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賢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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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라, 얼굴이 누렇고 까매서 고민이 많다. 누런색 비누들은 절대 멀리하고, 흰색 비누만 쓴다. 때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밀어도 보고, 사우나에 들어가 흰소금을 얼굴에 듬뿍 얹어 하얗게 되길 기도한다. 하지만 나의 얼굴은 여전히 누렇고 까맸다. 사춘기 때, 나는 엄마에게 내 얼굴은 왜이러냐고 투덜 데며 묻는다. 엄마 왈, “너의 얼굴은 어릴적 소가 핥아서 그렇다” 정말 엉뚱한 답변이었다.
내 나이 여덟 살 때다. 볕좋은 어느날, 아지와의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한다. 시골에 도착한 나는 제일먼저 화장실로 달려간다. 화장실은 아슬아슬한 두개의 판자가 놓여있는 푸세식이다. 변기 아래는 차마 내려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똥들이 높은 또아리를 틀고 있다. 혹시라도 몸에 닿을까, 까치발을 들고 두 다리에 힘을 빡주고 엉덩이를 쳐들었다. 얼굴빛이 서서히 선홍빛으로 물들어가고, 두 다리가 파르르 후달리기 시작 할 무렵, 말캉말캉한 무언가가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축축하고 끈끈한 것이 기분이 묘했다. 너무 놀라 오른 쪽을 돌아보았다. 왠 누런 덩어리가 코앞에 있는게 아닌가. ‘악~~~’ 최고의 소프라노를 자랑하는 찢어지는 괴음과 함께, 나의 발은 높디높은 똥 또아리 속으로 침몰 했다.
나는 소를 볼 때마다 볕 좋은 마당과, 잊지 못할 똥 또아리의 구수한 냄새, 나의 얼굴을 누렇고 까맣게 만들었던 소의 친근한 애정표현이 그리워진다. ‘육식의 종말’을 읽는 내내, 자본주의에 잠식된 소의 운명에 가슴 아팠다. 하지만 아지의 맑고 초롱한 눈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내가 보냈던 시골에서의 풍경들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시골에는 나와 놀만한 또래가 없었다. 새벽이 밝아오면 큰엄마, 아지와 함께 밭일을 하러 나선다. 물론 나는 서늘한 나무그늘에 앉아 있다. 큰엄마와 아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방학숙제를 한다. 아지를 관찰하는 재미는 솔솔 했다. 아지는 우직하고 성실하다. 힘이 세나 사납지 않다. 큰엄마의 이야기를 듣고는 똘똘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큰엄마가 해결하기 힘든 노동과 운송의 역할도 담당한다. 아지는 농경생활을 해온 큰엄마에게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친숙한 벗이자 식구다. 언젠가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큰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일년에 한번 얼굴 뵈는 아들보다 아지가 낫지, 일손하나 돕지 않는 남편보다 낫지 싶다”. 멀리 떨어져 서울에 사는 아들보다, 밭일은 나몰라라 술만 먹는 남편보다, 큰엄마에게는 아지가 삶을 나누는 친숙했던 식구였다. 그래서 아지에 대한 배려도 각별했다. 잠들기 전이면 모기장을 챙겨주고, 쌀쌀한 새벽이면 짚으로 짠 담요를 덮어준다. 집에 돌아오면 외양간을 가장 먼저 깨끗이 치워 아지가 편히 쉴 수 있게 해준다. 이슬 묻은 풀은 절대 먹이지 않고, 매일 아침 솔로 빗겨 아지의 신진대사를 도왔다. 큰엄마와 아지는 단순한 주인과 일하는 소의 관계가 아니었다.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강력한, 서로의 조력자였으며 가족이었다.
