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김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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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니슬라바가 고백하고 있듯이 바슬라프는 그녀의 오빠요, 위대한 친구였다. 두 살 터울인 이 오누이에겐 나이와 성의 차이가 우정의 밀착된 유대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놀이와 장난과 슬픔까지를. 우리는 집에서나 황실극장의 학교에서도 함께 자랐다. 우리는 똑같은 교육을 받았고 같은 인상을 공유했으며, 같은 환상에 매혹되고 같은 꿈을 지니고 있었다.'
세계 무용사에서 두 위대한 무용가의 이와 같은 관계란 유례가 없는 것이다.
요절한 많은 천재들과 달리 니진스키는 장수했다. 그는 61세에 죽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니진스키의 '지상적 삶'은 그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떠나 정신요양원을 전전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정신질환 이후 그는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문자 그대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너무나 깊이 너무나 멀리 자기 속으로 은퇴해버린' 결과 더 이상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역시 다시는 외부세계를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와 세계와의 교통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21
바슬라프 니진스키는 세계 무용사를 통틀어 어떤 무용가와도 공통된 점이 전혀 없었다. 그의 춤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를 가리켜 '신처럼 춤춘다'고 말했지만, 진실로 그는 마치 새가 노래하듯이 춤을 추었다. 자신의 영혼을 쏟아부을 유일한 통로가 춤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당연한 단순성과 기쁨을 가지고 그는 춤으로 자기 존재를 표현했다. '그는 마치 춤추기 위해 태어난 존재요.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모든 동작은 자연스럽고 가벼우며 유니크했다. 어떤 댄서도 니진스키처럼 손을 사용하거나 머리를 기울이거나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의 동작은 그와 같이 조형적이고 긴장이나 속임수 따위라곤 아무 데도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고유한 자연스럽고 특수한 동작언어로써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비록 말로써 번역할 수는 없어도, 그가 전달하는 메세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23
'그의 모든 춤추는 동작 속에는 가장 어려운 기교를 요하는 스텝조차 어렵거나 힘든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무대를 온통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날아다녔으며, 위로 솟구쳐 오를 땐 마치 파리처럼 바닥에서 날아올랐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가 다시 도약할 땐 흡사 공처럼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 27
브로니슬라바에 의하면, 니진스키가 <목신의 오후>를 안무했을 당시 컴퍼니의 모든 당원들이 (그리고 나중엔 이들 단원들의 영향을 받아 디아길레프까지) 입을 모아 그것은 '발레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레를 수정하라는 디아길레프의 간곡한 충고와 단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때 니진스키의 고집불통 때문에 디아길레프가 얼마나 신경과민이 되었고, 주위의 몰이해에 대해 니진스키가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는가를 우리는 브로니슬라바의 기술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급해진 디아길레프가 브로니슬라바에게 니진스키를 설득해달라고 원조를 요청했다는 것도 . '나는 파리에서 그걸 공연하진 않겠어! 이건 발레가 아니야. 나는 전 컴퍼니를 해산하겠어.나는 나 자신의 발언권과 결정권이 없는 컴퍼니를 갖고 싶지는 않으니까'
니진스키와 함께 <판>을 작업하면서 이 발레의 위대성을 마음 깊이 경탄하고 있던 브로니슬라바는 디아길레프에게 자신의 생각을 단호히 밝혔지만 흥행주로서의 디아길레프의 입장을 이해했다. 그러러나 디아길레프의 입장을 변호하는 누이에게 바슬라프는 마친 듯이 화가 나서 고함을 쳤다. '디아길레프는 이런 파괴적인 분위기에 전염될 권리가 없어. 그는 오직 참다운 '예술'의 관점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아야만 해. 나는 모든 걸 버리고 발레 뤼스를 떠나겠어. 하지만 내 발레는 바꾸지 않겠어!'40
비록 그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고 만 남미 순회공연을 끝냈을 때 니진스키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일찍부터 니진스키는 자신이 아직 절정기에 있을 때, 즉 서른다섯 살까지만 춤을 추고 이후엔 '캐릭터 배역'에만 출연하면서 안무에 전념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이념을 교수할 학교를 창설해서 이 학교에다 작곡가와 발레 교사 및 예술가들이 국적에 상관없이 그들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일종의 예술적 실험소를 부설하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 밖에 그가 심중에 지니고 있던 계획 가운데 하나는 연례 페스티벌을 마련하는 것이었느넫, 이 페스티벌에선 일부 공연을 완전히 무료로 하도록 할 작정이었다. 페스티벌 극장은 러시아아에서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위대한 예술가들이 이미 디자인한 바 있는 일종의 사설극장과 같은 것으로, 나무로 조각하고 그림으로 장식한 러시아적 스타일로 건축될 것이었다. 사실 이 같은 생각은 그의 안무나 그 외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를 앞지를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궁국적으로 가정을 꾸미고 이 모든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어한 곳은 바로 러시아였다. 또 서구의 사상과 자주 접촉할 수 있도록 파리에도 우거寓居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모든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자신이 춤을 추는 시기동안 그는 충분히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니진스키란 이름이 학교의 교장이나 페스티벌 디렉터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운명이 아니었다. 50
