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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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1
더해진 것이 있다면, 빠져나가고 없어진 것이 있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지만.
쏜 활을 지나가는 시간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 부모님의 시간도 멀어진다는 것. 각자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여 이 모든 것들을 얼른 완성해서 그분들과의 여유로운 시간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을 찌를 듯이 집중해야하는 진취적인 일임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역시 소중하다. 아직은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처지이지만. 또한 나의 분야에서의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을까하는 것에도 의문이다. 그럴만한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슬프다. 몇 해 전에 드라마 허준에서 봤었던 가슴 아픈 장면은, 허준이 귀양지에서 동의보감 집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늘 힘이 되었던 그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버리셨고, 머리가 허옇게 샌 아내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던 장면이. 마음에 떠나지를 않았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긴 길을 돌아왔을 때,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여전히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글을 쓰지만 내가 얼마나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지는 스스로가 안다. 일과 그에 대한 피로를 핑계로 따뜻한 안부 전화에도 얼마나 인색했었는지.
두려움 2
지나간 시간만큼 자라고, 나아졌을 법하지만. 시간이 지나간 만큼 계수되지 않았던 많은 과거가 내게 늘 보복을 가해온다. 허비했던 날 수와 숨가쁘게 지나온 날 수가 얼마만큼의 비율일이지 모르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가졌기 때문에 잃은 것이 있고, 마음을 졸였기 때문에 놓친 것들이 있다. 비관적인 태도는 아니지만. 삶은 어떤 형태로든 늘 후회가 남는다. 이렇게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과연 순간에도 마음의 중심에서, 최선을 다했었나.
물론 좋은 결과를 가졌었던 순간에도. 안다. 지나온 시간들이 어떠했느냐는 내가 겪는 현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지나온 것들에 대하여 어떤 보상과 어떤 보복을 받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굳이 감상적이거나 회의적이지 않더라도 알 수 밖에 없는 사실들.
두려움 3
해보고 싶은 일들이 아직 너무 많다.
그동안 시간이 두렵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거 같다. 이제는 한꺼번에 달려든다. 그 두려움들이. 판단과 결단을 내리기에 너무 많은 것들을 살피고, 고려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내게 지나갈 시간들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픈 일들을 무작정 저지를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기로 한다. 내게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차근차근하게 해보는 것이. 순간을 순간답게 순간을 빼곡이 채워주는 것이 이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 4
사람과 일에 대하여 선언했었던 많은 일들이 변해간다. 그 선언에 대한 주체의 변화로 인함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순간들이 격하게 변해간다.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과정이 아름답다. 라는 말들을 해댈 때에도, 저 인식의 골짜기 반대편에서는 두렵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 모든 것이 다른 얼굴을 해올 까봐. 그 순간들을 다 상대하려면. 인생이 얼마나 고단한 것이 되어야 할지.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는 순간들이 없이 내가 과연, 내게 허락되어진 이 녀석들을 잘 상대할 수 있을까.
하여 두려움은 경외심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