 아버지를 만나고 난 뒤엔 항상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랑이 더욱 열렬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숭배했다.[524]
나는 부친을 치료한 어느 의사에게 물었다.“니진스키가 제 부친인 게 사실인가요?” 그는 내게 대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아요.네가 태어났을 때 네 부친은 여러 시간 동안 널 팔에 안고 계셨지. 네게 타마라란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한 사람이 바로 네 부친이란다.그가 몹시 아꼈던 파트너 타마라 카르사비나를 추억해서 말이다.” 생모리츠의 계곡에서 엄마가 내게 보낸 우편엽서엔 이렇게 써 있었다.“ 이 엽서를 보렴. 여기가 바로 내가 널 임신햇던 곳이란다. 스위스제의 아름다운 엽서지.” 다른 편지에선 또 이렇게 썼다. “넌 우리의 소중한 딸이다.” 오스월드 교수는 내 어린 아들 마크 가스퍼와 또 킹가의 아들이 니진스키를 빼다박은 듯이 닮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525]
내가 작가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엔 느낄 수가 없었다. 이해하기 힘들었고 읽어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차츰 읽어낸 책장의 수가 쌓일수록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말이다. 그리고는 그를 정신분열 환자로 취급하기를 내 마음에서 거부했다. 나의 무찌르는 글귀를 발췌하는 부분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버렸다. 나는 그가 정상적으로 써내려간 일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초점을 달리해서 보면 니진스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돈이나 명성 또는 사회적 지위 같은 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그에겐 어딘가 세속에 물들지 않은 듯한 수도사적 면모가 보여지기까지 했다. 그랬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감성이 풍부하고 따뜻한 면을 가진 여린 한 사람이었다. 그가 버텨 내기에는 너무나 힘든 주변 환경과 탁하게 썩은 사회를 적응하기에는 벅찾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한 부분에도 나오지만 니진스키의 생애를 훑어보노라면 흡사 북구의 신화에 나오는 ‘우수부인’ 의 눈에 보이지 않는 회색빛 여인의 저주 때문에 불행이 거듭되었던 것처럼 보였다. 니진스키는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정신분열이 올 수 밖에 없는 불행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희생양 같은 존재였다. 그 불행을 맞이하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의 일생이 지진처럼 흔들거릴 수 밖에 없었던 진앙의 시작점은 가정이라고 보여 졌다. 그의 가정에서 시작된 가난이 니진스키의 여린 마음에 모든 일을 감수하며 불쌍한 어머니와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형을 도와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는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게 발목을 잡은 돈과 그것을 이용한 몇몇 인간의 욕심이 그를 그렇게 몰아갔던 것이다. “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나는 그를 (디아길레프) 증오했지만 속임수를 썼다. 그러지 않으면 나와 어머니가 굶어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첫 순간부터 그를 파악했다. 그래서 그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척을 했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선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므로 내가 치르는 희생이 무엇이든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나의 이것이 그가 수 없이 번복하고 있는 디아길레프에 대한 감정에서 제일 진실된 마음을 쓴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 시대에는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한 미소년에 대한 성상납이나 동성애에 대한 커밍아웃이 오히려 요즘보다 더 관행화 되었던 것 같고 성경에도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동성애는 염색체 이상으로 남성이 여성적 성향을 가진 자가 할 때는 사랑이 될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니진스키는 정상적인 건장한 청년으로 보여졌다. 그러한 그가 돈과 성공의 줄을 잡기위해 5년간 눈치로 지속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안타깝다. 안타깝다.
열두 살 때 아이들의 장난이 사고로 이어져 머리를 크게 다쳐 5일간 잃었던 그의 의식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것 역시 그의 정신분열에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니진스키 주변 인물들 중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울만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의 주변에는 그의 발목을 잡아끌어 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로이드 조이드가 그랬고, 디아길레프가 그랬다. 그의 장모인 엠마 마저도 그를 단 한 번도 이해해주지 않았다. 가족이라도 그를 이해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안타까웠다. 그의 상황은 ‘관계 속에서의 성장’이 아닌 ‘관계 속에서의 추락’이었다.