브로일러의 충고에 로몰라는 망연자실했다. 그야말로 그것은 청천벽력이었다. 7년 전 니진스키의 춤을 처음 목격했던 순간 그녀에겐 바로 운명이 되었던 이 남자 - 7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해온, 자신에겐 신과도 같았던 그와 헤어지라고? 그녀는 블로일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그의 방을 뛰쳐나왔다. '나는 그 장소가 원을 그리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롤 내 주위를 돌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문을 밀고는 바슬라프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돌진해갔다. 그는 코사크 캡을 쓰고 러시아식 모피코트를 입은 채, 창백하고 묘하게 슬픈 얼굴로 멍하니 도해가 든 용지들을 보면서 테이블 곁에 서 있었다. 나는 멈춰서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나의 응시 아래서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그는 말했다. '여보, 당신은 내게 죽음의 영장을 가져오고 있구료' 54
천성적으로 비사교적인 데다 철두철미 묵고적인 기질이었던 그는 처음에 자신이 교사들과 급우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땐 누구에게나 미소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그들 모두에게서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했다.'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그는 자기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의 교감을 단념하게 된ㄷ. '나는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나는 죽음을 느꼈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나의 방에다 나를 가두었다. 나는 높은 천장을 가진 좁다란 방에 있었다. 나는 벽과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내게 죽음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그는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고, 오직 춤추고 있을 때만 자유를 느꼈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이해받지 못한 채 슬픔에 잠겨 정신의 파국을 향해 서서히 침몰해간 니진스키의 비극은 이때 이미 그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싶다. 학생시절뿐 아니라 마린스키에서도 그는 본질적으로 '외톨이'였다.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와 공감을 나누며,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는 오직 누이 브로니슬라바뿐이었다. 61
남녀를 불문하고 연인들을 구해서 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해주고 더러는 함께 살기도 하는 것이 예삿일로 돼 있었다. 게다가 남자들 사이의 연애사건이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선 극히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졌으며 동성애는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었다. (파리와 런던에선 그렇지 못했다.) 류보프 역시 니진스키를 단순히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연인으로 선택했던 것이며 니진스키 편에서도 이에 응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자위행위를 단연코 중단한 이래로 수년 동안 금욕생활을 해왔으며 내심으로 사랑을 갈망하고 있던 터였다. 니진스키는 그때까지 아직 동정이었으며 더욱이나 동성애 기질은 아니었지만, 류보프가 제공하는 상류사회풍의 고급 의상들과 보석 및 다른 값진 선물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왕자의 궁전 같은 저택에서 열리는 호사스런 파티를 즐겼고 그의 멋진 아파트에서 숙박하기도 했다. 춤을 추고 있지 않을 때면 언제나 니진스키는 류보프를 동반해 극장이나 또는 다른 사교적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남자가 소년을 사랑하듯이 나를 사랑했다.나는 그가 나의 복리를 바란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그는 내게 사랑의 시를 서 보냈다.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걸 결코 읽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기에 언제나 그와 함께 살고 싶었다'라고 그는 훗날 <일기>에서 고백했다. 71
디아길레프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여성과의 성적 관계에 대해선 혐오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의 어떤 경험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의 참된 항구적 반려를 동성속에서 찾게 되었으니, 그것은 그의 삶의 비극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끌린 대상은 거의 언제나 동성애 성향이 아닌 정상적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성숙 단계에 있는 가장 남성적인 젊은이였던 이들은 남성으로서 충분히 성숙되자마자 맨 처음 매혹당한 여성을 위해 디아길레프를 떠났던 것이다. 그는 유혹자나 엽색가가 아니었다. 버리는 쪽은 항상 그가 아니고 상대방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랑은 끊임없는 행복과 실망의 연속이었으며, 슬픔과 배신감을 보상처럼 남겨 주었던 것이다. 74
