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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0일 09시 03분 등록
* 등장인물 

에이치 - 입사 17년차 차장(팀장)
디 - 입사 7년차 대리 / 입사 9년차 과장 
엠 - 입사 4년차 계장 
씨 - 입사 13년차 차장 



- 2011년 5월 어느날 오후 5시 -   
 
회의실에  앉아 있는 디. 에이치를 기다리고 있다.
곧 에이치가 들어온다. 동그란 얼굴에 똘망똘망한 쌍꺼풀 짙은 눈. 입사 15년이 훌쩍 넘은 고참팀장이다. 
에이치는 디를 면담하려 하는 참이다. 영업팀에서 에이치의 영업지원팀으로 온 디가 요즘 어떤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가늠해보고 싶은 것이다. 
면담이 시작됐다. 오가는 질문들......
 
 " 디, 요즘 어때?! 우리 팀은 어떤거 같아?"

" 일은 잘 되고 있나?! "

" 어려운 건 없고?! 문제는"

" 외근직하다가 내근직으로  전환하니까 힘들지?! 조금 지나면 적응될꺼야. " 

 
그 뒤로도 많은 질문과 대답들이 오간다.
얼마 뒤  에이치가 디에게 민감한 질문을 한다. 
 
" 디, 우리 팀 분위기는 어떤거 같아?!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

디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말을 한다. 

" 전, 팀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것 같아서요."

에이치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더니 흥분한 듯, 디의  다음 말을 막으면서 말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난 그런 생각에 반대하네!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 같고, 디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세히 돌아보면 나름 다들 잘 지내고 있단 말이야. 잘 지내고 있는데 '힘들어 한다', '어둡다' '회사를 싫어한다'라는 이야기로 팀 분위기를 흐리거나 안 좋은 방향으로 과도하게 몰아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네."
 
에이치는 젠틀했다. 사람 좋고 나름 합리적인 팀장이었다. 하지만 워낙 자기 주장과 주관이 강했고, 무엇보다도 긍정적이었고 회사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회사 일이 좋아서 야근을 즐기는  몇 안되는 팀장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에이치였으니, 디의 말이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상황에 따라선 불쾌하게 들렸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디가 느낀 밑의 분위기는 에이치가 말하는 것과는 달랐다. 부족한 인원, 밀려드는 업무들, 거기에 더해지는 경영진의 의지로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가지 프로젝트들 - BSC(BALANCED SCORE CARD) 도입/수정/정착, 사내 어학시험, 멘토링 제도, 독서교육 등- ...... 말 그대로 산넘어 산, 쌓여만가는 서류철들이었다. 기본 업무도 바쁜데다가 경영진의 프로젝트까지 밀려드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상 업무적인 것들은 둘째 문제였다. 직원들의 그늘진 얼굴 뒤엔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회사가  적당한 수익을 내고 있는데도 그에 합당안 연봉인상을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 가끔 상여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주는 방식을 달리해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조삼모사식' 지급방식, 일 잘하는 계약직 직원에 대한 정규직 전환 거부(계약직 2년 뒤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되어 있으니, 2년만 채우고 계약관계를 끝내는 식이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신규 계약직 채용과 업무 재인수인계 등등...... 

문제는 신뢰였다.
경영진에게 직원들은 경영진에 대해 적대적이고 일 안하면서 돈만 많이  받아가려는  족속으로 비추어지는 듯 했고, 직원들에게 경영진은  직원을 교체가능한 부속품정도로 생각하는 욕심많은 갑, 마른 걸레는 짜고 또 짜는 식의  현 직원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정규직 채용 안하는 구두쇠 정도로 비춰질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영진의 이 모든 시도들 - 설령 선의의 결과를  꽤하고, 그것이 예상될 지라도 - 이 탐탁치 않게 보이지 않고, 직원들에겐 결국 억지로 해야만 하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디는 이런 대다수의 직원들로 부터 느껴지는 이 어두운 그늘을 이번 면담을 통해 대변(?!)을 하고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  만족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에이치는 디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디는  힘이 빠졌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런 일이 한 두번 있는 것도 아니니......
 

- 2013년 4월 어느날 -
 
디가 일을 하고 있다. 조금  뒤 후배 엠이 온다. 그리고 무언가를  디에게 조용히  말한다.

" 디과장님,  이 계약서 입력 업무,  이거 옆에 계약팀에서 해야하는거 아니에요?! "
" 어, 그런거 같은데...... 왜 ?!"
" 아니~ , 계약팀 씨차장님이 이 업무 자꾸 나한테 하라고 그러잖아요~ 이거 말고도 할 것 산더미 같은데......"
" 그래?! 씨차장님한테 계약팀에서 하는거라고 얘기하고 넘겨."
" 그건 벌써 얘기했는데, 니 팀 내팀 업무가 어디 있냐며,  예전에 우리 팀에서 한 적도 있다고 하면서,  그냥 하라고 그러잖아요. "
" 그래?! 흠.... 우리 팀이 그걸 했었나."
" 디과장님이 가서 좀 애기해봐요~ "
" 내가?! 에이 어떻게...... 씨 차장님이 요즘 많이 바쁘셔서 그런 것 같다. 너가 다시 한번 얘기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냥 해. 얼마 안되는거 같은데......"

