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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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부이자, 아무 것도 아니다..
소설은 무섭도록 현실을 허구에 담아내고 있다.
여기 "그"라고 불리우는 한 남자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름조차 지닐 수 없는 "그"
그는 그토록 평범하지만, 한편 그토록 일상화된 존재이기도 하다.
철없던 시절, 주변 환경에 맞춰 첫 번째 결혼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 이 결혼은 숨막힘 그 자체일 뿐.
한 방향을 바라보지 못하는 아내. 그래서인지, 그녀로부터 얻은 두 아들들로 자신과는 다르다.
영혼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피비를 얻었다. 두 번째 아내.
그녀에게 얻은 딸, 낸시는 피비를 닮아 사랑스럽고 자상하다.
인생이 여기서 머무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 오십에 들어서면서 이 남자는 자신을 평범한 남자로 분류하는 길에 들어선다.
26살이 어린 모델과 욕망이 전부인 애정행각을 벌리게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피비마저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몇 시간만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두 여인을 한 꺼번에 잃었습니다.."
내리막길을 걷게되자 이 방향의 삶도 가속도가 붙는다.
끊임없이 건강이 악화되며 거듭되는 수술 속에 분신같이 따르던 형마저 멀리한다.
건강하고 잘나가고 가정도 충실히 유지하는 형에 대한 본능적 질투라는 이유때문에..
피비가 떠나자 주인공 표현에 따르면 "뇌없는 모델"과 세 번째로 결혼한다.
그래야만, 그나마 자신의 과오를 덮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녀와의 결혼으로 인해 이번엔 욕망외엔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하는 "뇌없는 모델"의 삶 전체를 그가 감당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질고 현명하고 정숙한 아내를 버리고 얻은 것치고는 상당히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 되어버렸다.
결국 세 번째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혼자가 된다.
나이 70에 해변가 공동체 커뮤니티의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아침에 조깅하는 젊은 여인에게 희롱을 걸다 한방 먹는다. 육신은 노인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젊음에 매달리고 싶은 "그의 처절함"이 어처구니없다기보다는 차라리 불쌍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죽음.
이제 죽을 때가 되었으니 죽어야만 하는데, 당최 정리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남은 사람도 없고, 세상을 위해 헌신한 것도 없다.
오로지 그 때, 그 때 닥치는대로 살았는데 어느 새 70여년의 세월이 흘러 죽어야만 한다.
통탄할 노릇이다.
비로소 가슴을 치기 시작한다.
여러개의 인공 장치를 꼽고 있어 조심해야 하는 자신의 심장을 70여년이 지나서야 내리치며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내일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고, 죽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을.
"그"가 이젠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데
내 마음이 울린다.
결코 동정할 짓을 하며 살아온 인생이 아닌 주인공인데 그래서 마음이 할퀴우는 느낌이다.
마치 심장에 박힌 인공 장치가 잘못되어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고나 할까.
1969년에 첫 작품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소설을 계속 써오고 있는 필립 로스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 점 더함도 덜함도 없다.
무서우리만치 인생의 단면을 그대로, 정면으로 들이댄다.
그래서이다.
동정받을 짓을 하지 않고 살았던 고유한 이름도 갖지 못한 주인공 "그"가
어찌 그일수만 있을까.
아무리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펼쳐놓으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70여년 길게 펼쳐진 삶을 하나로 모아, 한 점으로 모아 오늘 하루를 살아보고자 한다.
그만하면 충분했다.
이젠 "깨어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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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처음으로 부정적인 리뷰를 쓰게 만든 거장의 "달빛 길어올리기" 영화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