로몰라 루도비카 폴릭세나 플라비아 풀츠키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아마빛 머리와 푸른 눈을 한 아름다운 처녀로 당시 스무 살이 채 안된 나이였다. 로몰라는 아버지인 카롤리 드 풀츠키 백작의 독립 정신과 이상주의 및 예술에의 숭배열을 고대로 물려받았으며,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했다. 백작에 의해 로몰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공주처럼 양육되었으며, 아주 어릴 때부터 부친의 초연함과 일체감을 나타내는 경향을 보였다. 부친은 어린 딸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들 얘기를 해주었고 로몰라는 자기시대의 바사리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자라났다. 로몰라에겐 여덟 살 위인 언니(테레즈)가 있었는데, 니진스키의 일기에서 '테사'로 등장하는 그녀는 음악에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후에 탁월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지만 양친은 둘 다 로몰라를 두드러지게 편애했다. 그러나 이 부녀의 유례없이 깊은 애정과 상호 밀착된 관계는 1899년 백작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오히려 로몰라의 인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의 사건으로 인해 로몰라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착의 능력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이때의 충격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그녀의 정서 속에 영원히 고착돼버린 것처럼 보인다. 81
니진스키에겐 춤을 추는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 또한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극장은 그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극장과 춤은 태어날 때부터 그를 위한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었다. 마치 극장에선 그의 타고난 본성으로 있는 것과 같았고 거기선 모든 것이 그의 영혼에 화답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극장과 단절되어 춤출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았던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끝까지 근 ㄴ아슬아슬하게나마 정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92
나는 조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나는 내가 느끼니까 춤추고 싶은 것이지 사람들이 나를 기댜리고 있기 때문에 춤추고 싶진 않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105
나는 빨리빨릴 쓴다. 그녀는 내가 쓰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면전에서 느트를 덮어버렸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을 그녀가 읽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녀는 내가 자기에 대해 쓰고 있다는 걸 느끼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녀는 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내가 쓰는 걸 원치 않은다. 나는 쓰고 싶다. 쓰는 걸 좋아하니까. 오늘은 오랫동안 쓰고 싶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으나까. 나는 빨리 쓰진 못하지만 내 손은 빨리 쓴다. 지금은 한결 더 잘 쓰고 있다. 그리 자주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육필은 깨끗하다. 나는 쉽게 읽을 수 있게 쓴다. 나는 더 많이 쓰고 싶다. 113
다윈은 박식한 사람이다. 아내는 내게 그가 프랑스어로 된 <자연의 역사>라는 학술서를 저술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다윈의 자연은 인공적이다. 근 ㄴ자연을 느끼지 않았다. 자연은 생명이고 생명은 자연이다. 나는 자연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을 이해한다. 자연은 나를 느낀다. 자연은 신이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인공적인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자연은 살아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자연은 숭고한 것이다. 나의 자연은 숭고하다. 128
나는 모든 약에 반대한다. 나는 어떤 약도 사용하는 걸 원치 않는다. 약품들은 인공적인 것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약들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약이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만 요긴한 것이다. 하지만 약 따위는 건강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아무 가치도 없다고 나는 믿는다. 136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신이라고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고유한 방법으로 신에 괸해 이야기했다. 그는 신을 사랑했고 그를 이해했다. 그는 니콜라이를 교회에 보냈을 때 실수를 했다. 니콜라이 혹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속의 다른 어떤 이름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교회에 간 사람은 콤마가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거기서 신을 찾기 때문에 교회로 갔지만 교회 속에 신은 없다. 신은 교회와 또 그를 찾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니까 나는 교회에 가겠다. 나는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신에 괸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이 아니다. 신은 이성이고 과학은 반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과학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164
나는 빨리 쓸 수가 없다. 내 손이 지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거기에 익숙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알파벳의 글자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한층 더 잘 쓰고 있다. 나는 어떻게 멈춰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서투르게 쓰는 것이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좋아하지 않은다. 그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철학자이다. 나는 감정을 지닌 철학자이다. 나는 인공적인 일들을 쓰고 싶지는 않다. 185