밭일을 하러 나설 때와 다른, 강한 설레임으로 남아있는 발걸음이 있다. 읍내에 장이 서던 날이다. 트럭 뒤에 몸을 싣고 흙먼지에 눈을 뜨기 어려웠다. 하지만 얼굴에는 함박미소가 가득하다. 장터에서는 한복을 차려입은 동네 주민들이 소를 잡아 축제를 벌이고 있다. 장구리듬에 맞추어 남녀노소 춤을 추고 뛰어노는 풍경이 펼쳐졌다. 나의 낯선 어깨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한다. 엄마에게 뒤늦게 들었던 그 축제는 ‘선농제’였다. 선농제는 조선시대에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지냈던 제라고 한다. ‘소’를 제물로 사용하고 왕이 직접 밭가는 모습을 보여 농사의 중요성을 알린다. 제물로 사용한 소는 탕을 끓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조선시대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그 음식이 바로 오늘날의 '설렁탕‘이라고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얀 연기와 고소한 향을 내며, 거대한 솥단지에 끓여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방금 끓여낸 설렁탕을 뚝딱 해치웠다. 내가 설렁탕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행복한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일 거다. 마을 주민들은 소를 희생시키는 역사적 재연을 통해서, 세상을 반복적으로 재창조 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자신들에게 영원한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저편에는 10마리 소들이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아저씨들은 시끄럽게 등급을 매기고 흥정을 한다. 우시장은 장터에서 가장 큰돈이 오고가는 곳이라 활기가 넘친다. 여러 해 동안 동거 동락한 가족을 떠나기 위한 소인 만큼, 농가에서 제일가는 재산들이 매매된다. 아지 또한 몇 해를 부지런한 큰엄마와 한 몸이 되어 밭을 갈다, 이곳에서 팔려 어디론가 갔다. 큰엄마도 딸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사춘기 무렵, 나를 핥은 책임을 물으러 시골에 내려갔을 때, 아지는 그곳에 없었다. 가족 같던 아지를 떠나보내는 큰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리고 쓸쓸했을까. 눈물이 그렁그렁 한 큰엄마 앞에서 나는 아무 원망도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소 팔아 자식 등록금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하여, 옛날에는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을까. 농부의 희망이 소 한 마리에 실리는 애틋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욕구, 불안, 염원을 소에게 투영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왔다. 소와 우리와의 관계는 신성하면서도 세속적이며, 정신적이면서도 실용적이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우리의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이다.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성공을 만드는 기질을 보여준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은 도가적인 이상 세계를 동경하며 시문, 그림, 도가 등에 소를 표현했다. 행동은 더디지만 묵묵하게 주어진 일을 하고, 세상에 흔들림 없이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 이것이 선비정신을 가장 잘 투사하고 있다. 또한 제 행사나 마을 축제는 단순히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모여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가운데 ‘우리 속의 나’, ‘나 속의 우리’를 경험하는 어울림의 장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멋스럽고 생명력 있는, 풍류 정신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축제였다. 살아 숨쉬는 소는 우리 삶으로 스며들어, 코리아니티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역할을 했다.
식탁위에 올라오는 고급반찬 ‘한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 나의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그리고 또 부모님의 부모님의,,,. 우리 모두의 숨결과 연결된 삶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살코기를 먹는 것은 곧 그 영혼이 우리 존재 속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소가 탄생 하느냐는, 우리 미래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소)을 통해, 자연의 생기 속에서 우리의 삶을 비추었던 코리아니티의의 지혜. 자연(소)과 인간이 하나되는 어울림의 삶을 실천에 옮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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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여덟 살 때다. 볕좋은 어느날, 아지와의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한다. 시골에 도착한 나는 제일먼저 화장실로 달려간다. 화장실은 아슬아슬한 두개의 판자가 놓여있는 푸세식이다. 변기 아래는 차마 내려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똥들이 높은 또아리를 틀고 있다. 혹시라도 몸에 닿을까, 까치발을 들고 두 다리에 힘을 빡주고 엉덩이를 쳐들었다. 얼굴빛이 서서히 선홍빛으로 물들어가고, 두 다리가 파르르 후달리기 시작 할 무렵, 말캉말캉한 무언가가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축축하고 끈끈한 것이 기분이 묘했다. 너무 놀라 오른 쪽을 돌아보았다. 왠 누런 덩어리가 코앞에 있는게 아닌가. ‘악~~~’ 최고의 소프라노를 자랑하는 찢어지는 괴음과 함께, 나의 발은 높디높은 똥 또아리 속으로 침몰 했다.