엠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디를  바라본다.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고'만' 있는 디를 보고 결국 엠은 포기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요즘  엠이 담당하는 파트가 일이 몰리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인지 최근 엠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흐린 날에 가깝다. 디는 그런 엠이  조금 안타까웠지만, 자신도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그저 바라 보기만 한다.
 
 
2011년의 디는 직원들의 점점 힘들어지는 업무강도와 그들의 감정, 회사에 대한 생각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회사의 방향과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피해자 입장이었다. 2013년의 디는 업무로 인해 꽤 많은 스트레스는 받는 아랫 직원의 업무정도와 환경에 대해 안타까워할 뿐, 별다른 대책없이 그저 바라만 보는 방관자가 되었다. 디 또한 그닥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들을 직접 관리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라고 표현하기도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별다른 계획없이, 별다른 생각없이 세월이 흘러가다보면, 디가 에이치 정도의 관리자 직급이 된다. 그때가 되었을 때, 과거 디가 에이치로 부터 느꼈던 피해자로서의 느낌, 벽에 부딪힌 느낌을 그 누군가에게 주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디는 현재의 경영진과 회사 분위기에서, 그렇지 않다라고 자신할 수 없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자신은 회사 생활에 만족한다 하여, 다른 이들도 모두 만족할거라고 단정하는 짧은 (또는 맘편한_  생각을 하고, 
자신은 결정권이 없고, 자신도 피해자라며,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해소하려하지 않고, 
자신은 피해자라 하여, 언제나 인상쓰고 1년 365일 '흐림'상태로 업무를 한다.

이런 조직에  과연 밝은 미래가 있을까?!
이런 조직에 과연 즐거운 회사생활이 있을까?!
아마도 '아니다'일 것이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경영진은 직원에 대한 가정, 즉 인간에 대한 가정을 재정립하고 경영진과 직원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해야 한다.
직원은 자신을 1인기업가 또는 전문가로 인식하고,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고 최상의 상품(서비스)를 창출하려 노력해야 한다.
관리자는 자신을 관리자가 아닌 직원들의 회사생활과 커리어를 지원해주는 스폰서로 보고, 그들의 업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 적극 지원하면서 직원들에게는 만족감과 자신감을, 회사에는 그에 따른 긍정적인 업무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직구성원의 누군가를 피해자로 보고,  다른 누구를 가해자로 보는 시각은 시작점 부터가 불행하다. 누구는 피해자이고, 또 다른 누구는  가해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에 도움을 주는 협력자이자 파트너라는 사고전환을 통해 상생의 관계로 변화/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21세기는 , 21세의 경영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사람의 시대에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모른 척하고, 오해하고, 쉽게 단정한다면, 사람으로 통하는 문은 닫히게 될 것이고  
결국 내일로 통하는 문은 굳게 잠기게 될 것이다. 

내일은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을 향하는 조직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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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0 22:54:17 *.67.201.162

제가 코리아니티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왜 우리나라는 인재를 중시하지 않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느냐?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답이 없더라구요 ㅜ.ㅜ


아직도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남양같은 갑을 관계가 일상이고, 여자들은 직장에서 성추행 당해도 큰 통로도 없습니다.

대기업이라 해봤자 한국식 경영이라고 야근을 아주 당연시 하고... 머 여튼 대한민국이 인재를 중시하지 않아도 잘나가는 것 보면 전 신기하면서도 좀 의문입니다. 빨리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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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0 23:55:15 *.58.97.136
코리아니티 대로만 하면 인재들이 넘쳐날텐데...자기이익에 눈먼 소인들이 넘쳐나서 그럴까요...? 암튼 우리나라는 집단 굿을 하거나 집단 심리치료. 힐링이 필요한듯.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글쓰는 작가들이 그 일을 조금이라도 해야하고....아. 김대성작가에 거는 기대가 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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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1 23:54:59 *.50.96.158

에고, 옛날 생각나네. 머리아파. 은경이 얘기한대로 대성 작가가 한번 대한민국 직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한번 써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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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16:32:46 *.43.131.14

김대성작가님 시동거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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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 19:16:35 *.62.164.120
웃음이 나오지 않고 두통이 옵니다. 정말 매일매일 겪는 일이네요. 크윽-

좋은 팔로워가 되길 바라면서도 좋은 리더 되기 위한 변화를 하지 않는 직장문화! 정말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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