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주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며, 그리고는 늘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내게 끊임없이 나의 모든 과오를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가 나를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두렵다. 그녀는 내가 미쳤거나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아내를 사랑하니까 말이다. 나는 삶을 기술하는 것이지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들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니진스키가 아니다. 나는 인간 속의 신이다. 193
나는 더 이상 아내를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 노트들을 프렝켈 박사가 검토할 수있도록 그에게 주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도 내 노트들에 손댈 권리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이것들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그것들을 감춰두었다. 그리고 이 노트들을 나는 어디에나 지니고 다닐 것이다. 나는 내 모든 노트들을 감춰둘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203
나는 울 수가 없다. 테사가 울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느낀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그녀가 앓는 걸 원치 않는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내가 울 때 그녀는 나를 느낀다. 나는 그녀를 전송하러 가지 않겠다. 나는 그녀의 결점들을 안다. 그녀는 내가 가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가장하고 있는게 아니다. 나는 테사가 가고 난 후에 아내에게 가겠다. 나는 소동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조용한 걸 좋아한다. 이제 나는 울지 않겠다. 누구나 나를 가엾게 생각할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가엾게 여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223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그녀가 돌연 내가 쓰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염려한다. 그녀는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자기와 아이가 고아로 남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그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나의 처이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로무슈카의 어머니는 끔찍한 여인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녀는 나를 내동댕이칠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245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처에게 자신의 온갖 변덕에 복종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내가 그들의 생활을 본 적이 없으니 자기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생활을 보았노라고 말하겠다. 그에 대한 그의 아내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스트라빈스키가 그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지만 아이들의 위해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고 느껬다. 그는 자기 애들을 기묘하게 사랑한다. 그는 애들에게 억지로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의 아이들은 그림을 잘 그린다. 그는 항제이고 그의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하인들은 병사들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내게 파벨 황제를 상기시킨다. 253
그는 많이 쓴다. 그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는 종이 위에서 창조한다. 그는 많은 종이를 가졌으니, 쓰는 일을 전혀 괘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쓰며, 그런 다음 사람들은 그의 관념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는 빨리 그리고 능란하게 쓴다. 그는 많은 성벽들을 지녔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한다. 많은 시간을 그는 집필에 쏟아부으니 말이다. 268
시네마는 돈을 불리는 데 봉사한다. 돈은 시네마 극장을 늘리는 데 봉사한다. 나는 시네마가 한 사람에게 돈을 벌 수 있게 해준 반면, 극장은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것임을 알았다. 극장에서 일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시네마를 위해 일하느니 차라리 궁핍으로 고통을 받으리라. 디아길레프는 자주 내게 시네마와 비슷한 무엇이 발명돼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닌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유명한 예술가로 러시아 유대인인 박스트는 시네마란 돈의 관점에선 휼륭한 것이라는 말을 곧잘 했다. 나는 박스트와 디아길레프가 내가 어린애이고 따라서 나의 고나념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 느꼈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상은 논리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논리는 감정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디아길레프는 나쁜 감정을 지녔고 나는 좋은 감정을 지녔다.