나는 소를 볼 때마다 볕 좋은 마당과, 잊지 못할 똥 또아리의 구수한 냄새, 나의 얼굴을 누렇고 까맣게 만들었던 소의 친근한 애정표현이 그리워진다. ‘육식의 종말’을 읽는 내내, 자본주의에 잠식된 소의 운명에 가슴 아팠다. 하지만 아지의 맑고 초롱한 눈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내가 보냈던 시골에서의 풍경들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시골에는 나와 놀만한 또래가 없었다. 새벽이 밝아오면 큰엄마, 아지와 함께 밭일을 하러 나선다. 물론 나는 서늘한 나무그늘에 앉아 있다. 큰엄마와 아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방학숙제를 한다. 아지를 관찰하는 재미는 솔솔 했다. 아지는 우직하고 성실하다. 힘이 세나 사납지 않다. 큰엄마의 이야기를 듣고는 똘똘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큰엄마가 해결하기 힘든 노동과 운송의 역할도 담당한다. 아지는 농경생활을 해온 큰엄마에게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친숙한 벗이자 식구다. 언젠가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큰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일년에 한번 얼굴 뵈는 아들보다 아지가 낫지, 일손하나 돕지 않는 남편보다 낫지 싶다”. 멀리 떨어져 서울에 사는 아들보다, 밭일은 나몰라라 술만 먹는 남편보다, 큰엄마에게는 아지가 삶을 나누는 친숙했던 식구였다. 그래서 아지에 대한 배려도 각별했다. 잠들기 전이면 모기장을 챙겨주고, 쌀쌀한 새벽이면 짚으로 짠 담요를 덮어준다. 집에 돌아오면 외양간을 가장 먼저 깨끗이 치워 아지가 편히 쉴 수 있게 해준다. 이슬 묻은 풀은 절대 먹이지 않고, 매일 아침 솔로 빗겨 아지의 신진대사를 도왔다. 큰엄마와 아지는 단순한 주인과 일하는 소의 관계가 아니었다.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강력한, 서로의 조력자였으며 가족이었다.
밭일을 하러 나설 때와 다른, 강한 설레임으로 남아있는 발걸음이 있다. 읍내에 장이 서던 날이다. 트럭 뒤에 몸을 싣고 흙먼지에 눈을 뜨기 어려웠다. 하지만 얼굴에는 함박미소가 가득하다. 장터에서는 한복을 차려입은 동네 주민들이 소를 잡아 축제를 벌이고 있다. 장구리듬에 맞추어 남녀노소 춤을 추고 뛰어노는 풍경이 펼쳐졌다. 나의 낯선 어깨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한다. 엄마에게 뒤늦게 들었던 그 축제는 ‘선농제’였다. 선농제는 조선시대에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지냈던 제라고 한다. ‘소’를 제물로 사용하고 왕이 직접 밭가는 모습을 보여 농사의 중요성을 알린다. 제물로 사용한 소는 탕을 끓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조선시대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그 음식이 바로 오늘날의 '설렁탕‘이라고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얀 연기와 고소한 향을 내며, 거대한 솥단지에 끓여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방금 끓여낸 설렁탕을 뚝딱 해치웠다. 내가 설렁탕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행복한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일 거다. 마을 주민들은 소를 희생시키는 역사적 재연을 통해서, 세상을 반복적으로 재창조 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자신들에게 영원한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저편에는 10마리 소들이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아저씨들은 시끄럽게 등급을 매기고 흥정을 한다. 우시장은 장터에서 가장 큰돈이 오고가는 곳이라 활기가 넘친다. 여러 해 동안 동거 동락한 가족을 떠나기 위한 소인 만큼, 농가에서 제일가는 재산들이 매매된다. 아지 또한 몇 해를 부지런한 큰엄마와 한 몸이 되어 밭을 갈다, 이곳에서 팔려 어디론가 갔다. 큰엄마도 딸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사춘기 무렵, 나를 핥은 책임을 물으러 시골에 내려갔을 때, 아지는 그곳에 없었다. 가족 같던 아지를 떠나보내는 큰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리고 쓸쓸했을까. 눈물이 그렁그렁 한 큰엄마 앞에서 나는 아무 원망도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소 팔아 자식 등록금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하여, 옛날에는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을까. 농부의 희망이 소 한 마리에 실리는 애틋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욕구, 불안, 염원을 소에게 투영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왔다. 소와 우리와의 관계는 신성하면서도 세속적이며, 정신적이면서도 실용적이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우리의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이다.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성공을 만드는 기질을 보여준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은 도가적인 이상 세계를 동경하며 시문, 그림, 도가 등에 소를 표현했다. 행동은 더디지만 묵묵하게 주어진 일을 하고, 세상에 흔들림 없이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 이것이 선비정신을 가장 잘 투사하고 있다. 또한 제 행사나 마을 축제는 단순히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모여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가운데 ‘우리 속의 나’, ‘나 속의 우리’를 경험하는 어울림의 장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멋스럽고 생명력 있는, 풍류 정신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축제였다. 살아 숨쉬는 소는 우리 삶으로 스며들어, 코리아니티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역할을 했다.
식탁위에 올라오는 고급반찬 ‘한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 나의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그리고 또 부모님의 부모님의,,,. 우리 모두의 숨결과 연결된 삶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살코기를 먹는 것은 곧 그 영혼이 우리 존재 속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소가 탄생 하느냐는, 우리 미래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소)을 통해, 자연의 생기 속에서 우리의 삶을 비추었던 코리아니티의의 지혜. 자연(소)과 인간이 하나되는 어울림의 삶을 실천에 옮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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