누가 누구를 정신분열이라 판단 할 수 있는가
이 책 속에 나와 있는 정신분열 환자라 판명된 그가 쓴 이야기들이 요즘 세상에 없는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첨이 판을 치고 권력을 이용한 성상납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진실하게 일기를 쓰지 않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런 것을 이겨 내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감성이 여렸던 것은 아닐까? 정신분열은 마음이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해질 때 누구나 경험을 하는 마음의 질병이다. 이랬다저랬다 계속 변화하는 그의 마음을 읽어볼 때 그는 많이 불안했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보려 애를 쓴 것 같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요즘 시대에 니진스키가 살았더라면 얼마든지 그의 재능을 인정받고, 자신이 잠시 살기위해 한 실수에 대한 상담을 충분히 함으로서 나을 수도 있는 하나의 질환이라고 보여 진다. 그의 마음이 좀 더 강했더라면 효자로서 좋은 남편과 아빠로 잘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가 아이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면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담긴 사진을 보면서 들었다.
그의 일기는 그가 기대고 싶은 언덕이었고 풀어내고 싶은 상대였던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일기를 숨기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은 자칫 그가 마구 쏟아내어 놓은 오물이거나 정신병으로 간주되어 버릴까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본인의 일기장에 쓰여진 일들이 남에게 공개될 때 그 사람이 제대로 잘 살고 있다고 보여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용수로서의 니진스키
세계 발레사에 있어 신화적 존재로 무용의 신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는 그다. 그의 몸짓은 모든 언어와 음악의 표현 그 자체였다. 타고난 재능을 살린 대표적인 성공의 사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니진스키의 무용을 보고나면 흠을 잡아내는 비평가들조차 입을 다물게 하는 탁월한 무용수였다. 나 역시 춤을 사랑한다. 춤은 아무 때나 출 수 없다. 가슴이 뛰고 나에게 신명을 불어 넣어주는 삼박자가 맞아야만 몸이 움직인다. 나는 그것을 춤이라 정의하고 싶다. 춤은 가슴이 말해준다. 지금이 ‘때’ 라고 말이다. 그러면 몸의 세포는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원초적인 춤이고 거기에 가미된 안무나 음악의 표현이 무용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모든 춤추는 동작 속에는 가장 어려운 기교를 요하는 스텝조차도 어렵거나 힘든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무대를 온통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날아다녔으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가 다시 도약할 땐 흡사 공처럼 솟구쳐 날아올랐고, 내려오는 시간도 자기가 조절했다고 한다. 다른 모든 것을 빼고 무용수로서의 니진스키는 너무나 완벽했고, 남성 무용수의 상징으로 우상시 될 만하다. 당대의 시대적 배경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던 니진스키이지만 무용계에 있어서는 아직도 재평가되어 가치를 높여줄 만한 인물이다. 무용사에 하나의 신기원을 창조했던 니진스키의 명성을 찾아주고 싶었고 그의 춤을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그의 일기를 읽어내기는 힘이 들었지만 한 인간이 물질과 인간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풀어 놓은 진실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또한 무용을 꿈 꾸어왔던 나에게 니진스키는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좋았던 점
역자는 암흑의 심연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불안과 공포를 감지케 하는 소리 없는 ‘영혼의 절규’같은 일기를 가파로운 경계선에서 필사적으로 기록한 ‘영혼의 자서전’으로 훌륭하게 해설을 해주고 있다. 그 무엇보다 ‘아 ! 좋다’ 라고 생각한 부분은 자료 사진이었다. 그의 몸동작이 실린 사진들은 나를 자극했다. 날아오르고 싶게 만들었고, 몸으로 말할 수 없는 언어를 표현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성장 과정의 사진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실린 사진들이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의 변해가는 모습과 가족에 대한 자료 사진 역시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쓴 일기 이외에 보내진 편지들은 그의 상태를 모르고 읽는 사람들은 그저 표현이 튀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눈물겨웠다. 둘째 딸인 타마라 니진스키의 인터뷰 역시 흥미로웠다. 그녀가 말한 어머니는 평생 니진스키를 추억하는데 바쳤고 타마라 역시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이 없는 듯 했다. 한 눈에 그의 발병하기 전까지의 그의 활약을 연보로 정리해 놓은 점 역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가 제일 두려워했던 죽음을 맞이한 다음 파리의 몽마르트에 페트루슈카의 분장을 하고 앉아 있는 좌상은 아직도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해보려고 생각하는 모습처럼 보여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