디아길레프는 누구보다도 더 큰 머리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머리 속에 나쁜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에 나쁜 감정을 지닌 것이다. 284
나는 숱한 장난을 했으며 소년들은 모두 바로 그 때문에 나를 좋아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고무줄 새총을 잘 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 그건 내가 의사의 눈을 맞혔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마차를 타고 극장으로 가고 있을 때 그 의사는 합승마차 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마차를 좋아했다. 그 속에서 통행인을 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훌륭한 사수였다. 내가 의사를 맞혔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들이 퇴학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나를 지목했을 때 나는 그걸 부인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래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눈물은 감독관을 감동시켰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으나 다만 술을 너무 마시는 게 탈이었다. 또한 그는 어리석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다. 그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를 좋아했다. 그가 음주로 인해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 많은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매장되었지만 단 한 아이도 그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나 역시 두려웠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나는 못된 짓으로 인한 문책을 당했고, 장학관은 내게 설교를 했다. 300
누구나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걸 나는 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나는 어느 누구와도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주기를 바란다.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싶으니까 말이다. 나의 첫 출연은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샤틀레를 좋아한다. 이 극장은 단순하고 크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선 많은 돈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전쟁의 결과 고통받는 가난한 프랑스의 예술가들을 위해 자선공연을 베풀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서로에 대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연설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들이 내게로 왔으면 한다. 이 자선공연 뒤에 그들이 내게 오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으니까. 나는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과 항상 그들을 도울 것이라는 걸 그들에게 말하리라. 나는 돈을 그들을 돕고 싶진 않다.그러므로 나는 만약에 그들이 서로 돕는다면 와서 그들을 보겠노라고 말하겠다. 나는 어릿과앧인 척 가장하겠다. 그래야 그들이 나를 더 잘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316
남자들은 옆으로 누워 자고 여자들은 등을 대고 자야 한다. 예전엔 나는 큰 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배웠던 것이다. 엎드려 잤을 때 나는 심히 피곤하다는 걸 알았다. 온종일 나는 엉망인 기분이었다. 위장이 무엇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위장은 창자와 소화기관, 간, 방광, 기타 등등을 가지고 있다. 음식을 먹은 후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아침에 속이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일어난 후 아침에야 비로소 소화작용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나른한 기분으로 일어났고 삶에 아무런 의욕도 안 느꼈다.
고기를 먹지 않은 이래 나는 소화가 훨씬 더 잘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생각도 한결 원활해지고. 걷는 대신 나는 달렸다. 나는 쉬기 위해서만 걷는다. 강한 체력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많이 달리는 것이다. 근육은 자유자재이다. 두뇌는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
고기를 먹지 않은 이래 나는 소화가 훨씬 더 잘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생각도 한결 원활해지고. 걷는 대신 나는 달렸다. 나는 쉬기 위해서만 걷는다. 강한 체력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많이 달리는 것이다. 근육은 자유자재이다. 두뇌는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
나는 한결 수월하게 춤추고 왕성한 식욕을 느낀다. 나는 빨리 먹고, 내가 먹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은 중요하지 않다. 음식을 가지고는 어떤 일도 나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이면 어떤 것이라도 먹는다. 나는 통조림 음식은 먹지 않는다. 나는 야채들과 채식류 전부를 먹는다. 나는 채식주의자이다. 나는 육식자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지 동물이 아니다. 신이 내게 육식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이해시키고 싶어할 때만 나는 동물인 것이다. 아내는 우리가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걸 느끼지만, 육식을 포기하는 건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프렝켈 박사가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328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나 역시 운다. 나는 프렝켈 박사가 내게 와서 내가 쓰고 있는 동안 아내는 울고 있다고 말할까봐 두렵다. 나는 그녀에게 가지 않겠다. 내 탓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가서 혼자서 식사하겠다. 신이 내게 그러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온잓 것을 보고 듣는다. 그 애가 나를 이해해주엇으면 좋으련만. 나는 키라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애는 나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애는 술고래를 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알코올이 든 병들을 눈여겨봤다. 90% 강도의 알코올이 든 병 하나와 물로 희석된 또 하나의 알코올병이 거기 있었다. 아내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어머니가 그걸 보고 술병과 함께 저 여인도 내동댕이쳐주기를 바란다. 내 귀여운 키라는 내가 자기를 사랑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애는 내가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347
죽음은 불시에 다가왔다. 내가 그걸 원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오래 살지 못햇다. 나는 오직 6개월 동안만 살았다. 나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살고 기뻐햇지만, 사람들은 나를 사악하다고 했다. 나는 사람들에겐 죽음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더 이상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고 작정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쓰려고 결심했다. 나는 슬픔으로 흐느껴 운다. 나는 그렇게도 슬프다. 나를 둘렀나 모든 것이 공허하기 때문에 나는 지겹다. 나는 텅 비게 되었다. 나는 하녀 루이제가 내일 울 것임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 황폐를 목격하고 마음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그려왔던 그림과 스케치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353
나는 오후 6시에 일어났다. 잠은 그보다 일찍 깼다 사람들이 예기하는 소리를 들었으나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건 아내의 어머니와 그 남편의 목소리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들이 왔음을 알았다. 나는 신이 내게 무얼 하라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지겨움을 느겼다. 30분이 경과하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신과 더불어 생각했다. 나는 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므로 그가 내게 바라는 일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을.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나는 슬폈다. 나는 따분했다. 나는 아내를 가엾게 여겼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신이 나의 고통을 원한다는 걸 알았다. 신은 내가 죽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해했다. 384
나는 석탄을 한 예로 들고 싶다. 사람들은 계속 석탄을 파내고 있다. 사람들은 석탄 때문에 목이 막힌다.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석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석탄이 무엇인지를 안다. 석탄은 연료이다. 나는 사람들이 석탄을 남용하고 잇다는 걸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나는 오락을 위해 글을 쓰는게 아니다.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이해하도록 하고 싶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란 신이 그걸 바라는 곳에선 좋은 것이라는 걸 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선 죽음이란 나쁜 것이라는 것도. 나는 자신들을 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내 처의 아버지가 자신을 쏘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대단히 많은 공부를 했다. 그는 두뇌를 혹사했기 때문에 신경과민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많이 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신이 내게 명하는 것만을 공부한다. 신은 사람들이 많이 공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신은 사람들을 위해 행복을 원한다. 392
신경과민이 결함이 아니라는 말을 나는 하고 싶다. 과민한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나는 유대인들이 과민하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한다. 나는 짐짓 자신이 신경과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알고 잇다. 그들이 가장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나는 가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가장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내게 신경과민이 성격의 약한 측면이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신경과민은 성격의 약한 면이 아니라 과민한 습관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나는 사람들이 나는 공포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왜냐하면 전쟁의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리라는 걸 안다. 나는 전쟁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삶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나는 참호 속에서가 아니고 가정에서 싸웠다. 헝가리에 억류돼 있을 때 나는 아내의 어머니와 투쟁했다. 396
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났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신은 고의로 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신이 무엇이라는 걸 내게 보여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소문자 'h'로 썼는데 그건 우리가 그의 이름을 어떤 종료의 글자로 쓰든 신은 괘념치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신을 물질명사, 혹은 문법책에 쓰여 있듯 실사와 동일시했다. 독일인들은 실체가 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만인은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가로서의 나의 삶을 기술하고 싶다. 나는 과도한 수음으로 인해 신경과민이 되었다. 나는 연애유희를 하는 많은 연인들을 보았기 때문에 수음에 빠졌다. 나는 그녀들에게 욕정이 타올라 자위를 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는 걸 알아챘다. 내 이빨이 썩기 시작하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고 서툴게 춤추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열흘만다 한 번씩 수음을 했다. 나는 열흘이란 시간은 필요한 간격이라 생각했으며, 누구나 열흘에 한 번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열흘에 한 번씩 수음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열아홉 살을 넘지 않았다. 나는 여자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있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후에 나는 나 자신을 내 욕정의 대상으로 삼기로 작정했다. 나는 나의 곧추선 음경을 보았고 그러면 욕정을 느꼈다.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447
나는 만인을 사랑한다. 나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평화 속에 살기를 원한다. 싸움이 있어선 안된다. 싸움은 없어야 한다. 나는 사랑이다. 나는 사랑으로 된 인간이다. 나는 독일인의 아이들이 저들의 아버지에 대히 읽는다는 걸 안다. 나는 독일인들을 좋아한다. 나는 독일인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당이 없다. 나는 단지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든 다 인간이다. 나는 사람들의 사랑을 이해한다. 나는 사람들의 사랑을 원한다. 나는 참사를 원치 않는다. 나는 지상의 천국을 바란다. 나는 인간 속의 신이다. 모든 사람들은 만약에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을 행한다면 누구나 신이 될것이다. 나는결함을 지닌 인간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저들의 결점을 고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결함이 있으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개선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나는 과거의 결함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나는 사악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짐승이 아니고 인간이다. 468
나는 완전히 초연한 태도로 모든 사람들을 무시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리라. 나는 미리 모든 걸 알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신은 내게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480
그녀는 사람들이 제가 볼셰비키라 생각해서 저를 해칠까봐 두려워하십니다. 제가 볼셰비키가 이니라는 걸 어머니는 너무도 잘 알고 계습니다. 그년는 인민들에 대한 저의 사랑은 아십니다. 제가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남학생들과의 싸움을 제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어머니는 알고 계신답니다. 그녀는 저를 키웠으니 당연히 저를 잘 아시지요. 저는 인간이지 야수가 아닙니다. 저는 잔인함을 싫어합니다. 저는 볼셰빈키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를 죽일 수 있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의 어머니가 브르주아이기 때문에 그녀를 죽이고 싶어합니다. 저는 부르주아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저는 만인을 사랑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죽는 걸 원치 않습니다.502
당신은 나의 것. 나는 신.
당신은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속에 있고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것, 나는 당신의 것이빈다.
당신은 죽음을 원하는 사람. 512
당신은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속에 있고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것, 나는 당신의 것이빈다.
당신은 죽음을 원하는 사람. 512
니진스키의 일기는 세 권의 학교 공책에 기록됐는데, 이 공책들중 제1부는 격자줄이 쳐 잇고 나머지 두 권은 아무 줄이 없다. 모두 합쳐 일기는 (양쪽 페이지 합쳐)총 314페이지며, 기기다 니진스키가 '제2부'이란 제목을 쓴 한 페이지가 추가되었다. 각 공책 안에는 페이지가 매겨져 있는데 - 즉 텍스트는 저마다 1페이지에서 시작되고 있지만, 페이지 번호는 니진스키의 손으로 된 것이 아니다. 제 1부에서 니진스키는 검은색 연필로 쓰기 시작해서 푸른빛 '지워지지 않는 연필'로 바꾸었으며 그러다 마지막엔 검은 잉크로 끝맺고 있다. 제 2부과 제3권은 모두 검은 잉크로 쓰여졌다. 제 3권에선 일기가 끝난 부분 다음으로 13페이지의 공백이 이어져 있다. 제1부의 첫 두 페이지는 잘려나갔다. 이 두 페이지 속에는 드로잉이 들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남아 있는 끝부분에서 드로잉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517
이 시기는 바로 그가 무용기보 체계에 대해 광범위한 작업을 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볼쇼이 발레 문서국에는 기보에 관한 니진스키의 자작들을 포함해 다섯 권의 학교 공책들이 있다. 날짜가 있는 세 권 가운데 하나는 1917년부터, 그리고 두 권은 1918년부터 된 것이다.) 일기 노트 속에 있는 기보 내용은 우리의 텍스트엔 수록하지 않았다. 기보전문가인 앤 허치슨 게스트와 클라우디아 제슈케는 이들의 저서인 <복원된 니진스키의 '판'>속에서 언급하기를 이것은 니진스키가 1914년 ~ 1916년 부다페스트에 있을 동안 기록했던 기보에 관한 생각과 다르다고 했다. 볼쇼이 발레 문서국의 노트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나는 게스트 박사의 신세를 졌다. 니진스키가 일기에서 중요한 구분을 한 것은 단 한 군데뿐이다. 세번째 공책의 25페이지 부분이 그것인데, 여기서 그는 앞선 내용에다 서명을 하고, 그런 다음 새로운 부분을 시작하면서 그걸 '제2부, 죽음에 대하여'라고 쓰고 있다. 확실히 그는 앞의 모든 내용이 '제1부'가 된다는 걸 말하고자 했던 것이며 그래서 거기다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제2부'의 첫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첫 번째 책을 '삶', 그리고 이번 것을 '죽음'이라 부르겠다' 따라서 나는 '제 1부, 삶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한 페이지를 삽입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니진스키는 일기 전체를 '느낌'이란 제목으로 할 생각을 피력하고 있지만, 내게는 이 책을 통상적인 명칭, 즉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일기'로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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